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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피 샤를로테(하노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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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BB3D2><colcolor=#000000> 프로이센 왕국 프리드리히 1세의 왕비
하노버의 조피 샤를로테
Sophie Charlotte von Hannover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ohie_Charlotte_von_Hannover%3B_Queen_of_Preu%C3%9Fen.jpg
이름 조피 샤를로테
(Sophie Charlotte)
출생 1668년 10월 30일
하노버 선제후국 오스나브뤼크 이부르크 성
사망 1705년 2월 1일 (향년 36세)
신성 로마 제국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하노버
장례식 1705년 3월 9일
프로이센 왕국 베를린 베를린 대성당
배우자 프리드리히 1세 (1684년 결혼)
자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아버지 하노버 선제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어머니 팔츠의 조피
형제 조지 1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막시밀리안 빌헬름, 카를 필립, 크리스티안 하인리히,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종교 루터교
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
3.1. 조상3.2. 자녀
4. 여담

[clearfix]

1. 개요

프로이센 왕국프리드리히 1세의 첫번째 왕비. 조지 1세의 여동생이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어머니이다.

2. 생애

하노버 선제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 팔츠의 조피고명딸로, 하노버 오스나브뤼크의 이부르크 성에서 태어났다.

1684년 10월 8일에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이자 프로이센 공작인 프리드리히와 결혼했다. 부부 사이는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조피 샤를로테는 세차례 임신했으나 한번은 유산하고 한명은 유아기에 요절해, 성인이 될 때까지 자란 자식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유일했다.

1701년 1월 18일에 남편 프리드리히가 프로이센의 초대 국왕 프리드리히 1세로 즉위하면서 프로이센의 첫 왕비가 되었다. 프리드리히 1세는 왕비에게 베를린 외곽에 위치한 영지인 리체[1]를 사유지로 주었다. 조피 샤를로테는 리체에 바로크 양식의 여름 별장을 건축한 뒤 리첸부르크 궁이라고 부르며 거주지로 삼았다.

교양과 학식을 갖춘 조피 샤를로테는 음악과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다양한 음악가와 철학자들을 리첸부르크 궁으로 초청하고 그들의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또한 어머니와 친분이 있던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와 자주 서신을 주고 받았다. 두 사람은 자주 철학적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조피 샤를로테는 프로이센 왕립 과학 아카데미를 창설해 라이프니츠를 초대 회장에 세웠다.

1705년 2월 1일에 어머니를 만나러 하노버를 방문하던 중 폐렴에 걸려 36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조피 샤를로테의 시신은 베를린으로 이송되어 베를린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그녀의 사후 라이프니츠는 조피 샤를로테를 두고 놀라울 만큼 지식이 풍부하며 지식에 대한 욕구가 크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라고 평하며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프리드리히 1세는 그녀를 기리기 위해 리첸부르크 궁의 이름을 샤를로텐부르크 궁으로 바꿨다.[2]

3. 가족관계

3.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colbgcolor=#FFE4E1,#330500> 하노버의 조피 샤를로테
(Sophia Charlotte of Hanover)
<colbgcolor=#FFF3E4,#331c00> 하노버의 선제후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
(Ernest Augustus, Elector of Hanover)
<colbgcolor=#FFFFE4,#323300>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게오르크
(George, Duke of Brunswick-Lüneburg)
<colbgcolor=#E4FFEC,#00330f>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빌헬름
(William, Duke of Brunswick-Lüneburg)
덴마크의 도로테아
(Dorothea of Denmark)[3]
헤센다름슈타트의 안나 엘레오노레
(Anne Eleonore of Hesse-Darmstadt)
헤센다름슈타트 방백 루트비히 5세
(Louis V, Landgrave of Hesse-Darmstadt)
브란덴부르크의 마그달레네
(Magdalene of Brandenburg)
팔츠의 조피
(Sophie of the Palatine)
팔츠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4]
(Frederick V, Elector Palatine)
팔츠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4세
(Frederick IV, Elector Palatine)
오라녀나사우의 루이제 율리아나
(Louise Juliana of Orange-Nassau)
엘리자베스 스튜어트
(Elizabeth Stuart)
제임스 6세 & 1세
(James VI & I)
덴마크의 아나
(Anne of Denmark)

3.2. 자녀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 / 자녀
1남 브란덴부르크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Frederick August of Brandenburg)
1685년 10월 6일 1686년 1월 31일
2남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Frederick William I)
1688년 8월 14일 1740년 5월 31일 하노버의 조피 도로테아[5]
슬하 7남 7녀[6]

4. 여담

  • 1696년에 친구인 작센아이제나흐의 엘레오노레 에르트무테의 자식들이 부모를 모두 잃자 조피 샤를로테가 아이들을 맡아 키웠다. 그중 가장 나이가 많은 안스바흐의 카롤리네는 조피 샤를로테로부터 좋은 교육을 받고 자라 영국 조지 2세[7]의 왕비가 되었다.

[1] 1920년에 베를린에 편입되었다.[2] 아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아직 유럽에서 새로운 왕조로 인정받지 못하던 프리드리히 1세가 하노버에 잘 보이기 위해 한 행동이라고 여겨진다.[3] 크리스티안 3세의 차녀이다.[4] 30년 전쟁의 시작인 보헤미아-팔츠 전쟁 당시의 팔츠 선제후이자 보헤미아 왕이 된 그 프리드리히 5세이다.[5] 오빠인 조지 1세의 딸이다.[6] 프리드리히 2세, 스웨덴 왕비 로비사 울리카, 하인리히 왕자[7] 조지 1세의 아들로 조피 샤를로테의 조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