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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이탈리아공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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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colbgcolor=#CE2B37><colcolor=#fff>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로 117
상급기관 이탈리아 왕국 외무부
영사관 설립 1901년
공사관 승격 1903년
공사관 폐쇄 1905년
파일:이탈리아공사관.png
<colbgcolor=#008751> 서소문에 있었던 이탈리아 공사관[1]
1. 개요2. 역사3. 건물4. 여담5. 같이보기

[clearfix]

1. 개요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었던 이탈리아 왕국의 옛 공사관이다.

2. 역사

1884년(고종 21년) 6월에 조이수호통상조약의 체결로, 조선이탈리아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정부는 한성에 상주할 외교관을 파견하지 않았으며 외교공관도 짓지 않았다. 그리고 한동안 외교 및 통상 업무를 영국공사관에게 대신 맡겼다.#
파일:곤당골 이탈리아공사관.png
<colbgcolor=#008751> 곤당골에 있었던 이탈리아 공사관[2]
그러다 대한제국 수립 후인 1901년(광무 5년) 12월에야 비로소 상주 영사로 프란체세티 디 말그라 백작[3]을 파견했고 영사관도 개설했다. 처음에는 곤당골에 있는 미국인 목사 사무엘 무어[4]가 살던 집(지금의 을지로 1가 롯데호텔 자리)을 영사관으로 사용하다 나중에 서소문동 41번지(지금의 대한항공 빌딩 자리)[5]로 옮겼다.# 말그라 영사는 1902년(광무 6년)에 장티푸스로 요절했고, 후임으로 그의 친구이자 현역 해군 중위였던 카를로 로제티[6]가 부임했다. 로제티 영사는 1903년(광무 7년) 5월에 이탈리아 정부의 명으로 영사관을 공사관으로 승격시켰다.
파일:서소문 대한항공.png
<colbgcolor=#008751> 서소문 이탈리아 공사관 터에 자리한 대한항공빌딩[7]
1905년(광무 9년) 11월에 일제을사늑약 체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여 한국과 이탈리아국교는 끊겼다. 이탈리아공사관은 다시 영사관이 되었다. 〈황성신문〉에 따르면 1908년(융희 2년) 5월에 돈의문[8] 미국 선교사 쓰레왓도의 옛 집터로 영사관을 이전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1910년(융희 4년) 1월에 이탈리아영사관은 문을 닫았고, 기능은 영국영사관이 위임했다. 경술국치 이후인 1919년 9월에 이탈리아 정부에서는 주 경성[9] 이탈리아 영사로 체자레 티리오로를 부임시키면서 이탈리아영사관은 부활했다.# 그러나 1년 뒤에 티리오로 영사가 이탈리아로 가면서 영국영사관에 다시 업무를 넘겨주었다.영국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이후 이탈리아 영사와 영사관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8.15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인 1956년에 한국과 이탈리아는 다시 수교했으며 1957년 양국의 외교 공관을 공식적으로 복원했다. 현재 주한이탈리아대사관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대로 98 (한남동)에 있다.

3. 건물

4. 여담


파일:꼬레아 에 꼬레아니 책.png}}} ||
<colbgcolor=#008751> 《꼬레아 에 꼬레아니 : 사진해설판》 표지
이돈수와 이순우가 공동 집필하고 출판사 하늘재에서 펴낸 책 《꼬레아 에 꼬레아니 : 사진해설판》에서 이탈리아공사관 및 1900년대 초반 서울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다. 표지에 보이는 서양식 건물이 바로 이탈리아공사관이다.

5. 같이보기


[1] 사진 출처 - 서울스토리.[2] 사진 출처 - 문화콘텐츠닷컴.[3] Count Ugo Francesetti di Malgra, 한문 이름: 불안사서덕(佛安士瑞德). 1877 ~ 1902.[4] Samuel Forman, Moore, 한국 이름 모삼열(牟三悅). 1860 ~ 1906. 현재 승동교회의 전신인 곤당골교회를 세운 사람이다.[5] 도로명주소: 서소문로 117.[6] Carlo Rossetti. 1876 ~ 1948.[7] 사진 출처 - 카카오맵.[8] 원문은 '서문(西門) 밖'이다.[9] 일제강점기 시절 서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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