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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거란 전쟁/음악#s-2.1| Part 1
비상]]
서도밴드
2023. 12. 15.[[고려 거란 전쟁/음악#s-2.2| Part 2
폭풍]]
김장훈
2023. 12. 29.[[고려 거란 전쟁/음악#s-2.3| Part 3
적동
(붉은겨울)]]
안예은
2024. 01. 18.[[고려 거란 전쟁/음악#s-2.4| Part 4
그 겨울에
나는]]
IYAGI (이야기)
2024. 02. 03.그 외 오리지널 스코어는 음악 문서 참고.
<colbgcolor=#070707><colcolor=#fff> 지채문 智蔡文 | |
캐릭터 | |
지위 | 중랑장[1] (4 ~ 16회) → 친종장군[2] (16 ~ 29회)[3] → 우상시 (29 ~ 32회) |
등장회차 | 4회, 9 ~ 32회 |
배우 | |
한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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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KBS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의 등장인물이자 본작의 서브 주인공격의 인물이다.[4] 배우는 한재영.[5]
2. 작중 행적
2.1. 4회
4회 중반부터 동북면 중랑장으로 거대한 낭아봉[6]을 휘두르며 대도수와 함께 여진과 싸우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아직 중랑장임에도 이현운이 경계할 정도의 용장. 여진족을 죽이면서 항상 자기 이름을 외치기에 돌아가는 길에 대도수가 그 이유를 묻자 "여진에게 소문이 나서 자길 두려워 하게 만들고, 그만큼 백성은 편안하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대도수가 "자네 이름을 들은 여진 놈들은 다 죽었는데 누가 소문을 내는가?"라고 묻자 듣고 보니 그렇다면서 웃는다. 이내 강조와 이현운이 동북면을 회유하기 위해 보낸 유방 일행이 전한 강조의 목종 시해 소식을 듣고 군대를 끌고 가든 혼자서 가든 강조의 목을 치겠다고 격노하나 이내 유방이 강조에게 문을 열어준 자신의 책임이니 목숨을 내놓겠다며 진정시킨다. 진정된 후에는 개경과 새 황제의 안위를 유방과 함께 걱정한다.2.2. 9 ~ 10회
9회에서 동북면 도순검사 탁사정의 명에 따라 동북면 군대의 선발대를 이끌고 서경으로 남하한다. 이 과정에서 우연히 서경의 항복문을 받고 돌아가던 거란 사신들을 발견해 사살하고, 거짓 항복을 들켜 묶인 채 거란 진영으로 끌려가던 예부시랑 강감찬을 구해준다. 그리고 강감찬이 '거란 군영에 항복을 전하는 사신으로 가서 시간을 벌 테니 빨리 서경으로 진입해서 항전을 준비하라.'는 말을 전하자 서경으로 가서 빨리 성문을 열라고 압박하며 대치한다.[7]이어진 10회에서 서경 외곽에서 거란 척후병들을 지속적으로 차단하면서 본군을 기다리다가[8] 탁사정과 대도수를 맞이한다. 항복파들이 장악한 서경성의 문이 열리지 않자, 처음엔 그냥 공성전으로 강제로 뚫어버리자고 하더니, 거란군이 당도한다는 소식을 듣자 대도수의 제안대로 그냥 성문 앞에서 거란군에 맞서 싸울 것을 결의하고 동북면으로 돌아가자는 도순검사 탁사정의 발언을 무시하고 군사들에게 직접 전투 준비를 하라고 명령하는 위엄 찬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직후 조자기에 의해 성문이 열리면서 서경에 진입하자마자 관아 밖으로 나온 항복파이자 서경부유수인 원종석을 발견하고 말을 몰고 달려가 낭아봉으로 그의 머리를 단번에 아직내버린다[9]
이후 대도수와 승려 법언, 휘하 병사들을 이끌고 직접 성 밖으로 나가 여러 차례의 전투를 승리하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10] 이후 거란군을 너무 깊숙히 추격하다가 화살 세례 반격을 받고 패퇴하여 결국 서경에서 이탈하게 된다.[11]
2.3. 11회
50명도 남지 않은 패잔병을 이끌고 패배에 좌절하다가 내관 양협을 만나 현종의 명을 전해받자 즉시 정신을 차리고 황명을 받들어 개경으로 복귀하여 개경의 마지막 방어선인 절령에서 전투를 벌인다.[12][13] 전투 직전, 절령까지 와서 상황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해달라는 강감찬의 말에 한나절 정도는 버틸 수 있는데 그 이상은 장담 못한다고 이야기해준다. 강감찬으로부터 할 일이 남아있으니 반드시 살아남으라는 얘기를 듣는데[14], 장연우는 옆에서 자기는 죽으라는 얘기냐며 투덜거린다. 이후 밤새도록 본인도 지칠 정도로 신명나게 싸우지만, 쉴 틈도 없이 계속해서 몰려오는 거란군을 보면서 기합을 넣기 위해 소리를 지르고, 결국에는 패퇴하였다. 함께 싸우던 황보유의가 현종을 대피시키려 강감찬과 함께 궁궐로 달려간 것을 볼 때, 지채문도 마찬가지로 현종의 몽진 대열에 합류한 것으로 보였고, 회차 최후반 몽진 행렬에서 앞서 가는 모습으로 비춰졌다.2.4. 12회
몽진 길에 현종을 호위하며 장연우와 함께 군사들을 지휘한다. 중간에 쉬면서 다들 식사하는데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며 그냥 밖으로 나와버리자, 장연우가 대신 뺏어가려던 밥그릇을 황보유의가 들고 와 억지로라도 한 술 뜨라고 권한다. 그러나 "밥을 먹을 자격이 없다" 라면서 거부한다.[15] 이유인즉슨 절령에서 거란군을 저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황보유의는 중과부적이었다며 위로하지만 여전히 자책하는데, 황보유의가 "천하의 지채문이 한 번 싸우고 죽으면 되겠냐. 살아남아서 계속 싸워야지" 라고 격려해주자 자책을 내려놓는 듯했다.[16] 그러나 곧이어 거란군이 지척에 다다랐다는 말에 결국 밥은 못 먹고 장연우, 황보유의와 함께 현종을 호위하면서 군사들을 이끌고 거란의 추격대를 저지하고, 남은 잔여 병력과 군관까지도 일일이 때려잡는다.[17] 다만, 거란군을 상대하느라 현종 일행과는 떨어져 버린 바람에 현종과 원정황후, 채충순이 충주의 호장 박진의 기습을 받게 되었다.2.5. 13 ~ 14회
13회에서 회차 초반 박진과 그가 이끄는 자객들에게 기습을 받아 위기에 처해있던 현종을 발견해 가까스로 구해내고, 이후 황보유의와 도망친 박진을 추격하나 우연히 지나가던 토끼만 보고 놓쳐버리고 만다. 이후 다시 현종의 몽진을 호종한다. 이후 어느 빈 관아에서 황보유의, 김종현과 함께 관아 입구에서 바깥 경계를 서다가 누군가가 다가오자 경계하는데, 현종이 내려왔다는 소식을 들은 주변에 사는 백성들이 식사를 대접하러 온 것어었고, 지채문도 그들을 들여보내준다. 그리고 죄책감에 시달리던 이전 회차와는 달리 민초들의 호의에 한결 마음이 놓인건지 백성들에게 받은 음식을 먹으며 우물대는데, 그 와중에 황보유의와 김종현이 쭈그려 앉는 것을 보고 눈치를 주면서 일어서게 만든다.14회에서 초반 여전히 계속해서 몽진 일행을 이끌고 가는 도중, 기분이 안 좋은 현종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활로 날아가는 철새 떼 중 한 마리를 명중시키는 묘기[18]를 선보이다가 지역 호장들이 백성들을 동원해 몽진 일행을 습격하자 선봉에서 이들을 모두 때려눕힌다.[19] 그리고 힘겹게 창화현에 진입한 뒤 다시 한번 호장들의 공격에 위기를 맞이하자 현종을 탈출시키려고 애쓴다. 하지만 현종이 직접 나서 상황을 진정시켰고, 호장들이 다시 백성들을 동요시키려는 찰나[20] 하공진의 지원군이 나타나면서 위기를 넘긴다.
2.6. 15 ~ 16회
15회에서 원정황후와 최사위, 김종현 등과 헤어진 뒤, 현종의 명으로 갑옷을 벗고 피난민인 척 채충순, 장연우, 황보유의, 양협과 함께 평민 복장으로 맨 앞에서 몽진길을 호위하는데, 주 무기인 낭야봉을 들면서도 현종을 도와주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기나긴 여정 끝에 공주에 도착해서 공주절도사 김은부가 맞이해주어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한다. 이 때 장연우가 술을 마시려고 술병을 잡으려고 하자 "술은 삼가십시오. 곧 떠나야 합니다." 라고 막아서면서 술병을 붙잡고 제지한다. 결국 장연우는 지채문에게서 술병을 뺏으려고 시도했다가 힘싸움에서 밀려 실패했고 멋쩍어하면서 "냄새만 맡은 것일세." 라고 얼버무리며 변명[21]한다.16회에서 나주까지 내려왔다가 거란군이 물러갔다는 애수진장 강민첨의 소식을 접한 현종이 환궁할 때 다시 갑옷을 입고 현종을 따라 개경으로 돌아와 황폐화된 개경을 현종 뒤에서 지켜보았고, 이후 친종장군으로 승진하면서 현종 바로 앞(유진의 옆자리)[22]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논공행상 중 벌을 받지 않고 승진한 탁사정을 노려보았고, 이후 처소로 이동하던 현종의 뒤를 묵묵히 따라오다가 현종이 "할 말이 있어보인다."라고 말하자, "아닙니다."라고 하면서 사실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23]
2.7. 17회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독단적으로 자리를 비웠는데[24], 큰 칼을 차고 어디론가 가는 도중 등청 중에 그와 마주친 한림학사승지 강감찬이 두 번 불러 세웠으나 아예 무시하고 계속 걸어갔다. 그가 향한 곳은 바로 우간의대부 탁사정의 집인데, 현종의 용서에 뻔뻔한 태도를 보이며 완전히 안심하고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그를 용서할 수 없어서 그냥 문을 열고 들어와 그대로 격분한 태도로 멱살을 잡고 내팽겨치고[25] 칼로 베려고 했지만, 마침 지채문을 뒤쫓아간 강감찬이 상황을 보고 말려서 탁사정은 목숨을 건진다. 이후 현종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을 질책하는 현종에게 '탁사정이 대도수를 사지로 내몰고 서경을 버리고 도주'했다고 호소하면서 "자신과 탁사정을 함께 베어달라."라고 간청했지만, 일단 불문에 부치면서 소동이 가라앉았다. 이후 다시 현종을 호위하던 중 몽진 과정에서 호족들과의 힘겨루기를 결심한 현종이 자신의 지지세력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부탁을 거절한 강감찬을 끝내 파직하자 놀란 기색을 보인다.2.8. 18 ~ 22회
18회 이후에도 줄곳 현종을 경호하면서 가끔씩 조정에 들어오는 탁사정을 눈엣가시와 같이 바라보았고, 후반 강감찬의 집에 나와 말을 타고 질주하는 현종을 향해 멈추라면서 수하 부장 2명과 함께 쫓아가다가 낙마하는 것을 보고 기겁해 19회에서 그를 황궁으로 급히 모셨다.20회에서 탁사정이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김은부의 큰 딸 김씨의 책봉이 불가하다는 소를 올리자, 현종은 결국 그의 참회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강조의 정변 당시에 협조한 죄'를 물어 유배시켜버린다. 이에 명을 받고 탁사정의 목덜미를 잡아 끌고 나간다.[26] 최후반부터 21회 초반까지 현종이 금주[27]로 낙향한 채 오지 않았던 강감찬을 찾기 위해 기병 10여 기를 이끌고 현종을 보필하면서 금주의 강씨 문중 종가에 입장하여 길을 연다. 그리고 현종이 자신의 칼을 뽑아 '호족들의 대표'로 보이는 여수장에게 자신의 목을 벨 수 있는 기회를 주자 강감찬과 함께 크게 당황하며 말리려 하지만, 현종이 물러서라 하자 일단은 물러서며 경계했고, 현종이 강감찬을 데리고 개경으로 향할 때 선두에 섰다.
22회에서 친조[28]를 하려는 현종의 앞에 막아선 백성들이 개경에 거란 사신 일행이 들어오자 그들한테 몰려가 집단 구타를 하자 현종의 명으로 그를 보호했고, 이후 강동 6주를 내놓으라는 거란의 요구와 거란에 사신으로 간 현종이 장인이자 형부시랑 김은부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고뇌한 현종의 모습을 지켜본다.
2.9. 23 ~ 24회
24회의 회차 후반, 현종이 강감찬을 동북면 행영병마사로 임명하자 김훈, 최질이 이를 무관에 대한 차별로 받아들이라 여기고 이에 분개하던 중 박진의 꼬드김을 받아 현종에게 탄원서를 올린다. 이 때 궁중임에도 무장[29]한 채로 여러 무관들을 대동하여 궁중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장하자 앞에 나와 대치한다. 이후 현종이 무관들을 꾸짖어 물리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그들을 노려본다. 그리고 24회의 회차 초반, 상장군 김훈과 장군 최질을 비롯한 3위의 무장들이 장작주부 박진이 보내준 술과 고기로 잔치를 즐기던 중에 오랜만에 갑주에 낭아봉을 들고 난입[30]해 술독을 깨고, 술상을 엎어버리면서 이들 무장들의 지난 번 벌인 집단행동을 문제 삼았고, 김훈에게는 "한번만 더 이런 일을 벌이면 목을 베겠다."라고 협박했으며, 이에 분을 못 이겨 달려든 최질을 주먹으로 때려눕혀 제압했다. 이에 주변에 있던 무장들이 대적하려고 했지만, 꼼짝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자신 있으면 나와보라!"고 호령하면서 군영의 모든 장병들을 제압했다.[31] 이후 궁에 들어와서 당직을 섰던 중랑장 이현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지난 번 집단 행동 가담자 가운데 용호군과 응양군 소속이 있었냐?"라고 묻자, 이현이 "친종장군이 있는데 누가 감히..." 라며 없다는 답을 들은 뒤 낭야봉을 그에게 맡긴 뒤 자신이 대신 당직 임무를 맡는다. 회차 후반 드라마의 시점이 1014년으로 넘어가고 이전 전란 때 불에 탄 정전이 복구되어 현종이 환궁할 때 가장 앞에서 호종한다.2.10. 25 ~ 26회
25회 초반까지 현종을 호위하다가 김훈 최질의 난이 벌어지면서 군사들을 더 모집해 궁궐 방어를 할 목적으로 혼자 정전을 나서다가 궁궐 내 어느 공간에서 반란군들에 의해 밧줄에 목이 묶이면서 포박을 당했다. 그 상태에서도 군사들을 때려눞히면서 분전했지만, 결국 포박용 그물에 걸려 붙잡히고 이들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간다.26회 중반에 어느 감옥에 갇혔는데, 일부러 죽은 척을 해서 문을 열게 한 뒤 보초들을 모두 때려눕히고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 피투성이 상태로 뛰다가 어느 집 담장을 넘고 의식을 잃었는데, 그 곳이 중추사 강감찬의 집이었다. 강감찬 부부에 의해 상처를 회복하고 의식이 돌아오자 "폐하에게 가겠다."라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이미 반란군에 점령된 황궁에 가봤자 별 수 없다는 강감찬의 말을 들었고, 대신 그의 부탁으로 반란군에 의해 궁궐에서 쫓겨난 김씨 부인을 찾기 위해 강감찬의 부인의 도움을 받아 개경을 빠져 나갔다.[32]
2.11. 27 ~ 29회
이전 26회에서 강감찬에게 현종을 위해 김씨 부인을 찾아 보호해달라는 부탁을 받았기에 27회 초반에 행방이 묘연한 김씨 부인을 찾고 있다. 역시 김씨 부인을 찾고 있는 반군들과 마주치고 제압하는 도중에[33] 김씨 부인의 도움을 받고 고을을 떠나며 자신이 알고 있는 현종과 김씨 부인의 가족들 상황을 알려주고 '부인부터 챙기라며 현종에게는 부인밖에 남지 않았다며 원정황후가 반란에 협조하고 있다'는 것도 말하게 된다. 이 후 강감찬에게 소식을 전하면서 김씨 부인과 개경 외곽의 흥륜사에서 머물게 되는데 현종이 김씨 부인에게 서찰을 전달하는 부탁을 받고 온 이자림을 잠시 만나고 "어서 서경으로 가라."고 말한다.28회에서 흥륜사에서 김씨 부인에게 서경으로 가봐야 할 것 같다며 "역도들을 처단하는데 자신이 빠질 수 없다."라고 말하고 서경으로 향하다가[34] 중간에 동북면에 들러서 활을 불에 말리고 있던 중랑장 도용수를 만난다. 만나자마자 "너, 아직도 아직도 내 부하냐?"라고 물었고, 이에 도용수는 헛웃음을 한번 하고는 "실없는 소리 하지 마시고, 원하시는 게 뭡니까?'라고 답한다. 그러자 지채문은 "방어사의 허가 없이 동북면을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35] 이렇게 해서 도용수와 몇 안 되는 군사들과 함께 동북면에서 서경으로 넘어왔는데, 이미 서경은 개경에서 온 반란군들이 점령한 상태였다. 도용수가 "도병마사와 서북면 군사들은 어디로 간 것인가?"라고 묻자 "나도 모르겠다."면서 어떻게 들어갈 지 고심하다가 자신과 도용수는 군사로 변장하고 따라온 부관을 지휘관으로 삼아 용주성에서 서경의 군량미를 가져온 군대로 위장하고 서경으로 잠입했다. 물론 이들(개경에서 올라온 반란군)은 들여보낼 수 없다면서 막아섰지만, 때마침 그 광경을 본 서경판관 조원이 눈치를 채고 반란군들을 회유해 들어오게 했다. 이후 서경 내 관아에서 조원과 권서경판관 이자림, 어사중승 노전, 감찰어사 김종현과 김씨 부인, 도용수 등과 함께 반란군 수뇌부들을 없앨 작전을 세우고, 계획대로 연회가 시작되고 나서 이 연회를 이상하게 본 개경부윤 박진의 부탁으로 연회장과 관아를 살피던 병부낭중 최구를 어느 창고에서 제압해 죽였다.[36] 그리고 최후반에 무희로 변장해 도용수를 비롯한 군사들과 연회장에 들어와 검무를 추다가 "반란군 수뇌부를 처단하라"는 현종의 명이 떨어지자 가면을 벗고 반란군 수뇌부들을 처단한다.[37]
이는 29회 초반까지 이어지는데, 처단하는 도중 최질은 물론 자신 대신 임명한 친종장군과 2:1로 상대[38]하다가 친종장군을 죽이고, 뒤이어 현종을 으스대면서 쳐다본 최질을 빠르게 처단한다.[39] 그리고 뒤이어 활을 겨누면서 등장한 반란의 배후인 개경부윤 박진[40]마저 처단하면서 반란군 수뇌부들을 전부다 모조리 척살했다.# 이후 다시 친종장군으로 복귀해 양협과 함께 다시 현종을 보좌한다. 이때 친조를 이행시키기 위해 알현하려 온 거란의 사신을 억류하라는 현종의 명에 사신을 집접 끌고 갔다. 그리고 시간이 흘려 1018년이 되자 우상시로 임명[41]되어 관복을 입은 상태로 거란에 맞서 동원령을 내려달라는 서북면 행영도통사 강감찬의 '대회전 계획'을 듣고 참지정사 유방의 뒤를 이어 현종에게 "도통사에게 기회를 주시옵소서. 도통사는 평생을 거란만을 생각하고 온 사람이 아니옵니까? 그에게 기회를 주시옵소서."라면서 현종이 강감찬에게 상원수를 내리면서 대회전을 치르도록 한다. 그리고 강감찬이 상원수에 임명되어 부월을 받고 출정하자 성벽 위에서 현종과 다른 대신들과 함께 바라본다.
2.12. 30 ~ 32회(최종회)
30회 회차 초반부터 현종과 다른 신료들[42]과 함께 전황을 듣다가 첫 승전보를 듣고는 책상을 치며 호탕하게 웃는다. 그러나 이후 거란군이 전투를 피하고 현종을 노리려 개경으로 진공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정전에서 유진 다음으로 "개경에는 병력이 500명 뿐입니다."라면서 현종에게 몽진을 권유한다. 그러나 현종이 개경을 사수하겠다고 선언하자 참지정사 유방, 중추원부사 노전, 상서우승 이자림, 급사중 황보유의와 함께 갑주[43]를 입고 개경 주변의 마을들에 대한 청야 작전을 시행한다.[44]31회에서 유방, 노전, 이자림, 황보유의와 함께 금교역 전투를 치르면서 원로이자 백전노장인 유방 밑에서 낭야봉을 휘두르며 거란의 선발대를 향해 돌격하는 장면이 나왔다. 32회에서는 강감찬의 승리 소식에 다른 대신들과 함께 기뻐하며 눈물을 흘린다.
3. 묘사
본 드라마의 무력 최강자이자 끝판왕이다. 원작 소설에서 지채문은 무예에 능통한 고려의 충성스러운 장수로서의 면모가 강조되면서 '무달'이라는 표현으로 등장한다. 원 사료(『고려사』 지채문 열전)에서의 묘사된 활약[45]을 충실히 반영했고, 채충순 등의 의견을 들은 현종이 왕후들과 떨어질 때에도 한 번 반대를 하며, 또 다시 그래야할 것 같다는 주장이 우세해지자 자신이 어가를 끝까지 지킬 것이니 그러지 말아달라며 눈물을 흘리면서 반대하는 등 왕실의 안위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드라마에서는 원작 못지않게 자신이 모시는 군주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강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첫 등장이던 4회에 개경에 있던 친종장군 유방과 탁사정, 하공진이 찾아와 강조의 정변과 그로 인한 목종의 시해, 현종의 즉위에 대해 설명하자 "그건 반역을 저지른 것이다."라면서 분노해 혼자서라도 강조를 죽이려 가겠다는 것을 친종장군 유방과 노장 대도수가 겨우 말렸을 정도이다. 또한, 11회에서 서경에서 많은 군사들을 잃고 퇴각하면서 좌절해 울먹이다가 전전승지 양협이 자신을 찾아[46] 현종의 명을 전할 때 바로 무릎꿇고 진중한 눈빛으로 듣는 장면도 그의 캐릭터성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를 보면, 삼국지연의의 장비나 이전 KBS 대하드라마에 나온 여러 인물들 중 <태조 왕건>의 박술희, <대조영>의 흑수돌과 비슷하다.[47]본 드라마와 비슷한 시기를 다룬 <천추태후>에서는 한창 젊은 꽃미남 배우 전승빈이 이 역할을 맡아 활을 비롯해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는 반면, 본 드라마에서는 체격이 좋은 중년 배우로서 전쟁에 잔뼈가 굵으면서 활을 사용하긴 하지만 주로 '낭아봉'과 '칼'을 이용해 거란군과 여진 부족, 그리고 고려 혹은 현종을 배신하거나 위협한 인물들을 척살하는 등 겉으로는 단순무식해 보이지만 힘도 세고 시원시원한 모습을 선보이는 맹장이자 용장으로 그리고 있다.[48] 따라서 드라마 초반을 기준으로 양규, 김숙흥과 함께 많은 액션 장면들을 보여준 인물로 특히 '낭아봉'이란 무기로 거란군과 여진 부족을 대치할 때는 CG까지 넣어서 '뚝배기 깨지는 소리'와 함께 펑펑 날아가도록 그렸다. 양규의 경우, 활(효시)와 지휘관의 능력과 불굴의 정신력, 김숙흥은 양규와의 케미와 '거란다죽인다' 밈으로 대표되는 거란족에 대한 적개심 위주로 묘사된다면 지채문은 굳건한 충성심과 일신의 무력이 강조되는 것이 특징[49]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 이후 친종장군이 되면서도 그 특징은 계속되어 성을 버리면서 노장 대도수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도 현종의 관용으로 승진까지 한 탁사정을 응징하려는 모습이나 이후 김훈과 최질의 반란군들과도 혼자서 다수를 제압하려는 모습에서는 영락없는 '장판파의 장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충성심이 강해도 너무 강해 다른 이들과 트러블이 생기는 경우도 벌어지는데, 몽진 과정에서는 병부시랑 겸 행영도통부사 장연우와의 갈등[50], 몽진 이후에는 자신들에 대한 차별 대우와 현종을 없애려는 가상의 인물인 박진의 도발 등으로 이래저래 불만이 많았던 김훈과 최질과의 갈등[51]을 들 수 있는데, 물론 직접적으로 드러난 건 24회 초반 군영에서 벌어진 일이 전부이고 무엇보다 몽진 시점 이후부터 줄곳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현종의 곁에 늘 있어야 하는 직책이라 쉽게 다른 인물들과 트러블이 생기는 일이 없었다. 다만, 실제 지채문이 전쟁 이후 몽진한 공로 등의 이유로 친종장군에 임명되었는지 알 수 없을뿐더러 김훈·최질의 난 당시에도 그가 반란군에 의해 제압당했다가 탈출해 서경에서 이들 반란군의 수뇌부를 처단하는 것 자체가 드라마에서의 창작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해당 반란 자체를 드라마에서 가상 인물인 박진과 이에 대척하는 현종과 김씨 부인(후에 원성황후) 등을 미화하면서 사실과 다르게 왜곡하면서 실제 반란 진압을 계획하고 실행한 이자림의 공은 붕 떠버린 채 지채문을 비롯해 실제 기록을 찾기 어려운 유방, 노전, 조원, 김종현 등의 역할을 조금씩 넣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서 이후 벌어진 제3차 여요전쟁 와중에 개경 인근에서 벌어진 '금교역 전투'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일각에서는 지채문이 직접 정예 병사 100명을 이끌고 정찰 차 온 거란의 선발대 300명을 전멸시킨 것으로 추측하는데, 이 전투는 거란(소배압)의 속셈[52]을 간파한 현종의 승부수로 이 100명의 정예 병사도 당시 현종과 궁궐을 호위했던 근위대에서 정예만 골라 차출했을 해석이 가능하며, 때문에 비록 문관이었지만 무관직도 겸해 기록에는 없지만, 친종장군을 지냈고, 상장군에 있던 지채문에게 현종이 지휘를 맡겼을 가능성[53]이 있다. 31회를 보면, '금교역 전투'는 당시 참지정사인 유방이 지휘를 하고[54], 과거 거란을 상대하거나 군사 경험이 있는 지채문과 노전, 이자림, 황보유의가 유방을 보좌하면서 거란군을 상대하는 장면이 나왔다.
4. 인간관계
- 대도수 - 원작에서 부각된 부분은 아니지만, 드라마에서는 동북면의 장수로서 같이 지낸 세월이 있다고 여겨지기에 서로 잘 아는 사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4회에서 대도수가 그의 중재자 역할도 해준 것으로 보아 관직상 선임[55]으로서 조언도 많이 해줬을 것으로 보인다.
- 탁사정 - 제2차 여요전쟁 시점에서는 상관이었으나, 그가 대도수를 사지로 내몰고 서경을 버리고 혼자 도망친 후에는 매우 증오하게 되었다. 대도수의 죽음에 대한 울분을 참지 못하고 죽이려고 할 정도.
- 강감찬 - 원작에서 강감찬은 지채문의 충심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여겼고, 드라마에서는 서로 상대의 목숨을 한 번씩 구해준 적이 있었고, 절령에서 방어진을 구출할 당시 찾아온 강감찬은 현종을 위해서 지채문에게 따로 "꼭 살아 돌아오라."라고 당부를 할 정도이다.
- 장연우 - 어딘가 서투른 사람이어도 싸워야 할 때에는 제대로 하려는 면모와 잊을만하면 웃음을 주기에 좋게 보는 듯하다.
- 황보유의 - 지채문이 서경 및 절령에서의 연이은 패배로 낙담하였을 때에 너무 자책하지 말라며 그에게 충고를 해준다.
- 김훈, 최질 - 극 초반에는 이렇다 할 접점이 없었으나 중후반 문신들에 비해 낮은 처우를 받아 불만이 많았던 이들이 집단 행동에 나서자 현종을 호위하면서 경계했고, 이에 이들의 연회장에 난입해 집단 행동을 지적하면서 적대 관계가 되었다. 지채문은 본작의 최강자라 반란을 일으켜 궁궐을 장악한 최질이 사실상 유일하게 맞다이를 떠서 이길수가 없고 사람이므로 그가 버티고 있는 이상 구테타는 성공하는 게 불가능 하니 부하들을 시켜 그를 몰래 밧줄로 포박해 가둬버려 그들에게 가장 큰 최악의 걸림돌을 우선 치워버린뒤 거사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이후 지채문은 탈출하여 우여곡절을 거쳐 서경에서 다시 만나 결국 최질에게 응징의 심판을 내린다.
- 박진 - 몽진을 하던 현종에 대한 암살 시도를 저지하였으며, 그 후 김훈, 최질의 난을 진압하면서 김훈과 최질을 배후에서 조종하던 그를 처단하는데 성공하였다.
5. 어록
네놈들이... 감히 누구한테 칼을 들이미는 것이냐?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내가 바로, 고려의, 지채문이다! |
당장 성문을 열어라! 어서! 너희들을 구하려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달려왔다! 한데! 누구 마음대로 항복하겠다는 것이냐!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 처자식에게 부끄럽지도 않느냐! 성문을 열어라! 어서! |
내가 더 분전했다면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었소. 다 내 탓이오. 이 천하의 지채문이 목숨을 아꼈기 때문이오. |
6. 여담
- 실제로 명궁이었던 만큼, 원작에서는 화살과 철창(鐵槍)을 무기로 활용한다. 본 드라마에서 지채문을 상징하는 무기는 '낭아봉'이라 봐야 하는데, 하필 아몬드 빼빼로를 연상시키는 탓에 네티즌 사이에서 '아몬드 빼빼로'라는 별명을 얻었다. 물론, 몽진 중 박진의 사병이나 거란 추격대를 상대할 때나 멀리 날아가는 철새를 한번에 맞힐 때 등 뛰어난 활솜씨도 극 중에서 나온다.
- 드라마에서는 생략되었지만, 원작에선 서경으로 도망치는 와중에 소수의 거란군을 홀로 상대하기까지 하는 강한 생존력을 보인다. 갑옷과 투구를 모두 벗은 채 소수의 기병들이 추격해오자 숨을 곳이나 체력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러 화살을 날리는 등의 선공을 가하여 적들을 당황케 하고, 자신의 칼을 몽둥이처럼 쓰면서 수박 실력을 통해 거란병들을 걸어 넘어뜨려 죽인다.[56]
-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현종의 몽진 행렬에서 거의 혼자 현종을 지켰다시피하는 활약을 보였다. 드라마 내에서도 내관 양협, 재상단인 최사위와 채충순[57], 중간 관료인 장연우, 황보유의, 김종현[58] 등 현종을 호위하는 여러 인물들 사이에서 대표격이다.
- 위에서 언급했듯이 거란군과 여진 부족을 상대할 때는 물론, 드라마에서 고려나 현종을 배신하거나 위협한 인물들에 대해 낭아봉이나 활, 칼로 제압해 안 그래도 이들 '배신자'들의 행보에 답답함을 호소하던 시청자들에게 '사이다'를 날리는 장면이 많아 드라마에 등장한 캐릭터 중 '네임드 킬'이 가장 많은 인물이다. 아래는 지채문에 의해 처단당한 사람들의 명단(괄호는 최종적으로 사라진 회차).
- 한기, 노의 (9회) - 한기는 거란의 사신이었고, 노의는 과거 고려의 장수였다가 삼수채에서 포로로 잡혀 항복한 이후 항복 사신으로 동행했다. 서경에서 거짓 친조를 벌이다가 들킨 예부시랑 강감찬을 압송해 자신들의 진영으로 가던 중 동북면에서 온 지채문과 휘하 군사들의 화살 세례에 죽었다.
- 원종석 (10회) - 드라마에서 서경부유수로 나온 인물이나 거란의 위협에 결국 항복하기로 결심하고 항전파인 조원, 강민첨을 구금하고, 거짓 친조를 벌이던 강감찬을 거란에 보내고 서경을 구원하러 온 동북면 군사들을 문전박대하는 등 매국 행위를 벌이다가 위의 짤처럼 당했다.
- 최구 (28회) - 아래에 언급되는 박진의 양자 박영과는 절친으로 현종과 조정 내 돌아가는 상황을 박진 일가에게 전해 고려 조정을 흔드는 일종의 '스파이'로서 반란 당시에도 이들과 동조해 활동해 조정 대신들의 밉상이 되었다. 지채문 자신은 그에 대해 뚜렷한 접점이 없었으나 그래도 현종을 겁박했던 반란군과 한통속인 인물이기 때문에 연회장을 조사하던 중 진실을 알고 박진에게 알리려던 그를 창고에 발견해 바로 죽였다.[59]
- 최질, 박진 (29회) - 박진은 드라마 초반부터 고려 황실에 적대적인 인물이라 몽진 중이던 현종을 암살하려다 지채문에 의해 좌절되었고, 최질은 본인들의 차별 대우에 불만을 가진데다가 이를 통해 고려 조정을 장악하려는 박진의 농간까지 더해져 집단 행동을 벌이다 지채문과 크게 대립하게 되었다. 반란 초반 개경에서 이들의 군사들에게 제압당하다가 탈출해 서경으로 와서 수뇌부들을 처단하고 마지막으로 최질이 남자 즉각 칼을 휘둘렀고, 이후 마지막으로 분노하면서 활을 날린 박진을 두 번이나 칼을 휘두르면서 처참하게 죽였다.
[1] 정5품 관직으로 현대에는 대령 계급이다. 강조의 정변 이전에는 하공진, 탁사정도 같은 계급이었으나 둘 다 정변 당시 강조의 편에 선 덕분에 승진하였다.[2] 직위는 정4품으로 조선의 내금위장과 비슷한 위치의 직책이며,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경호처장+국방부 조사본부장이다. 다만 실제 지채문이 현종 재위기에 친종장군을 맡았는지는 불분명하다.[3] 김훈 최질의 난으로 반란군에 의해 잠시 박탈되어 야인상태를 보냈다가 29회에 복직했다. 다만 인물 설명 자막에는 27회 등에서도 계속 친종장군으로 표기되었고, 29회에서 이자림도 복직하기 이전의 지채문을 장군으로 불렀다.[4] 실제로도 지채문은 현종의 목숨을 몇번이고 구하고 전장에서 활약한 명장으로 기록되어 있다.[5] 원작에서 6척 3치 가량의 큰 키를 지녔다는 언급이 있는데, 마침 담당 배우인 한재영도 키가 180cm에 달하는 장신이다.[6] 狼牙棒,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이리의 이빨이 달린 막대"로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쇠못을 많이 꽂은 창 비슷한 무기"다. 대체로 자루가 길고, 쇠못이 꽂힌 머리 부분이 방추형이거나 원통형인 경우 낭아봉이라고 일컬었으나, 여타 전근대 무기가 그러하듯 다양한 형태와 설계가 혼재했으며, 개중에는 손잡이가 짧고 머리는 긴 철퇴에 가까운 형상을 한 물건도 있었다. 이 무기를 쓰는 대표적인 캐릭터로 수호전의 진명과 진삼국무쌍 8의 방덕이 있다.[7] 원작에서는 드라마 상 9회 시점에서 조자기가 왕명을 받들어 온 지채문을 들여보낸 후 거란의 사신으로 온 노의와 유경에 대한 상황을 알려주고 관아에서 지채문이 부유수 등의 서경의 지도부의 인물들과 대화하게끔 도와준다. 또한 드라마에서는 밤에 강감찬을 구하기 위해 거란의 사신단을 죽이지만, 원작에서는 한낮에 거란의 사신단의 목을 벤 후 노의와 유경의 수급을 서경성 안으로 던지면서 군사들을 통해 통나무로 문을 부수라고 시키는 등 성문을 다시 열라며 호통하나 지도부에서 화살을 날리며 버티자 일단 투항 문서를 찢어버린 후 뒤돌아서서 병력을 점고한다.[8] 참고로 원작에서는 서경의 지도부 및 호장들이 민심을 동원하여 지채문이 직접 물러가게 하였는데, 지채문은 뒤에서 감시하게 위해 따라오려는 병사들을 따돌리다가 삼수채에서 패한 후 도망친 일부 고려군 부대를 만나 남쪽으로 진을 치고 동쪽으로 전령을 보내어 탁사정이 도착하기를 기다린다.[9] 배신자를 처단하는 비장한 분위기가 아닌 게 특이하다. 신이 난 지채문, 당황한 표정을 지은 탁사정, 대도수를 비롯한 장수들과 황급히 피하는 서경 백성들 등 엉뚱한 분위기다. 다만, 원종석이 "어서 저자를 막으라."라는 말을 내뱉자마자 바로 지채문이 달려가서 처단한 이 장면은 군더더기 없이 딱 필요한 만큼의 대사로 반역자를 죽인 장면을 속전속결로 진행했다는 점에서 좋다는 의견이 많다.[10] 서경 전투는 드라마에서는 분량상 스킵이 굉장히 많지만, 원작에서는 지채문이 창과 백봉을 든 군사들을 이끌고 철창을 휘둘러 기병들의 몸을 손상시키며 2백여명 중 절반을 죽이고, 나머지를 사로잡아 이들이 강족 출신인 것을 알게 되어 거란군에 대한 정보를 얻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또한 원작에서 자신감이 생겨 성 밖에서 거란군과 싸우려다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거란군이 움직이자 허를 찔리고 다시 반격하다가 탁사정의 명령에 의해 퇴각하며, 이 싸움에서 법언 등의 승병들을 포함한 1천여명이 죽기도 하였다.[11] 드라마에서는 스킵되었으나 원작에서는 성 밖으로 40리까지 나가다가 화살 세례를 받을 때 말의 오른편에 몸을 숨겨 공격을 받지 않았으나 자신의 말과 나머지 군사들은 사실상 죽거나 도망쳤고, 직후 거란군이 동북기군에게 화살을 쏘는 사이 남쪽의 산을 향해 질주하는데, 그 와중에도 몸을 틀어 화살을 날려 3명을 넘어뜨린다. 또한 원작에서 조원과 강민첨이 일정한 거리를 두며 퇴각하는 거란군을 보고서 이미 그들이 지채문을 포함한 아군을 유인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패할 시에 어떻게 대처할지 계책을 논의하는 장면도 있다.[12] 드라마에서 양협이 그를 너무 쉽게 찾아내어 어색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참고로 원작에서는 말 그대로 혼자만 살아남았고, 말을 타고 쫓아오는 소수의 거란군을 상대하다가 나평(蘿坪)까지 도망친 후 그곳에서 늙은 고려 여인을 공격하려던 여진인들을 한 명 빼고 모두 죽인 다음 이틀 동안 거란군이 오는지를 확인했으나 시체를 수습하러 온 여진인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오지 않은 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나서 곧바로 개경으로 향하여 이미 소식을 들은 고려 조정에 패전 상황을 직접 보고한다.[13] 당시 개경에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수도를 방어하는 성벽이 전무했고, 궁궐을 둘러싼 황성만 있었다. 우리가 아는 '개경 나성'은 제2차 여요전쟁이 다 끝난 뒤, 강감찬의 건의로 축조되기 시작해 현종 말년인 1029년에서야 완성한다.[14] 원작에서는 현종이 몽진 길에 오르는 것을 선택한 후 강감찬이 지채문에게 그가 충신이라는 것을 잘 안다면서 서경의 일은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이니 너무 근심하지 말라고 하며, 성상이 살아있어야 고려도 온전하니 꼭 지켜달라고 당부한다.[15] 이 장면에서 문신인 장연우가 무신인 지채문의 밥을 뺏어 먹으려는 것을 시도했다는 것에서 제2차 여요전쟁 이후 백관의 녹봉을 충당하기 위하여 무관의 토지를 빼앗자고 건의해 김훈·최질의 난의 단초를 제공한 장연우를 암시하는 장면이라는 해석이 있다.[16] 원작에서는 개그성 장면이기는 해도 그가 밥을 안 먹는 장면이 있다. 원작에서 현종이 그에게 군사들과 밥을 먹으라는 소리를 하니 이미 다 먹었다고 하는데, 신료들이 눈치가 보여서 먹기가 불편할 것이라고 얘기하자 어색하게 서 있다가 박충숙이 팔을 잡고 데려간다.[17] 거란군은 개경 이남의 고려 남쪽 지방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던지라 정보력 측에서 불리했다.[18] 『고려사』에 적혀 있는 일화이고, 원작 소설에서도 충실히 재현된 부분이다. 지채문이 기러기 떼가 밭에 있는 것을 보고 왕의 마음을 위로하고 기쁘게 하고자 하여 말을 달려 앞으로 나갔는데, 기러기가 놀라 날아오르자 몸을 뒤집어 위를 향해 활을 쏘아 그대로 떨어뜨렸으므로 왕이 매우 기뻐하였다. 지채문이 말에서 내려 기러기를 주워 바치며 말하기를, “저와 같은 신하가 있는데, 어찌 도적을 걱정하시겠습니까?”라고 하니, 왕도 크게 웃으며 칭찬하였다. 참고로 원작에선 지채문의 모습이 마치 적진에 뛰어들어 적을 달아나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하며, 현종이 활 솜씨가 좋으니 마음이 든든하다고 칭찬한 후 왕후의 시녀에게 몸보신하라고 기러기를 갖다주라고 한다.[19] 비록 호장들의 명령을 받았다곤 하나 무기도 아닌 농기구를 들고 나선 일반 백성들인지라 지채문도 이들을 죽이지 않을 정도로 힘을 빼고 제압했다. 하지만 호장들의 조롱에 격분해 그들을 체포하라는 현종의 명은 지채문이 단신으로 백성들을 제압하는 모습을 본 호장들이 워낙 부리나케 도망가버린지라 이루지 못했다.[20] 이때 호장들을 충동질한 박진이 배후에서 활로 현종의 목숨을 노리지만, 앞서 화살에 맞아 생긴 부상으로 인해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21] 사실, 코믹하게 묘사되어서 그렇지 장연우의 행동은 정말로 잘못된 것인데 위기의 전시상황에서 황제를 호위하는 도중에 감히 술을 마시려고 한 것이다.[22] 이후 25회까지 아래의 에피소드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저 자리에서 시립한다.[23] 드라마의 이 회차에서 지채문의 입장을 보면, 비록 말을 하지 않았지만 탁사정을 증오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어찌보면 낙하산으로 온 상관인데다가 서경을 구원왔음에도 성을 버리고 도망친 바람에 지채문 자신에게는 동북면 시절 직속 상관이자 전우나 다름없는 노장 대도수가 포로가 되어 굴욕을 겪다가 죽었기 때문에 탁사정을 더 증오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후 탁사정을 향한 지채문의 표정을 보면, 누군가 통제하지 않으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모습이다.[24] "친종장군은 어디로 갔는가?"라는 현종의 질문에 전전승지 양협도 잘 모른다고 답할 정도였다.[25] 어찌나 원한이 사무쳤는지 한 때의 상관이었던 탁사정을 "네 놈"이라고 부르며 그냥 다시 안 볼 놈 취급한다.[26] 사족으로 이때 지채문의 목소리는 약간 상기되어 있었는데, 마치 '드디어 이 놈에게 손 쓸 수 있겠구나...' 하는 듯했다. 이후 나온 메이킹 영상을 보면, 탁사정을 끌고 가다가 애드리브로 주먹까지 날리면서 촬영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27] 현재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관악구 및 경기도 광명시 일대.[28] 물론 진실은 '친조를 하는 척' 서경으로 이동하는 것이다.[29] 정확히는 갑옷을 입되 칼을 휴대하지 않았다. 현대로 치면 군인/경찰이 전투복(기동복)에 방탄모와 방탄조끼 등의 장구들을 갖췄으나 총기와 탄약은 휴대하지 않은거다.[30] 여담으로 친종장군으로 임명된 16회 이후 줄곳 경무장에 대도(물론 모양은 '대도'이지만, 형태는 '대도'보다는 '환도' 또는 '환두대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를 들고 다녔었는데, 갑주까지 착용한 중무장에 주무기인 낭야봉까지 들고 온 것을 보면, 불만이 많았던 무장들에게 제대로 위협을 가할 의도라고 볼 수 있다.[31] 이때 이들 무장들이 부하도 없이 혼자 나선 지채문을 감히 대적하지 못한 것은 지채문 개인의 무력뿐만 아니라 '친종장군'이란 직책이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경호처장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무관들의 감찰하는 역할도 했기 때문이다. 이전 작품인 <태조 왕건>이나 <제국의 아침>으로 보면, '내군장군'에 해당한다. 때문에 부관들 중 최상위 관직인 정상품인 상장군 김훈도 자신보다 두 품계가 낮은 지채문에게 제대로 대항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드라마에서 김훈은 최소한의 선을 넘지 않으려는 절제함을 갖추었다는 설정이 있긴 하지만.[32] 감옥을 탈출한 바람에 수배 중이었는데, 강감찬의 부인이 절에 시주할 목적으로 준비한 쌀 가마 수레 안에 뭄을 숨겨서 개경 황성을 빠져 나갔다.[33] 이때 반군이 자신을 향해 칼을 뽑자 마치 '가소로운 새끼들'이라고 말하는 듯 한심하다는 표정을 잠깐 짓는 게 백미.[34] 물론 김씨 부인도 이후 현종의 편지를 읽고 단독으로 서경으로 향했다.[35] 여기서 나오는 두 사람간의 대화를 보면, 지채문이 동북면에 있을 때부터 도용수와 막역한 사이로 보인다.[36] 한편, 최구와 함께 연회장 주변을 살펴보던 박진의 양자 박영은 이를 숨어서 보았지만, 그동안 양아버지인 박진의 행동에 회의감을 느꼈던 터라 한동안 모른 척하다가 결국...[37] 자세히 보면 무대에서 점프해서 내려올 때 잠시 휘청이는 걸 볼 수 있는데, 하마터면 부상으로 이어질 뻔 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자신과 상대하던 반란군 수뇌부 1명을 척살할 정도.[38] 물론 최질도 이전 전란에서 그야말로 통주성을 지키면서 무력을 과시한 인물이라서 2:1로 상대하는 지채문을 돕기 위해 난입한 김훈을 몇 합 싸우고는 제압했다.[39] 이때 연회장 밖에 경계를 서던 최질의 군사들은 소란이 일어난 것을 파악하고 진입하려고 하자 서경판관 이자림이 막으면서 폐하의 명을 전했고, 이어 '지채문'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군사들을 꾸짖자 이들은 '지채문'의 이름을 듣자마자 두려워하면서 연회장에 진입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지채문'이란 이름이 개경에 있었던 군사들에게 얼마나 두려움이었는지 보여준 사례이고, 현종이 계획하고 이자림이 실행한 '반란군 수뇌부 척살 계획'이 우여곡절 끝에 최종적으로 성공하는 계기가 되었다.[40] 지채문이 처단하기 전 박진이 쏜 화살은 전전승지 양협이 몸을 날려 현종을 보호하면서 불발되었다.[41] 나레이션 중간(수염을 단 현종이 개경을 바라보는 장면)까지 친종장군에 있던 것으로 보아 1016년까지는 친종장군에 머물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1016년 현종은 지채문을 우상시로 임명한다.[42] 정확히는 검교태사 수문하시중 유진을 비롯한 재상들과 이자림, 노전, 황보유의 등[43] 과거 강조나 양규가 서북면 도순검사 시절 입었던 갑주와 비슷하다.[44] 이때 황보유의와 각각 어린 아이 1명씩을 안고 개경으로 피난하는 백성들과 함께 걷는다.[45] '하공진의 사람'이라고 주장하면서 야간에 현종의 행렬을 습격한 이들과 대치한 후 하공진 등을 직접 만나 오해를 풀면면서 이 와중에 혼자서 하공진을 만나기 전 이미 황후들과 떨어져 있던 현종에게 "만약 자신이 배신을 하여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하늘이 죽일 것이다."라고 말하거나 기러기 한 마리를 화살로 맞혀서 분위기를 띄우는 등의 모습을 말한다.[46] 사실 이 부분은 위의 각주도 그렇고 '양협' 문서에도 나오지만, 많이 뒤틀린 측면이 있다.[47] 공교롭게도 이 두 캐릭터는 같은 인물이 맡았는데, 한재영과 김학철의 외모나 체격이 서로 비슷하다.[48] 사실 실제 기록에 지채문의 생년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초기 관직인 '중랑장'은 오늘날의 '대령'에 해당되는 무관으로 마냥 꽃미남으로 묘사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현종의 몽진을 이끈 이후에는 문관직인 우상시(중서문하성 소속의 정3품 관직)에 임명되면서 무관직을 겸하라고 했는데, 오늘로 치면 장관급과 참모총장을 겸하는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연령대를 고려하면 전승빈보다 한재영이 더 어울린다고 봐야 할 것이다.[49] 특히나 양규는 전쟁 당시 주위의 원군이 없어도 소수의 결사대로 많은 적을 죽이고 포로를 구할 정도로 지휘관의 모습을 보였고, 지채문은 혼자서 현종을 끝까지 지켜낸 호위 무사로서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긴 만큼 전문 분야를 다르게 표현한 셈이다.[50] 사실 여기는 '장연우' 문서에도 나오지만, 여긴 장연우의 잘못이 많은 편이다.[51] 물론 드라마에서의 김훈은 어느정도 선을 넘지 않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지채문과 대립각을 세우던 인물은 최질이라고 할 수 있다.[52] 중간에 다른 성들을 들르지 않고 국경에서 개경으로 직공한 소배압이 개경 외곽까지 도달한 이후 퇴각 의사를 정하면서 한편으로는 몰래 개경의 성문을 열기 위해 선발대를 짐입하려 한 것이다. 심지어 당시 개경에는 방어성인 '나성'이 아직 제대로 완공되지 않은 상태였다.[53] 물론 실제 전투에서의 고려 측 지휘관은 기록에 없는데, 드라마에서는 이에 여러 상반된 평가를 종합해서 각색하기 때문에 지채문이 지휘할 가능성이 높았다.[54] 물론 유방 역시 안융진 전투의 주역으로 지채문보다 훨씬 더 먼저 거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적이 있는 전공자이다.[55] 1010년 기준 대도수는 정4품 장군이었고, 지채문은 정5품 중랑장이었다.[56] 직후 죽인 거란병들의 옷 몇벌을 껴입어서 추위를 견뎌내도록 하고 그들의 귀를 잘라내어 주머니에 담는데, 아무래도 서경에서 도망친 이상 최소한의 성과 없이 돌아가기에는 무안했을 것이기에 수급 대신 챙긴 듯하다.[57] 유진과 최항은 초반만 대동하다가 이후 따로 흩어졌다. 실제 기록에도 장연우, 지채문, 채충순 외에 강감찬을 비롯한 다른 신료들이 현종의 몽진에 동행했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58] 물론 이들과 최사위도 때로는 칼을 들고 대치하거나 싸우지만, 고려시대에는 문신도 군사를 지휘할 수 있었다. 실제로 여요전쟁 당시의 서희와 강감찬, 여진정벌 당시 윤관, 묘청의 난 당시 김부식 등도 모두 문관임에도 군사를 지휘한 경력이 있다. 결정적으로 이 드라마 전반부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만 양규도 문관이다.[59] 죽인 장면은 나오지 않았지만, 죽이고 난 이후 지채문의 입은 갑옷에 핏자국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