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18:49:29

안융진 전투

파일:고려 의장기 문양.svg 고려의 대외 전쟁·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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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융진 전투
安戎鎭 戰鬪
<colbgcolor=#fedc89,#444444><colcolor=#670000,#FFCECE> 시기 993년 (성종 12년) 10월 이후 (추정)
장소

고려 북계 안융진 (現 평안남도 문덕군 신리)
원인 소손녕의 고려 침공
교전국 <rowcolor=black> 고려
(수세)

(공세)
주요 인물
지휘관

파일:고려 의장기.svg 대도수 (중랑장)
파일:고려 의장기.svg 유방 (낭장)
지휘관

[[요나라|
]] 소손녕 (동경유수)
병력 병력 규모 불명 요군: 60,000명 ↓
피해 피해 규모 불명 피해 규모 불명
결과 고려의 승리
영향 고려와 요나라간의 협상 체결
- 제1차 여요전쟁의 종결
- 고려의 강동 6주를 획득
1. 개요2. 배경3. 전개
3.1. 할지론을 반대하다3.2. 안융진에서 거란군을 물리치다
4. 결과5. 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여요전쟁 시기, 고려군과 거란군이 고려의 행정구역인 양계 중 서북면에 해당하는 북계(北界)에 설치한 안융진(鳳州, 현 평안남도 문덕군 신리)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973년에 이 곳에 성이 설치하기 시작해 974년에 완성했다.

2. 배경

거란의 장수 소손녕은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침입하는데, 이는 국제적인 고립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소손녕이 이끄는 거란군은 봉산군에서 고려군을 격파해 기세를 꺾어 항복을 요구한다.

이에 고려 조정에서는 이몽전을 사신으로 보내 강화를 요청하지만, 소손녕이 거부한다. 이 상황에서 거란에게 서경 이북의 땅을 주자는 할지론이 논의된다.

3. 전개

3.1. 할지론을 반대하다

성종이 할지론을 따르기로 하면서 서경의 쌀을 개방해 백성들에게 마음대로 가져가게 하고 남은 곡식은 대동강에 던지려고 했다.

그러자 서희가 넉넉한 식량으로 성을 지키자고 주장하며 반대론을 내놓았다. 전투에서 이길 수 있다고 말하면서 적의 빈틈을 잘 살펴보자고 성종을 설득해 할지론을 중지시켰다.

이어서 서희가 거란의 의도는 여진이 살고 있는 가주, 송성 등을 빼앗으려는 것으로 저들에게 영토를 한 번 주면 끝없이 욕심을 부린다며 싸운 후에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지백 역시 영토를 주는 것을 반대하면서 사신을 보내 금은과 보물을 소손녕에게 뇌물을 주어 의중을 살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덧붙여 군량을 버리는 것보다 차라리 연등회, 팔관회, 선랑 등의 행사를 다시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3.2. 안융진에서 거란군을 물리치다

소손녕은 고려 조정에서 오랫동안 답을 하지 않자 안융진을 공격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안융진에서 유방과 대도수의 활약으로 승리를 거두고 전선이 고착화된다.

이에 거란측에서는 협상을 요청하게된다. 고려 성종은 여러 신하들을 불러모아 거란의 진영으로 가서 협상할 사람이 있냐고 물었으며, 서희가 직접 나서겠다고 한다.

4. 결과

이후, 서희가 소손녕을 상대로 외교 담판을 벌여 거란군을 물러가게 하고 강동 6주까지 얻어낸다.

5. 매체에서

5.1. <천추태후>

제1차 여요전쟁을 다룬 드라마인 <천추태후> 1화 ~ 2화 중간, 26화 ~ 27화에서 이 전투를 다루고 있다.

전투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고 하지만, 대도수, 유방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의 주인공인 천추태후, 강조, 김치양이 개입해서 겁먹은 이현운 대신 거란의 군대와 싸우는 등 전개 왜곡이 있다.

몰래 기습하려던 거란의 대군이 나타나자 대도수, 유방은 거란군을 상대로 대치하고 있다가 천추태후, 김치양, 강조가 이끄는 소규모 민병들이 몰래 거란군의 측면을 공격하고 거란이 군사를 더 보내 천추태후 등의 군사들이 퇴각하도록 하며, 화살을 쏴서 안융진의 군사들을 공격하자 고려군도 거란군에 맞서기로 하면서 난전을 벌이지만 거란군의 수에 밀리자 안융진성으로 겨우 후퇴한다.

거란군은 고려군을 추격한 후 안융진 성 앞에서 거란의 사자가 고려군에게 항복을 요구하며, 겁쟁이 이현운이 항복하려 하자 천추태후가 때리며 이를 막아서고 대도수,유방도 호응해서 거란의 항복 사신을 화살로 맞춘다.분노한 소적렬이 맹화유를 이용한 투석기로 성을 공격하고 화살을 쏘며, 성문에 밧줄을 걸어 거란군이 밧줄을 타서 성을 진입하거나 사다리를 타고 성을 공격한다.

도중에 강감찬이 중군사에게 겨우 허락받아 이끄는 고려 지원군이 나타나 거란군을 공격해 물러나게 하자 강조,대도수 등도 열심히 싸우는데 거란군을 추격하는 사이 그 와중에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도망치던 거란군을 깊숙히 추격하다가 숨어있던 복병 등로 인해 위기에 몰려 도망다니는 와중 거란군에게 결국 포로로 잡혀 몇차례의 시도 끝에 거란 수도까지 끌려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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