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00000><colcolor=#fff,#000> 찰스 허버트 라이톨러 Charles Herbert Lightoller | |
출생 | 1874년 3월 30일 |
영국 랭커셔 촐리 | |
사망 | 1952년 12월 8일 (향년 78세) |
영국 런던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부모 | |
배우자 | Iowa Sylvania Zillah Hawley-Wilson |
자녀 | 5명 |
최종 계급 | 영국 해군 예비역 중령 |
직업 | 상선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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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상선사관 및 해군 장교. 화이트 스타 해운 소속 RMS 타이타닉호의 2등 항해사를 역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2. 생애
1874년 출생 이후 바크선 프림로즈 힐(Primrose Hill)호의 견습산원을 시작으로 상선사관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2.1. 초년
2.2.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본래 타이타닉호의 1등 항해사였으나, 제임스 이스메이 회장의 영향으로 2등 항해사로 강등된 다음 타이타닉호의 처녀항해에 나섰다. 침몰사고 당시에는 철저한 원칙주의자로 "여성과 어린이 먼저" 규칙을 가장 우선시했다.후에 구명정 승선을 포기하고 침몰하는 배에 끝까지 남아있었으나, 환기구에 빨려들어갔다가 기관실 내부의 뜨거운 열기가 분출하는 덕에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이후 뒤집어진 접이식 단정 B호정에 매달려 생존했다. 영화에서는 뒤집어진 B호정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삭제 장면중에 뒤집어진 B호정 위에 올라타 균형을 잡고 있는 모습이 있다. 이후 RMS 카르파티아호에게 마지막으로 구출된 생존자였다.
상관이었던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 수석항해사 와일드, 1등항해사 머독이 전부 사망하면서 생존자들 중에서는 가장 지위가 높았던 상선사관이었고 당연히 청문회에도 주요 참고인으로 배석되었다. 이 청문회에서 "나는 다시는 그 어떤 것에서도 안전함을 느낄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또한 최선임 생존 상선사관으로서 배가 두 동강나지 않았다고 증언하였는데, 이 때문에 훗날 탐사선이 침몰선을 발견할 때까지 이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라이톨러가 이렇게 증언한 이유는 침몰할 당시 현장을 제대로 보지 못했거나, 혹은 회사와 올림픽급 여객선의 이미지를 위해 사실과 다르게 말했을 가능성이 있다. 빙산과 충돌해 입은 손상으로 침몰한것 만으로도 이미 회사와 여객선들의 이미지에 큰 타격이 갔는데, 침몰하는 중 두 동강까지 났다면 배가 튼튼하지 않다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심어지게 될 것이고 회사의 이미지도 더 크게 손상될 것을 염려했을 것이다. 다만 못 봤을 가능성도 꽤 큰 것이, 영화와 달리 전기가 나간 이후부터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이었고, 망망대해였기에 별빛 밖에 의지할게 없었다. 위에 서술된 대로 뒤집어진 구명정에 겨우 매달려 간신히 살아남은 라이톨러 입장에선 제대로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빙산 충돌 직후 구조 임무를 수행할 때, 정복 대신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코트를 착용했는데, 영화에서도 이런 모습이 나온다. 실제로도 충돌할 무렵엔 막 당직을 교대한 상황에서 쉬려고 옷을 갈아입었다가 비상이 걸린 탓에 춥고 급해서 그냥 사복 위에 정모와 코트만 착용하고 후다닥 나온 것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론 B호정에 매달린 다른 승객들에게 지시를 내리려다 익수한 뒤 정모가 떠내려가고 코트를 걸리적거린다며 벗어 버리는 바람에 한동안 그가 항해사임을 못 알아본 승객들에게 "니가 뭔데 우리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같은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마침 같은 B호정에 올라가 있던 마르코니사의 통신기사 헤럴드 브라이드가 저 사람이 항해사이니 말 들으라고 수습해 줘서 그가 B호정의 지휘권을 확립할 수 있었다.[1] 1958년작 타이타닉호의 비극(Night to Remember)은 라이톨러가 주인공인만큼 이 장면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2.3. 제1차 세계 대전
사건 이후에도 상선사관으로 계속 일했지만, 사건의 영향 탓인지 끝내 선장 지위에는 오르지 못했다고 한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로열 네이비에 재소집되어 복무했다. 상선사관 시절과는 달리 단독 지휘 기회를 얻었으며, 어뢰정 HMTB117정의 정장과 소령 진급 이후 구축함 HMS 게리함의 함장을 역임했다. 어뢰정을 지휘하고 있을 때 체펠린 비행선으로부터 살아남기도 했다.HMS 게리의 함장으로 복무하던 1918년에 독일 제국 해군 잠수함 UB-110을 격침시키는 전공을 세워 훈장을 수여받는다. 전후에 중령 계급으로 전역했다. 그런데 빠진 독일 해군들을 학살한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었으나 무혐의로 풀려났다.2.4. 전간기
위키피디아의 찰스 라이톨러 문서에 의하면 타이타닉 침몰 사고에서 생존했던 선원들은 모두 왕따를 당했으며 찰스 라이톨러 역시 질려서 결국 사표를 내고 여관주인, 농부 등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였지만 아내가 성공하여 안정적인 삶을 살게되었다고 한다.2.5. 제2차 세계 대전
라이톨러 중령의 선다우너호 |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됭케르크 철수작전 당시 고립된 영국 육군 원정군 병력을 구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당시 16세였던 자신의 늦둥이 아들과 해양소년단원 한명과 함께 개인 요트 선다우너 호를 몰고 작전에 참가해 127명을 구조하고 독일의 Ju 87 급강하기의 폭격을 피해가며 무사히 돌아왔다. 영화 덩케르크의 등장인물 중
2.6. 말년
그 후 여생을 보내다가 1952년에 그레이트 스모그로 인한 급성 심장마비에 의해 향년 78세로 사망했으며 그의 시신은 런던의 모트레이크 공동묘지(Mortlake Crematorium)에 안장되었다.3. 미디어에서
타이타닉과 관련한 작품을 만들 시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으면 가장 주인공에 적합한 인물이 바로 라이톨러이기도 하다. 고위 선원이니 배가 부딫히는 순간부터 선장과 다른 선원들과 여러 장면을 담을 수 있고, 배의 침몰과정에서도 구명보트 승선 포기+뒤집어진채 바다에 빠진 접이식 B호정에 메달려 간신히 생존+생존자들에게 적절한 지시를 해 생존율을 높혔다는 점에서 타이타닉호 침몰사고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에 거의 항상 있었던 인물이다. 때문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매우 많으며, 아니더라도 조역 중에서는 출연 빈도가 높은 편이다.1958년판 타이타닉호의 비극에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케네스 모어가 연기했다.
충돌 이전 | 충돌 이후 |
1997년 타이타닉 영화에서의 라이톨러 |
1997년작 영화에서는 조너선 필립스(Jonathan Phillips)가 라이톨러 역을 맡았으며 한국어 더빙판은 성우 유동현이 맡았다.
빙산 충돌 이전에 야간 항해 중인 타이타닉의 선교에서 스미스 선장에게 해상 상황을 보고하면서 등장하며, 빙산 충돌 전 머독과 쌍안경 보관함 열쇠에 대해 이야기한 후 당직을 인계하고 간다. 충돌 직후에는 현실에서처럼 스웨터에 코트와 정모차림으로 등장한다.
원래는 점잖게 말하던 사람이지만, 상황이 급박해지고 말을 듣는 사람들 때문에 점차 고함만 질러대고 목소리 어조가 과격해진다
빙산 충돌 후 우왕좌왕하는 승객에게 빈총을 겨누며 로에게 구명정에 타서 인솔하라고 지시한다. 구명 작업을 하는 와중에 지시를 안 드는 승객들 때문에 점차 성질을 부리는 것이 이 영화의 블랙 코미디이기도 하다. 전술했듯이 총으로 협박하는 장면은 그렇다고 해도, 사람을 더 태워도 모자를 판에 짐을 가져온 사람들도 있어서 "이 짐짝은 여기서 뭐하는 거야? 저리 치워! 저리 치우라고!("What's this luggage doing here? Get rid of it! GET rid of it!")"하면서 자신이 직접 짐을 바다에 버리는 장면도 있다. 심지어 어떤 여성 승객은 잠시 방에 다녀와야하니 구명정을 잠시 멈춰줄 수 있냐고 진상소리마저 하고, 라이톨러는 들은 체도 안 하고 해당 인물을 그대로 구명정에 태워버리고는 구명정더러 바로 출발하라고 명령한다.
4. 기타
-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부터 1차 세계 대전, 덩케르크 철수작전, 게다가 그레이트 스모그까지, 역사의 굴곡이란 굴곡은 있는대로 다 겪은 인물이다.
[1] 실제로 B호정은 똑같이 제대로 내려지지 못한 접이식 보트 A호정에 비해 생존률이 두배에 가깝게 높다. A호정은 캔버스가 제대로 덮히지 않아 찬 바닷물이 들어오는 불리한 환경이긴 했지만, B호정은 아예 뒤집혀있어 계속 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언제 가라앉을 지도 모르는 더 최악의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