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3 19:36:30

채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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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드러머
채제민
<colbgcolor=#70293b><colcolor=#ffffff> 출생 1969년 3월 6일 ([age(1969-03-06)]세)
경기도 인천시 (현 인천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가족 부인, 자녀(1남 1녀), 누나 5명[2]
학력 제물포고등학교 (졸업)
인하공업전문대학 (토목과 / 전문학사)
한일장신대학교 (CCM음악학 / 학사)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음악학[3] / 석사[4])
직업 드러머
데뷔 1987년 티삼스
소속 그룹 부활
소속사 부활엔터테인먼트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티삼스(1987년~1988년)3. 세션 활동(1990년~)4. 록밴드 부활의 드러머(1998년~1999년, 2002년~현재)
4.1. 김태원에게 보낸 편지4.2. 밴드의 기둥, 드러머
5. 활동
5.1. 라디오5.2. 음반5.3. 여담
6. 수상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록밴드 부활의 4, 6번째 드러머.

하드록과 헤비메탈의 성지로 불렸던 동인천을 기반으로 하여 1985년 파이어볼(Fire Ball), 1986년 제3세대의 꿈에서 드러머로 활동하다가 1987년 티삼스의 드러머로 데뷔했다.[5]

밴드 부활의 기둥, 귀요미[6]로 불리며, 부활의 정규앨범에서는 6집에서 최초로 참여하였고 이후 8집부터 현재까지 부활의 드러머로 활동중이다.


2017년 9월 9일 부활 콘서트 - 드럼 솔로[7]

2. 티삼스(1987년~1988년)

소년 채제민은 복싱선수, 유도선수[8] 생활을 했다. 세계챔피언 감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지역대회 상을 휩쓸기도 했다. 그러나 그를 지원하던 아버지가 고혈압중풍으로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의 공백이 긴 방황으로 이어졌고, 체급조절에 실패하고 체육관을 떠났다. 그것은 이후 새로운 꿈을 쫒는 발판이 되었는데 바로 음악이었다.

처음 드럼을 접한 것은 제물포고등학교 3학년 무렵, 자주 놀러가던 합주실에서 드럼을 연주하던 친구가 직업군인으로 입대하여 자리를 비우게 되자 얼떨결에 드럼스틱을 쥐게 되었다. 운동을 그만두고 흥미를 잃은 상태에서 드럼의 매력에 단번에 빠졌다고 한다. 운동했을 때와 같이 정공법을 택했는데 무작정 덤벼들어 연습을 강행했고 한번 리듬에 취하면 시계를 확인할 틈이 없을 정도로 빠져들었다고 한다. 인하공업전문대학 토목과에 입학했는데 그 학교를 택한 것은 순전히 교내 헤비메탈 밴드 티삼스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파일:117718_photo.jpg
20살 무렵의 티삼스 시절

1987년 티삼스는 강변가요제[9] 에 출전하여 매일 매일 기다려[10]동상 및 가창상을 수상하는 것을 계기로 인천을 대표하는 록그룹으로 떠올랐다. 채제민을 포함한 멤버들은 인기스타가 되었고 여성팬클럽이 생겼을 정도로 공연은 늘 대성황을 이루었다. 방송과 라디오에서 티삼스 얘기가 나오면 꾸준히 언급되는 김태원의 뼈아픈 드립은, '그때 제민 씨는 저희 밀렸었죠.'

'당시 최고 인기을 누리던 부활과 함께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부활 멤버가 될 줄 상상할 수 없었는데'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인기를 얻은 티삼스는 많은 음반사들의 표적이 되었고 아시아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6개월 합숙에 들어갔다. 그러나, 1988년 발표한 첫 번째 앨범 실패로 멤버들의 극심한 스트레스와 경제적 소득마저 부진하자 팀은 자연스럽게 해체에 이르렀다.

티삼스는 당시 대학 밴드로는 보기 드문 헤비메탈 밴드였다. 인천 인하공전의 건축과인 5명은 자신들의 전공도구인 자, 각자, 케일자의 앞글자를 따서 밴드 이름으로 만들었다. 멤버로는 김화수(보컬), 안정모(키보드), 채제민(드럼), 신승호(기타), 조성욱(베이스)이다. 티삼스 3기 멤버로 1987년 강변가요제에 출전하여 부른 서정적 헤비메탈곡인 매일매일 기다려는 김화수의 미성과 고음, 그당시 보기 드문 파워풀한 드럼 연주의 임팩트가 워낙 강해 대상보다 큰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기사

매일 매일 기다려는 2016년 5월 8일 MBC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서 국카스텐 하현우가 불러 크게 주목받았으며 채제민도 본인의 페이스북에 1988년에 자신들이 출연한 TV 영상을 올리며 환호했다. 여담으로, 복면가왕에서 이 노래가 히트한 후에 작곡가인 최창환의 저작권료를 보고 깜짝 놀랬다는 후문이었다.[11]

3. 세션 활동(1990년~)

티삼스 해체 후에 이승환, 이승철, 신승훈, 이선희, 박미경, 토이등 많은 가수의 라이브 및 레코딩 세션을 하였다.

이선희 공연 때는 공연이 지루해질 것을 우려해 콘서트에서 연주가들의 차력쇼를 넣었는데 도사 가발을 쓰고 벽돌을 깨며 드럼을 치기도 했다.

부활에 들어왔어도 2002년에만 반짝 했고 나머지 기간은 연봉이 500만원이 안되었다고 한다.

부활 활동으로는 생활이 어려워지자 다른 가수들의 세션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고, 부활공연이 활발해지는 2009년에 와서야 KBS 콘서트 7080 밴드를 끝으로 생계형 세션생활을 끝낼 수 있었다.

1) 라이브 세션
1990~1998 이승환 세션 [Percussion]
1996~2002 이승철 세션 [Percussion & Drums]
1998~2008 신승훈 세션 [Percussion]
1998~2003 이선희 세션 [Drums]
1997~2008 박미경 세션 [Drums]
2000~2002 유희열 TOY [Percussion]
2000~2003 변진섭 세션 [Drums]
2001 신화 세션 [Percussion]
2001~2002 조성모 세션 [Percussion]
2003~2005 god 세션 [Percussion]
2004~2009 KBS2 콘서트 7080 밴드 [Drum][12]
2005~2009 뮤지컬 헤드윅 [Drums]
2007 김건모 세션 [Percussion]
2006~2007 김수철 세션 [Drums]
2007~2008 SG워너비 세션 [Percussion]
2007 프랑스 뮤지컬 오리지널캐스팅 공연 [Drums]

2) 레코팅 세션
이승환 THE SHOW LIVE 앨범 / HIS BALLAD앨범 / 이오공감 앨범
이수영 2집 NEVER AGAIN / 2001 LIVE 앨범
이승철 6.5집 CONFESSION / 2000 LIVE 앨범
토이 3집 앨범
김경호 6집 THE LIFE 앨범
뮤지컬 올슉업 녹음[13]
뮤지컬 헤드윅 ost
뮤지컬 나쁜 녀석들 녹음

4. 록밴드 부활의 드러머(1998년~1999년, 2002년~현재)

4.1. 김태원에게 보낸 편지

연주가로 활동하던 중 부활의 멤버였던 최승찬[14]의 제의가 계기가 되어 부활에 들어가게 되었다. 부활의 여섯 번째 앨범부터 합류하게 된 것이다.

티삼스뒤에 모시게 된 문영배가 '드러머는 밴드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한 것을 항상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고, 티삼스 뒤 다시 들어가게 된 밴드라서 마음이 설렜다고 한다. 그러나 앨범 판매도 부진했고, 보컬 김기연이 성대결절로 활동을 이어갈 수 없었으며, 멤버사이의 갈등으로 자주 의견충돌을 빚었다고 한다. 최승찬이 멤버들과 함께 팀을 탈퇴했고, 채제민도 무리에 포함되었다.

최승찬은 채제민과 함께 주니퍼[15]를 만들어 하늘끝에서 흘린 눈물이란 곡을 히트시켰다.[16] 이후 활동이 흐지부지 되다가 2015년 너의 목소리가 보여 에서 다시 한번회자되었다

파일:주니-horz.jpg
주니퍼 활동당시 멤버. 왼쪽아래부터 채제민(드럼), 최승찬(보컬, 키보드), 박준영(보컬), 정준교(베이스), 반상균(기타)

채제민은 착잡했다. 팀을 탈퇴하면서 답답한 심경을 편지지에 옳겨 김태원에게 보냈다.[17] 부활 탈퇴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내용. '나를 데려온 승찬이형의 종용을 거절할 수 없었다. 배신자로 낙인찍힐 게 두려웠다'며 괴로워하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부활 탈퇴 후 다양한 공연과 음반참여로 주머니는 넉넉해졌지만 마음 한 구석은 늘 허전했다고 한다. 이전부터 변하지 않던 바람. 밴드를 향한 열망 때문이었다.

3년 뒤 기회가 찾아왔다. 다시 부활이었다. 2002년 이승철이 부활에 합류하면서 다시 드럼을 맡을 수 있었다. 그는 부활에 다시 합류할 수 있었던 게 이승철이 권유해서 라고 알고 있었는데 김태원이 먼저 제안했다는 진실을 알고 많이 놀라워했다. 재회한 김태원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내 어깨를 두들기며 '잘 해보자'고 했다. '편지는 집에 잘 보관하고 있다'는 말에 가슴이 울컥했다" 고 한다.

4.2. 밴드의 기둥, 드러머

드럼은 화려하지 않다. 늘 무대 뒤를 맡는다. 주목하는 눈도 적다. 밴드 녹음에서 간혹 다른 연주가로 대체되기까지 한다. 티삼스 앨범 때가 그랬는데.. 자신의 실력 부족을 이유로 문영배로 대체하여 앨범을 녹음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고 한다. 티삼스 해체 뒤 올바른 연주가의 삶을 알려줄 길잡이가 필요했고, 문영배의 연습실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의 제자를 자청했다고 한다. 4년 동안 수하생활을 하면서 '드럼 기교와 음악인의 도리에 대해 많이 배웠다. 그때 선생님의 조언 덕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고 하면서 그 노하우를 개인레슨, 학원강의, 공연을 통해서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 있다. 2011년 인터넷사이트 '스쿨뮤직'을 통해 국내 최초로 동영상 드럼 교육을 선보이기도 했다. 교육활동[18]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07년 록 그룹 NOISE 11(노이즈 일레븐)을 결성해서 싱글앨범을 발표했다. 자작곡 '건전가요' 가 수록되어 있다.

D,W 드럼 인터내셔널 첫 번째 엔도저, SABIAN 심벌 공식 엔도저이다.

부활의 김태원은 콘서트장에서 채제민의 드럼 솔로 때 대기실로 들어가서 쉬지 않고, 무대 끝에서 드럼 솔로하는 모습을 넋놓고 바라볼 때가 있다. '이제 다른 드러머 소리는 못 듣겠다' 고 밝히기도 하였다.

공연에서 드럼 솔로는 빠진 적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그러나 팬들도 그렇고 공연관람객들도 무슨 곡을 연주하는지 모른다. 공연 셋리스트에도 곡명이 아니라 '드럼솔로'이렇게 적혀있다. 공연 중간쯤에 분위기 전환 겸 해서 김태원의 기타솔로 - 서재혁의 베이스솔로 - 채제민의 드럼솔로 순으로 진행된다. 공연의 피크타임이라고 할 수 있다. 들어보기 (15.12.24 부활 수원콘서트 中

을 잘 추고 댄스에 관심이 많다. 2015년 부활 공연에서 드럼퍼포먼스에 맞춰 에니메이션 크루 백승주가 비보잉을 선보여 큰 박수를 받았다. 특유의 스틱돌리기와 댄서의 움직임에 딱딱 맞아 떨어지는 드러밍을 본 관객들은 부활 공연은 슬픈 노래만 하는 것 아닌가요? 하고 기대 1도 안 하고 왔는데 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한다.

레드 제플린 드러머 존 본햄의 연주 뿐아니라 연주제스쳐를 모방하며 연습을 했고, 지금의 연주스타일에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존 본햄을 뽑았다.

부활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는 6집 수록 연주곡 이상시선1, 9집 수록곡 1970, 10집 수록곡 희망에게, 13집 수록곡 Beard of God[19] 을 작곡하였다. 특히, 1970은 부활곡 중에서 몇곡 안되는 신나는 곡으로 공연레파토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부활의 신나는 곡은 1982를 제외하면 주로 채제민이, 팝송 같은 색은 서재혁이 만들어내는 편이다.

별명이 '또자', 틈만나면 쪽잠을 잔다. 불규칙한 생활탓에 생긴 습관이라고 한다. 졸음운전으로 인한 잦은 교통사고로 자주 대리운전을 애용하기도 하고 부득이하게 거처를 인천의 집이 아닌 서울의 작업실에서 독거하기도 한다고 한다. 뮤지컬 헤드윅 공연때는 연기자가 대사하는 동안 짬짬이 잠을 자기도 한다. 운동을 좋아해서 축구를 하다가 쇄골뼈 골절을 입어 공연을 못 할 뻔했는데 철심을 박고 드럼을 치다가 철심이 살을 뚫고 나온 적도 있었다.

슬하에 1남 1녀가 있다. 부인은 첫사랑이며[20] 6년 짝사랑하다가 2년 연애하고 결혼에 골인했다. 고등학교때 도서관에서 훔쳐보다가 고백했는데 채제민의 인상을 보고 전력질주로 도망갔다. 수년 뒤 우연히 지하철에서 마주쳤고, 젠틀한 매너에 마음을 열었다고 전해진다.

2016년, 부활에 들어온 지 17년이 되었다.[21]젖은 낙엽정신[22]으로 버텼다고 공공연하게 말해왔고, 그동안 팬들에게 보여준 신뢰, 부활이라는 밴드를 지키기 위해 인내해 온 시간을 통해 한국의 좁은 록씬에서 드러머로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콘서트에서는 커튼콜 때 자신이 연주하던 드럼스틱을 관객들에게 주기도 한다. 늘 중립을 유지하며 본인이 인증하길 '처세술 만렙, 사회 생활을 채제민처럼만 해도 어디가서 미움받진 않는다' 라고. 언제나 들어오는 역대 최고의 보컬에 대한 답변도 현재 보컬이 최고라고 답하는 그야말로 뛰어난 처세술을 보여준다.

5. 활동

5.1. 라디오

목소리 미남

2012년 4월 17일 국내 최초 락전문 음악방송을 표방하며 경인방송 iFM 채제민의 도깨비 라디오(방송시간 : 월~일요일 밤 10시~ 12시)를 1년간 진행하였다. 많은 인디밴드들이 초대되어 라이브 공연을 했고, 공개방송에는 헤리빅버튼, 부활이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상당한 애정을 갖고 시작한 방송이었고 청취률도 좋았다고 하는데 프로그램이 종영되어 굉장히 아쉬워 하였다.

매주 화요일(2012년 7월 24일 ~ 2013년 4월 9일)에는 도깨비초대석 시간을 마련하여 인디밴드를 초대하여 라이브로 진행하였다. 정단, 이성욱, 게이트 플라워즈, 리빙스톤 데이지, 브로큰 발렌타인, 블랙백, 조아람, 블루니어 마더, 해리빅버튼, 장미여관, 스픽아웃, 고고스타, 김보경,김민기,전혜선, 거츠, 로멘틱펀치,이스턴사이드킥, 웁스나이스, 슈퍼 키드, 빨간머리 앤, 박경환, 스윙즈, 좋아서하는 밴드, 밴드 24일, 쿠바, 애쉬그레이, 네미시스, 악퉁, H2O, 9와숫자들, 갈릭스 등이 출연하여 늦은 시간대과 좁은 스튜디오 상황을 감안하여 최소한의 악기만을 준비하여 진행하였고 보이는 라디오로 라이브 현장도 볼 수 있었다.

파일:도깨비1260.png
2012년 4월 19일 게스트인 위대한탄생 출신 손진영, 이태권

2014년 1월 7일 국민 TV 라디오 미디어협동조합에서 락밴드 중흥기의 부활을 꿈꾸며..를 표방하며 채제민과 김민기의 디디쇼를 2년간 진행하였다. 라디오 공개방송을 진행할때는 빼어난 진행실력과 해박한 락음악 지식, 중저음에 안정된 목소리와 귀여운 제스쳐로 숨은 끼를 발산하기도 하였다. 스튜디오 방송과 공개방송으로 나누어서 진행하였다. 공개방송은 스튜디오가 아닌 라이브 공연이 가능한 공연장이나 카페를 빌려서 진행했다.

네미시스, 밴드 24일, 바스켓노트, AFK, 블루니어마더, 더 히스테릭스, 예리밴드, 이승환, 시베리안허스키, 부활, 김바다, 장호일밴드, 서문탁, 마리서사, 아프리카, 로즈마리, 4헤르츠, 키팝, 트랜스픽션, 홍경민, 블랙홀, 로큰롤라디오, 미미시스터즈, 소울트레인, 신화김동완, 송용진, ROO, 워킹에프터 유, 아리밴드, 민트그레이, 파티메이커, 손승원, 조정석, 전혜선, 손진영, 정서경, 이성욱, 정단, R4-19, 해리빅버튼, 내귀에 도청장치, 아모르파티, 신대철, 3호선 버터플라이, 강백수밴드, 스팟라이트, 유병렬, 서울마더스, roundAround, ASH, 이지에프엠, 서울전자음악단, 어쿠스틱 스무스재즈 밴드, 영지예리 프로젝트 밴드, 위키드솔루션즈, 한대수, 전인권, 신윤철, 어비스, 메써드, 삐삐밴드, 과대불판 사용금지, 거츠, PURE, 디아블로, 나티, 제이민 등이 초대되어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2016년 5월 MBC 표준 FM 원더풀라디오 김태원입니다 월요일 코너 '그것'과 당신의 이야기에 고정출연하고 있다. 8월 9일 김태원의 입원[23]으로 자리를 비우자 8월 9일~8월 19일(2주간) 서재혁과 함께 대타 DJ로 진행을 했다. 사전연습도 없이[24] 김태원의 빈자리를 성공적으로 메웠다.

2016년 8월 24일 김태원이 라디오에 다시 복귀하면서, 다른 스케줄 다 취소하고 빈자리를 대신 해 준 멤버들과 박완규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기도 했다. '전장터에서 무리와 무리가 싸우고 있는데, 제가 무너지고 있을 때 저쪽 산등성이에서 한무리의 말을 타고 지원군이 나타나는데 그 무리가 부활무리, 마치 조자룡 같다. 그래서 제가 다시 살아 나는..' 이라고 고마움을 표현하였다.

파일:AF.png
본인의 바람대로 2018년 12월 3일 아프리카TV 에서 1인 방송을 시작하였다.듣기

제목은 '부활 채제민의 도깨비 라디오', 매주 월~목, 저녁 10시~12시까지 방송하며, 방송 초기에는 2013년 경인방송에서 본인이 진행하던 도깨비 라디오 DJ 컨셉을 그대로 가져왔다. 시그널 음악도 밴 헤일런의 'JUMP'로 동일하다# 다만, 방송작가와 PD없이 혼자 다 하는 1인 방송이다.

록음악 전문 방송을 지향한다. 신청곡과 사연을 받고 게스트도 등장한다. 본인의 연습실 일부를 개조해서 스튜디오로 사용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방송은 스튜디오에서 진행한다. 아직 시설 보수가 덜 되어서 게스트를 모시기에는 민망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래도 게스트 출연이 굉장히 잦은 편인데, 탈퇴 전 김동명이 게스트로 깜짝 방문한 적 있고 현 보컬인 박완규는 정기적으로 출연하기로 하고 아예 별도로 코너 이름까지 공모를 받아 결정했다. 이 외에도 현재 베이스로 참여하고 있는 이윤종이 방문한 적 있다.

록음악을 지향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요일마다 비공식 주제가 있긴 있다. 비가 오면 비와 관련된 음악, 신청곡에 가요가 많으면 가요를 주로 들려준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발라드가 점점 좋아진다면서 자신의 밴드인 부활 곡을 잊지 않고 선곡한다. 부활의 팬이라면 부활의 소소한 일상도 함께 들을 수 있어 듣는 재미가 있다. 최근에는 소통 겸 홍보를 겸할 목적으로 합주 연습 현장을 생중계하거나, 박완규가 재합류하고 비고정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는 신곡이 곧 나오며 뮤직비디오도 촬영했다는 등의 언급을 하기도 했다. 김태원도 반대하는 입장은 아닌지 합주 현장에서 멤버들과 함께 인사하는 등 적어도 말리지는 않고 있다.[25] 실시간 채팅으로 많이 올라오는 질문인 서재혁 탈퇴, 부활 3인체제설에 관해서는 아직 내부적으로 확정된 게 없는지 '곧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만 해두고 넘어갔었다. 최근에는 김태원을 비롯해 박완규, 최우제 등 부활 멤버들을 게스트로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2020년 11월 7일에는 유튜브에서 생방송을 진행했으며 나무위키의 부활 문서를 읽어내려가면서 검증하는 시간을 가졌다.

2020년 12월 16일 유튜브와 아프리카tv 동시송출 테스트를 김동명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진행하였으며 이후부터 도라는 동시송출로 진행될것이라고 밝혔다.

2023년 1월 31일을 마지막으로 만4년이상 진행해온 도깨비라디오 시즌1 방송을 마치고 두 달여의 휴식기를 가졌다

2023년4월 2일 좀 더 짜임새있는 방송내용을 모색하며 시즌2 방송의 시작을 알렸다. 매주 일요일 밤 9시에 고정 라이브방송을 진행하고 주중 1회정도 여건이 될 때 방송을 진행한다고 한다.

5.2. 음반

1988년 티삼스 1집《티삼스》
1998년 ~ 현재 부활(밴드)/앨범 목록을 참조
2001년 주니퍼 1집 《하늘 끝에서 흘린 눈물》
2002년 Indie Power 2002 (옴니버스)《잘 됐어》
2009년 노이즈 일레븐 《The Beginning》

5.3. 여담

이승기서태지의 가수 데뷔를 반대한 사연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본인이 반대하면 잘 되는 것 같다고 한다.

반대로, 부활 내부에선 정동하/불후의 명곡 문서 처음에 나와있듯이 '동하는 불후의 명곡 나가라' 이후 서서히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기도 했다.

2016년 11월 티삼스의 보컬이었던 김화수의 싱글 음반에 드럼 세션으로 참여했다.

2016년 4월부터 인천 월미도에 자리한 꿈베이커리[26]에서 셋째주 토요일에 열리는 더꿈콘서트를 영화감독 봉만대와 공동진행을 맡고 있다. 창립 2주년 기념식에서 감사장을 받았다.

2018년 4월 KBS 콘서트7080 출연을 하루 앞두고 사우나 바닥에 미끄러져서 손목이 골절되는 바람에 드럼을 연주하지 못했다. 대타 드러머 정상현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2018년 10월 인천교통방송에서 진행된 공개방송에서 티삼스 멤버들과 매일 매일 기다려를 30년 만에 합주했다.#

6. 수상

2009 Mnet Asian Music Awards 록 음악상(부활)
2009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가요 부문 10대 가수상(부활)


[1] 공연시작을 알리는 손짓 사진출처[2] 5녀 1남 중 막내. 3대 독자로 태어나 군대 면제를 받았다고 한다.[3] 드럼 전공[4] 석사 학위 논문 : 록음악의 형성과 발전에 관한 연구.[5] 그 유명한 명곡 "매일 매일 기다려"를 부른 밴드다.[6] 라디오에 출연했을 때 작가가 붙여준 별명은 은귀(은근히 귀엽다).[7] MESHUGGAH의 드러머 TOMAS HAAKE#가 보인다, 위의 영상에서 조명엔지니어는 드럼 박자를 다 꿰고 있을 것 같다.[8] 유도선수로 시작했다가 중학교 때 복싱선수가 되었다.[9] 대상:문희경<그리움은 빗물처럼>, 금상:제제<진실이야>, 은상:여운<홀로된사랑>[10]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였다. 대표적으로는 슈퍼스타K 정준영, MBC 복면가왕 하현우, 영화 복면달호에서 차태현이 불렀다[11] 라디오에 출연했을 때 언급했는데 금액은 말하지 않았지만 통장이 아주 아름다웠다고 한다.[12] 2004년부터 프로그램 시작을 함께한 배철수는 '그러니까 채제민 씨가 우리 프로그램 세션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부활이 안 됐다는 거죠?' 하는 멘트를 출연할 때마다 한다.[13] 2007 뮤지컬어워드 음악감독상수상 작품이다.[14] 조용필과 위대한탄생에서 키보드을 담당했고, 부활 5집 객원멤버이자 부활6집에서 정규멤버로 '너의침묵'을 직접 작곡하고 불렀다. 이후 주니퍼로 활동이어가다가 최근 송골매로 활동했다.[15] 보컬인 박준영만 제외한 나머지멤버는 부활에서 탈퇴한 최승찬, 채제민, 정준교가 활동한 밴드로 2000년도에 주니퍼 1집 발매했다.[16] 이 곡은 전 보컬인 김동명의 가장 유명한 커버곡이다.[17] 이는 이후 불명에서 언급되는데, 상대가 불편할 수 있는 말은 편지에 써서 준다는 그의 순정한 면모가 있다.[18] 부활실용음악학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양대학교 평생교육원 콘서바토리에 출강하고 있다.[19] 부활 정규 앨범에 수록된 연주곡 중 유일한 드럼 솔로 트랙이었는데, 원래 처음 제목은 모비딕이었다고 한다.[20] 여담으로 현재 김동명은 솔로라고 하지만, 13집 당시 멤버들은 전부 첫사랑이랑 이어졌다. 당시 보컬은 가출하고 결혼했고, 김동명도 부활 탈퇴 후 결혼하면서 솔로가 아니게 되었다. 6년 연애 후 결혼했다고 하는데 결혼이 2019년이고 부활 들어온게 2014년이라서 6년이면 부활 활동하면서 이미 연애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21] 김태원은 '죽을때까지 같이 할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도 인터뷰에서 자신은 영원한 부활을 꿈꾼다라고 밝히기도 했다.[22] 길고 가늘게, 살아남는 놈이 이긴다는 뜻으로 젖은 낙엽이 땅에 찰싹 붙어 있으면 잘 쓸려나가지 않는 모습에서 유래했다.[23] 패혈증으로 10일간 입원했다.[24] 방송국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던 서재혁이 먼저 도착해서 오프닝을 했고 몇 분 후 다급하게 달려온 듯한 채제민의 숨소리가 그대로 방송을 탔다.[25] 이후 김태원도 본인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활동하고 있는 걸 보면 인방을 통한 소통이 마음에 들었거나 그럴 필요를 느낀 것으로 보인다.[26] 의사, 변호사, 약사 등이 설립한 비영리민간단체로 인천 지역 내 지역아동센터와 자활꿈터 및 소년·소녀 가장에게 간식 지원을 펼쳐 2017년에는 약 48,000개의 빵을 지원한 단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