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16:56:11

김태원(음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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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부활 리더 · 기타리스트
김태원
金泰源| Kim tae-won|キム・テウォン
파일:1025952.jpg
출생 1965년 4월 12일 ([age(1965-04-12)]세)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2가[1]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충주 김씨 (忠州 金氏)
학력 서울역촌초등학교 (졸업)
숭실중학교 (졸업)
충암고등학교 (전학)
숭실고등학교 (졸업 / 야간부)
장안대학교 (무역학 / 중퇴)[2]
신체 175cm[3], O형
가족 3남 2녀 중 셋째
배우자 이현주(1966년 생)
김서현(1997년 생)[4], 아들 김우현(2000년 생)
병역 전시근로역 (수형)[5]
종교 가톨릭 (세례명: 바오로)
약력 대구가톨릭대학교 예체능 석좌교수
소속사 부활엔터테인먼트 (대표)
MBTI ISFP
별명 국민 할매, 한국의 톰 요크, 김억삼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활동3. 장비4. 연주력5. 병역6. 예능 출연7. 주요 음악 작품8. 음악인 가족9. 저서10. 방송
10.1. 예능 프로그램10.2. 드라마10.3. 라디오
10.3.1. 진행10.3.2. 게스트
10.4. 광고
11. 드라마스페셜 연작시리즈 - 락 ROCK 樂
11.1. 드라마 오프닝11.2. 각 화 제목11.3. 출연
12. 사건사고1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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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1446_2045_293.jpg

한국의 음악 밴드 부활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 작사가, 작곡가, 프로듀서. 부활의 명곡들을 대부분 작사·작곡했다.

2. 활동

3남 2녀 중 셋째로 위로 형 둘에 밑으로 여동생 둘이 있다. 과거 방송에서는 어렸을 적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져 가세가 기울었다는 말을 종종 했지만, 김태원의 유튜브 채널에 등장한 주변인들이 김태원의 집안이 유복했다고 증언하고 본인도 부정하지 않는 것을 보면 집안의 사업이 아예 망가진 지경까지는 아닌 듯하다. 부친이 발명가셨고, 그래서 자기도 음악 발명가가 된듯하다고. 또 막내 아들이라 부친이 사줄건 다 사주고 큰 부족함 없이 자랐다고 얘기했다. 국민학교 4학년 때는 축구를 좋아했다고 한다. 충암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짤려서, 숭실고등학교로 전학한 후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기타에 전념하였다. 여학생에게 기타를 쳐주고 싶어 2년 걸릴 기타를 1년 만에 쳐냈다고 한다.

부활의 대부분 노래를 직접 작사, 작곡했다. 다만 1집의 타이틀곡 희야 같은 경우는 김태원이 쓴 게 아니라 김태원의 친구인 작곡가 양홍섭의 작사, 작곡. 2집의 회상 III는 '마지막 콘서트'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이승철이 리메이크하면서 바꾼 이름이며, 당시 김태원의 여자친구였던 아내를 위해 썼다. 가사에서 나오는 소녀가 바로 아내다. 여담이지만 가사에서 소녀가 울고 밖으로 나가는 이유는 당시 김태원이 약에 취해서[6] 연주하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참고로 이 '회상 III'는 부활 2집을 녹음하던 도중 녹음실에서 이승철이 보는 앞에서 한 번에 쓰였다고 한다.

1980년대 데뷔 무렵엔 시나위, 백두산과 함께 헤비메탈 밴드로 이름을 알렸지만, 오늘날로 치면 발라드 특히 록발라드적인 기운이 좀 더 컸던 탓에 시나위, 백두산처럼 좀 더 정통 헤비메탈을 추구하던 밴드와는 엄밀히 따지면 차이가 있었다.[7] 그래도 덕분인지 대중성은 셋 중 최고였다. 부활 초기 대표곡 중 하나인 비와 당신의 이야기[8] 등에서 이런 면모가 잘 드러난다.

김태원 본인은 음악 장르에 대해 꽤 열려있는지, 훗날 라디오스타에서 백두산의 보컬 유현상이 트로트 가수로 활동한 것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자 굳이 생활고나 현실에 관해 얘기하지 않고 "트로트가 락보다 아래인 장르냐, 음악이란 큰 바다일 뿐인데 그걸 변절이라 할 수 없다."고 유현상의 편을 들어주었다. 특히나 폴 메카트니가 했던 말이라며[9] "음악을 차별하는 것은 인종차별보다 더 끔찍하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뭐 어디까지나 백두산의 당시 말은 김태원이란 사람을 저격했던 것도 아니고 음악에 관해 한마디 한 것뿐이기에 별 감정은 없는 듯하다. 나란히 두 팀이 방송에 나와 사이좋은 모습을 보인 적도 있고. 그리고 감정을 떠나 그의 음악적인 철학까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흔히 회자되는 '서대문파' 기타리스트로, 간단히 말하자면 골방에 틀어박혀서 자아도취하면서 도 안 먹고 기타만 16시간씩 치는 기타리스트였다고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든 후엔 14시간 자면서 꿈꾸고 나머지 시간엔 술을 마신다고 한다.[10] 부활 데뷔 전까지는 게리 무어나 지미 페이지 풍의 블루스-하드록 기타, 특히 서스테인이 많이 필요한 미드템포 애드립에 능한 것으로 유명했다.[11] 부활의 전신이 되는 The End 시절에는 이태윤 왈 일본밴드 라우드니스의 기타리스트 타카사키 아키라에 빠져서 타카사키를 내가 쫓아내버리겠다고 뻥카를 칠 정도로 한동안 헤비메탈에 심취했었다고 한다.

부활 출신의 보컬 중 가장 성공한 이승철과는 사이가 좋다고 보기도 나쁘다고 보기도 애매한 복잡한 애증의 관계를 쌓아왔다.[12] 허나 둘이 만났을때 음악적 결과물은 으레 훌륭했기에, 부활 팬들 중엔 여러 개인사들을 제쳐두고서라도 다시 한 번 이승철이 부활에 합류해 주길 바라는 케이스도 있다. 한때 김태원의 유튜브 채널의 조회수 1위 영상도 이승철과의 관계를 다룬 영상이였을 정도.[13] 사실 이승철과의 관계가 너무 영화 같아서 그렇지, 이승철 이외의 다른 보컬들도 우여곡절도 많고 오래 가지 못했다.

김태원 본인의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에 역대 부활 보컬들을 엄청 쪼았다고 남자의 자격 아마추어 밴드 편에서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문제아(?) 보컬 김성민 때문에 한창 열받아 있을 때 언급한 것으로, 전문은 멤버 김성민에게 1년 내내 걱정만 할 뿐 뭐 하나 나아지는 게 없다고 화를 내며 "오늘은 일단 참을 건데요. 끝나고 보자고. 망치기만 해봐. 다 엎을 거야. 내가 역대 부활 보컬들에게 어떻게 했는지 보여준다!"라고 씩씩대자 윤형빈과 이경규의 멘트와 자막으로 부활 보컬들에겐 인자한 국민 할매가 아니라 마귀 할멈이라고 언급한다.

특히 김태원이 돈 때문에 잘랐다고 인정한 이성욱[14], 조금 복잡한 관계였던 박완규[15], 그 외 부활 디스코그라피에나 언급되는 많은 탈퇴한 전 멤버들. 김태원의 좋게 말하면 음악적 욕심과 완벽주의[16], 나쁘게 말하면 독선과 아집 때문에 밴드 이름 그대로 음반 낼 때마다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기를 반복한 그의 음악사를 그대로 말해준다. 좋은 예로 안녕을 만들 때 400%나 투자했었다. 여기서 프로란 스튜디오를 3시간 반 쓸 때를 칭한다. 보통은 한 프로나 두 프로, 아주 많아야 10프로 안에 끝내는 경우가 많은데 400프로면... 진지하게 계산을 해보자면 1프로가 3시간 반이면 분으로는 210분이다. 여기에 400을 곱하면 84,000분. 한시간이 60분이니 나누기 60을 하면 1,400시간. 1,400을 하루의 기준인 24로 나누면 58.333...인데 24×58=1392다. 그러니까 안녕 하나 만드는데 무려 58일하고도 8시간을 공들인 것으로 이건 다른 멤버들이 먼저 죽어날 지경이다. 너무 무리한 녹음으로 인해 이때 이성욱이 성대결절에 걸렸다. 김기연도 괜히 녹음 과정 중에 성대결절에 걸린 것이 아니다.

보컬들과 음악적 견해 차이로 헤어질지언정 인간적으론 종종 교류하는 모양이다. 서로 아예 척을 진 걸로 많이 알고 있는 이승철과도 사실 만나면 잘 지낸다고 하며, 부활 멤버들과 함께 빈소를 지키기도 했다. 보통 팀을 탈퇴하면 특별히 교류가 없는 게 정상인데 부활 보컬들과는 1년에 한 두번은 연락을 주고 받는다고 한다.

1989년 이승철이 탈퇴한 뒤엔 부활 3집이 발표되기 전 4년 동안 거의 거지 비슷하게 살았다고 한다. 대마초로 인한 수감 생활기와 겹치는 시기로, 학원 영어, 수학강사를 하던 여자친구(지금의 아내)가 하루 1000원씩 줬다고 한다.[17] 지금까지 쓰는 통장도 1989년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부활 1집2집의 히트에도 불구하고[18] 자신에게 들어온 돈은 1989년 솔로 이승철이 마지막 콘서트로 리메이크한 회상III 저작권료를 받을 때가 거의 처음이었다고 놀러와 방송에서 밝혔을 정도로 사정이 안좋았던 모양.[19] 1993년도 첫사랑을 위한 곡 사랑할수록이 들어간 3집을 쓰고 모든 자신의 상황이 뒤집어졌다고 한다. 그 당시 누구도 자신이 뜰 거라고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술과 약에 찌들어 있었고 끝내는 정신병원에 감금당했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그렇게 망가진 자신에게 제 발로 찾아와준 친동생같은 김재기가 있었기에 재기가 가능했다고 한다.[20]

작곡적인 능력으로 말한다면 '네버 엔딩 스토리'의 굴지의 히트 이후로는 자기복제 경향이 심해졌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부활 팬층도 어느덧 나이가 40대 이상인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팬들이 뭔가 새롭고 혁신적인 사운드를 원하는 것도 아니며, 팬이 아닌 사람들도 부활이 신선한 사운드를 들려주길 기대하는 것은 아니기에 큰 문제가 되진 않는 모양이다. 다르게 보면 김태원 특유의 색을 가지고 있다고도 표현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부활 앨범은 따로따로 떨어진 곡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한 편의 소설과도 같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곡이 김태원의 사랑 혹은 인생사를 모티브로 쓴 노래다. 그리고 예능 출연으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데도 그동안 발매된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OST, 디지털 싱글 등의 퀄리티는 상당하며 이 곡들만 모아도 하나의 앨범이 완성될 정도의 분량이다.

이런 주장에 김태원은 생각보다 분명하게 자기 입장을 밝혔는데, 세상엔 많은 뮤지션이 있고, 나는 내 음악을 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다른 음악을 원한다면 다른 뮤지션을 찾는 게 정답이라는 입장이다. 듣고 보면 맞는 말이다. 사실 '사랑할수록', '네버 엔딩 스토리' 두 히트곡 모두 정말 김태원의 인생이 나락까지 떨어졌을 때 나온 곡이다. 사실, 네버 엔딩 스토리 이후[21] 곡이 비슷하다는 의견 자체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며 이는 김태원 본인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김태원의 에세이에 있는 "나는 음악이 좋았기 때문에 마약과 감옥살이, 알코올중독도 이겨내고 현재의 모습으로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의 고통이 따라야 히트곡이 나오는 거라면 더 이상 명곡을 만들지 않겠습니다. 이제 어떤 스토리를, 인생의 가사를 쓰기 위해 가시밭길을 걷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라는 글에서 느껴지는 김태원의 심경 변화를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2011년 남자의 자격을 통해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라는 이름의 합창곡을 작사/작곡했다.

SBS 힐링캠프에서 밝히길 (하늘에서 내리는) 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한다. 비와 관련된 곡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이고[22], 잠 잘 때는 커튼으로 방의 창문을 막아서 어둡게 한 뒤에 스테레오사운드 오디오로 24시간 빗소리가 흘러나오는 CD를 틀어놓는다고 한다.[23]

박완규의 인터뷰에서 언급되기를, 생활고로 인한 이혼과 성대가 망가지는 시련을 겪고 있을 때 비밀이라는 곡을 들고 와서 무작정 부르도록 시키면서 그의 재기를 도왔다고 한다. # 마약을 하면서 방황하던 자신을 김재기라는 인물이 도와주었던 것처럼 자신도 방황하는 후배를 도와준 셈이다. 그리고 2007년 부활과 박완규 모두 힘든 시절에 자신을 믿고 모든 걸 맡긴 것은 박완규뿐이었다고 한다.[24] 그래서인지, 이미 2009년 라디오 스타에 출연했을 때 이미 김태원은 콜라보를 하고 싶은 보컬 중 하나로 박완규를 지목하기도 했다.

대단한 영화광으로 약 1만 편 가량을 보았다고 한다. 책을 읽지 않는 만큼 영화를 많이 본다고 한다. 예능에서 자주 고전 영화를 언급한다.

무릎팍도사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미지와의 조우, 남자의 자격 탭댄스편에서는 백야를, 그리고 힐링캠프에서는 한혜진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언급하자 바로 알아차리는 모습을 보였다. 2집에서, 그리고 부활의 가장 유명한 연주곡인 'Jill's theme' 또한 거장 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했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의 OST다.

2016년 앓았던 패혈증이 재발해 후각을 잃었다고 밝혔다. 한동안 방송에서 보이지 않았던 이유였으며, 된장찌개 냄새로도 글을 쓰던 김태원이였기에 우울증까지 앓았다고. 여름에 음식물 쓰레기 버리면서 아주 살짝 난 그 냄새에 정말 행복했다고 한다.

메인으로 쓰는 일렉기타는 김태원 클라스에서 공개 했는데 ESP 호라이즌 커스텀 기타다. 픽업은 ESP에서 기본으로 넣는 디마지오가 아닌 던컨 험버커 픽업을 넣었고 플로이드 로즈 암을 넣어서 쓰고 있다.

3. 장비


뮤지션 중엔 정말로 드물게 장비에 큰 욕심이 없기로도 유명하다. 케이블TV의 모 프로그램에서 김구라가 기습적으로 그의 집에 인터뷰를 간 적이 있었는데, 집에 있는 것은 당시 엔도서 활동으로 받았던 일렉기타 하나와 통기타 하나 이렇게밖에 없었다고 한다. 좋은 기타를 선물받은 적도 많지만 후배나 지인들에게 대부분 나눠주었다고 한다. 본인이 기타를 주문 제작할땐 플로이드 로즈 브릿지와 던컨 픽업이 들어가야 하고, 일단 가벼워야 한다고 한다. 무게의 경우 체력적인 문제로 보인다.[25]

현재 메인으로 쓰는 보라색 기타는 ESP 오리지널 호라이즌 커스텀 기타다. ESP는 디마지오 픽업을 쓰지만 김태원이 디마지오 것을 싫어해 던컨험버커 픽업을 달고 Floyd Rose 암을 달아서 쓴다.

같은 맥락의 이야기로, 한때는 공연에서는 앰프+이펙터(GT-6)하나[26] + 기타 조합으로 연주를 했다고 한다. 다만 이는 김태원의 '복잡한 건 싫다'라는 성격도 어느 정도 반영이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뉴럴 DSP의 하이엔드 멀티 이펙터인 쿼트 코텍스(Quad Cortex)를 사용 중이다.

폴 제페토 가니메데 김태원 시그니처도 사용하는데, 폴 제페토는 김태원 본인이 설립한 기타 제조사이며 옆에 붙은 제페토피노키오를 만든 장인의 이름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기타 브랜드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와는 달리 품질은 많이 전문적이지 못하다는 듯하다. 그래도 커스텀 오더(주문제작) 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웬만한 하이엔드 기타가 부럽지 않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폴 제페토가 좋은 인지도를 얻은 이유는 은퇴한 노령 장인과 장애인을 고용하고, 수익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하는 데 있다. 이러한 사회적기업 성격에 주목한 최근의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노사문제로 논란이 된 모 업체와 비교하며 호평하는 뉴스 댓글을 볼 수 있다.

4. 연주력

김태원의 기타 연주는 특유의 서정적이면서 따뜻한 기타톤, 깊은 비브라토와 밴딩, 최대한 감정을 담은 연주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손가락을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꽉 차는 감동을 주는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참고로 1980년대의 한국 기타리스트들 사이에서 실력 평가의 척도는 속주와 화려한 손가락 움직임이었다.[27][28] 그러한 시대 상을 감안해서 보자면, 80년대에 김태원은 소위 '3대 기타리스트'로 함께 언급되는 신대철, 김도균과 비교해서 속주에 있어서는 다른 둘에게 그렇게 떨어질 것이 없었다. 실제로 김태원이 디 엔드와 부활의 초창기 시절에 라이브로 연주했던 단골 커버곡들은 잉베이 맘스틴의 'I'm a Viking', 반 헤일런의 'Eruption', 마이클 쉥커의 'Captain Nemo', 라우드니스의 'Like Hell' 등 상당한 테크닉을 요구한 곡들이였으며, 당장 부활 2집의 Jill's Theme만 들어봐도 수준급의 속주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간혹 김태원은 그때 실력을 기준으로 봐도 둘의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저평가도 있지만, '김태원이 과거에 아주 대단했다'라고 회고하는 뮤지션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당대에 예사롭지 않은 기타리스트로 인식됐음을 알수 있다.[29] 다만 기타 장인에 가까운 김도균, 신대철에 비해서 이러저러한 개인사로 인한 연습 부족과 건강 문제에 시달린 김태원이 더 빠른 노쇠화가 왔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30]

그리고 80년대를 지나 90년대에는 톤 메이킹이 한국에서는 가장 중요했다.[31] 90년대 기준으로 볼 때 두 기타리스트에 비하면 단조로운 면이 있었으나 김태원 고유의 톤은 굉장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특유의 톤 메이킹에 있어서는 폄하될 이유는 없다.[32]

시간이 흘러 가면서 기타 연주의 빠른 발전이 있었고 그에 따라 기타리스트들의 수준이 극도로 상향평준화된 현시대의 관점으로 보자면 김태원의 연주 스타일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긴 하다. 하지만 뮤지션으로서 김태원은 부족한 연주력을 서정성과 감성으로 보완하고도 남는다. 김태원 본인이 고백했듯이, 많은 명곡을 세상에 내 놓은 그의 능력은 삶의 가시밭길을 걸어 가는 고통을 감내하며 얻어낸 것이고 그 대가로 연주 기량의 하락 역시 따라 온 것이다. 그래서 음악인으로서의 역량을 연주력만으로 재단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로 현재는 기타리스트로써의 김태원 이라는 타이틀보다 작곡가/음악인의 영역이 더 뛰어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태원 본인은 본인 유튜브에서 나무위키 읽기 컨텐츠때 기타 실력에 대한 평, 즉 유명 기타리스트라거나 신대철 김도균과 함께 80년대 3대 레전드로 추앙받기에는 역량이 모자라다는 글을 보고 꽤 불쾌해하기도 했다. "이 얘기를 해서 기분이 좋으셨다면 축하드려요. 계속 평가를 하세요." 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 잘 치고 못 치고의 기준이 속주인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기타라는 것은 기타리스트의 목소리와도 같은거니 그 사람이 노래를 이렇게 부르든 저렇게 부르든 다르게 부르는 것일 뿐 (일정 수준 이상이면) 우열을 가리긴 어렵지 않냐는 견해를 비췄다.

이때 읽은 버전은[33] 김태원의 나이만 고려했지 건강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과하게 쇠했다고 평하는 잘못이 있었다. 상술된 평이 지나치게 단점만 꼬집은 혹평일 수 있다. 김태원의 기타 톤에 있어서는 좋아한다는 사람도 있고 80년대 당시에 대해 회상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건 어느 정도 기타 톤 등에 대해 투자하고 고찰할 만한 물질적 여유와 장비가 생겼던 90년대와 달리 80년대에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80년대 당시 김태원의 기타 톤은 확인할 수 없지만 객관적으로는 발전을 거듭했던 90년대 이후와 비교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당시 기준으로 감명을 줬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김태원이 설령 나무위키 읽기 컨텐츠에서 기분 나빠했다고 하더라도 주변 측근들의 증언, 장르 매니아들의 중평으로 봐도 김태원의 방향성이 작곡가/음악인으로 기울면서 세세하게 기타 톤이나 극도로 정교한 연주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34] 80년대 당시 기준으로는 독특하고 감성적인 부분이 있었던 것은 동료 음악인들의 증언을 봐서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35]

그리고 김태원의 기타 실력이 젊은 시절에 비해서 그리 발전하지 않았고 시대의 흐름을 따라오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김태원의 연주가 감동을 주지 않는 것도 아니다. 연주의 목적은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김태원은 자기가 만든 곡의 핵심을 잘 알고 프로로서의 연주력은 충분히 갖췄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그 연주로 충분한 감동을 줄 수 있다. 다만 세세하게 신경을 많이 쓰고 작은 것 하나하나를 느끼는 매니아들에게 있어서는 멜로디나 프로듀싱 영역을 제외하면 수십년째 발전이 없는 지루한 연주일 수는 있다.

5. 병역

병역은 면제이나 면제 사유는 정확하지 않다. 대략 1955~1974년에 태어난 과출생 베이비 붐 세대는 병력 자원이 넘쳐났으므로, 중졸까지는 보충역, 좌우부동시나 평발이면 4급 보충역, 복역한 적이 있으면 보충역 이하였다. 아버지 없는 독자인데 집에 성인 남자 형제가 없으면 생계곤란으로 면제였다. 경제력, 학력과 신체 이상이 합쳐지면 웬만하면 면제일 정도로 지금 기준에는 가벼운 이유로 면제되는 사람이 많았기에 김태원도 그러한 부류로 보인다.[36]

남자의 자격 해병대 편에서 멤버들 한명한명씩 병역이행 현황을 물었는데 이윤석은 병역면제, 윤형빈은 육군 제51보병사단 헌병대에서 군탈체포조 헌병, 김성민은 독자 사유로 방위병을 이야기하자[37] 김태원은 '저는 서대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윤석은 그건 '복무가 아니라 복역'이라고 정정해줬고 대대장과의 면담에서 '승진이 빠르신건가요?'라고 김태원이 묻자 이경규가 '군대는 승진이 아니고 진급이지. (대대장에게 설명해주며) 이 친구는 나라에서 군대 못오게 막아지고요'라고 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6. 예능 출연

주로 음악 활동만 하다가 2000년대 후반 현장토크쇼 TAXI에 출연했는데, 이때는 큰 반응은 없었다. 그러다 2008년 안면이 있던 김구라의 추천으로 라디오 스타 게스트로 참여했는데, 이때부터 4차원적인 성격과 생활상, 음악에 대한 이해, 당시 기러기 아빠로서의 고뇌 등 여러가지 레파토리를 많이 들려주면서 단숨에 예능의 새로운 카드로 급부상했다. 사실 첫 방송만 해도 라스 제작진조차 긴가민가했던 도박성 출연이라, 도중에 나가야 될 스케줄이 있었음에도 예능적으론 검증되었던 게스트 김흥국을 보조로 붙인 뒤, 당시 예능에선 중고신인이나 다름없던 김태원을 카메라에 잡힐 때마다 거의 2~3분 간격으로 진지한 바탕체 자막으로 "그룹 <부활> 리더 김태원"이라고 띄워줬다.

하여튼 이 출연 한 방으로 이후 새로운 예능카드로 떠오르고, 이경규의 눈에까지 띄어 2009년 남자의 자격에 출연하게 되면서 본격 예능인의 길을 걷게 된다. 이 김태원의 발굴로 김구라까지 재평가 받을 정도로 2008년 예능계 최대의 발견 중 하나. 참고로 음악평론가 임진모가 운영하는 음악평론사이트 'IZM'의 김구라 인터뷰를 보면 벌써 전부터 예능출연을 마지막 돌파구로 여기고 김구라에게 부탁한 정황을 읽을 수 있다. 전부터도 채제민 등은 김태원의 개그감을 알았는지 예능 출연을 적극 권장했다는 증언도 있었기에 이는 침체기에 빠진 부활을 살리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2009년 11월에는 생애 처음으로 광고를 찍었는데, 긴 생머리를 풀어헤친 채 핑크색 스키복을 입고 출연했다. 김태원의 뒤태만 보고 여자로 착각해 따라가서 리프트에 같이 탔던 한 남자가 얼굴을 보고 망연자실한다는 줄거리의 광고였는데, 여기서 김태원은 리프트에 함께 앉아 심드렁하게 "혼자 왔니?" 라는 단 한 마디 대사만 한다. 사실 이 대사를 치는 장면은 고소공포증이 심각해 리프트에서 덜덜 떠는 게 보여서 풀샷으로 촬영된 것이며, 당시 스태프들이 딱 한 마디만 하라고 부추겼는데 그리하여 간신히 나온 대사가 "혼자 왔니?" 였다고 하며 사실 원래 대본상의 대사는 훨씬 길었다고 한다.[38] 하지만 실제 광고 방영 후에는 저 짧은 한마디가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먹혀들어가 빵 터져 오랫동안 유행어가 되었다. 보러가기

청춘합창단 지휘와 작곡을 담당하며 "독설과 폭로, 강한 유머 코드만이 난무하던 예능계에 인간적이고 따스한 예능이라는 새로운 바람을 가져왔다"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예능인으로서도 뮤지션다운 색깔을 잃지 않으며 오히려 대성공을 한 것이다.

본인도 예능 출연으로 스타가 된 것에 만족했는지, 이후 위대한 탄생 멘토로 활동할 때도 오디션 출연자의 예능 출연을 적극 권장하고 예능감을 키우라는 식으로 조언하기도 했다.

남자의 자격이 마무리된 2010년대 중반 이후로는 예능 출연이 많이 줄었는데, 본인 기준 웃길만한 소재가 떨어진 즉 같은 얘기를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홀연히 예능에서 하차했다고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그래도 예능감은 여전해서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는 조커 드립도 바로바로 튀어나오곤 한다.

6.1. 남자의 자격

2009년부터 2013년까지 KBS에서 방영한 예능 남자의 자격에서 고정 멤버로 활동했다. 상상 이상의 허약함으로 국민 할매의 칭호를 획득하였다. 본의 아니게 이윤석국민약골 캐릭터를 빼앗은 격.[39] 2010년 8월 22일자 방영분에서는 요정이 되었다. 음악인으로서의 모습과 너무 갭이 심해서 많은 팬들이 당황하기도 했지만, 정작 본인은 예능을 통해서 부활과 자신의 음악이 알려지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인 의견을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서 밝혔다. 멤버들도 이에 절대적으로 동감하고 있다. 실제로 예능 애호가인 드러머 채제민은 김태원의 예능 진출을 적극 추천했고, 베이시스트 서재혁은 예능 출연을 반대했지만 김태원의 예능 진출은 첫 날부터 성공하게 된다. 예능 출연은 부활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부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 수억마디 하면 3가지만 진실된 말을 한다고 하여 스스로 김억삼이라고 불렀다.

첫회인 '남자 두번 결혼하다'에서 아내 이현주와의 리마인드 웨딩을 했고, 2회인 '24시간 금연편'에서 하루 2갑 이상을 피는 꼴초여서 미션 수행에 실패하였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처절할 정도로 참아내며 성공했다. 3회 '해병대편'에서는 레펠훈련에는 실패했으나 아침구보를 끝까지 완주하여 당직부사관의 박수지시에 전 중대원들의 박수를 받았다. '남자 그리고 09학번'편에서는 하루동안 경영학과 학생으로 생활하면서 경희대 록밴드 동아리를 방문하여 음악을 지도했고[40] '직장인 밴드'편에서는 아마추어만 참가할 수 있어 부활 멤버들과 함께 남격 멤버들의 노래, 연주 지도를 맡았고 곡도 직접 썼다.

2011년 2월 남자의 자격 암 특집을 위해 위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가 위암 극초기 판정[41]을 받고 16일 1차 수술, 22일 2차 수술을 마치고 26일 퇴원하였고 3일도 안 되어 예정되었던 부활 정규 콘서트에 임하여 깊은 감동을 주었다. 원래 수술에 대해선 프라이버시 문제로 방송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링크 암 수술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 이후의 건강한 모습은 암환자들에게 희망으로 다가왔기에 이후 관련 공익 CF나 강연회에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평상시 김태원은 건강검진을 잘 안 받았었는데 이때의 검진이 그를 살렸다.[42] 심지어 대장도 안 하고, 오직 위 내시경만 했는데, 그 위 내시경에서 극적으로 암세포를 찾아 무사히 수술을 하게 된 것이다. 김태원은 남자의 자격이 자신을 살렸다고 표현했다.[43] 이전에도 함께 출연하던 김국진이 간경화가 진행중이던 김태원을 반강제로 병원으로 끌고 가게 만들어 목숨을 살리기도 했으니 틀린 말은 아닌 셈.[44]

6.2.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2010년 12월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의 국내 오디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다른 두 심사위원에 비해 관대한 편이지만 떨어질 사람은 결국 다른 두 사람이 떨어뜨리므로 김태원이 관대하게 해준다고 이득을 본 사람들도 없다. 슈퍼스타K에서 서인국과 다른 몇몇을 광적으로 깠던 이승철과는 상반되는 이미지였다.

평가는 일단 위트 있게 이야기해주는 편이지만, 냉정하게 짚을 것은 다 짚어낸다. 그야말로 촌철살인 심사. 두 사람이 같이 노래를 부를 때 음정을 틀린 사람을 잡아 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론적인 것만 보는 것이 아닌 느낌이 와닿는 사람을 추천하여 더더욱 공감을 자아냈다.

"여기까지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항상 이제부터입니다", "음악은 발명이 아닌 발견이다. 자기 안에서 찾아내는 거다", "승패를 떠나서 그대는 이미 기적입니다", "인생이 후렴만 있나. 앞으로 살면서 1, 2절을 만들어야 한다. 후렴은 그 누구보다 아름답다" 등의 김태원 어록이 만들어질 정도로 주옥 같은 심사평이 연일 화제가 되며 위대한 탄생에 비판적이던 여론을 뒤집으면서 위대한 탄생의 색깔을 만들며 타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차별화 성공의 일등 공신이었다.

일반 대중들에게도 탁월한 뮤지션으로서의 이미지를 알리며 국민멘토로 칭송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심사위원들(위탄+슈스케)보단 훨씬 긴 오디션 심사 경험이 있고 그가 키워낸 인재들이 김종서, 이승철, 박완규, 김재기, 이성욱, 신해철, 정단, 정동하, 김동명 등 레전설들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자.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시즌 1 성공의 가장 큰 이유라고 평가받고 있다. 위대한 탄생이 슈퍼스타K 시리즈와 차별화 시키려 애썼던 멘토 스쿨 편에 들어와 무엇을 달리 하려 했는지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멘토 스쿨 참조.

놀러와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위탄 멘토를 꼭 하고 싶었다고 한다. 아직 다섯명의 멘토가 비공개일 때 김태원이 멘토라는 게 밝혀져서 제작측에서 교체를 검토했을 때 먼저 찾아가서 하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고. 위탄을 꼭하고 싶었던 이유는 예능을 하면서 너무 할머니[45] 이미지만 굳어지고 음악인의 이미지를 잃는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결국 위탄 시즌 1 그랜드 파이널에 제자 두 명(백청강, 이태권)을 올리면서 가장 성공한 멘토로 남았는데 위탄 시즌 2의 실패는 김태원과 같은 차별화된 멘토의 부재로 평가되고 있을 정도며 이후, 시즌2 부진으로 시즌 3에서 다시 멘토에 합류했다.

7. 주요 음악 작품

록밴드 부활부활(밴드)/앨범 목록, 김태원(음악인)/음악 활동 문서를 참조하자.

김태원은 프로 기타리스트로 데뷔한지 30년이 지났지만 기타 솔로 앨범을 낸 적이 없다. 부활 초기 음반인 1집과 2집에서는 속주플레이와 블루지한 연주, 클래식과 록을 접목시킨 독특한 분위기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그 이후는 기타 테크닉에 치중하거나 기타 솔로를 드러내는 스타일이 아니라 곡 전체 또는 그룹 전체의 사운드 완성도를 높히기 위한 기타 연주를 하였다. 솔로 기타리스트라기 보다는 밴드 기타리스트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부활은 앨범을 낼때마다 1~2곡 정도 연주곡을 넣었다. 이 연주곡을 통해 김태원의 기타 연주 스타일 변화도 느낄 수 있다.

* ( )는 부활 앨범
  • 인형의 부활 (1집)영상
  • 2월7일 (2집)
  • Jill's Theme (2집)영상
  • 8.1.1 (3집)
  • 별 (3집)영상
  • 그리움 그리는 그림 (3집)
  • 시간의 칠 (4집)
  • 이분쉼표 (4집)
  • 불의발견Ⅰ,Ⅱ, Ⅲ (5집)
  • 이상시선Ⅰ,Ⅱ, Ⅲ (6집)
  • Color (7집)
  • 눈먼 아이가 본 풍경 (8집)
  • 시계의 반대방향 (8집)
  • Promenade (9집)
  • Rain (9집)영상
  • Over The Rainbow (9집)
  • 4.1.9 코끼리 탈출하다[46] (10집)영상
  • Second 8.1.1 (10집)
  • 1971여름 (11집)영상
  • 부활 (13집)

이 외의 기타 연주곡으로는 영화 아이 러브 유 OST에 수록된 어제, 여운, 자전거와 영화 내머리속의 지우개 OST중 Children of August, 기타프로젝트 밴드 D.O.A의 Dead or Alive, 겨울오후 가 있다.

2014년 10월 KBS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출연하여 뜨거운 안녕에 레드 제플린Kashmir과 영화 쉘부르의 우산 테마곡인 I'll Wait For You를 편곡 연주하였고, 2015년 4월 불후의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출연하여 홀로아리랑에 애국가를, 12월에는 노민우와 함께 출연하여 조용필의 모나리자에 잉베이 맘스틴[47]의 Icarus' Dream Suite Opus4 #를 편곡 연주하였다. 2017년 4월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출연하여 사랑의 의지에 차이코프스키백조의 호수#를 편곡하여 연주하였다. 김태원은 음악 대가들이 남긴 곡으로 편곡하고 멜로디를 구성해보면서 보통 본인이 영향을 받은 음악으로 작가나 가수가 나오는건데 이들의 곡을 듣고 자란 세대로서 조건없는 선물을 받고 자랐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8. 음악인 가족

김서현2013년 1월 31일 데뷔했다. 싱글 타이틀은 'Into The Skies'로 가수 본인이 작사작곡한 곡. 다만 한국어 버전 가사는 작사가가 따로 있다. 딸인 김서현도 김태원의 성격을 꽤나 그대로 물려받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완벽주의와 독불장군 성향이다. 그런데 김태원은 그 완벽주의로 밴드 멤버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반면, 김서현은 완벽주의를 자기 자신의 음악 세계를 평가하는 잣대로 활용해서 스스로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같이 지내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버클리 음대에서 공부 중이라고 한다.

9. 저서

당신이 없는 완성작이란 없습니다. 우주라는 거대한 퍼즐에서 그대는 완결에 필요한 마지막 한 조각입니다. 전 우주에서 단 한 명의 누군가도 소외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보러가기

제목은 '우연에서 기적으로'.
 
약 1년에 걸친 집필을 거쳐 2011년 11월 21일에 발매된 에세이집으로 김태원이 생각날 때마다 녹음하고 친필 메모를 적어 원고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여타 에세이나 자서전과 달리 김태원의 의식 내면의 흐름과도 같은 문체와 구성이 특징이다. 김태원의 오랜 지인이 삽화를 담당하였고 아들인 우현 군의 그림이 표지에 실리기도 하였다. 수익금 전액은 장애인들을 돕는 서울 가양동 천주의성요한수도회[48]에 기부된다고 한다.

마약 범죄로 인한 수감과 정신과 치료, 밴드를 하면서의 갈등을 가감 없이 서술하였고 그렇기에 대가 없이 베푼 포용과 선의가 어느날 기적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들을 담담하게 풀어내어 단순한 연예인 자서전이 아닌 에세이집으로서 평단과 기자들의 반응 또한 호의적이다.

10. 방송

10.1. 예능 프로그램

10.2. 드라마

  • 2004년 《MBC》 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 - 본인 역(부활 멤버들과 카메오 출연)
  • 2010년 《KBS》 드라마 스페셜 연작 시리즈 락 ROCK 樂 - 본인 역(특별 출연)
  • 2010년 《MBC》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 - 뒷모습이 여자 같은 남자역(카메오 출연)[49]
  • 2012년 《tvN》 응답하라 1997 - 뒷태가 예쁜 남자 역(카메오 출연).
  • 2012년 《MBC》 시트콤 엄마가 뭐길래 - 고깃집 고객 역(카메오 출연)
  • 2012년 《영화》 원더풀 라디오 - 까페 주인 역(카메오 출연)
  • 2012년 《영화》 전국노래자랑 - 본인 역(부활 멤버들과 카메오 출연)
  • 2014년 인간극장
  • 2016년 《웹드라마》 마음의 소리 - 불후의 명곡 전설 역(카메오 출연)
  • 2017년 《영화》 청춘 합창단 - 또 하나의 꿈(특별 출연)

10.3. 라디오

10.3.1. 진행

파일:원더풀.jpg
라디오 DJ를 맡았다.

10.3.2. 게스트

  •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2003, 2005, 2007, 2009, 2011, 2012, 2015)
  • KBS 라디오 임백천의 뮤직쇼(2003)[50]
  • KBS 라디오 김구라의 가요광장(2005, 고정)
  • MBC 라디오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2004듣기, 2006)
  • SBS 라디오 김창열의 올드스쿨(2009, 2015, 2016)
  • KBS 라디오 소유진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2010)
  • KBS 라디오 홍진경의 두시(2011)
  • SBS 라디오 2시탈출 컬투쇼(2011)
  • 경인방송 iFM 채제민의 도깨비라디오 (2012)
  • MBC 라디오 허수경의 음악동네(2012)
  • MBC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 스윗 소로우입니다(2012)
  • KBS 라디오 최강희의 야간비행(2012)
  • SBS 라디오 최화정의 파워타임(2012, 2013, 2014, 2018)
  • 국민TV라디오 채제민 김민기의 디디쇼(2014, 2015)
  • 경인방송 iFM 박완규의 희희락락(2014)
  • KBS 제3라디오 이형걸의 희망나무(2015. 2/1, 2/8, 2/15, 2/22, 일일 디제이)
  • KBS 라디오 임백천의 라디오 7080(2015~2017, 고정)[51]
  • SBS 라디오 아름다운 이아침 김창완입니다(2016)
  • 정영진 최욱의 불금쇼 시즌2(2016)
  • KBS 라디오 매일그대와 유열입니다(2016)
  • KBS 라디오 특별기획 라디오90년 미래100년 빅콘서트(2017)
  • MBC 라디오 박준형 정경미의 2시만세(2017)
  • KBS 라디오 임백천의 라디오 7080(2018)
  • SBS 라디오 최화정의 파워다임(2019)

10.4. 광고

동서식품 핫초코 미떼 광고 (2009)

11. 드라마스페셜 연작시리즈 - 락 ROCK 樂

홈피 다시보기[52]

2010년 12월 11일 KBS2에서 그의 음악적 일대기를 담은 4부작 '드라마스페셜 연작시리즈 - 락 ROCK 樂'이 방영되었다. 기획 의도는 지금은 국민할매라 불리며 예능화된 김태원의 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인생을 통해 한 인간의 희노애락과 서울의 음악 역사를 재조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전 매니저인 백강기씨의 말로는 순서가 바뀐건 있어도 대부분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 하니 김태원에 대해 알고 싶다면 추천한다. 다만 다큐멘터리가 아닌 드라마이므로 일부 사실과 다른 각색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하자. 당장 '네버 엔딩 스토리'가 작곡되던 상황의 묘사도 실제와 차이가 있고[53], 레스폴 카피모델을 Gibson이라고 칭하는 고증오류도 있다. 80년대 오디션 참가자가 90년대에 나온 '쉬즈곤'을 부르다 목이 가는 연대오류도 있다. 나머지 묘사들도 주로 김태원의 시선에서 서술되다보니[54] 주관적 묘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니 괜히 김태원과 그 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드라마의 묘사를 근거로 삼는 오류는 피하도록 하자.

사실 이 드라마의 최대 왜곡(...)은 주인공 재연배우가 김태원을 너무 안 닮았다는 것이다. 김태원은 자기가 노민우와 닮았다면 데뷔 당시부터 외모로 음악계를 석권했을 거라고 농을 하기도 했다. 또 첫사랑이라 하더라도 과거의 연인에 대해 집중적으로 묘사되어 매우 미안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이야기가 드라마로 만들어진 건 무척이나 영광이고, 한국 락 음악에 대한 생생한 묘사에 감사하다는 뜻을 밝혔다.

11.1. 드라마 오프닝

어느날 갑자기 김태원이 예능 프로에 등장했다. 그것도 국민할매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으로. 시나위의 신대철, 백두산의 김도균과 함께 3대 기타리스트라 불리던 부활의 기타리스트 김태원. 하지만 그의 기타는 1등이 아니었고 몇몇의 심금을 울렸던 파란만장한 기타소리는 우스꽝스러운 별명 뒤로 잊혀지고 있었다.

11.2. 각 화 제목

  • 제1화 기타를 잡아라
  • 제2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 제3화 마지막 콘서트: 회상III
  • 제4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Never Ending Story

1화 제목을 제외하고는 김태원이 작곡한 노래 제목으로 되어있다.

11.3. 출연

12. 사건사고

1987년1991년 대마초로 두 차례 입건되었다.# 결국 그는 "아내를 위해 약을 끊어야겠다 결심하고 외진 섬으로 들어갔다"며 한 번 들어가면 밖으로 나오기 쉽지 않은 섬으로 들어가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약병을 돌멩이를 묶어서 과감히 바다로 던졌다. 근데 다시 건져 냈다고 한다.

바다에 던진 것은 반드시 약을 끊고 새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하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 코란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종교서적을 섭렵하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밝히며 "'결국 약병을 건지기 위해 수경까지 쓰고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MBC 드라마넷 미인도에서 밝혔다.# 참고로, 병역면제 사유도 저 전과 때문이다.

2008년 라디오스타에 출연했을 당시 본인의 금단 현상을 언급하던 중 "항간에는 (대마초는) 중독성이 없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는 윤종신의 질문에, "문제가 뭐냐면 그걸 하면 그 위를 가게 되니까[56] 하얀색 그거 그걸로 가는 거에요"라고 말해 대마초를 넘어 마약으로 가게 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혹시나 약하는 후배가 있다면 작곡시엔 되게 아름다운 노래가 쓰여지는 것 같을텐데 다음 날 맨정신에 들어보면 완성도가 처참하다고 작곡에 도움 안되니 끊으라고 조언했다.

짧게 언급하고 넘어갔지만, 어쨌든 금단증상을 이기기 위해 심한 폭식을 했다고 한다. 떠먹는 아이스크림 '패밀리'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려서 액체로 만든 다음 꿀꺽꿀꺽 마신다든지 쥐포 수십 마리를 사서 기름에 튀긴 후 TV보면서 2시간 반 동안 다 먹었다고.[57] 덕분에 몸무게가 무려 99kg까지 쪘는데, 이후 다이어트로 다시 살을 뺐다고 한다.

2023년 본인 유튜브에서 머리를 기르는 이유를 밝혔다. 영상. 라스같은 예능에선 멋있어보이고 나이가 들면서 머리숱도 없어져 그거 가릴려고 길렀다고 했는데[58], 유튜브에선 과거 약 혐의로 구속된 이후 다시 마약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대마나 마약을 하면 머리카락 같은 체모에 그 증거가 남기 때문.

13. 여담

  • 언변이 좋아 예능에서도 활약하는 캐릭터지만, 예능에서 김태원이 하는 오만가지 썰들의 상당수가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닌 이라는 점은 유념하자. 워낙 어렸을 때부터 구라를 잘 지어내는게 습관화 돼서, 본인 말에 의하면 '김억삼'이라는 별명도 있었다고 한다. 태원이 마디 말을 하면 그 중 3가지만 진실'이라는 뜻의 줄임말이라고. 심지어 보지도 않은 영화도 제목과 포스터만 보고 친구들에게 자기가 그 영화를 본 것처럼 즉흥적으로 스토리를 지어내서 신나게 얘기해 줬는데, 친구들이 다들 재밌어했다고 하니 이야기꾼 재주는 타고난 모양. 이런 스토리 짓기는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하다는데, 그의 친구나 같이 작업한 음악인, 남자의 자격 팀 등 동료 연예인들도 모두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김태원의 특징이다. 남자의 자격에서 이경규가 김태원의 얘기는 절대 믿지 말라고 했을 정도. 김태원 본인도 자신의 얘기에 과장이나 허구가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 무릎팍도사에서 둘째 아들에게[61] 자폐증이 있다고 고백했다. 아내와 , 아들이 필리핀으로 이주하여 살고 있으며 자신이 기러기 아빠 신세인 것도, 아들의 자폐증에 대한 주변의 시선에 많은 상처를 받는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 2020년대 들어 간성혼수가 올 정도로 간 건강이 나빠져 을 자제하고 있다. 박완규가 말하길 하루는 회사에서 공연 잘하라고 힘내라는 의미로 소주 몇 박스를 보내줬는데 군침을 흘리면서 쳐다만 봤다고 한다. 한창 마실 때는 안주도 별거 없이 소주만 무려 아홉병을 마셨다고 하니 건강에 좋을리가 없다. 아이러니한건 정작 어릴 때 약하던 시절엔 술을 거의 마시지 못했는데, 약을 끊고 1993년 김재기가 사망한 이후 그 충격에 술을 마시기 시작해 근 20년을 폭주했다고 한다. 약보다 술 끊기가 더 어려웠다고.
  • 예능에 출연하게 되면서 뮤지션 김태원을 잘 알지 못하는 초중딩들 사이에선 일명 '미친' 할매로 통하기도 했다. 때문에 뮤지션 김태원을 좋아하는 팬들은 좀 속상해하기도 했으나, 예능에 출연함으로 김태원 자신은 물론 부활이 젊은 층에서도 꽤나 유명해졌으니 김태원 본인은 만족한다고 한다.[62] 그래도 예능에서의 인지도 향상과 더불어 음악적 성과도 인정받으니 이후 시청률 20%를 돌파한 위대한 탄생 시즌 1에선 국민멘토로도 활약하며 '대학생이 멘토로 삼고 싶은 인물 1위'에 오르기도 했다.
  • 김구라와의 친분으로 유명하다. 음악 지식에 상당히 해박한 김구라와 말이 통해 그가 무명 시절일 때부터 만나서 술도 마시고 팝 이야기를 하며 친해졌다고 하는데, 좀 더 정확하겐 아주 무명이던 시기는 아니고 지상파에서 활약하기 직전이었다. 케이블에서 구봉숙이 MC를 봤던 '쏜데이서울' 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왔던 김태원의 모습을 보면, 그때 김구라를 처음 본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어쨌든 이후 김태원이 예능에 막 진출할 무렵 2008년 라디오 스타에 게스트로 꽂아준 것도 김구라였다고. 그래서인지 이경규가 본인이 방송계에 데뷔시켜준 강호동 앞에만 서면 파워업하는 것처럼, 김구라도 김태원 이야기만 나오면 기세등등해진 모습을 보인다. 김태원이 김구라의 팝지식을 인정해서 안티들의 김구라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댄다는 평을 벗은 점도 있으므로 상호 보완적이기도.
  • 김태원 본인은 명랑 히어로에서, 김구라가 당시 인터넷 방송 황봉알/김구라의 시사대담에서 "김태원은 사랑 노래밖에 안하는 가수다" 라는 말을 했는데 이걸 김태원의 친형이 들었고 김태원의 친형이 직접 만나서 "내 동생이 사랑 노래만 하는지 아닌지 이야기 한 번 해보라" 라고 주선을 해줘서 처음 만나봤다고 주장했으나, 전술한 쏜데이 서울 김태원편을 보면 전에 만나봤다고 볼 수 없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또 김억삼 본능으로 뻥을 친 것인지, 쏜데이 서울에서 모르는 척 한 것인지는 본인만 알 것이다.
  • 예능에서 체력이 바닥이라고 자주 어필하는 국민할매이나, 부활 정규 콘서트는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으로 하루에 2번씩 개최하는 경우가 흔하며 금, 토, 일은 공연 스케줄로 꽉 차있는 경우가 흔하다. 이 많은 공연을 전부 라이브로 소화해낸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어떤 의미에서 강철 체력이라 하겠다. 하지만 라디오스타 크리스마스 특집 참여 당시에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 복수가 7kg씩 차서 죽을 뻔했을 정도로 건강 문제가 심각했으며 대마초 후유증도 심각했던 편이었다.[63]
  • 예능프로에서 뭐든지 재밌게 얘기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떠벌리는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인간관계적인 갈등과 같은 민감한 사안은 어떻게든 상대방에게 상처나 부담을 덜 주기 위해 되도록 언급을 회피하거나 조심스럽게 말하기도 한다.[64][65]
  • 표절에 대해서 결벽증 수준으로 싫어한다. 곡 작업이 시작되면 그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어떠한 음악이 아닌 음도 들리지 않게 스스로를 가둔다. 부활 초기에는 아예 사람이 없는 외딴 지역이나 무인도에 가서 작곡을 했다고 하며,[66] 엘리베이터에 층 도착 소리도 자신의 음악에 섞이는게 싫다는 이유로 엘리베이터도 안탄다고 한다. 취미로 낚시를 할 때도 음의 틀을 잡기 위해서 그냥 낚싯대만 하루종일 잡으면서 앉아 있는다고 한다.[67] 한편 이 이야기가 잘못 전파돼서 김태원은 자신이 작곡한 노래 외에는 아예 듣질 않는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으나, 의외로 아이돌 노래나 최신 가요들도 꾸준히 듣는다. 그래서 방송에 다른 가수와 출연하면 얼굴은 못 알아보지만 최근에 나온 노래를 의외로 알아듣는 경우가 꽤 있다.
  • 학창 시절 서대문의 통이었다고 한다. 예능 특성상 또 김억삼 본능이 발동한 것일 수도 있지만(...) 라디오스타 방영분을 보면 동갑내기 김국진이 먼저 증언하는 걸 보면 사실인 듯도 하다. 그 당시 별명은 서대문의 고릴라. 놀러와에서 본인이 밝히기론 초등학교 4학년 당시에도 싸움을 제법 해서, 6학년이던 작은 형이 자기 괴롭히는 애 있다고 김태원 끌고 가서 6학년 애랑 싸웠을 정도였다고 한다.
  • 2014년 3월 31일부터 4월 4일까지의 인간극장에 출연했다. 자폐아 아들과의 이야기를 다뤘다.
  • 2015년 8월 25일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했는데, 치아 문제 때문에 5~6년 전부터 제대로 된 음식은 못 먹는다고 한다. 7년 전까지만 해도 쇠고기돼지고기를 좋아했었으나[68]어금니가 하나씩 빠지기 시작했던 탓에 돈까스로 대체하고, 갈수록 더 안 좋아지는 치아 상태로 인해 돈까스마저 끊어버리고 짜장면으로 대체, 거기서 더 안 좋아져 짜장면까지 못 먹었다고 한다.[69] 그 후로는 음식을 거의 앞니로밖에 씹지 못하게 되었다고. 이 날 셰프들은 치아가 좋지 않더라도 김태원이 즐길 수 있도록 신경 쓴 요리를 내놓았다.
  •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밝혀진 바로는 잇몸영 좋지 않다고 한다. 당시에는 어금니가 빠져서 앞니로만 씹는다고 하고, 부실한 잇몸 때문에 임플란트도 못하고 있다고... 고기가 너무 먹고 싶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된 증상의 후유증. 2020년부터는 장기간에 걸친 치조골 이식술을 받으면서 임플란트 식립 위치를 확보하여 임플란트를 식립하고 있다.
  • 2017년 2월부터 대중문화를 이끄는 힘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독자적으로 참신한 공연을 기획/제안하는 새로운 시도, 컬처 규레이션-(현대카드 UNDERSTAGE) 김태원Curated를 진행하고 있다. 한 시대를 함께 해 온 문화의 동반자이자 음악을 듣는 이로, 노래를 하는 이로 어우러질 수 있었던 그 시간들에 매 순간 감동한다. 음악이라는 위대한 선물을 통해 같은 시대의 감성과 추억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앞으로도 영원히'라는 공연 소개글이 올라와 있다.

  •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이 문서를 읽는 컨텐츠가 업로드되었다. 살펴본 부분은 프로필부터 3번 문단까지. 영상에서 당시 문서의 잘못 서술되어 있었던 부분을 언급하기도 했다.[70] PC 영상 화질처리 오류로 인해 재업로드되었다. 사실 이 문서에 있는 것들 대부분 본인이 직접 방송에서 한 말을 적은 것에 불과하지만 예능이라 과장한 것도 있으니 매체에 너무 속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 신해철이 사망하기 전에 그와 앨범을 구상했다는 말을 유튜브에서 한 적이 있다. 앨범에 관해 의논하기 위해 사이렌 집무실로 갔는데 우주 얘기만 하다 나왔다고.
  • 국민가수 심사위원으로 참가해 손진욱에게 미래에서 만나고 싶다고 하였다.
  • 노래를 만들 때 작사를 먼저 한다고 한다. 노래 한곡을 만드는 것은 산을 깎아 연필 한개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고 하면서 창작의 고통을 비유적으로 이야기 하기도 하였다. 본인은 멜로디 짜는 건 오히려 수월한 편인데, 작사가 그렇게 힘들다고 한다.
  • 2023년 짠당포에 출연해, 작사/작곡한 부활 전체 곡 중 'Never Ending Story'가 저작권료 top이라고 말했다. 한달에 1억 원 이상이 들어온 적도 있었다고 한다.#


[1] 은평구 증산동 출생으로 알려졌으나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 된 영상을 통해 용산구 한강로2가 출생이라고 밝혔다, 다만 초, 중, 고등학교를 모두 은평구 쪽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 용산구에서 태어나 은평구로 이사를 간 후 학창 시절을 은평구에서 보낸 것으로 보인다.[2] 오지의 마법사 12화에서 무역학과를 나와서 음악으로 무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3] 유튜브에서 나무위키 문서를 읽으며 언급했으며 # 남자의 자격에서도 원래 177cm였는데, 허리가 굽어서 2cm가 줄었다고 한다.[4] 남자의 자격 66회 출연[5] 1987년에 마약으로 구치소에 수감되면서 자연스럽게 면제 처리 되었다.[6] 좀 더 정확하겐 대마초였다. 대마초는 중독성이 그만큼 심하진 않을텐데라는 질문에 김태원은 대마초 그 자체보다도 더 강한 마약을 추구하려는 기질 때문에 고생했다고 한다.[7] 김종서가 부활 초대보컬을 하다 탈퇴한 것도 좀 더 정통 헤비메탈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나위, 백두산 멤버들에게 부활은 밴드 아니란 식으로 질타를 받았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으나, 김태원 본인은 직접 들은 적은 없다고 유튜브 영상에서 밝힌 바 있다. 다만 2009년 예능 놀러와에선 질타를 받았다고 말했었다. 세간의 인식을 말했던 것일지도. 헤비메탈은 몰라도 록 밴드는 정의상으로도 맞긴 하다.[8] 고등학생 때 처음 작사, 작곡하기 시작한 노래로 자신의 첫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했다.[9] 다만 김태원이 말한 것과 달리 폴은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김태원도 나중에 내가 한 말이라고 하면 무게감이 떨어질거 아니냐며 예능용으로 쳤던 드립이라고 인정했다. 역시 김억삼[10] 그나마 술은 2020년대 들어 끊었다.[11] 신해철이 '놀러와'에서 밝힌 것처럼 김태원의 카피 레파토리 No.1은 개리 무어의 'Parisienne Walkways'. 그 외에 김종서와 공연할 때마다 하는 것처럼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 'Rock n' Roll' 등을 많이 했다.[12] 두 사람 다 겪어본 부활 드러머 채제민에 의하면 서로 굳이 연락은 하지 않지만, 마주친 자리에선 잘 지낼 수 있는 사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서 지금은 만나지 않으면 싸우지 않는 걸 깨달은 사이. 김태원이 라디오스타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부활 초창기엔 둘이 사귀냐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딱 붙어 다녔다고 한다. 다만 '지금도 이승철 사랑한다'는 말에 mc가 '전화 연결 해볼까요'라고 묻자 'No'라고 대답한다.(...)[13] 현재는 당시 10살 짜리 기타리스트 구독자와 함께 찍은 영상이 조회수 1위이다.[14] 이성욱은 이후 통신쪽 회사원으로 취직해 능력이 있었는지 억대에 가까운 연봉을 받다가, 훗날 그의 노래를 들은 김태원의 "너는 노래만 해라."라는 말에 2011년 다시 가수로 복귀했다. 이후 수제맥주집을 개업해 거기서 종종 라이브 콘서트도 한다.[15] 행사비 120만 원을 4등분했다. 아이들 한달 분유값조차 안 됐다고 한다. 그 때문에 부활을 탈퇴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조언을 해주고, 곡을 주는 등 괜찮은 관계를 유지 했으며 2019년에는 다시 부활의 보컬이 되었다.[16] 박완규의 말에 따르면 Lonely Night의 "이런 시간엔 더 그리워" 한 문장을 녹음하는데 2주가 걸렸다고 한다. 더군다나 뭐가 맘에 안 드는지도 명확하게 말하지 않으며 "새벽에 들려오는 파도소리처럼 해보라"는 등 시적인 표현을 하며 그 느낌을 살리라는 방식이고, 본인이 만족할 때까진 넘어가지 않아서 보컬 입장에선 미칠 것 같다고 했다. 밴드계의 박진영 보컬들이 녹음 작업만 거치면 살이 쭉쭉 빠진다고 한다. 농담이 아니고, 10키로에 가깝게 살이 빠졌다고 한다. 다만 7집이 망한 이후로는 꽤 느슨해지고, 정동하가 들어온 후로는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이는 전술했듯이 남격에서도 본인이 언급했다.[17] 그 당시 짜장면 1그릇 가격. 그 돈으로 탑골공원에 갔다고 한다. 이유는 말하고 싶어서. 점심은 무료 급식.[18] 다만 김태원 본인은 한동안 2집이 실패한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활동을 채 하기도 전에 김태원이 대마초 건으로 구속되어 김태원 본인은 판매 실적을 접하지 못했기 때문. 당시에는 지금처럼 음반 판매 집계를 쉽게 알아볼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출소 후에도 실패한 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19] 마찬가지로 이승철도 힐링캠프에서 당시 광고비를 받지 못 했다는 것과 행사 개런티가 회였다고 말했던 점으로 보아 매니저, 기획사 쪽과 문제가 있었던 듯 하다. 가요계가 그야말로 주먹구구 막장이던 시절이라, 1990년대 중반까지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20] 더운 여름에는 어울리지 않는 곡이라는 소속사의 부정적인 의견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1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거리에만 걸어다녀도 사랑할수록 노래가 계속 나오고, 이 때의 수입으로 그랜저를 캐시로 샀다고 밝혔다. '사랑할수록' 뮤직비디오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뉴그랜저가 바로 김태원이 구입한 그 그랜저다.[21] 대표적으로 정동하와 함께한 10~13집.[22] 'Lonely night'도 원래 제목이 'Rainy night'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소속사에서 비가 올 때 듣는 노래라는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어서 제목을 바꿨다고 김태원이 비틀즈코드에서 언급했다. 그리고 'Lonely night' 곡 자체가 비 오는 밤 낚시터에서 김태원이 음계를 잡고 만든 곡이다.[23] 심리학적으로 볼 때 마음의 상처가 깊은 사람이 비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대체로 심신을 안정시키고 치유하는 효과가 있는데, 이는 보라색과 상응되는 부분이다. 13집이 보라색이기도 했다.[24] 2011년 '비밀'이 크게 히트해서 잊혔지만, 2007년에 박완규는 부활을 세션으로 하여 김태원 작곡의 '사랑해서 사랑해서'와 '사랑해'라는 곡으로 싱글을 낸 적이 있다.[25] 그래서인지 김태원은 Les Paul이나 SG처럼 무거운 중량을 지닌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26] BOSS(Roland기타 이펙터 브랜드)의 GT-6는 멀티 이펙터다. 이펙터 여러 개 들고 다니기 귀찮은 사람이나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딱 어울리는 기계다.[27] 잉베이 말름스틴이 불러온 속주 광풍 때문에 1980년대 내내 한국의 록 음악 팬들 사이에선 무조건 빨리 치는 놈이 최고다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이건 영미권도 다를 바 없었는데 이게 사그라든 건 너바나를 선두로 얼터너티브가 등장하면서부터다.[28] 김태원의 유튜브 채널에서도 김태원이 직접적은 아니지만 잉베이 맘스틴이 등장한 후 많은 기타리스트들이 망가졌다고 간접적으로 비판한 적이 있다.[29] # 전설적인 베이시스트 이태윤이 회고하는 김태원. 참고로 둘은 부활의 전신인 '디 엔드'를 함께 결성한 적이 있으며 절친한 친구 사이다. 그리고 이태윤은 남자의 자격에 출연해 김태원에게 '기타 연습좀 하세요'라고 일침을 날린 적이 있다.(...)[30] 김태원의 나이는 65년생으로 다른 두 기타리스트와 큰 차이가 없지만 약물과 과음의 후유증으로 간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가 구사일생한 적도 있고 치아의 절반가량이 빠지고 잇몸도 약해져서 임플란트도 불가능한 상태이며 면역력이 약해 폐혈증에 연속해서 시달리는 바람에 중환자실을 수시로 들락날락 했다. 이쯤되면 사망 안한 것만으로도 나름 생존왕이다. 그리하여 동년배와 비교해 건강상태가 몹시 나쁘다. 원숙한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나이임을 생각해 보면 아쉬운 부분.[31] 이런 측면에서 대중들한테는 외면받았지만, 당대의 뮤지션들에게 충격을 준 게 유앤미블루이다.[32] 백두산유현상은 김태원의 톤을 '안개가 깔리는 것 같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33] 신대철, 김도균이 각자의 장점을 간직, 발전시킨 반면, 당시 3대로 같이 꼽히던 김태원은 그냥 손에 익은 스케일을 대충 마구 후리면서 디스토션을 잔뜩 걸어 뭉개는, 그야말로 80년대 기타 좀 친다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수준에서 별로 발전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2000년 이전에는 새로운 연주 주법, 리듬, 스케일 등 기타연주에 많은 시도와 발전이 있었지만 기타연주가 어느정도 정립된 현시대에는 기본기가 많이 부족한 기타리스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평했다.[34] 팬들이나 김태원 본인은 기분 나빠할 만한 증언인 것은 맞으나, 김태원 본인의 증언에서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데 자주 하는 말이 각자의 색깔이 있기 때문에 변신하는 것을 기대하기보다 그 색깔을 계속 듣기를 바래야지 다른 걸 기대하면 다른 곳에 가면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바꿔 보면 김태원이 아름다운 멜로디와 전체적인 짜임새를 추구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세세한 기타 연주에서 80년대 연주력과 연주 스타일에서 그닥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상한 건 아니다. 실제로 기타 톤이니 해 봐야 한 줌의 매니아들이나 반응이 오는 거고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는 건 아니니...상술된 90년대 기타 톤의 귀재이자 혁신가들이었던 유앤미블루도 사실 대중들은 아무도 모른다.[35] 어쨌거나 기타도 엄청 연습하고 연구해야 실력이 늘고 사운드에 혁신이 있는 건데 김태원의 건강, 인생사, 예능활동, 그리고 프로듀서나 작고가 밴드 리더로서의 활동까지 고려해 보면 어렸을 때처럼 기타 연습에 매진하지 않았다고 해서 뭐 이상할 건 없다. 남자의 자격에서 일침을 넣은 이태윤이야 연주자에 가까운 사람이고.[36] 면제 사유는 현재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대마초 흡연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현행법상 1년 6개월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의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전시근로역(사회복무요원 등 대체 복무나 예비역 없이 바로 민방위로 들어가며 신체등급 5급 판정자가 보통 여기 해당된다.)으로 빠진다. 당시엔 6개월 이상 복역하면 대개 면제였다. 김태원은 과거 방송에서 실형을 산 적이 있다고 밝힌 적이 있지만 그 기간은 알려져 있지 않다.[37] TV 장면에는 안 나왔으나 이경규는 제39보병사단, 김국진은 제11기계화보병사단, 이정진은 광진구보건소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38] 뒤에 따로찍어서 붙인 "이런 덴 여자친구랑 왔으면 좋을 텐데 말야"가 덧붙는 버전이 있는데, 그것까지가 대본에 있던 대사였다고 한다.[39] 이후 이윤석이 라디오 스타에서 말하길, "나는 산 송장이었는데, 진짜 송장이 와버리니까..."[40] 우스개소리로 '나 원래 1시간에 100만원인데~'하면서 '요즘 급격히 순수성을 잃어가는 락커'라는 자막이 나왔다.[41] 정확히는 위 이형성 조직에서 위암 1기로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대부분의 위암 환자들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점인 1~2기에 발견된 경우이며, 상당히 진행된 3~4기 환자도 결코 적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아직 위암이 아닌 경우인데 이 때에 발견되어 치료를 받은 것이다.[42] 식도와 위가 만나는 지점에 조그맣게 뿌리박혀 있었다. 내시경으로 봐도 발견하기 힘든 위치라 수술 집도하신 의사 선생님도 그걸 찾아냈다며 감탄했을 정도.[43] 여담으로 당시 제작진들은 김태원이 정말로 암 판정을 받게 되자 충격에 빠졌었다고 하며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하나 고민하다 결국 큰형님인 이경규에게 따로 검진 결과를 전달 후 도움을 요청, 이경규와 제작진이 김태원과 따로 면담을 가져 암 판정 사실을 전했다고 한다.[44] 후일 밝혀진 당시 김국진이 했던 말이 압권이다. "병으로 죽을래? 맞아서 죽을래?"[45] 이 할머니 밈에 대해서 딸이 '왜 아빠보고 할머니라고하냐고'하며 상처받는걸 보고 속이 타들어간적도 있다고 한다.[46] 2005년 서울어린이대공원 코끼리 탈출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엔니오 모리코네의 작품인 '가브리엘 오보에' 일부를 재편곡하고 곡의 후반부는 창작곡으로 만들었다.[47] 한때는 잉베이 맘스틴 같은 기타연주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48] 광주의 유명병원인 요한병원이 이 수도회 소속이다.[49] 당시 동네에 치한이 돌아다녀 신세경이 불안해하는 에피소드에서 출연, 여잔 줄 알고 접근한 치한을 역관광 보낸다.[50] 억삼이 라는 별명을 이때부터 사용했다[51] 매주 토요일 김태원의 네버엔딩스토리 코너에 참여.[52] 다만 해당 영상 포함 전후 몇개월치 분량은 무슨 이유인지 올라와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2024년 기준 유튜브에 베트남인으로 추정되는 계정에 베트남 자막이 달린 영상이 올라와있긴 한데, 언제까지 유지될진 미지수다.[53] 다만 이땐 김태원이 자기 둘째 아들이 자폐아라는 사정을 밝히기 전이었다. 그래서 평범한 아이가 등장했다.[54] 다만 드라마 전체적으론 주변인들을 통해 나름 중립적인 시선을 취하긴 한다.[55] 여담으로 락락락 방송 5년 후인 2015년 12월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팬미팅특집에서 김태원의 팬으로 출연해서 모나리자를 같이 불렀다. 노민우는 이전 기획사와의 계약문제로 인해 10년만에 지상파 음악방송에 출연할 수 있었는데, 김태원과 함께 출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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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이후 본인 유튜브에서 언급하길, 대마초만 피면 기분이 다운되고 졸음이 오기 때문에 이걸 업 시켜서 미들로 유지하기 위해(반대로 가루먀악만 한 사람도 기분이 너무 업되면 일상생활이 안되기 때문에 대마초를 섞어쓰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더 쎈 가루 마약을 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보통 대마초 피는 사람들의 경우 주변 모임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데는 자연히 마약류도 접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구입경로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보니 더 그런 유혹이 강해진다고. 이런거 보면 김태원도 말의 행간엔 뭔가 2개를 섞어쓴듯한 뉘앙스도 있는듯도 한데, 일단 걸린건 대마초라 그것만 언급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57] 참고로 아이스크림을 녹인 후 물처럼 마시는 건 절대 따라하지 않는 게 좋다. 아이스크림은 일반적인 디저트에 비해 설탕이 많이 들어간다. 음식이 차가워지면 맛을 느끼는 게 어렵기 때문에 설탕이 훨씬 많이 들어가는데 그것을 녹인 채로 물처럼 마시게 된다면 혈당이 엄청나게 높아지며 건강에 매우 해롭다.[58] 사실 고전 락커들이 머리 기르는건 시대 규범에 대한 저항 정신같은 철학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걸 후배 락커들이 따라한 것.[59] 물론, 여기는 너무 심각할 정도로 동안이기 때문에, 더욱 비교가 되는 게 현실이다. 진짜 극과 극의 만남이라고 볼 수 있다.[60] 정확하게는 김국진은 빠른 65년생이지만 학교를 빨리 들어가지 않고 보통의 65년생과 같은 친구로 다녔으며 생일도 입춘 이후 출생이므로 뱀띠다. 근데 사실 김종서도 빠른 나이고, 김국진과는 달리 일반적인 형태 일찍 학교를 다녔다.[61] 첫째는 딸.[62] 라디오스타에 나온 박완규 말에 의하면, 한번은 예능에 언제까지 나갈거냐는 박완규의 투정에 김태원이 "완규야. 나는 내 앨범들이 자식같애. 근데 이 자식들이 빛도 한번 제대로 못보고 사장되는걸 난 참을 수가 없어."라고 발언한 적도 있다고 한다.[63] 사실 대마초로는 저런 후유증이 생기지 않는다. 방송에 나와서 했던 금단 증상에 대한 말들, 아래의 심각한 치아 문제들은 2016년 아내가 쓴 책 '모든 순간이 이유가 있었으니'에서 밝히기를 80년대에는 약국에 가면 감기약을 몇 십개씩 포장해서 병으로 팔았는데 감기약 성분 중에 중독을 일으키는 성분이 있었다고 한다. ('러미라' 라는 상품명으로 유명한 '덱스트로메토르판' 이다. 약리적으로는 기침을 유발하는 중추신경계 쪽에 작용하여 기침을 멈추게 하는 약이다. 허나 뒤늦게 과량 복용 시 정신적인 의존성이 나타나는 것이 발견되었고 2003년 10월부터 향정의약품으로 지정되어 코푸시럽 정도 빼면 시장에서는 거의 사라졌다.) 심지어 이 성분이 함유된 약은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향정신성의약품 문서에서도 볼 수 있으며 그것을 한꺼번에 복용하곤 했다고 한다.[64] 반대로 일일이 바로잡기 부담스러운 경우 상대방들이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신대철의 경우 김태원과 학창시절 라이벌 구도와 관련한 추억담이 나오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편인데, 실제로는 김태원을 그렇게까지 크게 인식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 신대철의 라이벌이라는 소리를 듣던 기타리스트는 이오공감으로 유명했던 작곡가 오태호였다. 락 인 코리아의 속주파 기타리스트에서 현재 작곡가로 전향. 그리고 이건 다른 역대 보컬이나 역대 멤버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수 있으므로, 관련한 정황 묘사들은 좋은 소리건 안 좋은 소리건 걸러서 들어야 한다는 걸 감안하자.[65] 이 모습을 잘 보여주는게 물어보살 출연 당시 '~을 끊어 본 적 있다.'에 대해 얘기하다 이수근이 '인연을 끊어본적 있다' 고 얘기하며 옆에 있는 서장훈을 디스하자 슬픈얘기는 하지 말자며 넘어간 점이다.[66] 다만 대마초 흡연 때문에 사람이 없는 곳에서 작곡 작업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긴 하다.[67] 비오는날 우산을 홀로 뒤집어 쓰고, 이렇게 영감을 얻어서 탄생한 노래가 부활의 5집, Lonely Night.[68] 98년 활동당시에는 100kg까지 살이 찐적도 있다. 지금의 초췌하고 깡마른 체형과 비교하면 정말 대조적이다.[69] 돈까스는 정말 엄청나게 좋아했다고 한다. 매일 1끼 이상은 돈까스를 먹었으며 멤버들을 데리고 외식을 가도 늘 메뉴가 돈까스라 같이 외식하러 가는 걸 싫어할 정도였다고 한다. 치아 상태가 안좋아진 지금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돈까스를 먹으며, 좀 먹기 쉬운 햄버그 스테이크라도 먹는다고 한다.이외에도 곱창구이를 좋아해서 좋아하는 보컬들과 술을 마실땐 늘 안주로 곱창을 먹었다고 한다.[70] 수박 겉 핥기 식 서술이라고 한다. 특히 방송에서의 발언은 재미를 위해 다소 과장된 것도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