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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한국어 | 고대 교토의 역사 기념물 |
영어 | Historic Monuments of Ancient Kyoto (Kyoto, Uji and Otsu Cities) | |
일본어 | 古都京都の文化財 (京都市、宇治市、大津市) | |
프랑스어 | Monuments historiques de l'ancienne Kyoto (villes de Kyoto, Uji et Otsu) | |
국가·위치 | 일본 교토부 교토시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94년 | |
등재기준 | (ii)[1], (iv)[2] | |
지정번호 | 688 | |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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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키요미즈데라 입구 |
[ruby(清, ruby=きよ)][ruby(水, ruby=みず)][ruby(寺, ruby=でら)] / Kiyomizu-dera / 청수사
일본 교토부 교토시 히가시야마구에 위치한 교토의 대표 관광지로 꼽히는 사찰이며, 일본 북법상종(北法相宗)의 대본산이다.
'키요미즈데라'는 '청수사([ruby(清, ruby=きよ)][ruby(水, ruby=みず)][ruby(寺, ruby=でら)])', 말 그대로 '물이 맑은 절'이라는 뜻이다.
2. 역사
나라 시대인 778년에 최초의 정이대장군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坂上田村麻呂)[3]에 의해 창건되었다. 하루는 그가 아이를 임신한 아내를 위해 보양식을 만들고자 사슴을 사냥하다가 산에서 엔친(延鎮)이라는 스님을 만났다. 엔친은 앞서 이 산에 머무르던 교에이(行叡)에 이어 천수관음상을 모시고 수행 중이었다. 다무라마로는 엔친을 만난 다음 살생을 뉘우치고 관음보살에게 귀의해 자기 저택을 내놓았다. 후에 다무라마로는 사찰을 크게 중창해 키요미즈데라를 관음신앙의 중심지로 만들었다.절은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과 재건을 반복했다. 특히 무로마치 막부 말기 오닌의 난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본당을 비롯한 현재의 건물 대부분은 1633년 도쿠가와 막부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돈을 시주하여 재건된 것이다. 절의 이름은 주변의 언덕에서 단지 내로 흐르는 오토와 폭포에서 유래했다.
부속 사찰인 조주인(成就院)[4]의 주지였던 겟쇼는 에도 막부 말기 존왕양이파로 암암리에 활동하다가 탄압을 피해 가고시마로 피신했다. 이후 그는 막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함께 행동하던 사이고 다카모리와 함께 바다에 투신해 죽었는데, 어쩐지 사이고는 살아났다.
2008년부터 이어진 헤이세이 대보수 때문에 한동안 본당 건물의 히와다부키를 전면 교체하는 보수공사를 진행하였고, 이를 위해 본당 전체를 목조 비계로 감싸버려서 외부 모습을 볼 수 없었다. 2020년 2월에 철골구조물이 제거되었으며, 현재는 사진속에 보이는 모습을 그대로 감상할 수 있다.
3. 사찰 구성
본당의 지붕이 독특한데, 히와다부키라고 해서 노송나무 껍질을 아주 얇게 만들어 촘촘하게 붙인 것이다. 기와에 비해서 내구성은 좋지 않지만, 재료 조달이 쉽고, 독특한 질감과 곡선 표현에 유리해서 일본에서는 많이 쓰이는 방법이다. 또한 본당의 건설에는 못이 사용되지 않았다라는 것이 강조되는데, 동아시아 건축에서는 일반적인 모습이다. 서구 건축의 입장에서는 못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 신기하다고 한다. [5]키요미즈데라의 상징인 무대(舞台).
키요미즈데라 본당에서 산을 바라보는 테라스는 부타이(무대;舞台)라고 하는데, 원래는 본당에 있는 십일면천수천안 관세음보살에게 바치는 춤이나 공연을 하는 자리이다. 2017년부터 2020년 보수공사 종료까지는 접근할 수 없었지만, 현재는 공사가 모두 끝나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키요미즈데라 내 최고 인기 장소. 매년 12월 12일 한자의 날에 일본의 올해의 한자를 발표하는 곳이기도 하다.
사찰 내에는 지슈 신사가 있는데, 일본에서는 신불습합이 널리 이루어졌으므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여기에서는 스사노오의 자손인 오쿠니누시(大国主)를 인연을 맺어주는 신이라 하며 섬긴다. 신사 안에는 돌 두 개가 있는데, 한 쪽에서 눈을 감고 걸어가서 다른 쪽에 닿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토와 폭포에서 흘러내려오는 맑은 물[6]이 3갈래로 갈라져 위에서 아래로 나오는 곳이 있다. 3갈래 물은 각각 건강, 사랑, 학문을 상징하는데, 그 물을 마시면 해당하는 상징이 좋아진다고 한다. 물은 2개까지 마셔야 이루어지고 3개를 다 마시면 오히려 운수가 나빠진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이 건강, 사랑, 학문에 대해선 투어 가이드들이 흥미를 위해 꾸며냈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키요미즈데라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오토와 폭포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는데[7]# 건강, 사랑, 학문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인들이 상서롭고 길한 물로 여겼음은 분명하지만...
2019년 8월 기준으로 본당 수리중이다.
2020년 10월 기준 영상에서도 본당 수리 공사가 진행 중인 모습이 확인된다. 그리고 12월에 공사가 완료되었다.#
4. 기타
- 무대(舞台) 난간에서 뛰어내린 후 살아남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참고로 고문서를 가지고 통계를 내 본 결과 생존확률은 80% 정도라고 한다.[8][9] 하지만 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크게 다쳐 평생 장애를 가진 채 살 수도 있다. 이 풍습에서 유래되어 '키요미즈데라의 무대에서 뛰어내리다(清水の舞台から飛び降りる)'라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죽을 각오를 한다는 뜻으로 한국식 표현으로는 '배수진을 치다'와 비슷한 느낌이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에서 이 무대가 나왔을 때, 등장인물들이 여기서 뛰어내리는지 여부로 작품의 현실성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현실적인 내용이라면 구경만 하고 끝나지만, 개그만화나 능력자 배틀물 등에서는 대부분 뛰어내린다.
- 키요미즈데라가 산 중턱에 있어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절로 가는 길에는 상점가가 늘어섰다. 일본 전통 상점가란 느낌을 잘 살렸다.[10] 상점가는 두 곳으로 니넨자카(二年坂), 산넨자카(三年坂)라고 한다. 니넨자카는 본래 니네이자카(二寧坂), 산넨자카는 본래 산네이자카(産寧坂)[11]라 한다. 하지만 다이도(大同) 2년(807)에 만들어졌다 해서 '니넨자카', 다이도 3년(808)에 만들어졌다 해서 '산넨자카'라는 별칭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이름 때문에 '니넨자카에서 넘어지면 2년, 산넨자카에서 넘어지면 3년 안에 죽는다.'는 말이 생겼다. 니넨자카에서 넘어져도 효탄야 상점가에서 호리병을 사면 액땜이 된다는 말도 있다.
- 상점가에는 일장기에 가미카제(神風), 특공(特攻) 등의 문구가 적힌 기념품들, 욱일기에 대일본제국해군(大日本帝国海軍)이라고 인쇄된 티셔츠 등을 진열한 가게도 적지 않다. #
- 키요미즈데라 상점가에 기모노 대여 가게인 '테쿠테쿠'가 있기 때문인지 기모노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런데 그들이 주로 하는 말이 한국어 또는 중국어라 대부분이 관광객인 듯.
- 키요미즈데라를 거친후 맨 아래로 내려가면 넓은 상점가 거리인 '기온 거리' 라는곳을 볼수있다. 키요미즈데라와 니넨자카 및 산넨자카의 두 곳을 포함하여 기온거리까지 완주하려면 6km정도 소요된다.
-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후보로 올랐으나, 만리장성에 투표로 완패했다는데, 사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자체가 희대의 사기극이었던 세계 7대 자연경관을 선정한 뉴 세븐 원더스 주최이니 그 신뢰도는 0에 가깝다. 사실 키요미즈데라는 경관이 뛰어난 거지, 신기한 것과는 다르다. 가 보면 절의 담장이 붕괴되었고 정문만 덩그러니 서 있어서 입구가 마치 폐허 같아 보이기도 한다.[12]
5. 찾아가는 길
키요미즈미치(清水道)나 고죠우자카(五条坂)에서 내려서 걸어 올라간다. 버스로 가겠다면 교토역에서 100번, 206번 버스를 타거나 교토카와라마치역에서 207번 버스를 타면 된다. 또는 케이한 전철 본선을 타고 키요미즈고조역에서 하차한 뒤, 4번 출구로 나가 큰길로 따라 올라가면 된다. 약 30분 정도 도보로 올라가야 하는데 길이 꽤 길다. 그리고 처음에는 완만하다가 다소 경사가 있는 오르막이 이어지니 여름에 이 루트로 가겠다면 어느정도 각오는 하고 올라가자. 지도로 볼 때는 상당히 먼 거리지만 건널목이나 언덕길에는 항상 관광객이 그득하기 때문에 길찾기는 쉬운 편이다.6.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교토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일본 만화에서 수학여행 에피소드에 돌입하는 경우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무대가 되는 도시이기도 하다(나라는 덤으로 붙는다?)[13]. 그 중에서도 이 키요미즈데라는 단골코스다. 실제로 교토를 가보면 교복 입은 학생들도 많이 보이긴 한다. 문화재라든가 관광지가 많기 때문. 여러모로 우리나라의 경주시와 비슷한 포지션.이야기 시리즈로 유명한 니시오 이신의 라이트 노벨 헛소리 시리즈에서는 아이카와 준과 니오우노미야 이즈무의 전투 때문에 부서지는 수난을 당했다.
애니메이션 근육맨 2세 데몬시드 편에서 한조와 더 닌자가 싸우는 스테이지가 무대 앞에 세워져있다.
교토를 무대로한 명탐정 코난 7기 극장판인 미궁의 십자로에서 란과 소노코 그리고 카즈하가 여기와서 사진찍고 봄풍경을 만끽했다. 그리고 연재분 1004화에서 모리 란이 쿠도 신이치의 볼에다 키스를 하면서 근 23년만에 신란 커플도 제대로 된 진도를 나가기 시작했다. 이 장면은 극장에서 상영된 진홍의 수학여행 편에서 등장했다.
영화 일본침몰에서는 파괴된 키요미즈데라 뒤로 물에 잠긴 교토 시내가 보인다.
오버워치의 맵인 하나무라의 B거점 측면 지형이 키요미즈데라의 무대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14]
만화 맨발의 겐에선 주인공 나카오카 겐의 어머니인 나카오카 기미에가 생애 마지막 여행으로 교토를 여행하면서 이 곳을 방문한다. 한국판에서는 '기요수샤'라고 잘못 나와 있다.
유사하렘의 에니메이션에서 린과 에이지의 데이트 코스로도 등장했다.
주술회전에서 도쿄 도립 주술 고등전문학교 본관으로 나온다. 기요미즈데라와 달리 평지에 빌딩처럼 지어져있다.
[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2]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3] 그의 조상 아지사주(阿知使主)는 백제계 혹은 중국계 도래인이라는 설이 있지만 근거있는 기록은 아니다.[4] 아름다운 달의 정원으로 유명하며 특별 기간에만 개방한다.[5] 다만 서구권도 못의 대량생산 이전에는 팀버프레임과 같이 못을 최소한으로 쓰거나 아예 안 쓰는 게 일반적인 건축방식이었던 걸 생각하면 그냥 옛날 건축방식을 잘 모르는 거다.[6] 키요미즈(清水)라는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7] 번역하면 이러하다. "세차게 흘러나오는 청수(清水)는 예로부터 '황금수', '연명(延命)수'라고 불려 맑게 하는 (부정을 없애는) 물로 존중되어 왔습니다. 3줄기로 갈라져 떨어지는 청수(清水)를 국자에 받아 육근청전(六根清浄), 소원성취를 기원하기 위해 연일 행렬이 생길 정도로 인기 장소이나 원래는 폭포수행의 장소입니다."[8] 당시 퍼진 소문은, 떨어져서 살면 소원이 이뤄지고, 떨어져서 죽으면 고통 없이 성불한다였다. 그러나 뛰어내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결국 못 뛰어내리게 막았다.[9] 공상과학대전을 집필한 야나기타 리카오는 이를 두고 "다치고 싶다는 소원을 빌고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라며 익살스럽게 의문을 제기했다.[10] 다만 구경할 때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집이 많으니 주의해야 된다.[11] (순산을 돕는다 하는) 고야스노토로 가는 참배로라는 의미이다.[12] 1868년 메이지 정부의 폐불훼석 때 15만 평 넘는 청수사 부지 중 90%가 몰수되어 현재 면적 1만 4천여 평만 남았다.[13] 만화 딸기 100%에서 마나카 준페이가 토죠 아야를 수학여행중 여기서 만난다. 첫 키스를 나누려는 도중 니시노 츠카사에게 목격됐다.[14] 단편 애니메이션에서 두 형제가 서로의 궁극기를 쓰는 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