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4 23:49:21

첼시 FC/2008-0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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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FC 역대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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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프리미어 리그 패치 (07-16).svg
첼시 FC 프리미어 리그 2008-09 시즌
순위 경기수 승점 득점 실점 득실차
3/ 20 38 25 8 5 83 68 24 +44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 화이트.svg
2008-09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파일:FC 바르셀로나 로고.svg
파일:첼시 FC 로고.svg
바르셀로나 첼시
파일:FA Cup E.ON.png
FA 컵
파일:칼링컵.png
칼링 컵
우승 4R 탈락
파일:첼시 FC 로고.svg
첼시 FC 2008-09 시즌
구단주 <colbgcolor=white,#191919> 로만 아브라모비치
(Roman Abramovich)
감독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Luiz Felipe Scolari)[1]
거스 히딩크
(Guus Hiddink)[2]
수석코치 레이 윌킨스
(Ray Wilkins)
주장 존 테리
(John Terry)
부주장 프랭크 램파드
(Frank Lampard)
시즌 종료
파일:프리미어 리그 패치 (07-16).svg 최종 3위
(38경기 25승 8무 5패 68득점 44실점)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 화이트.svg 4강 탈락
(12경기 5승 6무 1패 20득점 13실점)
파일:FA Cup E.ON.png 우승
(7경기 6승 1무 17득점 6실점)
파일:칼링컵.png 4라운드 탈락
(2경기 1승 1무 5득점 1실점)
시즌 성적 승률 62.71%
59경기 37승 16무 6패
110득점 64실점 득실차+46
팀내 최다 출장 프랭크 램파드 (57경기)[3]
팀내 최다 득점 니콜라 아넬카 (25골)[4]
팀내 최다 도움 프랭크 램파드 (21도움)[5]
올해의 선수 프랭크 램파드
선수단 선정
올해의 선수
애슐리 콜
PFA
올해의 팀
니콜라 아넬카

1. 개요2. 1군 스쿼드
2.1. 시즌 베스트 XI
3. 이적시장4. 스콜라리 하의 첼시5. 거스 히딩크 하의 첼시6. 경기 결과
6.1. 프리미어 리그6.2. 챔피언스 리그6.3. 리그 컵6.4. FA 컵

[clearfix]

1. 개요

스콜라리가 팀을 통제하지 못하였지만, 히딩크가 겨우 수습을 해놓으며 타이틀 하나를 얻는데 가까스로 성공하며, 팬들에게 스페셜 원에 대한 갈망이 시작된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오심경기로 유명한 잉카더비Fucking disgrace가 바로 이 시즌의 챔피언스 리그 4강전.

2. 1군 스쿼드

첼시 FC 2009-10 시즌 스쿼드
등번호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포지션 국적 비고
1 페트르 체흐 Petr Čech GK 파일:체코 국기.svg
2 브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 Branislav Ivanovic DF 파일:세르비아 국기.svg
3 애슐리 콜 Ashely Cole DF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5 마이클 에시엔 Michael Essien MF 파일:가나 국기.svg
6 히카르두 카르발류 Ricardo Carvalho DF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8 프랭크 램파드 Frank Lampard MF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부주장
9 프랑코 디산토 Franco Di Santo FW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10 조 콜 Joe Cole MF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1 디디에 드록바 Didier Drogba FW 파일:코트디부아르 국기.svg
12 존 오비 미켈 John Obi Mikel MF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
13 미하엘 발락 Michael Ballack MF 파일:독일 국기.svg
15 플로랑 말루다 Florent Malouda MF 파일:프랑스 국기.svg
17 조제 보싱와 Jose Bosingwa DF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18 히카르두 콰레스마 Ricardo Quaresma MF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6]
19 파울루 페헤이라 Paulo Ferreira DF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20 데쿠 Deco MF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21 살로몬 칼루 Salomon Kalou FW 파일:코트디부아르 국기.svg
23 카를로 쿠디치니 Carlo Cudicini GK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7]
26 존 테리 John Terry DF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주장
27 미네이루 Mineiro MF 파일:브라질 국기.svg
30 라이 테일러 Rhys Taylor GK 파일:웨일스 국기.svg
33 알레스 Alex DF 파일:브라질 국기.svg
35 줄리아노 벨레티 Juliano Belletti DF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39 니콜라 아넬카 Nicolas Anelka FW 파일:프랑스 국기.svg
40 엔히크 일라리우 Henrique Hilario GK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42 마이클 맨시엔 Michael Mancienne DF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43 미로슬라브 스토흐 Miroslav Stoch FW 파일:슬로바키아 국기.svg
50 제이콥 멜리스 Jacob Mellis DF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구단 정보
구단주 : 로만 아브라모비치 / 감독 : 루이즈 펠리페 스콜라리 / 구장 : 스탬퍼드 브리지

2.1. 시즌 베스트 XI

첼시 FC 2008-09 시즌 베스트 XI
(4-3-3)
LW
15 말루다
40경기 선발
ST
11 드록바
29경기 선발
RW
39 아넬카
46경기 선발
LCM
8 램파드
56경기 선발
CDM
12 미켈
48경기 선발
RCM
13 발락
37경기 선발
LB
3 A. 콜
49경기 선발
LCB 파일:주장 아이콘.svg
26 테리
51경기 선발
RCB
33 알레스
39경기 선발
RB
17 보싱와
48경기 선발
GK
1 체흐
55경기 선발

3. 이적시장

첼시 FC 2008-2009 시즌 이적시장 영입 선수 명단
FROM. 이름 포지션 국적 이적료
파일:FC 포르투 로고.svg 조제 보싱와
(Jose Bosingwa)
DF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16.2m
파일:FC 바르셀로나 로고.svg 데쿠
(Deco)
MF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7.9m
파일:바이어 04 레버쿠젠 로고.svg 괴칸 퇴레
(Gökhan Töre)
MF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500k
파일:헤르타 BSC 로고.svg 미네이루
(Mineiro)
MF 파일:브라질 국기.svg FA
파일: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로고(2007~2014).svg 히카르두 콰레스마
(Ricardo Quaresma)
MF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임대
영입 이적료 총액 : £24.6m
첼시 FC 2008-2009 시즌 이적시장 판매 선수 명단
TO. 이름 포지션 국적 이적료
파일:맨체스터 시티 FC 로고(1997~2016).svg 웨인 브리지
(Wayne Bridge)
DF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2m
파일:맨체스터 시티 FC 로고(1997~2016).svg 숀 라이트필립스
(Shaun Wright-Phillips)
MF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9m
파일:맨체스터 시티 FC 로고(1997~2016).svg 탈 벤 하임
(Tal Ben Haim)
DF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5m
파일:아스톤 빌라 FC 로고.svg 스티브 시드웰
(Steve Sidwell)
MF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5m
파일:VfB 슈투트가르트 로고(1998~2014).svg 할리드 불라루즈
(Khalid Boulahrouz)
DF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3.9m
파일:파리 생제르맹 FC 로고.svg 클로드 마켈렐레
(Claude Makélélé)
MF 파일:프랑스 국기.svg FA
파일:토트넘 홋스퍼 FC 로고.svg 카를로 쿠디치니
(Carlo Cudicini)
GK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FA
파일: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로고(2007~2014).svg 에르난 크레스포
(Hernán Crespo)
FW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FA
방출 이적료 총액 : £34.9m

4. 스콜라리 하의 첼시

그랜트의 후임으로 들어온 감독은 명감독이라 칭송받던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 다만 스콜라리 감독 체제는 시작부터 흔들린다. 대표적인 사례가 거의 기정사실화되어 가던 레알 마드리드호비뉴 영입 실패. 게다가 폼이 떨어진 데쿠를 영입해서 거의 매 경기 주전으로 돌리는 바람에 라커 룸 분위기도 어수선 해지고, 팀의 살림꾼이던 에시앙이 한동안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면서 초반의 상승세를 이끌어 가지 못하고 시즌 도중 경질당하고 말았다.

재밌으면서도 강력한 축구를 원하던 로만 구단주에 맞추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겠지만, 기존의 스쿼드에서 별로 변경된 것도 없으며 스콜라리 입맛에 맞는 스쿼드가 아님에도 갑작스런 스타일 변경을 시도한 것이 문제였던 듯. 주전급 선수로는 데쿠보싱와 정도가 영입되었으나, 이는 그 당시 스콜라리 감독이 추구하려던 포메이션에선 반드시 영입해야 할 선수는 아니었다. 스콜라리 감독은 데쿠를 플레이 메이커로 기용하고 호비뉴를 세컨드 스트라이커 혹은 윙포워드로 기용하는 시스템으로 기민하고 공격적인 포메이션을 구상했던 듯 하나 호비뉴의 영입 실패로 인해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스콜라리 감독 또한 팀 내 분위기를 장악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체흐, 발락, 드록바 등의 반발) 전술적으로도 특색이 없거나 다소 의아한 용병술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를 반영한 듯 첼시의 자랑이던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86경기 무패라는 대기록이 08-09 시즌 프리미어 리그 9라운드에서 리버풀에게 패배하며 깨지고 리그 내 성적도 서서히 내려가게 되었으며, 이는 2009년 2월의 감독 경질로 이어졌다.

상술되었듯이 초반 스콜라리호는 개막전 아름다운 경기력을 선보이며 포츠머스 FC를 4:0으로 대파하며 산뜻하게 출발했고, 9라운드에서 리버풀에게 홈에서 패하기 전까지만 해도 7승 2무를 기록하며 순항하는 중이었다. 특히 무리뉴 시절부터 첼시에 고춧가루를 뿌리기 일쑤였던 아스톤 빌라를 5:0으로 대파하고, 존 테리의 퇴장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신흥강호 맨시티를 원정에서 3:1로 완파하며,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도 다크호스 보르도를 4:0으로 크게 이기고, 이탈리아의 강호 AS 로마를 상대로도 1:0 승리를 이끌어내는 등 경기 내용과 결과 모두 만족스러운 성적을 내는 중이었다.

그러나 10월 25일 리버풀에게 패한 경기에서 스콜라리 전술의 약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스콜라리의 전술은 4-1-3-1-1 대형으로 4명의 중앙 미드필더가 부채꼴 대형을 유지하며 패스플레이를 통해 찬스를 만들어내는 스타일의 축구였는데, 라파엘 베니테즈는 최전방 공격수를 제외한 9명을 수비진영에 묶어두며 첼시 미드필더들의 패스플레이가 전방으로 전달되지 못하게 한 것. 마침 전반 10분에 사비 알론소가 역습 상황에서의 중거리 슛으로 득점에 성공하자 리버풀은 완전히 수비라인을 끌어내린 채 수비적으로 경기에 임했고, 첼시는 볼점유율은 높았지만 공이 공격수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만을 연출했던 것. 호비뉴가 있었더라면 테크닉으로 수비진들을 벗겨내 골 찬스를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으니 스콜라리로서도 답답할 지경이었을 듯(...)

얼마 뒤 칼링컵에서는 번리에 홈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하여 탈락하며 또 체면을 구겼다. 드록바가 골을 넣었지만 관중에게 동전을 던지는 사건으로 출장징계를 먹었다. 거기에 11월 4일 열린 AS 로마와의 원정경기에서 1:3으로 완패하며 첼시는 그러한 우려를 더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러는 와중에도 11월 한 달 동안 리그전에서만큼은 강팀을 만난게 아니라서 헐 시티 AFC, 선더랜드, 블랙번, 웨스트 브롬같은 고만고만한 약체들을 상대로 쾌승을 거두며 승점 3점을 챙겼고, 리버풀 전에서 일격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위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는 있었다. 특히 웨스트 브롬 원정에서 3:0으로 승리함으로써, 첼시는 역대최다 원정연승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12월 1일 강팀인 아스날 FC를 홈에서 만나자마자 1:2로 역전패를 당하며 스콜라리 전술에 명백한 한계점이 있음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스콜라리가 그토록 영입하기를 원하였던 호비뉴도 없는데다 호비뉴 영입을 기정사실화한 상황에서 맨시티에 팔아버린 테크니션 숀 라이트 필립스의 공백까지 더해지자 풀럼, 웨스트 햄, 에버튼을 상대로 부진한 경기력 속에 무승부를 기록하며 1위 자리도 빼앗겼으며, 2009년 1월 열린 맨유 원정경기에서 0:3으로 대패하며 스콜라리 체제의 첼시는 초반의 1위를 유지하지 못한 채 우승 경쟁권에서 한참 멀어진 3위로 추락하게 되었다.

FA컵 첫 경기에서는 3부 리그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와도 홈에서 1:1로 비겨 재경기 끝에 4:1로 승리하여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등 계속해서 부진을 거듭하던 스콜라리호 첼시는 2009년 1월 17일 승격팀 스토크 시티를 홈에서 맞이한다. 이 때 첼시는 37개의 슈팅을 기록했으나 0:1로 후반 43분까지 끌려갔는데 다행히 벨레티가 동점골을 넣고 프랭크 램파드가 종료직전 역전골을 넣으며 기적적으로 승리하였다. 스토크전에서의 극적인 승리 이후 FA컵 4라운드 입스위치전 3:1 승리, 미들즈브러와의 홈경기 2:0 승리로 분위기가 반전되는 듯 했으나...

리버풀 원정에서 오심으로 인한 램파드의 퇴장도 있었으나 처참한 경기력을 보이다 경기 막판 토레스에게 2골을 실점하며 0:2로 패했고, 홈에서 승격팀 헐 시티와의 경기에서도 0:0으로 비기며 홈팬들의 야유를 받았다. 헐 시티전 졸전을 끝으로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스콜라리를 시즌 도중 경질했다.

5. 거스 히딩크 하의 첼시

파일:external/www.arsenal.com/gun__1235139961_hiddink_guus2.jpg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평소 친분이 있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을 설득해 러시아 대표팀 부임 중 임시로 데려오게 된다.

'히딩크 매직' 이라는 별명답게 3개월 남짓한 짧은 시간에도 리그 10승 1무 1패[8], 챔스 4강, FA 컵 우승 등 많은 성과를 일궈냈는데,

우선 스콜라리 감독시절 '드록바와 아넬카는 물과 기름이라 서로 공존 할 수 없다' 면서 드록바의 부상 이후 아넬카만을 고집해왔는데 히딩크는 훈련에서 과감히 드록바-아넬카 조합을 시도하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결국 아넬카가 수비진을 흔들고 드록바가 마무리 함으로써 공존시키는데 성공한다.

말루다는 자신을 영입한 무리뉴가 경질되는 통에 이리 굴려지고 저리 굴려지다 폼을 잃어버려 시즌 초반 내내 부진했으나 히딩크의 지도 하에 리옹시절 폼을 다시 되살려 후반기 최정상급의 윙어로 거듭나 말루다-아넬카-드록바 라인의 폭발적인 공격력을 만들어내었다.[9]

또한 램파드는 월드클래스급의 미드필더로써 재능을 만개하여 중요한 경기마다 결정적인 골과 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팀에 기여했고, 무언가 램파드와 호흡이 2% 부족하던 발락의 위치를 재조정하는 작업 끝에 드디어 에시앙-램파드-발락 3미들이 조화를 이루어 에시앙-마케렐레-램파드의 뒤를 잇는 첼시 특유의 단단한 중원을 가동시키는데 성공한다.

거기에 보싱와 등이 가출이나 불안한 수비능력으로 오른쪽 풀백이 구멍이라는 지적을 받자, 영입하고 어디에 내팽겨놓은(..)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를 중용하며 단숨에 구멍을 메꾸고, 이바노비치 또한 리버풀과의 챔스 8강전에서 헤딩으로만 2골을 신고하며 믿음에 보답한다. 그밖에도 스콜라리 체제하에서 잊혀졌던 알렉스의 재발견, 칼루의 수퍼 서브로서의 좋은 활약 등이 겹치며 첼시는 떨어졌던 리그 순위도 끌어올리고 FA 컵도 4강에서 아스날에 역전승을 거두고 결승에 진출했다.

히딩크의 첫 경기는 3위를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키고 있던 마틴 오닐아스톤 빌라와의 원정경기였다. 1999년부터 첼시는 빌라 파크 원정에서 이기지 못하는 징크스를 갖고 있었는데... 전반 19분 터진 아넬카의 벼락같은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면서 히딩크는 부임 첫 경기만에 해묵은 징크스를 깨뜨리고, 팀을 4위에서 3위로 도약시킨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16강에서 이탈리아의 강호 유벤투스를 꺾고[10][11] 8강에서 리버풀을 만났다. 5시즌 연속으로 챔스에서 만나게 되어 대진이 발표되자 양 팀 팬들과 선수들이 지겨워했지만 이 경기는 그야말로 첼시 경기 중 백미 중의 백미였다. 1차전을 지옥의 안필드 원정에서 이바노비치가 머리로만 2골을 만들어내는 대활약으로 3:1 역전승을 이루어낸 첼시는 2차전 홈경기에서는 전반에만 2골을 먹고 한 골 더 먹으면 탈락할 지경까지 끌려다녔으나 후반전 드록바, 알렉스, 램파드의 골로 3:2로 다시 앞서나갔다. 그러나 리버풀의 맹공으로 2골을 더 먹어 3:4로 다시 한 골 차 승부가 되었다.[12] 그 와중에 아넬카의 돌파와 함께 이은 땅볼 크로스를 램파드가 환상적인 슛으로 집어넣어 기어이 승부에 쐐기를 박으며(그런데 리버풀도 잃을게 없었는지 그에 굴하지 않고 두 골차가 되었는데도 미친듯이 쏴제꼈다) 1, 2차전 합계 7:5로 4강에 올라간다.[13] 이 시즌을 끝으로 리버풀과는 2016년 현재까지 챔스에서 맞대결을 벌인 적이 없다. 양 팀은 챔피언스 리그에서 만난 5시즌 동안 (첼시 기준) 상대전적 3승 5무 2패를 기록했고, 토너먼트에서 서로를 2번씩 떨어트리는 그야말로 호각세를 보였다.

4강에서는 FC 바르셀로나와 만나게 되었는데 1차전 캄프 누 원정은 0:0 무승부로 끝냈다. 이 경기도 많은 판정 논란이 있었는데, 에투의 1:1 찬스가 오프사이드 오심으로 취소되고 발락이 침투하던 이니에스타의 얼굴을 가격하기도 했지만 카드가 나오지 않았다.[14] 이외에도 여러가지 핸들링, PK 오심이 있었다. 다만 2차전이 너무 역대급이라.....

참고로 경고 누적으로 주전 왼쪽 풀백 애슐리 콜이 출전하지 못하게 되자 대다수의 팬들은 이제 오른쪽 공격수로 나서는 메시를 막기 힘들거라고 걱정했지만 히딩크는 보싱와가 잘 막아줄 것이라며 인터뷰하였다. 그 당시 보싱와의 주 포지션은 오른쪽 풀백에다가 자리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서브 신세를 지고 있는데 무슨 수로 메시를 막겠나 싶었는데 다음날 정말 놀랍게도 메시를 지워버렸다.[15] 이 날 경기는 보싱와가 MOM을 받았고 팬들은 메시에게 밥 먹다 체했냐며.. 물론 당시 바르셀로나 공격수로 나온 에투가 너무 삽질한 것도 있지만 1대1로 안정적이게 잘 막아줬다. 지금도 메시, 네스타 얘기가 나오면 보싱와도 같이 껴서 간간히 회자되는 경기이다.

이어진 2차전 홈 경기, 전반 에시앙의 아름다운 발리슛으로 선제골을 얻어내지만 후반 종료 직전, 이니에스타의 골로 1:1 무승부로 경기는 끝났고 원정 득점 우대 원칙에 따라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4강 2차전 경기의 경우 워낙에 오심이 판을 쳤던 경기였던지라 이것은 히딩크 감독과 첼시 선수들의 역량으로는 타개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축구 역사상 최악의 오심 경기라고 불릴 정도였으며[16], 첫째로 바르샤의 아비달이 후반초반 심판의 심각한 오심으로 퇴장당하며 경기의 밸런스가 무너지고 첼시에게 유리하게 흘러간다. 바르샤 입장에서는 잘못된 오심으로 인해 10명으로 뛰게 되면서 매우 억울한 상황. 그러나 문제는 오브레보의 보상 판정.[17] 후반 내내 아비달 퇴장으로 불리함을 떠맡게된 바르샤를 위해 말 같지도 않은 보상판정을 내린다. 맨 마지막에는 주심이 보는 가운데에서도 대놓고 발락의 슛을 막는 핸들링 반칙을 했지만 휘슬이 안 불리는 등 정말 경기 자체가 개판이었다.[18] 결국 1:0으로 앞서고 있던 상황에서 인저리 타임에 이니에스타의 동점골로 탈락하게 된다. 물론 오심은 양팀에게 다 있었지만[19] 패배한 입장이 가장 억울한건 당연하기 때문에 경기 직후 첼시 선수들은 분노하여 주심에게 강하게 어필했고,[20] 드록바는 폭언[21][22]으로 징계를 받았다. 오브레보는 팬들에게 맞지 않아서 망정이지.[23] 그래도 바로 다음 경기인 아스날 원정에서는 4대1로 대승을 거두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리그는 결국 3위로 마쳤지만 챔스 32강 직행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만족하는 중. 유종의 미로 FA컵 우승도 했다.[24]
파일:external/bluechampions.com/facup.jpg

이로써 팬들이나 보드진이나 선수들 모두 히딩크의 첼시 잔류를 바랐다. 하지만 히딩크는 이번 시즌이 끝나면 러시아 대표팀으로 돌아간다고 확고하게 말해왔었고 결국 잔류하지 않았다. 그 후 감독은 카를로 안첼로티.

사실 히딩크 감독은 특별한 전술적인 변화나 선수층의 변화를 주지 않았으나 특유의 카리스마와 심리술로 첼시 선수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실제로 히딩크 시절 첼시의 전술은 무리뉴 시절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드록바가 말하길, 히딩크가 선수들과의 미팅에서 가장 처음으로 한 말이 '너희들은 감독이 없어도 이길 수 있는 선수들이다. 나는 신경 안 쓸테고 너희들도 신경 쓸 필요 없으니 그냥 니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였다고(…). 결국 심리적인 변화가 경기력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 된다.

6. 경기 결과

6.1. 프리미어 리그

6.2. 챔피언스 리그

6.3. 리그 컵

6.4. FA 컵



[1] 시즌도중 경질[2] 임시감독, 부임 전 1경기는 팀 레전드 출신 수석코치 레이 윌킨스가 대행[3] PL 37경기, 챔피언스리그 11경기, FA컵 7경기, 리그컵 2경기[4] PL 19골(득점왕), 챔피언스리그 2골, FA컵 4골[5] PL 10도움, 챔피언스리그 3도움, FA컵 3도움, 리그컵 1도움[6] 겨울이적시장에 인테르에서 임대영입[7] 겨울이적시장에서 토트넘으로 이적[8] 유일한 1패는 토트넘에게 당한 패배였다.[9] 이 시기 말루다는 맨유의 우리형 부럽지 않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10] 다만 이 시점에서 MBC ESPN이 히딩크빨 시청률 상승을 기대하며 레알-리버풀이라는 희대의 대진을 씹고 첼시 경기를 라이브로 중계하며 축빠들에게 까이기도 했다. 유벤투스도 만만찮은 강팀이긴 하지만 이 시즌 리버풀이 워낙 힘세고 강했던지라 말이 많았다. 어쨌든 첼시빠들은 좋아했지만.[11] 당시 챔피언스리그 16강은 지금처럼 하루 2경기 편성이 아닌, 하루 4경기 편성이었다. 지금처럼 SPOTV가 여러 채널에서 여러 경기를 동시에 생중계해주는 여건이 아니다.[12] 전반 종료 시점에서 합계 3:3이 되 원정 다득점으로 첼시가 우세했다. 첼시가 다시 세 골을 넣었지만 리버풀도 두 골을 따라붙었고, 이 시점부터는 원정 다득점도 리버풀이 앞서기 때문에 리버풀이 한 골만 더 우겨넣으면 연장전을 갈 것도 없이 그대로 끝.[13] 이 경기는 첼시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명경기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한 편의 영화 같은 경기니 축구 팬이라면 꼭 감상해 보도록 하자. 리버풀도 당시 스티븐 제라드가 없이 나선 경기였기 때문에 팬들이 기대를 버리고 보다가 어...어... 하는 사이 희대의 명경기를 보았다며 승패는 둘째치고 2008-09 후반기의 3대 명경기로 꼽을 정도. 아스날전 4-4도 있는데? 안드레이 아르샤빈 하나를 못 막아서... 3대 명경기 중에서도 해당 시즌 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털어버린 것보다 더하다고 할 정도다. 물론 올드 트래포드에서의 맨유 1-4 리버풀 정도로까지 쳐주지는 않는 모양이지만... 이탈리아의 스포츠 전문지 '라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는 이 경기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천 년에 한번 나올 법한 승부."[14] 당시 발락은 이미 경고 한 장이 있던 상태[15] 매일 같이 경기 비디오를 보며 메시의 움직임을 공부했다고 한다.[16] 과르디올라 감독조차 첼시는 패널티킥을 받을만했다고 인터뷰 할정도면 뒤가 구린 오심중에 최악의 오심경기이며 정말 나쁜사례로 평생남을 오심경기였다[17] 상식적으로 심판이 자신의 오심을 다른 오심으로 보상한다는것 자체가 심판 자질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18] 그러나 전반전 발락의 명백한 핸들링 파울을 넘어갔고 드록바가 피케의 복부를 스터드로 가격했지만 파울이 주어지지 않은 오심이 있었다.[19] 그렇다 하더라도 오심판정은 첼시 쪽에 압도적으로 많았다. 바르셀로나의 오심을 살펴보면, 드록바의 뒷발차기는 심판 시야에 들어오기 어려웠고 아비달의 퇴장 또한 위험지역에서의 의도적 파울로 판단하고 레드카드를 꺼낸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넬카의 액션이 있었으나 이전 아비달의 파울에 대한 경고까지 고려해서 내린 판단으로 보인다. 하지만 넘어질 정도로 잡은 것으로 보이지 않기에 이또한 바르셀로나 팬들에게는 억울할 수 있다는 입장.[20] 특히 발락은 양팔을 벌리고 심판을 잡아먹을 듯이 쫓아가며 항의했다. 이 항의 장면은 당시 첼시 팬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워낙 첼시에 애정이 큰 선수이기도 하고 결승전에서 저번 챔스 결승 이후 맨유와의 리벤지 매치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21] 오브레보에게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카메라 화면에다가 It's Fu**ing disgrace라 외쳤다.[22] 굳이 해석하자면 '이건 X같은 수치야'라는 뜻이다.[23] 오브레보 본인도 훗날 자신의 판정 실수를 인정하며 축구 규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내가 다른 판정을 내렸어야 했다는 사실을 알 것이라고 말했다.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2041817172228 3년이 지나서도 종종 살해협박 편지가 날아오기까지 했다고.[24] 에버턴과의 결승전이었으며 이 경기 역시 명경기이다. FA컵 사상 가장 빠른 25초 만에 루이 사하에게 선제골을 먹었지만, 말루다의 크로스를 받은 드록바의 동점골, 그리고 램파드의 환상적인 중거리 슛 역전골로 2:1로 승리했다. 골을 넣은 뒤 램파드의 세레모니는 과거 자신의 아버지가 FA컵에서 골을 넣은 뒤 한 세레모니를 따라서 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