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131230,#000000><colcolor=#fff,#dddddd> 최요삼 崔堯森[1] | |
출생 | 1974년 10월 16일[2] |
전라북도 정읍군 정주읍 (現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
사망 | 2008년 1월 3일 (향년 33세) |
서울특별시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63cm, 50kg |
가족 | 어머니[3], 동생 최경호, 조카들 |
학력 | 영등포중학교 (졸업) 용산철도고등학교[4](졸업) |
직업 | 권투 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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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권투 선수. 체급은 라이트 플라이급이다.2. 일생
1974년[5] 10월 16일 전라북도 정읍군 정주읍(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에서 태어났다. 권투는 중학교 2학년 때인 1987년에 시작하였으며, 1993년 프로 권투 선수로 데뷔하였다.1994년 라이트 플라이급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1995년 11월 24일 한국챔피온에 도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96년 라이트 플라이급 동양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였고, 1999년에는 WBC 라이트 플라이급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2004년 WBA 플라이급 타이틀 도전에 실패한 후 은퇴를 선언하였다가 2007년에 재기하였다.
2007년 9월에 WBO 플라이급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에 등극했고 동년 12월 25일 1차 방어에 성공하였으나....
3. 사망
안타깝게도 1차 방어전에 성공한 그날, 2007년 12월 25일에 있었던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 광진구민 체육센터에서 열린 WBO 플라이급 인터콘티넨탈 타이틀 1차 방어전 최종 12라운드에서 도전자 헤리 아몰(Heri Amol, 인도네시아)에게 오른손 스트레이트에 턱을 맞고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진 뒤 일어섰으나, 판정승이 선언된 뒤 다시 정신을 잃었다. 용산구에 있는 순천향대학교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2008년 1월 2일 최종적으로 뇌사 판정을 받았으며, 다음 날인 1월 3일 오전 0시 1분 향년 33세의 나이로 사망한 뒤 가족의 동의를 얻어 각막 2개, 콩팥 2개, 심장 등을 6명에게 장기기증하였다.
사망시간을 1월 3일로 맞춘 것은 최요삼의 아버지와 음력 기일(11월 25일)을 맞추기 위한 어머니의 요청 때문이라고 한다. 최요삼의 아버지는 1997년 1월 4일 사망하여 양력 기일로는 최요삼과 하루 차이이다. #
2008년 2월 20일 유골이 안치된 경기도 안성시 유토피아추모관에서 사십구재가 치러졌다.
이 일로 격투기 선수들을 비롯한 응급시설과 메디컬 테스트의 부실함이 큰 주목을 받았으며, 특히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의 허술함이 문제가 되어 법 개정으로 이어지는 등 사회 전반의 응급 의료시설이 재조명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에 리쌍이 최요삼 선수를 주제로 한 추모곡 '챔피언'을 만들었으며 정인과 함께 불렀다. #[6]
다만 김득구와 최요삼에 이어서 비극적이게도 2023년 3월 11일 열린 격투 경기에서 혼수상태에 빠진 몽골 선수가 뛴 권투 경기에서는 '닥터스톱'은커녕 '링 닥터'마저 없었다는 게 SBS 8 뉴스의 단독 취재로 드러났다. 심지어 권투계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왔고 주최측인 한국권투위원회의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하는 뻔뻔한 모습을 감안하면 인재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몽골 선수의 가족과 몽골 선수의 스승인 라크바 심까지 사태 파악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서 대한민국에 입국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심지어 몽골에서는 그야말로 국가 영웅 급에 해당하는 라크바 심을 한국권투위원회가 푸대접하며 외교 문제로 비하할 위험도 생겼다. 출처, 풀버전, 취재파일 참고로 라크바 심은 과거 선수 시절에도 최용수와 타이틀 매치를 위해 방한한 적이 있을 정도로 한국과 깊은 연을 쌓았었는데, 이 사건 때문에 라크바 심 본인도 한국에게 꽤 많이 실망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권투위원회가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지도 못할 망정 라크바 심이라는 사람에게 한국에 대한 실망만 잔뜩 안겨주고 말았다는 것이다.
[1] 개명 전 한자 이름은 崔堯三으로, 한글 이름은 그대로 두고 마지막 한자만 바꿨다.[2] 조기입학으로 1980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3] 아버지는 1997년 1월 4일(음력 1996년 11월 25일) 사망하였으며 음력 기일은 최요삼과 같다.[4] 당시 교명은 용산공업고등학교.[5] 1973년생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일단 프로필에는 조기입학 74년생이라 적었다.[6] 무한도전 복싱특집에서 길이 최요삼을 떠올리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왔고, 방송에서는 딱히 싸움 잘 하는 티는 안 내지만 개리도 용인대학교 경호학과 출신에 복싱도 상당히 오래 해 온 실력자여서 복서들과도 친분이 많다. 둘 다 복싱 경력이 있으며 친분이 있던 많은 복서 중에서도 특히 최요삼과는 형 동생하는 사이였기에 리쌍은 5집의 타이틀을 '백아절현'이라 이름지을 정도로 생전의 최요삼과는 막역한 사이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