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11:47

최철순/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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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축구 선수 최철순의 클럽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프로 데뷔 이전

프랑스 월드컵을 전후로 축구 선수를 꿈꿨고 초등학교 5학년부터 여러 학교를 옮겨다니며 축구를 시작하게 된다. 이후 세일중으로 진학한 후 특유의 강한 승부욕으로 인해 생긴 별명이 최투지이다. 중학교 1년 후배인 신영록이 훗날 청소년 대표 소집 훈련 중 해당 별명을 부르며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렇게 투지있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3년 내내 벤치만 지켰다고 한다. 심지어 벤치에도 못 앉을 때는 관중석에서 경기 영상을 찍는 등 후보 선수였다. 결국 고등학교 진학도 잘하는 선수의 패키지 선수로 보인정보산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보인정산고 2학년에는 동기 서상민과 함께 팀 핵심으로 활약하며 대통령금배와 추계연맹전 준우승, 3학년에 백록기 3위 등 우수한 성적을 팀에 안겨다 주었으나 중앙 수비수임에도 작은 키로 인해 수도권 대학 및 프로의 오퍼를 받지 못한채 충북대학교로 진학했다.

충북대에서 스위퍼로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고 1학년에 U-18세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다. 이후 1학년을 마치고 전북 현대 모터스에 자유계약 신인으로 입단했다.

3. 전북 현대 모터스

2006 K리그 드래프트에서 전북의 우선 지명 대상으로 선발돼 프로 선수가 됐다.

병역 의무 이행을 위한 상무 입대 시절을 제외하면 전북에서 [age(2006-01-01)]년 동안 뛴 원클럽맨이다. 2023 시즌 기준 유일하게 남아 있는 2006 ACL 우승 멤버이며[1]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유명한 전북의 리빙 레전드로 인정 받는다.

전성기 시절 K리그 수비수 중 최고 연봉 및 국내 선수 중 5위의 연봉을 받을 정도로 K리그 레전드 플레이어다. 이것을 봐도 구단 내 입지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3.1. 2006 시즌

신인인데도 등번호 2번을 배정 받았다.

대학시절 포지션은 스위퍼와 수비형 미드필더였으나, 작은 피지컬의 한계와 레전드 풀백 출신 감독의 권유를 받아 풀백으로 보직을 변경했다.[2] 데뷔 시즌인 2006년부터 왼쪽 풀백으로 출전하였는데 동일 포지션에 주전이었던 김정겸을 밀어내고 더 많은 출장 수를 기록 할 정도로 최강희 감독에게 중용받았다.

2006년은 전북에게 잊지 못할 한 해로서,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역사적인 AFC 챔피언스 리그의 우승을 차지한 해이다. 이 해 팀의 주전과 교체를 오가며 전북의 우승에 기여한다.

3.2. 2007~2011 시즌

다소간의 적응기를 거친 후 2008년 이후부터는 20경기 이상은 꾸준히 출장하며 전북의 살림꾼으로 제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다. 2009년 부터는 라이트백으로 포지션을 완전히 옮겨 출장하게 되었고 이 시기에 2번의 리그 우승(2009, 2011)과 ACL 준우승(2011) 등을 달성하게 된다. 이 기간은 전북에게 있어 전성기이나 팀을 구성해가는 과정에 있어서는 성장기이고 과도기적인 시간이다. 강팀으로 재편되는 동안 전북에는 엄청난 성장통이 뒤따랐는데, 포지션별로 영입하고 나가고를 계속해서 반복하였다. 공격진에는 조재진이 1년 활약하고 이동국이 들어오고, 다른 포지션은 말할수도 없다. 대표적인 예는 전북 현대 모터스/날개 매니아 참조. 그 와중에 팀에 남은 선수는 최철순 뿐이라, 이 둘에 대한 MGB의 애정은 아주 각별하다. 근데 항목 안만들고 뭐했어!!

그리고 2011년부터 등번호를 기존의 2번 대신 현재 자신을 상징하는 25번으로 변경했고, 자신의 2번 등번호가 마킹된 유니폼을 들고 오면 2011시즌의 25번 유니폼을 선물로 주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2011년 K리그 클래식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3.3. 상주 상무 FC (군 복무)

2012년 7월 상무의 선수 수급 문제로 인해서 시행된 상시 선발을 통해 입대하였고, 2014년 4월 1일 전역하였다.

그러나 너무 빨랐던 입대 시기로 인해 당시 소속팀 전북은 풀백 한 자리가 비어 꽤나 고생했는데 군 생활 잘 하고온 본인마저 덩달아 욕을 먹었다.

3.4. 2014 시즌

4월 5일 서울 원정에서 군 동기였던 이상협과 복귀전을 치렀다. 전반기 이후 전북의 오른쪽 풀백 레귤러로 복귀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고, 권순태와 함께 차기 주장감으로 꼽힌다.

전역 후, 모두의 예상대로 다시 주전을 차지했다. 최철순이 상무에 있는 동안 그의 자리를 메꾸고 있어야 했던 이규로가 전반기에 너무 못 했다.전북 오고 나서 잘한 적이 있긴 하나 싶긴 하지만 기존의 이재명-이규로 풀백 라인이 세트로 삽질을 하면서 하다 못 해 최강희 감독이 경기 도중에 꾸짖기도 했다 영 풀백 라인이 불안한 전북이었으나 이재명의 자리는 본래 윙 출신인 프로 1년차 신인 이주용이 완벽하게 메꾸고, 이규로 자리는 최철순이 자연스럽게 메꿨다.

탄탄한 수비와 꽤 좋아진 크로스로 좋은 활약을 하여 K리그 베스트 11도 꿈꿀 수 있었지만, 차두리에게 밀려 아쉽게 밀리고 말았다. 애초에 차두리가 이동국, 산토스와 함께 MVP 후보에 들어 있었기에 차두리에게 밀릴 수 밖에 없긴 했다. 다만 일부에서는 차두리보다 최철순을 더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일단 수비수로서 수비라는 점에서는 차두리보다 더 좋은 편이니.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하프 타임에 예비 신부에게 깜짝 프로포즈를 했으며 12월 6일 결혼식을 올렸다. 전북 입단 동기이자 단짝인 정인환[3]도 같은 날 결혼했다.

3.5. 2015 시즌

2015년에는 초반에 부상을 당해 몇 경기 뛰지를 못 하다가 그의 자리를 김기희가 생각보다 잘 메꾸자 부상 복귀 후, 레프트백으로 출전하는 상황도 여러 차례 나오고 있다. 그 덕에 이주용은 여전히 출전이 들쭉날쭉하다.[4] 시즌 기간 동안 라이트백, 레프트백, 심지어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보면서 다양한 롤을 수행했다.

3.6. 2016 시즌

2016 시즌에는 J리그에서 K리그로 돌아온 김창수가 오면서 치열한 주전 경쟁을 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김창수가 부진하면서 계속해서 퇴장을 당하고 나중에는 7개월짜리 부상을 당하며 계속 빠져 있던 탓에 라이트백에서 노예로 굴렸다. 그러면서 팀을 위해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하여 에이스를 대인마크하는 롤을 수행하면서 팀을 위해 희생하였다.

알 아인과의 ACL 결승전에서도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와 오마르 압둘라흐만을 봉쇄하며 팀의 11년만의 ACL 우승에 큰 보탬이 되었다.

3.7. 2017 시즌

2017 시즌을 앞두고 부주장에 선임되었다. 이전 시즌 주전 경쟁자였던 김창수가 2대3 트레이드로 울산으로 떠났지만 국가대표 풀백 이용이 합류해 지난 시즌보다 더욱 더 치열한 주전경쟁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이용도 전임자와 똑같이 장기 부상을 당하면서 전북은 물론 국가대표에서까지 노예로 굴려지게 되었고, 결국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3.8. 2018 시즌

1월에 전북과 5년 재계약을 했다. 연봉 자체도 리그 수위권이며 나이가 적지 않음에도 장기 계약을 했다. 이는 팀에서도 레전드 대우를 해 준다는 것을 반증한다.

작년에 이어 부주장에 선임되었다. 이용이 부상에서 복귀하여 주전 경쟁이 예상되었다.

2월 13일 가시와 레이솔과의 ACL 조별리그 1차전에 선발 출전하였으나 부진한 모습을 보여 전반 종료 후 이용과 교체되었다. 이후 이용과 번갈아가며 출전하다가 조금씩 이용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왼쪽 풀백인 김진수, 박원재가 모두 부상당해서 시즌 대부분을 왼쪽 풀백으로 뛰게 된다. 우려와는 달리 왼쪽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 주어 베스트 11 후보에 선정되었다.

3.9. 2019 시즌

시즌 초반에는 부상 중인 이용을 대신하여 주전 라이트백으로 출전하였다. 그러나 이용의 복귀 후로는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12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전에서 최보경의 햄스트링 부상 장기화, 홍정호의 장염 증세로 중앙 수비에 전력 누수가 발생하면서 센터백으로 풀타임 출전하였다.[5][6] 상대 공격수 찌아구와의 몸싸움에서 다소 밀렸고, 제공권 면에서도 아쉬웠지만 투지 하나만은 모두가 인정할 정도로 뛰어났고, 백업으로는 무난하게 잘해 줬다는 평가. 주제 모라이스 감독에 따르면 키는 작지만 투지는 누구보다 크다.

ACL 조별 리그 최종전 부리람 유나이티드전에서도 홍정호 대신 센터백으로 풀타임 출전하였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MOM으로 선정되었다.

3.10. 2020 시즌

ACL 조별리그 1차전 요코하마 마리노스와의 경기에서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출전하지는 못하였다.

6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전에서 이용을 벤치로 밀어내고 시즌 첫 출전을 기록했지만, 실전 감각 부족으로 인해 아직까지 폼이 덜 올라온 모습을 보였다.

15라운드 대구 FC와의 대팍 원정경기에 이용과 교체로 투입되며 전북 통산 400경기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최종 마지막 라운드 대구전에서 왼쪽 풀백으로 선발 출장했다. 크로스를 올려 조규성이 헤더로 연결하면서 도움을 추가했다.

시즌 내내 벤치에 밀려 있는 날이 많았지만, 부동의 주전이었던 김진수의 이적 후 중요한 순간에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뛰면서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피치 위에서의 헌신과 활약을 바탕으로 선수단의 분위기를 다잡는데 크게 공헌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FA컵 결승 2차전에서는 불투이스와 벌인 몸싸움으로 인해 서로 퇴장 당했다. 퇴장 내역은 불투이스 문서 참고.

3.11. 2021 시즌

울산과의 첫 번째 현대가 더비에서 상대 윙어 이동준을 잘 틀어막으며 클린 시트에 기여했다.

시즌 두 번째 현대가 더비에서 K리그와 리그컵 도합 개인통산 400번째 경기 출전했다.

5월 26일 하나은행 FA컵 양주시민축구단과의 16강 경기에서 부상을 달고 뛰었는데 김상식감독은 후반전 끝나서야 교체를 해 주었다. 아무리 선수 본인이 뛰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더라도 부상 관리는 필수적인데 이는 전북 팬들 사이에서 김상식 감독의 민심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결국 팀은 승부차기끝에 패배해 탈락하고 검진결과에서 2개월~3개월 아웃이 확정, 전북은 당분간 전문 레프트백 없이 경기를 치러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을 맞이했다.

ACL 명단에도 포함되지 못한채 부상 회복에 전념하다가, 8월 4일 22라운드 수원 FC 원정 경기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후반 33분, 백승호와 교체 투입되어 볼란치 역할을 수행했으나,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이후 경기에서도 엔트리에는 포함되고 있지만, 기존 경쟁자인 이용에 올림픽을 마치고 돌아와 주전 경쟁을 시작한 이유현이 가세하면서 좀처럼 선발 기회를 받지 못하고 있다.


9월 5일의 리그 16라운드 순연경기 FC 서울원정에서 전반 30분 쿠니모토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고, 56분에는 일류첸코를 위해 PK를 얻어내는 등 공격과 수비에서 안정적인 활약을 보여주면서 팀은 4-3 역전승을 거두었다.

2021시즌 전북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 ACL을 포함해 도합 20경기 출전 1도움.

2021시즌 끝나고 전북과 최철순은 2년 재계약에 합의했다.

2월 15일 "전북 현대" 유튜브 생방송에서 최철순이 본인 입으로 구단과 2년 재계약 합의했다고 말했다.

3.12. 2022 시즌

시즌 초 이용의 부상으로 인해 우측 풀백 자리에 붙박이 선발로 나서고 있다. 수비력 면에서는 문제 될 게 없지만 후반으로 갈 수록 저하되는 체력과 이용과 비교해서 너무나도 떨어지는 크로스가 발목을 잡고 있다.

6R 김천 상무전에서는 박스 안에서 조규성에게 다리를 거는 바람에 페널티킥을 내주는 미스를 범하기도 했다.

그러나 A매치 휴식기 동안 이용이 복귀하고 김문환이 영입된데다 팀이 스리백 전술로 나서며 우측 윙백 자리가 포화되자, 7라운드부터는 명단에 들지 못하고 있다.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6라운드 요코하마 F. 마리노스전 주장 완장을 달고 우측 풀백으로 선발 출전해 풀타임을 뛰었다.

10월 30일 FA컵 결승전에서 62분 김문환과 교체 출전 후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통산 13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린다.

아무래도 노쇠화와 김문환이라는 강력한 경쟁자로 인해 경기는 많이 뛰지 못했지만 김진수, 백승호가 못 나올 때 주장 완장을 차고 뛰는 등 감독의 신뢰는 어느 정도 받는 듯했다.[7]

3.13. 2023 시즌

시즌 초반 B팀에서 계속 나오고 있는데 소문에 의하면 김상식 감독은 세대 교체라는 이유로 베테랑을 대부분 내보내고[8] 젊은 선수로만 선수단을 꾸리려는 중이다. 구단에서는 최철순에게 지도자 연수와 현역 은퇴 권유를 강권하면서 구단, 리그의 전설을 내쫓으려 하고 있다.

감독, 프런트와 대립 중인데 팬들은 이러한 소문을 듣자 여기저기에서 들고 일어나고 있다. 3월 19일 이후 본격적으로 민심이 들끓었고 최철순의 아내분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역시 의미심장한 글을 적었다. 많은 팬에게 미움을 받았고 미동조차 없던 MGB마저 싸우겠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전북 팬들의 대규모 반발 여론에 놀란 구단 프런트는 일단 휴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나머지 선수는 여름에 내보내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다.

4월까지 1군에선 한 차례도 출전하지 못했고, K4리그에 참가하는 전북 현대 모터스 B에서만 출전하고 있다. 4월 15일 대전 하나 시티즌 B와의 홈경기에서 동점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어진 4월 23일, 제주 원정에서 후반 추가시간 박창우와 교체 투입되며 올 시즌 1군에서 첫 경기를 치렀다.

김상식 감독이 사퇴한 이후 김두현 대행 체제 첫 경기인 어린이날 서울 원정에서 풀타임을 소화하는 등 꾸준히 기용되는 중이다.

5월 24일, 파주와의 FA컵 4라운드 홈경기에서 선발 출전했고 올 시즌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달았다. 이후 연장 시작과 동시에 투입된 김진수에게 완장을 넘겼고 연장까지 120분을 소화하며 다음 라운드 진출에 기여했다.

시즌 내내 좌우 가리지 않고 김진수, 안현범, 정우재 등 주전급 선수들의 백업으로 활약했다. 시즌 종료 후 FA가 되는데, 재계약 협상 중이지만 이견이 있다는 소식이다.#

3.14. 2024 시즌

2024년 1월 3일, 전북 구단은 최철순과 2년 재계약에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리고 1월 5일, 전북은 최철순하고 2년 재계약에 공식 발표했다. 다만 2024 시즌에는 더욱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 이미 좌우 풀백 주전으로 김진수안현범이 건재하고 있고, 좌우 풀백 모두 소화 가능한 정우재에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이유현도 합류해 있다. 거기에 U-22 자원인 박창우와 함께 울산 HD FC에서 FA로 풀린 국가대표 김태환까지 합류하면서 더욱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시즌 초반 엔트리에도 포함되지 못하다가 로테이션을 돌린 3월 9일 수원FC와 리그 2라운드 원정에 선발 출전하며 시즌 첫 출장을 기록했다. 후반 중반 한교원이 교체 아웃되자 직접 주장 완장을 인계 받아 풀타임을 출전했지만 팀은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13R 광주 원정에서 후반 29분 이수빈과 교체로 출전해 남은 시간을 소화하며 전북의 3:0 대승에 기여했고, K리그1,2, 리그컵 포함 447번째 경기에 출전하며 오승범을 넘어 K리그 통합 역대 최다 출장 단독 10위에 올랐다.


[1] 현역들로만 추려봐도 최철순 외에는 염기훈권순태밖에 없다. 근데 두 선수 모두 2023 시즌 종료 후 은퇴했기 때문에 유일한 현역 선수이기도 하다.[2] 그래서 이따금씩 센터백도 소화한다. 2007년 U-20 월드컵에서도 센터백을 소화하였다.[3] 2006 시즌에 최철순과 같이 입단했지만, 최철순과 달리 자리 잡지 못 하고 전남 드래곤즈,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뛰다가 2013 시즌에 돌아왔다.[4] 애초에 이주용이 전 시즌에 비해 활약이 좋지 못하다는 점도 있다.[5] 김민혁이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11라운드 울산전에는 이주용이 센터백으로 출전했지만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패배에 일조하였다.[6] 최철순이 센터백이 가능한 선수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감바 오사카와의 2015 ACL 8강 1차전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출전한 바 있다.[7] 심지어 백승호가 선발로 나왔을 때 주장 완장을 차기도 했다.[8] 이미 이용이 2022 시즌 도중 수원 FC로 임대되었다가 2023년 완전 이적했고, 이승기도 2023 시즌 개막 직후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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