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5:17:49

친차 제도 전쟁


파일:스페인 국장.svg 스페인의 대외 전쟁·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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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cha Islands War

1864~1866년에 걸쳐 스페인과 중남미 연합군 사이에 펼쳐진 소규모 전쟁.

1. 배경2. 전개3. 여파4. 둘러보기

1. 배경

19세기 초중반 라틴아메리카 식민지들의 일제 독립 이후로도 스페인 정부는 이들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길 희망했다. 페루가 독립한지 40년이 지났지만 스페인은 페루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독립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대외적인 입장이었고, 스페인은 실질적으로 이 지역에서 주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현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페인은 현실적으로 이들 지역에 남아있는 스페인 국민 및 그 재산권의 보호, 그리고 신생 독립국가들이 진 부채의 해결을 우선시하고 있었다.

1862년, 스페인 본국은 4척의 소선단을 태평양 지역으로 파견했다. 루이스 핀손 제독이 지휘하는 이 선단의 공식 목적은 태평양 연안 지역의 학술적 탐사와 우호친선 방문이었지만, 실제 목적은 전술한 현실적인 목적이었다. 1863년 4월, 이들은 칠레에 도착하여 칠레 정부의 환대를 받았다. 페루와 달리 칠레는 스페인 본국에서도 독립을 인정한 상태였기에 이러한 친선방문에는 문제가 없었다. 물론, 칠레 정부는 이들을 경계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속으로만 그랬다. 칠레의 환대를 받은 스페인 선단은 이후 북상하여 미국 캘리포니아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미묘한 사건이 터졌다. 1863년 8월 페루의 람바예크에서 스페인 거류민과 페루 현지인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스페인인 1명이 사망한 것이다. 스페인 본국은 이를 좋은 개입명분으로 보고, 캘리포니아까지 올라간 핀손 선단을 급거 페루로 내려보낸다.

핀손 제독은 스페인 정부의 이름으로 페루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으나 페루 정부는 이를 거부했고, 핀손 제독은 본국과 상의 없이 협상채널을 위한 무력행사를 결의했다.

2. 전개

1864년 4월 14일, 핀손 제독은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남쪽으로 200km정도 떨어진 친차 제도를 기습 공격하여 점령하고 페루 정부가 보낸 관리를 체포했다. 친차 제도의 점령은 페루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었는데, 친차 제도는 페루에서도 대표적인 구아노 산지로 당시 페루 내 구아노 산출량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페인 정부은 뒤늦게 이 소식을 전달받았는데, 기왕 벌어진 핀손 제독의 독단을 인정하고 4척의 함선을 추가로 파견했다. 스페인에서 파견되어 지휘권을 인계받은 조세 파레하 제독은 페루 정부에 강압적으로 나섰고, 무력으로 이들을 물리칠 수단이 없던 페루 정부는 결국 스페인에 배상금을 지불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상황은 스페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과거 식민종주국에 배상금을 지불하는 굴욕을 참지 못한 페루 의회가 조약 비준을 거부했고, 민중봉기까지 일어나 페루 정권이 무너졌다. 더구나, 남쪽의 이웃국가 칠레에서 의용군들이 페루를 돕기 위해 속속 들어오고 있었으며 칠레 정부도 스페인 선박에 대한 석탄 공급을 중단한다는 초강수를 두어 페루를 엄호했다. 칠레는 친차 제도를 시작으로 스페인이 다시 남미 대륙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두려워했기에 선제적으로 나선 것이다.

파레하 제독은 주력함대를 이끌고 1865년 9월 17일 칠레 발파라이소에 도착했다. 파레하 제독은 스페인 함대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21발의 예포를 요구했으나 칠레 정부는 이를 거절했고, 이를 명분으로 9월 24일 스페인은 칠레에 전쟁을 선포했다. 이로서 전쟁은 스페인 대 페루의 전쟁에서 스페인 대 칠레의 전쟁으로 옮겨간다.

기세좋게 선전포고를 한 것까진 좋았으나 스페인은 칠레 본토에 상륙시킬 병력이 없었다. 합쳐봐야 8척(...)의 선단에는 친차 제도 점령부대를 제외하면 상륙할 전투병력 따윈 존재하지도 않았다. 파레하 제독은 상륙 대신 칠레 전 해안에 대한 전면봉쇄를 선언하며 칠레 경제에 대한 타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칠레 해안이 워낙에 길어서(...) 겨우 8척의 선단으로 전면봉쇄는 절대 불가능했고, 대신 가장 핵심항구인 발파라이소 봉쇄에 집중했다. 해군력으로는 압도적이니 봉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1865년 11월 26일 스페인 선단은 파푸도 해전에서 패배했다. 칠레 해군은 코르벳 에스메랄다에 유니언 잭을 게양한 채 위장 접근하여 기습적으로 일제 사격을 실시하여 스페인 해군 스쿠너 코바둥가의 갑판을 제압하고, 일제히 도선하여 배를 나포했다.(...) 4명이 전사, 122명이 포로로 잡히고 파레하 제독의 서신이 노획되어 군사기밀이 노출된 건 덤. 이 충격적인 패전에 파레하 제독은 자살한다.

승전보와 함께, 협상과 칠레와의 연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페루 정부도 마침내 스페인에 결사항전을 선언하였다. 칠레와 페루 양국은 1865년 12월 5일 군사동맹을 체결한다. 페루는 칠레를 돕기 위해 증기 프리깃 2척이 포함된 해군 함대를 파견했고, 뒤이어 에콰도르도 1866년 1월 14일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 스페인 함대는 발파라이소 봉쇄를 중단하고 칠레-페루 연합함대와 전투를 시도하나 서로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은 채 교착상태로 종결되었다. 이후 기회를 엿보던 스페인 함대는 3월 31일 기습적으로 발파라이소로 돌아와 항만에 포격을 퍼붓고 33척의 상선을 격침시켰다. 이후 페루로 북상하여 페루 해군 연안선박 및 지상군과 대규모 교전을 한 번 더 펼쳤다.

길어진 전쟁에 남미의 반스페인 감정이 치솟아오르면서 볼리비아도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해왔고, 스페인 함대는 본국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전력투입도 제한적이라는 전면적 한계에 봉착했다. 스페인 본국의 새 정부도 이런 무의미한 전쟁을 더 지속하고 싶지 않았고 영국 또한 전쟁에 대해 외교적 압력을 가하고 있던 상태였다.[1] 더군다나 페루 정부가 전쟁 중이던 1865년 영국 정부에 주문한 장갑함이 1866년 말에 페루에 인도될 예정이었다. 스페인 해군의 입장에서 장갑함을 상대하려면 꽤 큰 손실을 감수해야 했는데, 배 한척이 아쉬웠던 스페인 입장에서 군함을 더 손실해야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결국 스페인 함대는 필리핀으로 철수하였고, 전쟁은 끝났다. 공식적인 종전협정은 한참 뒤에나 맺어졌다. 스페인은 1879년 페루 및 볼리비아, 1883년 칠레, 1885년 에콰도르와 각각 평화협정을 맺었다.

3. 여파

스페인이 리즈 시절의 폼을 완전히 잃었음이 입증되었다. 스페인 정부는 선박 4척 추가 파견 이후 추가적인 지원을 전혀 하지 못 했다. 애시당초 전쟁 자체도 우발적으로 일어났지만, 당시 스페인 본국 사정은 남미에서 전쟁을 치를 형편이 전혀 아니었다. 이 시기 스페인 본국은 이사벨 2세 치세의 말기로 국내외적으로 수많은 혼란에 빠져있었다. 외부에 군사개입을 할 여건이 아니었는데, 핀손 제독이 독단으로 무리수를 둔 것. 결국 이 우발적인 전쟁으로 스페인은 남미에서 어떻게든 유지해보려 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였고, 남미 국가들은 스페인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탈피하였다.

한편, 스페인에 맞서 형성된 남미 4국 연합군은 이후 서로 갈등을 빚어 칠레 vs 페루-볼리비아 연합군(태평양 전쟁), 그리고 먼 훗날 에콰도르-페루 전쟁을 치르게 된다. 특히 전자의 경우, 전쟁원인이 구아노로 친차 제도 전쟁과 비슷한데 전쟁에서 스페인에 맞서 싸우려고 산 페루 해군 철갑함이 칠레군에게 나포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랄까.

역사의 아이러니는 또 있는데, 바로 이 전쟁의 시발점을 연 루이스 핀손 제독. 그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제1차 항해 때 산타 마리아호를 제공하고 항해에도 동행한 핀손 형제의 직계 후손이다. 스페인의 아메리카 지배를 열었던 사람들의 직계 후손에 의해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배가 사실상 종결되는 일이 일어난 것.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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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끔 미국의 외교적 압력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시절 미국의 해군력은 유럽 열강들은 커녕 남미 국가들의 해군과도 일방적인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으며, 본토가 남북 전쟁으로 쑥대밭이 되던 터라 외교적 영향력은 미미했다. 미국-스페인 전쟁조차 스페인 군이 당시 쿠바와 필리핀에서 독립운동세력과 전투하느라 소모되던 상황이 아니었다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