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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르투갈어: Guerra da Restauração스페인어: Guerra de Restauración portuguesa
포르투갈 왕국과 스페인 사이의 전쟁.
2. 배경
그 기원은 15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포르투갈의 세바스티앙 1세 왕이 모로코 원정 중에 크사르 엘케비르 전투에서 후사 없이 전사하고, 세바스티앙의 숙부인 엔히크 1세 추기경이 환속 후 왕위에 올랐으나 역시 후사를 남기지 않고 사망한다. 결국 아비스-베자 왕조가 단절되자 아비스 왕조의 방계후손인 안토니우와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1]가 포르투갈 왕위 계승권을 주장했고 안토니우는 펠리페에게 쫓겨났다. 결국 펠리페 2세는 포르투갈의 왕위를 얻어 1580년 이베리아 연합을 만들었다.펠리페 2세는 포르투갈의 귀족들을 회유하기 위해 포르투갈에 광범위한 자치권을 부여했다. 포르투갈 귀족을 스페인 궁정에서 우대하는 한편, 리스본의 수도지위 유지와 포르투갈의 독자적인 법률, 통화, 정부조직의 유지를 약속했다. 이렇게 되어 포르투갈은 한동안 스페인의 지배하에 놓였다. 다만 본토가 아닌 아소르스 제도라든지 마카오 등지에서는 스페인 국왕을 포르투갈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60년간 지배를 거부하며 버텼다.
그러나 문제는 스페인의 펠리페 3세(재위 1598-1621) 때부터 불거졌다. 펠리페 3세는 이베리아 연합을 구성하고 있는 카탈루냐, 아라곤, 나바라, 포르투갈에 부여된 광범위한 자치권을 박탈하고 중앙집권화를 꾀하려 했다. 그리하여 포르투갈을 스페인의 한 주로 만들려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 뒤를 이은 펠리페 4세(재위 1621-1640[포르투갈] /1665[스페인])는 전비 조달을 위해 포르투갈 상인들에게 중과세를 때렸으며, 포르투갈 정부의 요직에 마드리드에서 파견한 스페인인이나 친스페인 성향의 포르투갈 귀족들을 등용해 포르투갈 국내에선 스페인에 대한 반감이 커져갔다.
게다가 경쟁관계였던 포르투갈 상선이며 무역소 등을 거슬리게 보던 네덜란드는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포르투갈을 공격했다. 당하는 포르투갈 입장에선 '다른 나라 전쟁에 억지로 끼어들어서 피 본다'는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3. 전개
이런 가운데 1637년, 포르투갈 중남부 지방인 에보라의 징세인의 집에 카탈루냐인들이 불을 지르면서 시작된 마누엘리뇨의 반란이 일어나자 스페인의 재상 올리바레스 백작은 포르투갈군까지 투입했지만 반감은 더욱 커져갔다. 스페인이 카탈루냐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매달리는 사이 포르투갈의 귀족들은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기로 결의하고 기회를 엿보았다.그리하여 마침내 1640년 12월 7일, 포르투갈 귀족들의 정예부대가 총독부가 있는 리스본의 히베이라 궁전(Paço da Ribeira)을 습격하여 포르투갈을 통치하던 만토바 공비 마르게리타 디 사보이아[4]를 구속한 뒤 스페인으로 추방하였고, 국민들의 원성의 대상이던 재상 미겔 드 바스콘셀루스는 체포해서 참살하고 그 시체를 히베이라 궁전 창 밖으로 던져버렸다. 당연히 이것으로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된 것에 불과했다.
이 공격을 주도한 귀족들의 대표 브라간사 공작이 리스본 총대주교 로드리구 다 쿠냐의 대관을 받아 주앙 4세로 등극하여 단절된 포르투갈의 왕위가 다시 계승되었다.[5] 주앙 4세의 즉위에 착안해 당시에는 이 전쟁을 포르투갈에서는 갈채 전쟁(Guerra da Aclamação[6])이라 칭했다. 주앙 4세는 바로 포르투갈의 독립을 선언했고 이에 반발한 스페인은 인정하지 않고 군대를 보냈고 포르투갈은 맞서 싸움에 따라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스페인은 포르투갈을 탈환하기 위해 무려 28년에 걸쳐 포르투갈과 전쟁을 벌였다. 포르투갈은 국내적으로는 주앙 4세에 반대한 친 스페인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밖으로는 스페인의 공세에 맞서야 했다. 포르투갈은 스페인을 견제하기 위해 올리버 크롬웰이 통치하던 청교도 혁명기의 잉글랜드와 동맹을 강화했다.[7]
이후 잉글랜드에서 왕정복고가 이루어지고 찰스 2세가 즉위하면서 포르투갈은 잉글랜드과 맺은 동맹을 갱신하고 스페인에 맞서기 위해 주앙 4세의 딸 카타리나를 찰스 2세에게 시집보내면서 양측의 동맹은 견고해졌고, 이는 포르투갈이 결국 스페인의 공세를 막는데 크게 작용했다.
4. 결과
결국 1668년, 스페인은 포르투갈을 제압하는데 실패했고 잉글랜드의 중재를 받아들여 리스본에서 강화조약을 체결하여 포르투갈과의 오랜 전쟁을 끝냈다. 이 조약에서 스페인은 포르투갈의 독립과 브라간사 왕조를 정식으로 승인하고 포르투갈 국왕 칭호를 포기했으며,[8] 포르투갈은 스페인에게 세우타를 할양했지만 그 밖의 국외 영토들은 모두 지켜냈다.그러나 동군연합의 후유증으로 스페인에 하나로 묶이는 바람에 과거 우호관계였던 네덜란드에게 향신료 산지인 동남아시아 식민지를 뺏긴 데다, 이 전쟁 이후 포르투갈의 잉글랜드-영국 의존도는 극도로 심해져서 포르투갈은 이후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찰스 2세와 카타리나가 결혼할 때, 지참금으로 포르투갈령이던 모로코의 탕헤르와 인도의 뭄바이를 잉글랜드에 할양했고, 잉글랜드는 이로 인해 인도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또 한 가지 이야기로는 이때 카타리나가 중국산 홍차를 혼수로 가져갔던 것이 잉글랜드에 유행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스페인에게도 좋은 결과는 아니었다. 포르투갈과 휘하의 식민지를 잃은 것은 둘째 치고, 문제는 이 전쟁이 30년 전쟁(과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와중에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이 전쟁 때문에 스페인은 스페인령 네덜란드로 충분한 지원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이는 최종적으로 30년 전쟁의 패전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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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바스티앙 1세의 친조부인 주앙 3세의 여동생인 포르투갈의 이자벨 공주는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와 결혼해 펠리페 2세를 낳았다. 또한, 세바스티앙의 어머니인 스페인의 후아나 공주는 펠리페 2세의 여동생이기도 하다. 즉, 펠리페 2세는 세바스티앙의 당숙이자 외삼촌에 해당한다.[포르투갈] [스페인] [4] 사보이아 공작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와 스페인의 카탈리나 미카엘라의 딸.[5] 혈통으로 따지면 브라간사 공작은 전 왕조인 아비스-베자 왕조의 후손이다. 다만 사생아 출신이어서 펠리페 2세가 포르투갈을 접수했을 때 계승권이 없었다. 사실 이전 왕조인 아비스 왕조도 보르고냐 왕조의 서출이었다. 보르고냐 왕조는 프랑스 왕국 카페 왕조 로베르 2세의 막내아들 로베르의 후손으로 카페 왕조의 분가였다. 보르고냐 왕조는 레콩키스타 시절에 포르투갈 왕가가 되었다. 한편 프랑스의 부르고뉴 공국은 이 가계였다가 가계가 끊기고 발루아 왕조로 이어져 발루아-부르고뉴로 불리는 가문이 통치하다가 합스부르크 가문에게 넘어갔다.[6] 환호, 갈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만장일치로 추인한다는 의미도 있다.[7]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은 1386년부터 동맹이었긴 했다. 포르투갈 왕국의 시작부터가 잉글랜드 십자군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이슬람 영역이었던 리스본을 점령하면서부터였다.[8] 다만 이 때 포르투갈 국왕의 겸임 작위인 알가르브 국왕 칭호는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포르투갈의 독립을 승인하며 포기한 포르투갈 국왕 칭호와 달리 알가르브 국왕 칭호는 현재도 스페인 국왕이 명목상 칭하는 작위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