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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영어: War of the Spanish Succession[1] 스페인어: Guerra de Sucesión Española 포르투갈어: Guerra da Sucessão Espanhola | ||
날짜 | ||
1701년 ~ 1714년 | ||
장소 | ||
유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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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232,000명 | 373,000명 |
결과 | ||
위트레흐트 조약 체결 | ||
영향 | ||
프랑스 왕국의 경제적 쇠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부상, 네덜란드 공화국의 열강 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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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라흐 공, 기쁜 일입니다.
내 평생 가장 기쁜 일입니다.
나는 당신과 헤어지는 것이 최고로 기쁘며, 가장 저명한 합스부르크 왕가를 떠납니다!
스페인의 아브란테스 공작이 스페인 주재 오스트리아 대사 하라흐 백작에게 한 말[6]
(1701년 ~ 1714년)에 걸쳐 유럽에서 발생한 국제적 전쟁.[7]내 평생 가장 기쁜 일입니다.
나는 당신과 헤어지는 것이 최고로 기쁘며, 가장 저명한 합스부르크 왕가를 떠납니다!
스페인의 아브란테스 공작이 스페인 주재 오스트리아 대사 하라흐 백작에게 한 말[6]
이 전쟁의 결과로 루이 14세의 둘째 손자가 펠리페 5세로 즉위하여 스페인-보르본 왕조가 성립되어 현재에 이른다.
2. 과정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의 마지막 왕인 카를로스 2세(1661~1700년)가 후사없이 병으로 위중해지자 후계자로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의 둘째 손자인 앙주 공작 필리프와 셋째 손자인 베리 공작 샤를,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레오폴트 1세의 차남 카를 대공, 바이에른 비텔스바흐 가문의 '요제프 페르디난트'[8]가 선상에 올랐다. 왜 후계자 후보가 네 명이나 되었냐면, 제1계승권자는 카를로스 2세의 외조카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안토니아(1669~1692, 바이에른 선제후비)였으나 그녀가 산후 후유증으로 갓난아기인 요제프 페르디난트를 남기고 일찍 사망한 뒤 남은 후계자 후보들이 모두 모계 계승권자[9]인지라 논란이 생긴 것이다.유럽 국가들은 루이 14세와 레오폴트 1세의 패권 야욕을 잘 알았고, 카를로스의 조카손자인 바이에른의 요제프 페르디난트를 왕위에 올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영향력을 줄이기로 했다. 9년 전쟁으로 프랑스 경제가 초토화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루이 14세는 또다른 전쟁으로 인한 경제 파탄을 막기 위해 이 문제에서는 어느 정도 양보를 하기로 결정했다.
1698년 초에 루이 14세는 프랑스 왕족이 스페인 왕위를 계승하고 해외 식민지 또한 계승한다는 조건 하에 스페인령 이탈리아 전체를 카를 대공에게 양도하고 스페인령 네덜란드는 바이에른에 넘기며 스페인 해외 식민지 무역권을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에게 넘기겠다는 제안을 윌리엄 3세에게 보냈으나 윌리엄은 이 제안이 프랑스에 지나치게 유리하다며 거부했다.[10]
제안이 거부당하자 루이는 차선책을 선택했다. 바이에른의 요제프 페르디난트에게 스페인 왕위를 준다는 것이었고 이 제안에 윌리엄은 동의했다.
1698년 말에 잉글랜드-네덜란드와의 헤이그 조약을 체결하면서 마침내 합의를 보았다.
- 헤이그 조약(1698년 10월 11일 체결)
- 요제프 페르디난트의 차기 스페인 왕위 계승자로 인정하며 스페인의 해외 식민지와 스페인령 네덜란드 역시 그대로 보유한다.
- 프랑스는 바스크 지방의 기푸스코아와 나폴리 왕국, 시칠리아 왕국을 가진다.
- 오스트리아는 밀라노 공국을 가진다.
그러나 카를로스는 스페인의 영토 분할에 강한 반감을 표했고 요제프 페르디난트를 스페인 왕위 단독 계승자로 지목한 뒤 타 국가들에 의한 자국의 영토 분할 논의를 모조리 무시해버린다. 그런데 1699년 요제프 페르디난트가 7살의 나이로 천연두로 병사(일각에서는 의문사를 제기함)하는 사고가 터지면서 이제 누가 스페인 왕위 계승자가 되느냐를 두고 다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갈등이 고조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전쟁을 피하고 싶었던 루이 14세는 1700년 런던 조약으로 잉글랜드-네덜란드와 두번째 합의를 보았다.
- 런던 조약(1700년 3월 24일 체결)
이 조약의 내용을 전해들은 카를로스 2세는 자국 영토만 갈라먹으려 드는 프랑스를 배제하고 같은 가문인 카를 대공을 후계자로 정하려고 했으나 같은 가문이랍시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만 편들었다가 온갖 험한 꼴을 다 본 뒤[11] 정나미가 떨어진 카스티야 귀족들이 앙주 공작을 지지하여 카를로스를 설득했고 또 당시 스페인의 해외 식민지를 열심히 들쑤시고 다니던 잉글랜드-네덜란드 해군 때문에 잉글랜드-네덜란드의 라이벌인 프랑스 해군 정도면 충분히 스페인 해외 식민지를 보호해줄 수 있다고 판단하여 1700년 10월 2일 앙주 공작 필리프를 스페인 왕위 계승자로 지정하며 스페인의 분할을 시도할 시 왕위 계승이 취소된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남기고 한 달만인 11월 1일에 사망했다. 그리하여 루이 14세의 둘째 손자 앙주 공작 필리프가 스페인 국왕 펠리페 5세로 즉위한다.
카를로스의 유언을 들은 루이 14세는 이 유언을 수락하는 순간 100% 전쟁 확정이었기 때문에 수락을 망설였으나 왕세자인 그랑 도팽 루이가 자신의 아들에게 스페인 왕위가 돌아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기 때문에 그랑 도팽의 뜻을 감안하여 유언을 수락하기로 결정한다. 애초에 카를로스의 유언장에서 프랑스와 스페인의 동군연합이 금지되어야 스페인 국왕이 된다고 명시해 놓았기 때문에 프랑스와 스페인이 통합될 가능성은 없었다. 그래서 스페인 왕위를 요구하는 오스트리아와는 달리 해양세력 네덜란드와 잉글랜드는 참전을 망설였다.
루이 14세 역시 카를로스 2세의 유언 수락은 그저 왕조와 자신의 손자를 위한 것이며 예전부터 루이 14세가 스페인의 알짜배기 영토인 저지대 지역과 이탈리아반도를 노렸음을 감안할 때 루이가 유언을 수락하면서 스페인의 영토 분할 금지에 동의한 것은 오히려 자신의 영토적 야심을 포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후 루이 14세의 조심성 없는 행동이 사단을 일으켰다.
우선 루이 14세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동시 왕위 계승을 금지한 카를로스 2세의 유언을 무시하고 펠리페 5세를 프랑스 왕위 상속이 가능하게 만들었는데 이것은 전 유럽이 프랑스가 혹시 스페인을 통합하는게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실 루이 14세는 두 나라를 통합할 마음이 전혀 없었고 만약에 왕세자 그랑 도팽 루이와 왕세손 프티 도팽 루이가 모두 죽는 참사가 발생했을 경우[12] 펠리페 5세가 스페인 왕위를 포기하고 프랑스 왕위를 계승한다는 목적으로 이를 계획했으나 문제는 루이 14세가 미쳤는지 이걸 프랑스 내에서만 알리고 잉글랜드, 네덜란드에게는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양세력의 의심은 더더욱 커져갔다.
여기에 루이 14세는 펠리페 5세에게 당시 스페인의 호수라고 할 수 있는 카리브해에서 독점적으로 노예 무역을 할 수 있는 권리인 아시엔토(Asiento)를 달라고 했고 이것은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상인들을 격노하게 만들었다. 또한 루이 14세는 프랑스-네덜란드 국경에 세워진 요새선에서 네덜란드인을 추방시키고 프랑스군을 채워넣었다. 여기에 더해 루이 14세는 명예혁명으로 쫓겨난 제임스 2세의 아들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를 잉글랜드 국왕으로 인정해버리는 대형사고를 쳤고 결국 두 해양세력은 루이 14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프랑스에 선전포고했다.
정작 루이 14세는 선전포고 소식을 받아들고 매우 당황했는데 자신은 프랑스와 스페인을 통합할 마음이 없는데 잉글랜드-네덜란드와의 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앞선 루이 14세의 조심성 없는 행동은 도저히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오스트리아는 당연히 앙주 공작 필리프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카를 대공이 즉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앞서 언급했듯이 루이 14세의 조심성 없는 행동으로 프랑스에게 적대적으로 변한 잉글랜드-네덜란드, 루이 14세의 지속적인 확장 야욕을 경계한 브란덴부르크, 스페인과 앙숙이자 잉글랜드와 오랜 동맹관계인 포르투갈, 스페인에서 독립하려는 카탈루냐, 프랑스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려던 사보이아 공국[13]이 오스트리아 편을 들어 참전하였다.
한편 프랑스-스페인 측에는 스페인 왕국 산하의 나폴리 왕국과 시칠리아 왕국이 참전했고, 합스부르크에서 분리를 시도했던 헝가리[14], 합스부르크 왕가를 제치고 자신이 황제로 선출되려 했던 막시밀리안 2세 에마누엘의 바이에른과 그 2중대격이었던 쾰른[15], 리에주 주교령 등이 가세했다.
여러 나라가 참전하면서 전쟁은 장기화되었다. 반(反) 프랑스-스페인 동맹에서는 잉글랜드가 해전에서 절대 우위를 보이며 프랑스의 무역과 식민지를 위협하여 프랑스에 강한 압박을 가했다. 국제적으로 프랑스를 압박하여 빠르게 굴복시키고 루이 14세의 팽창을 막고자 한 것이다. 블렌하임, 라미예, 토리노, 오우데나르데 등 주요 전투에서 참패한 프랑스는 대기근까지 들어 스페인 왕위를 포기한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동맹국은 루이가 이때까지 정복한 영토들을 거의 다 반환하라고 했고 프랑스는 여기에 동의하였으나 루이가 자신의 손자를 몰아내라는 모욕적인 요구에 협상을 거부하고 전쟁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동맹군은 파리를 노렸으나 프랑스의 요새망에 걸려 좀처럼 파리로 가지 못했다.
여기에 전황을 반전시킨 세 가지의 일들이 있었다.
먼저, 인구가 많은 카스티야 귀족들이 펠리페 5세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며 이베리아반도에서 카를 대공이 점차 밀리게 된 데다가 마드리드를 카를 대공이 점령한 뒤 무책임한 후속 조치로 카스티야인들의 반감이 더 심해져 마드리드를 도로 내줘야 했고 방돔 원수가 이끄는 프랑스 증원군이 도착해 스페인군과 함께 동맹군을 브리우에가에서 격파하며 이베리아반도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쥐었고 결국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스페인을 되찾기 힘들다고 판단한 영국이 브리우에가 전투 이후 프랑스와 단독협상에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두 번째로 휘그당이 1710년 선거에서 참패하고 전쟁을 끝내려는 토리당이 집권했다. 토리당은 네덜란드가 전쟁에서 플란데런을 사실상 지배하고 해외 무역에서 위협이 될 것을 우려한데다가 유럽 전쟁에 열성적인 휘그당과 달리 토리당은 해외 무역과 카를 대공이 카탈루냐만 차지하고 있는 것에 중점을 두고 프랑스와의 전쟁을 1710년 말부터 종결하려고 시도했다.
마지막으로 1711년 4월에 요제프 1세가 사망해서 영국이 협상에 나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말이 많지만 사실이 아니다. 이미 1710년 말부터 협상은 시작되었고 요제프의 사망은 그저 이미 협상을 시작한 영국을 더욱 더 평화로 모는 자극제가 되었을 뿐이다.
토리당은 프랑스에게 스페인 왕위 계승을 지지하는 대가로 스페인과 프랑스가 이후에 하나의 왕이 다스리는 일이 절대 없도록 할 것과 수익성 있는 해외 식민지를 받기를 원했고 프랑스는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협상 중 충격적인 일들이 일어났다. 1711년 왕세자 루이가 사망하고 이듬해 왕세손 루이마저 죽자 펠리페 5세가 프랑스 왕위에 오를 확률이 높아졌고 영국과 프랑스는 펠리페 5세가 스페인 국왕으로 남고 프랑스 왕위를 영구적으로 포기하거나 스페인 왕위를 사보이아 공작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에게 넘기고 펠리페는 사보이아 공국을 다스리다 왕세손 루이의 아들 루이가 죽을 경우 사보이아 공국을 프랑스에 합병함과 동시에 펠리페가 프랑스 왕이 되도록 하는 안을 펠리페에게 보냈다. 펠리페는 자신의 프랑스에 대한 권리가 포기되는 것에 분노했으나 어쩔 수 없이 조약에 서명했다. 그리고 펠리페는 스페인 왕으로 남는 안을 선택했다. 그러나 위트레흐트 조약에 서명한 뒤에도 프랑스의 왕이 되려는 펠리페의 욕심은 끝나지 않았고 결국 나중에 영국과 프랑스, 오스트리아를 모두 같은 편으로 만드는 사국 동맹 전쟁을 일으킨다.
영국의 단독협상 중에 프랑스 북부 전선은 붕괴 위기였다. 말버러 공이 파리를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그러나 말버러 공은 토리당과 앤 여왕에 의해 실각했고 영국군은 이탈했다. 그러나 외젠이 이끄는 동맹군은 다시 파리를 위협했고 파리가 위태로워지자 루이 14세는 빌라르 원수에게 일이 틀어지면 자신이 직접 싸우다 죽겠노라고 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 드냉의 기적으로 부르는 드냉 전투가 일어났고 빌라르 원수는 대승을 거두었다. 드냉의 기적으로 프랑스는 북부 전선에서 다시 우세를 점했고 손실이 너무 컸던 네덜란드는 전쟁에서 이탈하기로 결정했다. 홀로 남은 오스트리아도 평화를 원하면서 프랑스와 스페인은 길고 긴 전쟁을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3. 결과
1713년에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에서 위트레흐트 조약이 체결되었다.영국은 유럽에서 지브롤터와 메노르카[16]를 얻어 지중해에서 영국 해군이 활동할 거점을 확보하였으며, 이 중 지브롤터는 21세기까지도 영국의 주요한 요충지로서 기능하고 있다. 또한 북미에서는 요충지인 아카디아와 뉴펀들랜드를 얻어 프랑스령 캐나다를 포위했고 허드슨 만 지역도 얻으면서 모피 교역이 더 수월해졌다.
네덜란드는 자국 영토가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대프랑스용 완충지대 역할이던 스페인령 네덜란드가 주인만 오스트리아로 바뀐채 그대로 유지되었고 프랑스령 플란데런의 주요 요새선인 이퍼르, 투르네, 니우포르트 등이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에 할양되어 완충지대의 방어가 더욱 굳건해지는 소소한 이득을 얻었다.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가 차지하고 있던 사르데냐 왕국, 나폴리 왕국의 왕위는 오스트리아에게 넘어가면서 스페인의 지중해 영향력은 대폭 축소되었고 지중해 최후의 거점이던 시칠리아 왕국까지 사보이아 공국에게 넘어갔다.[17] 또한 높은 세수를 자랑하던 스페인령 네덜란드[18]가 오스트리아에게 할양되면서 재정위기를 겪어야 했고 지중해의 입구인 지브롤터를 영국에게 내주게 되면서 영국이 지중해와 대서양을 이어주는 유일한 해로를 틀어쥐게 되었다.
4. 영향
영국은 말버러 공작(존 처칠)의 맹활약 덕분에 가장 큰 이득을 보게 되었다. 기존의 영국령 캐나다와 새로 얻어낸 노바스코샤, 뉴펀들랜드를 기점으로 향후 7년 전쟁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승리해 캐나다를 석권하게 되었고, 지브롤터를 얻음으로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영국의 지중해 방면으로의 영향력 투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만약 토리당이 스페인보다 프랑스를 억제하는 전쟁을 우선시했을 경우 프랑스는 재정위기로 전쟁을 중단해야 할 상황이었을 정도로 프랑스를 압도한 영국은 이 전쟁에서 전 유럽에 영국의 강력함을 과시했다.가장 큰 피해를 본 건 영토 대부분이 직접적인 전쟁터가 된데다 지중해-이탈리아 일대의 영토를 대거 상실한 스페인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사실 스페인은 이후에 얼마 못가 금방 세력을 회복했기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네덜란드였다. 장벽이 약간 넓어진 것 빼고는 아무런 영토적, 경제적 이익을 얻지 못했고 돈과 인력은 많이 썼는데 이득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후로 네덜란드는 유럽 열강에서 탈락했고 약소국으로 전락했다.
오스트리아 대공국 입장에서는 같은 합스부르크 왕조 소유였던 스페인이 라이벌인 부르봉 왕조로 넘어갔지만,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가 차지하고 있던 이탈리아 영토인 밀라노 공국, 나폴리 왕국, 시칠리아 왕국을 차지하여 영토상으로는 가장 큰 이익을 얻었다. 어차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는 스페인 왕위에 별 관심이 없었다. 가장 열망했던 이탈리아 영토를 얻었으니 알짜배기만 건진 셈이다.
다만 나폴리 왕국과 시칠리아 왕국을 비롯한 이탈리아 남부지방은 1735년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 결과 스페인이 다시 탈환했다. 스페인 펠리페 5세의 5남 카를로스가 프랑스, 사르데냐와 연합하여 이탈리아 남부의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하고 시칠리아 국왕(카를루 5세), 나폴리 국왕(카를로 7세)으로 즉위했다. 카를로스가 1759년 스페인의 카를로스 3세로 즉위하면서 이곳은 카를로스의 삼남 페르디난도가 승계받아 스페인 보르본 왕가의 지배가 계속 이어진다.
프랑스는 200여년 동안 프랑스를 괴롭혔던 합스부르크 포위망을 탈출했고 스페인에 부르봉 왕조를 안착시켰기 때문에 전쟁 목표를 완벽히 달성했으나 재정적으로 너무나 큰 손실을 입었고 한동안 내부 안정에 주력해야 했다.
이 전쟁이 불러온 최대의 나비효과는 왕국으로 선포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과 사보이아 공국이다. 브란덴부르크는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과 프로이센 공국을 통합하여 단일 프로이센 왕국의 초대 국왕 프리드리히 1세로 즉위했고 본격적으로 유럽 무대에 등장하였다.
사보이아 공국 또한 이 전쟁으로 얻은 시칠리아를 오스트리아가 얻은 사르데냐와 교환하고[19] 본격적으로 사르데냐 왕국이란 국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150여년 후 근대 내셔널리즘의 중심에 서게 된 왕가들을 만들어낸 전쟁으로, 두 나라는 각각 독일 제국과 이탈리아 왕국으로 발전했다.
5. 기타
그리고 약 26년 뒤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가 끊어지면서 모계 후손인 합스부르크로트링겐 가문이 신성 로마 제국 내의 영지를 승계 받는 것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1740년~1748년)이 벌어지게 된다.[20]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막바지에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루이 14세는 스페인 왕위도 그동안 차지한 점령지도 모두 포기할테니 필리프를 나폴리와 시칠리아 국왕만이라도 삼아달라는 조건으로 화평을 제의했는데 기세등등한 네덜란드, 영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은 프랑스에게 평화조건 40개를 제의했다. 모두 프랑스 입장에선 가혹하다고 할 수 있던 평화조건이었지만 그 중 스페인에 있는 필리프를 더 이상 지원해선 안 된다는 요구조건을 보고 "내가 전쟁을 해야 한다면 나는 적들과 할 것이다. 상대는 나의 손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는 태양왕이자 절대왕정의 상징이었던 루이 14세는 놀랍게도 프랑스 백성들에게 대자보를 썼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개인적인 희생을 치르고 명예가 훼손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내 백성들에게 필요한 평화를 곧바로 얻기 위해서는 내 성품에 맞지 않는 일이라도 기꺼이 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우리 스스로 지킬 준비를 하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대안도 더이상 찾을 수 없다.
나는 우리 프랑스를 누르기 위해 무력과 책략으로 모인 모든 힘보다도 통일된 프랑스가 더 강력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분의 도움을 청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 대결에는 여러분의 안전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힘을 모은다면 적은 우리가 결코 부당하게 대우받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나는 우리 프랑스를 누르기 위해 무력과 책략으로 모인 모든 힘보다도 통일된 프랑스가 더 강력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분의 도움을 청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 대결에는 여러분의 안전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힘을 모은다면 적은 우리가 결코 부당하게 대우받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왕이 직접 백성들에게 도움을 호소하는 대자보의 파급력은 엄청나서 많은 돈과 지원병을 모을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프랑스의 클로드 루이 엑토르 드 빌라르 장군은 말플라케 전투를 치름으로써, 위기를 모면 할 수 있었다.
6. 주요 전투 목록
- 카르피 전투
- 키아리 전투
- 크레모나 전투
- 루차라 전투
- 카디스 전투
- 프리들링겐 전투
- 비고 만 해전
- 에케렌 전투
- 회흐슈테트 전투
- 셸렌베르크 전투
- 블레넘 전투
- 말라가 해전
- 카사노 전투
- 칼치나토 전투
- 라미예 전투
- 토리노 공방전
- 알만사 전투
- 오우데나르데 전투
- 릴 공방전
- 말플라케 전투
- 드냉 전투
- 바르셀로나 공방전
7. 참고문헌
Rule, J. C., Trotter, B. S. (2014). A World of Paper: Louis XIV, Colbert de Torcy, and the Rise of the Information State. Canada: McGill-Queen's University Press.국제정치의 탄생(양장본 HardCover). (2018). 대한민국: 북코리아.
Chartrand, R. (2021). The Armies and Wars of the Sun King 1643-1715: Volume 4 - the War of the Spanish Succession, Artillery, Engineers and Militias. United Kingdom: Helion.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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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전쟁 ,1803 ~ 1815, | 프랑스 제1제국 | ||
제2차 영국-마라타 전쟁 ,1803 ~ 1805, | 마라타 제국 | ||
미영전쟁 ,1812 ~ 1815, | 미국 | ||
제3차 영국-마라타 전쟁 ,1817 ~ 1818, | 마라타 동맹 | ||
제1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1839 ~ 1842, | 아프가니스탄 아미르국 | ||
제1차 아편전쟁 ,1840 ~ 1842, | 청나라 | ||
영국-시크 전쟁 ,1845 ~ 1849, | 시크 왕국 | ||
크림 전쟁 ,1853 ~ 1856, | 러시아 제국 | ||
태평천국의 난 ,1850 ~ 1864, | 태평천국 | ||
제2차 아편전쟁 ,1856 ~ 1860, | 청나라 | ||
영국-페르시아 전쟁 ,1856 ~ 1857, | 이란 숭고국 | ||
세포이 항쟁 ,1857 ~ 1858, | 세포이 반란군 무굴 제국 | ||
사쓰에이 전쟁 ,1863 ~ 1864, | 사쓰마 번 | ||
시모노세키 전쟁 ,1863, | 조슈 번 | ||
제2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1878 ~ 1880, | 아프가니스탄 아미르국 | ||
줄루 전쟁 ,1879, | 줄루 왕국 | ||
제1차 보어 전쟁 ,1880 ~ 1881, | 트란스발 공화국 | ||
마흐디 전쟁 ,1881 ~ 1899, | 마흐디국 | ||
영국-이집트 전쟁 ,1882, | 아라바 파샤 반란군 | ||
영국-잔지바르 전쟁 ,1896, | 잔지바르 술탄국 | ||
파쇼다 사건 ,1898, | 프랑스 제3공화국 | ||
제2차 보어 전쟁 ,1899 ~ 1902, | 트란스발 공화국 | ||
의화단의 난 ,1900 ~ 1901, | 의화단 청나라 | ||
티베트 침공 ,1903 ~ 1904, | 청나라 | ||
제1차 세계 대전 ,1914 ~ 1918, |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 헝가리 오스만 | ||
러시아 내전 ,1918 ~ 1920, | 소비에트 러시아 극동 공화국 | ||
아일랜드 독립전쟁 ,1919 ~ 1921, | 아일랜드 공화국 | ||
제3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1919, | 아프가니스탄 아미르국 | ||
터키 독립전쟁 ,1919 ~ 1923, | 튀르키예 대국민회의 | ||
제2차 세계 대전 ,1939 ~ 1945, | <colbgcolor=#012169> 서부 전선 ,1939 ~ 1945, |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1943 | |
북아프리카 전역 ,1940 ~ 1943, | 이탈리아 왕국 나치 독일 비시 프랑스 | ||
동아프리카 전역 ,1940 ~ 1941, | 이탈리아 왕국 | ||
영국-이라크 전쟁 ,1941, | 이라크 왕국 | ||
페르시아 침공 ,1941, | 이란 제국 | ||
태평양 전쟁 ,1941 ~ 1945, | 일본 제국 태국 버마국 자유 인도 임시정부 | ||
그리스 내전 ,1944 ~ 1948, | 그리스 공산당 | ||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1945 ~ 1946, | 인도네시아 | ||
말레이시아 비상사태 ,1948 ~ 1960, | 말레이시아 공산당 | ||
6.25 전쟁 ,1950 ~ 1953, | 북한 소련 중국 | ||
제2차 중동전쟁 ,1956, | 이집트 | ||
제1차 대구전쟁 ,1958 ~ 1961, | 아이슬란드 | ||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대치 ,1963 ~ 1966, | 인도네시아 | ||
아덴 비상사태 ,1963 ~ 1967, | NLF FLOSY | ||
베트남 전쟁 ,1964 ~ 1975, | 북베트남 | ||
제2차 대구전쟁 ,1972 ~ 1973, | 아이슬란드 | ||
제3차 대구전쟁 ,1975 ~ 1976, | 아이슬란드 | ||
포클랜드 전쟁 ,1982, | 아르헨티나 | ||
걸프 전쟁 ,1990 ~ 1991, | 이라크 쿠웨이트 공화국 | ||
보스니아 전쟁 ,1992 ~ 1995, | 유고슬라비아 | ||
코소보 전쟁 ,1999, | 유고슬라비아 | ||
시에라리온 내전 ,2000 ~ 2002, | RUF 라이베리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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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8102E> 제1차 빈 공방전 ,1529, | <colbgcolor=#f5f5f5,#191919> | ||
30년 전쟁 ,1618 ~ 1648, | |||
제2차 빈 공방전 ,168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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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1701 ~ 17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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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9900> 네덜란드 독립전쟁 1568 ~ 1648 | <colbgcolor=#fff,#191919> 스페인 제국 | ||
네덜란드-포르투갈 전쟁 1601 ~ 1661 | 포르투갈 왕국 | ||
30년 전쟁 1618 ~ 1648 | 신성 로마 제국 스페인 제국 폴란드-리투아니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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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국 동맹 전쟁 1719 ~ 1720 | 스페인 제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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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1941 ~ 1945 | <colbgcolor=#ff9900> 서부전선 1940 ~ 1945 |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1943 비시 프랑스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 |
태평양 전쟁 1941 ~ 1945 | 일본 제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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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6600> 네덜란드-포르투갈 전쟁 ,1602 ~ 1663, | <colbgcolor=#fff,#191919> 네덜란드 공화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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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쟁 ,1618 ~ 1648, | 네덜란드 공화국 오스만 제국 프랑스 왕국 잉글랜드 왕국 스웨덴 제국 | ||
프랑스-스페인 전쟁 ,1635 ~ 1659, | 프랑스 왕국 | ||
포르투갈 독립 전쟁 ,1640 ~ 1668, | 포르투갈 왕국 | ||
프랑스-네덜란드 전쟁 ,1672 ~ 1678, | 프랑스 왕국 스웨덴 제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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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 ,1733 ~ 1735, | 합스부르크 왕조 러시아 제국 프로이센 왕국 | ||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1740 ~ 1748, |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신성 로마 제국 네덜란드 공화국 러시아 제국 | ||
7년전쟁 ,1754 ~ 1763, | 프로이센 왕국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포르투갈 왕국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샤움부르크리페 공령 | ||
미국 독립 전쟁 ,1775 ~ 1783, | 영국 | ||
프랑스 혁명 전쟁 ,1793 ~ 1802, | 프랑스 제1공화국 → 영국 신성 로마 제국 네덜란드 공화국 러시아 제국 | ||
나폴레옹 전쟁 ,1803 ~ 1815, | 프랑스 제1제국 | ||
스페인령 아메리카 독립 전쟁 ,1808 ~ 1833, | 리오데라플라타 볼리비아 칠레 그란콜롬비아 멕시코 페루 파라과이 | ||
멕시코 재정복 시도 ,1821 ~ 1829, | 멕시코 공화국 | ||
코친차이나 원정 ,1858 ~ 1862, | 대남국 | ||
스페인-모로코 전쟁 ,1859 ~ 1860, | 모로코 | ||
도미니카 복원 전쟁 ,1863 ~ 1865, | 도미니카 공화국 | ||
친차 제도 전쟁 ,1865 ~ 1866, | 칠레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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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혁명 ,1896 ~ 1899, | 카티푸난 필리핀 혁명군 미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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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프니 전쟁 ,1957 ~ 1958, | 모로코 | ||
녹색행군 ,1975, | 모로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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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전쟁 ,1992 ~ 1996, | 유고슬라비아 | ||
코소보 전쟁 ,1999, | 유고슬라비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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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북방 전쟁 ,1656 ~ 1660, | <colbgcolor=#f5f5f5,#191919> 폴란드-리투아니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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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쟁 ,1754 ~ 1763, | 프랑스 왕국 합스부르크 제국 러시아 제국 스웨덴 스페인 제국 | ||
바이에른 계승 전쟁 ,1778 ~ 1779, | 합스부르크 제국 | ||
프랑스 혁명 전쟁 ,1792 ~ 1795, | 프랑스 제1공화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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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미에서는 앤 여왕의 전쟁(Queen Anne's war)이라고 불린다.[2] 1707년 연합법의 승인으로 스코틀랜드 왕국과 잉글랜드 왕국이 통합되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출범함[3] (1703~)[4] 스페인과 동군연합. 그러나 스페인이 패전하여 나폴리 왕위는 합스부르크 왕가로 넘어간다.[5] (~ 1703)[6] 생시몽 공작의 회고록[7] 이 전쟁과 관련된 분쟁으로 헝가리의 라코치 독립 전쟁, 프랑스 남부의 세벤 전쟁, 북미의 앤 여왕 전쟁, 인도에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일부 지역에서 일어난 소규모 분쟁 등이 있다.[8] 마르가레타 테레사(카를로스 2세의 친누나, 이미 사망)와 레오폴트 1세의 외손자로 카를 6세의 외조카이다. 요제프 페르디난트의 어머니 마리아 안토니아는 바이에른 선제후 막시밀리안 2세 에마누엘과 결혼한 후 요제프 페르디난트를 낳고 죽었다.[9] 다만, 카를 대공의 경우 부계로도 계승권이 있으나, 부계 계승권자로서는 촌수가 상당히 멀었고, 실제로 촌수와 항렬로 따지면 가장 후순위 후보였다. 그 대신 카를 대공의 경우 세 후보 중 유일하게 스페인 왕가와 같은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이었다.[10] 황당하게도 윌리엄이 거부한 이 제안은 훗날 위트레흐트 조약에서 거의 유사하게 실현된다.[11] 당장 오스트리아 편을 들어 참전한 9년 전쟁에서도 경제가 파탄나 1692년 파산을 선언해야 할 지경이었다.[12] 그리고 이 우려는 두 사람 다 루이 14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1년 간격으로 연달아 세상을 떠나면서 현실이 되었다. 맏증손자 브르타뉴 공작 루이도 이때 죽었지만 둘째 증손자 루이 15세가 있었기에 프랑스 왕실의 대가 끊기는 참사는 피했다.[13] 원래 사보이아 공국은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의 처가가 부르봉 왕가여서 초창기에는 프랑스 편을 들어 참전했으나,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의 6촌인 사부아 공자 외젠이 오스트리아군을 이끌고 오자 프랑스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합스부르크 왕가 편으로 이탈했다.[14] 단, 헝가리 왕국을 독립시키려던 라코치 페렌츠 2세가 이끄는 쿠루츠 봉기군 한정이었고, 실제 헝가리 귀족들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를 지지했다.[15] 당시 쾰른 선제후를 바이에른 비텔스바흐 가문에서 숙질계승으로 준 세습하고있었다.[16] 발레아레스 제도의 섬으로, 이후 7년 전쟁 중에 프랑스가 잠시 차지하였다가 영국이 다시 회복하였고, 미국 독립 전쟁 중에 스페인이 프랑스와 연합하여 탈환하였는데, 프랑스 혁명 전쟁 중에 영국이 또다시 점령하였다가 아미앵 조약으로 최종적으로 스페인 영토로 확정되었다. 나중에 영국은 메노르카를 대신할 지중해 거점으로 몰타를 얻어 아주 요긴하게 써먹는다.[17] 이후 사르데냐와 시칠리아 일대는 사국 동맹 전쟁 이후 오스트리아가 반강제적으로 사보이아 공국과 맞바꾸기를 하게 되면서 사보이아 공국이 샤르데냐 왕국을 지칭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시초가 된다.[18] 현재의 벨기에와 룩셈부르크[19] 사실상 오스트리아의 강요로 인해 교환했다. 다만 시칠리아는 이후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으로 인해 다시 스페인 부르봉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된다.[20]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세습 영지는 오스트리아 대공국, 보헤미아 왕국, 헝가리 왕국, 크로아티아 왕국이었는데 이 중 문제가 된 지역은 신성 로마 제국 내에 속한 오스트리아 대공국과 보헤미아 왕국이었다. 헝가리 왕국과 크로아티아 왕국은 신성 로마 제국 바깥의 합스부르크 왕가 세습지였고 왕위 계승은 선출제(였으나 사실상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 사람만 후보로 오를 수 있는 구조여서 큰 의미는 없었다)여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