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87년, 김태영 감독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내용으로 찍은 영화.1987년 10월 이화여대 앞 청파소극장에서 처음으로 상영되었고, 독일과 이탈리아의 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한국 내에서는 정부의 탄압으로 널리 상영되지 못하고, 결국 1994년 발생한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 사고로 인해 감독의 집이 불에 타버려 원본 필름이 소실되고 만다. 다행히도 개봉 프린트와 비디오로 기록된 복사본이 있는지라 영화진흥위원회가 2006년 발매한 <매혹의 기억, 독립영화 Vol. 1(1970~80년대)>에 수록되어 있다.
1989년에 보안사에 의해 상영 금지된 황무지의 앞부분에 합쳐져 '황무지 5월의 고해'라는 이름으로 2020년 재상영되었다.
합본을 보면, 칸트씨의 발표회는 피해자의 시점, 황무지는 동원된 가해자의 시점으로 5.18 민주화운동이 남긴 상처를 묘사한다.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멋지게 건설한 지하철과 처참하게 부서진 판자촌[1]을 대비시켜 당시 정부의 강압적인 동원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내용과 시대 배경을 보면 감독과 출연진 모두 목숨을 걸고 만든 영화다.
두 편 모두 배우 조선묵이 주연으로 분했다.
2. 줄거리
리뷰1980년대의 어느 날, 사진작가 윤태가 촬영을 하던 중 우연히 한 남자를 발견한다. 그는 남루한 옷차림에 가방을 메고 있으며, 손에는 태극기를 들고 서울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호기심을 느낀 윤태는 그를 따라다니게 된다. 그는 '칸트 씨''라는 요상한 별명을 가진 사람이었다. 칸트 씨는 성당 등지를 다니면서 그곳에 보초를 서고 있는 군인들과 접촉하기도 하고[2] 카메라를 든 사진작가 앞에서 이상한 말[3]을 지껄이기도 한다. 따라다니면서도 그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사진작가는 우연히 그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실종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4]
그러던 중 칸트 씨는 자신이 자주 만나던 군인들이 있는 성당 근처에 간다. 마침 경찰서의 한 경장이 순시를 나와있던 차에 그는 군인과 경찰에게 "주방장 자리를 구하는데 하나 있느냐"고 말하곤 가방에 토슈즈를 꺼내 경장의 뺨을 때린다.[5] 이 일로 칸트 씨는 붙잡혀 가고, 신원조회에서 1980년 행방불명자인 것이 밝혀진다. 칸트 씨는 면회도 불가능하고 칸트 씨에 대한 그 어떤 접근조차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 처한다. 횡설수설하긴 해도 기본적으로 선하고 순수한 칸트 씨와 그동안 정이 들었던 군인들은 그를 구해주지 못함을 안타까워 한다.
한편, 사진작가는 칸트 씨의 사진을 들고 칸트 씨를 만나러 가지만 칸트 씨가 붙잡혀 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냥 돌아온다. 이후 칸트 씨의 사진을 토대로 '자유'라는 이름의 사진전을 열지만, 얼마 가지 않아 30대 초반의 남자가 저수지에서 비닐에 쌓인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뉴스 속보[6]가 들려온다.
3. 출연진
- 조선묵 : '칸트 씨' 역
- 김명수(배우) : 군인1 역
- 남희섭 : 군인2 역
- 서갑숙 : 여자 역
- 김윤태 : 사진작가 역
[1] 실제로 당시 강제철거된 상계동에서 촬영했다.[2] 칸트 씨가 본인을 대통령이라며 떠벌리자, 군인 하나가 화가 나서 그를 검문한다. 헌데 그가 가지고 있던 가방 안에서는 어느 여성의 사진(5.18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것을 암시하는 칸트씨의 누이)과 토슈즈가 나온다. 이를 본 군인은 그에게 측은한 표정을 보인다.[3] 예를 들면 주어도 없이 누군가의 젖가슴을 두부 자르듯 잘랐다는 끔찍한 말이다.[4] 영화 중간에 가면 칸트 씨가 고문을 당하는 장면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사진과 영상이 나온다.[5] 토슈즈가 5.18 민주화운동으로 사망한 누이의 유품임을 생각해보면 죽은 자의 희생을 통한 산 자의 저항으로 공권력에 맞선다는 해석이 가능하다.[6] 5.18 민주화운동 관련 정보를 은폐, 조작하던 당시의 정황으로 볼 때, 행불자인 칸트 씨가 국가기관에 의해 살해되었음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