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22:26:57

조철현

5.18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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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광주대교구 몬시뇰
조철현 (비오)
曺哲鉉 | Cho Chul-hyun (Pius)
파일:201609211757534354_2.jpg
본명 조철현
출생 1938년 4월 1일[A]
전라남도 나주군 본량면 북산리
(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북산동 369-1)
사망 2016년 9월 21일 (향년 78세)
천주교 성 요한 병원 호스피스 병동[2]
묘소 전라남도 담양군 소재 천주교 묘지
본관 창녕 조씨[3]
친인척[4] 조카 조영대 신부
성직자 경력 1969년~2016년
학력 대건신학대학[5] 졸업
종교 가톨릭 (세례명: 비오 Pius)
통칭 조비오 신부

1. 개요2. 생애3. 여담

[clearfix]

1. 개요

"내가 아무리 성직자지만 나에게도 M16이 주어져 있다면 (계엄군을 향해) 쏘고 싶은 심정이었다."
1988년 광주 청문회 당시, 위의 영상 4분 지점부터 해당 증언이 등장한다.
대한민국가톨릭 성직자.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 몬시뇰이다.

세례명은 '비오(Pius)'로, 흔히 본명인 조철현(曺哲鉉) 대신 '조비오 신부'로 불린다.[6] 본관은 창녕(昌寧).

2. 생애

1938년[A] 4월 1일 전라남도 나주군 본량면 북산리(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북산동 369-1번지)에서 태어나#, 흔히 광주신학교라고 불리던 광주 소재 대건신학대학[8]을 졸업하고 1969년 사제품을 받았는데, 광주신학교에서 처음으로 배출한 2명의 사제 중 한 명이다. 이후 전남 나주성당에서 사목활동을 시작했고, 예수의 소화(小花) 수녀회를 창립하였다.

1980년 5·18 민주항쟁에 참여하였는데 당시에는 소위 온건·수습파로서 시민군에게 “광주 시민의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무기를 내려놓아야 한다”며 무릎 꿇고 호소하였으며, 1980년 5월 26일에는 오전 9시 광주를 무력진압하려는 계엄군을 막기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맨손으로 일명 '죽음의 행진'에 나섰다. 이후 김대중 등과 함께 구속 기소되어 4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후에 영화 화려한 휴가의 '김 신부'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1989년부터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 이사장,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초대 5.18 기념재단 이사장, 2000~2002년까지 학교법인 조선대학교 관선이사장을 각각 지냈으며, 5·18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했다. 또한 광주항쟁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증언하였다.[9]

2008년 1월 16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몬시뇰 칭호를 받았다.

2016년 9월 21일 천주교 성 요한 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췌장암으로 사망하였다(향년 79세). 광주 5.18 금남로 문화전당, 구 전남도청 분수대가 있는 5.18의 현장에서 영결식이 거행되었고, 전남 담양군 소재 천주교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사망 1년 뒤인 2017년 출판된 전두환 회고록을 통하여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헬기 사격을 증언한 조비오 신부를 지칭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서술함에 따라, 조비오 신부의 조카인 조영대 신부가 전두환을 사자명예훼손죄로 고소하였고,[10] 검찰은 수사를 거쳐 전두환을 채수양 검사가 기소하였다. 2020년 11월 30일 광주지방법원 형사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는 전두환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법률신문 기사 판결문 전문, 판결문 전문, 다른 버전 그러나 항소심이 진행되던 중인 2021년 11월 23일 전두환이 사망하면서 해당 사건은 공소기각으로 종결되었다.

이와 별개로 광주고등법원전두환 회고록의 5·18민주화운동 관련 서술 중 '북한군 개입설', '계엄군의 헬기사격', '시위대 장갑차에 의한 계엄군 사망', '전두환의 5.18 책임 부인', '암매장' 등 총 51곳의 표현을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판단하고, 출판자인 전재국(전두환의 장남)에 대하여 이를 삭제하지 않고는 회고록을 출판·배포 등을 할 수 없도록 명했다.'전두환 회고록'의 5·18단체 등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광주고등법원 2018나24881 판결), 광주고등법원 2022. 9. 14. 선고 2018나24881, 2018나24898(병합) 판결문 전문

3. 여담

  • 생전에 3차례에 걸쳐 전재산을 광주인권평화재단에 기부하였는데, 사망 당시 통장 잔고는 0원이었으며, 유품은 낡은 옷과 이부자리, 책장 2개를 차지한 책 400여 권뿐이었다고 한다. 이 책들은 유언에 따라 전부 고인이 이사장을 맡았던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에 기증되었다.
  • 저서로는 5.18 당시 경험을 서술한 <사제의 증언>(1994), 5.18 당시 광주에 있던 다른 성직자들과 공저한 <저항과 명상>(1989)이 있다.
  • 천주교 광주대교구 조영대 프란치스코 신부가 그의 조카이다. 때문에 조비오 신부 관련 인터뷰나 영상에 자주 출연한다.


[A] 일부 자료에는 1936년 혹은 1937년으로 기록되어 있다.[2] 췌장암 투병으로 인하여 사망하였다.[3] 26세손 현(鉉) 호(鎬) 종(鐘) 항렬.[4] 천주교의 종교인 및 성직자는 독신이어야 하며 자식이 없는 것이 원칙이다.[5]광주가톨릭대학교[6]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이름 대신 세례명으로 호칭할 때가 많다.[A] [8]광주가톨릭대학교[9] 헬기 사격' 증언마다 일치… 전두환 재판에 영향 줄 듯[10] 물론 5·18 관련 단체도 반발하였으나, 사자명예훼손죄에 대한 고소권은 유족만이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