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3 20:35:59

칼의 노래

초판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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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재출간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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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내용3. 평가4. 만화판5. 창작 뮤지컬6. 기타7. 고증 오류8. 해외 출시

1. 개요

김훈2001년 발표한 소설.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충무공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작품이다.

2. 내용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난중일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충무공 이순신이 백의종군하던 시점부터 전사할 때까지를 다룬다. 간결하면서도 강력한 문체 때문인지 소설이라기보다는 시에 가깝다는 의견도 있다. 김훈의 이전 작품인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에서 보이는 만연체에서 현재의 짧고 강력한 김훈의 문체가 시작한 작품.

이순신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된다. 소설이므로 당연히 픽션이 가미되었다. 책 앞에도 픽션을 가미했다고 언급해놨다. 나중에 남한산성, 흑산 등을 쓸 때도 마찬가지. 그래도 기본적으로 난중일기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기록에 충실한 편이다.

이순신의 전쟁과 현실, 그 이면에서 추악하게 돌아가는 정치권력, 바다를 왜군들의 시체와 피로 가득 채우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뼈에 사무친 증오심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개별적 인간으로서 느껴지는 적들에 대한 동정심,[1][2] 절망 속에서 무의미한 희망을 찾으려 하지 않고 묵묵하게 군인으로서의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기존의 박제된 민족주의 영웅을 벗어나 거대한 영웅의 전투가 아닌 자신이 가진 한 줌이 조선의 전부인 상황에서 몰려오는 적을 겨우 겨우 힘겹게 물리치는 실존적 고뇌자로 이순신을 그렸다. 과거의 뱃신을 연상시키는 무적의 초인장군 이순신이 아닌, 정치에 상처받고 인간성에 고뇌하고 열병에 시달리는 이순신이라는 이미지를 재정립한 소설이기도 하며, 사실상 근래의 대중문화 작품에서 묘사되는 이순신의 전형적 이미지를 정립한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작중 조선은 거의 조선판 아포칼립스인데[3] 이런 지옥 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고통스러운 심신을 이끌고 책임을 지고 백성을 지켜주려 끝까지 노력하고 책임지는 충무공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처절하다 못해 무한한 연민을 느끼게 한다.

이순신의 관점에서 쓰인 소설이기 때문에 본작에서 조정은 헛것들로 가득찬 정치판, 선조는 멀리서 신하들을 죽여 정치를 하는 '적 때문에 자신을 죽이려 하고 적 때문에 자신을 살리는 임금'으로, 명군은 남의 나라 전쟁에 와서 적당히 전공만 세우고 뇌물만 받아먹으려 드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원작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처음과 명량해전의 고뇌만을 가져왔으며, 김훈도 부정했다. 그래도 오프닝곡의 제목은 칼의 노래다. 김탁환의 <불멸>이 역사 왜곡 논란(특히 원균 맹장론)을 빚었지만, 칼의 노래는 그러한 비판에서도 자유롭다는 평을 받는다.

3. 평가

오랫동안 반복의 늪 속을 부유하고 있는 한국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4]
2001년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5]의 심사평.

문단으로부터 '이제는 거의 유실된 거나 다름없었던 한문학의 미를 현대문학적으로 되살렸다'는 평을 받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1990년대 전후로 분 한글 사용 운동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는 주요신문들에서도 국한혼용체가 사라졌고, 이와 더불어 한문과 관련된 언어사용 역시 위축되었다. 문단의 여러 작가들도 이 즈음부터 딱딱한 느낌의 한문체보다 웬만하면 더 동적이고 부드러운 순우리말 낱말, 어휘를 즐겨 쓰는 시류에 접어들게 되었다. 작가 김훈은 학창시절 교내 도서관에서 처음 난중일기 번역본(이은상 역)을 읽었고, 그 문체에 빠져 매일같이 읽었다고 밝힌 바 있으며 "언젠가 모든 미사여구를 소거해 글을 쓰고 싶다"라는 소망을 피력한 적도 있다.[6] 이충무공의 열렬한 지지자이고, 해방둥이로 태어나 오랫동안 국한문 혼용체를 사용해온 노기자 출신인 김훈이 아니었더라면 정말 한문학의 매력은 국문학계에서 영영 소실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7] 더불어 부친이 무협지 작가였던 것도 영향이 있었을 테고, 사적으로 추구하는 문체의 성향과도 난중일기가 잘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단적으로 상술한 재출간 표지의 띠지에 적힌 동인문학상의 심사평처럼 "국문학의 다양성을 위해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인 셈.

4. 만화판

불멸의 이순신의 방영으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인기열풍이 하늘을 찔렀던 2004년에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을 위한 3권의 만화로 출판되기도 했다. 그림은 박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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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군 부대의 고증면은 MBC에서 1985년~1986년에 조선왕조실록임진왜란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사극인 조선왕조 오백년 임진왜란 편에서 보여준 조선군 부대의 100%급 고증과 비교하면 욕을 먹지만, 조선왕조 오백년의 조선군 부대 고증이 워낙 압도적인 것도 있었고, 비슷한 시기에 불멸의 이순신의 인기에 힘입어 나온 아동용 이순신 만화 중 역사덕후들에게 제일 많이 욕을 먹은 노미영의 불멸의 영웅 이순신[8]과 비교하면 양호한 편으로 작중 이순신 장군과 여러 장수들이 입고 나오는 두정갑옷의 기록에 알맞는 가죽으로 된 외피에 둥근 철들을 박아놓은 모습의 묘사나 작중 병졸들이 입고있는 포졸복과 작중에서 부관들이 입고 나오는 구군복의 기본적인 묘사 등,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연상하는 조선군의 모습들을 전형적이면서도 멋스럽게 그려내어 최소한 조선군 특유의 갑옷 및 복장 형태의 윤곽을 찾을 수 있는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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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 거북선이 정유재란 시기에 처음으로 건조되거나 명량해전 철쇄설을 묘사하는 등 역사사실에 있어 고증오류가 있는데 원작 소설에는 없는 내용이다.뿐만 아니라 노량해전에서 조선수군이 양쪽으로 일본 수군의 협공(순천 주둔군사천,남해 등지의 구원군)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9][10]

아동용 만화치고는 꽤나 엄숙하면서도 점잖은 무게감있는 연출과 분위기로 유명하다. 특히 책표지에 새겨진 이순신 -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라는 문구처럼 칼의 노래에서 말하고 싶던 카이사르 같이 휘황찬란한 영웅의 모습보다는 조용하고 장중하면서도 고뇌하는, 영웅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써 이순신의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을 경외심을 느낄 정도로 잘 그려내고 표현하였다고 호평받는다. 대체적인 평으론 아동 만화의 범주를 벗어난 명작. 어린이와 청소년용으로 나왔는데 정작 성인들이 더 많이 읽는 만화 중 하나로 소개된 적이 있다.

다만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대상이기 때문에, 잔혹하거나 선정적인 내용은 많이 순화되거나 생략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여진'이라는 인물. 원작에서는 이순신과 하룻밤을 함께했던 나이든 기생으로 구루지마 미치후사의 배에 끌려가 명량 전투에서 사망하여 시체 구덩이에 던져지지만, 만화판에서는 이순신과의 성관계가 삭제되고 이순신을 흠모하는 어린 여종으로 묘사되며 왜의 자객으로부터 이순신을 지키려다가 살해당해 이순신의 명령으로 고이 묻힌다.

그리고 1권에 원균 명장론을 옹호하는 듯한 프롤로그가 잠깐 포함되어있다. 원균의 이미지가 당시 장수에 대한 인식처럼 고지식하지만 용감하게 그려지며, 칠천량 해전이 권율의 억지로 인해 발발했다거나 배설이 판옥선을 훔쳐갔기 때문에 패전했다는 등의 뉘앙스가 강하게 남아있다. 다만 원균 옹호론이 책이 출판된 2000년대 초중반에 성행했다는 점은 유념해야 한다.

5. 창작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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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타

  • 2001년 출간 뒤 문단에서는 호평을 받았으나 일반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여서 10만부 정도 팔렸었다.[11] 그러나 2003년 MBC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칼의 노래를 어린 학생에게 추천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더불어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회탄핵 가결로 직무정지당했을 때 이 책을 감명깊게 보았다고 한 이후 더욱 주목을 받아 그 해만 50만부가 팔렸다. 그러나 김훈 본인은 노무현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현대 국가의 대통령이 배가 13척뿐이지만 의지로써 현실을 버티겠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12] 옛날 시대에 그것도 이순신이니까 가능한 거지, 지금같은 시대라면 최소한 130척은 갖춰놓고 그런 소리를 해야한다는 것.
  • 초판은 2001년 '생각의 나무' 출판사로 출간 됐으나 2011년 출판사 부도로 절판 후 2012년 '문학동네'로 출판사 옮겨 재출간 했다. 출간 11년이 지난 2012년에도 25,000부 정도 나갈 정도로 스테디셀러.
  • 작가가 처음 정했던 제목은 '광화문 그 사내'(...)였다고 한다. 충무공 이순신 동상이 광화문에 있어서 이렇게 지은 듯하다. 결국 편집장이 어렵사리 김훈을 설득해서 '칼의 노래'라는 멋드러진 제목이 나오게 되었다.# 그야말로 신의 한 수.
  •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라는 소설의 첫 문장이 매우 유명하다. 김훈은 소설 첫 문장에 '꽃이'로 쓸 것인지 '꽃은'으로 쓸 것인지, 둘 중에 어느 것을 쓰는 게 좋을까라고 가장 고뇌했다고 하며, 결국 '꽃이'라고 썼다. 이는 프랑스어판 출간 당시 김훈의 인터뷰에서도 언급된 내용이며, 2008년에 발간된 김훈의 산문집 '바다의 기별'에도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나는 처음에 이것을 "꽃은 피었다"라고 썼습니다. 그러고 며칠 있다가 담배를 한 갑 피면서 고민고민 끝에 "꽃이 피었다"라고 고쳐놨어요. 그러면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는 어떻게 다른가. 이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꽃이 피었다"는 꽃이 핀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언어입니다. "꽃은 피었다"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주관적 정서를 섞어 넣은 것이죠.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입니다.

    • 문법적으로 접근했을 때도 타당한 접근이다. '이'는 단순한 주격 조사이며, 특별한 의미 없이 주어 자격만을 부여한다. 반면에 '은'은 보조사이며, 약한 한정, 비교 및 대조, 주제화 등의 의미를 지닌다.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라고 쓰면, 비록 섬들은 버려졌으나 꽃만은 어떻게든 피어났다는 식의, 인간사와 대조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신파조 문장이 되어 버린다.
  • 2005년 부천시 복사골 문화센터에서 김훈 작가의 문학강연을 했으며 당시 작가 본인이 밝히기를 칼의 노래를 45일 만에 썼으며 그동안 이가 8개가 빠졌다고 한다. 그 후 칼의 노래로 상금 5000만원을 탔는데, 임플란트를 하는 데 2200만원 쓰고 나머지는 빚을 갚는 데 섰다고 한다. 2013년 한 강연에서 동인문학상 상금 5,000만원의 절반 가량을 임플란트 하는 데 쓰고, 나머지는 전부 다 술 마시는 데 썼다고 밝혔다. https://youtu.be/hE6YRQVVmpU?si=obdnRbillr5h0byb (*19:30부터)

7. 고증 오류

고추가 아직 조선에 들어오지 않은[13] 시기적 배경을 살려 작중의 김치를 고춧가루가 없는 짠지에 가깝게 묘사하는 등 전체적인 고증은 상당히 훌륭하지만, 실제 역사를 다룬 것이라 작품이 집필되던 시기 정보 접근성의 한계로 인해 약간의 고증 오류들이 있다. 아래 오류 예시는 대부분 예전 생각의나무 판에 존재하던 것들인데, 일부는 문학동네 판으로 나오며 수정되었다. 그러나 그 탓에 예전 판본을 읽어 본 사람의 눈에는 문맥 상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이 생겼다.
  • 임진년에 가토 기요마사가 일본군의 선봉으로서 부산진성을 깨뜨리고 진격했다고 묘사되는데 그건 가토 기요마사가 아니라 고니시 유키나가다. 가토 기요마사가 함락한 건 울산성이었다. 본작을 원작으로 한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이러한 고증 오류가 개선되어 고니시 유키나가가 부산진성을 함락하는 것으로 나온다.[14]
  • 시골 장시에서 감자를 거래한다는 언급이 잠깐 있는데, 실제 조선에 감자가 전래된 시기는 1800년대이다.
  • 노획한 일본군 척후선 식량에 고구마가 등장. 고구마가 조선에 영조 때 들어온 걸 알고 한 건가 본데, 일본에 고구마가 전래된 것 역시 17세기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이때 당시에도 서동요에서 유추하듯 마가 있었으므로 그 오기인 듯하다.
  • 노획한 일본도가 조선 검술에는 맞지 않는다며 녹여 대포로 만드려는 장면. 조선의 총통은 동철, 즉 구리로 만들었고 총통의 철환이나 대장군전의 탄두가 쇠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조선은 노획한 일본도를 꽤 많이 사용했고 이를 모방한 검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조선 통신사들도 일본의 검이 우수하다고 칭찬하거나 구입한 기록을 남겼다.
  • 죽은 왜군 포로를 옥수수 밭에 묻는 장면. 조선에 옥수수 전래는 학설에 따라 16세기에서 1700년 이후로 갈려 오류인지 조금 애매한 장면. 이 부분은 작가 본인이 의도적으로 옥수수를 선택했다고 밝혔는데, 옥수수밭이 주는 서늘한 느낌이 내용에 잘 맞았다고 한다.
  • 일본군 장수들을 일본어 발음으로 호칭한다. 당연히 당시 조선인들은 이를 한자로만 읽었다. '히데요시' 같은 경우는 '수길(秀吉)은...'과 같은 식의 문구가 나오긴 한다. 독자들이 한자어 호칭을 익숙히 아는 경우만 이렇게 처리한 듯하기도 하다.
  • 명 수군들이 남도의 물회에 맛들려서 술안주로 먹는다는 묘사가 있는데, 중국은 송나라 이후로 회가 몇몇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자취를 감춘지 오래되었다. 진린의 고향인 지금의 광둥성 지역이 현재까지도 회를 먹는 문화가 남아있는 지역이지만 정작 본작의 해당 장면에는 진린이 등장하지 않았고 물회를 먹는 명 수군들도 광동 출신이라고 언급되지 않았다. 물론 이는 엄밀히 말해 고증 오류라기보다는 임진왜란을 강건너 불 구경하듯 대하는 명군의 태도에 대한 소설적 장치라고 여기거나, 먹을 줄 모르던 물회에 맛이 들릴 정도로 전쟁이 길어지며 명 수군들 중에 조선에 향화된 이들이 생겨났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는 게 옳다.
  • 직산이 무너져 일본군이 한양을 향한다는 구절이 있는데, 실제로는 직산 전투에서 명군에게 저지되었다. 차라리 일본군이 직산에서 패하고도 한양을 향하려는 목적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했다고 표현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직산 전투와 명량 해전에서의 패배로 일본군에게 불리한 상황이 되어버린 정유재란을 억지로나마 계속되게 만든 인물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였고 그의 죽음으로 정유재란이 끝났기 때문이다.
  • '생선, 배, 무기, 연장' 파트에 '종팔품 발포진 수군만호'가 되어 남해안 발포진에 부임했다는 서술이 나오는데, 만호의 품계는 종사품이다. 문학동네 판에서 종사품으로 수정되었다. 하지만 '함경도 국경 근무를 마치고 나서도 승진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종팔품이었다.'라는 바로 앞의 문장은 그대로이다.
  • 후술되듯이 시간흐름도 상당부분 이상한데 특히 노량해전을 다룬 마지막 챕터를 보면 전투가 여러날(최소3일)동안 계속된 것 같이 묘사가 되어 있고 이순신이 죽을때 대사도 "노을이 적들 쪽으로 가고 있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런데 실제로 노량해전은 11월 19일 새벽녘부터 정오 무렵까지 치러졌으며 이순신이 죽은 시점도 저녁이 아닌 오전이다.

이외에도 작품 내 시간 흐름과 계절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8. 해외 출시

일본에서도 2008년 孤将(고장: 고독한 장군)이라는 제목으로 신초 문고(新潮文庫)에서 간행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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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독자들도 일본군을 호쾌하게 쳐부수는 소설을 예상하고 읽다가 놀란다고 한다. 압축적이고 묵직한 무게감이 있으면서 평이한 문장이 일어권 독자에게도 읽기 좋고 아름답게 다가오는 듯하다. 책이 일본에 출판된 이후에 나온 김훈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10만부 정도 팔렸다. 일본에도 익히 알려진 이순신의 내면이나 사정이 알고 싶어서, 내지는 한류팬인데 불멸의 이순신을 보고 궁금해서 소설을 읽었다가 드라마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책의 퀄리티에 완전히 반해버리는 사람도 많은 듯. 번역자에 대한 평가도 책 자체에 대한 서평만큼이나 많은데, 번역자인 하스이케 카오루는 납북 일본인 중 한 사람으로 학생 시절 북의 공작원에 납치되어 24년간 강제로 북한에서 살아야 했던 피해자이기 때문. 공교롭게도 그런 과거가 있는 사람이 일본인에게는 상당히 논쟁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임진왜란 소재의 책을 첫 번역서로 골랐기 때문에 흥미로워하는 일본인이 많았고, 고독하고 외로운 사람이 지옥같은 세상에서 분투한다는 책 내용을 보고 다들 납득했다고 한다. 하스이케 카오루 본인도 처음에 우려했으나 소설을 보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다만 책의 제목을 바꾼 데에는 의문을 표하거나 원작 제목이 너무나 적절하다는 식의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본어의 표현방법으로 칼의 노래를 刀の詩(칼의 노래/칼의 시라고 중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으나 발음은 똑같이 '카타나노 우타'이다)라고 한 것을 보고 그쪽이 훨씬 나은데 왜 유치한 제목으로 바꿨냐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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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판 孤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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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판 Le chant du sab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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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판 Schwertge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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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판 El canto de la espada

대만, 프랑스, 독일, 스페인에서도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프랑스에서는 그 번역본이 장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등이 몸 담았던 유명 출판사 갈리마르의 '전세계문학총서'에 포함되었다. 중국에서는 인민문학출판사와 중국어판을 내기로 하고 저작권 계약서까지 작성했다가 최종 단계에서 출간을 중지했다.


[1] 아들 이면을 죽인 부대의 왜군 돌격장을 포로로 잡은 뒤에 죽이고 싶은 증오를 갖지만 동시에 아들 또래인 돌격장의 모습에 아들을 떠올리고 살려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모순에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겪는다. 이순신은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군법에 따라 왜군 돌격장을 처형한다. 이후 아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과 아들 또래 젊은이에 대한 연민이 뒤엉켜 부하들 몰래 숨어서 흐느껴 운다. 왜군에 대한 무조건적인 증오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연민의 시선 또한 잘 드러낸 부분.[2]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면을 죽인 것으로 묘사되었으며,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임진왜란 종전 이후에도 계속 사는 실제 역사 때문인지 결국 이순신이 아들 이면의 원수를 제대로 갚는 묘사는 나오지 못했다.[3] 식량이 없어서 백성들끼리 극단적으로 식인을 저지르는 모습, 일본군의 오만가지 만행 등등...[4] 동인문학상 수상 당시의 심사평 중 한 구절이다. 출판사에서도 이 구절이 상당히 맘에 들었는지, 수상 직후 양장본에서부터 띠지의 메인카피로 활용되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5] 박완서, 유종호, 이청준, 김주영, 김화영, 이문열, 정과리[6] 2005년 대전 한밭도서관에서 열린 초청 강연회 내용 중.[7] 부친은 일제강점기 시절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김구의 비서관으로 일했으며, 말년에는 지병으로 앓아 누워 당시 학생이던 김훈이 아버지가 불러주는 대로 대신 타자기를 쳐가며 원고를 넘겼다고 한다.[8] 파일:b0006938_20512136.jpg 파일:a0014266_1643616.jpg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의 첫줄전인 옥포해전 때에 47세, 나라와 임금과 백성들을 구원하고 전사한 최후의 전투인 노량해전 때 53세의 중년이었는데 이 작품에서 이순신 장군은 첫등장때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할 때까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의 모습에, 부녀자들의 눈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나이오류는 둘째치더라도 판타지 게임에서 튀어나온 듯한 국적불명의 갑옷을 입고 21세기 패션스러운 헤어스타일을 하고 나온다. 역사덕후들은 사무라이를 그려놓고 이순신이라 우긴다며 깠다.[9] 애당초 이순신이 협공을 안받도록 운신의 폭이 큰 노량으로 이동한 것인데 만화에선 이정도 기본적인 전략개념도 없는 것처럼 묘사된다.[10] 사실관계로도 노량해전은 조명 연합수군의 일방적인 대승으로 끝났고 고니시는 멀리서 구원군이 대신 궤멸될 동안 도망간 전투이다.[11] 그나마 출판 시장이 규모가 어느 정도 살아있던 당시 기준로 보면, 10만부 판매 정도면 분명 베스트셀러이긴 하지만, 초대형 베스트셀러 정도는 아니었다.[12] 참고로 소설가 김훈은 90년대 후반 시사주간지 시사저널 편집장 시절,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보수'로 규정짓기도 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보수는 정파적인 보수라기보다는, 태도적인 보수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는데, 2010년대 이후부터는 보수 정부의 정책이나 태도를 비판하고, 진보적 사회 운동에 동의하는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기 때문. 실제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의 편에 서서 오랫동안 정부 여당을 강도높게 공개 비판했던 문인 중의 하나였으며, 노동자들의 산업 재해 피해 문제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나, 소방관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캠페인 등에도 앞장서고 있다.[13] 그런데 이 부분은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다. '고추는 임진왜란 때까지 우리나라에 없었다'는 게 다수설이긴 한데, 반론도 만만치 않다는 것. 자세한 사항은 고추 문서 참조.[14] 다만 불멸의 이순신도 또 다른 원작인 불멸의 고증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여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고니시 유키나가와 함께 부산진성을 함락하는 고증 오류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