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3:58:38

김훈(소설가)

제32회 동인문학상 수상
이문구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2000)
김훈
칼의 노래
(2001)
성석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2002)
제28회 이상문학상 수상
김인숙
바다와 나비
(2003)
김훈
화장
(2004)
한강
몽고반점
(2005)
제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
김영하
보물선
(2004)
김훈
언니의 폐경
(2005)
구효서
명두
(2006)
파일:external/1.bp.blogspot.com/김훈.jpg
이름 <colbgcolor=white,#2d2f34>김훈 (金薰)
본관 김해 김씨
출생 1948년 5월 5일 ([age(1948-05-05)]세)
서울특별자유시 종로구
종교 가톨릭 (세례명 : 아우구스티노)
학력 서울돈암국민학교 (졸업)
휘문중학교 (졸업)
휘문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 66 / 중퇴)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영어영문학 68 / 중퇴)
가족 아버지 김광주, 어머니, 형 2명, 남동생 1명, 여동생 1명
아내
김지연, 아들

1. 개요2. 생애3. 평가4. 논란
4.1. 성차별 논란4.2. 전두환 미화?
5. 출간된 작품 목록6. 여담
6.1.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견해6.2.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촉구
7. 인터뷰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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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소설가, 문학평론가, 전직 기자.

2. 생애

1948년 5월 5일 서울특별시 태생이다.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바 있는 언론인이자 소설가인 김광주[1]의 아들로, 서울돈암초등학교휘문중학교,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해 2년 만에 영문과로 전과했다. 그러나 군 복무 뒤 가정 사정이 어려워지자 중퇴했다.

집안이 어려워진 것은 아버지 김광주에게 원인이 있었다. 모시던 김구가 피살된 이후 좌절하여 술로 세월을 보내면서 가세가 기울었다고 한다. 김광주가 막장부모였던 것은 아니고, 김광주는 말년에 무협 소설을 집필했는데, 당시 출판 계약이라는 게 출판사가 일정량의 원고료만 주고 책의 출판으로 인한 인세는 출판사가 독차지하는 구조라서 김광주의 소설이 잘 팔려도 돈을 제대로 벌지 못했다. 때문에 집안이 대단히 어려워진 것. 김훈이 군에서 제대하기 직전인 1973년에 김광주가 사망했는데, 어찌나 집안이 어려웠던지 묘지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해서 김훈은 묘지 비용을 할부로 갚아야 했다.[2]

1973년 한국일보에 입사[3]하여 사회부 기자로 활동했고 국민일보, 한겨레신문, 시사저널 등을 거쳤다. 기자 생활 중 사표를 쓴 것만 무려 17번이었다고.

1986년 5월부터 1989년 5월까지『한국일보』에 매주 연재한 여행 에세이를 엮은『문학기행』(박래부 공저)[4]이 첫 책으로, 1995년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으로 소설가 데뷔를 했다.

황석영의 담당 기자였다고도 한다. 황석영을 담당하면서 한 주된 업무는 원고 펑크 내고 튄 황석영 잡아오기였다고 하며, 장길산 연재 당시 황석영이 펑크를 내면 글빨 있는 기자가 지난 줄거리 요약을 써서 땜빵했는데 이것도 주로 김훈이 맡았다고 한다. 이때 한 고생 때문에 술만 취하면 그때 원한을 떠올리며 "그때 잡아서 죽여버리는 건데"라고 한다고.[5]

2001년 출간하여 현재까지 스테디셀러인 칼의 노래(동인 문학상 수상작)로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부터 유명세를 타기 시작[6], 이후 출간하는 작품들마다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꾸준히 새로운 작품들을 집필했다.

2002년부터 한겨레에 '거리의 칼럼'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

2023년에 조국 전 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를 비판했다가 민주당 강성 지지층이 이에 반발하며 SNS상에서 폭언을 퍼부은 사건이 있었다. #

3. 평가

늘어뜨린 문장이나 형이상학적인 표현을 거의 쓰지 않는다.[7] 매우 일상적인 단어들과 단문 형식의 문장만 사용해서 문장 전체가 한번에 읽힌다. 이러한 특징은 유난히 칼의 노래에서 두드러진다는 평이 있다. 아무래도 칼의 노래라는 소설이 가진 주제의식이나 주제인 이순신이 무인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그 단순한 문장만으로 형용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점. 어휘를 쓰는 것 만큼이나 어휘를 아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묘사하지 않음으로써 더 정확하게 묘사하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등장인물의 성격을 절대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이는 김훈의 인간관과 관련되어 있는것으로 보인다. 착하다, 나쁘다, 따뜻하다, 냉철하다, 교활하다, 정직하다 같은 단편적이고 분명한 껍데기를 씌우는 순간 그 인물은 현실성을 상실한다고 생각하는 듯. 오로지 인물의 외양과 행동, 말투만을 묘사해서 독자로 하여금 인물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다만 이 점에서 독자마다 호불호가 매우 갈린다. 특히 문장 표현의 심미성이나 등장인물에 대한 섬세한 심리 묘사에 감정포인트를 두는 독자들은 김훈의 작품을 매우 낯설어한다.

한국어를 다루는 능력에서 만큼은 그 누구와도 차원을 달리하는 수준이다. 이어령 박사로부터 어휘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거의 김훈만이 고유하게 쓰는 어휘가 있다. 문투 역시 김훈의 문투가 있는 편이다. 글의 흐름이나 소설의 플롯도 대중적인 스타일로 정해져 있다.

김훈 글의 문단을 자세히 뜯어보면 양괄식 문단을 하고 있는데 한 단락에서 했던 얘기를 마지막에 다시 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게 김훈 글 구성의 핵심인데 김훈은 한 이야기를 마지막에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 때문에 문단을 쓸 때 이문열 같은 리듬을 보여주진 못한다는 평을 받는다. 이문열은 문장도 리드미컬하게 잘 적지만 구성이 고문을 잘 따르기 때문에 늘어진 문장이라도 잘 읽힌다(물론 늘어진 문장이지만 대구가 있기 때문에 탄력적으로 잘 읽힌다). 한 문단 한 문단의 구성이 결국 전체를 향해 가는, 전체적으로 굉장히 모범적이고 뛰어난 글을 쓰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고전이나 클래식한 글들의 구성을 따라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김훈의 문체는 이문열의 유려하면서도 단단한 문장에 비해 전체적으로 단문이고, 한 문장 한 문장의 서정성이 극대화되는 것이 특징이다. 문투 측면에서 구성 상의 이점을 얻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한 말을 맨 마지막에 다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대개 김훈의 문단 구성은 양괄식인 경우가 많다.

사람에 대한 견해는 간단히 말해 허무주의에 가까우나 이것이 어떤 종류의 허무주의인지 규정하려면 꽤 애매하고 복잡하다. 김훈은 피안자연과 인간을 대비하면서 사람은 속세의 굴레에 갇혀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감각적으로 묘사한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허무한 속내를 드러내곤 하지만, 딱히 인간사회에서 벗어나고자 하거나 자연을 벗삼는 것을 대안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아예 그런 시도나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엄밀히 말하면 허무를 느낄 자리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다.[8]

이렇게 엄밀히 말하면 굴레라는 표현이나 벗어난다는 표현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허무주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극단의 세속주의로 해석할 여지마저 생긴다. 그러나 그것은 아닌 것이, 칼의 노래를 보고 수상소감인 <다시 임화를 추억함>을 읽어 본다면 허무주의 속 긍정 혹은 희망으로 귀속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굉장히 강조하는 것도 허무주의에 일조한다. 인간은 자연에서 벗어날 수 없고 자연이 피안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 클리셰로 쓰이는 소재는 노년의 각종 질병신체 형벌, 죽음이며, 각종 생리적 현상인 , 오줌, 생리 등에 대한 강조도 마찬가지다.[9] 또한 다양한 감각적 장치들로써 사람도 한 생물임을 드러낸다. 특히 여성은 자연을 더욱 가까이 품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결코 굴레를 벗어날 여지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 아래 마초 논란 참고.

앞서 말한 서술 방식이 독자에게 불친절해 읽기 힘든 편인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 불편한 서술이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키고 있어서 한 번 재미있게 읽은 사람은 신작을 계속 사서 보게 되는 마력을 지닌 작가라는 평가가 있기도 하다. 문학평론가 남진우는 그를 일러 문장가라는 예스러운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몇 안 되는 글쟁이 중의 하나라고 호평했다.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쓸 때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소설의 주제를 위한 재해석이 많이 들어간다. 항상 들어가기 전에 이 소설은 오직 소설로서 읽혀지기를 바란다고 쓰여 있곤 하다. 또한 사극 소설에서 대체로 높으신 분들의 명분 논리와 무능에 고통받으면서 질박하게 살아가는 민초와 소수파의 삶, 그래도 역사는 흘러간다가 단골 테마다. 위에서 허무주의와 세속주의가 함께 언급되었는데, 사건의 흐름을 보면 갈등의 요인이 된 사건은 결국 개인 혹은 국가의 파국을 불러오나(허무), 사건이 끝난 뒤 살아남은 자들의 삶(굴레)은 그래도 이어진다(세속)는 얼개를 취하고 있어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역사를 소재로 한 글을 주로 쓴다. 이것은 그의 문체와 연관이 있는데 문체의 특성상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기보다는 한 단어 한 단어의 파급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는 스타일 때문에 김훈은 누구나 알만한 사람의 글을 소재로 자주 써먹는 편이다. 칼의 노래의 이순신이나 남한산성의 인조, 현의 노래의 우륵이 대표적이고 그 밖의 현대소설이라도 적어도 그의 글이나 산문에서 한 두 번씩은 소재로 등장했던 것들이라 그의 글을 여러 번 읽은 사람이라면 친숙한 소재들을 주로 사용한다. 김훈의 역사소설화는 그의 문체와도 상관이 있다.

4. 논란

4.1. 성차별 논란

김훈: 여자들한테는 가부장적인 것이 가장 편안한 거야. 여자를 사랑하고 편하게 해주고. 어려운 일이 벌어지면 남자가 다 책임지고. 그게 가부장의 자존심이거든. 난 남녀가 평등하다고 생각 안 해.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압도적으로 유능하다고 보는 거지. 그래서 여자를 위하고 보호하고 예뻐하고 그러지.
김규항: 후천적인 노력이 아닌 선천적인 요인으로 사람을 나누는 건 대단히 위험합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선천적으로 우월하다는 얘기는 백인이 흑인보다, 독일인이 유대인보다 우월하다고 보는 인종차별하고 다를 게 없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보는 게 근대적 사고방식의 기본 아닌가요?
김훈: 인종 사이의 혐오감이란 어쩔 수가 없는 거지.
김규항: 혐오는 단지 서로간에 다르다는 건데. 이건 “어떤 피부색을 가진 사람이 근본적으로 열등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나치가 아리안족이 가장 우수하다고 말하는… 근데 선생님께서 여성에 대해 말씀하는 건 그거와 결국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김훈: 난 정돈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거든.

과거 한겨레21 인터뷰에서 남성우월주의자 논란이 일어난 적이 있다. 페미니즘을 못된 사조로 여긴다든가, 가부장적 질서가 여자한테 편한 거라고 말한다든가, 남녀는 근본적으로 평등하지 않으며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였다.원문

이 글로 김훈은 시사저널 기자들의 강한 반발을 사 편집장을 사임하게 되었으며 이 인터뷰는 김훈의 성향을 비판하는 근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후 출간된 산문집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2002)에서는 이영자의 다이어트 논란이나 성형 광고 등을 언급하며 사회가 여성을 억압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페미니즘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는데 여성들이 자신들의 몸에 가해지는 억압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며 되려 긍정적 뉘앙스로 말했다.

본인도 이 마초 논란에 대해 부정했는데 여자는 자기한테 알 수 없는 경외스러운 존재일 뿐이라고 말했다. 즉 자기가 남자가 되어서 여자를 모르니까 여자 처지에서 쓸 수가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여성 캐릭터들은 구석에 처져서 부가적인 구실만 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놓고 '내 젊은 날의 숲'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며,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단편 소설 '언니의 폐경'은 아예 여성의 관점에서 쓰여진 이야기이다. 물론 도전의 일환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러기엔 아래의 비판이 위의 언급과 겹치며 작가 본인에 대한 논란만 가중된다.

'언니의 폐경'에서 월경에 대해 아주 최소한의 조사도 전혀 해보지 않고 쓴 게 분명한, 심각한 재현 오류로 점철된 말도 안 되는 묘사를 저질러 특히 비판받는다. 막 초경한 어린 소녀도 아니고, 수십년간 생리를 겪어와 익숙할 대로 익숙한 게 정상인 50대 여성이 차에서 생리가 터지자 "어떡하지, 갑자기 왜 그러지..." 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걸로 묘사하고, 생리에 대해 "뜨거워. 몸 속에서 밀려 나와." 라고 말하는 것으로 서술하였으며[10], 심지어는 뒷처리를 팬티를 잘라내고 생리혈을 생리대로 닦은 뒤 팬티와 생리대를 같이 버리는 것으로 서술했다![11][12] 또한 "언니의 팬티는 젖어 있었고, 물고기 냄새가 났다”, “닦을 때 언니가 다리를 벌려주었다” 등등 사리에 맞지 않으면서 기묘하게 불쾌감을 자극하려는 듯한 묘사로 비판받고 있다.

그 '언니의 폐경'이 황순원 문학상을 받았고, 신경숙은 소설집 '강산무진'[13] 추천사에 "그가 '언니의 폐경'을 써내자 아, 정말 소설가가 되어버렸구나, 아쉽고 즐거웠다'"라고 적었고, 페미니스트로 유명한 정희진도 독서 에세이 '정희진처럼 읽기'에서 '언니의 폐경'을 언급하며 "김훈은 소설, 논픽션, 기사, 수필을 불문하고 모든 글을 잘 쓰는 예술가다. 그는 인간이든 자연이든 물상이든 묘사 대상에 대한 대상화를 최소화하는 윤리적인 작가다.'"라며 나름의 평을 남긴 이도 있기는 하다. 허나 위 두 인물들부터가 표절과 여타 여러 문제로 그 평을 완전히는 신뢰하기 어려운, 김훈 작가와 이익을 같이 하는 주변 인물들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문학상 또한 소위 당대 문단을 구성하는 특정 인물들을 심사위원으로 하여 결정된다. 이들의 의견이 평단 전체와 여성을 비롯한 독자 전체를 대표하는 의견이라고 보긴 힘들다. 일단 본인을 낳아준 어머니며 아내를 비롯 본인이 일상에서 밀접하게 부대껴온 주변인 중 반수 정도를 차지하는 사람들의 흔한 생리현상에 관해서도 철저히 무지함은 물론, 아랫문단에서와 같이 인격체로 인지조차도 잘 못한다고 스스로 인정까지 할 정도면서, 굳이 그들을 주체로 삼아 그들만이 경험하는 현상과 거기 따른 감상에 대해 아주 약간의 기본적인 조사도 고민도 없이 함부로 이입하여 멋대로 글을 쓰는 행위가 과연 작가다운 태도일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들게 한다.

위 말도 안되는 묘사들에서 드러난 심각한 상식부족 때문에 도전이라고 치기엔 심하게 어폐가 느껴지며 전작에서 유지해온 진지하고 무거운 듯한 주제의식, 묘사태도와는 매우 동떨어진 현상이기도 하다.

결국 김훈은 <남한산성> 기자간담회에서 이 논란을 언급하며 해명에 나섰다. "여자를 생명체로 묘사하는 것을 할 수 있지만 어떤 역할과 기능을 가진 인격체로 묘사하는 데 매우 서투르다"며 이는 본인의 미숙함 때문이며 여자에 대한 편견이나 악의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1990년대부터 가부장이란 여자를 아끼며 지키는 존재이며, 여자들을 막 대하는 남자는 가부장이 아닌 양아치일 뿐이라고 말하며[14], 남녀의 불평등에 대해서도 전쟁의 기술 등 문명의 전반적인 힘이 남성 위주로 계승되었기 때문에 여자들은 어쩔 수 없이 불평등한 처지라고 주장한 바 있다. 다만 전처럼 그래서 가부장제는 여성에게 좋은거라고 말하는 패기는 사라진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거나.

4.2. 전두환 미화?

과거 《한국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시절에 전두환을 찬양, 미화하는 내용의 기사를 작성한 적이 있다. 일명 '용비어천가' 사건. 당시는 1980년 신군부가 5.18 민주화운동을 진압한 뒤 최규하 대통령의 하야를 압박하고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앉힐 준비를 진행하던 시기였다. 신군부는 이에 각 언론사들을 협박하여 전두환을 찬양, 미화하는 특집기사를 게재하도록 했다. 《한국일보》 또한 이 압박을 이기지 못해 1980년 8월 23일부터 〈전두환 장군 의지의 30년 - 육사 입교에서 대장 전역까지〉란 이름의 3편 짜리(상/중/하) 특집기사를 한 면을 통째로 할애해 실었다. 지면에는 이 기사를 쓴 기자가 4명(김훈과 하장춘, 이연홍, 장명수)으로 나와 있으나, 김훈은 후일 자기 혼자서 그 기사들을 다 썼다고 고백했다. 데스크를 맡은 차장, 부장, 부국장, 국장 모두 다 술 마시러 내빼버려서, 7년차 기자인 본인이 쓴 그대로 데스크를 거치지도 않고 내보냈다고 한다.#

김훈 본인은 이 사건에 대해 변명조가 아니라 매우 담담한 어조로 힘에 굴복했다고,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더러운 일인데 강요되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라 그냥 내가 했다."고 대답했다. 나중에 딸이 아버지의 과거 행적을 듣고 "나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었단 말이냐"라고 펑펑 울었다고.
“내가 안 썼으면 딴 놈들이 썼을 테고... 난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때 나를 감독하던 보안사 놈한테 이런 얘기를 했지. 내가 이걸 쓸 테니까 끌려간 내 동료만 때리지 말아달라. 걔들이 맞고 있는 걸 생각하면 잠이 안 왔어. 진짜 치가 떨리고...”
한겨레 21에서 김규항과 대담한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 김훈은 다분히 위악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한다.[15]
"나는 74년에 언론사에 입사해 1년 수습하고 5년 반쯤 된 기자였다. 그때 나를 지휘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일을 내가 소설로 써야 하나, 자신이 없다. 내가 소설을 쓰는 것보다 그 시대에 언론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다 모여 왜 그렇게 됐는지 얘기라도 좀 했으면 좋겠다.
아마 짐작하기에 그 시대 언론들이 역사라는 것은 민주적 법칙에 따라 전개되고 진화한다는 확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신념을 가진 언론인도 있었겠지만 압도적인 사회 전체의 공포 분위기에 짓밟혀 있었다. 그 시대 그런 언론 행위로 출세해 권력의 정상까지 간 사람, 지금도 있다. 다 모여 얘기했으면 좋겠다. 그걸 내가 소설로 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2017년 2월 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작 <공터에서> 출판간담회에서##

때문에 김훈이 후일 《한겨레》 등 진보 언론계에 몸 담았을 때,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 김훈의 이러한 과거 행적과 보수적 성향에 대한 비판이 상당히 거셌다고 한다. 사실 똑같은 위협 앞에서 용감히 버틴 이들, 미리 피한 이들도 존재하며 저런 글을 썼음이 자랑할 일은 절대 아니지만, 조선 시대의 이경석이 그랬듯 동료 및 후배들을 위해서 총대를 메고 장두를 섰다는 반론도 충분히 가능하다. 안기부 직원들이 신문사에 상주할 정도였고,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이 그랬던 것처럼 언론통폐합을 자행하는 그 서슬퍼런 신군부 앞에서 우린 죽어도 못 쓴다고 버티다가 한국일보라는 언론사 자체가 없어졌거나, 혹은 쓰지 않고 달아난 기자, 편집장, 국장, 사장 등 관련자들 모조리 누명을 쓰고 고초를 겪는 최악의 사태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으니만큼, 어느 정도는 참작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끝까지 안 썼어야지 결국 썼으면 그걸로 이미 변절한 것'이라고 부득부득 김훈을 비난하려 들지만, 전술한대로 그 당시 존재했던 언론에 전두환 미화 기사가 모두 실린 것을 보면 똥물을 뒤집어 쓴 기자가 각 언론사마다 하나씩은 다 있긴 했고, 단지 '다들 안 쓰려고 하는데 동료를 위해서라는 이유로든 어쨌든 썼다는 것 자체가 변절이고 변명할 여지가 없으며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정말 저항하려면 끝까지 안 썼어야 했다'라는 식으로 표면적인 것만 들어 비난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 애초에 김훈은 자신의 그런 결정과 행동에 대해 "힘에 굴복했다"고 단호하게 인정했지, 그걸 나중에 와서 어떤 형태로든 그때의 내 처지를 알아 달라, 혹은 정당화해 달라고 요구한 적이 전혀 없다.[16] 한겨레 정혁준 기자도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난 변명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권력에 아부해 정치권력에 빌붙거나 재물을 탐하는 기자들을 주위에서 적지 않게 봤기 때문이다. 김훈 선배가 그런 길을 걸었다면, 나 역시 그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김훈의 행적을 평가했다.

극성 민주당 지지자 일부는 "그러나 이후 조국 일가를 비난하여 비판받는 듯 행보를 봐선 딱히 어떨지 싶다."며[17] 김훈이 조국 일가에 대해 비판한 것을 들어 비아냥거리거나, "애당초 안 쓰고 도망친 동료들도 저항을 위해 안 한 것인데 총대라는 언급은 안 쓰고 도망친 그들까지 모욕하는 것이다."라는 이유를 들어 김훈을 필요 이상으로 비난하려 들지만, 애초에 김훈은 보수를 자처할 망정 어떤 정치적 입장에 치우쳤던 적이 없고[18][19] 딱히 어느 한쪽에 일관되게 편향된 입장을 보인 적이 없다.

5. 출간된 작품 목록


* 장편소설
*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1995) : 첫 장편소설
* 칼의 노래 (2001) : 동인문학상 수상작
* 현의 노래 (2004) : 가야 멸망기의 우륵의 이야기
* 개,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2005)
* 남한산성 (2007) : 대산문학상 수상작
* 공무도하 (2009)
* 내 젊은 날의 숲 (2010)
* 흑산 (2011) : 정약전신유박해를 다룬 소설
* 공터에서 (2017) : 자전적 소설
* 달 너머로 달리는 말 (2020) : 판타지 소설[20]
* 하얼빈 (2022) : 영웅이 아닌 인간 안중근의 가장 치열했던 일주일을 다룬 소설
  • 에세이
    • 김훈·박래부 기자의 문학기행 (1987, 1997)[23]
    • 내가 읽은 책과 세상 (1989, 2004)
    • 선택과 옹호 (1991)[24]
    • 풍경과 상처 (1994, 2009)
    • 자전거 여행 (2000)
    • 원형의 섬 진도 (2001)
    •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2002)[25]
    •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2002)
    • 밥벌이의 지겨움 (2003)
    •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 1,2 (2004)
    • 공차는 아이들 (2006)
    • 내 영혼이 한 뼘 더 자라던 날 (2007)[26]
    • 바다의 기별 (2008)
    • 라면을 끓이며 (2015)[27]
    • 연필로 쓰기 (2019)
    • 허송세월 (2024)
  • 평론
    • 김우창과 김훈이 본 오치균의 그림세계 (2008)
  • 기타
    • 중학생을 위한 소설 30선 상,하 (1995) : 엮음

6. 여담

워드프로세서를 별로 쓰지 않고 여전히 원고지에 손으로 손수 소설을 쓰는 것을 고집한다고 한다.[28] 샤프펜슬이나 볼펜도 안 쓰고 연필을 주로 쓰며, 사용하는 연필은 스테들러마스 루모그래프. 실제로 기계치이며, 운전면허도 없다.

자신이 집필한 작품의 경우 퇴고라는 행위를 세상 속에 자기 글을 던져넣는 행위로 생각하기 때문에 집필이 끝난 자신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29]

잘 알려진 자녀로는 딸인 김지연 싸이런픽쳐스 대표가 있다. 김지연 대표는 유명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제작을 지휘한 바 있다.

가톨릭 신자로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라는 세례명이지만, 냉담자이다. 하지만 평화방송에 출연한 적도 있고, 천주교 박해를 주제로 한 흑산을 쓰기도 했다.

중증의 자전거 애호가라고 한다. 본인 소개란에 직업으로 당당히 싸이클 선수라고 적어놓고, 자전거 여행 같은 수필에서도 느껴지지만 자신의 자전거풍륜(風輪)같은 멋드러진 이름을 붙이는가 하면 만나본 사람의 회고에 의하면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는데도 자전거에 대해 일장연설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월간조선2002년 2월호에 실린 당시 인터뷰 내용[30] 10여년도 훨씬 지난 현재에도 곱씹을 만한 가치가 있다.[31]
오효진 (前 SBS 보도국장)
문학은 이런 때 뭘 합니까?

김훈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어떻게 문학이 인간을 구원합니까. 아니 도스토예프스키가 인간을 구원해? 난 문학이 구원한 인간은 한 놈도 본 적이 없어! 하하…. 문학이 무슨 지순(至純)하고 지고(至高)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 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하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사회의 무슨 무슨 멘토니 뭐니 하는 인간들 말 다 헛소리니 믿지 말고 뭘 하든 스스로의 저항으로 쟁취하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

현대 한국 작가들에 대해서는 "내게는 젊은 소설가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안목이 없다. 내가 필요한 것만 골라 읽는다."고 하면서도 "젊은 작가들은 우리 세대가 못 보는 것들을 보고, 우리 세대가 구사할 수 없는 언어도 구사한다. 놀라운 발전이다."라고 호평했고, 그러면서 "젊은이들이 문체에 관한 고민이 없는 점도 걱정스럽다."고 지적하며 "한국어 논리 작업에 있어서 조사가 없으면 안 된다. 한국어로 하는 사유는 조사를 연결한다는 것이다."거나, 순수 한국어에 천착한 나머지 한자를 지나치게 피하려고만 해서도 안 된다며 "한자가 필요하면 반드시 넣는다. 그게 우리 모국어를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

2019년 9월 19일 고려대학교에서 있었던 강의에서는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사람들의 생각이 당파성에 매몰된 바람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당파성을 정의·진리라고 말하고, 그렇게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지 않은 말들이 매일 쏟아진다. 자신의 의견을 사실인 것처럼 말하고, 사실을 자신의 의견인 것처럼 말하면서, 말을 할 때 그것이 사실인지, 근거가 있는지 아니면 개인의 욕망인지 구별하지 않고 마구 쏟아내기 때문에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됐다.”고 지적하면서 여론조사를 현시대 최고의 권력으로 들었으며, 여론조사는 의견과 사실이 혼재되어 있는데 그것이 마치 정의이고 진리처럼 떠받들어지는 것은 '무지몽매한 세상으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1, #2, #3, #4

6.1.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견해

2014년 10월 3일 문인들과 함께 팽목항에 방문하여 유족들을 격려하고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평소 중도적 성향으로 유명했고, 허무주의, 염세적 성향으로 정치•사회에 대한 회의를 보여주던 김훈이었기에 이 행보는 더욱 주목받았다. 작가의 작품 세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리라 예상된다.
이것은 단순한 사고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사회의 비리와 문제가 다 드러나고 있는 것이죠. 파렴치하고 무자비하게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을 정치권력이 방치해놓고… 살아온 세월에 대한 회한 같은 게 있었어요. 세계화, 경쟁, 자유화, 국제화나 경쟁력 강화, 이런 자본주의적인 가치와 자본주의적인 목표, 그 이면에는 어떤 진실성을 갖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반성해야 하는 계기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JTBC 인터뷰 〈소설가 김훈 "세월호는 사고의 문제 아닌 이 사회의 비리"〉#

2014년 가을에 펴낸 『자전거여행』 문학동네 개정판 작가의 말에서도 마지막에 이 사고를 언급했다.
2014년 가을에 김훈은 쓰다.
이해 봄에 내 조국의 남쪽 바다에서 '세월호'는 침몰하다.
김훈 (2014). 『자전거여행1』. 260p에서 발췌

2015년 《중앙일보》 새해 특별기고로 세월호 사건과 한국 사회를 논평하는 글을 썼는데 가히 명문이다. [새해 특별 기고] 소설가 김훈

2015년 4월 《이투데이》 세월호 1주기 특별기고를 통해 세월호 사건과 한국 사회를 다시 한 번 다뤘다. 1년째 ‘수취인 불명’ 남해의 부고… 선체 인양해 희망적 국면 열기를

세월호가 인양된 2017년에도 현장에서 꾸준히 유족들과 소통했으며, 2017년 4월 《한겨레신문》 세월호 3주기 특별기고를 통해 다시금 세월호 인양이 주는 의미를 곱씹었다. 세월호는 한국의 괴로운 자화상이다

2018년 세월호 4주기에도 한겨레에 기고문을 썼다. [김훈, 안산에 가다] 분향소 떠나는 아이들, 이 비극은 영결되는가

6.2.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촉구

2019년 5월 27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김훈 생명안전 시민넷 공동대표는 “산업안전보건법의 하위법령은 모법의 정신을 크게 훼손하고, 모법의 적용 범위를 축소하고[32] 집행력을 무력화시켜서 법 전체를 공허하고 무내용한 작문으로 전락시켰다”며 “정부의 이 같은 태도는 세월호의 교훈과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의 의미를 배반하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 대표는 이어 “노동자는 노동을 통해서 인격을 실현하고 생애를 건설하고 국가를 지탱시켜주고 역사를 진전시킨다. 국가는 노동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노동부가 입법예고한 산안법 하위법령에서 국가는 이 같은 의무를 모두 방기하고 자본의 이윤을 옹호하고 있다”고 거듭 비판했다.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인 고 김용균 씨의 죽음을 계기로 국회는 28년 만에 산안법 전면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 4월 입법예고한 산안법 하위법령인 시행령·시행규칙이 모법의 취지조차 담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이 잇따라 제기됐다. 특히 이 하위법령은 김용균 씨와 구의역 참사 김 군이 일한 업종에서도 여전히 ‘위험의 외주화’가 가능하도록 했다.

[왜냐면] 아, 목숨이 낙엽처럼 / 김훈
소설가 김훈 “안돼, 안돼” 또 한 번 절규한 까닭
[김훈 작가 신년칼럼] 전태일과 김용균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김훈 작가 특별기고 ‘죽음의 자리로 또 밥벌이 간다’
‘김용균이라는빛’ 북콘서트-김훈 소설가의 빛과어둠

2020년 11월 12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생명안전기본법 발의' 기자회견에 참석해 "각종 재난으로 인한 죽음과 부상이 너무나 흔해 사람들의 감수성과 경각심마저 마비되고 있다."며 "한국사회의 산업현장과 일상의 생활공간에서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병들고 팔다리가 부려져 불구가 되고 있다", "이 같은 심정적 퇴행은 사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이번에 발의되는 생명안전기본법을 통해 생명의 안전은 국민의 기본권으로 정하고, 이 기본권을 국가가 보호하고 존중하는 책무로 규정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2023년에도 KBS뉴스 인터뷰에서 "보수로 분류가 되는 분이 이런 노동문제, 산업재해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는 게 어떻게 보면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을 것 같다."는 질문에 "가령 보수, 보수주의자라면 우리가 가장 바라는 게 사회의 안정이잖아요. 사회의 안정과 질서, 우리 사회의 공통된 정서의 편안함. 이런 것을 지향하는 게 보수주의자의 길이죠. 그런데 산업재해로 일년에 죽는 사람이 이렇게 많으면 이 사회는 안정되고 편안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것은 반드시 보수주의자가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물론 진보적인 가치를 가진 사람도 이 문제에 아주 지대한 관심이 있겠죠. 그러나 이것이 보수주의자의 가치를 떠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김훈 작가 “보수로 분류되는 내게 산업재해란…”

7. 인터뷰 외부 링크




[1] 독립유공자이기도 한데, 김광주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김구를 보좌하며 문서 번역 및 분석 일을 맡았다.[2]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의 생전 모습은 김훈 자신의 산문집 <바다의 기별>에 실린 '광야를 달리는 말'에 수록되어 있다.[3] 이때 김훈은 대학교를 중퇴해서 최종학력이 고졸이었는데, 당시 언론사 중 고졸도 입사할 수 있는 곳이 한국일보밖에 없어서 입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물론 당시에는 고졸이 낮은 학력은 아니었지만 이 시절의 언론인들은 그야말로 엘리트중의 엘리트 취급이라 그 만큼 학력을 따져보는 경향이 심했다. 최종 면접에 올라온 김훈을 보고 사주였던 장기영이 "눈에 불량끼가 있으니 기자를 잘하겠다"고 말하면서 뽑은 건 유명한 일화. 다만 예나지금이나 고려대 중퇴랑 그냥 고졸은 말만 둘다 고졸이지, 대외적으로 대우가 다른건 사실이다.[4] 기사[5] 황석영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밝힌 내용이다. 그래도 서로 친분이 있어서 할 수 있는 농담일 것이다. 아마도(...).[6] 대표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기 MBC 느낌표책을 읽읍시다에 출연, 이 책을 추천한 것이 유명세를 타는데 도움이 되었다. 성웅으로서의 이순신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고뇌하는 이순신이면서도, 불멸처럼 깎아내려지지 않았다는 게 장점이란 평가가 있다.[7] 다만 그의 초기 수필들은 꽤 문장이 길고, 어려운 단어들을 많이 쓴다.[8] 그런 점에서 조선 후기 천주교가 포교되던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흑산은 꽤 예외적인 경우이다. 물론 흑산에서 정약전이나 황사영이 느끼는 천주교는 완전히 김훈식으로 각색된 자연주의에 가깝다.[9] 흑산에서 신체가 의 형상을 닮은 말꾼 마노리는 자연을 닮은 존재로 묘사되고, 때문에 작품에서는 거의 사람으로 다뤄지지 않는다고 봐도 좋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람을 가축으로 다루는데 그게 오히려 사람보다 이롭고 자연스러운 존재라는 사상을 황사영이 가지고 있다.[10] 상대적 비교로 남성이 오줌을 눌 때 '아이고 뜨겁다 요도에서 밀려 나오네'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것처럼 여성도 마찬가지다. 지구상 어느 50대 여성이 저런 말을 하겠는가. 현실의 여성들은 초경 후 몇 개월만 지나도 이런 상황에 매우 익숙해져서, 뒷처리에 관한 걱정만 하지 갑작스런 생리라는 현상 자체에 당황하여 안절부절 못할 리는 절대 없다.[11] 이는 작가가 생리에 대해 철저하게 무지함을 보여준다. 생리는 잠깐 피를 흘리고 마는 게 절대 아니다! 생리가 갑작스럽게 발생했다면 속옷이 아무리 젖었다 한들 일단은 생리대를 팬티에 부착하여 계속해서 나오는 생리혈을 생리대가 흡수하게끔 해야 한다. 팬티를 잘라버리면 생리대는 어디에 부착할 것인가? 생리대를 부착하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나올 생리혈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초경을 한 지 얼마 안된 어린 여자아이도 절대로 하지 않을 방법인데, 이미 생리를 수십년간 해온 중년 여성이 뒷처리를 저렇게 할 리가 없다.[12] 신기하게도 김훈 작가는 오래 전에 결혼도 한 기혼인인데 마치 단 한번도 생리란 게 뭔지 접해본 적도 없는 듯한 완전히 무지한 묘사를 하고 있다. 생리혈에서 물고기 냄새가 난다는 묘사도 어딘가 기이하다. 갑작스런 혈액에 의한 냄새는 철분에 의해 쇠냄새와 차라리 더 유사할 것이기 때문.[13] '언니의 폐경'이 수록되어 있다.[14] 딱히 사상이 바뀐 것은 아니다. 여성을 남성에 의해 지켜져야만 하는 존재로 여기는 것 역시 전형적인 마초적 시각이다.[15] 이 인터뷰 이후 사직서를 내고 칩거를 거듭하며 『칼의 노래』를 집필한다. 관련글[16] 뭔가 변명할 생각이었으면 당시 해당 기사 작성자로 같이 이름이 오른 다른 세 명의 기자 즉 하장춘, 이연홍, 장명수 등을 놔두고 굳이 "그거 나 혼자서 다 썼다"고 했을 리가 없다.[17] 이들 가운데는 김훈이 조국 일가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김훈 책 다 내다 버리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18] 후술하겠지만 이미 조국 일가에 대한 비난(이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이전에 세월호 참사 유족에 대한 정부 및 그 뒷사주를 받은 극우 언론 및 일베 등의 폄하 및 추잡스런 비하 작태를 정면으로 비판했고#, 2021년에도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기억공간을 "철거하지 말고 존치해 달라"고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청원하기도 한# 인물이 바로 김훈이었다.[19] 2023년 한겨레에 기고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기고에서도 전태일을 들며 "1인 이상을 2인 이상으로 바꾸어 달라는 세력을 향해서 ‘자율규제’로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정부의 태도는 그야말로 ‘자율적’이다. 산업재해와 사망 사고는 한국 기업의 불치의 풍토병으로 고착되었고 이윤의 미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이 풍토병은 광범위하게 확산돼왔다. 기업 내부에서 스스로 자라나는 기업가 정신에 의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물정 모르는 소망으로 보인다. 이것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젊은이들이 바랐던 나라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꽤 강도 높게 정부를 비판한다.#[20] 이전에 jtbc 뉴스룸 인터뷰 당시 판타지를 쓰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드디어 출판되었다![21] 수록작 : 배웅, 화장, 항로표지, 뼈, 고향의 그림자, 언니의 폐경, 머나먼 속세, 강산무진[22] 계간 문학동네에 실렸던 단편으로 현재 도서 출판 아시아의 바이링궐 에디션(원본과 영역본의 합본 형태)으로만 출판되었다. 영제는 Alone Over There[23] 공저[24] 교보문고 외에는 검색조차도 잘 안 된다. 관련 글[25]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로 개정판을 내었다. 해당 책에서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 "이 책은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의 개정판입니다 김훈 산문의 원류(源流)라 할 수 있는 시사 칼럼의 본디 어조를 좇아 필자와 협의하여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바꾸었음을 밝혀둡니다. 우리는 이 제목이 이 책에 묶은 글 전체를 아우르는 질문이자 그 사색의 풍경이 전하는 주된 메시지에 좀더 가까이 다가간 제목이라 생각하였습니다. ― 편집자 주[26] 공저[27] 책의 일러두기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 "이 책은 오래전에 절판된 산문집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생각의나무, 2002), 『밥벌이의 지겨움』(생각의나무, 2003), 『바다의 기별』(생각의나무, 2008)에 실린 글의 일부와 그후에 새로 쓴 글을 합쳐서 엮었다. 이 책의 출간으로, 앞에 적은 세 권과 거기에 남은 글들을 모두 버린다.") 관련 기사 1 관련 기사 2 관련 논쟁 1 관련 논쟁 2 1997년 설립된 생각의나무 출판사는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등 김훈의 책을 다수 출간했으나, 2011년 부도 처리 되고 판권은 문학동네 출판사로 넘어 갔다. 관련 기사 1 관련 기사 2[28] 실제 친분이 있는 소설가 황석영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그건 걔가 그냥 게으른 거예요!"라고 농담조로 까기도 했다. 핸드폰도 옛날 폴더폰에 인터넷은 하지도 않는다.[29] 칼의 노래에서 감자를 먹는 군인들이 묘사되어 있는데, 한 교수가 감자는 임진왜란 이후에 전래되었다고 지적했지만 자신이 쓴 글을 다시 보기가 싫어서 수정하지 않았다고...[30] 전문.[31] 당장 순수문학계 관련으로 백낙청고은 성폭력 묵인, 도서정가제 강요 문제가 현재진행형인 걸 생각하면 문학구원주의가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잘 알 수 있다.[32] 시행령에는 석탄발전소나 스크린도어 정비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관련 법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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