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CORNELIVS/GENS CORNELIA고대 로마의 유력 가문이자 씨족.
2. 상세
고대 로마, 특히 공화정 시기 내내 가장 유력했던 가문 중 하나다. 공화국 하에서 최소 75명 집정관을 배출해낸 가문으로, 반(半) 전설시대 동안 스폴리아 오피마를 달성한 집안으로 명성이 드높은 일족이다. 이들은 쿠르수스 호노룸 아래의 모든 관직을 끊기지 않고 배출해, 왕정부터 서기 3세기 원수정 시기까지 로마인 모두에게 어떤 명망가보다 위대한 명문가로 불렸다. 특히, 이들의 공화정 초기부터 서기 3세기까지의 약 700년 역사는 다른 어떤 가문보다 저명한 남녀 로마인을 배출했다고 자타가 인정할 정도로 명성이 대단했다.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사람도 많고, 후대에도 코르넬리우스라는 이름을 갖다 쓴 사람이 많다. 언어권에 따라 '코넬리우스'라고도 많이 불리고, 영어권에서는 '코닐리어스'라 한다. 한국 개신교 번역 성경에서는 '고넬료'라 한다.[1]
가문의 기원과 시조는 불명확하다. 어원의 기원 역시 마찬가지인데, 라틴어에서 기원한 점이 명확하더라도 발레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등 가문들과 달리 뚜렷하게 어원이 설명되지 못하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 가장 많이 알려진 이야기는 존재한다. 신체적 특징 중 각질 내지 굳은살에서 유래한 코르넬루스(Corneus)에서 형성되었을 수 있고, 아마도 코르넬루스의 아들 내지 자녀를 뜻한 변형 확률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민담에서 유래했다는 의심이 있어, 어디까지나 추정으로 평가받는다.
왕정 시대부터 서기 3세기 군인황제시대까지 파트리키를 상징한 대(大) 귀족 일족임에도, 유니우스, 파비우스, 클라우디우스, 발레리우스 등 일부 파트리키 가문들과 마찬가지로 귀족 지파와 평민 지파가 모두 있었던 성씨였다.
하지만 로마에서 이름을 남긴 코르넬리우스 가문 출신들은 거의 대부분 귀족 지파 내지 원로원에 입성한 평민 지파 출신의 노빌레스였고, 공화정 체제 아래에서 가장 많은 수의 관직을 배출한 명문가였다.[2] 나무위키에 등재된 유명 인물은 스키피오 씨족이나 술라 정도가 있고,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는 가이우스 마리우스 사후 포풀라레스파의 거두로서 로마를 지배했으며, 정 반대로 강경한 옵티마테스파였던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문도 공화정 정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전통적으로 많이 사용한 프라이노멘은 세르비우스, 루키우스, 푸블리우스, 그나이우스이며, 각 지파마다 사용한 프라이노멘도 각각 있었다. 그 예로 종신 독재관 술라를 배출한 술라 가문의 경우에는 파우스투스를 루키우스, 세르비우스, 푸블리우스와 함께 애용했으며, 렌툴루스 가문의 경우에는 그나이우스를 사용하면서도 아주 가끔 티베리우스를 아들에게 지어줬다.
코르넬리우스 가문은 각 지파마다 특정 이름을 선호하고 다른 이름은 피하는 경향 속에서도, 각 지파마다 로마 사회 신분에 따라 몇 가지 관습을 정해 이를 불문율로 여겨 절대시했다. 따라서 파트리키에 속한 지파는 코그노멘과 함께 종종 아그노멘을 별도로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면서도, 평민에 속한 지파와 해방노예를 조상으로 둔 클리엔테스 출신의 코르넬리우스 가문은 코그노멘을 아예 사용하지 않거나 이를 구분해 눈에 띠게 구별할 수 있게 한 특징이 있었다. 이런 특징 때문에 평민 출신들이나 속주 출신의 클리엔테스 후손들은 하드리아누스 시대의 법학자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처럼 코그노멘이 없거나,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시대의 프라이토리아니 장교이자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의 사위 섹스투스 코르넬리우스 레펜티누스처럼 공화정 시대에 유력했던 파트리키, 노빌레스 출신 지파 성씨를 사용하지 않았다.
여러 파트리키 지파의 종가격 가문은 말루기넨시스 가문이다. 이 가문은 코르넬리우스 가문 중 최초로 코그노멘을 취했는데, 이 가문에서 갈라진 가문이 코수스 가문, 루푸스 가문, 렌툴루스 가문과 함께 스키피오 가문이다.
스키피오 가문은 효자로 이름난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라는 사람이 눈 먼 아버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의 지팡이가 되어 수발을 든 효심으로 존경받아 얻게 된 별칭에서 시작됐다. 따라서 이 가문은 종가 말루기넨시스 가문이 독점적으로 사용한 푸블리우스를 자연스럽게 독점했는데, 이 가문의 구성원은 기원전 4세기 초부터 서기 2세기까지 거의 600년 동안 로마 국가의 최고 직책을 역임했고, 모두의 존경을 받았다. 스키피오 가문은 코르넬리우스 가문의 상징격 가문으로 유명했는데, 이들은 각 구성원마다 신체적 특징을 놓고 별도의 별명을 이름 뒤에 붙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수염이 많은 경우에는 바르바투스(Barbatus), 어깨뼈가 도드라진 경우에는 스카풀라(Scapula), 뾰족한 코를 가진 경우에는 나시카(Nasica), 대머리인 경우에는 칼부스(Calvus) 등을 코그노멘 뒤에 추가 성씨에 넣었다. 또 군사적 공적이 대단한 경우가 많아, 아프리카누스, 아시아티쿠스 같은 아그노멘 역시 가진 경우도 많았다.
스키피오 가문 못지 않은 다른 명문 지파로는 렌툴루스 가문이 있다. 이들은 당대의 권세가로 400년 가까이 명성이 대단했다. 이들은 그나이우스를 독점적으로 사용했던 코수스 가문이 '다소 느리다'는 뜻의 별명을 사용하면서 지파 성씨를 바꾼 것으로 추정된 집안이다. 이들은 같은 종가에서 갈라져 나온 스키피오 가문처럼 권세가로 수백년 동안 위세가 대단했는데, 돌라벨라 가문과 함께 악명이 대단했다. 렌툴루스 가문은 삼니움 전쟁부터 본격적으로 언급되는 지파로, 본인들의 권리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기심을 가지고 있다고 악평을 받았으며, 매우 완고하고 귀족적인 옵티마테스의 대표주자들로 악명을 떨쳤다. 하지만 이런 악평의 경우, 원로원 내 반대파벌의 주장일 확률도 높아, 대체적으로는 매우 귀족적이고 보수적인 자들이라는 상반된 평도 따라 다녔다.
악명을 떨친 또 다른 파트리키 지파로는 곡갱이에서 유래한 별명을 지파 이름으로 사용한 돌라벨라 가문이 있다. 돌라벨라 가문은 기원전 3세기 초부터 먼 친척뻘의 스키피오 가문, 렌툴루스 가문처럼 여러 고위 선출직 경력자를 배출했다. 이들은 기원전 3세기부터 비텔리우스 황제 시절까지 위세가 대단했다. 하지만 이들은 높은 지위, 뛰어난 능력에도 남녀 구성원이 법을 무시하고, 오만하고, 매우 사치스러웠던 사생활로 비난받았다. 다만, 돌라벨라 가문 역시 비교대상이 효자로 이름난 말루기넨시스 스키피오를 중시조로 둔 최고 명문가였기 때문에 이런 악명을 떨쳤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은 도미티우스 가문 중 악명을 떨친 아헤노바르부스 가문과 달리 범죄자, 악인을 배출하는 등 가문의 체통을 바닥까지 떨어뜨리지 않았다고 평가받았다. 그리고 이런 특이한 점 때문에 코르넬리우스 가문은 로마인에게 존경받았다.
종신독재관 술라로 유명한 술라 가문은 가문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술라 한 명만으로도 그 악명이 대단했다. 이 가문은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에서 다시 갈라진 지파로, 중시조 시절부터 뇌물 사건에 연루돼 몰락 귀족까지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가, 술라의 등장 속에서 악명과 동시에 가세가 흥했다. 특히, 술라의 직계들은 술라 스스로 취한 아그노멘 '펠릭스(행운아)'를 덧붙여 사용했는데, 이 가문의 직계는 술라 사후에는 악명을 떨치지 않고, 고결하고 예의바른 점에서 재평가됐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술라의 증손자 파우스투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가 고종사촌 네로에게 누명을 쓰고 암살되면서 가문의 대는 끊겼다. 그렇지만 이 가문 여성들의 피를 이은 방계들이 술라라는 코그노멘을 이어받아 정신적으로나마 가문 역사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이마저도 마르쿠스 무나티우스 술라 케리알리스가 엘라가발루스 황제에게 누명을 쓰고 자살 강요로 살해되고, 그 아들 마르쿠스 무나티우스 술라 우르바누스 이후부터 역사에 등장하지 않아 최종적으로 가문이 멸문됐다고 평가받는다.
여러 파트리키 지파 중 말더듬이를 뜻한 발부스를 지파 성씨로 사용한 발부스 가문은 특이하게 코르넬리우스 가문에게 입양된 스페인 카디스 출신 남성을 시작으로 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가문은 사실상 노빌레스로 평가받았고, 그 역사도 극히 짧아 원수정 초기 이후 대가 끊겼다.
제정 이후로도 로마사에는 수많은 코르넬리우스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과거 귀족 코르넬리우스 가문의 클리엔테스로서 씨족명을 수여받은 이들의 후손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공화정 시대까지도 존속했던 명문 귀족 가문들 중 그 일부 가문들과 비교해 오래된 명망가들의 대가 끊기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장 공화정 시대까지 어깨를 나란히 했던 클라우디우스 가문을 대표하는 풀케르 집안은 아우구스투스에게 수장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가 숙청되고 원로원과 로마에서 완전히 몰락하면서 그 위세가 완전히 주저 앉게 됐는데 코르넬리우스 가문 내 명문가들의 경우에는 그렇게까지 몰락하진 않은 듯 보인다. 따라서 스키피오 가문의 경우에는 트라야누스 황제 시절에도 집정관을 배출한 것이 확인된다. 이 외에도 네로에게 누명을 뒤집어 쓰고 처형된 파우스투스 술라 펠릭스를 배출한 술라 가문의 경우에는 엘라가발루스에게 밉보여 처형된 카파도키아 속주 총독 코르넬리우스 술라의 예처럼 최소 3세기 초까지는 대가 이어진 듯 하며, 4세기 후반에 살았던 스키피오처럼 간혹 오래된 파트리키의 코르넬리우스 가 후손들도 위세가 예전만 못할 뿐 확인되고 있다. 또 스키피오 가문처럼 워낙 유명한 집안의 경우,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가 입양한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살비디에누스 오르피투스(도미티아누스에게 숙청됨)처럼 입양 형태로도 어떻게든 그 대를 이어나가기도 했다.
3. 지파별 인물과 연관 인물
- 말루기넨시스 가문(종가)
- 코수스 가문(BC 430~)
- 스키피오 가문(BC 396~)
- 자세한 내용은 스키피오 문서 참고하십시오.
- 렌툴루스 가문
-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카우디누스(기원전 275년 집정관)
- 코수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기원전 130년 집정관)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크루스
-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수라
-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키피오(2년 집정관)
-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핀테르
-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 - 스크리보니아
-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바티아투스
-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기원전 18년 집정관)
-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우구르
- 루피누스 가문
-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루피누스
- 술라 가문
- 돌라벨라 가문
-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기원전 283년 집정관)
-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기원전 159년 집정관)
-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기원전 35년 집정관)
- 메룰라 가문
- 케테구스 가문
- 킨나 가문
- 발부스 가문
-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프론토
4. 여담
- 장례식을 할 때 다른 로마인들은 화장을 한 뒤 매장하지만 코르넬리우스 가문은 시신 그대로 매장한다고 한다. 로마인 이야기에서는 술라 역시 자신의 시신 그대로 매장하기를 원했지만, 무자비한 반대파 숙청으로 원한이 많은지라 나중에 테베레강에 던져질 가능성이 높다고 여긴 추종자들이 술라가 죽자 화장을 한 뒤에 매장했다고 한다.
[1] 개신교 성경에 등장하는 라틴어 인명 대부분이 그렇다. '티베리우스'를 '디베료'로, '아우구스투스'를 '아구스도'로, '클라우디우스'를 '글라우디오'로, '폰티우스 필라투스'를 '본디오 빌라도' 등. 전부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흔히 알고 있는 라틴어 인명의 '-us'를 코이네 그리스어식 어미 '-ος(-os)'와 유사한 '-o'로 바꾸고, 'ㅋ, ㅌ, ㅍ' 등의 격음을 'ㄱ, ㄷ, ㅂ' 등의 평음으로 바꾸면 대충 개신교 성경의 표기가 나온다. 관련 내용은 항목 2번 참조.[2] 집정관, 감찰관 등 고위 관직을 가장 많이 배출한 가문은 코르넬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발레리우스, 파비우스 순으로 여겨지는 일이 많으며, 코르넬리우스 가문은 그 중에서도 독보적이었다. # 확인된 법무관 목록 등 다른 관직에 대해서도 비슷한 경향성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