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s Valeria/Valerii
1. 개요
고대 로마의 유력 가문, 씨족명. 코르넬리우스 가문보다 집정관 배출 숫자가 적어 2인자 이미지가 강한 파트리키 가문이나, 매년 발레리우스를 성씨로 쓰는 인사들이 로마 관보에 이름이 등장한 명문가 중 명문가다.코르넬리우스[1], 율리우스, 유니우스, 아이밀리우스[2], 파비우스, 만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등과 더불어 고대 로마 초창기부터 내려온 전통의 명문 귀족(Patricii) 가문. 건국부터 서로마 제국 말기까지 로마 원로원과 로마 귀족 중 가장 두드러진 최고 명문 일족으로, 시조 때부터 귀족과 평민이 두루 섞인 씨족 가문이다.
코르넬리우스, 율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파비우스, 아이밀리우스, 만니우스, 칼푸르니우스 가문 등과 달리, 건국 이후의 전설 시대부터 로마 평민과 이탈리아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집안이다. 하여 발레리우스 가문 사람들의 요청도, 명령도 없었는데도 고대 로마의 모든 귀족 가문 중 유일하게 로마 성벽 안에 묻힐 권리, 키르쿠스 막시무스 경기장 내 왕좌 형태의 특별석 세습권을 부여받았고, 오직 이 가문만이 로마의 일곱 언덕 중 벨리아 언덕 기슭에 있는 포플리콜라의 저택이 신성시되는 영예까지 누렸다.
2. 유래와 어원
칼푸르니우스[3], 클라우디우스[4], 아우렐리우스, 테렌티우스, 폼포니우스, 리비우스[5], 아이밀리우스[6] 가문과 함께 사비니 혈통의 대표 씨족 집안이다.[7]로마 합류 이후 시작된 가문으로 시조 이름은 볼레수스 발레리우스(Volesus Valerius)다. 그는 사비니 혈통의 위대한 전사로, 왕의 수행원이었고 사비니 일대에서 용감함과 정의감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는 로마가 건설된 직후 사비니 왕 티투스 타티우스와 함께 일족을 이끌고 로마로 왔다고 하며, 가문은 볼레수스의 세 아들 푸블리우스, 마르쿠스, 마니우스 이래 일찌감치 지파로 쪼개졌다고 한다.
고대 로마 전승에 따르면, 로마 건국 직후부터 합류한 사실상의 개국공신 같은 씨족 가문이라고 한다. 어원은 사비니어에서 파생한 개인 이름 볼레수스(Volesus)의 애칭이 로마식으로 다시 변형된 Valere다.
3. 로마 내 위상
시조 때부터 다른 귀족 가문들과 달리, 용감함, 정의감, 공정함, 온화함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발레리우스 가문 사람들이 귀족인 이유도, 훌륭한 장군이나 막강한 권세를 휘두른 권력가라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그대로 실천하고 자신들의 이익도 평민들에게 불리하면 먼저 포기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를 비롯한 가문 출신 대정치가부터 이 집안 출신 귀부인들까지 솔선수범하고 위기 때마다 얼마 없는 재산까지 쏟아가며 국가에 헌신했다. 그래서 발레리우스 가문은 왕정, 공화정 시대와 제정 중기까지 거의 1000년간 로마인들에게 "파트리키 신분이라는 탈을 쓴 우리들의 보호자"로 찬사를 받았고, 평민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명문 귀족의 상징과 같았다. 하여 발레리우스 씨족이 아닌 평민들은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노멘(성씨)으로 발레리우스를 택했다고 한다.
이렇게 인망이 대단했고, 가문 사람들 역시 애국심과 타고난 인품이 훌륭해, 자연스레 온갖 특권이 로마 평민들 주도로 먼저 부여됐고 선거에 출마한 발레리우스 가문 사람들은 매년 로마 관보에 선출직 정무관에 이름을 올렸다. 또 가문 지파 성씨 중 포플리콜라부터 그렇듯이, 각 지파들이 코그노멘을 평민들이 자발적으로 붙여 주면서 쓰도록 해주는 등 여느 로마 귀족들과 다른 점도 많았다.
4. 주요 지파
로마에 복속 형식으로 스스로 귀순한 클라우디우스, 알바롱가가 박살이 난 뒤 강제로 합류한 율리우스, 아이밀리우스 가문 등과 달리 건국 때부터 로마와 같이한 귀족 가문답게 시조 이래 진행된 분파 과정도 빨리 진행됐다. 이중 시조 볼레수스의 직계 혈육들 아래에서 시작된 세 지파로는 장남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를 시조로 둔 포플리콜라 가문, 차남 마르쿠스를 시조로 한 볼루스 가문, 삼남 마니우스를 시조로 둔 마그누스 가문과 이들 가문에서 각각 분파된 포티투스 가문, 메살라(시칠리아 메사나에서 따옴) 가문, 코르부스("까마귀") 가문, 라비누스("왼손잡이") 가문, 플라쿠스 가문, 바르바투스("수염이 풍성한 사람") 가문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전통 세습 귀족(파트리키) 계급에 속했다. 특히 메살라 가문은 황후 발레리아 메살리나를 배출하는 등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시기까지도 명문가로 이어졌다.공화정 중기부터 등장한 팔토 가문, 트리아니우스 가문, 볼세이수스 가문, 카툴루스 가문 등이 있는데, 공화정 중기부터 등장한 가문들은 열 중 여덟, 아홉은 이탈리아 평민들이 스스로 발레리우스를 성씨로 삼아 시작된 집안이거나, 볼레수스의 직계와 클리엔텔라 관계를 맺은 평민 후손들이다.
제정 시대부터 보이는 아시아티쿠스 가문은 팔토, 트리아니우스, 볼세이수스 등 평민계급 지파 가문들과 달리, 평민 계급임에도 로마-이탈리아 혈통이 아닌 갈리아인을 시작으로 하는 가문이다. 이 가문은 제정 시대 이후 출현한 거의 유일한 발레리우스 씨족 가문 내지 속주민 출신으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플라비우스 왕조,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아래에서 황제 암살 사건에 연루되거나 황제에게 도전한 인사들을 배출한 집안으로 유명하다.
특이하게 2세기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말엽부터 등장해 서로마 제국 멸망 직전까지 존속한 발레리우스 메살라 가문은, 이탈리아 혈통의 귀족 중 아우구스투스 시대 이후 등장한 제정 시대 신귀족 가문인 빕스타누스 가문[8]에서 자신들의 사회적 위상을 높일 요량으로 아예 성씨를 갈아엎은 케이스다. 하여 이 집안은 종종 신(新) 메살라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시조는 자신의 증조모(혹은 고조모)로부터 어쨌든 오래된 발레리우스 메살라 가문의 피를 이은, 게타 황제의 최측근인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트라세아 프리스쿠스다.
5. 가문 내 전통
- 남성 이름(프라이노멘) 중 볼세수스 발레리우스의 후손들이 가장 많이 애용한 이름은 푸블리우스, 마르쿠스, 마니우스, 루키우스였고 가이우스도 아주 가끔 사용했다.
- 여러 가문 중 평민 계급 가문들은 아예 다른 이름을 사용했다. 가령 팔토 가문은 볼세수스의 직계들인 초창기 가문들처럼 푸블리우스, 마르쿠스를 사용하면서도 퀸투스를 대대로 사용했고, 제정 시대 등장한 갈리아 혈통의 아시아티쿠스 가문은 데키무스와 마르쿠스를 사용했다.
- 진짜 메살라 가문은 푸블리우스, 마르쿠스, 포티투스를 사용했고, 루키우스는 제정 시대 악랄한 아시아 속주 총독으로 지탄받은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볼레수스 외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반면 본래 빕스타누스가 성씨이나, 가문을 높이고자 성씨를 스스로 바꾸고 발레리우스 가문 직계를 자처한 제정 이후의 신 메살라 가문은 본래의 메살라 가문과 달리 푸블리우스, 마르쿠스, 포티투스를 사용하지 않고 루키우스만 대를 이어 사용했다.
6. 주요 인물
공화정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파트리키 발레리우스 가문과, 제정 이후로 발레리우스의 이름을 이어받은 인물들을 모두 포함한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제2차 포에니 전쟁 시기에 활동한 고대 로마의 귀족이자 장군.
-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 제2차 포에니 전쟁 시기에 활동한 고대 로마의 귀족이자 장군.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5세가 한니발 바르카와 협력하여 로마를 공격하는 걸 저지한 인물이다.
- 발레리아 메살리나: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1세의 셋째 부인이자 황후. 본명은 발레리아 메살리나(Valeria Messalina)이나, 흔히 메살리나로 불린다.
-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 로마 제국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시대의 원로원 의원, 집정관이자 반역자. 로마 공화정, 제정 역사상 갈리아 출신의 첫 집정관으로, 두 번이나 집정관에 재임한 인물이다.
-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트라세아 프리스쿠스: 로마 제국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세베루스 왕조 시대의 원로원 의원, 집정관, 황제 고문이다. 보통은 트라세아 프리스쿠스로 불린다.
-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로마 제국 세베루스 왕조, 군인 황제 시대의 원로원 의원, 전직 집정관, 수도 장관, 총독이다. 전체 이름이 길어 보통은 발레리우스 막시무스로 통칭된다.
7. 성씨에서 이름으로 바뀌다
율리우스, 파비우스, 코르넬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아우렐리우스 가문 등과 함께 제정 시대 이후 성씨에서 이름으로 바뀌게 됐다. 따라서 현대 서구권에서도 발레리우스를 각자의 발음으로 음차한 남자 이름, 여자 이름들이 여럿 있다.[1] 스키피오 가문, 술라 가문 등이 이 씨족 출신이다. 로마 공화정 시기 가장 많은 관직을 배출한 최고의 명문으로 꼽힌다.[2]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아내 칼푸르니아의 친정 칼푸르니우스 가문과 함께 2대 왕 누마가 시조임을 주장한 오래된 귀족 가문이다.[3] 사비니족 출신 중 가장 유명한 2대 왕 누마 폼필리우스의 차남 칼푸스부터 내려온 집안이다. 누마의 후손임에도 플레브스에 속했으나, 명망은 공화정 초부터 파트리키에 버금간 만큼, 대표 지파인 피소 가문은 공화정 초부터 평민 귀족으로 불린 노빌레스로 위세가 대단했다.[4] 고대 로마 당대부터 사비니계 중 사비니 전통을 비롯해 산니움, 움브리아 전통까지 고집한 가풍을 전 지파가 고수했다. 클라우디우스 가 남성들은 뒷머리를 목덜미까지 기르거나, 사비니인들의 관습 아래 au, o를 병기해 클라우디우스, 클로디우스 모두를 사용했다.[5] 라틴족 계열이라는 주장도 있다.[6] 공화정 후기 이래로는 스스로를 누마 폼필리우스의 후손이라고 했다. 그러나 알바롱가 혹은 라티움 일대의 라틴계라는 증거도 있어, 플루타르코스 생전부터 사비니계, 누마 폼필리우스 후손이라는 주장 자체부터 족보 위조 소리를 들었다. 다만, 일가가 이렇게 주장할 당시 기준으로는 리비우스 드루수스 가문과 1세기 넘게 상호 입양을 했고, 누마의 진짜 후손들인 칼푸르니우스 피소 가와 인척 형성 속에서 사비니 혈통도 섞여, 족보 위조라고는 또 할 수 없었다고 한다.[7] 플라비우스 왕조로 유명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플라비우스 가문 역시 사비니계였다.[8] 네로 시절부터 비텔리우스를 현란한 연설 솜씨로 까댔고, 비텔리우스가 제위에 오른 뒤에도 그 행태를 비난한 대연설가 루키우스 빕스타누스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