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3 10:25:23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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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gnotus: 불명
황제 겸 집정관 }}}
201년 202년 202년 보결 203년 204년
루키우스 안니우스 파비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페르티낙스 아우구스투스 티투스 무렌니우스 세베루스 가이우스 풀비우스 플라우티아누스 루키우스 파비우스 킬로 셉티미누스 카티니우스 아킬리아누스 레피두스 풀키니아누스
마르쿠스 노니우스 아리우스 무키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레갈리아누스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 마르쿠스 안니우스 플라비우스 리보
204년 보결 205년 206년 206년 보결 207년
루키우스 폼포니우스 리베랄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움브리우스 프리무스 세네키오 알비누스 푸블리우스 툴리우스 마르수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막시무스
ignotus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 카이사르 루키우스 풀비우스 가비우스 누미시우스 페트로니우스 아이밀리아누스 마르쿠스 카일리우스 파우스티누스 가이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아페르
208년 209년 210년 211년 212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폼페이아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파우스티누스 헤디우스 롤리아누스 테렌티우스 겐티아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스페르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 카이사르 퀸투스 헤디우스 롤리아누스 플라우티우스 아비투스 아울루스 트리아리우스 루피누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밀리우스 아스페르
212년 보결 213년 214년 215년 216년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퀸투스 마이키우스 라이투스 푸블리우스 카티우스 사비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데키무스 카일리우스 칼비누스 발비누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아피우스 수에트리우스 사비누스 마르쿠스 무나티우스 술라 케리알리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아눌리누스
217년 218년 218년 보결 219년 220년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오펠리우스 세베루스 마크리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티투스 메시우스 엑스트리카투스 마르쿠스 오클라티니우스 아드벤투스 퀸투스 티네이우스 사케르도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코마존
221년 222년 223년 224년 225년
가이우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사비니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마리우스 막시무스 페르페투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 티베리우스 마닐리우스 푸스쿠스
마르쿠스 플라비우스 비텔리우스 셀레우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알렉산데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로스키우스 아일리아누스 파쿨루스 살비우스 율리아누스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크리스피누스 세르비우스 칼푸르니우스 도미티우스 덱스테르
226년 227년 228년 229년 230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세네키오 알비누스 퀸투스 아이아키우스 모데스투스 크레스켄티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비리우스 아그리콜라
가이우스 아우피디우스 마르켈루스 마르쿠스 라일리우스 풀비우스 막시무스 아이밀리아누스 마르쿠스 폼포니우스 마이키우스 프로부스 카시우스 디오 섹스투스 카티우스 클레멘티누스 프리스킬리아누스
231년 232년 233년 234년 235년
루키우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루키우스 비리우스 루푸스 율리아누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아킬리우스 프리스킬리아누스 마르쿠스 클로디우스 푸피에누스 막시무스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살루스티우스 파일리그니아누스 루키우스 마리우스 막시무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파테르누스 마르쿠스 무나티우스 술라 우르바누스 루키우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퀸티아누스
236년 237년 238년 239년 240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미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마리우스 페르페투우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피우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고르디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아피우스 수에트리우스 사비누스
마르쿠스 푸피에누스 아프리카누스 막시무스 루키우스 뭄미우스 펠릭스 코르넬리아누스 폰티우스 프로쿨루스 폰티아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아비올라 루키우스 라고니우스 베누스투스
241년 242년 243년 244년 245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고르디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아티쿠스 사비니아누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아리아누스 티베리우스 폴리에누스 아르메니우스 페레그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클로디우스 폼페이아누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레피두스 프라이텍스타투스 가이우스 케르보니우스 파푸스 풀비우스 아이밀리아누스 가이우스 마이시우스 티티아누스
246년 247년 248년 249년 250년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가비우스 누미시우스 아이밀리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메시우스 퀸투스 트라야누스 데키우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알리우스 알비누스 마르쿠스 율리우스 세베루스 필리푸스 카이사르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세베루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나이비우스 아퀼리누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251년 252년 253년 254년 255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메시우스 퀸투스 트라야누스 데키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비비우스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비비우스 볼루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메시우스 데키우스 카이사르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비비우스 볼루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발비누스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256년 257년 258년 259년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 아킬리우스 프리스킬리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투스쿠스 (눔미우스) 아이밀리아누스 (덱스테르)
마르쿠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뭄미우스 바수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260년 261년 262년 263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사이쿨라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알비누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도나투스 루키우스 페트로니우스 타우루스 볼루시아누스 눔미우스 파우스티아누스 덱스테르 (막시무스)
동방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풀비우스 마크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풀비우스 퀴에투스 아우구스투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호노라티아누스
264년 265년 266년 267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오비니우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퀼리우스 파테르누스
사투르니누스 루킬루스 사비닐루스 아르케실라우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피아보니우스 빅토리누스
268년 269년 270년 271년
아스파시우스 파테르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안티오키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에그나티우스 마리니아누스 파테르누스 비리우스 오르피투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피아보니우스 빅토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피아보니우스 빅토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아우구스투스
산크투스
272년 273년 274년 275년
티투스 플라비우스 포스투미우스 퀴에투스 아울루스 카이키나 타키투스 또는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타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유니우스 벨둠니아누스 율리우스 플라키디아누스 카피톨리누스 (아우렐리우스) 마르켈리누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아우구스투스
노빌리시무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276년 277년 278년 279년 280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타키투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풀비우스) 아이밀리아누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비리우스 루푸스 노니우스 파테르누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281년 282년 283년 284년 284년 보결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루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유니우스 티베리아누스 빅토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누메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카이소니우스 오비니우스 루피누스 마닐리우스 바수스 Ⅱ)
285년 286년 287년 288년
티투스 클라우디우스 아우렐리우스 아리스토불루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베티우스 아퀼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폼포니우스 야누아리아누스
동방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서방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누스 아우구스투스
288년 보결 289년 289년 보결 289년 보결
… a 마르쿠스 마그리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움브리우스 프리무스 케이오니우스 프로쿨루스
… ivianus 루키우스 라고니우스 퀸티아누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코엘리아누스 헬비우스 클레멘스
브리타니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우사이우스 카라우시우스
289년 보결 290년 291년 292년
플라비우스 데키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티베리아누스 아프라니우스 한니발리아누스
… ninius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시우스 디오 율리우스 아스클레피오도투스
브리타니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우사이우스 카라우시우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우사이우스 카라우시우스
293년 294년 295년 296년 297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카이사르 눔미우스 투스쿠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안니우스 아눌리누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카이사르
298년 299년 300년
아니키우스 파우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카이사르
비리우스 갈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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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Lucius Valerius Maximus
전체 이름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아킬리우스 프리스킬리아누스 막시무스
(Lucius Valerius Claudius Acilius Priscillianus Maximus)
출생 미상
사망 미상
계급 파트리키
가족 부친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모친 클라우디아 아킬리아 프리스킬리아나
조부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트라세아 프리스쿠스
외조부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클레오불루스
아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발비누스 막시무스
경력 집정관(2회)
아시아 속주 총독(209~212)
시리아-페니키아 지방 황제 특사(194년)
프라트레스 아르발레스 사제(190~225년)
퀸데킴비리 사크리스 파키운디스(203~225)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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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세베루스 왕조, 군인황제시대원로원 의원, 전직 집정관, 수도 장관, 총독이다. 전체 이름이 길어 보통은 발레리우스 막시무스로 통칭된다.

카라칼라에게 게타와 지지세력이 살해될 때 살생부에 올라 죽임을 당한 전직집정관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트라세아 프리스쿠스의 손자, 푸피에누스의 친구이자 협력자로 세베루스 왕조 멸망 후 정국을 이끈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의 아들로, 세베루스 알렉산데르가 238년 몰락한 이후 시작된 군인황제시대 동안, 아버지와 함께 이탈리아 귀족 세력을 대표한 원로원 의원 중 구심점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2. 생애

아우구스투스부터 티베리우스 시대까지 총독, 집정관, 장군 등을 지내며 명성을 쌓은 세습 원로원 의원으로, 저명한 장군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메살리누스의 외손자 가이우스 빕스타누스 메살라 갈루스의 직계 후손이다. 그의 조부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트라세아 프리스쿠스는 본래 루키우스 빕스타누스 메살라 트라세아 프리스쿠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의 일가는 직계조 가이우스 빕스타누스 메살라 갈루스가 출생 전부터 갈루스의 외조부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메살리누스에게 직접 발레리우스 일족의 대표 파트리키인 메살라 가문의 코그노멘과 가문의 적통이라는 것을 상속받은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배경으로, 이 가문은 티베리우스 황제 시절부터 이미 메살라 가문의 데릴사위와 그 자녀들이라는 명분 아래에서 성씨만 빕스타누스일 뿐, 발레리우스 성씨로 인정받고 있었으며, 이들의 성씨 변경은 시간 문제로 여겨졌다. 그러다가 그의 조부 트라세아 프리스쿠스가 성년식을 마친 뒤, 정식으로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메살리누스의 유지와 허락으로 인정받은 것을 공식화하면서 성씨를 발레리우스로 바꿨다. 이렇게 개창된 집안이 3세기부터 최소 서로마 제국 멸망과 동로마 제국 초기까지 로마를 대표한 파트리키로 찬사받은 신(新) 메살라 가문이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는 이 가문 적통 적자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의 아들이다. 그의 부친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는 트라세아 프리스쿠스의 아들로, 카라칼라의 최측근이며 절친, 친구 집단의 1인자로 자타가 인정한 발비누스 등의 보호와 율리아 돔나, 율리아 마이사 자매의 옹호로 카라칼라조차 숙청하지 못한 귀족이다. 그는 2만명의 로마인을 재판없이 살육한 카라칼라가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고자 집정관 자리를 추천해, 214년 집정관이 됐다. 하지만 이후 막시무스의 아버지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는 세베루스 왕조에게 철저히 모든 경력이 사실상 단절되는 보복을 당해, 세베루스 왕조가 무너지기 전까지 어떤 총독 자리도 얻지 못했다. 막시무스의 어머니는 그리스계 로마귀족 집안의 귀부인이다. 그녀는 그리스계 원로원 의원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클레오불루스의 딸로, 원로원 의원 클라우디우스 아킬리우스 클레오불루스의 누이 클라우디아 아킬리아 프리스킬리아나이다. 막시무스는 전체 이름에서 드러나듯, 아버지와 어머니, 외조부, 외삼촌의 이름, 칭호를 결합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 모두 세베루스 왕조 아래에서 부와 권세를 누린 원로원 내 유력 가문 출신인 만큼, 일찍부터 명예로운 경력이라고 불리는 로마 선출직 엘리트 코스를 두루 거쳤다. 특히, 로마 원로원에서 1년에 세 명만 지명하는 트리움비르 모네탈리스에 올라 화폐 발행 담당 업무를 시작으로 로마 제국의 정치 경력을 시작했고, 이 경력을 마친 직후 재무관이 됐다.

어떤 지역의 재무관으로 파견됐는지 모르나, 이 직책을 마친 직후 수도 담당 재무관에 임명됐고, 이후에는 후견인 문제를 담당하는 업무를 총괄하는 법무관이 됐다. 이후 233년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파테르누스와 함께 집정관이 됐다. 이후 그는 전직집정관 자격으로 총독 부임 자격을 얻었는데, 집정관 임기가 끝나자마자 수도 로마 시내의 하수도, 수도교와 테베레 강 유역 수질 관리 담당을 담당하는 감독관에 취임했다.

경력에서 드러나듯, 연이어 명예로운 경력을 경험한 직후 정부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를 통해 그는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정부와 원로원 안에서도 핵심 원로원 의원이었는데, 235년 세베루스 왕조가 무너지고 막시미누스 트라쿠스가 황제가 됐다.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와 대립했는지, 그를 지켜보며 적당히 돌아가는 흐름을 관찰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분명한 점은 발레리우스 막시무스는 할머니의 친척인 발비누스 대신 푸피에누스의 최측근이었고, 그가 따르고 있던 푸피에누스 부자는 후자 쪽에 속한 원로원 귀족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푸피에누스와 그 측근들은 당대 사가 헤로디아누스의 표현처럼 경험많고 노련한 이들이 많았다.

푸피에누스의 두 아들은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와 일방적으로 대립하지 않았고, 푸피에누스 차남은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즉위 후 집정관이 됐다. 이는 푸피에누스 역시 비슷했는데, 이 사람은 엄격한 성격을 가진데다 군대 경력이 있는 문무겸비형 원로원 인사였고, 이 사람과 친분 있던 원로원 의원들은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시대 동안 총독, 군단장 등에 올랐다. 왜냐하면 푸피에누스와 그 측근들은 원로원 내에서 물러터진 알렉산데르 세베루스의 국방정책보다는 막시미누스의 국방정책을 지지했기 때문인데, 이 사람의 신임을 받은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역시 트라쿠스가 일방적으로 징세를 하기 전까지는 중립적인 자세를 취한 원로원 중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238년 막시미누스 트라쿠스가 국가의 적이 선포될 당시, 발레리우스 막시무스는 푸피에누스, 발비누스, 발레리아누스 등과 함께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의 실정을 지적하며 맞섰다. 이 당시 원로원은 트라쿠스를 국가의 적으로 만들고, 고르디아누스 1세, 고르디아누스 2세를 공동황제로 추인했다. 헌데 발레리우스 막시무스는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와 맞서고 쪽과 협상을 직접 담당한 원로원 대표였음에도, 협상의 여지를 두고 고르디아누스 1세 쪽과 협상 테이블을 마련한 발레리아누스와 다른 방법으로 정국을 운영했다. 따라서 고르디아누스 부자의 요청 중 카펠리아누스 해임과 같은 것은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238년 원로원 의원인 누미디아 총독 카펠리아누스가 원로원의 형식적 권고를 이해한다고 답변한 뒤, 서로 악감정이 대단했던 고르디아누스 1세, 고르디아누스 2세를 공격했다. 카르타고 시가전에서 두 공동황제는 황제를 자처한 지 2주만에 몰락했다. 이때 발레리우스 막시무스는 푸피에누스 쪽 대리인이 되어, 북이탈리아의 아퀼레이아로 진군 중인 막시미누스 쪽과 협상을 벌였고, 원로원은 푸피에누스, 발비누스를 새로운 황제로 내세웠는데, 그는 이 판을 주도한 핵심인사였다. 허나 그가 따르던 푸피에누스는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몰락 직후 발비누스와 대립하다, 고르디아누스 3세를 앞세운 원로원 내 고르디아누스 가문 지지자들과 손을 잡은 것으로 추정되는 근위대 손에 몰락한다.

푸피에누스를 지지했고 원로원 내에서 이탈리아 귀족을 대표했기 때문에, 고르디아누스 3세, 필리푸스 아라부스 시절 동안 제국의 요직을 맡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는 필리푸스 아라부스가 몰락할 무렵, 데키우스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등과 손을 잡고 필리푸스 아라부스를 몰락시킨다. 이 공로로 아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발비누스 막시무스는 253년 집정관이 됐고, 그 역시 255년 발레리아누스 황제 아래에서 로마 수도 장관 자리를 받고, 이듬해 두번째 집정관에 올랐다. 두번째 집정관 직에 올랐을 당시, 나이가 꽤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이후에는 기록에서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