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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혼성그룹)/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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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이길 원했던 이유
정규 1집

1994. 07. 10
The [Ku:l] : Love Is..., Waiting
정규 2집

1995. 10. 01
Destined For The Best
정규 3집

1996. 11. 01
Summer Story
정규 3.5집

1997. 07.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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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 4
정규 4집

1998. 04. 01
The Spirit Of Hungry
베스트

1998. 10. 01
COOL 4.5
정규 4.5집

1999. 01. 01
Best Of Best COOL 1020 Mix
베스트

1999. 05.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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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 5
정규 5집

2000. 04. 22
COOL 6ix
정규 6집

2001. 07. 04
First Whisper
정규 6.5집

2001. 12. 06
COOL 7even
정규 7집

2002. 07.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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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Whisper
정규 7.5집

2002. 12. 01
COOL 8ight
정규 8집

2003. 07. 04
Third Whisper
정규 8.5집

2003. 12. 18
COOL Best
베스트

2004. 0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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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ver
정규 10집

2005. 07. 14
Never Ending Story
스페셜

2006. 07. 06
사랑을 원해
정규 10.5집

2008. 0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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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 11
정규 11집

2009. 07. 20
이별 앞에 서다
디지털 싱글

2013. 08. 02
한 여름 밤의 고백
디지털 싱글

2015. 07. 21
다 잘 될 거야
디지털 싱글

2015. 0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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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 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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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일처 (아모레미오)
컴필레이션

1997. 08
· 어느 스키장에서 생긴 일
컴필레이션

1999. 11. 01
· Main Title
드라마 OST

2001. 07. 01
· 고백가 (告白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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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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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ower No.1
· Dream
애니메이션 OST

2003. 11. 28
· 해변의 여인 (2006 Summer Remix)
리믹스

2006. 05. 30
· 해변의 여인 (2006 Summer Remix)
영화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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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변의 여인
피처링

2008. 03. 03
· 해변의 여인 & 애상
컴필레이션

2013. 08.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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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지려 하기 전에 · 해변의 여인 · 애상 · 맥주와 땅콩
All for you · 아로하 · 사랑합니다


1. 개요2. 1집 <너이길 원했던 이유>3. 2집 <작은 기다림>, <슬퍼지려 하기 전에>4. 3집 <운명>, <루시퍼의 변명>5. 3.5집 <해변의 여인>, <송인>6. 4집 <애상>, <변명>, <또자 쿨쿨>7. 4.5집 <미절>, <십계>8. 5집 <해석남녀>, <맥주와 땅콩>, <All For You>9. 6집 <Jumpo Mambo>10. 6.5집 <아로하>11. 7집 <진실>, <숙아>12. 7.5집 <산책>13. 8집 <결혼을 할 거라면>, <One Summer Drive>14. 8.5집 <떠나야만 했나요>, 10주년 BEST15. 9집 <친구찾기>, <아가씨와 건달들>16. 10집 <이 여름 Summer>, 그리고 해체17. 해체 이후 ~ 재결합18. 10.5집 <사랑을 원해>19. 11집 <보고 보고>20. 역대 히트곡 모음

[clearfix]

1. 개요

의 연혁을 정리한 문서.

2. 1집 <너이길 원했던 이유>

너이길 원했던 이유
1994. 08. 17 (8월 셋째주)
<KBS 가요톱10>

1994년 7월 최준명, 김성수, 유채영, 이재훈 4명의 멤버로 시작했을 때는 지금과 사뭇 다른 '쿨 재즈'풍의 음악을 밀었다. 멤버 최준명이 작사에 참여한 1집 활동에서는 힙합에 현악기를 접목시킨 너이길 원했던 이유로 최고 9위까지 드는 등 선전했으나, 삭발한 유채영의 파격적인 헤어스타일[1]과 이재훈의 비주얼로 적당한 인기를 끌었을 뿐 곡 자체는 대박을 내지 못했다.[2] 사실 1, 2집 때는 거의 이재훈의 독무대였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이 시기의 쿨을 보고 이재훈과 아이들이라고 부를 정도. 이때까지는 시원하다는 의미의 쿨이 아닌, 쩐다라는 의미의 쿨에 가까운 그룹이었다.

당시에는 적당히 높은 인기가 있었을 뿐인데다 워낙 3인조 쿨로 유명해져서 데뷔 초의 4인조 쿨 활동을 기억하는 팬들은 거의 없는 상황이지만, 2015년 이후 각 방송사들이 유튜브에 과거 음악 방송들을 업로드해 서비스하기 시작하면서 유튜브를 통해 이 시절의 쿨 활동이 재발견되고 있다. 메인보컬 이재훈의 풋풋하고 훈훈한 외모와 눈에 띄는 유채영의 삭발머리, 시대를 뛰어넘은 댄디한 패션, 베이비나 헤드스핀 등의 격렬한 브레이크 댄스를 보면, 3집 이후의 밝고 장난스러운 모습이나 나이 들어 후덕한 모습만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가히 쇼크라 할만하다. 계속 재발견되며 다시 빠지는 이들이 생기는 추세. 게다가 브레이크 댄스를 쉽게 소화하는 이재훈...

3. 2집 <작은 기다림>, <슬퍼지려 하기 전에>

작은 기다림
1996. 01. 03 (1월 첫째주)
<KBS 가요톱10>
작은 기다림
1995. 11. 24
<MBC 인기가요 베스트50> 26회
작은 기다림
1996. 01. 26
<MBC 인기가요 베스트50> 34회

그 후 유채영, 최준명이 빠지고[3] 남은 김성수와 이재훈이 유리(본명 차현옥)를 새로 영입하며 멤버 교체가 이루어진다. 그렇게 3인조로 내놓은 2집(1995년)에서는 작은 기다림과 후속곡 슬퍼지려 하기 전에[4]라는 곡으로 활동했으며, 이때도 10위권 안에 들 정도로 선전했다. 가요톱10 기준으로 '너이길 원했던 이유'는 최고 8위, '작은 기다림'은 최고 4위, '슬퍼지려 하기 전에'[5]는 최고 9위까지 랭크되었다.
슬퍼지려 하기 전에
1996. 04. 13
<MBC 인기가요 베스트50> 44회
슬퍼지려 하기 전에
1996 편집 ver.

4. 3집 <운명>, <루시퍼의 변명>

운명
1997. 01. 08 (1월 첫째주)
KBS <가요톱10> Live

199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댄스 그룹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3집 'Destined The Best'로 활동했으며, 이 즈음부터 THE [ku:l]에서 COOL으로 바꿨다. 이 앨범이 쿨을 최상위 가수로 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1996년 11월 말에 발매되어 그 겨울 내내 활동한 타이틀곡 운명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당시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최고의 아이돌 가수 H.O.T.의 '캔디'와의 3번 대결 끝에 가요톱텐에서 첫 1위를 차지한 뒤 그 기세를 이어서 마지막으로 골든컵을 수상하는 그룹이 되었으며 뿐만 아니라 지상파 3사 가요 차트 최고 타이틀을 모두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6] 이 때 COOL이 H.O.T.를 이기면서 일종의 언어유희를 느낀 사람도 적지 않다고. 또한 2집 이전에는 거의 립싱크 무대로 꾸몄다면 3집부터는 라이브 무대의 비중을 늘렸는데, 당시 1위 경쟁 상대였던 H.O.T.의 캔디의 경우 활동 내내 립싱크를 하면서 몇몇 언론에서는 '실력으로 이겼다'는 비교를 받았다.[7]

특히 3집부터는 윤일상이승호의 히트곡 제조팀 덕분에 인기를 끌 수 있었는데, 고풍스러운 컨셉을 표방하던 쿨이 판매부진으로 해체위기에 놓였을때, 한국의 비치 보이스를 생각하며 쿨의 컨셉을 발랄하게 바꾸면서 쿨을 인기가수로 올려놓았으며, 해변의 여인애상이 대표적인 예시다.[8]
루시퍼의 변명
1997. 02. 15
MBC <인기가요 베스트50> 80회 Live

1997년 1~2월 내내 커리어 사상 첫 차트 1위를 독식하며 큰 인기를 누린 이후, 후속곡 루시퍼의 변명이 1위 후보에 여러 번 오를 정도로 역시 탄력을 받고 고공행진을 하기 시작했으며, 앨범의 대표 발라드 곡이었던 '너의 집 앞에서'는 이재훈의 솔로곡임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선호도가 높자 뮤직비디오까지 찍고 잠시 동안 홍보를 했다. 따스한 음색이 묻어나는 절절한 미디엄템포 곡으로 이후 쿨표 발라드 계보의 시작점이 된 상당히 의미있는 곡이다.[9]

이 곡의 뮤직비디오 여주인공으로 당시로서는 신인이었던 김규리가 출연했으며 이를 계기로 이재훈과 사귀기 시작하면서 이후 몇 년간 알콩달콩 커플로 인기를 얻었다. 운명의 대히트와 후속곡들의 선전에 힘입어 1997년 말까지 비공식 100만장 음반을 판매하면서 밀리언셀러 톱 가수의 반열에 오르는 큰 성과를 이루었다.[10]

5. 3.5집 <해변의 여인>, <송인>

해변의 여인
1997. 07. 23 (7월 넷째주)
KBS <가요톱10>
[11]
해변의 여인
1997
<TV가요20>

이때까지는 여름에 주로 활동하는 가수가 아니었으나 4집(1998년) 사이의 공백기간에 낸 3.5집(1997)의 해변의 여인[12]도 히트를 치면서 여름 가수의 이미지를 구축하게 되었다. 후속곡은 발라드곡 송인이었는데, 지난 앨범에서는 이재훈 솔로곡을 발라드 후속곡으로 밀었다면 이 앨범에서는 홍일점 유리가 솔로로 부른 곡을 내세웠다.
송인
1997. 09. 13
MBC <인기가요 베스트50> 108회 Live

사실 유리의 가창력이 딱히 좋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솔로곡을 싣는다는 것을 의아해 했지만, 콕콕 찌르는 듯한 기존의 창법과는 정반대인 편안하고 가녀린 음색을 선보이면서 실력이 없는 가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였고, 다양한 그녀만의 표현력으로 노래의 감초맛을 더하는 서브보컬이라는 점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면서 소소한 인기를 누리며 오랫동안 숨은 명곡으로 사랑받는 노래가 되었다.[13] 그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정규 앨범이 아님에도 50만장 이상을 기록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14]

'해변의 여인'은 역대급으로 영원히 남을 수준의 경쾌한 명곡으로 여름 해수욕장 인파를 보도하는 모든 방송사 메인 뉴스(!)에 무조건 삽입된다. 한국 한정으로는 '벚꽃엔딩'의 원조격이나 다름없다.[15]

6. 4집 <애상>, <변명>, <또자 쿨쿨>

애상
1998. 05. 06
KBS <브라보 신세대> Live
애상
1998. 05. 09
MBC <음악캠프> Live

4~6집 시기는 우리나라 가요계에서 1996년 별들의 전쟁 이후 또다른 춘추전국시대로 볼 수 있는[16] 90년대 후반 ~ 2000년대 극초반 때는 독보적인 원탑 임팩트까지는 없었지만 적어도 '나왔다 하면 1위는 당연히 매번 찍고 들어가는 최정상급 가수들 중 하나였다. 또한 매년 10위 안에 들어가는 훌륭한 음반 판매량과 가요 차트를 유지했으며 윤일상과 이승호의 곡들을 통해 1위 후보 및 1위 자리에 수도 없이 오르는 등 꾸준히 정상급 인기를 유지하며 크게 선전했다.

운명, 해변의 여인 연타석 히트로 얻은 부담없이 친근한 이미지가 이 시기에 극대화되어, 발랄하고 신나는 멜로디에 연인들간의 여러 상황과 감정을 컨셉으로 잡아 마치 멤버들끼리 티격태격하는 듯한 재밌는 무대 연출과 코믹하면서 발랄한 컨셉으로 10~20대층, 특히 커플 사이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변명
1998. 04. 25
MBC <음악캠프> Live
또자-쿨쿨
1998. 05. 30
MBC <음악캠프> Live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1998년 4월에 발매된 4집의 타이틀 곡 애상. IMF로 축축 처진 분위기 속에서도 밝은 분위기의 멜로디에 어장인지 아닌지 이성관계 속 미묘한 감정을 잘 풀어낸 이 곡으로 슬럼프는커녕 오히려 더욱 탄탄한 입지를 다졌고, IMF의 힘든 모습을 그대로 곡 속으로 옮겨 커플들의 경제적 문제를 곡 속에 녹여낸 곡인 변명, 또다른 활동 곡인 또자 쿨쿨도 인기를 얻었다. 또, 4집의 타이틀인 친구가 연인이 되기까지도 히트를 쳤다. 경제 불황 속에서도 80만장의 판매고를 올려 3집 다음으로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으며[17] 여러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전성기를 이어갔고, 활동이 끝난 이후에도 운명, 해변의 여인과 더불어 애상은 초기 히트곡 3대장 중 하나로서 2011년에는 10CM가 리메이크해 어린 층에게도 알려질 정도로 꾸준한 사랑을 받는 곡이 되었다.[18] 쿨로 활동했던 멤버들 모두 수많은 히트곡들 속에서도 가장 큰 애착을 보이는 곡이다.

단적으로 MBC 무한도전 토토가에서 '슬퍼지려 하기 전에'와 애상을 공연했고, 각종 행사와 콘서트에서도 무조건 이 노래가 빠지지 않는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활동 당시의 히트로 따지면 운명이 더 많은 인기를 얻었고, 해변의 여인도 만만치 않게 롱런했던 데다 골든디스크 대상을 안겨준 진실, 여름 가수로 완전히 자리잡게 해준 Jumpo mambo, 쿨 발라드 명곡으로 각각 응답하라 1997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통해 재조명된 All For You, 아로하 등이 있음에도 매 무대마다 애상을 고집하는 건 쿨 멤버들에게 매우 뜻깊은 의미가 담긴 곡으로 현재까지 가장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여담으로 <애상> 뮤직비디오에 개그맨 윤정수가 주연으로 출연했는데 이재훈과의 친분이 쌓이면서 <변명> <미절> <해석남녀>까지 뮤직비디오에 연달아 출연하고 심지어 음악방송까지 같이 나오는 등, 사실상의 제 4의 멤버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쿨을 알게된 몇몇 사람들은 윤정수가 가수 데뷔했다고 착각했을 정도로 쿨과의 협업이 많았다.
1998년 2022년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애상의 반주가 2005년 이전과 2008년 이후를 비교했을 때 약간 다르다. G키였던 원곡을 F#키로 한 키 낮춘 것을 제외하면[19] 원곡과 대동소이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2008년 이후 버전에서 코러스가 더 선명해졌다.

7. 4.5집 <미절>, <십계>

미절
1999. 01. 03
MBC <음악캠프> Live
십계
1999. 03. 06
MBC <음악캠프> Live

3,4집으로 연타석 홈런 메가히트를 친 이후, 다음해로 넘어가자마자 발매된(1999년 1월) 4.5집은 신곡 두 곡에 기존의 히트곡들을 덧붙여 만든 스페셜 앨범이다. 지금과 같은 환경이었다면 싱글컷하여 따로 발매했겠지만 당시 한국 가요계에는 싱글 개념이 없었던지라 억지로 베스트 형식으로 끼워맞춰 나온 앨범이라고 볼 수 있었다. 신곡 두 곡을 모두 활동곡으로 지정하여 십계, 미절 모두 더블 타이틀로 활동했으며 그 중 미절은 인기가요에서 1위를 수상했고 뮤직뱅크에서도 MVP에 올랐다.

이 시기가 소속사와의 계약이 끝나가는 시점이었기에 많은 활동을 하지 못했고, 두 곡을 더블 타이틀로 내세워 집중도도 떨어져 3~4집 기간의 폭발적인 화력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주춤한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즈 시절을 보낸 남성 솔로 가수[20], 리즈 시절의 핑클[21]과의 경합을 뚫고 비정규 앨범으로 1위를 거머쥐었다는 것은 그룹 자체의 대중적인 지지도가 탄탄했음을 보여주는 지표였다. 음반판매량은 34만장으로 적당히 선방했다.

하지만 멤버들에게는 데뷔 이래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한다. 3집 이후 연이은 히트로 인기가 전국구 반열에 오르면서 쉴새없이 방송과 행사를 도는 등 정신적, 신체적 체력 소모가 극심했고 이 인기를 바탕으로 한 푼이라도 더 뜯어먹으려고 당시 소속사의 횡포가 기승을 부렸다고 전해진다. 1998년 9월 계약 기간이 끝나고 소속사를 옮겨 신곡 두 개와 기존 히트곡들을 재편곡해서 4.5집을 발매했지만,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의 저작권을 놓고 전 소속사에서 소송을 주장하는 등 심각한 내홍을 겪었다. 소속사를 나갈 당시에 갖은 협박회유가 이어졌으며, 이 때문에 멤버들 모두가 가수 은퇴를 고려할 정도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스페셜 앨범을 발매하면서 쿨 멤버들에겐 자신들의 인기를 가늠하게 해준 앨범이자 5집을 낼수있도록 자신감을 심어주었던 앨범이라고 평가를 했다. 이 갈등은 상당히 오랜 기간 이어진 탓에 2016년까지도 음원 사이트에서 1~4집의 음원 서비스가 안 되는 등 전 소속사의 횡포가 이어졌다. 이재훈의 아버지는 그를 상대로 저작인접권 소송을 걸었고, 2016년 전 소속사 대표에게 저작인접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원고 최종 승소 판결을 받으며 이후 음원 서비스가 정상화되었다.

8. 5집 <해석남녀>, <맥주와 땅콩>, <All For You>

이후 옮긴 소속사도 이재훈의 부친이 직접 운영하는 회사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5집 준비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었고, 이 소송문제 때문에 기약없이 미뤄지는 판국에 쿨의 메인 프로듀서이자 사실상 쿨이란 그룹의 이미지를 만들어준 작곡가 윤일상본의 아니게 뒤통수를 치는 사태까지 발생했기 때문이다. 곡을 쓸 때부터 타이틀로 내정한 상태에서 녹음까지 마친 Love letter라는 곡이 5집 발매가 하염없이 미뤄지게 되자 그새를 참지 못하고 신인그룹 문차일드에게 Click(태양은 가득히)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팔아버린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문차일드 데뷔앨범이 쿨 5집보다 일찍 발매되면서, 한 곡이 두 가수에게 들어가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22]. 결국 쿨은 앨범 발매 후 벌어질 논란을 피하기 위해 타이틀 곡을 바꾸게 되었고, 그렇게 나오게 된 것이 해석남녀였다.

이 곡은 뮤지컬 풍의 재즈 리듬이 빠르게 이어져 기존의 쿨 히트곡과는 상당히 이질적인 분위기를 띈다. 거기에 비트가 매우 잘게 쪼개지는 현재의 댄스곡들과 비슷한 패턴의 노래인데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통통 튀는 느낌이 있어 정규앨범임에도 이전 히트곡만큼의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오히려 Love Letter가 기존 쿨 스타일에 훨씬 잘 맞는 곡이었고 여름의 시원한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어, 쿨 팬들은 이 곡이 타이틀이 되지 못한 것에 무척 아쉬워해서 윤일상문차일드에 약간의 앙금이 생겼다. 이에 대해 윤일상은 쿨과는 정상적인 로열티를 지불받은 상태에서 곡을 주었고, 이쪽(GM기획)에는 제대로 된 로열티 계약을 맺지 않고 협의 단계에서 곡이 무단으로 사용되었다고 발표했다. 즉, 후속곡으로 활동하며 인기를 얻은 것은 문차일드 쪽이지만, 실제로는 쿨 쪽이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곡을 취입했다는 것. 결국 문차일드는 앨범을 발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 문제 때문에 앨범 자체를 통째로 폐기처분한 다음 곡의 제목을 Click에서 태양은 가득히로 바꾸고 가사를 완전히 들어낸 다음에야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해석남녀
2000
MBC <음악캠프> Live

여러 악재를 극복하고 2000년 4월 발매된 5집 해석남녀는 상기했듯이 이질적인 요소를 등에 업은 곡이었지만 남자와 여자가 각자 생각하는 서로의 이성관을 노랫말에 재밌게 대입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남녀 양쪽에서 모두의 공감을 얻으며 타이틀이 기대 이하라는 좋지 않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뮤직뱅크에서 1위까지 차지하는 등 선전했다. 지금 들어도 통통 튀는 신나는 분위기에 재밌고 공감가는 가사로 유쾌한 쿨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한 곡이라 할 수 있다.
맥주와 땅콩
2000. 07. 04 (7월 첫째주)
KBS <뮤직뱅크> Live

후속곡 맥주와 땅콩은 본격적인 여름 그룹으로서의 시작을 알린 노래가 되었다. 처음 시즌송을 발표한 것은 1997년 해변의 여인이지만, 이 곡의 꾸준한 인기와 그룹 이름의 아이디어에서 착안하여 후속곡부터 본격적으로 여름을 타깃으로 노리고 활동하기 시작했고 이 이후로 모든 정규앨범이 7월 초에 맞추어 발매되기 시작했다.

쿨의 여름 이미지를 본격적으로 잇기 시작한 곡이 바로 맥주와 땅콩인 셈이다. 다만 원래 타이틀로 쓰려던 Love Letter라는 노래 역시 여름을 타겟으로 하여 만들어진 곡인 만큼, 굳이 맥주와 땅콩이 아니었어도 여름을 타겟으로 하는 활동은 꾸준히 이어졌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활동 종료 이후에는 가사가 개사된 후 시트콤 뉴 논스톱의 로고송으로 채택되어 노래의 인지도가 더 확대되었다.
All For You
2001. 12. 22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 Live

또한 이 앨범에 수록된 All For You는 공식적인 활동이 없었음에도 미디엄템포의 달달한 고백송 분위기가 입소문을 타고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어 이후로도 종종 숨겨진 명곡으로 사랑을 받다가, 2012년 tvN 응답하라 1997 OST로 삽입되어 현재는 애상과 함께 쿨을 대표하는 명곡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타이틀곡이 기대 이하라는 평가를 높은 음반 퀄리티로 상쇄하며 믿고 듣는 쿨 음반의 이미지를 만들어 주었다. 음반 판매량은 68만장으로 그해 음반 차트에서 6위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9. 6집 <Jumpo Mambo>

Jumpo Mambo
2001. 09. 01
MBC <음악캠프> 108회 Live

다음 해인 2001년 7월, 베트남에서 촬영 한 자켓으로 6집을 발매했다. 촬영지에서 알 수 있듯, 이 앨범으로 본격적인 '여름 가수'의 컨셉을 확정 짓고 여름에 컴백 하는 구도가 완전히 정해졌다. 타이틀 곡 Jumpo Mambo는 5집 이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그 해 여름을 UN의 노래 파도와 양분하여 각종 시상식에서 본상을 모두 수상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59만장으로 판매량은 다소 하락 했지만 연간 순위의 변동은 없었다. 이맘때쯤부터 인터넷망의 발달로 소리바다벅스뮤직을 필두로 mp3 음원 공유가 많아지면서, 한국의 앨범 판매량이 서서히 저하 되기 시작 된 시점이므로 당연히 낮은 판매량은 아니다.

여담으로 곡이 발표 된 직후 약간의 논란이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커플 간의 혼전동거가 메인 컨셉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원래 노래 제목도 동거였는데 곡이 발표 되고 나서 맞을 논란 문제를 의식하여 아무 뜻이 없는 Jumpo Mambo라는 곡 명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쿨의 히트곡 중에 거의 유일하게 영어로 된 곡명이 되었으며 3집 타이틀 곡인 <운명>의 원래 타이틀 제목은 양다리이였다고 한다. 당시 동거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못하던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양다리는 시기와 상관없이 그냥 부정적인 단어이다. 이 당시에 정직하게 제목을 달고 나왔다면 작곡가와 그룹이 얻을 이미지 타격이 만만치 않았을 테니 탁월한 결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 영향력은 굉장해서 상술했듯 아직 정서 상 받아들이기 힘들던 혼전 동거를 하는 커플들의 비율이 수직 상승했으며 동거에 대한 보수적인 관념을 타파하는데 큰 기여를 한 중요한 역할을 한 곡이다.

6집 1번 트랙인 좋은 세상 만들기잭슨 파이브I want You Back를 샘플링한 곡이며 샘플링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아 표절 관련 구설수에 억울하게 언급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타이틀곡 활동을 마친 후에는 '믿어? 믿어!'로 짧게 후속곡 활동을 하기도 했다.

10. 6.5집 <아로하>

아로하
2001. 12. 22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 Live

정규 앨범이 발표 된 지 불과 다섯 달 만인 2001년 12월, 쿨 발라드 앨범으로 꽉꽉 채워진 6.5집이 발매되었다. 너무 잦은 활동에 의한 피로감으로 딱히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타이틀 곡 아로하가 쿨이 무대에 서지 않음에도 각종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 후보까지 가는 등 많은 인기를 얻었고[23], 그동안 쿨 앨범에 수록 된 발라드 곡을 좋아했던[24] 많은 팬들에게 맞춤형 선물이 되었다.

이 앨범의 히트로 이후 3년 동안 같은 컨셉으로 여름에 정규 댄스앨범, 겨울에 비정규 발라드 앨범으로 발표되어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11. 7집 <진실>, <숙아>

진실
2002. 08. 10
MBC <음악캠프> 147회 Live
숙아

1996년 운명~1998년 애상 이후 명실상부 쿨의 제 2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는 시기다. 이전 앨범과 마찬가지로 여름을 컨셉으로 잡고 2002년 7월 발매되었다. 월드컵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상황[25]에서 7집으로 활동한 타이틀곡인 진실이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를 연속으로 휩쓸면서 그 해 가장 많이 음반을 판매한 가수가 받을 수 있는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까지 얻었다. 2002년부터는 가요시장이 음반에서 음원으로 넘어가는 시기였는데도 65만장[26]이나 팔리면서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27][28] 이 앨범에서 가문의 영광 OST로 쓰인 숙아로 겨우 2주 정도로 매우 짧게 후속곡 활동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이 어느 정도 알려지면서 간간히 인기를 얻은 쿨의 숨은 명곡으로 꼽힌다. 또한 멤버들의 솔로곡이 모두 수록된 첫 번째 앨범으로 예나 지금이나 쩌리 취급받는 겉절이 멤버 김성수의 솔로곡도 있을 정도다.

또한 인기가 많아지면서 2003년에 KBS 2TV 자유선언 토요일의 한 코너로 방영했던 프로그램인 매직스쿨에 고정 출연했다.

이 프로그램은 가수 쿨이 직접 메인 마술사가 되어 다양한 마술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쿨의 이름을 건 만큼 쿨 멤버 세 명과 함께 작사가 장대성이 진행하였고 이 프로그램에서 신입 아나운서였던 강수정이 크게 이름을 알려 '여걸파이브' 등 예능을 거쳐 나중에 프리 선언을 할 수 있게 한 단초가 되었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영향으로 세계적으로 마법이나 마술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던 당시의 흐름을 노리고 기획한 예능이라서 그런지 프로그램 초반에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마법학교 교장 선생님이 편지를 써서 보내는 등 해리포터적 냄새가 강하게 배어있는 장면이 나왔다.

이 프로그램의 의의는 종전의 마술 프로그램에서 유명 마술사 초청 및 관람 또는 조수로서의 참여에 국한된 한계를 넘어서 연예인이 직접 메인 마술사가 되어 마술을 진행하는 것에 있다. 특히 이재훈은 블록버스터급의 고난도 마술에 도전하기도 한다(수중 탈출마술, 자동차 마술 등). 이를 계기로 쿨은 예능 출연이 잦아지게 되었고 김성수는 거의 예능인으로 전업하게 되었다.

다만 제 2의 전성기라고는 하지만 이 앨범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멤버들 간의 불화가 조금씩 생기면서 앨범 자켓을 따로 찍기 시작한 것이다. 6집 이전의 부클릿을 보면 멤버들 모두가 모여 자연스럽게 촬영한 컨셉 사진이 많은데, 7집 이후로는 각자 각개전투하여 따로 찍은 사진들을 합성한 부클릿밖에 없다. 또한 이 때부터 앨범 자켓이 대놓고 코믹으로 가면서 우스꽝스러운 이미지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이는 김성수의 예능 활동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2004년 이후 쿨 활동이 뜸해짐과 동시에 NRG, 컨츄리꼬꼬, 코요태의 김종민이 이쪽 포지션을 가져가면서 쿨의 우스꽝스러운 예능 이미지는 거의 희석되었으나, 쿨 전성기의 막바지인 2002~2003년 당시에는 지금 들여다봐도 확실히 친근한 느낌치고는 조금 과하다 싶은 이미지였다. 김성수로 대표되는 '개가수' 이미지에 이재훈과 유리는 상대적으로 반감을 보였다고 하는데, 아마 이것이 쿨의 불화에 한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 8집에서는 음악 방송 활동보다 예능 출연이 더 잦아졌으며, 9집부터는 아예 앨범을 발매하고도 음악 방송 출연을 하지 않고 멤버들 각자 예능만 돌 정도로 불화는 심해지게 되었다.

이 때의 안 좋은 기억 때문인지, '진실'이라는 노래가 쿨 중에서도 한 손에 꼽을 메가 히트곡임에도 멤버들의 입에서 언급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 실제 커리어와는 정반대로 쿨 멤버들은 이 당시를 매우 좋지 않게 기억하고 있는 듯한 정황이 꾸준히 포착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쿨이 여러 지방 행사를 활발하게 다니기 시작했고 코요태와 합동 공연을 펼치는 등 꾸준히 많은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볼 수 없다. 주로 공연에서 부르는 곡들은 애상, 슬퍼지려 하기 전에, 해변의 여인, 운명 같은 1990년대 히트곡에 집중되어 있고, 2000년대의 히트곡은 대개 발라드(All For You, 아로하) 위주의 라이브 공연을 보여준다. 댄스곡의 경우에는 'Jumpo Mambo'나 '결혼을 할거라면' 정도로 부르는 모습을 가끔이나마 볼 수 있지만, 이 곡만큼은 공연에서 전혀 부르지 않는다.

실제로 방송 3사 대상보다 권위가 높은 골든디스크 대상을 혼성 그룹으로서는 유일하게 수상했음에도 2012년 음악의 신 출연장면에서는 멤버 김성수가 룰라만 대상을 탔고 자기네들은 대상이 없다며 셀프디스를 했다. 이 당시 대상 수상이 발표되었을 때 별로 눈물이 없는 김성수도 눈물을 흘릴 정도면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을텐데 이런 장면을 김성수가 보일 정도면 당시 얼마나 쿨의 불화가 심했던 시기인지 알 수 있다.

12. 7.5집 <산책>

산책
2002. 12. 28
MBC <음악캠프> 161회 Live

제 2의 전성기를 찍고 혼성그룹 유일의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한 7집 이후, 겨울 앨범 시즌 2인 7.5집을 발매했다. 타이틀곡인 백설공주를 사랑한 일곱번째 난쟁이보다 산책이라는 미디엄 템포 댄스곡이 더 잘 알려진 이 앨범 역시 방송 활동을 하진 않았지만 많은 사랑을 받으며 3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13. 8집 <결혼을 할 거라면>, <One Summer Drive>

결혼을 할 거라면
2003. 08. 16
MBC <음악캠프> 191회 Live
One Summer Drive
2003. 09. 20
MBC <음악캠프> 195회 Live

역시나 다음해인 2003년 7월, 정규앨범 8집이 발표되었다. 타이틀곡은 결혼을 할 거라면. 동일 앨범의 One Summer Drive와 치열한 경쟁 끝에 타이틀 자리를 거머쥔 이 곡은 나오자마자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를 여러번 차지하는 성과는 거두었으나, 7집의 대성공을 너무 의식한 곡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앨범 자켓에서부터 멤버 각자가 코믹 컨셉으로(7집은 폭탄머리, 8집은 슈퍼맨+원더우먼+스파이더맨 컨셉) 찍은 것부터 7집의 향기가 물씬 풍기더니, 여전히 코믹한 느낌의 뮤직비디오 컨셉, 방방 뛰는 전 타이틀곡보다 분위기는 다소 차분해졌지만 여름치고는 축축 쳐지는 리듬감 때문에 여러모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팬들 사이에서도 진실의 하위호환같은 타이틀곡보다는 따스하면서 경쾌한 느낌의 One Summer Drive가 낫다는 의견이 성토했고, 그 결과 이전 앨범들의 인기에 간신히 체면치례 하는 정도의 성과에 그쳤다. 음반판매량은 25~26만장[29] 정도에 그쳐 전작은커녕 직전에 발매된 7.5집의 33만장에도 미치지 못했고, 연간 차트에 10위권에 간신히 턱걸이하는 정도(음반산업협회 기준 2003년 9위. 다만 8월 이후 미제출로 2003년 총결산에는 빠졌다.)에 그쳤다.

다만 방송과 음원 차트 1위를 휩쓸면서 활동 당시 경쟁 상대가 없었을 정도로[30] 많은 인기를 얻어서, MBC 음악캠프에서 4주 1위, SBS 인기가요에서 3주 연속 뮤티즌송 트리플크라운을 차지해[31] 사실상 지상파 1위를 완전히 싹쓸이했다.

이처럼 체감 인기도 예전보다 나쁘다고 할 수준은 아니었다만, 상대적으로 부진해 보이는 이유는 음반시장 불황에 직격탄을 맞아 급감한 판매량과 활동기 내내 비만 내리고 이상 저온이 심했던 2003년 여름의 저주받은 날씨가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다. 여름을 타깃으로 활동한 그룹이기 때문에 그들의 인기는 음악성보다는 날씨와 사회 분위기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2002년 여름에 대히트를 쳤던 것은 기존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뽕끼, 레게 등의 장르를 적절히 조합한 음악성도 있었지만, 2002 월드컵의 열기가 식지 않아 사회 분위기가 매우 긍정적으로 뜨거웠던 이유가 한 몫 했다. 반면에 2003년에는 매우 서늘하고 장마만 지속되는 우울한 여름이었기에, 휴가를 가는 사람들이 큰 폭으로 줄어들면서 관광지에서 무조건 틀어대던 쿨의 노래를 접하기가 예전보다 어려웠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후 후속곡 One Summer Drive로 2~3주 정도의 짧은 활동을 끝내고 9월 20일경 8집 활동을 공식적으로 접었다. 활동곡 두 곡 모두 이전보다 다소 차분한 분위기를 띄고 있는데, 타이틀곡은 곡의 분위기와 맞지 않게 코믹한 느낌을 안고 갔다면, 후속곡 One Summer Drive는 코믹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진지하게 접근했다. 비교적 차분하고 달달한 분위기 속에서 여름의 시원한 느낌이 묻어있는 이 후속곡은 쿨의 숨겨진 명곡으로 이후로도 길거리에서 간간히 들리는 명곡으로 사랑받게 된다. 확실히 이전의 발랄한 느낌보다는, 이제 30대에 접어든 이재훈의 성숙한 모습을 음악적으로 풀어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곡이다. 이 노래 뿐만이 아니라 8집 곡들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차분해져 앨범 자켓과는 매우 이질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 때문에 팬들이 유독 타이틀곡 선정에 많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한 이 시기부터 불화가 겉잡을 수 없이 심화되어 팬들 사이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불협화음을 내는 모습이 카메라에 몇 번 잡히기도 했다.

여담으로 One Summer Drive는 원곡 발표 후 17년이 지난 2020년에 다시 주목을 받게 되는데 2020년 3월부터 방영된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이 노래가 등장하면서[32] 다시 존재가 드러났다. 이 드라마에는 이 곡 외에도 <아로하>나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등 1990년대 노래가 종종 등장하는데 의과대학 99학번 출신 의사 5명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로 드라마가 꾸며진 탓에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노래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33]

이때가 재결합 이전까지 완전체로 활동했던 쿨의 마지막 모습이었으며, 이 이후로 무려 네 장의 앨범이 나올 동안 쿨은 그룹으로서의 공식 활동을 일절 하지 않고 개인 활동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따라서 재결합 이전까지 쿨을 좋아했던 팬들에게는 애증이 가득한 앨범으로 남아 있다.

14. 8.5집 <떠나야만 했나요>, 10주년 BEST

떠나야만 했나요

2003년 8집이 내리막을 보이면서 활동을 접은 영향인지, 같은 해 12월 발매된 8.5집은 전작(6.5, 7.5) 비정규와 비슷한 겨울 발라드 앨범이었지만 인기를 전혀 얻지 못하고 조용히 묻히게 되었다. 대한민국 음악 시장이 발라드 위주로 재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혀 활용하지 못한 것. 이전보다 훨씬 줄어든 홍보에 타이틀곡 떠나야만 했나요부터 뮤직비디오도 찍지 않고 방송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으니, 사실 히트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런 악재 속에서도 11만장을 팔면서 '대중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쿨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해인 2004년 4월에는 쿨의 10주년 기념 BEST 앨범이 발표되었다. 총 2CD로서 1CD에는 댄스곡, 2CD에는 발라드곡이 수록되었는데 히트곡과 팬들의 선호도가 높았던 명곡을 적절히 조합하여 호평을 받았으며, 15만장을 판매하여 음반시장 불황에도 한터차트에서 두 달 가까이 TOP5에 드는 엄청난 성과를 올렸다. 10주년 앨범의 유일한 신곡인 <벌써 이렇게> 는 싸이가 피쳐링했으며 이 곡 역시 발라드 명곡으로 크게 사랑받았다.[34]

이처럼 쿨을 지지하는 많은 팬들이 있었기에, 방송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도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판매량을 꾸준히 올렸다. 이렇기 때문에 2003년의 일시적 부진을 하락세라고 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2004년 7월 발매할 9집에서도 사람들은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역시 쿨은 음악적으로는 대중과 팬의 기대치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나 방송에서 활발한 모습을 보여줄거란 기대를 저버리고 9집 때에는 음악방송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현재의 나얼이나 박효신, 이수처럼 특별한 계기가 있어 모든 방송 활동을 아예 안 하는 것도 아니었고, 예능은 잘만 나왔다.

게다가 예능에서마저 홍보해야 할 앨범 언급은 일절 없고 그냥 웃기기만 하고 있으니, 팬들은 무척 실망하면서 이전부터 느끼던 이상한 낌새를 확신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앨범 내놓고 음악방송 활동이 없고 개인 활동에만 치중해서, 이 때부터 해체설이 솔솔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15. 9집 <친구찾기>, <아가씨와 건달들>

친구찾기
아가씨와 건달들
뮤직비디오

9집 앨범의 타이틀곡은 4.5집과 마찬가지로 더블 타이틀인 친구찾기아가씨와 건달들이었다. 앞 곡은 애상과 비슷한 분위기, 뒷 곡은 해석남녀와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로서 방송상으로는 뮤직비디오 등을 통해 아가씨와 건달들을 더 많이 밀어주었고 방송 차트에서도 저 노래로 순위에 올랐지만 친구찾기라는 곡이 더 많은 호평을 받고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세 앨범 연속으로 방송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적으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편. 앨범 수록곡들은 쿨의 앨범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반으로 버릴 곡이 없다고 평가받으나, 대중적인 인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인지 존체 자체를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도 10만장을 넘기면서 '역시 쿨'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니, 팬들이 아쉬워 할만한 것은 너무도 당연지사...

8.5집의 (상대적) 실패와 불화가 깊어지면서 9.5집은 발매되지 않았고, 곧바로 다음해 7월 해체 직전의 마지막 정규앨범 10집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을 발매하자마자 공식 해체를 선언했고, 한 달 후에 기자회견을 통해 '쿨은 더이상 없음'을 알렸다. 11년이라는 기나긴 활동에 여러 기억을 떠올린 멤버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지만, 해체의 원인은 전혀 언급하지 않아 해체에 대한 여러 소문이 정설처럼 퍼졌다. 대표적으로 이재훈과 유리가 사귀면서 김성수를 왕따시켰다는 루머 같은 것들. 불화의 경우 멤버들이 사실로 인정했지만 이런 루머들에 관해서는 일절 언급한 적이 없으니, 다시 재결합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현재까지도 해체의 원인을 정확히 아는 사람들은 멤버들 밖에 없다.
본격적인 아이돌 시대가 도래해서 쿨의 인기가 떨어졌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미 쿨의 최전성기(1996~8년)가 1세대 아이돌 시대와 함께 했기에 올바른 평가는 되지 못한다. 쿨 뿐만 아니라 점차 비아이돌계 가수나 그룹의 인기가 크게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아무리 일찍 잡아도 2007년 원더걸스Tell Me, 빅뱅거짓말이 터질 무렵이고 2003~2006년에는 오히려 아이돌 가수가 전멸한 아이돌 암흑기였다.

당시 보이그룹의 경우 신화가 최전성기를 누렸지만 다들 알다시피 남자 아이돌은 대중성이 넓기보다 강력한 팬덤에 의한 그들만의 리그다. 특히 이 당시에는 활발한 예능과 솔로 활동으로 대중성을 얻은 신화를 제외하면, 방송에서만 1위와 대상을 휩쓸지 대중적으로는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SS501의 곡은커녕 가수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태가 빈번했을 정도로 아이돌 세계는 대중들과는 크게 이격되어 있었다. 여성 그룹은 아예 찾아볼 수 없던 암흑기 중의 암흑기로 차라리 발라드와 알앤비로 장르 대세가 넘어가면서[35] 타격을 입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다만 대중성의 끝판왕으로 나올 때마다 큰 인기를 얻고 정규 8집까지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롱런했던 쿨이라서 쿨의 인기 하락은 오랫동안 대중들에게 노출되어 쌓인 피로감 외에는 내부적인 곳에서 원인을 찾을 수가 있다. 7집부터 불화의 조짐이 보이고 8집을 끝으로 아예 방송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3집부터 8집까지 1위 후보곡들을 배출해 내다가 이 시기에 급격하게 내려간 인기가 이를 증명한다.

16. 10집 <이 여름 Summer>, 그리고 해체

이 여름 Summer
뮤직비디오

2005년 7월에 발표된 10집 타이틀곡 이 여름 Summer 역시도 방송 활동은 전무했지만, 해체라는 큰 충격에 쿨의 마지막 곡이라는 사실이 제법 알려지면서 이전 9집보다는 대중적으로 더 알려지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거리에서 가끔씩 들을 수 있는 곡이다. 이 노래의 작곡가인 윤일상은 이 노래가 빛을 제대로 못본게 아쉬웠는지, 후렴구 멜로디를 다음해 이문세의 '알 수 없는 인생'이란 노래에서 한 번 더 우러먹었다.[36]

하지만 음반판매량은 5만장으로 전작의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고, 아홉 장 연속으로 10만장을 돌파했던 대기록이 여기에서 깨졌다. 앨범 퀄리티에 있어서는 전반적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대놓고 해체를 암시하는 듯한 노래들이 많아서 팬들을 눈물짓게 했다. 특히 10집의 마지막 곡이 End... And 라는 곡인데 완전히 떠나가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재훈의 솔로 보컬이 아주 절절하다.

결국 같은 해 8월 2일에 서울 강남구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해체를 선언했다.

17. 해체 이후 ~ 재결합

해체 이후에 이재훈은 CCM <사랑합니다>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고, 2007년 초에는 솔로 앨범을 발표한 뒤 그 해 여름에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디지털 싱글 <오아시스>에 참여하며 인기를 얻었다. 이 곡은 쿨의 전성기를 주도했던 윤일상 작곡에 완전한 쿨 스타일의 노래여서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노래보다는 사실상의 쿨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김성수는 무한도전의 전신 <무모한 도전>, <목표달성 토요일> 등의 예능에 활발하게 출연하며 예능인으로 자리를 잡는 듯 싶었지만, 뜬금없이 개인 사업과 연기자 전업에 집중하면서 잘 나오던 예능까지 끊겨버리며 심각한 슬럼프를 겪게 되었다.[37] 홍일점 유리는 룰라 출신 채리나와 함께 2006년 <걸프렌드>를 결성하고 1집 <Maybe I love you>를 꽤나 히트시켰으나, 이듬해 나온 정규 2집이 실패하면서 타격을 입었다. 이 시기에 백지영과 함께 인터넷 쇼핑몰을 열고 각자 나름대로 개인활동을 열심히 했다. 다만 이재훈의 <사랑합니다>, 사실상 쿨의 연장선이었던 <오아시스>와 걸프렌드의 <Maybe I love you>를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성과를 보여준 개인 활동들은 없었다.

18. 10.5집 <사랑을 원해>

사랑을 원해
2008. 08. 16
MBC <쇼! 음악중심> 132회 Live

결국 한계를 느꼈는지[38], 2008년에 3년만의 재결합을 선언하고 쿨-윤일상의 유쾌한 조합으로 이전 컨셉을 그대로 유지한 10.5집 사랑을 원해로 5년만에 방송 활동을 하면서 나름대로 성공적인 컴백을 했다. 예전만큼 폭발적인 인기는 없었지만, 아이돌 시장으로 바뀌어가는 와중에 오랫동안 활동이 없었던 데뷔 14년차 중견그룹치고 각종 음원차트, 방송차트에서 10위 안에 들어가는 성과를 올리며 쿨이 건재함을 알리는데 성공했다. 참고로 이 때 쿨의 <사랑을 원해>의 경쟁 상대는 <하루 하루>, <U-Go-Girl>, <So Hot>, <신데렐라> 등 막강한 곡들이었고 이 때는 아이돌들의 전성기가 열린 시대다. 3년 동안의 공백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 치열한 곡들 사이에서 10위 안에 든 것을 보면 대단한 셈.

19. 11집 <보고 보고>

보고 보고
2009. 07. 18
MBC <쇼! 음악중심> 174회 Live

하지만 2009년 7월에 발표된 11집 보고 보고는 아이돌 열풍에 처참히 묻혔고 결국 막심한 타격을 입으면서 이 음반이 사실상 마지막 정규앨범이 되었다. 이 때 경쟁 상대는 소원을 말해봐, I Don't Care, Abracadabra, Heartbreaker, 미스터. 대 아이돌 시대에 의한 타격은 이때가 처음이었지만, 보고 보고의 곡 퀄리티가 이전의 '윤일상-이승호' 콤비의 곡들보다 현저하게 떨어졌고, 김성수가 이미 40대에 진입한 만큼 상당한 연령에도 불구하고 예전 인기를 답습하는 유치한 컨셉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너무 실망스러운 곡 퀄리티와 컨셉 때문에 성공하기에는 사실 무리가 있었다.

그 뒤 이들은 개인 활동에 주력하며 그룹으로서는 간간이 완전체로 행사를 다니다가, 2013년 8월에 무려 4년만에 이별 앞에 서다라는 노래로 디지털 싱글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때는 다시 방송 활동을 하지 않았고, 기사 한 줄 보기 힘든 미흡한 홍보로 인해 수준급의 곡 퀄리티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실패한 곡이 되었다.

이 싱글이 발표된 직후, 유리는 결혼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리는 미국에 삶의 터전을 잡고 출산, 육아와 같은 개인의 삶에 전념하면서 사실상 쿨 활동을 종료했고,[39] 2014년 이후로는 남자 멤버 둘에 여자 객원 보컬을 그때그때 충원해서 활동했다. 2015년 7월, 2년만에 발표한 한 여름 밤의 고백, 같은 해 9월에 나온 다 잘될 거야, 2016년 2월 발매된 리마스터링 앨범에서 모두 유리는 불참했고, 코요태와 함께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쿨요태'에서도 유리가 맡았던 부분을 신지가 대체하였다. 2015년 오랜만에 히든싱어 완전체 출연 이후 완전체 활동이 없어 사실상 해체된 거라 봐야 할 듯.

20. 역대 히트곡 모음

쿨 히트곡 모음.ZIP [인기가요 띵곡열전]
쿨 노래 모음.zip
여름하면 생각나는 그룹 쿨 1탄
뼛속까지 시원해지는 노래! 쿨 2탄

[1] 당시 소속사 사장은 이재훈과 유채영이 누가 남자인지 모르는 컨셉을 잡았는데, 웬만큼 짧게 해서는 티가 안나니까 유채영이 "제가 밀게요"해서 삭발을 했다고 한다. 이 파격적인 헤어스타일을 따라하는 청소년들의 문제로 사회면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2] 사실 다른 히트곡들이 많아서 그렇지 망한 건 아니고 중박은 쳤다고 볼 수 있다.[3] 다만 유채영은 그 직후 신정환(대니 신)과 함께 어스(US)를 결성하여 활동한다.[4] 원곡은 그룹 마로니에의 멤버 최선원이 부른 곡으로, 원곡의 작곡가인 최준영이 리메이크도 만든 것이다.[5] 슬퍼지려 하기 전에는 활동 당시보다 오히려 그 후에 다운타운 클럽가를 통해 소문이 나기 시작하며 스테디한 인기를 얻게 된 곡이다.[6] 참고로 지상파 최초 1위 기록은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1997년 1월 15일 방송분이며, 가요톱텐 수상은 그로부터 이틀 뒤다. 또한 댄스곡의 골든컵 수상은 이 곡이 마지막이다.[7] H.O.T와 쿨의 1위 경쟁으로 인하여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주주클럽이었다. 특히 SBS TV가요20에서는 H.O.T와 쿨이 연이어 1위를 하는 바람에 4주 연속 2위를 하기도 했다.[8] 사실 비치 보이스는 혼성그룹도 아니었고 락 밴드였으며, 당연히 쿨과는 음악적 성향도 매우 다르다. 어디까지나 비치 보이스 초기의 여름 컨셉에 맞는 그룹을 생각했다고 봐야한다.[9] 작은 기다림의 경우 정통 발라드라고 보기는 무리가 있을 정도로 템포가 빠르고 비트가 잘게 쪼개지며, 반주에 있어서도 신디사이저와 재즈 선율이 지배하는 등 전형적인 쿨표 발라드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실제로도 안무와 같이 활동했다.[10] 아무리 적게 잡아도 70만장 이상. 일부 인터뷰에 따르면 4집이 더 많이 팔았다는 기록도 있는데, 4집의 경우 공식 판매량 집계치가 나온 상황이기 때문에 4집 판매량에 못 미칠 가능성도 있다.[11] 참고로 이재훈은 맹장수술하고 거의 퇴원하자마자 선 무대다.[12] 그 뒤 1999년에 '눈속의 여인'으로 리메이크했으며, 배경과 가사가 바뀐 걸 빼면 모두 동일.[13] 이 노래 발표 이전까지 유리는 랩퍼 또는 음치 이미지가 강했기에 가수로서, 그리고 그룹 내의 입지를 반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유의미한 곡이다.[14] 비록 임창정의 '그 때 또 다시' 전성기 시대여서 1위는 8월 13일 가요톱텐에서 차지한 게 전부이긴 했지만.[15] 비할 바는 못되지만 윤종신의 팥빙수도 비슷한 케이스. 당시 작곡가 이규호는 윤종신의 작사가 가미된 곡상태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으나 당시에도 니름 히트를 쳤고 후에 여름마다 저작권 수익이 꽤 짭짤해 고마움을 느꼈다고 한다.[16] H.O.T.의 대박 이후 수많은 아이돌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이며, 아이돌 외에도 다양한 장르와 타입의 인기가수들이 1위 각축전을 벌이던 시기다.[17] 다만 위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이게 쿨 앨범 역사상 최다 판매량일 가능성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2007년 불후의 명곡에서 쿨 멤버들이 직접 언급했던 바로는 4집이 최고 판매량이었다는 말을 했다. 4집 이후로는 음반산업협회, 신나라차트 등을 통해 이미 공식 판매량 집계가 나왔는데, 79만 8천여장이 판매되었다고 기록됨으로서 3집 판매량은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밀리언셀러에 한참 못미치는 기록일 가능성도 있으나 비공식적으로는 밀리언셀러를 달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8] 10CM 버전은 일부 가사가 시대에 맞게 수정되었다. (삐삐 → 문자)[19] 이후 히든싱어3에서 이재훈이 약 10년만에 원키로 부른다고 밝혔다. 그리고 1라운드에서 실제로 원키로 본인의 소절을 소화했다.[20] 열정이란 곡으로 뮤직뱅크 6주 1위, 그 해 음반판매량 3위를 기록하며 메가히트를 했다.[21] 영원한 사랑으로 걸그룹 시장을 제패하면서 그 해 음반판매량 5위, 서가대 대상을 받는 히트를 기록했다.[22] 여담으로 문차일드는 이런 사태를 훗날 제법 겪게 된다. 엠씨더맥스로 이름을 바꾼 후에...[23] 여담으로 이 곡은 결혼식 축가 등으로도 자주 불러진다.[24] 2집 타이틀 곡 - 작은 기다림, 3집 후속곡 - 너의 집 앞에서, 3.5집 후속곡 - 송인, 4집 수록곡 - 친구에서 연인이 되기까지, 5집 수록곡 - All For You.[25] 한일 월드컵이 2002년 5월 31일부터 6월 30일까지 열렸는데, 쿨은 월드컵 종료 직후인 7월 4일에 앨범을 발매했다.[26] 정확히 647,052장.[27] 사실 2000년대 이후는 음반 시장의 심각한 침체기로 90년대처럼 밀리언셀러가 나오기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2002년을 기준으로 봐도 음반이 가장 많이 음반이 팔린 쿨의 7집 64만장을 포함해 50만장 이상을 판 가수가 , 브라운 아이즈, 왁스, 보아, 코요태 5장에 불과했다. 음반 시장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2000년부터 음반에서 음원으로 시장 주도권이 넘어가던 과도기에 불법 음악파일 공유사이트가 난무해 mp3 파일이 무법천지로 돌아다니던 시대적 상황에 기인한다. 무려 소리바다벅스뮤직이 불법 음악파일을 당연한 듯이 무료로 서비스하던 시대였으니... 즉, 음반 시장의 심각한 불황을 뚫고 거머쥔 대상이라 하겠다.[28] 2000년 ~ 2004년 이 시기에 불법 mp3 파일 소비가 당연한 듯이 여겨지면서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었다. 2004년에 발매된 에픽하이 2집 High Society에 수록된 '신사들의 절약정신'이라는 SKIT에 "벌레들의 음악이란 곳에선 음악도 공짜로 들을 수 있답니다" 라고 벅스뮤직을 비꼬는 내용이 대놓고 들어가기도 했을 정도. 업계의 지속적인 유료화 요구와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음반 산업은 시대적 상황에 걸맞은 시스템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2004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멜론이나 2003년 8월부터 벅스뮤직이 현재의 벅스로 거듭나는 등 정식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는 음악 시장이 '음반'과 '디지털 음원'으로 이원화되었다. 또한 2000년대 후반부터는 아이돌 업계를 중심으로 음반 n종 마케팅에 따른 음반 복수 구입 등의 관행이 자리잡기 시작하며 이전과는 확 달라진 현재의 음악 산업 생태가 정착되었다.[29] 정확히는 출시 다음달인 8월까지 253,355장. 그 뒤로는 음협에 제출을 안해서 기록이 남지 않았는데, 7월에 비해 8월 판매량이 낙폭이 매우 컸다. 시즌송으로 여름에만 활동했던 패턴의 한계 때문에 6집부터 이런 경향이 강해져서, 이후 판매량이 제출되었어도 추이를 봤을 땐 26만장을 넘었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았다.[30] 당시 활동한 주요 인기가수로는 보아, 임창정, 플라이투더스카이, 쥬얼리 정도가 있었다. 보아는 타이틀곡 활동이 끝나고 교통사고로 잠시 앨범 활동을 쉬고 있었고, 임창정은 은퇴 파문으로 활동이 상대적으로 짧았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약간 어긋났다. 결국 제대로 경쟁한 상대는 플라이투더스카이, 쥬얼리 정도였다. 하지만 플라이투더스카이는 장르가 달라 비교대상과 소비층이 미묘하게 달랐고 절대적인 인기에서 쿨에 미치지 못했다. 같은 컨셉의 쥬얼리는 당시만 해도 겨우 이름만 알려진 위치였기 때문에 가수나 곡의 인지도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단순 음반판매량만으로도 거의 7배 차이가 날 정도.[31] 이 당시 KBS 뮤직뱅크는 순위제를 운영하지 않았다.[32] 주인공 중 한 명인 채송화가 자가용을 끌고 연인산 캠핑장으로 가려할 때 이 노래가 BGM으로 깔렸다.[33] 이 드라마의 연출자인 신원호 PD는 본인이 연출한 드라마의 BGM이나 OST에 유독 1990년대~2000년대 초 인기를 얻은 대중가요를 넣곤 한다. 물론 과거 시대를 다룬 응답하라 시리즈의 특수성도 있지만...[34] 싸이가 이듬 해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에서 키를 낮추고 보컬까지 본인이 소화한 버전으로 재수록했다.[35] 2001년부터 시작된 발라드와 알앤비 열풍은 브라운아이즈, 박효신, 화요비, 휘성, 빅마마, 거미, 린, 테이, 이수영이라는 걸출한 가수들을 남겼고 2004년에 데뷔한 SG워너비가 2005~8년에 소몰이 열풍으로 전국을 울보로 만드는 사태에 이르렀다. 공교롭게도 SG워너비와 버즈로 통일된 2005년에 쿨은 해체했다.[36] 실제로 두 노래의 후렴구 멜로디 진행은 거의 똑같다고 봐도 될 정도여서 일각에서 표절 시비가 있었다. 하지만 두 곡의 작곡가가 같아 유야무야 묻힌 듯하다.[37] 무한도전에서 하차하면서까지 출연했던 드라마 안녕하세요 하느님에서 김성수가 맡은 배역은 대사가 거의 없는 단역이나 마찬가지였고 이후로 더 이상의 연기 활동은 이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무한도전에서 그를 대신해 정멤버로 합류한 하하는 무한도전에 제대로 녹아들면서 예능인으로 자리잡게 된다.[38] 그 이전에 과거 해피선데이 코너였던 불후의 명곡에서 완전체의 모습으로 촬영을 했던 것이 매우 크게 작용했다.[39] 최근에 한국에 들어온 것 같지만 SNS를 보면 쇼핑몰 사업에만 매진할 뿐 쿨 활동에는 관심이 별로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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