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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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 |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
2005-06 · 2006-07 · 2007-08 · 2008-09 · 2021-22 · 2022-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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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포르투갈 (20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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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 <colbgcolor=#FFF,#1F2023>플레이 스타일 · 관련 언사 · BBC | |||
기록 | 대회 기록 · 개인 기록 | |||
미디어 | 사진 | |||
가족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주니오르 · 조지나 로드리게스 | |||
기타 | 별명 · 논란 및 사건 사고 (2020년 이전 · 2019년 방한 관련 논란) · 악성 팬덤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국제공항 · 메호대전 · 게호대전 · Siuuuu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클럽 경력 | ||||
2002-03 시즌 | ←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맨유 시절 | → | 2009-10 시즌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2003-2009 | |
▲ 2003년 계약 당시 | |
소속팀 | <colbgcolor=#ffffff,#191919>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프리미어 리그) |
등번호 | 7 |
기록 | |
196경기 84득점 33도움 | |
52경기 15득점 10도움/3경기 1득점 1도움 | |
26경기 13득점 8도움 | |
12경기 4득점 1도움 | |
1경기 | |
2경기 1득점 | |
합산 성적 | |
292경기 118골 53도움 |
[clearfix]
1. 개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기 시절 (2003~2009) 에서 활약하던 기간을 서술하는 문서다.2. 맨유 1기에서의 통산 성적
통산 기록 292경기 118골 53도움3. 시즌별 행보
스포르팅 CP에서 데뷔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맨유와의 친선경기에서 뛰어난 활약을 발휘하며 알렉스 퍼거슨의 시선을 사로잡고 맨유로 이적하게 된다. 본래 맨유의 그 당시 시즌은 이적 시장에서 호날두가 아닌 파리 생제르맹 FC의 호나우지뉴를 원했다. 그와의 거래가 성사되었으나 막판에 계약 조건 때문에 결렬되었다. 결국 그는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알렉스 퍼거슨은 평소에 눈여겨보았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영입하게 되었다. 이적한 후 바로 데이비드 베컴의 등번호였던 7번을 받게 된다. 그리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미드필더였던 조세 클레베르송과 같이 입단식을 치렀다. 물론 이적 당시에는 클레베르송이 호날두보다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는 했다.3.1. 2003-04 시즌
당시 퍼거슨은 베컴이 이적하여 자리가 빈 오른쪽 윙 자리에 1순위로 스트라이커인 올레 군나르 솔샤르를 기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솔샤르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인해 시즌 초반부터 많은 경기를 뛰지 못 하였고 이는 유망주였던 호날두가 오른쪽 윙으로 많은 기회를 얻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2003년 11월 1일, 호날두는 포츠머스 FC와의 경기에서 프리킥으로 첫 골을 뽑아내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3-0 승리를 도왔다. 호날두는 시즌 후반에 3골을 추가하였는데, 아스톤 빌라 FC와의 시즌 최종전에서는 골도 기록했지만 처음으로 퇴장을 당하기도 했다. 호날두는 맨유에서의 첫 시즌을 밀월 FC와의 FA컵 결승전에서 선제 헤더 골을 넣어 3-0 승리를 돕고, 첫 우승 트로피를 따는 것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2003-04 시즌: 40경기 6골 7도움[1]
FA컵 우승
<rowcolor=#ffe500>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rowcolor=#fff> | 29 | 15 | 14 | 4 | 4 |
<rowcolor=#fff> | 5 | 3 | 2 | 0 | 0 |
<rowcolor=#fff> | 5 | 5 | 0 | 2 | 3 |
<rowcolor=#fff> | 1 | 1 | 0 | 0 | 0 |
<rowcolor=#ffe500> 합계 | 40 | 24 | 16 | 6 | 7 |
3.2. 2004-05 시즌
2004-05 시즌: 50경기 9골 8도움[2]
FA컵 득점왕
3.3. 2005-06 시즌
2005년 10월 29일 리그 10라운드 경기에서 호날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프리미어리그 1000호골 주인공이 되었는데, 팀은 미들즈브러 FC에게 1-4로 충격적인 대패를 당했다.[3] 그러다가 시즌 중반인 11월, 그는 새 계약서에 서명해 2010년까지 구단에 남게 되었고, 당시 구단에서의 성장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회고했다.
이후 11월 30일에 펼쳐진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와의 리그 컵 4라운드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여 전반전 12분에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면서 선제골을 기록하였고, 이후 루이 사하와 존 오셰이의 추가골이 나오면서 팀의 3대1 승리와 5라운드 진출을 이끌어내었다.
미들즈브러전 득점 이후 좀처럼 리그에서 득점을 기록하지 못하다가 12월 31일에 펼쳐진 리그 20라운드 볼튼 원더러스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득점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4] 이후 2월 4일에 펼쳐진 리그 25라운드 풀럼전 , 그리고 2월 11일에 펼쳐진 리그 26라운드 포츠머스전까지 멀티골을 기록하면서 약 두 달 사이에 3경기에서 두 골 이상을 기록했다. 3월 6일에 펼쳐진 위건과의 27라운드 경기에서도 득점을 기록하면서 리그 3경기 연속 득점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호날두는 이 시즌에 맨유에서의 두 번째 트로피를 차지했는데, 2006년 2월 26일에 펼쳐진 위건 애슬레틱 FC와의 풋볼 리그 컵 결승에서 선발 출전하여 팀이 2대0으로 리드하던 상황에서 3-0으로 앞서나가는 골을 넣어 4-0 승리를 견인하기도 하였다.
한편, 호날두는 이 시즌에 몇 차례 사건에 연루되었다.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경기에서는 SL 벤피카 관중[5]들에게 법규를 한 대가로 유럽 축구 연맹로부터 1경기 출장 징계를 받았고, 1:3으로 패한 맨체스터 시티 FC와의 맨체스터 더비 경기에서는 맨유의 레전드인 앤디 콜을 걷어찬 것으로 퇴장당했다. 호날두의 과시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지적한 팀 동료이자 공격수인 뤼트 판니스텔로이와 충돌하기도 했다. 2006년 1월에 한바탕 싸움을 벌인 후, 둘은 5월에 또다시 싸움을 벌였는데, 반 니스텔루이가 호날두에게 "네 아비에게나 가서 징징대라"라고 조롱했는데, 이는 호날두와 카를로스 케이로스 수석 코치 간의 관계를 겨냥하고 발언한 것이었다.[6] 결국 반 니스텔루이는 이런 사건으로 4-0으로 이긴 찰턴 애슬레틱 FC와의 프리미어리그 최종전에서 벤치로 밀려났고 호날두는 같은 경기에서 9번째 리그 골을 기록했다.
2005-06 시즌: 47경기 12골 8도움[7]
EFL컵 우승
3.4. 2006-07 시즌
그리고 06-07 시즌이 되자 자신의 재능을 만개해,[8] 2006년 월드컵 전후로 서서히 포텐셜이 터지면서 성장해갔고 능력이 본격적으로 개화되는 06-07 시즌부터는 시즌 내내 맹활약을 펼치게 된다. 특히 12월 말에 3경기 연속으로 2골씩 기록하는데 리그 아스톤 빌라전에서는 유나이티드를 리그 선두로 이끌었고, 위건 애슬레틱과 레딩의 골문을 차례대로 두드렸다. 호날두는 이런 활약을 인정받아 11월과 12월 두 달 연속으로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선수상을 받았는데, 두 달 연속으로 선정된 선수는 전에 두 번밖에 없었다.
시즌 후반기에 들어서도 좋은 경기력은 유지되었으며, 특히 웨인 루니와의 호흡도 매우 좋았다.
4강 상대로 AC 밀란으로 결정 나자 국내의 맨유빠들은 호날두와 루니를 열렬하게 빨아댄다. 하지만 막상 호날두는 젠나로 가투소, 마시모 오도에게, 루니는 알레산드로 네스타, 카카베르 칼라제에게 가로막혀버렸다. 게다가 발롱도르 경쟁 상대이던 카카는 1차전에서 비록 2-3으로 패했지만 가히 미쳤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2골을 넣었고, 원정에서는 3-0으로 발라버리면서 결국 맨유는 챔스 4강에서 탈락한다. 발롱도르를 카카에게 뺏긴 건 덤. 이 대목을 넣는 이유는 현재도 호날두가 까이는 이유 중 하나인 AC 밀란전 경기력에 대한 것인데, 당시 호날두는 최고로 주목받던 유망주 시절을 벗어나고 팀의 에이스로 각성하던 시기였다. 상대하던 선수들은 당대 월드클래스 선수 중 포지션상 톱으로 꼽힌 선수들이니 경기장에서 지워졌다고 신랄하게 까지는 말자.[9]
호날두는 이후 FA컵 준결승 왓포드전에서 선발 출전하여 2-1로 앞서가는 골을 넣어 유나이티드가 FA컵 결승전에 진출하게 했지만, 첼시 FC와의 FA컵 결승전에서는 골 없이 침묵하였으며 연장 승부 끝에 디디에 드록바에 뼈아픈 실점을 허용하면서 0-1 패배를 거두었다. 2007년 5월 5일, 호날두는 맨체스터 더비에서 자신의 맨유 소속 50호골이자 1-0 결승골을 기록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4년 만에, 호날두는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호날두는 시즌 내내 보인 성과로 그 시즌의 개인상을 휩쓸었다. 그는 프로축구선수협회의 선수 선정, 팬 선정, 올해의 신인 선수상을 받았고, 축구 기자 협회의 올해의 선수로도 선정되기도 하여 PFA와 FWA가 주관한 4종류의 상을 모두 받은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이러한 성공을 거둔 원동력에는 르네 뮬레스틴 코치와의 1대1 훈련에 있었는데, 그는 자신조차 예측 못하게 훈련했고 동료와의 연계, 공을 끌고 가는 역량, 그리고 득점 기회를 기다리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아름답게 골을 넣게 하기보다는 스스로 득점 기회를 창출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6-07 시즌: 53경기 23골 14도움[10]
프리미어 리그 우승
<rowcolor=#ffe500>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rowcolor=#fff> | 34 | 31 | 3 | 17 | 8 |
<rowcolor=#fff> | 11 | 11 | 0 | 3 | 5 |
<rowcolor=#fff> | 7 | 6 | 1 | 3 | 1 |
<rowcolor=#fff> | 1 | 1 | 0 | 0 | 0 |
<rowcolor=#ffe500> 합계 | 53 | 49 | 4 | 23 | 14 |
3.5. 2007-08 시즌
11월 3일 프리미어리그 12라운드 아스날과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여 후반전 81분에 동점골을 기록하면서 팀의 패배를 막아내었고, 일주일 뒤 블랙번과의 리그 13라운드 경기에서는 전반 34분에 선제골을 넣더니 1분만에 추가골을 기록하면서 멀티골을 기록하여 팀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2008년 1월 12일, 6-0으로 이긴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와의 리그 22라운드 경기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맨유에서의 해트트릭을 기록하면서 엄청난 골 결정력과 폼을 과시했다. 일주일 뒤 프리미어리그 23라운드 레딩 전에서는 한 골을 추가했다.
이후 2008년 3월 19일, 그는 볼턴과의 리그 30라운드 홈 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처음으로 단 뒤, 두 골을 넣어 2-0 승리를 견인했다. 그의 경기 2번째 골은 시즌 33호골로 1967-68 시즌, 조지 베스트가 세운 32골 기록을 경신하고 이로써 미드필더가 기록한 단일 시즌 최다 득점 신기록과 윙어 최다골 신기록을 경신했다. 4일 뒤 리버풀과의 홈경기에서 1대0으로 앞서던 79분에 추가골을 기록하면서 팀의 3대0 완승을 이끌어내었다.
이후 4월 23일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에서는 페널티킥을 실축하는 등 다소 부진한 경기력을 보여주었지만 4월 29일 2차전에서의 폴 스콜스의 결승골로 맨유는 결국 모스크바에 열리는 결승전에 진출해 첼시와 상대하게 되었다. 호날두는 이후 5월 3일 웨스트햄과의 37라운드 경기에서 멀티골을 기록하였으며 5월 11일에는 우승의 향방을 가로 짓는 위건과의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시즌 마지막 리그 경기 골을 페널티킥으로 넣었고, 유나이티드는 두 시즌 연속으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렇게 이 시즌에는 리그에서만 31골을 넣고 득점왕, 시즌 통틀어 42골. 이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면, 2017년 기준 26살인 아자르보다 어린 23살이란 나이에 EPL을 씹어먹고 리그 31골이란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운 것이다. EPL 출범 이후 리그 30골을 이상인 선수는 앤디 콜, 앨런 시어러[12], 케빈 필립스, 티에리 앙리, 로빈 반 페르시, 루이스 수아레스, 모하메드 살라, 해리 케인, 엘링 홀란드 정도 밖에 없을 정도이다. 여기서 살라를 제외하고 이 여덟은 최전방 공격수지만 호날두는 이 당시 최전방 공격수가 아닌 윙어면서 이런 기록을 달성했다.[13] 또한 PFA, PFA 팬 선정, FWA,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상도 2년 연속으로 모두 쓸어담았다.[14] 또한 그 해 맨유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고[15]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FIFA 올해의 선수상, 발롱도르[16] 등 프리미어 리그 역대 최고의 개인 퍼포먼스와 동시에 받을 수 있는 개인상은 모두 휩쓰는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
2007/08시즌: 49경기 42골 7도움[17]
프리미어 리그 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FA 커뮤니티 실드 우승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UEFA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
유러피언 골든슈 수상
3.6. 2008-09 시즌
2008-09 시즌을 앞둔 7월 7일, 그는 발목 수술을 받았고 약 10주간 활동하지 못했다. 복귀 후 5라운드 볼튼전에서 페널티킥으로 시즌 리그 마수걸이 골을 넣었다. 리그 9, 10라운드 경기에서 모두 멀티골을 기록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 11월 15일, 5-0으로 이긴 프리미어리그 12라운드 스토크 시티전에서 프리킥으로 두 골을 넣었는데, 첫 골은 유나이티드 개인 통산 100호골이었고, 그 결과 당시 프리미어리그에 속한 19개 팀을 상대로 모두 득점을 기록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닷새 후 리그 14라운드 맨체스터 시티 FC와의 경기에서 3번째 퇴장 조치가 내려졌다.
이후 2008년의 마지막을 앞두고 호날두는 일본에서 열린 FIFA 클럽 월드컵에서 맨유의 우승을 도왔다. 리가 데 키토와의 결승전에서는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면서 이 대회의 실버 볼의 주인이 되었다. 또한 1월 27일 웨스트브로미치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면서 간만에 리그 골을 기록하였다. 31일에는 pk로 한 골을 기록하였다.
한편, 호날두는 첼시와의 07-08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득점한 이후 좀처럼 챔피언스리그에서 득점을 기록하지 못하다가 인테르나치오날레와의 16강 2차전 홈 경기에서 첫 UEFA 챔피언스리그 골을 기록했고 2-0으로 이긴 유나이티드는 8강에 진출했다. 이어서 3월 14일에 펼쳐진 리버풀과의 홈경기에서 pk로 선제골을 넣었으나 팀은 4대1로 패했다.
이후 호날두는 FC 포르투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원정에서 36미터 중거리 슛으로 멋진 골을 성공 시키면서 FIFA 푸스카스상의 초대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4월 5일 아스톤빌라와의 홈경기에서 13분과 81분에 각각 득점에 성공하면서 멀티골을 기록하였고, 페데리코 마케다의 결승 데뷔골로 승리했다.
2009년 4월 25일에 펼쳐진 프리미어리그 33라운드 토트넘 홋스퍼 FC와의 홈경기에서 전반전에만 상대에 두 골을 내주어 분위기가 다운되었을 때 후반 13분에 추격골을 기록하였으며 12분 뒤 2대2 동점 상황에서 역전골을 기록하면서 유니폼을 패대기치는 세레머니를 보여주었다. 결국 맨유는 5대2 승리를 거두었다.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는 아스날 FC를 만나 홈경기였던 1차전에서 1:0으로 이겨 2차전 확실한 승리가 절실할 때... 5월 5일에 펼쳐진 원정 2차전에서는 전반 7분 박지성의 선제골에 1어시, 전반 10분에는 30m 거리에서 마누엘 알무니아를 상대로 무회전 프리킥을 작렬시키고, 전반 60분에는 그 유명한 호날두-박지성-루니-호날두로 이어지는 10초 역습으로 쐐기골을 작렬시키며 쐐기골을 뽑아낸다. 후반 75분에 반 페르시에게 페널티킥 골을 먹히지만 팀은 3:1로 승리, 결승으로 올라가고 말 그대로 맹활약을 펼쳐 경기 MOM으로 선정된다. 5월 10일 맨시티와의 프리미어리그 35라운드 경기에서 프리킥으로 득점을 성공시키면서 3년 연속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18]
이후 로마에서 펼쳐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는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리오넬 메시-티에리 앙리-사무엘 에투 라인에게 완벽하게 2:0으로 패배하며 팀은 준우승에 머무른다. 경기 내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며 짜증 폭발, 결국 처참하게 관광당한 뒤에는 전술 자체가 잘못됐다고 하기도... 2008-2009 시즌에도 26골 9도움을 하며 맹활약을 했지만 저번 시즌의 임팩트가 너무 강렬했어서 아쉽다는 말이 나오는 실정이다.
2008/09시즌: 53경기 26골 9도움[19]
프리미어 리그 우승
EFL컵 우승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2008년 발롱도르 수상[20]
2008년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21]
4.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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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 당시에는 미완의 대기였으나[22] 알렉스 퍼거슨 경의 지도 하에 잠재력이 만개한 이후로는 화려한 플레이 스타일에 리그 내에서 대적할 자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기량, 큰 키에 잘생긴 외모에다가 엄청난 쇼맨십까지 EPL 역사상 최고의 임팩트를 남기며 전설의 탄생을 알렸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맨유의 전술의 핵이자 중심이 되었으며 퍼거슨 감독도 인정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최전성기[23]를 이끌었다. 호날두&루니&테베즈의 빠른 역습은 엄청났고 이때의 시원시원한 맨유의 역습 축구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맨유는 잠시 동안 구단 가치 1위를 기록했었다.[24]
맨유 1기 시절의 호날두는 조지 베스트 이후 역대 최고의 맨유 7번이자 맨유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격수를 논할 때 최우선적으로 언급되는 전설이다. 역대 잉글랜드 프로 축구를 통틀어도 호날두와 비교되는 공격수는 티에리 앙리, 라이언 긱스, 앨런 시어러, 세르히오 아구에로 정도 뿐이다. 특히나 호날두는 앙리와 시어러, 긱스, 아구에로가 수상하지 못했던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까지 수상하는 등 단기간의 임팩트만 놓고 보면 넷을 뛰어넘었고 EPL 역사를 통틀어도 독보적인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앞의 넷은 하이라이트를 잉글랜드에서 보낸 선수들이지만 호날두에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커리어 1기는 성장기에 불과했으며 커리어 전체의 평가로는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골을 넣고 발롱도르를 다섯 번이나 수상한 데다 무수한 트로피를 든 호날두가 몇 수는 위라는 평가이며, 2023년까지 EPL 소속 발롱도르 수상자가 단 한명도 나오지 않다가 16년이 지나고 나서야 맨체스터 시티 FC 소속 로드리가 겨우 수상한것을 보면 EPL 선수가 발롱도르 받는게 얼마나 힘든것인지 알 수 있다. 결국, 예측의 영역에 불과하나 훗날 호날두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보여준 폼을 맨유에 남아 계속 보여줬다면 이견이 없는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됐을 것이라고 보면 된다.
심지어 여러 차례 현지 조사에서 EPL 역대 최고의 선수, 맨유 역대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1992년에 출범한 EPL의 올타임 1위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맨유 1기 시절의 호날두가 맨유, 더 나아가서 EPL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선수라고 한칼에 단언하기는 조심스럽지만 그렇다면 호날두보다 더 뛰어났던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딱히 대답할 선수도 없다는 것. 커리어 전체의 호날두와 비교되는 역대 최고의 선수들은 대다수가 잉글랜드가 아닌 타 리그를 주 무대로 뛰었기 때문에[25] 호날두가 EPL에서는 역대 최고라는 반응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26]
이후 레알 마드리드 CF에서의 미친 활약상으로 인해 호날두가 현재까지 잉글랜드에서 커리어를 보낸 적이 있는 선수들 중 역사상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으나, 이는 '호날두가 영국에서 보낸 커리어'가 잉글랜드 1부리그에 있어 왔던 여러 선수들의 커리어 중 가장 위대하다고 평가하는 것과는 엄밀히 말해 별개이다. 호날두는 그 누구보다 화려한 전성기를 보내며 EPL을 지배했지만 맨유에서 뛴 시기 자체가 그리 길지 않았고, 이에 따라 여러 매체의 평가는 이 부분이 미묘하게 섞여 있고, 1992년에 출범한 'EPL'과 130년 역사의 잉글랜드 프로축구리그라는 상이한 개념 역시 팬들과 언론 사이에서 미묘하게 혼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 시기의 호날두는 리그 내의 모든 선수들을 통틀어서도 아득히 다른 차원의 활약을 선보였으며, 1992년 출범한 'EPL'의 역대 베스트11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도 남을 만 하다는 점만큼은 호날두를 아무리 낮게 평하는 이라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5. 여담
- 뤼트 판니스텔로이와는 불화가 심했다. 반니스텔루이는 호날두가 자신에게 패스와 크로스를 안 한다고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호날두와는 도저히 같이 못 뛰겠다고 늘 투덜댔다고 한다. 리오 퍼디난드의 증언에 따르면 트레이닝 도중에 반니스텔루이와 호날두가 싸우는 건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고. 한 번은 여느 날처럼 호날두와 말다툼을 하던 반니스텔루이가 호날두를 발로 찼는데, 퍼디난드는 호날두를 보호하기 위해 반니스텔루이를 살짝 발로 찼고, 그러자 반니스텔루이는 퍼디난드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고 한다. 이로 인해 반니스텔루이는 결국 다음 경기에 출장하지 못 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레알 마드리드로 쫓겨나고 만다.
또 다른 일화로는 반니스텔루이가 호날두와 트레이닝 도중 말다툼을 하다 호날두에게 "너네 아버지한테 가서 고자질 해라." 라고 말했다. 여기서 반니스텔루이가 지칭한 아버지는 퍼거슨이 아닌 수석코치였던 카를로스 케이로스였는데[27] 호날두는 그 아버지를 진짜 자신의 아버지라 알아 듣고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셨어." 라고 하며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28] 즉 호날두의 입장에서는 패드립인 셈. 이 대화가 언론을 통해 공개된 후 반 니스텔루이는 엄청 까였다.[29]
- 레알 마드리드 이적 몇 년 후 맨유의 성적이 저조함에 따라 호날두가 그리워진 맨유 팬들이 한창 경기 중인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상공에 'COME HOME RONALDO'라는 글귀가 적힌 종이를 비행기 뒤에 달고 날아다니는 등의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12년 후... 호날두는 진짜로 돌아왔다!
그러나...
- 입단 당시 호날두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의 만남을 회상하며 “스포르팅에서 활약할 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는 나를 원한다고 했고,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니 전율이었다. 내게 전화를 한 사람은 퍼거슨 감독이었다. 나는 곧바로 어머니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 퍼거슨 감독은 내게 아버지와도 같은 인물이었다.”라고 회고했다.
[1] Transfermarkt 기준 6골 9도움[2] Transfermarkt 기준 9골 10도움[3] 이 경기가 끝나고 맨유 팬들에게 유명할 키노게이트 인터뷰가 터진 경기다.[4] 06-07시즌부터 리그 두 자릿 수 득점에 한 시즌 20골 이상을 기록하지만, 05-06시즌에 전반기에 리그에서 1골만을 기록했지만 후반기에 8골을 기록할 만큼 득점력이 많이 향상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 시기가 호날두가 한 층 성장한 시기라고 보면 된다.[5] 벤피카는 호날두의 전 소속팀이었던 스포르팅의 최대 라이벌이다.[6] 자세한 것은 아래 여담 항목 참조[7] Transfermarkt 기준 12골 9도움[8] 2003-04 40경기 6골 7어시 2004-05 50경기 9골 8어시 2005-06 47경기 12골 8어시 2006-07 53경기 23골 14어시 2007-08 49경기 42골 7어시 2008-09 53경기 26골 9어시.[9] 결국 AC 밀란은 그 대회를 우승하였으며 당시 AC 밀란은 노화로 인해 저평가 받았지만 2002~2007년 챔피언스 리그 성적이 우승-8강-준우승-4강-우승이었던 팀이다. 2004년 충격의 리아소르의 기적과 2006년 안드리 셰브첸코 골 취소 오심만 아니었다면 각각 FC 포르투와 FC 바르셀로나 대신 결승에 올라갔을 만한 세계구급 전력을 보유하였다. 만약 그랬다면 5년 연속 챔스 결승 진출할 수도 있었던 팀. 준우승했던 2005년엔 우리가 잘 아는 이스탄불의 기적이 일어났고.[10] Transfermarkt 기준 23골 14도움[11] 이 골장면은 호날두의 프리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골 중 하나다. 또한 무회전 프리킥의 교과서처럼 여겨지는 골이기도 하다.[12] 시어러는 세 시즌 연속으로 달성했다. 다만 38라운드 체제에서는 한 번뿐.[13] 맨유의 호날두는 2006-07시즌까지는 일반적인 윙어였으나 2007-08시즌부터 프리롤을 부여받은 프리롤 공격수 역할의 오른쪽 윙어로서 30골 이상을 달성했다. EPL은 강팀이 여럿 있었고[30] 변수가 많았기에 30골 이상은 맨유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그것도 중앙 공격수가 아닌 윙어가 그랬으니 말이다. 그의 공격 본능은 훗날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레전드를 기록할 정도로 폭발했다.[14] PFA, FWA,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한 시즌에 모두 수상한 선수는 그를 포함해 9명이나, 두 시즌 연속으로 모두 수상한 선수는 호날두가 유일하다.[15] 러시아 모스크바의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EPL 라이벌인 첼시와 결승전을 치렀다. 이때 4강까지 대단한 활약을 펼친 박지성이 벤치 멤버도 아닌 결승전 엔트리 자체에 오르지 못해 국내 해축팬들이 퍼거슨을 무진장 깠다. 아무튼 결승에서는 연장까지 1:1 접전을 벌인 끝에 승부차기로 가서 존 테리의 미끄덩슛과 반 데 사르의 활약으로 맨유의 승리.[16] 2024년 로드리가 발롱도르를 받기 전까지 EPL 선수 중 발롱도르를 받은 선수는 호날두가 마지막이다.[17] Transfermarkt 기준 42골 8도움[18] 이는 2021년에 맨유에 복귀하기 전까지 호날두의 맨유 커리어 마지막 골이었다.[19] Transfer markt 기준 26골 12도움[20] 2024년 발롱도르에서 로드리가 수상하기 전까지 약 16년간 EPL 마지막 발롱도르 수상이었다. 호날두의 수상 이후 EPL 클럽 소속 선수 기준으로는 2019년 버질 반 다이크가 포디움에 들었지만 2위에 그치고, 2021년 조르지뉴, 2022년 케빈 더 브라위너가 포디움에 들었지만 모두 3위에 그치고, 2023년 엘링 홀란드가 포디움에 들었지만 2위에 그치고 만다. 결국 2024년 발롱도르에서 맨체스터 시티 소속 로드리가 발롱도르를 수상하게 되면서 호날두의 마지막 EPL 발롱도르 수상자라는 타이틀은 16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깨지고 말았다.[21] EPL과 맨유 소속 선수 통틀어 마지막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이다. 호날두의 수상 이후 EPL 클럽 소속 선수 기준으로는 2018, 2021년 모하메드 살라가 포디움에 들었지만 모두 3위에 그치고, 2019년 버질 반 다이크가 포디움에 들었지만 2위에 그치고, 2023년 엘링 홀란드가 포디움에 들었지만 2위에 그치고 만다.[22] 호날두라고 해서 처음부터 잘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맨유 데뷔 시즌에서 40경기에 출전해 6골을 기록한 호날두의 성장 속도는 엄청났고, 이후 9골, 12골, 23골, 42골을 기록하며 해가 지나면서 득점력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내며 명실상부한 레전드가 되었다. 첫 시즌 FA컵 우승을 따낸 호날두는 이후 3번의 프리미어 리그 우승, EFL컵 2회 우승 등을 차지하며 프리미어 리그를 지배했으며, 2007-08시즌에는 무려 42골을 기록하며 프리미어 리그와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득점왕을 동시에 석권하며 우승을 이끌었다. 참고로 호날두가 기록한 42골은 조지 베스트가 세웠던 윙어 최다골 32골을 경신한 대기록이다.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2번이나 받은 호날두는 2008년에는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을 휩쓸며 확고부동한 레전드의 반열에 올라섰다.[23] 일명 황유. 트레블을 기록한 98-99 시즌보다 이 당시의 맨유가 더 강하다는 평이 나올 정도였고, 실제 Elo 레이팅 등 간접적으로 시대별 비교를 할 수 있는 지표들에서 이 당시의 맨유가 트레블 당시의 맨유보다 더 강력한 팀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24] 골무원이라는 별명도 이 시기 달렸다. 늘 출전해서 늘 골을 넣는 그의 플레이가 출근해서 출근 도장 찍는 공무원같이 다를 게 없이 언제나 늘 똑같기 때문. 시즌 초반 부상 때문에 결장하자 무단 결근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상대 수비수가 태클이나 파울을 하면 골무 집행 방해라는 소리가 나왔었다.[25] 리오넬 메시, 펠레,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디에고 마라도나, 요한 크루이프, 프란츠 베켄바워뿐 아니라 유사 포지션에서 역대급으로 꼽히는 미셸 플라티니, 에우제비우, 게르트 뮐러, 호나우두, 마르코 반 바스텐 등까지 포함해도 잉글랜드를 주력으로 뛴 선수는 의외로 적으며 만약까지 가정해 이들을 포함한다 해도 호날두의 순위는 한 손에 종종 꼽힌다. EPL에서 족적을 남긴앨런 시어러, 바비 찰튼, 조지 베스트, 에릭 칸토나, 데니스 로, 데니스 베르캄프 등은 커리어 전체를 종합했을 때 호날두의 평가가 넘어선 지 오래이다.[26] 단 2012년에 FA에서 선정한 EPL 20주년 역대 최고의 선수로는 라이언 긱스가 선정되었으며 티에리 앙리 역시 조사기관에 따라 EPL 역대 외국인 선수 랭킹에서 호날두를 제치고 1위로 선정되는 일도 있다. 개별 조사들을 다 고려하면 지네딘 지단이 디에고 마라도나를 넘는 적도 있는 만큼 재미 삼아 보는 것이 좋다. 물론 마라도나는 영향력 및 기량과는 별개로 거친 성격과 더불어 말년의 마약 논란 등 안티도 꽤 많은 편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27] 같은 포르투갈 국적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유독 친했었고, 호날두가 케이로스를 잘 따랐었기 때문에 비꼰 것이다. 참고로 저 케이로스는 우리가 아는 그 주먹감자 그 사람 맞다.[28] 호날두의 아버지는 05/06 시즌 도중에 사망했다. 호날두는 부친상 때문에 시즌 중반에 결장하기도 했다.[29] 여담으로 후에 "호날두는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라는 패드립을 쳤었던 주제 무리뉴가 이 당시 반니스텔루이 보다 몇 배는 더 많이 까였다. 심지어 오해로 인해 벌어진 반니스텔루이의 일과 달리 무리뉴는 대놓고 그 사실을 저격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레알에서 감독과 선수의 입장으로 재회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