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arfix]
1. 개요
NFL의 역대 승률 꼴찌 팀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의 역사를 정리한 문서.2. 휴 컬버하우스의 창단
2.1. 창단 과정
AFL-NFL 통합 이후 NFL의 성장세가 두드러지자 NFL은 이제 마켓을 전미로 확대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 시작이 가장 늦게 주목받은 지역인 북태평양지역, 그리고 풋볼 열기가 뜨거워 한 팀만으로는 성이 안차는 플로리다 지역이었다. 북태평양의 중심 시애틀에 시애틀 시호크스를 창설할 때, 탬파, 세인트피터스버그, 클리어워터 등을 일대로 묶은 지역인 일명 '탬파베이'라는 통합연고로 필라델피아 출신 사업가 톰 맥클로스키가 창단 신청을 했지만 이런저런 문제로 거절당해 변호사 휴 컬버하우스가 나서 훌리한 스타디움[1]을 홈구장으로 하여 팀을 창단했다.[2] 창단 당시 소속지구는 AFC 서부지구였고[3], 초대 운영부사장은 전 오클랜드 레이더스 스카우터 론 울프[4], 감독은 USC 미식축구부의 명장 존 맥케이로 했고, 수비 코디네이터에 전 시카고 베어스 감독 에이브 기브론, 디펜시브 백 코치에 전 USC 코치 웨인 폰테스 등을 각각 선임해 코치진을 구축했다. 스타팅 라인업은 스티브 스퍼리어, 러닝백 루이스 카터, 풀백 에드 윌리엄스, 좌측 수비엔드 리로이 셀먼, 와이드리시버 존 맥케이 주니어 및 모리스 오언스 등으로 구성됐다.2.2. 기나긴 암흑기
초대 감독 존 맥케이는 향후 5년 동안 베테랑 중심으로 선수진을 운용하면서 차차 신인들을 영입한다는 쪽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웠으나, 당시에는 하드십 드래프트 제도가 없어서 타 팀에서 버려진 선수들을 모았기에 첫 시즌에 14전 전패를 기록했고, 1977 시즌 때 창단 동기 시애틀 시호크스와 소속지구를 맞바꿔 NFC로 옮겼으나 12주차까지 전무후무한 26연패를 기록했고, 13주차에야 아치 매닝이 이끌던 약체팀 뉴올리언스 세인츠를 꺾은 게 첫 업적이다. 그러나 1978년 드래프트 때 흑인대학 그램블링 주립대 출신 쿼터백 덕 윌리엄스를 전체 17번으로 뽑아 새 출발을 알렸고, 그의 뒤를 리로이 셀먼과 리키 벨 등이 받쳐주어 1979 시즌 때 신생팀 최초로 지구 우승을 거두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등 짧은 승리를 맛봤다[5]. 하지만 팀의 짧은 성공 뒤 긴 암흑기가 예고됐다. 참고로 리로이 셀먼과 리키 벨은 모두 창단 후 2년 연속으로 전체 1픽에서 뽑은 선수들이며 셀먼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6]드래프트 동기인 워런 문이 지명을 못받고 CFL로 눈을 돌리던 때에 윌리엄스는 팀에 적을 둔 5년간 주전 쿼터백으로 활동했으며 플레이오프를 이끌기도 했다. 5년의 시간이 흘러서 자유계약을 앞둘 시점에 덕 윌리엄스는 당시 NFL 쿼터백 기준으로는 최하에 가까운 12만달러의 연봉을 받고 있었다. 실력에 비해 인종문제 때문에 매우 연봉이 저평가되어 있던 덕 윌리엄스는 '플레이오프를 이끈 쿼터백이니 받을 만큼 받아야겠다'라고 선언했고 60만 달러의 연봉을 요구했다. 존 맥케이 감독도 윌리엄스만은 잡아야 된다고 구단주 휴 컬버하우스를 설득했으나 구단주는 윌리엄스의 연봉 인상 요구를 거절했다. 그 마지노선은 40만 달러. 당시 윌리엄스 연봉의 3배였지만 그 조차도 NFL 쿼터백 중 꼴찌였다. 결국 화가 잔뜩난 윌리엄스는 탬파베이와 계약을 포기하고 신생리그였던 USFL로 진출해 NFL을 4년 간 떠나 있었다. 그후 USFL의 실패로 NFL 무대에 돌아와 1986년 워싱턴 레드스킨스에 입단한 뒤 제22회 슈퍼볼에서 덴버 브롱코스를 꺾고 MVP를 차지한다. 워런 문처럼 커리어가 파란만장하진 않았지만 흑인 쿼터백으로서 입지전적인 선수로 어찌보면 쿼터백 인종차별의 희생양이라 할 수 있다.
앞서 미식축구나 쿼터백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좋은 쿼터백을 내다버린 팀이 어떤 말로를 겪는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렇게 염가봉사를 한 덕 윌리엄스를 내다버린 팀은 후계자 쿼터백을 구하지 못한 채 1983 시즌에 2승 13패를 기록했고, 1996 시즌까지 14시즌 연속으로 플옵에 못 나갔다. 물론 벅스에게 시궁창을 벗어날 기회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그 기회도 수포로 돌아갔다는게 문제일 뿐. 1985년 1라운드에는 몰몬교계 대학 BYU 출신 쿼터백 스티브 영을 지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은 비전 없던 탬파베이 구단 입단을 거부하면서 USFL 등을 전전하면서 버티다가 1985년 시즌 후반에나 입단해 제대로 준비하지도 못하고 뛰었고 1985/86시즌을 거하게 말아먹었다. 그 후에도 영은 계속 탬파베이에서 못 뛰겠다고 징징대다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로 트레이드되고 나서야 조 몬태나를 잇는 레전드 쿼터백이 되었다.
1986년 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권을 갖고 전년도 하이즈먼 트로피 수상자이자 뛰어난 운동신경을 지닌 러닝백 보 잭슨(오번대)을 뽑으려 했고, 컬버하우스 구단주는 NCAA에서 허가를 받았다고 거짓말하며 잭슨을 초청해 홈구장도 구경시켜줬다. 그러나 잭슨은 NCAA의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야구부에서 뛰지 못했고, 그는 이에 분노한 채 "절대로 벅스에서 안 뛰겠다"고 해 MLB 팀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입단한 뒤 1987 시즌 도중에 앨 데이비스 구단주의 제안에 따라 로스앤젤레스 레이더스로 입단했다.
1987년 드래프트에서 2년 전 놓친 스티브 영 대신 전체 1순위로 지명한 쿼터백 비니 테스타버디(마이애미대)도 전년도 하이즈만 트로피를 받은 유망주였으나, 입단 후 성공률 50%대의 막패스와 인터셉트 공장이라는 오명을 쓰고 방출되고 나서 30대 중반에 볼티모어 레이븐스에서 포텐이 뒤늦게 터져서 커리어를 이어갈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그 외에도 컬버하우스 구단주의 무능함과 프런트의 나쁜 안목 때문에 재능 있는 수많은 선수들이 방출되거나 트레이드됐고, 팀 투자도 잘 하지 않아 1994년 말 리치 맥케이[7]가 단장으로 부임하기까지 팀을 거친 단장은 필 크루거(1991)가 유일했고, 그 역할마저 운영부사장이나 감독이 직접 맡는 경우가 있었다. 이 열악한 상황 속에 팀은 별다른 프랜차이즈 선수 없이 플로리다 주, 나아가 리그 전체에서 비인기팀으로 전락했다.
3. 맬컴 글레이저의 인수
위와 같이 천방지축으로 팀을 운영하던 휴 컬버하우스 구단주는 1994년 11월에 폐암으로 숨졌고, 뒤이어 구단 재정이 파산 위기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결국 유족들이 팀을 매물로 내놓자, 조지 스타인브레너 등 풋볼 팀을 갖는 데 관심 많던 여러 부호들이 각축을 벌이다 보석 도매업자 맬컴 글레이저가 1억 9200만달러를 불러 팀을 인수했다. 이에 따라 그는 돈을 왕창 풀어다가 뛰어난 선수 영입에 주력하는 한편 탬파 시 당국에 새 구장 건설을 제안했고, 이게 받아들여져 1998년에 탬파 스타디움 대신 신설구장 레이먼드 제임스 스타디움으로 옮겼다. 1996 시즌을 앞두고 샘 와이키 감독을 경질한 후 전 미네소타 바이킹스 수비 코디네이터 토니 던지를 감독으로 모셨고, DC에는 수비전문 코치 몬티 키핀도 불렀다. 1997년에는 팀 로고를 검투사 얼굴에서 붉은색 해적기로 변경하며 유니폼 색도 오렌지색에서 붉은색으로 바꿨다.던지 감독은 당시 NFL에서 잊혀져가던 커버-2 디펜스를 다시 꺼내들어 이를 착실하게 가다듬고 개조해서 탬파-2라는 자신만의 수비 전략으로 만들어냈고, 그에 맞게 수비 엔드 시미언 라이스, 수비 태클 워런 샙, 라인배커 데릭 브룩스, 코너백 론데 바버, 세이프티 존 린치 등 걸출한 선수들을 찾아내 2000년대 초반 최고의 수비진을 만들어냈다.[8] 또한 공격진에는 러닝백 워릭 던, 풀백 마이크 알스톳이 러싱 공격을 갖춰놓으며 점점 강호의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러싱 공격에 비해 패싱 공격이 약하고 쿼터백이 불안정하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수비의 강력함으로 이를 상쇄할 수 있었으며, 2000년에 뉴욕 제츠의 스타 리시버 키숀 존슨을, 2001년에 미네소타 바이킹스, 워싱턴 레드스킨스를 거친 베테랑 쿼터백 브래드 존슨 등을 각각 영입하면서 패싱 공격의 강화도 이루어냈다. 임기 내내 총 4번 플옵에 진출하고 1999 시즌에 컨퍼런스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커트 워너가 이끄는 세인트루이스 램스에게 11-6으로 져서 슈퍼볼을 못 나갔다.
글레이저 구단주는 공수 양면에서 균형있는 팀을 구축키 위해 던지 감독을 경질하고, '빅 튜나' 빌 파셀스와 볼티모어 레이븐스 DC 마빈 루이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감독 스티브 마리우치, 그리고 오클랜드 레이더스에서 막 쫓겨난 존 그루덴 등에게 추파를 던지다가 결국 공격전술에 능한 그루덴을 새 감독으로 찍었다. 이에 따라 레이더스로부터 2002년 드래프트 1~2라운드 지명권 및 2004년 2라운드 지명권, 현금 800만 불을 각각 받았다.[9]
임명 당시 전임 감독인 던지가 팀 내부에서 충성도가 높은 터라 토사구팽 논란이 있었지만, 그루덴 감독은 그동안 취약했던 공격진을 더욱 키워 부임 첫 시즌인 2002 시즌에 리그 최고기록인 12승 4패를 찍어 플옵을 거쳐 제37회 슈퍼볼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고, 마침 운명의 장난인지 버커니어스가 슈퍼볼에서 상대할 팀은 그루덴 감독이 그 전 해까지 지도했던 오클랜드 레이더스였던 것이다. 자기가 구축했던 레이더스의 공격 전술을 완전히 꿰고 있는 감독과 리그 최강의 수비력을 자랑하던 탬파베이는 덕분에 레이더스를 손쉽게, 깔끔하게 관광 태우고 창단 첫 우승을 거둔다.[10] 결국 팀의 내실을 다졌던 전임 토니 던지는 영광의 과실을 맛보지 못했지만, 같은 해에 옮긴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에서 4년 후 흑인으로서 최초로 슈퍼볼 우승을 맛봤다.
2002년 시즌에 우승을 거두긴 했지만 이는 특출난 쿼터백 없이 이룬 굉장히 이례적인 우승 사례이며[11] 오클랜드 레이더스의 결정적인 삽질과 그루덴 감독의 강단있는 지도력이 겹쳐진 결과였다. 모든 슈퍼볼 우승팀들의 여정이 그렇지만 2002시즌은 상당한 운이 따라줬던 시즌이기도 하다. 몇 년간 넘지 못했던 라이벌 필라델피아 이글스를 플레이오프에서 이기지 않나,[12][13] 슈퍼볼 상대가 많고 많은 팀 중 그루덴이 이끌었던 레이더스이지 않나... 그만큼 쿼터백은 미식축구 팀의 구성에 중대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3.1. 첫 우승 이후
슈퍼볼 우승 후 존 그루덴 감독은 자존심이 점점 높아져 2003년에는 9년째 부임한 리치 맥케이 단장과 다퉜고, 글레이저 구단주는 그루덴의 손을 들어 주면서 오클랜드 레이더스 프런트에 몸담았던 브루스 앨런을 새 단장으로 불러왔다. 새 단장 앨런은 전 시즌 우승의 여파로 샐러리 캡 부담이 생기자 워런 샙과 존 린치를 내쳤다. 프랜차이즈 쿼터백을 찾아내지 못하는 난항 속에서도 2005년 드래프트 때 오번대 출신 RB 캐딜락 윌리엄스를 전체 5번으로 뽑아 팀에 활력을 불어넣는 듯했으나, 수비팀으로서 정체성을 잃은 채 밍밍한 시즌을 보냈다. 특히 2008 시즌은 9승 3패의 호성적을 거두고 있었는데 마지막 네 경기를 전부 패배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시즌 종결 후 앨런 단장이 경질됐고, 그루덴 감독도 같이 떠나 ESPN 해설자로 돌아갔다. 그 상태로 지금까지 탬파베이의 쿼터백 찾기는 계속되고 있다. 이쯤되면 덕 윌리엄스의 저주인지도 모른다.그리고 2020년까지 탬파베이는 무려 12년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게 된다.
3.1.1. 2013년 시즌
3.1.1.1. 전반기
오프시즌 때 뉴욕 제츠로부터 스타 코너백 대럴 리비스를 영입하면서 그 옛날 리즈 시절 처럼 수비로 일을 내려고 한 것 같긴 한데 역시 현실은 시궁창. 8주차까지 0승 7패로 전패. 도무지 점수를 낼 방법이 없는 공격진이 문제다. 발전의 기미가 안 보이고 패스 성공률이 고작 45%밖에 안 되는 QB 조시 프리먼을 3주차만에 쿼터백 자리에서 내쫓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출한 것까진 좋은데, 그 후임이 올해 3라운드 76번 픽으로 뽑은 루키 마이크 글레넌이었으니... 설상가상으로 전 해에 루키로서 팀의 러싱을 책임졌던 더그 마틴까지 부상으로 아웃되니 공격진은 그야말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는 수준. 아무리 NFL의 속설에 '인기를 추구하려면 공격, 우승을 추구하려면 수비'라는 말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조악한 공격력 가지고는 수비를 아무리 잘해봐야 일 못낸다.게다가 시즌 중에 라커룸에서 웬 MRSA가 창궐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져, 프로볼급 선수들인 OG 칼 닉스와 키커 로렌스 타인스가 여기 감염되어서 몸져눕고 결국은 몸이 너무 망가진 나머지 시즌뿐만 아닌 커리어 전체가 그대로 끝장나 버려 반강제로 은퇴한 데다 6주차에 필라델피아 이글스를 상대하는 홈 경기를 치를 수가 없어서 연기하기 직전까지 가는 웃지 못할 대형사고가 터졌다. 이걸로 벅스는 실력도 형편없는 팀이 홈 구장은 불결하기까지 한 막장이라면서 리그 전체에서 있는 대로 빈축을 샀다.
3.1.1.2. 후반기
급기야는 9주차에 지구 라이벌 캐롤라이나 팬서스전의 패배로 시즌 전 강력한 0승 16패 후보였던 잭슨빌 재규어스에게도 추월당한 채 2013시즌 최후의 무승팀으로 남는 굴욕을 겪었다. 잭슨빌과 별 차이 없는 한심한 팀 전력으로 새로운 0승 16패 후보가 되는가 했더니 바로 다음 주에 AFC의 플레이오프 마지막 한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던 마이애미 돌핀스에게 불의의 일격을 날리며 시즌 첫 승을 거두더니 그대로 3연승을 내달리면서 탈꼴찌에도 성공했다. 특히 3연승에는 플레이오프 컨텐더인 돌핀스와 라이언스전이 포함되어 있어 플레이오프 전망에 의외의 복병으로 자리잡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도 13주차에 팬서스전 패배로 도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양새.시즌 최종 성적은 4승 12패로 지구 꼴찌. 불가해한, 무법자적인 반칙 플레이를 쓰는 전술을 남발하며 팀 성적은 밑바닥으로 추락시킨 감독 그레그 시아노는 시즌이 끝나자마자 경질당했고, 그를 뒷받침해주던 GM 마크 도미닉 역시 짤렸다. 그리고 새 헤드코치로는 2007년 시카고 베어스를 슈퍼볼로 이끈 전적이 있는 러비 스미스를 영입하여 재건에 나섰다.[14]
그나마 경기장 표를 매진시키지 못해 밥먹듯 블랙아웃을 당하던 팀이 이 해만큼은 블랙아웃 없이 시즌을 보냈다는 게 다행이라고나 할까?
3.1.2. 2014 시즌
오프시즌 도중에 2대 구단주 맬컴 글레이저가 5월 28일에 사망해 팀 식구들이 슬픔에 빠졌지만, 전 애리조나 카디널스 선수 인사담당 부사장 제이슨 라이트가 새 단장으로 부임하여 전 시카고 베어스 감독 러비 스미스를 모셔왔다. 이 둘은 드래프트로 팀을 재건해나가는 계획을 수립하여 드래프트에서는 텍사스 A&M 시절 NCAA 최우수 선수 중 하나로 꼽히던 엘리트 WR 마이크 에반스를 전체 7번 픽으로, 워싱턴대 출신 TE 오스틴 세페리안 젠킨스를 38번으로 각각 지명해서 빈곤하기 짝이 없던 공격진을 보강하려는 모습을 보였다.어차피 쉬어가는 시즌으로 큰 기대를 한 팬이 애초에 없었겠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반응. Week 10 종료 현재 1승 8패로 NFC 최하위에 처져있다.
러비 스미스는 시카고 베어스 시절에도 B급 쿼터백을 주전으로 활용하는 등 공격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었는데, 2014년에도 가장 중요한 쿼터백 자리를 전년도 베어스에서 제이 커틀러의 백업으로 괜찮은 모습을 보였던 1979년생 노장 조시 맥카운을 영입해 지난해 후반기를 이끈 2년차 마이크 글레넌 대신 주전으로 내세웠는데, 거하게 망했다. 오히려 전반기 유일한 승리를 거둔 피츠버그 스틸러스전은 맥카운이 부상으로 나가떨어진 동안 글레넌이 대타로 선발 출전해서 이룬 것.
수비 역시 스미스는 자기 시스템에 맞는 선수들이 없어서 2년전 전체 7번으로 뽑았던 세이프티 마크 배런을 겨우 4,6라운드 픽 받고 트레이드 하는 등 체질 개선하는 거 치곤 너무 손해만 보는게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그래서 별로 달라진 것 없이 작년보다 더 막장인 2승 14패를 거두며 나가떨어진다. 게다가 2015년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를 따먹기 위해서 일부러 탱킹을 했다는 의혹까지 받으면서 구설수에 올랐는데, 이유인즉 시즌 마지막 경기로 플레이오프가 좌절되어 어차피 열심히 할 의지가 없는 지구 내 라이벌 뉴올리언스 세인츠를 상대로 4쿼터 시작 때까지 13점을 앞서고 있었으나 4쿼터에만 16점을 내주면서 20 대 23으로 역전패한 것이다. 탬파베이 측은 그런 의혹을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그 때까지 같은 조건에서 탬파베이의 역대 통산 성적이 72승 2패였다는 점을 들어서 드래프트 1순위를 차지하기 위한 의도적인 져주기 게임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탬파베이는 2015년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를 차지했다.
3.2. 제이미스 윈스턴 시대
3.2.1. 2015 시즌
어찌됐든 꼴찌의 보답으로 드래프트 전체 1번 픽을 얻게 됐다. 벅스의 선택은 플로리다 스테이트 세미놀스에서 하이즈먼 트로피를 수상하며 우승을 이끈 바 있는 프로스타일 쿼터백 제이미스 윈스턴. 아무래도 팀의 얼굴인 프랜차이즈 쿼터백으로 인성 쪽에서 말이 좀 있는 선수지만 대학 시절 보여준 실력은 확실하기 때문에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하지만 데뷔전에서 프로 첫 패스가 Pick Six로 이어지는 굴욕을 당하더니 결국 라이벌 마커스 마리오타의 테네시 타이탄스와의 개막전에서 패배했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영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 아무래도 루키 시즌이니 큰 기대를 할 수는 없지만 드래프트에서 2번 픽이던 마리오타가 더 나은 활약을 펼치는 것 때문에 조금 아쉽다는 평이다.
하지만 중반을 거치며 수비진 정비가 어느정도 이뤄지고, 윈스턴도 드디어 차차 리그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며 나아지더니 9주차 3승 5패, 12월에는 무패팀 캐롤라이나에 이어 6승 6패로 5할 승률을 맞추며(?!) 디비전 2위까지 오르게 됐다. 비록 막판 연패를 달리며 지구 꼴찌로 내려 앉아버렸지만... 그래서 시즌 최종 성적은 6승 10패.
어쨌든 제이미스 윈스턴은 시즌 4,000야드 패싱 기록과 함께 인상적인 루키 시즌을 마치게 됐다. 각종 프랜차이즈 기록을 깨는 활약이었으며 본인도 프로 볼에도 선정되고 리그 신인상도 타게 됐다. 앞으로 차차 전력 보강이 제대로 이뤄지면 팀을 제대로 이끌 재목으로 성장할 수 있을거라 기대받고 있는 중이다.
시즌이 끝나고 감독 러비 스미스를 해임하고 그 대체자로 팀의 오펜시브 코디네이터이던 더크 케터를 임명했다. 그 전 시즌의 2승 14패에 비해서는 팀이 확실히 체질이 개선된 것으로 보이고, 아주 괜찮은 루키 시즌을 보낸 QB 제이미스 윈스턴 외에도 WR 마이크 에반스와 RB 더그 마틴이 좋은 활약을 한 공격진, 그리고 우수한 DT 제럴드 맥코이가 이끄는 수비진 등 공수 양면이 기초가 튼튼한 것으로 여겨지기에 다소 의외의 헤드코치 교체로 여겨진다. 일각에서는 윈스턴의 성장에 크게 관여를 하고 있는 케터가 행여라도 타 팀의 헤드코치로 선임되어 버커니어스를 떠나면 윈스턴의 실력 발전에 커다란 지장을 줄까 염려되어, 원래 장기가 수비인 데다 공격 전술을 꾸리는 능력은 항상 믿음직스럽지 못했던[15] 스미스를 윈스턴을 위해 내친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3.2.2. 2016 시즌
2016년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키커 로베르토 아과요를 지명하는 불가사의한 행동을 저질렀다. 키커들은 상식적으로 6-7라운드쯤에서나 드래프트하거나, 아니면 드래프트하지 않고 FA시장을 노리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에 이 결정은 뭇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아과요가 NCAA 기록에 남을 정도로 필드골 및 추가점 성공률이 높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저렇게 상위 드래프트 픽을 쓰는 것을 정당화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개막전은 승리를 거두었으나, 그 뒤 3연패를 기록하며 삐걱거리는 출발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팀의 주전 러닝백 더그 마틴이 부상으로 8주간 결장해야 하는 상황도 일어났다. 그러나 그 3연패 이후, 제이미스 윈스턴이 이끄는 벅스는 그 뒤 9경기에서 5연승[16]을 포함한 7승 2패를 거두며 애틀랜타 팰컨스와 똑같이 8승 5패를 기록, 9년만의 첫 지구 우승과 플레이오프 진출을 가시권에 두게 되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다음 상대는 시즌의 화젯거리인 NFC 최강팀 댈러스 카우보이스였고, 버커니어스는 댈러스를 상대로 상당한 선전을 했지만 20-26으로 아깝게 패배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그 다음 경기에서 지구 라이벌 뉴올리언스 세인츠에게 일격을 당하면서 2연패,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캐롤라이나 팬서스에 승리를 거두며 최종 성적 9승 7패가 되어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와 동률이 되었는데, 여기서 타이브레이커에서 밀리는 바람에[17] 라이언스가 마지막 와일드카드 자리를 차지, 버커니어스의 플레이오프 진출 도전은 너무도 안타깝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6년만에 기록한 위닝 시즌이고, 제이미스 윈스턴이 1년만 반짝 하고는 몰락해버린 RGIII같은 쿼터백이 아닌, 버커니어스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주전급 쿼터백임을 보여주었기에 밝은 미래를 향한 한 걸음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시즌이었다.
3.2.3. 2017 시즌
NFL과 HBO의 합작으로 매년 만들어지는 다큐멘터리인 하드 녹스에 2017시즌을 대표하여 출연하기로 결정되었다.프로볼 발탁 경험이 풍부한 거물급 베테랑 WR 드션 잭슨을 워싱턴 레드스킨스에서 영입하는 등 매우 공격적인 선수 영입을 실행하고 있다. 아마 이번 시즌에야말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서 사고를 치겠다는 생각인 듯. 많은 전문가들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줄 수 있을 다크호스로 평가하고 있다.
5주차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전에서 키커 닉 포크가 필드골 기회 3번을 모조리 날리면서 14-19로 패배했다. 그 중 두번은 49야드, 31야드로 49야드도 그렇지만 31야드 필드골을 놓친 건 정말 아마추어나 할 만한 실수였다. 사실 31야드 골을 놓치는 건 거의 시즌에 한번 볼까말까한 레벨이다. 이 골을 따냈다면 마지막 공격 드라이브를 17-19로 시작했을 것이고, 마지막 필드포지션이었던 패츠 진영 36야드에서 필드골을 시도했다면 이 역시 안들어가는 것이 이상한 위치이기 때문에 20-19로 승리했을 것이기에 치명적인 실축이었다. 결국 포크는 경기 후 방출당했고 팀은 2014, 2015 두 해 동안 벅스에서 활동했던 키커 패트릭 머리로 그를 대체했다.
시즌 시작 전의 다크호스 평가와 지난 시즌의 플레이오프 진출 직전까지 갔던 행보가 무색하게, 패츠전 패배를 시작으로 버커니어스는 5연패를 하고, 그 뒤 두 경기를 이기고 다시 5연패를 하면서 5승 11패로 오히려 내려앉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3.2.4. 2018 시즌
주전 QB 제이미스 윈스턴의 루키 계약 5년차 옵션[18]을 팀이 수용했는데, 여자 택시 운전사를 성추행했다는 죄로 윈스턴이 2018 시즌의 첫 세 경기에 출장 정지 처벌을 받게 되는 불상사가 터졌다. 해서, 2017 시즌에 그의 백업으로 영입했던, 뉴욕 제츠에서 짤렸던피츠패트릭은 3경기 연속 400야드 패스라는 기록을 썼는데, 평소 실력에 비해 훨씬 상향된 이런 활약에 버커니어스 팬들은 루키 시절부터 피츠패트릭을 따라다닌 팬들의 별명인 'Fitzmagic'을 연호하며 환호하는 중이다. 게다가 첫 두 경기에서 승리한 상대는 슈퍼볼 우승 후보로 꼽히는 지구 라이벌 뉴올리언스 세인츠, 전 시즌에 정말로 슈퍼볼을 우승했던 필라델피아 이글스 등 결코 만만한 팀들이 아니다!
하지만, 9월 24일에 벌어진 3주차 먼데이 나잇 풋볼에서 또다른 강호인 피츠버그 스틸러스를 맞은 홈 경기에서는 27-30으로 석패했다. 많은 야드와 터치다운 3개를 던진 피츠패트릭이지만 인터셉션 역시 3개(그 중 하나는 픽 식스)를 던지고, 수비는 스틸러스 QB 벤 로슬리스버거와 WR 주주 스미스슈스터, TE 밴스 맥도널드에게 완전히 유린당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어쨌든 상당한 전력이 보이는 팀인 것 같아 현 시점에서 리그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지구는 단연 NFC 남부지구라는 것을 입증하는 듯했다. 한편 미국의 풋볼 팬들은 시즌 초반에만 잘 하는 백업 쿼터백 라이언 피츠패트릭의 모습을 보고 우려하는 중. 과거에도 팀을 플레이오프 문턱까지 인도한 뒤에 갑자기 무너져내리는 모습[19]으로 팀을 좌절시킨 경험이 한두번이 아니기에...
4주차부터 원래 주전 QB인 윈스턴이 팀에 복귀했는데, 그 전까지 많은 가능성이 보이던 팀이 갑자기 급추락하는 모양새다. 일단 4주차 시카고 베어스전은 10-48로 압살당했고, 그 뒤 바이위크를 보내고 그 다음 경기에서는 지구 라이벌 애틀랜타 팰컨스에게도 패했다. 6주차 패배 후에는 디펜시브 코디네이터인 마이크 스미스를 경질하고 라인배커 코치를 그 자리로 승진시켰는데, 그런다고 무기력한 수비진이 개선될지는 의문스럽다. 7주차에는 리그의 웃음거리인 클리블랜드 브라운스를 연장 접전 끝에 간신히 꺾고 8주차에는 신시내티 벵갈스에게 졌다. 특히, 7주차와 8주차를 통틀어 윈스턴이 터치다운 패스는 1개에 불과했으나 인터셉션은 무려 6개를 던지는 졸전을 벌이는 바람에, 윈스턴은 벵갈스전 3쿼터 종료 직전에 픽 식스를 던지고는 피츠패트릭과 교체되어 경기를 나오는 수모를 당했다. 16-34로 다 지고 있던 경기를 피츠패트릭이 분전하여 단 한 쿼터만에 거의 따라잡은 34-37 석패로 마무리한 건 덤.
결국 그 다음 주의 뉴욕 자이언츠전에서 피츠패트릭이 3쿼터까지 터치다운 없이 세 개의 인터셉션(그 중 하나는 픽 식스)을 범하자 팀은 피츠패트릭을 끌어내리고 다시 윈스턴을 주전으로 선임했는데, 8주차의 벵갈스전을 거울로 비추기라도 한듯 윈스턴은 7-24로 다 지고 있던 경기를 거의 다 따라잡은 35-38 석패로 마무리하며 주전 쿼터백 자리를 되찾아갔다.
이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걸 느꼈는지, 윈스턴은 다음 두 경기에서 인터셉션 없이 561야드 패싱에 터치다운 4개를 기록하며, 4연패를 끊은 후 버커니어스를 2연승으로 인도했다. 하지만 그 뒤 뉴올리언스 세인츠, 볼티모어 레이븐스, 댈러스 카우보이스에 3연패를 기록하며 팀은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되었고, 시즌 내내 쿼터백 기용을 두고 갈팡질팡하던 더크 케터 감독은 결국 해임되었다.
3.2.5. 2019 시즌
버커니어스는 2017 시즌 이후 카디널스 감독직에서 사임 및 은퇴를 발표했고, 그후 1년 동안 CBS에서 경기 해설자로 활동애리언스의 가담으로 결국 팀은 윈스턴을 계속 주전 QB로 밀고 갈 것임을 천명한 셈이 되었고, 그래서 라이언 피츠패트릭은 시즌 종료와 함께 계약이 끝나자 이를 연장하지 않고 마이애미 돌핀스로 이적하였다.
오프시즌 중 WR 드션 잭슨은 필라델피아 이글스로 트레이드되었고, RB 자키즈 로저스는 뉴올리언스 세인츠로 이적하는 등 주전 공격진이 많이 변해, 주전 QB 제이미스 윈스턴, WR 마이크 에반스 둘을 제외하면 딱히 수준급 베테랑이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수비진에서도 9시즌간 수비라인의 중추로 대활약을 해온 DT 제럴드 매코이를 방출하고 그 대체자로 전년도에 로스앤젤레스 램스에서 활약한 DT 은다무콩 수를 단기계약으로 영입하는 등 변화를 꾀했다.
브루스 애리언스 감독의 제이미스 윈스턴을 가다듬으려고 한 노력의 결과로 윈스턴은 2년 동안 계속되던 하락세를 극복하고 3년만에 풀시즌을 뛰었다. 하지만,
또 한번의 루징 시즌을 기록하면서, 다음 시즌에 윈스턴을 계속 믿고 갈지 아니면 새로운 쿼터백을 영입할지 감독과 구단 수뇌부의 고민이 깊어지게 되었다.
3.3. 톰 브래디의 시대
3.3.1. 2020 시즌
자세한 내용은 탬파베이 버커니어스/2020년 문서 참고하십시오.3.3.2. 2021 시즌
자세한 내용은 탬파베이 버커니어스/2021년 문서 참고하십시오.3.3.3. 2022 시즌
자세한 내용은 탬파베이 버커니어스/2022년 문서 참고하십시오.3.4. 포스트 톰 브래디 시대
3.4.1. 2023 시즌
자세한 내용은 탬파베이 버커니어스/2023년 문서 참고하십시오.3.4.2. 2024 시즌
자세한 내용은 탬파베이 버커니어스/2024년 문서 참고하십시오.[1] 원래 이름은 탬파 스타디움. 구장 모양이 멕시코의 전통모자 솜브레로를 닮아 빅 솜브레로라고 불렀는데, 1996~1999 시즌까지 네이밍 스폰서를 통해 훌리한 스타디움으로 불렸다.[2] 팀 색깔은 마이애미대 풋볼팀의 오렌지색, FSU와 탬파대 풋볼팀(1974년 해체)의 빨강색에서 각각 따왔으나, 사용 당시에는 너무 싼티가 나서 "무슨 플로리다 오렌지 광고 하삼?" 이라 디스당했다.[3] NFL은 리그 합병 이후 얼마 안된 1970년대엔 팀들의 디비전 배치가 개판이었다. 특히나 합병 직후엔 더 심했는데 애틀랜타 팰컨스와 뉴올리언스 세인츠가 서부, 애리조나 카디널스와 댈러스 카우보이스가 동부였다.[4] 1992년부터 그린베이 패커스 운영부사장 겸 단장으로 부임해 브렛 파브 영입을 주도했다.[5] 이 당시 대 캔자스시티 치프스전은 수중전으로 유명하다. 그야말로 탬파지역 최대 강수량을 자랑한 날씨였다.[6] 벨은 안타깝게도 다발성 근염 및 피부근염으로 데뷔 6년만인 1983년 샌디에이고 차저스에서 은퇴했고, 1984년 피부근염으로 인한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7] 초대 감독 존 맥케이의 차남이다.[8] 위에 언급된 선수 중 워런 샙과 데릭 브룩스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나머지 선수들도 명전급 커리어를 자랑한다.[9] 그러나 NFL 측은 너무 과하다는 이유로 감독-드래프트 픽 트레이드를 금지하고 있다.[10] 이 때문에 해당 슈퍼볼 매치는 그루덴볼이라고 불리기도 했다.[11] 2000년대의 슈퍼볼 진출팀이나 우승팀의 쿼터백 면면이 워낙 화려하다보니 브래드 존슨이 억울할 수밖에 없을 정도. 이와 비견될 만한 우승은 트렌트 딜퍼라는 어중간한 쿼터백을 데리고 강력한 수비 드라이브로 우승을 따낸 2000년의 볼티모어 레이븐스정도다. 그래도 트렌트 딜퍼와 비교하는 건 존슨에게 실례 맞다. 또한, 엄밀히 말하면 2015시즌 덴버 브롱코스도 이에 해당되는데, 페이튼 매닝의 과거 이름값이야 레전드 중의 레전드이지만, 2015시즌 당시에는 실력과 건강마저 다 죽어버린 상태였기 때문.[12] 워런 샙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선수들은 이글스의 베테랑 스테디엄에 들어서는 것 자체가 싫었을 정도로 이글스에 대한 패배 의식이 짙었다. 그러나 그루덴은 이러한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줬고 가장 중요한 무대에서 과실을 보았다.[13] 더구나 당시 필라델피아 지역의 날씨는 굉장히 추웠다. 상대적으로 온화한 탬파를 홈으로 두고있는 버캐니어스가 불리한 것은 자명한 일이고 이글스 팬들 역시 이를 두고 버캐니어스를 놀려댔지만...[14] 프로에서 사이 좋게 막장스런 성적을 기록한 시아노와 스미스는 다시 대학 무대로 런, 각각 럿거스와 일리노이 감독을 맡아 빅 텐 컨퍼런스에서 재회하게 된다.[15] 실제로, 스미스가 시카고 베어스의 감독으로 있던 9년 동안 베어스는 4차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한 번은 슈퍼볼까지 올라가기도 했지만, 그 성적은 강력한 수비를 끔찍하지 않은 정도의 평범한 공격으로 뒷받침한 결과였다.[16] 슈퍼볼을 우승했던 2002 시즌 이후 팀이 처음으로 거둔 5연승이다.[17] 두 팀이 이번 시즌에 공통으로 상대한 팀들을 보면 시카고 베어스, 댈러스 카우보이스, 뉴올리언스 세인츠, 그리고 로스앤젤레스 램스인데, 이 네 팀을 상대로 디트로이트는 3승 2패, 탬파베이는 2승 3패를 거두었던 것이다.[18] NFL의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들은 모두 일괄적으로 4년 계약을 맺게 되어 있는데, 1라운드에 지명된 선수들에게는 모두 5년차 옵션이 계약에 붙게 되어 있어, 팀에서 3년을 활동한 뒤 팀은 이 첫 3년간 선수의 활약을 바탕으로 이를 수용할지 말지를 결정하게 된다. 수용하게 되면 팀은 일반적인 자유계약선수에 비해서는 저렴한(그러나 원래 루키계약 연봉에 비해서는 훨씬 상향된) 연봉으로 젊은 유력 선수를 1년 더 팀에 데리고 있으면서 선수와의 재계약 협상에 있어서도 타 팀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물론 1라운드 드래프트 선수의 활약이 저조했다고 생각되면 팀은 그냥 옵션을 거부하면 된다.[19] 팬들은 'Fitztragic'이라고 부른다(...)[20] 필드골 실축 2회, 레드존에서의 펌블 턴오버 2회, 인터셉션 2회가 여기에 큰 몫을 했다.[21] NFL 사상, 500야드 이상 전진을 했으면서 3점 이하로 득점한 팀은 이 날의 벅스가 최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