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font-size: 0.95em; letter-spacing: -0.35px" |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카이사르 |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 카이사르 | ||
다섯 황제의 해 | 소 페르티낙스 | |||
세베루스 왕조 | 세이우스 살루스티우스 | |||
군인 황제 시대 |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무스 | 발레리아누스 2세 | 살로니누스 | 소 빅토리누스 | 테트리쿠스 2세 | |||
사두정치 | 크리스푸스 | 리키니우스 2세 | |||
콘스탄티누스 왕조 | 달마티우스 | 한니발리아누스 | 마그누스 데켄티우스 | 콘스탄티우스 갈루스 | |||
서로마 제국 | 팔라디우스 | |||
레오 왕조 | 파트리키우스 | |||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 게르마누스 | |||
이라클리오스 왕조 | 마르티노스 | 테르벨 | |||
이사브리아 왕조 | 니키포로스 | 흐리스토포로스 | |||
아모리아 왕조 | 알렉시오스 모셀레 | 바르다스 | |||
마케도니아 왕조 | 대 바르다스 포카스 | |||
두카스 왕조 | 요안니스 두카스 | 기오르기 2세 | |||
콤니노스 왕조 | 니키포로스 멜리시노스 | 소 니키포로스 브리엔니오스 | 이사키오스 콤니노스 | 요안니스 로게리오스 달라시노스 | 벨러 3세 | 몬페라토의 레니에르 | |||
앙겔로스 왕조 | 요안니스 칸타쿠지노스 | 콘라드 1세 | 마누일 마우로조미스 | |||
라스카리스 왕조 | 레온 가브라스 | |||
팔레올로고스 왕조 | 콘스탄티노스 팔레올로고스 | 알렉시오스 콤니노스 스트라티고폴로스 | 루지에로 데 플로르 | 요안니스 팔레올로고스 | 흐렐야 | |||
아우구스투스 · 카이사르 | }}}}}}}}}}}}}}} |
<colbgcolor=#8b0000> 로마 제국 카이사르 Patricius | 파트리키우스 | |
<colcolor=#FECD21> 휘 | 파트리키우스 (Patricius) |
생몰 년도 | 미상 ~ 미상 |
카이사르 재위 기간 | 470년 ~ 471년 |
아버지 | 아스파르 |
형제 | 아르다부르 |
아내 | 레온티아 |
[clearfix]
1. 개요
동로마 제국의 카이사르. 470년 아버지 아스파르의 압력을 받은 레오 1세에 의해 카이사르 칭호를 수여받았지만 471년 실각했다.2. 생애
동로마 제국 초기의 권신이었던 아스파르의 아들이다. 형제로 아르다부르가 있었다. 450년 집정관에 선임되었고, 470년 아스파르의 압력을 받은 레오 1세에 의해 카이사르로 선임되었으며, 레오 1세의 딸 레온티아와 결혼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민들이 아리우스파 신자인 그가 황제의 사위가 될 수는 없다며 폭동을 일으키자, 아스파르와 레오 1세는 파트리키우스가 황제가 되기 전에 정교로 개종할 것이라고 약속했다.471년 아스파르와 자식들의 권세를 두려워한 레오 1세는 아스파르와 자식들을 궁전으로 초대한 뒤 환관들이 칼을 들고 공격하게 했다. 아스파르와 아르다부르는 참살당했고, 파트리키우스는 부상을 입은 채 달아났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레온티아는 그 대신에 마르키아누스 황제의 외손자인 플라비우스 마르키아누스와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