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가정당 | |
공식명칭 | <colbgcolor=#fff,#1f2023>평화통일가정당 (平和統一家庭堂, Family Party for Peace and Unity) |
창당일 | 2003년 3월 17일 (천주평화통일가정당) |
2007년 8월 28일 (평화통일가정당) | |
해산일 | 2007년 3월 19일 (천주평화통일가정당) |
2008년 4월 15일 (평화통일가정당) | |
해산 전 총재 | 곽정환 |
의석 수 | 0석 / 299석 |
중앙당사 | 서울특별시 마포구 도화동 290-20 도원빌딩 |
당 색 | 연두색 (#2EA4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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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에 존재했었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계열 정당. 천주평화통일가정당[1]이 해산하자 재창당한 사실상 맥을 이은 정당이다.2. 역사
“가정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섭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2007년 8월에 창당하였다. 총재는 통일교 교주 문선명의 사돈[2]이자 천주평화통일가정당의 대표를 지냈던 곽정환이 맡았다.[3]17대 대선에는 후보를 내지 않았으나, 이후 18대 총선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도합 258명의 후보자를 출마시켰다. 지역구 출마자 수만으로는 선거 당시 집권 여당이던 한나라당과 같은 수의 후보가 출마했는데, 당시 있었던 245개의 전 지역구에 후보를 등록시킨 당은 한나라당과 이 평화통일가정당 뿐이었다.[4] 비례대표 후보를 합친 기준으로는 제1야당이자 기호 1번인 통합민주당보다도 많은 후보 수였지만 현실은... 18대 총선에서 지역구 245석 중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했고, 13명의 후보가 등록했던 비례대표 역시 득표율이 의석 배분을 위한 최소 득표율인 3%에도 미치지 못한 채 1.1%(180,857표)에 그쳐 정당 등록이 취소되면서[5] 평화통일가정당은 철저한 실패로 끝났다. 이는 대한민국이 종교인구가 적지 않은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정치세력화를 꺼리는 분위기인 데다 여러 종교의 신도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나올 수밖에 없던 결과로 추측된다.
다만 선거구 전역에 후보를 출마시킨 효과가 아주 미미했던 것은 아닌데, 당시 지역구에서 334,715표를 받아 전체 정당 중 6위에 올랐으며 진보신당이나 창조한국당 같은 나름 인지도 있는 정당들과도 10만 표 이상의 격차를 보였다.[6] 또한 수도권과 달리 남부지방의 일부 선거구에서는 정당득표율을 상회하는 득표력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담양군·곡성군·구례군의 양우석 후보자는 선거비 반액 보전선인 득표율 10%를 넘겼고 대구광역시 북구 을에서는 한나라당을 제외한 다른 모든 정당이 후보자를 내지 않은 덕에 통일당 박현진 후보가 군소정당 출마자로는 상당히 많은 11,053표를 얻어내기도 하였다.[7]
여담이지만 네팔에 통일교 세력이 세운 네팔 가정당이라는 정당이 있는데 여기서는 국회 의석을 획득한 당당한 원내정당이다. 주요정당은 아니고 2석정도를 보유한 군소정당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장관직을 배출했기는 했다. # 대만에는 우주평화통일가정당도 있는데 이장 2명이 전부인 원외 군소정당이다. 그래도 선거로 당선되긴 했다.
3. 해산 이후
제18대 총선에서 평화통일가정당 간판으로 출마한 인물들 대부분은 도로 일반 신도로 돌아갔지만 그 중 소수는 민주당계 정당에 합류하여 정치 커리어를 계속 쌓아 나가기도 했다. 예를 들어 대구 서구에 출마했던 오세광 후보는 기초의원으로 체급을 낮춰 제6~7대 재선 서구의원이 되어 구의회 부의장직을 수행했다. 용산구에 출마했던 김만호 후보는 4년 후 제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공천을 신청하기도 했고, 영등포 을에 출마했던 김용승 후보는 이후 민주당에서 활동하다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영등포구의원에 출마했다 낙선하기도 했었다.4. 여담
- 같은 선거에 출마했던 개신교 정당, 기독사랑실천당도 나란히 0석으로 전원 낙선했다.[8] 이들 이전에는 16대 대선에서 김길수 승려가 불교를 내세워서 호국당으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마찬가지로 깨끗히 낙선했다.
- 참고로 대한민국 종교정당의 최고 성적은 중앙불교위원회가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석을 얻은 것이 최고 성적이다. 민주화 이후에는 기독자유당이라는 개신교 정당이 20대 총선에서 비례득표율 2.63%를 얻은 것이 최고 성적. 개신교 정당도 이런데, 통일교 세력의 지원을 입은 정당에게 가능성이 있을 리 없었다.
- 현실적으로 군소정당에 불과하지만 출마자를 어마어마하게 등록한 정당으로, 21대 총선에서 국가혁명배당금당이 지역구 후보만 235명이나 등록해 이를 재현했다. 물론 이쪽도 전원 낙선.[9]
- 18대 총선 당시 강남구 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김원종 후보(래퍼 김디지)한테도 밀렸다고 알려졌는데 해당 선거구는 군소정당 및 무소속 후보가 5명이나 난입한 지역구라 이삭을 줍던 통일당 후보도 영 힘을 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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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3년에 창당하였으나, 창당 이래로 4년 동안 선거에 나오지 않아서 해산되었다.[2] 문선명의 3남 문현진이 곽정환의 딸과 혼사를 맺었다.[3] 축구팬들에게는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로 알려져 있다.[4] 이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종교 행복의 과학에서 창당한 행복실현당이 있다. 종교 정당이라는 것과 모든 지역구에 후보를 넣는다는 점에서 큰 유사성을 보인다. 그러나 여기는 성공이라도 했는지 기초자치단체 의석을 일부 보유 중이다.[5] 지금은 헌재의 위헌결정으로 인해 폐지되었지만 당시에는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이 2%에 못 미치면 정당등록이 취소되는 규정이 있었다.[6] 21대 총선에서 235개 선거구에 출마자를 냈던 국가혁명배당금당이 66.2%라는 높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지역구득표가 비례득표와 비슷한 20만 표 대에 머물렀다는 것을 감안하면 나름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7] 득표율은 13.08%로 득표수와 득표율에서 모두 당내 최고 기록을 올렸다. 당시 30세였던 박현진 후보가 당내 최연소 후보이고 인지도가 높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차마 사표를 만들 수 없었던 야권 지지층의 표가 결집한 효과였다고 볼 수 있겠다.[8] 다만 이 쪽은 비례대표 선거에서 443,775표나 득표하며 2.6%의 득표율을 올려 정당 등록 취소를 면했다.[9] 두 정당 모두 종교정당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평화통일가정당은 통일교 정당, 국가혁명배당금당은 하늘궁 계열 사이비 종교 정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