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06 12:54:37

표트르 1세(폴란드 여왕 키우기)

<colbgcolor=#ffcd30><colcolor=#000>
러시아 제국 초대 황제
표트르 1세
Пётръ I
출생 1672년 6월 9일
루스 차르국 모스크바
재위기간 루스 차르
1682년 5월 7일 ~ 1700년
전러시아의 황제
1700년 ~
서명
파일:표트르 1세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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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cd30><colcolor=#000> 가문 로마노프 가문
이름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로마노프
(Пётръ Алексѣ́евичъ Рома́новъ[1])
아버지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어머니 나탈리야 키릴로브나 나리시키나
형제자매 드미트리, 예브도키야, 마르파, 알렉세이, 소피야 알렉세예브나, 예카테리나, 마리야, 표도르 3세, 표도시아, 시메온, 이반 5세, 나탈리야
배우자 예브도키야 로푸히나 (1689년 결혼 / 1698년 이혼)
자녀 알렉세이 페트로비치 황태자, 안나 페트로브나[2],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 나탈리야 페트로브나[3]
종교 러시아 정교회
신체 203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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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작중 행적3. 기타

1. 개요

루스 차르국의 차르이자 후세에 표트르 대제라고 불리는 차르. 본작의 최종보스로 유력시되는 인물이다.

2. 작중 행적

아치칼레 원정 때 정훈에게 크림 경주를 제안한다. 정훈을 탐내 신하 제의를 하나 거절당하자 정훈이야말로 자신의 최후의 적이 될 것임을 직감하고, 정훈에게 복수하려는 일념에 불타는 야누시를 뒤에서 지원한다.
아들인 알렉세이가 마르타를 정부로 삼아 데리고 돌아오자 그녀를 원하는 모습을 보이며 아들을 핀란드 방면 전선에 보내게 된다. 이 전개에 많은 독자들이 황당해했지만 아들의 정부를 빼앗은 건 당연히 고오증이다.원래 잘 가다가 이상한 전개 나오면 대부분 고증이다 시아버지가 며느리와 사통하는 건 동서양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일어났지만 전근대 러시아에서는 스노하체스트보(Снохачество)라는 고유명사까지 생길 정도로 광범위하게 벌어진 것이 특징으로# 폐쇄된 작은 사회인 러시아 농촌 사회와 조혼, 가부장제, 젊은 남자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던 사회 횐경이 겹치는 과정에서 빚어진 악습이었다.
일반적으로 어린 신랑과 나이 든 신부가 혼인해 신부가 어린 신랑에게 매력을 못 느끼는 상황에서 시아버지가 상대적으로 넉넉한 경제력으로 여러 가지 선물을 하면서 며느리를 유혹하는 방향으로 많이 일어났는데, 당대 러시아에서 젊은 신랑은 돈을 벌기 위해 신부를 고향에 두고 도시로 떠나거나 군대에 징집되어 십수 년을 복무하는 일이 흔하게 벌어져 신랑 없이 남겨진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유혹과 폭력에 시달리게 되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에 저항하려 해도 저항하면 러시아 가정환경 특유의 폭력에 시달리고[4] 시어머니는 길들여진 방관자 역할을 맡고 주변에 말해도 작은 사회에서 뭉개지며 며느리가 돌아가려 해도 너무나도 광대한 러시아 농촌에서는 그것조차 쉽지 않다.
그렇다고 러시아 전체에서 통용되는 풍습은 아니라서 도시에서는 일어나지 않았고 농촌 중에서도 아들이 돈 벌러 도시에 가는 게 필수인 가난한 지역에서 주로 벌어졌고, 시어머니가 질투로 며느리를 죽이거나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죽이는 등의 존속살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빈번하였다. 정교회에서도 가정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반대하였고. 한편 자기 아내와 아버지가 사통하는 꼴을 겪은 남자가 자기 며느리에게 같은 짓을 반복해 벌이기도 했다. 스노하체스트보가 언제부터 벌어졌는지는 여러 의견이 있는데, 중세 시절부터 있었다는 말도 있는가 하면 표트르 1세 때 대규모 징집으로 아내를 두고 고향을 떠나는 젊은이가 대규모로 생성되며 벌어졌다는 설도 있다. 표트르 1세 때부터 성행했다는 설을 따른다면 작중 표트르는 스스로 나서서 스노하체스트보의 전통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3. 기타

본작에서 표트르 1세의 여러 추태가 고오증으로 자세히 묘사되면서 독자들에게 나쁜 의미로 재평가를 많이 받았다. 작중에서 보이는 여러 문제적인 행동과 주인공이 폴란드-리투아니아라는 점을 들어 원 역사와 달리 배드엔딩을 맞이할 거라는 추측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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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19년 이후의 맞춤법으로는 Пётр Алексе́евич Романов.[2] 표트르 3세의 어머니.[3] 원래는 14명이나 되는 자녀를 뒀으나 위의 4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아기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나마 위의 4명에 포함된 막내딸 나탈리야 페트로브나 역시 6살의 어린 나이로 죽었다.[4] 러시아 가정의 가정폭력은 21세기에도 안 고쳐진 고질적인 악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