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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케언 제도 집단 성폭행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상세3. 여담

1. 개요

2004 Pitcairn Islands sexual assault trial
Pitcairn sexual assault trial-2004

핏케언 제도에서 2000년부터 발생한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사건. 섬의 도주(島主, Mayor)를 비롯한 남자 7명[1]이 확인된 것으로만 40년 동안[2] 섬의 모든 여성들(성인 여성 15명, 여자 어린이 10명)을 미성년자 성폭행강제추행 등으로 마음대로 유린해 왔다. 당연히 이는 범죄였지만 닫힌 사회답게 묵인되다가 어느 경관[3]에게 발각되어 언론을 통해 널리 퍼졌고 결국 본국의 지시로 섬 인구와 맞먹는 수의 경찰, 사법관, 기자들이 섬으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섬 사람들의 반응이 예상 밖이어서 사건이 더 일파만파로 퍼졌다. 이런 행위들이 없었다고 부인하지는 않았는데 남자들은 '이것은 섬 생활에서 어쩔 수 없는 적응이다. 외부 사람들이 이래라저래라 관여할 수 없는 일이다. 과민반응하지 마라'고 주장하고 여자들은 대개 남자들을 옹호하면서 '나는 그때 13살이었지만 마치 20살처럼 성숙해 있었다'고 말했다.

2. 상세

사실 이 재판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여러 가지 배경이 있었다.
  • 핏케언 제도 자체가 바운티호 선상반란 사건으로 성립된 사회인 데다 외부 노출이 늘어나니 19세기 말에는 상당수 주민들이 인근 노퍽 섬으로 이주해 버려서 인구가 더 줄어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외부 인구 유입에 상당히 반발이 강했다. 이들을 성범죄자로 기소한 것은 영국 법정인데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이미 오래전에 영국의 지원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 왔기 때문에 섬은 영국이나 영연방 소속이 아니며 영국 법의 적용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도 주장했다.
  • 이들은 미성년자와 관계를 가진 것을 폴리네시아적 관습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폴리네시아에서는 12세 이상의 여성은 성인으로 간주되었다.
    • 반론하자면 영국인들이 정착할 당시에는 이미 유령마을이 된 뒤였다.
    • 영국미성년자 의제강간 규정이 16세였는데 이것이 폴리네시아 주민들에게 적절하게 공표됐는지 등의 논란이 있었다. 물론 의제강간을 제외하더라도 이 사건의 주범들이 강간을 저지른 것은 분명했지만 의제강간을 제외하면 어디까지 강간이고 어디까지 합의된 성행위인지 구분이 모호했다.
  • 독립된 지역이 아니라 명백한 영국 영토라는 걸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었으므로 영국 정부에 요청하면 이민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완전히 면피를 할 수는 없었다. 다만 지배 계급에 속한 남자들조차 장기간 격리 상태였기 때문에 정상적인 가치관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 참작됐을 뿐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영국 추밀원은 핏케언 제도가 영국령인 것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 이 섬은 영국의 해외 영토라서 이들에 대한 재판은 영국 법원에 의해서 이뤄져야 했다. 그런데 총인구 47명의 섬에는 사법부는커녕 상주 행정 인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니 이들에 대한 재판은 일반적인 경우라면 영국 본토에서 이뤄져야 했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해당 용의자들이 섬의 성인 남성의 거의 전부였기 때문에 이들이 모두 본토로 가 버리면 섬의 경제 활동이 붕괴될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영국 본토의 사법 인원들이 이들만 상대하겠다고 수만 킬로미터를 날아와서 수년간[4] 재판을 진행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면 영국 정부가 같은 영연방이지만 별개의 독립국인 뉴질랜드의 사법부 인원들을 임명해서 이들이 섬으로 찾아가 영국 형법을 적용하여 재판을 진행하는 전세계 사법 역사상 전무후무한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5]
  • 기소된 이들 외에는 섬에 일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 기소를 섬에 대한 침략 행위라고까지 주장했다. 이 주장은 해당 지역의 여성들 위주로 나왔는데 애초에 인구 구성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용의자들은 대부분의 피해자들의 인척이었다. 검찰은 '섬에 만연한 권력의 위협과 강요된 침묵 때문에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구가 극히 적고 외부에서 유입되는 인구도 거의 없는 특수한 환경에서 계속해서 후손을 남기려면 가임기 여성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대한 많이 출산해야 한다는 것이 섬 사람들의 주장이었지만 여기에도 성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과 자기결정권 부여 이후 설득이라는 최소한의 납득 가능한 절차가 필요했음에도 무시한 것은 용서받을 수 없었다.

결국 재판 끝에 2004년 10월 24일 한 명을 제외한 피고인 모두가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형을 선고받아 본토의 교도소로 직행함은 물론 성폭력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특별 교육을 받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영국 정부의 지시에 의해 전기, 도로, 전화, 상주 경찰서, 공립 학교가 설치되어 본국과 교류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 영국의 어떤 의원은 "이런 기회에 섬이란 섬은 다 없애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영국 본토도 섬이긴 한데 여기서 말하는 것은 본토를 제외한 섬들, 그것도 현존하는 식민지라고 불리는 속령들을 다 없애자는 것으로, 전부 독립시키거나 가까운 다른 국가에 반환 또는 양도하자거나 남겨둔 채로 인구를 싹 다 이주시키자는 등의 주장으로 보인다. 이 발언의 의도는 이런 사건을 막기 위해 닫힌 사회가 될 여지가 높은 섬을 없애자는 것인데 외부에서의 개입 등으로 해결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배제했다고 까였지만 그냥 자기들이 싸질러 놓은 흔적인 식민지들을 포기하기 싫어서 핑계 대는 거라고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다만 핏케언 제도는 발견 당시 무인도였기 때문에 해당 사항이 없다.

3. 여담

극도로 고립되고 폐쇄적인 섬이라는 닫힌 사회에서 벌어지는 막장 상황의 한 사례라고 하겠다. 이후 세계 각국은 이런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각지의 꾸준한 교류를 추진 중에 있다.

얼마 후 영국 본토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터졌다.


[1] 이 섬의 총 인구가 47명이었고 그 중 남성은 22명이었다. 따라서 남자 어린이와 노인층, 일부 양심 있던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남성이 가담한 것이다.[2] 실제로는 얼마나 오랜 기간에 걸쳐 이뤄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조사 결과 드러난 것만 40년이다.[3] 순회경찰로서 연수를 받고 있었다.[4] 이 사건은 1999년에 알려졌고 최종 판결은 2004년에 내려졌다. 적어도 4년이 걸렸다.[5] 과거 대영제국 산하에 있었던 영토들 중 오세아니아에 속하는 많은 지역들은 호주와 뉴질랜드가 각각 자치령(dominion)이 된 후 이 두 나라의 관할로 넘긴 경우가 많은데 핏케언 제도는 영국이 직접 담당하는 식민지(현 영국 해외 영토)로 남겨 놓았다. 현재는 다른 오세아니아의 다른 영국령 지역들이 죄다 독립해 버려서 남은 곳은 이곳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