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mada Pistol 浜田式自動拳銃 하마다식 자동권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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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다 1식 권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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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다 2식 권총 | |||
<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종류 | <colbgcolor=#ffffff,#121212><colcolor=#000,#fff>자동권총 | ||
원산지 | [[일본 제국| ]][[틀:국기| ]][[틀:국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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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역사 | <colbgcolor=#ffffff,#121212><colcolor=#000,#fff>1941년~1944년 | ||
개발 | 하마다 분지 | ||
개발년도 | 1941년[A] 1942년[B] | ||
생산 | 하마다 총포상점 | ||
생산년도 | 1941년,[A] 1942년[B]~1944년[5] | ||
생산수 | 약 4,500~5,000정[A] 1,500정[B] | ||
사용국 | [[일본 제국| ]][[틀:국기| ]][[틀:국기| ]] | ||
사용된 전쟁 | 중일전쟁 제2차 세계 대전 | ||
기종 | |||
원형 | FN M1910 | ||
파생형 | 1식 2식 | ||
세부사항 | |||
탄약 | 7.65×17 mm SR[A] 8×22mm 남부[B] | ||
급탄 | 9발들이 박스탄창[A] 6발들이 박스탄창[B] | ||
작동방식 | 공이 직동식 블로우백[A] 쇼트 리코일[B] | ||
총열길이 | 90mm[A][B] | ||
전장 | 165mm[A] 170mm[B] | ||
전고 | 121mm[B] | ||
탄속 | 300m/s[A]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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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Forgotten Weapons의 하마다 1식(좌) / 2식(우) 리뷰 영상 |
2. 상세
일본군은 장교에게 별도의 권총을 보급품으로 지급하지 않았는데, 때문에 장교들은 사비를 들여 자신의 권총을 장만해야 했다. 우수한 성능의 외국제 권총인 M1903 포켓 해머리스, FN M1910 등은 고가였기 때문에 자금 사정이 괜찮은 장교들이 휴대한 반면, 가난한 장교들은 94식 권총 같은 자국산 폐급 권총으로 무장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던 1941년에 미국을 상대로 진주만 공습을 벌이면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으로의 외국산 권총 수입이 일절 중단됨에 따라 자국산 권총에 대한 수요가 폭증했다.하마다 총포상점은 본래 1895년에 설립되어 스포츠용 총기를 커스텀 제작하던 총포업체였으나, 전쟁으로 모든 군수시설이 국유화되자 하마다 총포상점의 2대 사장이었던 하마다 분지는 사냥용 총기 제작을 중단하고 군대를 위한 무기를 생산했다. 자국산 남부 권총은 일본군 내에서 신뢰성이나 가격 면에서 혹평을 받았기에 이를 대체하기 위한 권총을 개발했는데, 성능이 검증된 외국산 FN M1910을 참고해 제작했다.[20] 총 5가지 프로토타입이 군부에 의해 테스트되었으며, 군부의 승인을 받아 1식이라는 제식 명칭을 부여받았다. 1식 권총은 1941년부터 1944년까지 4,500~5,000정이 생산되었으며, 대부분의 물량은 중일전쟁에서 소모되었고 일부 수량은 태평양 전선으로 보내졌다. 태평양 전선에서 사용된 하마다 권총의 일부는 미군이 노획하여 미국 총기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1식 권총의 생산이 시작되어 본격화되려고 할 때 일본 군부는 .32 ACP가 아니라 일본군 제식 권총탄인 8×22 mm SR 남부 탄을 사용할 수 있게 바꿔 달라는 요청을 해 왔으며, 하마다는 그 요청에 부응하여 1942년에 2식 권총을 개발했다. 하마다는 2식 프로토타입을 군부에 제출했으나 군부는 총알 한 발 사격해 보지 않은 채 반려했는데, 국영 조병창이 아닌 민간 사업체가 개발한 총기를 채택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2식 프로토타입 채택을 거부한 야토 켄지 소령은 총기 설계에 대한 군부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장탄수를 기존 8발에서 2발을 줄이고 제작 시간을 늘리는 개악을 요구했고, 하마다는 별 수 없이 이러한 변경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1943년에 채택되었다. 하마다는 이미 잘 돌아가고 있는 1식 권총의 생산 라인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노토베에 있던 폐쇄된 직물 공장을 매입하여 2식 권총을 생산하였으며, 마감 처리는 국영 조병창인 토리마츠 공장에서 진행되었다. 약 1,500정의 2식 권총이 생산되었으며 토리마츠 공장에서도 2,500개의 2식 권총 부품을 생산하였으나 현재 남아 있는 17정의 2식 권총들은 마감 처리가 되어 있지 않은 미완성 상태인데, 완성본은 모조리 전선에서 소모되었다는 설, 해상 운송 중 침몰과 함께 소실되었다는 설, 토리마츠 공장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가 폭격으로 모조리 날려 먹었다는 설 등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연합국의 공습으로 하마다 권총에 대한 기록이 소실되었으나, 하마다 분지가 1980년대까지 생존해 있던 덕분에 그의 회고에 기반한 하마다 권총에 대한 정보는 꽤나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3. 매체
- 하마다 1식 권총
4. 출처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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