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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하이파 חֵיפָה حَيْفَا Haifa | |||||
하이파 시내 전경 | |||||
<colbgcolor=#0038B8> 국가 | 이스라엘 | ||||
관구 | 하이파 관구 | ||||
면적 | 63.666km2 | ||||
인구 | 282,832명[1] | ||||
시간대 | UTC+02:00(서머타임 적용) | ||||
링크 | 공식 홈페이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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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이파(히브리어: חיפה, 아랍어: حيفا Ḥayfā)는 이스라엘 북서부에 위치하고 지중해에 접한 도시이다. 십자군 시대의 야파(현재의 텔아비브)와는 다른 곳으로, 이스라엘 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이스라엘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다. 이스라엘의 다른 도시에서 아랍인들이 대놓고 소외받는 것과 다르게 하이파는 유대인들과 아랍계 기독교인, 무슬림들이 평화롭게 사는 모범적인 사회를 이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근대 이전에는 중요한 도시가 아니었으나, 20세기 초 영국에서 BP plc가 페르시아에서 채굴한 원유를 수송할 파이프관을 오늘날 이라크의 모술을 거쳐 지중해에 인접한 하이파에 설치한 것을 계기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 송유관 외에도 IT 기업 인텔 산하의 하이파 연구소가 인지도를 높여주고 있다. 이스라엘 최대 방위산업체 중 하나인 엘빗 시스템즈와 라파엘이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방산으로도 유명하다.
2. 지리
텔아비브의 북쪽에 있는, 이스라엘 본토에서 3위의 대도시다. 카르멜 산의 등성이에 위치한다. 이스라엘 국내의 항만들 가운데 가장 큰 하이파 항이 자리잡고 있다. 북위 32° 49′ 동경 34° 59′ 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구는 약 26만 5000명, 근교를 포함하면 100만명 정도이고 도시 면적은 63.67제곱킬로미터이다. 하이파 시청의 웹사이트는 히브리어와 영어와 아랍어로 쓰여져 있다.
3. 역사
3.1. 중세 이전
기원전 14세기의 청동기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성경에서는 카르멜(갈멜) 산과 키숀 강이 언급된다. 고대에는 그냥 조그만 어촌이었다. 중세에는 인접한 아크레 항구가 야파와 함께 십자군의 해상 보급 기지가 되면서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졌고 십자군이 요새를 세웠으나 살라딘에 의해 파괴되었다. 다시 여차저차 십자군이 이 지역을 장악하고 프랑스의 루이 9세가 요새를 다시 세웠으며 13세기에는 카르멜 산에 가톨릭 수도원이 세워졌으나, 맘루크 왕조의 바이바르스가 요새를 다시 한 번 파괴하고 수도원을 모스크로 바꾸어버렸다.3.2. 근대
1765년 세워진 하이파 알 자디드와 기존 도시인 알 아티카
18-19세기 하이파 유적
오늘날 하이파의 기원이 되는 마을은 1765년 오스만 제국 시절 아크레 지방과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던 아랍인 태수 자히르 알 우마르가 버려진 십자군 요새 근처에 사람들을 정착시키면서 시작되었다. 원래는 인구 3천명 정도의 소도시(1859년 영국의 인구 조사 결과)였던 하이파가 아크레 같은 전통적인 항구 도시들을 밀어내고 대도시로 성장한 계기는 바로 석유 파이프관이다.
19세기 말부터 내연 기관의 발달로 인해 석유의 수요와 전략적 중요성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영국은 따로 석유가 생산되는 식민지가 없어서 애간장을 태우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영국인 사업가 녹스 다시가 20세기 초 페르시아의 카자르 왕조로부터 석유를 60년 동안 무상으로 채굴할 권리를 구입한 후에 유정을 발굴, 개발하자, 영국은 이게 왠 횡재냐 싶어서 즉시 페르시아에서부터 지중해로 연결되는 파이프 라인을 설치했다. 바로 이때, 지중해로 연결되는 송유관 설치 지점으로 당시에는 조그만 어촌에 불과했던 하이파가 선택된 것이다. 19세기 중반에 당시 작은 마을이었던 하이파에 정착한 독일인 기독교 근본주의 공동체 하나가 증기 기관을 이용한 발전소와 공장 몇 개를 지어놓았기 때문에 이미 기반 시설이 잡혀있었다.
3.3. 현대
영국령 팔레스타인을 거쳐 급성장한 하이파 시는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됨과 동시에 아랍 주민들이 대거 축출 혹은 학살된 후, 이스라엘 영토로 편입되었다. 현재 하이파는 이스라엘 최대 항구이고, 바하이교 성지이자 휴양지로 유명하다.4. 기후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써, 여름에 화재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주민 6만명이 대피하는 화재사고도 발생했을 정도. 관련기사 겨울에 가끔씩 눈이 오기도 한다. 우기는 10월부터 4월까지이다.5. 교육
초중고등학교는 이스라엘 본토의 다른 도시들과 다를 바가 없다. 고등교육기관은 이스라엘 기술원과 하이파 대학교가 있다. 이스라엘 해군의 사관생도들은 하이파대 명의로 학사 학위를 받고 있다.이스라엘 기술원은 매우 우수한 학력을 갖춘[2] 한국인의 관점에서 유학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이파 대학교는 히브리어, 도시계획, 건축공학, 전기공학, 전자공학, 정보기술 관련으로 유학을 고려할 만하다. 그러나 졸업 이후 좋은 직장에 취직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3]
6. 교통과 관광
하이파 시민들의 대중교통은 도시철도와 강삭철도, 케이블카, 시외버스와 시내버스, BRT(Metronit)에 의존하고 있다. 이스라엘철도공사(רכבת ישראל בע"מ)의 광역철도가 하이파 관구의 도시철도 기능을 대행하고 있다. 하이파 시내의 지하철은 우리가 생각하는 수도권 전철이 아니라 매우 높은 언덕 위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서 하이파 시청이 프랑스 기업에 발주해 건설한 강삭철도이며, 1950년대에 매우 활발하게 교류한 프랑스-이스라엘 동맹외교를 기념하는 산물이다.[4] 그러나 길이가 짧고, 지하철을 운행하는 철도노선의 연장계획이 번번이 무산된 관계로 지하철의 이용객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케이블카는 평지 동네와 산지 동네를 연결해 주는 교통수단이다.오스만 제국 시절에 하이파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세상을 떠난 초대 교주를 기리는 뜻으로 2001년에 오픈한 바하이교 공원을 이스라엘 정부에서 적극 밀어주고 있으며,[5]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방문이 가능하다. 미국으로 망명한 이란인 건축가가 페르시아의 전통적인 정원 양식을 반영하여 설계했다고 한다.
하이파 시 자체는 실질적으로 역사가 길지 않은 편이고(인접한 아크레, 나츠라트, 티베리아스 등의 도시와 비교해보면 초라해보일 때가 많다) 대신에 해변에서 수영이나 선탠을 즐긴다던지 이스라엘 북부의 아크레를 들리는 중간 기착점 역할을 한다. 테러 위협을 거의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도시로 아랍인들에 대한 차별이나 종교에 따른 차별이 별로 없는 도시이므로 보안 검사도 덜 빡빡한 편. 대신에 숙박비나 물가가 텔아비브에 비해 그렇게 많이 저렴한 것도 아니고 예루살렘만큼 볼 것이 많은 도시도 아니므로 관광객 입장에서는 눈이 덜 가는 편이다.
7. 여담
이스라엘의 최대 항구 중 하나인 하이파 항구는 인도의 재벌 아다니 그룹의 소유이다.[1] 2021년 기준.[2] 이스라엘 주요 우수 대학교는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교와 베찰렐 미술원, 텔아비브의 바르일란 대학교와 라이히만 대학교와 텔아비브 대학교, 르호봇의 바이츠만 과학원, 하이파의 이스라엘 기술원과 하이파 대학교, 베르셰바의 벤구리온 대학교와 아리엘의 아리엘 대학교 정도이다.[3] 이스라엘 정부의 노동정책은 유대인과 소수민족(베두인, 드루즈인, 체르케스인)의 대량고용을 강제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본토의 기업들(국유기업, 민영재벌, 협동조합, 주식회사, 유한회사, 벤처기업 모두 포함)은 외국인을 잘 안 뽑는다. 뽑는다고 해도 대부분 이스라엘 기업의 해외지사나 이스라엘 주재 다국적기업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어야 하는 등 어느 정도의 연고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스라엘 국내의 대학교를 졸업한 외국인 유학생들은 출신 국가로 돌아가 구직하거나 호주와 싱가포르 및 북아메리카와 서유럽으로 건너가서 해외취업을 고려해야 한다.[4] 실제로 당시 이스라엘 공군은 프랑스제 미라주 III나 미스테르 IV를 위시한 전투기들을 앞세워 아랍 연맹 회원국들과 맞서 싸웠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핵개발도 프랑스의 핵개발과 함께 양국간의 상호협력으로 추진했다고 전해진다.[5] 이스라엘 국내에는 바하이교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드루즈나 알라위같은 이슬람 소수파 인구가 꽤 되고 이스라엘군에도 적극 복무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달래주는 차원에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바하이교 공원을 밀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