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14 21:18:45

조르즈 알바르스

호르헤 알바레스에서 넘어옴
Jorge Álvares
(? ~ 1521. 7. 8)

1. 개요

1. 개요

포르투갈의 탐험가.[1] 홍콩에 도착한 최초의 유럽이다.

1513년 3월에 미얀마 내륙 페구에서 말레이 반도 말라카로 항해하는 함대의 선장인 후이 드브리투 파탈링의 항해에 따라갔으며, 1513년에는 중국 남부의 광둥성에 도착해 주강 삼각주 하구의 린틴 섬에 착륙했다.

1513년 그의 함대가 현재 홍콩 구룡반도 북부 지역인 신계지 튄문(屯門, Tuen Mun)에 상륙해 이 지역을 활보하고 다녔다. 당시 이 지역은 광동성 신안현에 속해 있었는데, 광저우 총독은 정체불명의 코쟁이 해적 떼(...)가 상륙해 행패를 부린단 보고를 받고는 바로 관군을 보내 탐험대 일부를 생포해 관아에 억류했다. 그때 명나라에서 최초로 조총을 접하고 도입하게 되며 불랑기포 역시 들어오게 된다. 당시 왜구 대응이 급했던 명은 포르투갈인이 가져온 화약무기들을 곧바로 도입, 실전화해서 대 왜구 토벌전에 잘 써먹었고 척계광은 조총병을 장창병 및 궁수 호위 하에 운영하는 절강병법을 고안하며 이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파병된 남병도 잘 써먹는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건 명나라는 포르투갈이 그간 상대한 아프리카 국가들이나 아라비아 반도 부족국가들, 인도 남부의 캘리컷이나 말레이 반도 말라카 세력 혹은 이웃 스페인이 상대한 아메리카 대륙의 아메리카 원주민들과는 달리 콘키스타도르 몇 명이 대포 들고 깔짝인다고 무쌍을 찍을 허접한 나라가 아니었고, 오히려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등 유럽보다 앞서 있던 나라였기 때문이다. 스페인이야 북아메리카에서 부족 단위로 흩어져 문명이 비교적 뒤떨어져 있던 플로리다 세미놀 족, 뉴멕시코 아파치 및 푸에블로 족, 멕시코 북부와 텍사스에 걸쳐 살던 치치멕 족, 멕시코 중남부의 틀락스칼라 족이나 이들보단 앞선 나라였지만 화약이나 바퀴, 말 등이 없어 한계가 있던 아즈텍, 그리고 아즈텍처럼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국이긴 했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화약무기나 바퀴 따위 없던 잉카남아메리카 선주민들을 콘키스타도르 몇 명이 무쌍 찍듯 단숨에 정복했고 포르투갈 역시 마찬가지로 콘키스타도르 몇 명이 앞선 무기로 대군이 버티던 말라카를 쉽게 정복하고, 스리랑카인도 남단 캘리컷, 아프리카 서해안이나 모잠비크 등도 아주아주 쉽게 정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명나라는 강력한 천자의 조정이 베이징에 버티고 있고, 삼안총이나 화창 등 총의 원조격인 개인화기들이나 화포 등 화약무기도 원래 중국이 원조인지라 화약으로 무장한 대군이 버텨서 국력 차이 때문에 콘키스타도르 몇명이 대포 들고 얼쩡거려 될 일이 절대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협상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방법을 택했고 그 결과 명나라 조정에 세금을 뇌물 대신 내는 조건으로 명 조정이 마카오 조차를 허가해줬으며, 이 계약관계는 이후 만주족청나라가 들어서도 계속된다.

1513년과 1514년 사이에 구룡반도 북부 툰문에서 명나라 조정과 무역에 관한 합의를 했고 또한 마카오에 도달했으며, 이 때 도달한 마카오는 그가 죽은 지 32년 후인 1553년에 무역항을 설치하고 1557년에 정식으로 무역권을 얻는다. 당초 알바레스는 튄문을 요구하려다 막상 탐사 결과 대부분 땅이 못 쓰는 늪지대인 관계로 이를 포기했고 대신 바다 건너 개활지가 꽤 있는 섬을 하나 발견하고는 이를 아마묘에서 이름을 따온 마카오라 불렀는데 현재 마카오의 마카오 반도가 그 곳이다. 당시엔 섬이었으나 주강의 토사 퇴적 후 현재는 주하이와 접하는 부분이 매립되어 반도화되었다.[2]

어찌 됐든 알바레스 함대가 튄문 영유를 포기하고 마카오로 간 뒤 홍콩은 한동안 계속 객가인 어부들이나 푸젠 성 출신 해적들이나 오가는 곳이 되다가 1841년 아편전쟁으로 영국이 청나라를 크게 이기자 영국 왕령식민지로 할양되어 역사에 제대로 전면등장한다.

이로 인해 그는 마카오에 도달한 최초의 포르투갈인으로 알려지게 되며, 1517년에 포르투갈 이주민이 중국인들과 전투를 했다고 알려졌고 알바레스가 이 전투에 참가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마카오를 처음 발견하고 명나라와 무역을 시작한 사람답게,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 세나도 광장(Largo Do Senado)[3] 근처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마카오 시내인 마카오 반도에도 그의 동상이 있다.


[1] 포르투갈어 표기법에 맞는 올바른 표기는 조르즈 알바르스이다.[2] 이 토사 퇴적은 고대부터 주강을 따라 대륙의 모래들이 퇴적된 건데, 현재는 중국 때문에 더 가속화되었다. 그래서 타이파-콜로안 간 간척지인 코타이 지구를 개발한 후 항만시설을 수심이 깊은 타이파 섬으로 옮긴다. 이웃 홍콩도 토사 퇴적 문제로 빅토리아항에 대형 선박 입항이 불가능해 1970년대 항만을 구룡반도 북부 콰이충으로 옮겼다.[3] 마카오 시내의 동명의 광장과는 다른 곳인데 후자가 포르투갈의 원조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