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3 01:32:44

호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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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호주란?3. 역사4. 병폐5. 논란 및 쟁점
5.1. 유교적 입장에서의 호주제
6. 호주제 폐지의 의의7.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8. 관련 문서

1. 개요

호주제()란 말 그대로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의 관계를 등록하는 제도였다. 호주는 호적의 기준이 되며, 호적의 소재지 (본적)에 따라 기재되었다. 민법은 호주와 가족의 개념을 ‘일가(一家)의 계통(系統)을 승계(承繼)한 자’ ‘호주와 같은 호적인 자’로 규정해 호주제를 명문화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가족을 대표하는 남성 가장이 재산의 처분이나 가족의 결혼 등에 대해 우월한 권리를 행사하는 제도였다.

헌법재판소의 2005년 2월 3일부로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2005년 3월 2일부로 민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참여정부 집권 마지막 해인 2008년 1월 1일부터 폐지되었다. 예전 호주제에서는 호주가 기준이 되어서 호주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을 기록하게 되어있었지만 누군가가 중심이 되어 그 중심으로 다른 사람들이 종속되는 제도 자체가 없어져버린 것.[1]

다만 가족관계를 통해 자손에게 부여되는 대한민국 국적 특성상 가족관계를 명확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가족관계는 여전히 기록되기는 하지만 호주제처럼 물리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단지 데이터 형식으로 전산망에 입력만 되어 있기 때문에 이 데이터를 보여주는 것이 신설된 가족관계등록부이다. 데이터를 보여주는 형태에 국한하는 만큼 그 개인을 중심으로 가족관계만 보여주게 된다. 결혼한 여성도 남편 호적에 들어가지 않고 남편의 인적사항이 본인의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된다.

재혼 가정의 자녀는 법원 허가를 받아 새아버지 성을 따를 수 있고, 비혼모의 자녀는 부모 협의에 의해 기존에 쓰고 있는 성과 본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게 되어 있는 부성강제주의는, 혼인신고 시 부부의 합의에 따라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도 있게 된다.[2]

2. 호주란?

쉽게 말하자면 한 가족의 주인이다.

한자로는 戶主. 주민등록등본이나 가족관계증명서 상에는 세대주(世帶主)로 표기된다. 한국의 민법상, 한 가(家)[3]를 거느리며 부양하는 일에 대한 권리와 의무가 있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2008년에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호주가 갖는 법적인 권리는 더 이상 없다.

2008년 이전에도, 일상에선 가장이란 말을 더 많이 쓰기 때문에 호적 관련 외에는 그렇게 자주 쓰이는 말이 아니었다. 하물며 법적으로 폐지된 이후에는 사용 빈도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비슷한 말로 당주가주가 있는데, 의미상으로는 호주 쪽이 그보다 더 포괄적이다. 참고로 이 말은 의미가 많이 변천했고, 이 과정에서 과거에 비해 범위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3. 역사

호주제 위키백과

이후 1975년, 1986년, 1988년 등 줄기차게 호주제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민법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폐기되었다. 2000년 들어 호주제 폐지는 우리 사회의 중요 이슈가 되었고, 2001년에는 법원을 통해 헌법재판소에 호주제 관련 위헌법률심판이 여러 건 제청되었다.

4. 병폐

  • 3년 전 이혼하고 얼마 전 재혼한 A씨는 아이의 호적을 옮기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친아버지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전남편의 성을 그대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새아버지와 성이 달라 학교에서 왕따가 됐다.[4]
  • 이혼 후 딸을 10년간 혼자 키운 B씨는 어느 날 등본을 떼어보니 모르는 남자가 호주로 되어 있었다. 사실인즉 전 남편이 죽어서 재혼에 의해 태어난 그의 어린 아들이 호주가 된 것이다.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어린애가 내 딸의 호주라니?! 기사
  • 부모 중 아버지만이 법정대리인이 될 수 있었다. 부부가 이혼을 하고 엄마가 자녀를 데리고 재혼한 경우도 마찬가지로, 설령 어머니가 친권양육권을 모두 가졌다 해도 친부의 동의가 없으면 자녀는 새아버지의 호적에 올라가지 못했다. 그 경우 성인이 되지 않은 한 보험, 은행, 여권 발급 등 생활에 꼭 필요한 것조차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고 그로 인해 불편과 불이익이 컸다.
  • 위와는 반대로, 남편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를 아내의 의견에 상관없이 자유로이 입적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건 또 이것대로, 무조건 남성의 가에 입적하게 되어있다보니 친부가 자녀를 인지하면 어머니와의 관계가 소멸되었다.
  • 여성이 이혼했다면, 친어머니라 해도 아이와의 법적 관계는 ‘동거인’일 뿐 친자관계가 기재되지 않았다. 법적으로 '어머니'로 기록되지 않았다. 혈연관계임을 인정받지 못했던 셈이다. 위에 나온 대로 법정대리인이 될 수 없으므로 부모로서의 권리를 그 어떤 것도 행사할 수 없었다.#
  • 호주 승계 순위는 호주의 아들손자미혼→미혼인 손녀배우자어머니며느리 순으로 돼 있어 딸만 있는 경우 사위처가에 입적해 외손자가 외가의 성과 본을 물려받지 않는 한 폐가가 됐다.
호주제는 상기의 가족 간의 종적(縱的) 관계, 남성우월적 호주 승계 순위 등을 강제하고 있어 여성계의 폐지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위에 쓰인 것 외에도 호주에게만 많은 재산이 상속되는 등 여성의 권리를 크게 해치는 제도였다. 여러 번의 법 개정을 통해 조금씩 세부사항이 사라져 갔지만, 호주제 자체가 이어지는 한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정에서부터 남아선호사상성차별대물림되는 일을 피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외에도 성본 변경 금지 원칙, 이혼 여성의 6개월 이내 재혼 금지 원칙(단, 6개월 이내라도 해산했거나 임신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될 경우 재혼 가능) 등도 그 불합리성이 받아들여져 호주제와 함께 폐지되었다. 전자의 바뀐 내용(성본변경의 허가, 인지된 자녀의 성본계속사용허가 제도 신설)에 관해서는 성본변경 문서 참조.

이런 병폐를 잘 묘사한 창작물로 2003년에 방영한 KBS 일일드라마 노란 손수건이 있다.

5. 논란 및 쟁점

일제의 구습[5]이고 성차별적이라며 여성 단체들은 철폐를 주장하였으나 유림들이 거세게 반대했다. 그런데 당시 한 토론방송에 나온 유림 노인이 "호주제가 없으면 한국 인구 상당수가 쌍놈"이라는 망언을 하는 바람에 역풍을 맞았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전부 다 쌍놈이 될 입장'인)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비웃음을 던졌고, 다른 나이 든 노인들도 '쌍놈 운운거리면 전직 대통령이나 기업인들도 다 쌍놈으로 멸시할 거냐'면서 욕을 하자 그 노인은 울부짖더니 그냥 나가버렸다. 사실 이전부터 호주제가 너무 가부장적인 제도인지라 손을 봐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었다.

거기에 호주제 자체가 불편한 제도였기 때문에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이야 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가 따로라서 세대구성원에 대한 파악과 거주민에 대한 파악을 각각 필요에 따라 서류를 선택하면 되지만, 당시에는 그냥 등본 하나로 퉁쳤기 때문에 등본에 반영되는 정보가 적어 불편했다. 또한 당시 이혼 및 재혼이 증가하는 추세였고 서서히 사회가 이를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는데, 법률상 신경써야 하는 항목이 굉장히 많았다. 뿐만 아니라, 재혼을 하면 입양을 한 걸로 취급되어 형제자매끼리 성이 다르거나 가족 구성원 전부 성이 달라 위화감을 조성하고, 이 때문에 재혼가정이라는 민감한 가정사가 원치 않게 아웃팅을 당해 부당한 차별을 받는 불상사가 자주 발생하였다. 주변의 놀림이나 따돌림으로 큰 상처를 받거나, 취업할 때는 면접관이 가정사를 들추어 불이익을 받거나 심지어 결혼마저 깨지는 등... 이 성씨 문제는 당시 입양·재혼가족이 등장하는 다큐멘터리의 단골 에피소드였을 정도다. 여러모로 시대와는 맞지 않는 법률이었기에 큰 반감 없이 폐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호주제 폐지는 종북'이라느니 하는 엉뚱한 이념 논쟁으로 이어졌고 정계에서도 찬반이 거세졌다. 유림에선 호주제 폐지는 종북이라고 버젓이 신문광고까지 실어가면서 반대했으며 보수단체를 표방하는 곳과 연루하여 종북이라며 시위도 벌였다.

폐지 직후에는 호주제 부활을 주장하는 이들이 간혹 있었지만, 이제는 농담으로도 잘 언급되지 않으며 극보수 언론들도 거론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잊혀져버렸다. 엄마 성 따르기[6] 허용, 성씨 변경이나 친양자제도 등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꽤 있어도, 호주제 자체의 부활을 요구하는 사람은 전무한 수준이다.

호주제를 폐지하자 가족관계서류가 대단히 간소화되었기 때문에 사회적 비용이 줄어드는 효과를 봤다. 물론 초기에는 가족관계서류 5종세트를 다 떼야 하는 줄 알고 논란이 많았는데, 오히려 호적원본 자체를 더 이상 작성하지 않고 가족관계 연결방법만 공시하는 것이라 사회적 비용이 압도적으로 감소하였다. 개인정보 문제가 이슈가 된 2020년대 들어, 다른 가족구성원의 정보까지 싸그리 노출되는 호적원본은 다시 도입되기 어려울 것이다. (참고로 이런 문제는 진영을 막론하고 누구나 공감하는 문제다) 지금 상황에서 호주제 부활을 한다는 것은, 서류 정리부터 여러 가지 사회적 비용 증가만 일으킬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호주제를 굳이 부활시켜서 호적원본을 또 만드는 뻘짓을 할 필요가 없고, 그저 내 부모가 누구냐 자식이 누구냐 정도 확인하는 절차로 충분히 가족관계 증명이 되는 것이 지금 시대의 세상이다. 이제는 돈을 다시 들여서 호주제를 부활시켜봤자 그 누구도 이득을 볼 구석이 없다.

진실한 가족관계 공시를 위한 것이 호주제의 본목적인데, 그 '진실한 가족관계 공시'에 있어 오히려 방해요소가 되는 것도 아이러니하게도 호주제였다. 호주제 때문에 호적에 이혼, 혼외자 등 '불명예스러운' 흔적을 제대로 남기지 않는 사람이 비일비재하였고 그 후손들이 상속 문제로 고통받다 법원을 찾느라 사회적 비용이 늘어만 갔다. 이러한 폐단이 호주제 폐지로 인해 상당히 완화된 것도, 호주제 폐지의 큰 성과, 아니 본디 이유이기도 하다. 내 몫의 땅을 찾기 위해 이미 진작에 돌아가신 조상님 상대로 친생자 소송을 거는 경험을 해보게 되면, 호주제야말로 불태워버리고 싶은 최악의 악폐습이라고 말 그대로 이를 박박 갈다가 치아가 다 닳아버릴 지경이 될 것이다(...). 호주제가 건재한 상황에서는 이런 작업 자체가 방해받기 마련이고, 친생자소송을 하게 되어도 그것을 기록하는 절차 자체가 가족관계등록부에 비해 압도적으로 까다롭고 힘들다.

5.1. 유교적 입장에서의 호주제

사실, 호주제에서 '남성만 호주가 될 수 있다'는 조항이 없었다면 호주제 폐지 여론이 그 정도까지 비등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호주제에서는 무조건 남성이 우선이었다. 아버지가 제일 먼저고, 그 다음은 아들들이며, 딸들은 그 다음이었다. 딸이 더 누나여도 무조건 남동생보다 밑에 이름이 온다. 그나마도 결혼을 하면 출가외인이라며 호적에서 빠진다. 딸밖에 없는 집의 장녀라도 결혼하면 남편이 처가 호적에 들어오는 입부혼인이 아닌 이상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다음, 맨 나중에서야 비로소 어머니의 차례가 되었다.(...) 게다가 남성만이 호주가 될 수 있으므로 편모가정, 조손가정의 경우 실질적인 가장인 어머니/할머니가 어린 아들/손자의 호적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할 정도다.

설령 가부장제가 심한 문화권이라서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본다 하더라도 집안에서 자녀들의 어머니는 아버지 다음가는 집안 어른으로 대접받는것이 보편적인 것을 감안하면 엄연히 윗사람인 부모가 자식 밑으로 들어오는 것은 말도 안 되는데, 호주제는 '여자는 더 어른이든, (자신의 어린 자식이니까 당연히)경제력 없는 남자를 자기 손으로 먹여살리든 무조건 남자보다 나중, 남자보다 아래임'을 규정하는 남성적 가부장제가 강한 제도였기에 평이 좋지 못했던 것이다. 대체로 호주제에 우호적인 보수주의자 중에서도 '어떻게 어머니가 자식 밑으로 들어가냐'고 화내는 사람이 있을 만큼. 그리고 이 정도로 성차별적인 제도였던 만큼, 이런 제도를 옹호하는 사람들 역시 매우 차별적이고 수구적인 데다 남성 우월주의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한나라당 최병국 의원이 "이혼한 여성들이 (호주제 폐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민족사에 대한 도전" 이라거나, "여자들이, 더더구나 이혼한 여자들이 불이익을 좀 받는다고 가계를 끊어야 하는가" 등의 망언을 하여 비난받았다.

최병국 의원의 발언을 자세히 뜯어보면, 호주제 폐지 주장의 논거중 아주 일부에 불과한 '이혼가정 문제' 만을 집요하게 물고늘어진 것 자체가 자신에게 유리한 판도를 만들기 위한 편 가르기 발언이었다. 호주제 폐지를 막으려는 입장에서 보면, 호주제 폐지론자들의 논거 중에 어지간한 보수주의자들조차 고개를 끄덕일 만한 부분이 많았다는 것. 예를 들어 "아들이 아직 어린아이라 경제력이 전혀 없고 어머니가 실질적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집에서 어머니가 아닌 아들에게 가장 지위를 준다는 게 말이 되나요?" 라고 물어보면 보수주의적 가족관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건 말이 안 되지" 라고 대답할 것이고, 골수 유교주의자들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들이 가장이 되는데 그럼 어머니가 아들보다 아랫사람이 되는 건가요?" 라고 물어보면 "그런 부모자식의 도리도 모르는 천하의 바닥쌍것이 어디있느냐"고 울부짖을 것이다. 따라서 호주제 폐지 문제를 '이혼 여성의 불이익, 불편함 문제'로 몰아버림으로써 이혼에 거부감을 가진 다수의 보수주의자들의 지지를 확보하려 했다는 것. 문제는 이 논리 자체가 "여자는 불이익을 받아도 된다. 특히 이혼한 여자는 더 그렇다" 운운하는, 구시대적이다못해 차별인권침해를 대놓고 정당화하는 거의 반사회적인 수준이었기에 프레임 짜기가 실패했다.

극보수주의 관점에서는 어머니가 아들의 밑으로 들어간다 하여 자식이 부모님을 아랫것 따위로 취급하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라고 말하기도 한다. 남녀의 문제 이전에 부모자식 간의 도리가 우선하는 게 지극히 정상이고, 현대의 관점으로 봐도 이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통적 관점으로 보나 현대적 관점으로 보나 모순덩어리 제도였던 셈.

물론 홀어머니 위의 집안 어른이 한 명도 없다면 집안의 최고 어른은 당연히 홀어머니다. 조선왕조에서도 왕실의 최고 어른은 일반적으로 왕의 어머니할머니였고, 이들이 수렴청정을 하거나 정사에 일부 개입하기도 했다. 다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왕이 성인이 되기 전의 나이에 즉위한 경우에 주로 해당하는 것이고, 그마저도 상왕이나 대원군이 있다면 전권이 그들에게 위임된다(사례는 얼마 없었지만)[7]. 물론 권한은 없다고는 해도 어머니이자 선왕의 부인, 그리고 할머니이자 선선대 왕의 부인이라는 집안 어른 겸 왕조의 큰 어른이라는 엄청난 권위가 있다 보니 왕이 제정신이라면 절대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광해군을 몰아낸 반정의 명분 중 하나로 대비인 인목왕후를 폐하고 인목왕후의 아들이자 광해군의 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인 폐모살제가 꼽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애초에 이건 권력이고 뭐고 이전에 엄연히 패륜이라서 유교 이념을 따른다는 조선에서 모든 선비의 으뜸인 왕이 절대 저질러서는 안 되는 짓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륜부부유별에 따라서 집안의 일은 여성이 전담한다는 원칙에 따라 내명부의 수장을 가장 높은 계급의 여성이 맡기도 했으므로 사실 왕비는 엄밀히 따지면 궁궐 관리를 담당할 권리도 있다. 물론 원칙적으로 모든 권력의 정점은 왕이며 태종과 숙종처럼 왕이 직접 내명부를 지휘한다해도 원칙상 문제는 없었으나, 당시 시대상으로 이는 상당히 쪼잔한 행위였다.

또한 불륜녀가 낳은 아들이 남자라는 이유로 정실부인이 낳은 딸을 제치고 호주가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유교 사회는 축첩을 허용하더라도 정실부인의 지위를 인정했기에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남아선호가 심했던 조선시대였다지만, 신사임당의 사례에서 보듯이 첩이 교양이 없는 천한 신분이면 문제가 되었다. 만약 남편이 어디서 순 날라리같은 여자와 놀다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곱게 키운 딸을 제치고 호주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걸 받아들일 정실 부인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이런 경우는 태어나자마자 정실부인이 입양하여 친아들처럼 키우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어쨌든 키운 정이 들어서 별 문제 없이 받아들이는 일도 많았지만, 이는 복불복이다. 첩의 아들이 인성이 나빠서 자기 자식을 괴롭힌다면 아무리 유교적인 교육을 받으며 살아온 어르신이라도 이를 부당하게 여길 것이다.

이 역시 아래 문단에 설명된 것처럼 호주제와 같은 전근대적 가족제도는 전근대적 시대배경에서 형성되어왔음을 생각하면 쉬운 문제이다. 간단히 말해, 합법적으로 축첩제가 인정되던 사회에서는 적서차별 역시 합법적으로 인정되었다. 즉, 첩이 낳은 자식은 기본적으로 호주와 같은 가장(가주)의 지위를 이어받을 수 없었고, 이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태어나자마자 정실 부인의 소생으로 입적시키는 등 명분을 만들 필요가 있었던 것.(물론 이런 명분을 만들 경우, 그 반대급부로 '명분상 자신의 어머니'인 정실 부인에 대한 사회적 의무 역시 당연히 발생한다.) 그런데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 들어서면서 축첩제와 같은 반인권적 제도가 폐지되어 혼외 관계는 단순히 (나름 법적으로 인정받는 첩이 아닌)'불륜'이나 '간통'에 불과하게 되었고, 동시에 적서차별과 같은 반인권적 제도 역시 폐지되어 혼외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도 (아이에게는 부모의 관계에 대한 책임이 없으므로) 혼인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와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여기서 죄 없는 아이에 대한 차별이 없어진 것은 좋은데, 전근대의 가족제도를 그대로 둔 상태로 혼인 관계에 의해 태어난 아이-혼외 관계에 의해 태어난 아이를 같은 위치에 배치해놓다 보니, 적자가 딸뿐이고 아들이라고는 오직 혼외자뿐일 경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혼인에 의해 탄생한 가정의 주인 자리를 해당 혼인과는 전혀 무관하게 태어난 존재가 낼름 차지해버린다는 아스트랄한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

6. 호주제 폐지의 의의

호주제 폐지는 가부장제가 상징하는 권위 및 악습 타파의 결과이자 여권의 진일보라는 평을 받고 있으나, 사실 호주제 폐지는 양성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시대적 변화이다. 남녀 모두 가부장제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맨박스 참고. 양성 간 진정한 공존을 위해서는 성별을 막론하고 피해자가 생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현대사회 들어 전통적 가족제도를 대체한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왔음은 물론 다문화가정, 미혼·비혼 가구, 한부모가정 등 가족 구성 역시도 다양하게 변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다원화되고 있는 가족의 현실상을 반영하여, 정상 가족과 비정상 가족의 구분 없이 가족을 대하는 모습이 평등해야 한다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혼이나 재혼등에 대한 사회적 금기가 약해지면서 기존의 가족이 해체-재조합되는 경우가 잦아진 현대에 호주제와 같은 고정적 가족 개념을 유지할 경우 피해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호주제 폐지가 가지는 의의에 대해 따지기 위해서는 이 제도가 기본적으로 전근대 농경사회의 대가족 개념을 기반으로 만든 제도라는 점 역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호주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조롱과 비판거리가 되었던 현상이 "남편/아버지가 사망하자 실질적으로 가족의 생활과 부양을 책임지는 어머니를 밀어내고 어린애, 심하면 응애응애 갓난아기인 아들이 호주가 된다" 는 것이었는데... 농경사회의 대가족 체제에서라면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기존의 가장이 죽으면 가족의 다른 남성 구성원들이 유가족에 대한 부양 책임까지 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 즉, 남편/아버지가 죽으면 사망자의 형이나 동생이 제수/형수와 조카들을 당연히 돌봐야 한다고 여겼다. 만약 안 하고 외면한다면? 천하의 개쌍놈이란 소리를 들으며 사회적으로 매장당했다.

현대적인 관점으로 본다면야 '남자만 가장이 될 수 있다' 자체가 심한 차별이지만, 어차피 그 옛날에는 남성에 비해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극히 어려웠으니 '기존의 가장이 죽으면 대가족의 다른 성인 남성이 가장으로서 책임을 이어받는다' 는 당대의 사회상 기준으로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제도였다. 과거에는 관례를 치른 이상 사회 진출이 가능했던 남성들에게 집안을 통솔할 권한을 맡기는 대신 그 만큼의 책임도 당연히 져야 했고, 호주제의 원래 의도는 그저 이걸 법으로 강제했을 뿐인 것이다. 늙은 부모를 봉양하는 것도 자식이 경제적으로 부모를 봉양해서 키워준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며, 과거에는 불효에 관한 형벌이 존재했던 만큼 이걸 법제화하여 반드시 지켜야 할 것으로 묶어둔 셈이다.[8]

물론 대한민국 건국 초기까지야 그런 구조나 사고방식이 어느 정도 존재는 했으니까 완전히는 아니라도 돌아는 갔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말 그대로 개족보 양산 시스템으로 전락했다. 대가족이라면 대부분 가족 구성원 내에 여러 명의 성인 남성이 있기 마련이다. 아직 미성년자더라도, 그래도 머리 좀 굵은 청소년 정도만 되면 과거 기준으로는 여성보다는 사회적 대외 활동을 하기가 훨씬 유리했다. 따라서 남자만 가장(호주)이 될 수 있다 하더라도 어린이나 아기가 호주가 되는 웃기는 상황은 잘 벌어지지 않았던 것. 하지만 부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핵가족이라면? 가족 내에 성인 남자가 단 한사람뿐인 경우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예전에야 형제가 먼저 죽으면 내 가족이 먹고 입을 걸 나눠서라도 형제의 가족까지 부양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여겼지만, 핵가족 시대에는 '형제나 친척을 챙기는 것도 좋지만, 일단 내 가정을 가장 우선으로' 여기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 결국 호주제 자체가 현대 기준은 커녕 근대 기준으로도 시대에 뒤떨어진 전근대적 관념을 기반으로 한 제도였는데, 현대에 이걸 운영하고 있으니 개판이 안될 수가 없다는 것. 위 내용을 보면 남자 호주가 될 수 있다는 규정만 없었어도 호주제 폐지 여론이 훨씬 약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그 주장처럼 호주의 기준을 1) 남성을 우선으로 하되 2) 성인미성년자보다 우선한다, 즉 남편이 죽었는데 자식들이 아직 어리면 어머니가 호주(가장)이 된다고 했으면 위와 같이 말 같지도 않은 상황은 훨씬 적게 벌어졌을 것이다. 물론 이런 제도라고 하여도 현대 기준으로는 충분히 남녀 차별적인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이긴 하지만, 적어도 실존했던 호주제보다는 그나마 불편이 덜 했을 것이다. 최소한 근대 수준은 되어야 현대에 적용이 가능하지, 근대 수준도 못 되는 전근대, 중세적 제도를 현대에 가져다 붙이니 모순과 폐단을 피할 수 없다는 것. 폐지요구가 최초 시작된 것이 무려 1956년이었다는 점에서 이 제도가 현대사회에 얼마나 맞지 않고 구시대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결국 꾸준한 요구 끝에 장장 50년이 흐른 뒤에야 그것도 입법이 아닌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겨우 폐지가 실현되었으니, 너무나 늦었던 셈이다.

또한, 대가족 개념에서 '출가외인' 개념이란 결혼을 통해 한 가족공동체를 떠나 다른 가족공동체로 들어간다는 개념에 가깝다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극단적인 예가 바로 형사취수제이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여성이 어떤 남성과 결혼한다는 것은 곧 그 남성의 '집안' 에 들어간다는 의미였기에 설령 남편이 죽더라도 그 여성은 남편쪽 집안(시가)의 구성원으로 여겨지기에 그 여성과 자식들 모두를 시가가 책임진다는 의미였던 것. 그런데 핵가족에서 부부 중 한쪽(이 경우는 남성)의 죽음은? 그건 그냥 그 가족의 해체다. 여성을 출가외인으로 여기거나 재혼을 금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유지될 수 있었던 근간에는 설령 부부가 사별하더라도 그 사람이 계속 포함되어 있을 가족은 남아있다는 전제가 있는 것인데, 부부중 일방이 사망하면 가족이 해체되고, 가족 해체 후 새로운 가족의 구성(재혼)도 자유로워진 시대에 전근대 씨족 개념을 기반으로 한 호주제를 운영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여기에 현대 들어 자유로워진 이혼 문제까지 더해지면 정말 답이 없다.

7.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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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 폐지에 있어서 이 역시 상당히 관련되어있는 주제다.

8. 관련 문서



[1] 2007년까지의 경우 그 집의 아내, 자녀가 사건에 연루되었다면 ○○○의 아내, 자녀 등으로 나왔다.[2] 호주제가 존재하던 시절에는, 남성이 부모 호적에서 말 그대로 파여서 아내(가장) 호적으로 들어오거나 1998년부터 아버지가 외국인일 경우에만 자녀들은 어머니 성씨를 따를 수 있었다.[3]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가족과는 다른, 관념적인 법률용어이다. 다만 호주를 제외한 가의 구성원들을 가족이라고 하였다.[4] 지금도 부성을 따르는 것이 기본이지만, 결혼 전에 부부간의 합의로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다. 또, 자녀들의 성을 바꿀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부모가 이혼하고 친권을 어머니가 가져가는 경우 어머니의 성으로 바꿀 수도 있게 변했다(협의에 따라 기존의 성을 유지할 수도 있긴 하다). 단, 형제자매 간에 같은 성을 써야한다는 전제가 있다. 바꾸더라도 모두 바꿔야한다. 개정 전에는 아버지가 외국인이거나 불명인 경우, 또는 남편이 아내 집안의 호적에 입적한 경우 이외에는 무조건 아버지 성을 따라야 했다. 현재는 정부에서 부성우선주의를 폐지하고 자녀의 성씨를 부부협의로 결정하는 법 개정을 추진중이다. 민주당의 장경태, 정춘숙 의원이 법을 발의하기도 했으며 위헌소송이 들어온 상황이다.[5] 법률상의 호주제가 메이지 민법의 이에 제도(家制度)에서 온 것이기 때문. 당장 상기한 법률관념상의 가(家)라는 것이 일본 것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형태다. 일제 때는 당연히 일본의 메이지민법을 썼고, 해방 후에도 1960년 한국민법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메이지민법을 구민법이라는 명칭하에 그대로 썼으며, 한국민법 자체도 구민법을 상당부분 가져와서 만들었다. 그 때 이에 제도도 호주제라는 이름 하에 한국에 들어온 것.[6] 다만 호주제 폐지 이전에도 남편의 처가 입적 등을 통한 데릴사위 등은 존재하고 있었기에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는 사람들도 많다.[7] 사례가 얼마 없을수밖에 없는것이, 왕자가 왕위를 물려받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전 왕이 죽은 이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왕자가 왕이 된 상태에서 왕자의 아버지가 살아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왕이라는 자리를 가장으로 바꿔놓고 봐도 마찬가지이다.) 예외가 있다면 전 왕이 생전에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난 경우, 또는 전 왕에게 왕위를 물려받을 자식이 없어 왕자가 아닌 가까운 친족에게 왕위를 물려받은 경우인데,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닌 한 왕자가 아직 미성년인 상태에서 생전양위를 하지는 않을 것이고, 또 어차피 왕의 친자가 아닌 친족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라면 역시 특별한 사정(예를 들어 가까운 왕족의 수가 너무 귀해져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등)이 있는 것이 아닌 한 굳이 미성년인 이를 선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부장제의 상속 시스템에서 상속이 발생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피상속자가 '자신이 물려받은 계통 내에서는 가장 윗세대 남성'이 되었다는 의미이므로 해당 계통 내에서 그보다 더 윗세대 남성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왕실이 아닌 일반 집안이면 더 큰 친족집단, 즉 상위 계통의 윗어른은 있을 수 있을 것이고, 나라 전체에서 가장 윗어른의 역할을 하는 왕실이지만 왕의 생부인 대원군이 살아있다면 그가 (명목상의 종통과는 별개로) 윗어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8] 실제로 1971년 개정되기 이전의 민법에서 호주는 가족에 대한 거소를 지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그 거소에 살고 있는 가족에 대해 부양의무를 지고 가족이 호주의 의사에 반한다면 부양의 의무가 없다는 규정이 있었다. 그리고 타가의 가족을 입적시킬 때 호주의 동의가 필요했고 호주 자가의 직계존속이나 비속을 입정하게 할 수 있었다.[9]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호주제 폐지 운동에 힘썼으나 결국 본인 살아생전에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