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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의 유일한 여성 화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2. 기록과 추론
그에 대한 기록은 약 20년 연하인 성현의 용재총화와 후대의 기록인 연려실기술 등에 남아있는데, 그 기록은 다음과 같다.안견(安堅), 최경(崔涇)이 이름을 가지런히 하였는데, 안견의 산수화와 최경의 인물화는 모두 신묘한 경지에 들었다. 요새 사람들이 안견의 그림을 금옥(金玉)처럼 사랑하여 보관하고 있다. 내가 승지가 되었을 때에 궁중에 감수된 〈청산백운도(靑山白雲圖)〉를 보았는데 참으로 훌륭한 보배였다. 안견은 항상 “평생의 정력(精力)이 여기에 있다.” 하였다. 최경도 또한 만년에 산수(山水)와 고목(古木)을 그렸으나 마땅히 안견에게는 양보하여야 한다. 그 밖에 홍천기(洪天起), 최저(崔渚), 안귀생(安貴生)의 무리가 산수화에 이름이 있으나 모두 용품(庸品)[1]이다. - <용재총화 제1권>
화사(畫史)[2] 홍천기(洪天起)는 여자인데, 그 얼굴이 당대 절색이었다. 마침 일을 저질러 사헌부에 나가 추국(推鞫)을 받을 때, 서달성(徐達城)[3]이 젊었을 적에 여러 연소한 패들과 같이 활를 쏘고 술을 마시다가 또한 잡혀 와 있었다. 서달성이 홍천기의 옆에 앉아서 눈을 떼지 않으니, 이때 상공(相公) 남지(南智)가 대사헌이었는데, 보다 못해 말하기를, “유생이 무슨 죄가 있느냐. 속히 놓아주어라.” 하였다. 서달성은 나와서 친구들에게 말하기를, “무슨 공사(公事)가 이처럼 빠르냐. 공사는 마땅히 범인의 말을 묻고 또 고소장을 받아서, 곡직(曲直)을 분별해서 천천히 해야지, 어찌 이렇게 급하게 하는가.” 하였다. 이것은 다 홍천기의 옆에 오래 있지 못한 것이 한스러워 한 말이므로, 친구들이 듣고 모두 웃어 마지 않았다. - <용재총화 제6권>
이 2개의 기록이 홍천기에 대한 유일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기록들을 통해 추측해보자면, 우선 그에 대해 여자(女子)나 홍녀(洪女)로 언급하는 것으로 봐서는 여성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다만 이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홍천기의 그림 실력 자체는 그리 좋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와 같은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는 안귀생이란 화가가 단종 때는 세조와 강희안, 양성지 등과 더불어 서울 및 팔도의 지도를 만드는 데 참여한 것은 물론, 세조가 명나라 사신인 정통에게 준 금강산도를 그가 전달한 걸로 봐서는
그런데 관노 출신의 기술자로써 그 시기에 유명했던 인물이었던 장영실의 등용문제에 대해서도 허조와 조말생 간의 논쟁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여성인 홍천기가 어떤 방식으로든 관직에 올랐던 것은 장영실 이상으로 큰 화제가 되었을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에는 그에 대한 그 어떠한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임진왜란-정유재란 시기에 소실된 기록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거나, 용재총화와 같은 여기저기서 전해오는 이야기를 모은 야사집의 특성상 허구의 인물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가 화원이 된 과정이나 등용 전후 활동이 그 당시 시각으로 보았을 때 문제가 있어서, 홍천기의 존재를 흑역사라고 판단하여 그에 대한 사초를 실록에 수록하지 않았거나, 기록 자체를 지웠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물론 실록이 편찬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보면, 매우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일단 남아있는 기록을 통해서 홍천기가 겪었을 상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추측해볼 수 있는데, 2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하나는 조정의 동의 하에 세종의 명으로 여성의 신분을 유지한 상태에서 도화원의 화원이 되었으나, 어떠한 사건으로 사헌부에 끌려왔을 가능성이다.
물론 장영실을 비롯해서 능력만 있다면, 특히 그 능력이 조선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이라면 반드시 등용했던 세종의 모습을 생각해보자면 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사실 천민 출신이 높은 관직에 오르는 일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홍천기는 여성이었다. 물론 현대인들에게 잘 알려진 것처럼 심각하게 묘사된 조선 사회의 모습은 전기보다는 후기의 일인 경우가 대부분이거나, 약간 과장된 측면이 있었다고는 해도 조선시대 이전부터 여성의 활동범위는 제한적인 부분이 많았고, 조선시대에는 의녀나 다모를 통해 여성들을 치료, 수사하였을 정도로 이성 간의 접촉을 규제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과연 세종이라도 그녀를 정식으로 화원으로 임명하는 게 가능했을지...... 천한 직업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지만, 엄연히 조정의 관원이라고 볼 수 있는 도화원의 화원이었으니......물론 기록을 보면 왕실의 여성들도 어진을 남겼던 것으로 추정되니, 그녀들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남성 화원보다는 여성 화원이 낫다고 여겨 한번쯤 시행해보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위에서 적었듯 최경이나 안귀생 등이 다른 왕들과 더불어 소헌왕후의 어진을 그린 것으로 상을 받았다는 기록을 보면 그랬을 가능성도 낮으니......
또 다른 하나는 남장 등의 방법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도화원에서 활동했다가, 어떠한 이유로 사헌부에 발각되어서 끌려왔을 가능성이다.
당시 사회를 생각해보면 그럴 듯한 방법이긴 하다. 그녀의 이름인 홍천기만 해도 그런 것이, 남성이 여성적인 이름을 사용한다든가, 반대로 여성이 남성적인 이름을 사용하던 사례가 지금이나 과거에도 상당히 많이 존재하긴 했고, 지금과는 달리 과거에는 다르게 쓰였던 이름이 존재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성별에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만큼 홍천기라는 이름을 여성이 사용한 것은 상당히 이색적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天(하늘 천)자가 들어간데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홍씨의 하늘이 일어난다>는 식의 의미[4]로도 해석할 수 있으니...... 어떠한 생각으로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평민 이하의 남성의 이름은 물론이고 여성의 이름이라고 보기도 힘드므로, 아버지나 남자형제와 같은 가족의 이름이나 자기 스스로 만든 가명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나 소설 등 여러 매체에서 보면 의심없이 잘 속아넘어가기는 하지만, 기술이 발달한 현재도 웬만한 외모나 위장 능력이 없는 이상 남장이나 여장을 해도 다 티가 나는 게 현실인데, 과연 그 시절에 남장을 하고 관원 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다. 특히나 하급기관인 도화원이라고 해도 엄연히 조정의 일부이며, 어진 제작 등의 업무로 인하여 경계가 삼엄한 궁궐 깊숙한 곳까지 들락날락하는데 말이다. 다만 당시 사회상을 생각해보면 그녀가 정체를 감추고 활동했을 가능성도 아주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 쪽이었든 남성 중심 사회였던 과거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그리 좋은 결말을 맞지는 않았을 듯 싶다. 최소한 파직이나 신분 강등을 당했다거나, 전자일 때도 죄의 경중에 따라 그럴 수 있지만, 후자일 경우에는 왕실과 조정을 속인 죄로 유배형 혹은 사형에 처해졌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신사임당, 허난설헌 등 적지 않은 수의 뛰어난 여성 예술가들이 활동하긴 했지만, 궁녀, 의녀, 다모 같은 직업이 아닌 남성에게만 허용되었던 관직에 어떤 식으로든 등용되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볼 수 있겠다.
3. 창작물
3.1. 소설
자세한 내용은 홍천기(소설) 문서 참고하십시오.3.2. 드라마
자세한 내용은 홍천기(드라마) 문서 참고하십시오.3.3. 2017년 웹툰
포천, 해동총화, 오성X한음 등을 그린 만화가 팬텀 하록이 그녀의 이야기를 과거의 야사들에 대해서 다룬 작품인 해동총화에 단편으로 수록한 것에 이어서, 카카오페이지에 그 기록을 모티브로 한 <화사 홍천기>라는 제목의 웹툰을 연재하고 있는 중이다. 이 작품에서는 세종 때 도화원에 있던 고려 왕실의 영자초도를 불태운 기록[스포일러]을 중심으로 그림을 지키려는 안평대군과 이를 막으려는 수양대군 사이에 끼게 된 홍천기의 이야기를 다루어진다.이 작품에서의 홍천기는 이모, 외사촌 남동생과 살며 도화원에 들어가기를 꿈꾸는 여성으로, 취재를 보고 혼인을 하겠다는 조건으로 반대하던 이모의 허락을 겨우 받고 취재에 응시하려했으나, 당연하게도 당시로선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취재를 보지 못한데다, 돌아오는 길에는 벌거벗은 성균관 유생들이 한 여인과 하녀를 희롱하는 사건[6]을 목격하고 이를 성균관에 고발[7]하여 해당 유생들을 처벌받게 하지만, 그 중 한명인 서두윤이 자신과 혼인할 이였다는 것을 혼인날에 알게 되는 등 약간 불운한 상황에 놓이는 인물로 그려진다.
다만 혼인날 그 사실이 밝혀지면서 혼인이 취소가 되고, 이후 모종의 사건으로 안평대군과 안견을 만나게 되는데, 자신을 지키다가 손에 심한 부상을 입은 안견을 대신해 안평대군을 돕는 조건으로 그의 도움을 받아서 그토록 원했던 도화원에 입성하게 된다. 하지만 수양대군과 자신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서두윤 등에 의해 위기를 맞게 되고, 안평대군 또한 사실은 그림을 소장하는 것 자체에만 관심있었기에 자신의 목적을 이루자 그녀를 배신해서 큰 위기를 맞게 되는 듯 싶었으나, 그녀의 처지를 보다 못한 안견과 서거정, 강희안 등의 도움, 거기에 결정적으로 홍천기가 그린 정소공주의 그림을 보고 과거를 떠올리고 정신을 차린 세종에 의해 풀려나게 된다는 전개로 끝을 맺는다.
[1] 낮은 품계. 혹은 품질이 낮은 물건을 의미한다.[2] 조선 시대에 왕실의 어진 등을 제작했던 부서인 도화원(도화서)의 관직[3] 기록으로 추측되는 그녀가 활동했던 시기에 존재했던 인물들 중에서 당시 과거에 급제한, 세종-성종 때에 활동한 문신인 서거정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거정의 봉호가 달성부원군이기도 하다.[4] 정은궐 작가의 소설인 <홍천기>에서도 이러한 점을 이용해, 홍천기가 쓰러진 하람에게 먹일 음식을 찾으러 가기 전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묵고 있던 지인의 빈 집에 있던 붉은 염료로 그의 옷에 자신의 이름을 써놓고 나가는데, 나중에 하람을 발견한 안평대군이 이를 보고 반란을 의심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스포일러] <화사 홍천기>에서는 홍천기의 아버지가 이를 막는 과정 중에 사고로 사망한다는 설정이 추가된다.[6] 후술할 서두윤을 제외하고 실록에도 언급된 실제 사건을 각색한 사건이라고 작가가 언급했다.[7] 그들이 부정하자 자신의 기억 속에 있던 그들의 모습을 성균관 관리가 즉각 알아볼 정도의 그림으로 그려 진실을 밝힌다. 그럼에도 그들이 부정하자 사건 당시 자신이 본, 세명 중 그녀에게 덤빈 서두윤의 신체적 특징을 관리와 유생들 앞에서 밝히며 자신의 말이 진실임을 다시 한번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