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1:36:02

환상특급 헬기추락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colcolor=#000000,#dcdcdc> 발생일 1982년 7월 23일
유형 폭발로 인한 기체고장
발생 위치 캘리포니아발렌시아 인디언듄스
기종 UH-1B
운영사 웨스턴 헬리콥터
기체 등록번호 N87701
출도착지 인디언 듄스
탑승인원 승객: 5명
승무원: 1명
사망자 지상: 3명[1]
생존자 탑승 인원 6명 전원 생존
파일:TwilightZoneMovieAP16322627362401.jpg

1. 개요2. 사고 이전3. 사고의 전개4. 후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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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Twilight Zone Helicopter Accident
목숨을 걸 만한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No movie is worth dying for)
스티븐 스필버그가 해당 사고와 관련해 남긴 말 #

미국의 TV 시리즈 환상특급의 극장판을 촬영하다가 일어난 사고.

2. 사고 이전

스티븐 스필버그는 어린 시절부터 즐겨 봤던 환상특급의 극장판을 만들기로 기획했다. 영화는 에피소드 형식으로, 4개의 에피소드가 묶여 하나의 영화가 됐다. 이 중 흑인과 유대인, 아시아인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있던 인종주의자가 시간여행을 통해 그들이 겪은 피해를 자신도 겪게 되면서 뉘우치고 살아가게 된다는 에피소드 "빌에게 생긴 일(원제: Time out)" 은 런던의 늑대인간으로 유명한 영화 감독 존 랜디스에게 맡겼다. 주인공은 빅 모로가 캐스팅됐다.

하지만 영화사 측에서는 해당 에피소드가 너무 무겁다는 이유로 촬영을 거부했고 이에 존 랜디스는 "그럼 주인공이 어린이 2명을 구하는 장면을 넣겠다." 며 줄거리를 수정했는데 제작사에선 이를 읽고 통과시켰다. 그렇게 베트남인이 된 주인공이 야간에 미군의 사격과 폭격을 피해 베트남 고아 2명을 구하는 장면을 찍게 됐다. 고아 역으로는 인맥을 통해 레니 첸(Renee Shin-Yi Chen. 향년 6세)과 마이카 딘 레(Myca Dinh Le. 향년 7세)를 뽑았다. 인맥으로 뽑은 이유는 당시 촬영지인 캘리포니아 주법상 어린이를 야간 촬영에 고용하는 게 아동노동에 해당되는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불법이 되지 않으려면 주간에 촬영을 진행해야 했는데 시나리오 배경이 야간이었기 때문에 야간 촬영을 강행했다.

이 때문에 캐스팅 에이전시에서도 이 사항을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존 랜디스는 프로듀서 조지 폴시에게 부탁했고 조지 폴시는 자신의 비서 도나 슈먼의 남편 해럴드 슈먼에게 전화해 아시아계 어린이 배역 2명을 부탁했다. 해럴드 슈먼은 옛 동료였던 피터 첸에게 연락해 피터 첸의 조카였던 레니 첸, 피터 첸의 동료였던 다니엘 레의 아들 마이카 딘 레를 캐스팅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건 불법이었던지라 촬영장에선 돈을 현금으로 가져와 주고 관련 계약서도 쓰지 않는 식으로 고용 관련 증거를 최대한 없었으며 이들은 소방 책임자나 안전담당관에게 아이가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같이 환상특급을 촬영하던 감독 앤더슨 G. 하우스(Anderson G. House)는 총괄 매니저 댄앨링햄(Dan Allingham)에게 왜 아이 2명이 촬영장에 있는지 물었지만 댄은 이를 함구했으며 폴시는 이를 두고 "설마 이걸로 우리가 감옥이나 가겠어?" 라며 농담을 했다.

1982년 7월 22일 베트남 전쟁베트남인이 된 주인공이 아이 2명을 구하는 장면의 촬영이 시작됐다. 당시엔 아이들의 부모도 왔다. 촬영은 저녁에 시작되어 다음날 새벽 3시 30분에 큰 사고 없이 끝냈지만 화재 안전 책임자는 폭발로 인해 사고가 발생할 것 같다고 경고하였으며 근처의 카메라맨도 "헬기가 추락하는 거 아니냐"라고 의견을 표했다. 심지어 헬기 안에 있었던 두 명의 카메라맨들도 위험하다고 항의했으며 당시 헬기 조종을 맡았던 조종사 도시 윙고(Dorcey Wingo)는 "폭약이 너무 쎄서 헬기까지 물이 닿을 정도였다." 고 불안감을 표했는데 제작진들은 그저 조종사가 겁먹은 거 아니냐며 그저 웃어 넘겼으며 실제로 촬영 조종사가 폭발 효과를 보고 겁먹어서 조종간을 흔들거나 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런 것이였지만 도시 윙고는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인 데다 촬영에 쓰인 UH-1을 조종했던 베테랑이였으며[2] 예광탄이 날아들고 근처에 폭발이 일어나는 일을 전쟁터에서 숱하게 겪어 왔던 그가 똑같은 헬기를 타면서 그런 폭발을 보고 우려를 표하는 것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그런 우려에도 랜디스 감독은 촬영을 강행하며 아이의 부모에게 500달러씩 건네면서 쉬고 저녁에 다시 와 촬영에 임해 달라고 했다. 문제는 부모들은 그 촬영에 폭발 특수효과가 있는 것을 몰랐다는 점이다.

3. 사고의 전개

해당 사고 영상[3]

7월 23일 촬영이 다시 시작됐다.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헬리콥터에는 조종사 도시 윙고를 포함해 부조종사와 M60 도어 건맨 엑스트라 2명 카메라 촬영팀 2명[4]을 포함해 6명이 탑승해 있었으며 배우들 위에서 호버링을 하고 있었다. 감독은 헬리콥터에게 이전보다 더 낮게 날으라고 지시했고 곧 120mm 박격포 모양을 한 특수효과용 폭발이 일어났다.

그 순간 조종사 도시 윙고는 폭발로 일시적으로 시력을 상실[5]했고 이전에 폭발에 약해진 테일로터에 열 변형이 와서 고장나 꼬리에서 분리되었다. 메인 로터 한쪽 날개도 심각한 손상을 입었으며 저공 비행 중인 헬리콥터는 통제불능으로 회전하게 된다. 조종사 도시 윙고는 두 눈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자신과 승객들을 살리려고 끝까지 헬리콥터를 통제해 보려고 했지만 이미 테일로터가 없어지고 메인로터에 2개의 날밖에 안 달린 헬리콥터에 한 날개가 손상되었으니 헬리콥터는 순식간에 추락해 버렸다. 윙고가 그 순간 시력이 회복되면서 봤던 광경은 아래에 모로와 그의 두 손에 두 아이가 들려 있는 광경이었다.

모로는 두 아이를 양팔에 들고 이동하다가 폭발과 동시에 첸이 떨어졌고 모로가 그 아이를 붙잡으려고 손을 뻗고 있을 때 추락하던 헬기가 그들 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헬기가 빅 모로와 레니 첸, 마이카 딘 레 위로 떨어져 버리면서 3명 모두 즉사해 버렸다. 첸은 헬기 동체와 스키날에 깔려 즉사했고 모로와 딘 레는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로터에 머리가 잘려나가 사망하였다.

유족들은 그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유족 중 한명인 데니 리는 베트남인이었는데 베트남 전쟁에서 살아남아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해 왔다. 즉, 베트남 마을 세트장에서 폭발과 헬기 추락[6]과 그 속에서 자신의 아들의 죽음을 목격하는 비극을 바라봐야만 했다.

이 사건 때문에 베트남 전쟁 장면은 통째로 삭제되었고 제작진은 사망한 아역 배우들의 부모에게 2백만 달러를 배상했으며 극장판 중 첫 번째 에피소드인 '빌에게 생긴 일'은 본래는 주인공(빅 모로)이 아우슈비츠로 끌려가다가 탈출하는 해피 엔딩으로 할 예정이었으나 이 사고로 끝부분을 완성하지 못해서 그대로 끌려가는 배드 엔딩으로 끝내야 했다.

4. 후일담

이 사고를 조사했던 미국 교통안전 위원회(NTSB)는 조종사와 영화 감독사이 의사소통과 조율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발표했고 연방 항공청에선 영화나 TV에서 항공기를 규제하는 규정을 재정의하지만 헬리콥터에선 적용되지 않았다가 1986년에 가서야 이루어졌다고 한다.

뒷말이 많았는데 특히 촬영 현장의 안전 대비가 엉망이라는 점에서 비난을 받았다. 이 사고에 대하여 제작진간에 갈등이 벌어져 여러 충돌이 벌어지고 배상금도 10년이나 지나서야 지급하는 등 여러모로 욕을 먹기도 했다. 게다가 이 에피소드의 감독인 존 랜디스와 제작자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 사고 문제로 엄청 다퉈서 그 뒤로 둘은 다시는 같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일설에 의하면 스필버그는 빅 모로가 꿈에 나와 토막난 머리를 들고 고맙다면서 비아냥거리는 걸 보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고 하지만 영화의 흥행을 위해 저런 것까지 홍보에 사용하냐는 비난도 받았고 빅 모로의 딸은 스필버그가 아버지를 죽게 했다며 십수년간 그를 싫어했다고 한다.

빅 모로는 TV 드라마 컴뱃!에서 카리스마 있는 분대장 역을 맡아 한국에서도 큰 인지도를 가진 배우였는데 이후 별다른 필모그래피가 없어 퇴물 배우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일본 영화에 나오기도 하고 죽기 1년 전에 임권택 감독의 아벤고 공수군단에서 엑스트라를 겨우 벗어난 수준으로 나와 대사도 몇 마디 안 되는 연기를 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영화는 그에게 재기를 위한 기회였는데 뜻밖의 참극으로 끝난 셈이었다. 커리어가 썩 좋지 않은 모로의 유족들은[7] 쉽게 협상에 동의했고 아이들의 유족들도 랜디스 등의 제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배상협상 과정에는 별 잡음이 없어서 사건이 쉽게 묻혔으며 이 사건에 관련된 그 어떤 사람들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중에 이소룡의 아들 브랜든 리가 영화 촬영 중에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후에야 재조명되었다.

존 랜디스는 이후에도 여러 코미디 영화들을 히트시키면서 1980년대까지 영화감독으로 흥행감독으로서 잘 나갔고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Black or White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 여전히 이름을 알렸지만 90년대 들어서 영화감독으로 연이어 흥행과 비평에서 추락해 버렸다. 1991년 감독 영화 오스카가 흥행과 비평에서 쫄딱 망한 뒤 부진이 이어졌는데 오스카 이후 감독한 '미녀 드라큐라'(1992)가 망했고 다시 에디 머피와 같이 손잡은 비버리 힐스 캅 3편을 감독했으나 시리즈를 끝장나게 만들었다. 이후에도 감독한 영화들인 스투피드 가족(1996), 블루스 브라더스 2000(1998)를 연이어 망하게 만들어 1998년 감독작 '수잔의 계획'은 저예산 영화임에도 나스타샤 킨스키, 댄 애크로이드, 빌리 제인, 마이클 빈 같이 나름 호화캐스팅임에도 시사회에서 악평으로 개봉조차 못 하고 2차 매체로 출시되었으며 이게 마지막 할리우드 감독 영화가 되었다. 2010년에 영국에서 '버크와 헤어'를 감독했지만 이것도 별로 평이 안 좋아 이걸 마지막으로 2022년에 72살이었던 존 랜디스는 사실상 영화감독은 은퇴한 셈이 되었다. 2010년대에 저예산 영화 2편을 제작했을 뿐이다.

이후에는 영화사 중역으로 지냈다. 현장에서 물러난 뒤 세간에서 잊어져 있던 존 랜디스는 아버지를 따라 영화계에 입문했던 아들 맥스 랜디스[8]가 8명의 여성을 강간 및 성추행한 사건으로 잠시 재조명되었다.

조종사였던 윙고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법원에서 6년 동안 재판받아야 했고 그동안 면허가 정지되었기 때문에 비행하지 못했다고 한다. 헬리콥터를 끝까지 살리려고 노력하였고 추락 이후에도 카메라와 탄약 소품에 갇혀 있는 탈출하지 못하는 승객을 꺼내 주었으며 헬기 탈출 직후 엔진이 켜져 있는 걸 발견하여 폭발 위험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가 연료를 차단하고 엔진을 껐다고 한다. 조종사로서 본분[9]은 지켰었다.

그러나 촬영팀들과 감독들을 지키기 위해 나선 헐리우드에겐 완전 버린 사람 취급[10]받았고 폭발을 피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검사와 언론 때문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고 한다. 특히 테일로터 동력 상실 시 메인로터 스로틀의 출력을 올리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비난받았는데 UH-1의 메뉴얼대로라면 그렇게 하는 게 맞지만 전쟁 중에 그렇게 무작정 출력 올리다가 엔진 화제로 산화되거나 헬기가 폭발하는 경우가 많아서 베테량들은 헬기를 그 자리에 최대로 유지하면서 문제부터 파악하고 대처하는 게 우선시되었다고 하며 나중에 신입 조종사 훈련도 그렇게 행하였다. 본인도 헬기가 어디가 손상되었는지 잘 몰랐던 상태로 그렇게 한 것[11]이라고 변호했다.

법원 판결 이후 면허 정지가 풀린 윙고는 촬영 일을 그만두고 미국 북서부와 알래스카에서 같은 기종의 헬기엔 휴이로 벌목 산업을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소년탐정 김전일은막의 살인귀에서 이 사건이 언급되었다.

[1] 빅 모로, 동양계 아역 배우 2명[2] 메탄 선장이라는 콜사인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3] 같은 장면을 다룬 다른 영상들에 비해 비교적 저화질이어서 연령 제한에 걸리진 않았지만 후반부에 목이 잘리는 장면을 프레임 별로 끊어서 아주 천천히 보여주므로 시청 시 주의. 그나마 저화질이라 형상만 알 수 있다.[4] 랜달 로빈슨과 스티븐 라이데커. 두 사람 모두 촬영이 위험하다고 경고했던 사람들이었다.[5] 야간 촬영이라 선글라스나 바이저를 쓰지 않고 맨눈으로 조종해야 했기 때문이다.[6] 심지어 추락 헬기인 이쿼로이는 베트남 전쟁 때 쓰인 기종의 헬기였다.[7] 유족 중 하나인 제니퍼 제이슨 리는 당시 갓 이름을 알린 청춘 배우에 불과했다. 리가 본격적으로 뜬 건 1989년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와 마이애미 블루스 때부터다.[8] 크로니클, 더크 젠틀리의 정체론적 탐정 사무소 의 각본가.[9] 헬기에서 탈출하고 나서 헬기 연료 차량 기사한테 모로와 아이들이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보았다. 물론 돌아온 대답은...[10] 촬영팀이 NTSB에 말하길 윙고를 고용한게 그저 저렴해서 고용했고 그의 무선상태가 안 좋았다고 주장하였다.[11] 이미 메인 로터 날개 중 1개가 날아갈 정도로 크게 손상된 거라 출력을 올렸다고 하더라도 헬기는 추락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