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베르투스 폰 보닌(Hubertus von Bonin : 1911년 8월 3일~1943년 12월 15일)
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77기를 격추해 기사 철십자훈장을 받은 수퍼 에이스 후베르투스 폰 보닌은 독일 제국 시대인 1911년 8월 3일에 포츠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1차 대전 당시 독일 제국 항공대에서 파견 근무한 경험이 있던 군인 보기슬라프 폰 보닌(Bogislaw von Bonin : 1908~1980) 대령이었던 탓에, 보닌과 그의 동생 에카르트-빌헬름 폰 보닌(Eckart-Wilhelm von Bonin : 1916~1992)과 막내 위르겐-오스카 폰 보닌(Jürgen-Oskar von Bonin : 1921~1942)은 모두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비행에 깊은 관심을 두며 자라났다.2. 스페인 내전 참전
1935년에 독일 공군에 자원 입대한 그는 1938년에 소위 계급장을 달고 비행학교를 나와 곧바로 스페인 파견을 앞두고 있던 콘돌 군단에 지원했다. 폰 보닌 소위는 제88전투비행단 제3비행중대(3./Jagdgruppe 88)에 편대장으로 배속되었다. 비행 실력을 인정 받는 그는 12월 5일에는 선임자인 베르너 묄더스 대신 중대장이 되었고, 스페인 내전에서 적기 4대를 격추했다. 이 공로로 그는 귀국하기 전에 스페인 검십자 훈장(Spanienkreuz)을 수여받았다.3. 서부전선
1939년 6월에 독일로 귀환한 그는 중위로 진급하면서 같은 달 28일에 제26전투항공단(JG 26) 제5비행중대장으로 취임했다. 후베르투스 중위는 개전 초에는 이렇다 할 교전을 펼칠 기회가 없었지만, 해가 바뀐 1940년 1월 1일부터 제54전투항공단(JG 54) 예하의 제 I 비행단 지휘관이 되어 1개 비행단을 거느리고 서부전선에서 싸웠다. 5월 11일에 사진의 5번째 전과이자 2차 대전에서 첫 격추를 기록한 그는 드디어 에이스 칭호를 얻게 되었다. 후닌 대위는 9월 중반까지 영국 공군의 전투기와 폭격기를 8대 더 격추시켰다.1941년 7월 1일, 스페인과 도버 해협에서 실전 경험을 쌓은 그는 교관으로 선발되어 제4전투비행학교로 전속했다. 이곳에서 석 달간 생도들을 가르친 그는 10월 10일부터는 동부전선에 나가 있는 제52전투항공단(JG 52) 예하의 제 III 비행단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1942년 5월에는 다시 동부 예비 전투비행단의 지휘관이 되어 11월 22일까지 주로 지상근무를 했지만, 틈틈히 훈련 비행을 핑계 삼아 출격을 나서 적기와 싸우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11월 17일에 후닌은 30대째의 격추를 해내고, 12월 21일에는 51기 격추 전공을 인정받아 기사철십자 훈장을 받게 된다. 보닌의 60번째 격추는 1943년 5월 3일에 이루어졌다.
4. 항공단장 부임
같은 해 7월 6일, 후베르투스 폰 보닌 소령은 드디어 1개 완편 부대를 거느리는 항공단장이 되었다. JG 54의 사령관에 임명된 것이다. 그러나 보닌 소령은 항공단 사령관이 된 후에도 출격을 계속 했고, 이것이 화를 부르고 말았다. 12월 15일에 비텝스크부근으로 출격을 나간 사령관은 소련 공군의 P-39에 격추되어 전사하고 말았다. 이때 그의 나이는 32세로, 사후에 중령 계급이 추서되었다.보닌이 거둔 77대의 격추 중에서 4기는 스페인 내전, 9대가 서부전선, 그리고 나머지 64대가 동부전선에서 기록한 것이었다. 앞서 밝힌대로 그에게는 두 남동생이 있었는데, 막내 위르겐은 부사관으로 수송기를 타면서 관측수 임무를 수행하다가 연합군 전투기에게 피격되어 전사했고, 맏형마저도 전사해 삼형제 중에서 차남 에카르트만 전후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에카르트 폰 보닌 역시 전투기 조종사가 되었던 탓에 제1야간전투항공단(NJG 1) 제II비행단장을 역임하며 37대를 격추해 기사철십자 훈장을 받을 정도로 탁월한 야간 에이스였다.
5. 서훈
스페인 검십자 훈장(Spanienkreuz Gold)2급 / 1급 철십자 훈장
독일 황금십자장 (1942년 10월 27일)
기사철십자 훈장 (1942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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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 이름 | 국적 | 격추 수 | 비고 | |
142위 | 하인리히 프린츠 추 자인 비트겐슈타인 | 독일 | 83대 | ||
오토 베슬링 | 독일 | ||||
144위 | 한스 그륀베르크 | 독일 | 82대 | ||
에밀 다르예스 | 독일 | ||||
한스 괴츠 | 독일 | ||||
헬무트 미스너 | 독일 | ||||
148위 | 프란츠 바이어 | 독일 | 81대 | ||
후고 브로흐 | 독일 | 현재 생존 에이스 중 가장 격추 수가 많다. | |||
빌리 네미츠 | 독일 | ||||
빌헬름 필리프 | 독일 | ||||
152위 | 이와모토 테츠조 | 일본 | 80대 | 비독일계 2위, 일본 1위, 해군 출신 1위 중일전쟁에서 14대 격추 | |
헤르베르트 바흐니크 | 독일 | ||||
154위 | 오토 뷔르펠 | 독일 | 79대 | ||
155위 | 게오르크-페터 에더 | 독일 | 78대 | ||
볼프강 에발트 | 독일 | ||||
하인리히 크라프트 | 독일 | ||||
막스-헤르만 뤼케 | 독일 | ||||
요한-헤르만 마이어 | 독일 | ||||
카를-고트프리트 노르트만 | 독일 | ||||
알렉산더 프라인팔크 | 독일 | ||||
162위 | 후베르투스 폰 보닌 | 독일 | 77대 | 스페인 내전에서 4대 격추 | |
요제프 하이뵈크 | 독일 | ||||
발터 올로게 | 독일 | ||||
165위 | 한스-요아힘 크로신스키 | 독일 | 76대 | ||
막시밀리안 마이얼 | 독일 | ||||
알프레트 토이머 | 독일 | ||||
에트빈 틸 | 독일 | ||||
169위 | 한스 빈트 | 핀란드 | 75대 | 핀란드 2위 | |
요하네스 분체크 | 독일 | ||||
구스타프 프릴링하우스 | 독일 | ||||
헬무트 그롤무스 | 독일 | ||||
클라우스 미투슈 | 독일 | ||||
요한 피힐러 | 독일 | ||||
한스 뢰링 | 독일 | ||||
발데마르 제멜카 | 독일 | ||||
요아힘 반델 | 독일 | ||||
178위 | 오토 가이저 | 독일 | 74대 | ||
프리드리히 하스 | 독일 | ||||
카를 하인츠 멜처 | 독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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