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8 20:18:25

후제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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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슈타르의 페르시아 시기 관개 시설

페르시아어: خوزستان
아랍어: محافظة خوزستان‎
영어: Khuzestan
1. 개요2. 역사
2.1. 이라크의 영토 주장
3. 기후4. 관련 문서

1. 개요

이란 서남부 평야 지역을 지칭하는 역사적 지명으로, 현재도 이란의 31개 주 중 한 곳으로 남아 있다. 고대 엘람 왕국의 중심지로, 현재에도 지구라트 등 많은 유적지가 남아 있다. 후제스탄은 지리적으로 메소포타미아와 가까우며, 자그로스 산맥 서쪽에 위치하여 이란 핵심부에서 접근하는 데에 꽤 오랜시간이 걸린다. 민족 구성도 인근의 이라크와 비슷하여 페르시아인이 아닌 아랍인이 다수를 차지한다. 면적은 64,055km²이며 인구는 약 4,710,509명이다.

주요 도시로는 아바즈 (현재 주도), 아바단 등이 있고,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 4대 수도[1]중 하나였던 수사의 유적이 후제스탄 북부에 위치한다. 기원전 300 - 150년간의 헬레니즘 시기를 거친 후제스탄은 800여년에 이르는 이란 제국들(파르티아, 사산 왕조)의 지배를 거쳐 639/642년에 아랍 무슬림 세력에게 정복되었다.

2. 역사

고대 엘람의 영토였고, 초가잔빌 유적이 남아있다. 고대 후제스탄의 도시 중에는 사산 제국의 명군 샤푸르 1세가 지은 군데샤푸르가 있는데, 당시 준-수도 기능을 하기도 했고 로마군 포로들의 수용소와 당시 이란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동시에 하였다. 지금도 로마 포로들이 지은 로마식 석조 다리가 남아있다. 슈슈타르, 슈쉬 또한 수도에 준하는 중요한 도시로 취급되었다. 라쉬둔 (정통) 칼리파 조의 진격으로 메소포타미아가 대부분 점령된 637년 이후에도 후제스탄은 호르무잔 장군의 지휘 하에 사산 제국령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카디시야 전투의 패배 이후 이 곳으로 피신한 것인데, 결국 칠종칠금 끝에 642년에 무슬림 군대에 항복, 메디나에서 반강제적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2]

이후 후제스탄은 이슬람 제국기를 거쳐 부와이 왕조, 셀주크 제국의 통치를 받았다. 그러던 12세기 중반, 셀주크 조가 연이은 내전으로 쇠퇴하자 오우즈 튀르크계인 슈믈라 (아이 토그디)가 일대를 장악하였다. 비록 1158년 셀주크 왕자 말리크샤 이븐 마흐무드가 점령하기도 했지만 1161년 슈믈라는 그를 축출하고 후제스탄을 독립적으로 통치하였다. 슈믈라는 대외 팽창에 나서 1167년 이라크를 습격하였고 1169년에는 당시 파르스를 지배하던 살구르 왕조의 내분에 개입하여[3] 일시적으로 일대를 점령하기도 하였다. 1173/4년에는 대대적으로 이라크에 침공하였지만 압바스 칼리파 군에게 격퇴되었다. 이듬해 슈믈라가 사망하자 그 아들이 계승하였는데, 1195년 그가 사망하자 압바스 조의 재상 (와지르) 무아야이드 앗 딘 이븐 카십이 침공하여 점령하였다. 슈믈라의 손자들은 바그다드로 압송되었고, 이후 후제스탄은 60여년간 압바스 칼리파 조의 직접 지배를 받다가 일 칸국의 영토가 되었다.

1440년 무함마드 이븐 팔라흐 이븐 히바툴라가 후제스탄을 공격, 본격적인 아랍 인구 유입 시작. 서부 후제스탄 장악. 사파비 조와 다른 아랍 부족들과 대립. 1508년 이스마일 샤가 하위자, 디즈풀, 슈슈타르 점령하고 무샤샤 술탄의 복속을 얻음. 사파비 시대에 서부 후제스탄은 아라비스탄으로 불림.

16세기 말 쿠웨이트에서 바누 카압이 아라비스탄 이주, 정착. 다른 부족들도 뒤이어 이주하며 아랍화 가속화. 사파비 조의 쇠퇴와 함께 1724년 알 부 나시르 휘하의 바니 카압이 아라비스탄 전역 장악하며 무슈쉬야 국은 멸망.

오스만-사파비 조의 전쟁. 대부분 이란의 영향력 지대. 다수 아랍인들, 특히 오스만에 복속했던 바누 카압은 둘다 원하지 않았으나 동쪽으로 영향력 넓히며 이란 측에 연공 바치고 자치 유지함. 오스만/이란 측과 동맹 반복. 1751년 잔드 왕조와 알리 마라단 간의 이란 내전에서 바누 카압의 셰이크 사드는 패배하고 후제스탄으로 향한 후자를 도왔다. 이듬해 봄 알리 마라단은 케르만샤에서 잔드 군을 격파하고 북진하였으나 나하반드에서 카림 칸 잔드에게 패배하고 오스만령 이라크로 도주하였다.

몽골-튀르크계 국가들을 지나 15세기 후제스탄은 쉬아 운동인 무샤쉬야의 본거지가 되었다. 7대 이맘 무사의 후계자로 추정되는 이라크 출신의 무함마드 이븐 팔라흐는 스스로를 알리의 대리인이자 마흐디라 선언하였다. 1436년부터 후제스탄의 아랍인들에게 전도를 통해 세력을 구축한 그는 1441년 호베이제를 점령, 수도로 삼고 사실상 후제스탄에 독립 국가를 세웠다. 그는 종말이 다가왔고, 종말시에 예멘에서 선한 군대가 일어나 시리아와 호라산의 악의 무리와 싸울 것이라며 이란고원 정복을 목표로 삼았다. 1461년 무함마드가 사망한 후 아들 알리가 계승하여 무샤쉬야를 이끌었는데, 15세기 말엽 또다른 쉬아 운동인 사파비야에서 발원한 사파비 제국에게 1508년 정복되었다. 이후 무샤쉬야는 그 특성을 잃고 주류인 열두이맘파에 흡수되었다. 19세기에는 아랍 베두인인 바누 카압이 이주해왔고, 현재까지 후제스탄 인구의 약 40% 가량이 아랍인에 해당하는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1908년 석유 탐사가 윌리엄 녹스 다아시가 후제스탄 동북부의 마스제드 솔레이만에서 석유를 발견하였다. 이는 서구권이 중동 지역에서 확인한 첫번째 유전이었고, 이로써 중동 역사가 송두리째 바뀌게 되었다. 후제스탄 지역의 경제적 중요성을 파악한 팔라비 왕조는 1925년 현대적인 무기로 무장한 신식 군대를 투입시켜 호람샤르를 무력 점령하고 바누 카압 왕가를 축출하며 일대를 병합하기에 이른다.

2.1. 이라크의 영토 주장

아랍인이 다수 거주하고 이라크와 인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뺏고 뺏기는 치열한 공방전이 지속되었다. 대표적인 거점 호람샤르가 바로 여기에 속해있기도 했다. 상술하였듯이 후제스탄 지방은 1925년까지만 해도 아랍계 국가인 아라비스탄 토후국이 있던 곳이다. 세력이 크지는 않지만 분리주의 운동도 있으며, 2021년 식수 부족 시위 때에도 관련 구호가 나왔다. 다만 후제스탄 북부 지역인 데즈풀, 슈슈타르, 슈쉬 일대는 페르시아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슈쉬의 경우 이란의 정체성인 엘람아케메네스 왕조 & 사산 제국의 수도였기에 이란에서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곳이다. 또한 고원이 많은 이란에서 큰 강과 평야가 많은 지역이라 농업에도 중요하며 남부 해안 역시 반다르에멈호메이니 등 석유 수출항들이 있어 이란 경제에 중요하여 이란은 절대 해당 지역을 내어줄 생각이 없다.

3. 기후

사막기후를 띄고 있으며, 지구상에서 가장 더운 곳 중 하나이다. 주도 아바즈의 7월 평균기온은 37.3℃, 그리고 평균 낮 기온은 46.3℃에 달하며, 극단적으로는 54℃까지 기록된 적 있다. 더 남쪽에 위치한 아바단의 경우 1981년 8월 9일 57℃가 기록된 바 있다.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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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페르세폴리스, 바빌론, 엑바타나, 그리고 수사.[2] 이후 칼리파 우마르의 조언자가 되었으나, 그가 페르시아계 기독교인에게 암살당한 사건에 휘말여 피살되었다.[3] 통치자인 무자파르 앗 딘 장기에 반발한 군부가 그를 초청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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