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0 06:22:19

히무로 쿄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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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무로 쿄스케
(氷室京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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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무로 쿄스케
氷室 京介[1] | Himuro Kyos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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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테라니시 오사무
([ruby(寺西修, ruby=てらにし おさむ)], Teranishi Osamu)
출생 1960년 10월 7일 ([age(1960-10-07)]세)
일본 군마현 타카사키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신체 174cm, 53kg
직업 가수, 작곡가, 편곡가, 프로듀서
데뷔 1982년 BOØWY 1집 앨범 "MORAL"
1988년 싱글 "ANGEL" (솔로 데뷔)
장르 록 음악, 비트 록, 하드 록, 얼터너티브 록, AOR
활동 BOØWY : 1981년 ~ 1988년
솔로 : 1988년 ~ 현재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활동3. 디스코그래피
3.1. 정규 앨범3.2. 베스트 앨범3.3. 라이브 앨범3.4. 싱글3.5. 콜라보레이션 싱글3.6. 컴필레이션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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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록 보컬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BOØWY의 보컬이다.

2. 활동

BOØWY로 활동 이전에 '데스 페널티'나 '스피니치 파워'라는 밴드에서 활동한 전적이 있다.[2] BOØWY 시절에는 그 유명한 꺾기 창법을 기반으로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였으며, 2000년도 전후를 기점으로 발라드 친화적으로 창법을 바꾼 이후에도 특유의 미성으로 일본 내에서 인기가 매우 대단한 보컬리스트였다. BOØWY 활동 당시의 설명은 항목을 참고.

1988년 4월 4일, 5일 이틀간 도쿄 돔에서 개최되었던 보위의 마지막 공연 LAST GIGS 이후 BOØWY의 해체를 선언한 뒤 3개월만에 싱글 ANGEL로 솔로 데뷔를 하여 보위 활동을 통해 얻은 인기가 식을 틈없이 활동을 이어갔다.[3] 그리고 그해 내놓은 첫 정규 앨범 FLOWERS for ALGERNON으로 1988년 일본레코드 앨범 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솔로 활동 이후로는 음악적 성향이 변하여 보위와는 또 다른 독자적인 세계관을 쌓아 올렸는데, 전체적으로 보위 시절에서 볼 수 없는 히무로 쿄스케 본인의 메세지나 솔직함이 두드러지는 곡을 많이 썼다. 강인한 이미지였던 보위 시절과 정반대인 따뜻하고 쓸쓸한 팝/블루스 사운드를 띄는 'FLOWERS for ALGERNON'[4]과 신세대에 맞춰 진화된 파시즘이란 컨셉으로 파시즘의 위험성과 인간성을 노래하는 컨셉의 'NEO FASICO' 등이 이러한 특징을 잘 드러낸다.

솔로 활동 초기에는 전체적으로 대중적이고 팝적인 성향이 강해 평론가들로부터 '전설적인 록밴드 보위의 보컬 출신이 맞냐?'는 비판도 들었고 2000년도에는 수록곡 대부분을 발라드로 채운 음반을 발매하기도 할 만큼 발라드로도 유명했기에 보위 시절 보다 록커의 이미지는 다소 옅어진 편. 이러한 대중가요 위주의 경향은 솔로 커리어 중에 가장 히트를 기록한 노래인 'KISS ME'가 수록된 밀리언 셀러 'Memories of Blue' 에서부터 슬슬 부각되었고 후속작 'SHAKE THE FAKE'가 평론과 팬 전부 미묘한 평가를 받자 본인의 음악적 방향성에 큰 혼란을 겪는 등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팬들을 비롯한 모든 것을 버릴 각오로 미국 LA로 거주지를 옮긴 이후로는 미국색을 듬뿍 묻힌 속도감 넘치는 하드 록을 다수 선보이며 다시금 록커로서의 명성을 바로 잡았다. 마이클 잭슨의 Bad에 참여한 기타리스트 스티븐 스티브스와의 협업한 앨범 'I・DÉ・A'를 비롯하여 해외 아티스트들과의 교류도 많아져서 2010년엔 마이 케미컬 로맨스제라드 웨이와 콜라보한 'Safe and Sound'[5]를 발매하기도 했다.

딱히 유행이나 대중성 등 시류를 따라가는 편이 아니었음에도 충성도 높은 팬을 다수 보유하여 투어를 개최하면 늘 만석을 채울 만큼 상당한 관중 동원력을 자랑했는데 수차례 도쿄 돔을 전석 매진시킬 정도였다. 그러다가 2016년도 은퇴기념 투어인 LAST GIGS 이후로[6] 더 이상의 공식적인 활동은 없는 상태다.[7] 이 은퇴 공연 역시 오사카 쿄세라 돔 2일, 나고야 돔, 후쿠오카 야후오쿠 돔(현재의 PayPay 돔), 도쿄 돔 3일로 이어지는 총 7일 간의 돔 공연을 매진시키며 30만 명을 동원하는 대성황을 이루었다.[8]

희대의 보컬리스트로 유명하지만 작사작곡에도 능한데 BOØWY 시절에는 대부분의 곡을 본인이 작사하였다. 비록 이 당시 BOØWY의 곡은 대부분 호테이 토모야스가 작곡하긴 했으나 히무로 또한 Cloudy heart, ハイウェイに乗る前に, わがままジュリエット, B・E・L・I・E・V・E 등 호테이 못지않게 보위를 대표하는 곡을 여럿 작곡하였으며 [9] 호테이의 곡에 비하면 로큰롤스러운 강렬함은 덜하지만 상대적으로 듣기 편한 곡들이 많았다. 보위가 해체되고 솔로로 데뷔한 이후에는 반대로 자신이 대부분의 곡을 직접 작곡하되 작사는 되도록 다른 작사가에게 맡기는 편이었다.[10]

솔로 초기에는 '마츠이 고로[11]'가 히무로의 곡 대부분을 작사하였으며[12] 이후에는 '모리 유키노죠'와도 많은 협업을 하였다. 유키노죠는 시적이고 아름다운 표현에 능하여 히무로의 발라드 곡 다수를 작사하였는데[13] 대표적인 히무로의 발라드 곡 중 하나인 '다이아몬드 더스트[14]'의 가사가 바로 유키노죠의 작품이다. 2006년에 GLAY와의 콜라보레이션 곡인 ANSWER 를 발매하고[15] 그 해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함께 조인트 콘서트를 개최한 이후에는 GLAY와도 꾸준히 교류를 하여 리더인 TAKURO에게서 가사를 제공받기도 하였는데, 히무로의 12번째 정규 앨범인 "B"ORDERLESS 에서는 13개[16]의 수록곡 중 무려 4개의 곡이 TAKURO의 작사이기도 했다.

코이즈미 쿄코[17], KAT-TUN[18], 소리마치 타카시[19], BREAKERZ의 DAIGO[20] 등 여러 유명인들에게 곡을 제공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제공한 곡을 재편곡하거나 가사를 바꾼 후 작곡자인 본인이 직접 불러 리메이크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3001年のスターシップ은 대대적인 편곡을 가하고 가사와 제목까지 싹 바꿔 LOVE & GAME[21]이라는 곡으로 발표하였고 KEEP THE FAITH는 가사를 수정하고 편곡을 가해[22] 본인의 20주년 베스트 앨범에 수록하였다. ONE은 약간의 편곡을 하고서 beat haze odyssey라는 앨범에 수록하였다. MARIA도 제목을 CLAUDIA로 바꾼 후 FOLLOW THE WIND라는 앨범에 수록하였다.

전문직 종사자의 프로 정신을 강조하는 일본의 정서를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독보적인 프로 정신의 소유자였다. 대표적인 일화로서 2014년에 자신의 솔로 활동 25주년 기념 투어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2014년 7월 20일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리허설 때 비에 젖은 무대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로 인하여 50대의 몸으로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음에도 그 고통을 견디며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총 23곡의 곡을 부르며 공연을 완주해 낸 일화가 있다.

당시의 공연은 그의 공식 팬클럽인 KING SWING 한정으로 DVD 및 블루레이로 발매되었으며 당시의 영상을 보면 처음에는 비교적 무탈한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다가 공연의 중반쯤부터 고통으로 인해 몸을 격렬하게 비틀어가며 노래를 부르는데 그런 와중에도 가사나 박자를 놓치는 일이 없었다. 다만 공연의 마지막 곡인 ANGEL[23]을 부를 때는 활동기간을 통틀어 가사를 저는 일이 거의 없었던 그답지않게 가사를 잠시 놓치는 장면이 있었지만 이미 거기까지만 해도 초인적인 정신력이라고 말하기 충분한 수준이었으며,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팬들의 모습이 수차례 카메라에 잡혔다.[24] 실제로 그의 팬들은 그의 음악성이나 가창력, 퍼포먼스 뿐만이 아닌 이러한 카리스마에 매료된 사람들이 많다.

그의 이러한 프로페셔널함은 이미 20대 중반 무렵에도 확고히 자리잡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싱글 B・BLUE 발매 즈음인 1986년의 잡지 인터뷰[25]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나 있다.
"투어가 시작되면 부담감은 당연히 크죠. 내 몸 컨디션을 관리 못하는건 프로로서 나의 잘못인거고, 무대 위에서 핑계가 되지 않으니까. 관객들한테도 미안하고. 관객들은 자신만만한 히무로 쿄스케를 보러 오는 거니까요. 사람이 즐거운 일만 있는게 아니니까 다운될 때도 있지만, 무대에 한 발 내디디면 신기하게도 변해요. 이 녀석들이 기뻐해 준다면야 나는 죽어도 괜찮다는 기분이 되죠. 하지만 다운되면 오래 가요. 남한테 알리진 않지만. 무대 위에서 다운된 나를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버리면 내 스스로 나라는 인간은 끝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나한테 뭔가 힘든 일이 있다고 쳐요, 내가 힘든걸 다들 알아줘 라고 말을 하면 나는 그냥 끝나는 거에요. 그게 왜 그러냐면, 타인이 아무리 끝이 아니라고 해봤자 내가 끝이라고 생각하니까. 나는 그 부분만으로 살아가니까. 아내에게도 우는 소리는 안 해요. 돈을 내고 온 관객 앞에서 그런걸 티내면 끝인거죠. 그러니까 내 안에서, 그 미의식에 반하는 일을 하면 나의 패배인 겁니다."[26]

보위 시절부터 뛰어난 가창력은 물론 화려한 무대장악력과 매력적이고 뛰어난 비주얼[27],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라이브 명 MC[28] 등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열성적인 추종자들이 매우 많기로 유명했으나, 특히 솔로 활동시기 후반으로 갈수록 무대 위에서의 강력한 카리스마와는 대비되는 인간미 넘치는 일면과 한결같이 흔들림 없는 자세로 삶에 임하는 올곧은 주관과 자기관리, 일관된 언행일치를 실현하는 스토익함 등 수십년 간 보여진 그의 인성과 인생 자체를 존경하고 응원한다는 팬층이 늘어났다.

이러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는 그의 모범적인 사생활도 한 몫 하였는데, 보위가 아직 무명이었던 시절에 만난 1살 연하의 동향 출신 일반인 여성과 20대 초반에 일찍 결혼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잡음이나 스캔들 없이 화목한 가정생활을 꾸려오고 있다.[29] 당대 최고 락 밴드의 화려한 프론트맨 출신인 만큼 수많은 여성팬들의 동경의 대상이었고, 그의 팬임을 공언하는 여성 연예인들이 줄지어 있었음을 고려할 때 이는 흔한 세간의 편견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행보이다. 오자키 유타카를 비롯한 동세대 록커들 사이에서 빈번하던 마약 복용도 일절 하지 않았으며[30] 인터뷰에서도 그런 것에 의존할 생각은 없다는 언급을 했다.[31]

음악인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인, 돌발성 난청으로 인한 청력의 손실이 심해져[32] 당시에 이미 은퇴[33]에 대한 뜻을 내비친 바 있던 그였지만,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된 무대를 선보이지 못했다는 미련이 강하게 남았는지 공연을 마치기 전 팬들을 향해 "오늘의 리벤지를 어딘가에서 반드시 하겠습니다. 그 때가 되면, 다시 한번 이 한심한 인간을 지지해 주셨으면 합니다."[34]라는 말과 함께 팬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고서 공연을 마친다.

그 이후, 자신이 선언한대로 2016년에 BOOWY로서 개최했던 마지막 공연의 이름을 딴 4대 돔 투어 "LAST GIGS"[35]를 개최하였고 해당 투어를 마지막으로 라이브 활동을 공식 은퇴하였다.[36]

'히무록(히무로+ROCK)', 'KING OF ROCK', '일본 락계 고고(孤高)의 카리스마'라는 고유의 애칭들로 불리며 많은 존경을 받고, 아메리칸 하드 락에 기반한 자신만의 개성적이고 미학적인 스타일을 구축하며 상당히 높은 위상을 지녔던[37] 그의 은퇴를 두고 한 일본인 네티즌은 "일본은 히무로(氷室), 코무로(小室)[38], 아무로(安室). 3대 '무로(室)'를 잃었다." 는 안타까움 섞인 말을 남기기도 했다.[39]

두터운 코어팬덤을 보유한 만큼 극성팬들이 일으킨 사건사고도 많은 편인데, 일례로 히무로의 부모가 거주하던 타카사키시의 본가에 불을 지르고 경찰에 자수한 여성팬이 있는가 하면, 히무로의 애장품 등을 전시했던 이벤트성 특별전에서 그가 애용하던 액세서리 2점을 훔쳐서 달아난 남성팬#도 있었다.

BOØWY와 마찬가지로 한국을 비롯해 해외에서의 인지도는 낮은 편이나 그의 대표곡인 '魂を抱いてくれ'나 'ダイヤモンド・ダスト'가 2000년대 초기에 국내에서 커버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GLAYB'z를 비롯한 한국에서도 나름 인지도 있는 밴드와의 콜라보가 이루어지고 있고 오덕계에서는 일본 드라마의 삽입곡이나 파이널 판타지 7 어드벤트 칠드런의 ED, 용과 같이 5의 수록곡 등으로 인지도를 넓히고 있다.

3. 디스코그래피

3.1. 정규 앨범

발매일 제목 최고순위 판매량
1988.09.01 FLOWERS for ALGERNON 1위 559,370장
1989.09.27 NEO FASCIO 1위 543,390장
1991.04.06 Higher Self 1위 646,040장
1993.01.07 Memories of Blue 1위 1,341,650장
1994.09.26 SHAKE THE FAKE 1위 715,820장
1996.09.30 MISSING PIECE 1위 657,030장
1997.12.10 I・DÉ・A 1위 341,760장
2000.02.23 MELLOW 5위 217,140장
2000.10.18 beat haze odyssey 3위 143,040장
2003.08.20 FOLLOW THE WIND 2위 105,301장
2006.12.20 IN THE MOOD 3위 102,626장
2010.09.08 "B"ORDERLESS 3위 81,863장

3.2. 베스트 앨범

발매일 제목 최고순위 판매량
1995.07.19 SINGLES 1위 1,367,060장
1998.06.24 Collective SOULS ~THE BEST OF BEST~ 4위 592,070장
2001.09.27 Ballad~La Pluie 7위 93,640장
2003.03.19 Case of HIMURO 7위 214,119장
2008.06.11 20th Anniversary ALL SINGLES COMPLETE BEST
JUST MOVIN' ON ~ALL THE-S-HIT~
1위 175,619장
2013.08.21 KYOSUKE HIMURO 25th Anniversary BEST ALBUM
GREATEST ANTHOLOGY
1위 104,250장
2016.04.13 L'EPILOGUE 1위 148,096장

3.3. 라이브 앨범

발매일 제목 오리콘 최고순위 비고
1998.12.09 The one night stands tour "Collective Souls" 1998 6위
2004.12.24 21st Century Boowys vs HIMURO 7위

3.4. 싱글

발매일 제목 최고순위 판매량 수록앨범
1988.07.21 ANGEL 1위 375,480장 FLOWERS for ALGERNON
1988.10.07 DEAR ALGERNON 2위 131,670장
1989.07.26 SUMMER GAME 1위 310,490장 NEO FASCIO
1989.09.06 MISTY ~微妙に~ 2위 256,110장
1990.05.16 JEALOUSYを眠らせて 1위 453,920장 Higher Self
1991.02.27 CRIME OF LOVE 2위 292,040장
1992.02.26 Urban Dance 2위 295,920장 Memories of Blue
1992.11.07 Good Luck My Love 5위 323,770장
1992.12.07 KISS ME 1위 1,230,750장
1994.08.29 VIRGIN BEAT 1위 560,950장 SHAKE THE FAKE
1995.10.25 魂を抱いてくれ[40] 2위 712,480장 MISSING PIECE
1996.06.24 STAY 1위 486,620장
1996.08.15 SQUALL 1위 477,670장
1997.01.15 WALTZ 4위 226,070장
1997.06.04 NATIVE STRANGER 2위 233,020장 I・DE・A
1997.10.29 HEAT 5위 170,540장
1999.08.18 SLEEPLESS NIGHT ~眠れない夜のために~ 6위 152,220장 MELLOW
1999.10.27 ダイヤモンド・ダスト[41] 3위 319,190장
2000.01.15 永遠 ~Eternity~ 13위 78,250장
2000.06.28 炎の化石 81위 2,520장 Collective SOULS ~THE BEST OF BEST~
2001.01.01 Girls Be Glamorous 10위 89,680장 beat haze odyssey
2003.07.21 Claudia 10위 51,886장 FOLLOW THE WIND
2004.09.08 Wild Romance 6위 50,187장 IN THE MOOD
2006.02.08 EASY LOVE / BITCH AS WITCH 6위 41,926장
2006.10.04 SWEET REVOLUTION /
IN THE NUDE ~Even not in the mood~
3위 50,652장
2010.07.14 BANG THE BEAT / Safe And Sound 3위 39,286장 "B"ORDERLESS
2011.12.14 IF YOU WANT 4위 27,178장 KYOSUKE HIMURO
25th Anniversary BEST ALBUM
GREATEST ANTHOLOGY
2012.09.26 WARRIORS 5위 21,841장
2013.05.01 NORTH OF EDEN 6위 24,055장
2014.07.16 ONE LIFE 6위 30,007장 L'EPILOGUE

3.5. 콜라보레이션 싱글

발매일 제목 오리콘 최고순위 비고
2006.08.02 ANSWER 2위 GLAY와의 합작 싱글로 작사/작곡은 GLAY의 타쿠로.
2009.04.29 Safe And Sound - 아이튠즈 스토어에서 공개된 싱글로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보컬 제라드 웨이가 피처링함.
2010년에 BANG THE BEAT와 더블 싱글로 CD화되어 발매됨.

3.6. 컴필레이션 앨범

발매일 제목 오리콘 최고순위 비고
1991.08.21 LOVER'S DAY double happiness 5위 연주곡 앨범.
1992.04.25 masterpiece#12 1위 리믹스 앨범. 마이클 잭슨Billie Jean을 믹싱한 브루스 스웨디엔을 포함하여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앨범을 믹싱했던 브루스 람코프, 스팅의 앨범을 프로듀싱했던 닐 도르프스만 등의 해외 유명 엔지니어들이 히무로의 곡을 재믹싱함.
1999.01.27 LOVER'S DAY II 97위 연주곡 앨범.


[1] 활동 초기에는 氷室介로 표기했으나 84년 12월, 교토에 갔을 때 그 곳의 점술가로부터 그런 이름을 쓰는 것은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 狂을 京으로 바꿨다고 한다. 狂을 쓰든 京을 쓰든 둘 다 발음은 '쿄스케' 로 동일하다.[2] 단, 이 시절은 히무로 본인에게 있어서 흑역사 취급인지 딱히 언급도 없고 관련 자료를 찾기도 힘들다.[3] 보위의 주역이었던 히무로와 호테이가 정확히 어떠한 사유로 인해 해체를 결정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호테이 토모야스 항목을 참조. 이후 알려진 몇몇 설과 타카하시 마코토의 증언에 따르면 한창 보위의 인기가 절정에 달해있을 때 해체하자는 호테이의 의견이 있었고 멤버들 또한 동의했던 모양.[4]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앨저넌에게 꽃을에게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으며 타이틀곡인 'DEAR ALGERNON'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된다.[5] 파이널 판타지 7 어드벤트 칠드런 컴플리트의 엔딩곡으로 선정되었다. 컴플리트 이전 무인판의 엔딩곡은 NEO FASCIO에 수록된 CALLING.[6] 이전부터 이어진 청력 손실이 크게 악화되는 바람에 은퇴를 결정했다고 한다.[7] 단, 라이브 활동을 은퇴한 것이지 음악 자체를 그만둔 것은 아니며 근래에 마츠모토 타카히로의 솔로 음반에 작사와 보컬로서 참여하여 정말 오랜만에 공식적인 활동을 하였다.[8] 도쿄 돔을 매진시킬 수 있는 솔로 아티스트는 일본 대중음악사 전체를 통틀어도 매우 소수인데, 그 중에서도 히무로 쿄스케는 솔로 데뷔를 완수한 1980년대부터 은퇴한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도쿄 돔 콘서트를 개최하여 매진시킨 극소수의 솔로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9] 보위의 데뷔 30주년 기념 베스트 앨범『BOΦWY THE BEST “STORY”』의 트랙리스트 선정을 위한 팬 공식투표에서 대망의 1위를 차지한 곡이 바로 히무로가 작사작곡한 명곡 Cloudy Heart 였다.# 또한 보위의 실질적인 첫 메이저 히트곡 역시 히무로의 작품인 わがままジュリエット(제멋대로 줄리엣)이다. 본작은 앨범 JUST A HERO의 선행 싱글로 발매된 관계로, 실질적 판매량과는 무관하게 보위가 메이저 씬에서 팬덤을 급속도로 늘려가는 신호탄이 된 곡이다.[10] 이렇게 된 계기가 상당히 골때리는데, 보위 시절에 그가 작사작곡한 SCHOOL OUT이라는 곡을 듣고는 한 팬이 학교를 자퇴하고서 히무로에게 '당신이 말한대로 학교를 자퇴하였습니다.'라는 팬레터를 보냈다고 한다. 이 일화로 인해 히무로는 본인의 가사가 가진 영향력에 부담을 느끼게 되어 전문 작사가에게 작사를 맡기게 되었다고 한다. 비슷한 일화로 오자키 유타카 또한 본인의 곡 卒業(졸업)의 가사인 '한 밤의 학교 창문을 부수며 돌아다녔어'를 어린 학생들이 곧이곧대로 듣고는 진짜로 학교의 창문을 부수며 돌아다녔던 사건이 여럿 발생하여 당혹스러웠다고 하며 그 탓에 많은 항의를 받고 사과까지 한 적이 있다.[11] 80년대초부터 활동한 작사가로 안전지대의 전성기 히트곡 대부분을 작사한 바 있는 거물 작사가이다.[12] 보위의 대표곡인 Dreamin`을 호테이와 공동 작사한 바 있다.[13] 물론 발라드뿐만이 아닌 록 넘버 또한 여럿 작사한 바 있다.[14] 드라마 얼음의 세계의 주제가이자 게임 용과 같이 5의 엔딩 테마다.[15] 언리미티드 레코드와의 분쟁으로 글레이가 밴드 내외적으로 힘들어하던 시절 히무로의 도움으로 레이블을 EMI로 잠시 이적한 적이 있었다.[16] 초회한정판 기준이며 일반판은 11곡이다.[17] 3001年のスターシップ이라는 곡을 제공했다.[18] KEEP THE FAITH라는 곡을 제공했다.[19] ONE이라는 곡을 제공했다. 정확히는 히무로가 작곡하고 소리마치가 작사를 담당한 공동 작업물이라고 보는 것이 알맞다.[20] MARIA라는 곡을 제공했다.[21] 히무로의 첫 솔로앨범인 FLOWERS for ALGERNON의 수록곡으로 그의 공연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용도로 거의 필수요소급으로 자주 불러졌던 곡이다. 현지에서는 '너무 자주 불러서 질릴 정도다.'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고...[22] GLAY의 히사시가 편곡을 담당했다.[23] 1988년에 발매된 히무로의 솔로 데뷔곡으로서 그의 솔로 커리어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곡이다.[24] 그런 프로 정신에 비례하여 그는 업계에서 완벽주의적 기질이 강한 것으로 유명했다.[25] 타카라지마(宝島) 86년 10월호 BOOWY 롱 인터뷰[26] ツアーが始まると凄いプレッシャーはあるよね。自分の身体の調整出来ないのはプロとして自分が悪いし、ステージの上で言い訳出来ないじゃん。客に対して悪いしさ、客は自信満々の氷室京介を観に来てると思うの。人間楽しいことばかりじゃないから、落ち込む時もあるけどステージに1歩出たら不思議と変るんだよね。こいつらが喜んでくれたら死んでもいいぐらいの気持ちになれるんだよね。でも落ち込むと長い。人には見せないけど。ステージの上で落ち込んでる自分をさらしたいと思うこともあるけど、それをやったら自分自身で俺っていう人間は終りだなって思う。例えばさぁ、俺が何か辛いことがあるとする。この辛さをみんな分かってくれって言ったら俺はもう終りだと思うのね。それは何でかっていったらさ、他の人が言ったってそれは終りじゃないよ、でも俺は終りだと思う。俺はその部分だけで生きてるから。カミさんにも泣き事言わないし。それを金払ってる客の前で出したら終りだ。だから俺の中で、その美意識に反したことをやったら俺の負けなんだよね。- 宝島 1986年10月号P87 宝島ロングインタビュー「最後の賭け(ラスト・チャンス)」氷室京介(BOOWY)[27] 보위가 메이저 씬에서 대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급작스럽게 히무로의 소위 얼빠들이 급증하여, 락 밴드로서는 다소 당황스러운 상황들에 직면하게 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28] 대표적으로 '라이브 하우스 무도관에 어서와! (「ライブハウス武道館へようこそ! ここは東京だぜ?#」)', '우리들은, 아직 전설같은 게 아니야! (「多分これから、いろんな人たちがここで伝説作ってくと思うけど、俺らは、まだまだ伝説になんかなんねーぞ!#」)' 등이 있다.[29] 소위 말하는 잉꼬부부이다. 일설에 의하면 가사나 육아에도 늘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30] 히무로 쿄스케는 술도 거의 즐기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배인 GLAY의 TERU의 증언 등이 뒷받침하고 있는 사실이다. 애주가인 TERU가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냐며 술자리에 권유하자, 난처해하던 히무로가 그 후 '나 술 마시는 연습 해왔어' 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31] 다만 담배에 대해서는 상당한 헤비스모커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보위시절부터 솔로 중반시기에 이르기까지 그가 담배를 들고 있거나 피우는 사진은 검색 좀 해보면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고 담배를 피우며 인터뷰를 진행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다만, 히무로 쿄스케 뿐 아닌 음악에 종사하는 사람 중에는 그 이상 가는 헤비스모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을 뿐더러 금연구역을 빡세게 관리하지 않거나 실내흡연에도 관대했던 당시 시대상을 감안하면 흡연 장면이 많이 찍힌 것도 충분히 감안할 만 하다. 흡연 자체는 30대 후반을 전후로 금연하였으며 금연 당시에 니코패치를 애용했다고 한다. 지천명의 나이가 넘어서까지 라이브 활동을 지속해 온 만큼, 금연을 한 것은 지극히 현명한 판단이었다.[32] 정황상 2000년대 초부터 청력의 악화가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청력의 손실을 극복하기 위해 한쪽 귀에 보조 장치를 끼우고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쪽 손으로는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하며 다른 쪽 손으로는 장치를 끼운 귀에 손가락을 짚고서 공연을 해 왔는데 어느새 이것이 그를 상징하는 시그니처 포즈가 되어 그의 팬들 중에는 노래할 때 이 포즈를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이전에 히무로 고유의 새끼손가락으로 마이크를 받치는 그립 방식, 무대 위에서 자주 취했던 특유의 자세 등은 보위 시절부터 이미 매우 유명하긴 하다.)[33] 은퇴는 꽤나 오래 전부터 생각한 것으로 보이는데 앨범 "B"ORDERLESS가 발매된 2010년도에 했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아내에게 이따금씩 '내게는 재능이 없다.', '은퇴하고 싶다.' 등 속마음을 털어놓았다고 한다.[34] 원문은 今日は本当に申し訳ない。プロとして、怪我をしていてこれ以上出来ないけど、このリベンジをどっかで必ず。その時は、もし本当に、こんな情けない人間をもう一回支えてくれる連中が集まってくれたら、いいなと、思います。(오늘은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프로로서... 부상을 입어 이 이상은 힘들지만 이 리벤지를 어딘가에서 반드시 하겠습니다. 그 때는, 혹여라도 정말... 이런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간을 한 번만 더 지지해 주시는 분들이 와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35] 교세라 돔에서 2일간, 나고야 돔에서 1일간, 후쿠오카 돔에서 1일간, 도쿄 돔에서 3일간으로 총 7회의 공연을 했다.[36]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라이브 활동에 대해 은퇴를 선언한 것이지 음악 활동 자체를 그만두겠다고 한 것이 아니다.[37] CD 총 판매량이 1656.2만장으로, 2023년 현재 오리콘 집계 기준 역대 남성 솔로아티스트 전체 5위의 자리에 올라있다. 애초에 히무로가 TV에도 거의 출연하지 않으며 유행이나 대중성에 얽매이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해 온 것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순위이며, 이는 그만큼 두터운 매니아층이 확고했다는 의미이다.[38] 우연의 일치로 히무로와 코무로 둘 다 돌발성 난청을 앓았다.[39] 물론 코무로 테츠야는 현재 복귀하여 활동 중이다.[40] 한국에서 TRAX가 "영혼을 감싸안아"라는 곡으로 2006년에 커버함[41] 한국에서 포지션이 "애심"이라는 곡으로 2003년에 커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