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14:10:49

코이즈미 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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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즈미 쿄코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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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즈미 쿄코
[ruby(小, ruby=こ)][ruby(泉, ruby=いずみ)] [ruby(今日子, ruby=きょうこ)] | Kyoko Koizumi
파일:kyokokoizumi.jpg
출생 1966년 2월 4일 ([age(1966-02-04)]세)
가나가와현 아츠기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신체 153cm, O형
직업 배우, 가수, 작사가, 수필가, 작가, 프로듀서
활동기간 1982년 ~ 현재
소속사 주식회사 아삿떼(株式会社明後日)[1]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2]
1. 개요2. 연예계 활동
2.1. 데뷔까지2.2. 데뷔 이후
3. 논란 및 사건 사고
3.1. 뺑소니3.2. 불륜
4. 여담5. 싱글 디스코그래피6. 출연 작품
6.1. 드라마6.2. 영화

[clearfix]

1. 개요

일본배우가수이다. 바닝프로덕션의 여왕이자, 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아이돌이다. 애칭은 쿙쿙(KYON², キョンキョン)[3] 혹은 KoizumiX[4], コイズミ(코이즈미)다.[5]

2. 연예계 활동

2.1. 데뷔까지

1981년 닛폰 테레비의 <스타 탄생!> 출신으로 이시노 마코의 노래 <그가 첫사랑(彼が初恋)>을 불러 합격했다. 이후 소속사 바닝프로덕션 레이블 빅터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고, 1982년 3월 21일 싱글 <나의 16살(私の16才)>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2.2. 데뷔 이후

대표곡 <뭐라해도 아이돌> 무대 영상

나카모리 아키나, 하야미 유, 마츠모토 이요, 호리 치에미, 이시카와 히데미 등 같은 해에 데뷔한 아이돌들과 한데 묶여 '꽃의 82년조(花の82年組)'라고 불렸다. 동기들 중에서는 나카모리 아키나와 특히 친했던 듯.[6] 지금에 와서는 82년조의 필두가 이 두 사람(아키나-쿄코)으로 꼽히지만, 데뷔 무렵에는 일본 레코드 대상 신인상 수상에 실패하는 등 그렇게 눈에 띄거나 인기 있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TV 버라이어티 출연, 그라비아 화보 촬영 등 해를 거듭하며 인기를 모아, 톱 아이돌로 성장. 총 판매량도 다른 동기들을 훌쩍 뛰어넘어 쿄코는 1400만장, 아키나는 2500만장 이상으로 세이코, 아키나, 쿄코는 '80년대 3대 여성 아이돌'로까지 일컬어질 정도.

대표곡은 <학원천국(学園天国)>[7][8], <뭐라해도 아이돌(なんてったってアイドル)> 등이며, 이후 1990년부터 전곡의 작사를 함께 도맡게 됨[9]에 따라서 전형적인 아이돌 노선이 아닌 아이돌 사이에서 유행하지 않던 하우스 뮤직을 적극 채용해 인디 뮤지션으로 노선을 급선회하는데, 발매한 싱글들이 아이돌들의 몰락하던 시기에 발매됐지만 꾸준히 저공행진하면서[10] CM송과 드라마 OST로 타이업되면서 아이돌 시절부터 쭉 좋아했던 팬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때 쿄코가 작사를 맡으면서 공식적으로 등극한 최대 히트곡은 91년에 발표한 32번째 싱글 <당신을 만나서 다행이었어(あなたに会えてよかった)>이다. 이 곡은 본인이 직접 작사하였으며, 105만장의 판매고를 올려 그녀의 유일한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덧붙여, 모든 싱글과 앨범을 모두 합산한 총 판매량은 1426만장. 오리콘 BEST 10 진입 곡수는 여성 가수 중 역대 4위(33곡).[11]

1980년대 중후반이 그녀의 최전성기이며, 이 시기에는 주로 가수로 활동하며 홍백가합전에 5회 연속 출장하는 등 인기몰이를 했다. 이후 1990년대 들어 가수 활동보다는 배우로서 연예계 활동을 계속해, 현재는 여배우로 더 인식된다.[12] 여배우로서의 수상이 더 많고 화려한 편.[13] 이 때문에 연기에 도전한 동년배 아이돌 중에서는 가장 성공적으로 안착한 케이스로 손꼽힌다. 각본가 쿠도 칸쿠로의 페르소나 중 한 명이며, 2008년 이후론 구로사와 기요시의 새로운 페르소나로 자리 잡은 듯 하다.[14]

1995년에 배우 나가세 마사토시(1966년 7월 15일생)와 결혼했으나 2004년 이혼했다.[15] 전 남편과는 2011년, 영화 <매일 엄마>에서 6년만에 부부 역(각각 사이바라 리에코/카모시타 유타카 역)으로 함께 출연했다.

2012년 3월 12일, 기념적인 데뷔 30주년을 맞이했다. 데뷔일인 3월 12일에 베스트 앨범인<Kyon30〜なんてったって30年!〜>(쿙30~뭐라하든 30년!~)을 발매했다.

2013년에는 아마짱이 연기한 주인공 아마노 아키의 엄마인 아마노 하루코로 출연했고, 파도 소리의 메모리를 불렀다. 동년 12월 31일, NHK 홍백가합전에 아마짱 콜라보 스페셜 메들리 도중 파도소리의 메모리 2절 부분에 극중 역인 아마노 하루코 명의로 출장했다.

춤추는 대수사선 THE MOVIE에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등장했다.

2005년부터는 요미우리 신문의 독서위원으로 활동중이다.

2020년 8월 21일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감염 확산 우려로 데뷔 38년만에 최초로 무관중 라이브인 "노래하는 코이즈미씨(唄うコイズミさん)"를 시부야에서 진행했다.

2020년 10월에 개최되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녀가 프로듀싱한 영화 ‘Soireé(ソワレ)'가 개봉하게 되었다!

2022년 2월 18일부터 가나가와 현을 기점으로 1991년 이후 31년만에 영광적인 데뷔 40주년 기념투어인 "K40N2-KKPP"를 1달동안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꽃의 82년조" 출신 가수 중 가장 빠르게 40주년 기념활동을 시작했다.

3. 논란 및 사건 사고

3.1. 뺑소니

2005년 1월 26일 새벽 6시 20분경, 코이즈미가 길거리에 주차하고 있던 신문배달원의 미니바이크에 차를 치고 그대로 도주한 사건이다. 일명 <쿙쿙 뺑소니 사건>. 남성에게 부상은 없었지만, 오토바이가 전도해, 오른쪽 손잡이가 파손. 피해 남성의 신고를 받아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고, 배달원이 기억한 번호 일부와 도주한 차량의 특징을 파악한 결과, 범인은 코이즈미 쿄코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에서 코이즈미는 충돌했다는 인식이 없었다며 '타이어가 펑크 난 줄 알았다, 멈춰서 확인했어야 했다' 등의 진술을 했다고 한다. 분명 펑크가 났다고 느낄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면 그 타이어는 완전히 터졌을 것이고, 역시 보통은 정차시킬 것이므로 구차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경찰은 그녀를 도로 교통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였다. 3월 15일, 경찰은 경미한 사고이자 당사자 간의 합의가 성립되고 있는 점, 피해자가 관대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는 점, 용의자 본인이 반성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 등으로 기소 유예 처분을 내렸다.

당시 그녀의 회사가 악명 높은 바닝프로덕션인지라[16] 보도가 지극히 적었고 TV에서는 다루어지는 일도 없었다.# 경찰이 관여하고 있는 사건인데도 이상할 만큼 조용한 매스컴의 대응. 그 이유는 바닝프로덕션의 스오 이쿠오 사장이 코이즈미를 가장 애정 했기 때문이라고.[17] 그 효과는 절대적이었다. 사건이 발각된 이후에도 공개적인 사과나 자숙조차 없었고, 드라마나 TV 광고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사고가 일어난 시간대나 평소에 그녀가 밤새 술을 마시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했던 것을 미루어 보아 음주운전 의혹을 제기하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18]

이 사건은 현재까지도 모르는 사람이 다반수다.

3.2. 불륜

2015년 3월 프라이데이를 통해 처음으로 배우 토요하라 코스케와 불륜설이 돌았고, 2017년 11월 토요하라와 공식 열애설이 터졌다. 당시 토요하라에게는 아내가 있어 불륜 교제로 논란이 되었다.
저, 코이즈미 쿄코는 2018년 1월 31일을 기해 오랜 세월 신세를 진 주식회사 바닝 프로덕션에서 독립하게 되었음을 보고드립니다. 2015년에 설립한 주식회사 모레는 새로운 꿈을 위해 설립한 제작사입니다. 설립 초기부터 힘을 실어주고 있는 배우 토요하라 코스케 씨는 같은 꿈을 좇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일부 주간지 등에서 보도되고 있는 대로 연인 관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기사도 많아, 토요하라 씨의 관계자 여러분께는 폐를 끼치고 있습니다. 토요하라 씨에게는 가정이 있습니다. 처음 사진지에 기사가 실렸을 때, 저는 가족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지켜달라는 뜻을 직원에게 전했습니다. 그 결과, 일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움직여 버린 채 몇 년의 시간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인터넷이나 잡지 등에는 이미 이혼했다는 잘못된 정보가 유포되고 있고, 그 때문에 가족의 존재 자체가 없어진 것 같은 형태로 계속 보도되고 말았습니다. 이 일련의 보도에 대해 토요하라 씨의 발언 기회를 빼앗아 버린 것도 제 행동에 한 요인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되어 가족들에게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스스로 발언하지 않은 것에는 후회의 마음밖에 없습니다. 사무실에서 독립한 지금, 한 개인으로서 모든 것을 이 몸으로 받아들일 각오입니다. 개인적인 일이지만, 인간으로서의 마지막으로서 보고하겠습니다.
2018년 2월 1일 코이즈미 쿄코 입장문
2018년 2월 코이즈미는 30년 넘게 몸담아왔던 소속사 바닝프로덕션에서 독립함과 동시에 토요하라와의 불륜 관계를 인정했다.

남의 가정에 가장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은 본인이면서 남의 가정에 피해를 주지 말라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토요하라 코스케도 1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코이즈미 쿄코는 서로 뜻을 같이하는 파트너이며, 연애 감정도 있습니다. 제가 이미 이혼한 것처럼 알려졌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처자가 있습니다. 나 자신과 가족의 문제를 앞으로 생각해 나갈 것이며, 책임은 모두 저에게 있습니다. 가족과는 3년 가까이 따로 지내고 있습니다. 가족 및 친척들에 대한 취재는 삼가주세요.
2018년 2월 1일 토요하라 코스케 입장문
토요하라는 2015년부터 코이즈미와 교제를 시작하며 처자식과 별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대중에게 맹비난을 받았지만 당당하게 교제를 이어나갔고, 이후 코이즈미는 2019년 1년 동안 연예 활동을 단기 휴지하는 것을 밝혔다.

2020년 3월, 토요하라와 아내가 이혼을 하면서 2억 엔 상당의 아파트를 아내에게 양도하는 형태로 쌍방 합의하에 이혼 성립이 되었다. 코이즈미와 토요하라는 결혼까지 이어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아직까진 무소식.

4. 여담

  • '쿙쿙'이라는 별명처럼 통통 튀는 이미지로 일본 광고계의 보증수표로까지 통했던 시절이 있었다. 대략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 정도. 당시 일본 광고주들 사이에 "코이즈미 쿄코를 광고에 기용한 상품은 무조건 팔린다"[19]는 얘기가 있었을 정도. 그야말로 CM의 여왕. 실제로 그녀가 광고하기 전과 후의 매출이 상당히 차이가 났다고 한다.
  • 냥집사이다. 그래서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의 근황을 종종 올리곤 한다.
  • 83년에 골든 아이돌 상을 수상해서 노래를 부르는데 마이크 문제로 1분동안 목소리가 안나는 방송사고가 일어났다. 이후 쿄코는 관계자로부터 새 마이크를 받아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 2020년 기준 82년조에서는 아직까지 연예계 현역이며, 1인 기획사를 설립하고 영화 프로듀싱에도 참여하는 등 2010년대 들어 가장 성공한 연예인이다.[20]
  • 역대 최악의 단일 항공기 사고로 남아있는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가 나기 직전 그 비행기로 삿포로에서 도쿄로 돌아왔다고 한다.[21] 이후 그녀가 출연된 프로그램은 중간중간에 사고 속보가 나오다가 종료 후 사고 방송으로 넘어갔다고...
  • 작사가로는 아키모토 야스시와, 재일인 강진화[22], 그리고 쇼와와 헤이세이의 작곡업계의 거물들로 뽑히는 츠츠미 쿄헤이, 코바야시 타케시와 인연이 깊다.
  • Spotify의 팟캐스트 프로그램에서 구구단을 외우지 못한다고 충격 고백을 했다.
  • 2006년에는 인기 아이돌 그룹 KAT-TUN의 멤버 카메나시 카즈야와의 열애설이 보도되었다. 카메나시가 1986년생으로 코이즈미보다 20세 연하.
  • 금전에 대해 매우 엄격한 편이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회사가 도산해서 야반도주를 한 경험이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 2021년 몇 차례 인터뷰에서 A.R.M.Y 인증을 했다.# # 방탄소년단에게 아주 깊이 빠져 있으며, 자신의 삶에서 K-POP을 빼놓을 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K-POP을 높게 평가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 2021년 11월, 한국의 YTN 뉴스에 잠시 소개되었다. 평소 독서를 즐기는데, 한국 문학에도 관심이 많다고 한다. 덧붙여 "지금 가장 여행 가고 싶은 곳 1위가 한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중학교 때 양키였다.[25] 남자들과 차를 타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불량 남자 애들이 모이는 아지트에서 자주 놀았다고 한다.# #
  •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의 가해자들이 쿄코의 대표곡인 뭐라해도 아이들의 예-, 예이- 라고 하는 부분에 맞춰 피해자의 복부를 강타했다고 한다.

5. 싱글 디스코그래피

발매일제목순위
1982.03 나의 16살
(私の16才)
22위
1982.07 멋진 러블리 보이
(素敵なラブリーボーイ)
19위
1982.09 홀로 거리
(ひとり街角)
13위
1983.02 봄바람의 유혹
(春風の誘惑)
10위
1983.05 새빨간 여자아이
(まっ赤な女の子)
8위
1983.07 반반 소녀
(半分少女)
4위
1983.11 요염한 울보 아가씨
(艶姿ナミダ娘)
3위
1984.01 클라이맥스 함께
(クライマックス御一緒に)
4위
1984.03 물가의 하이컬러 인어
(渚のはいから人魚)
1위
1984.06 미궁의 안드로라
(迷宮のアンドローラ)
1위
1984.11 야마토 나데시코[26] 일곱가지 변화
(ヤマトナデシコ七変化)
1위
1984.12 The Stardust Memory 1위
1985.04 항상 여름인 아가씨
(常夏娘)
1위
1985.06 하트 브레이커
(ハートブレイカー)
6위
1985.07 마녀
(魔女)
1위
1985.11 뭐라해도 아이돌
(なんてったってアイドル)
1위
1986.04 100% 남녀교제
(100%男女交際)
2위
1986.07 새벽의 MEW
(夜明けのMEW)
2위
1986.11 초겨울 찬바람에 안겨
(木枯しに抱かれて)
3위
1987.02 물의 루쥬[27]
(水のルージュ)
1위
1987.07 Smile Again 2위
1987.10 키스를 멈추지 말아줘
(キスを止めないで)
1위
1988.03 GOOD MORNING-CALL[28] 2위
1988.10 쾌도 루비
(快盗ルビイ)
2위
1989.05 Fade Out 2위
1989.11 학원천국
(学園天国)
3위
1990.03 못 본 척해줘!
(見逃してくれよ!)
1위
1990.06 La La La… 10위
1990.09 언덕을 넘어서
(丘を越えて)
10위
1991.05 당신을 만나서 다행이야
(あなたに会えてよかった)
1위
1992.06 자신을 바라봐요
(自分を見つめて)
4위
1993.02 다정한 비
(優しい雨)
2위
1994.02 My Sweet Home 4위
1994.11 달 한방울
(月ひとしずく)
7위
1995.11 BEAUTIFUL GIRLS 14위
1996.10 남자아이 여자아이
(オトコのコ オンナのコ)
19위
1998.10 Nobody can, but you 78위
1999.08 for my life 33위
2013.07 파도소리의 메모리
(潮騒のメモリー)
2위
2014.06 T자 도로
(T字路)
14위

6. 출연 작품

6.1. 드라마

6.2. 영화


[1] 쿄코 본인이 대표직으로 있는 회사이다.[2] 소속사 트위터지만 본인이 직접 트윗을 올린다.[3] 아이돌 시절[4] 하우스/인디음악으로 노선을 변경한 뒤 사용한 애칭.[5] 최근 제일 많이 쓰는 애칭이다.[6] 둘 모두 <스타 탄생!> 출신. 아키나와 친해진 계기는 신인 시절 한 행사장 무대에서 누군가가 던진 계란을 맞고 당황해하고 있던 그녀에게 아키나가 달려와 무대 끝 쪽으로 데려다 주었다고. 이때 아키나를 '상냥한 언니 같은 사람'이라고 평했다. 최근의 아이돌 특집 프로에서도 등장해 이 일화를 이야기하기도 했다.[7] FINGER 5가 부른 곡이 원곡으로 코이즈미 쿄코가 부른 버전은 커버곡. 일본 드라마 '미래강사 메구루'에서 후카다 쿄코가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8] 이 노래를 발매할 때는 아이돌에 속했지만 밴드 크루들과 함께 음악방송에 악기를 준비하면서 무대에 오르는 등 헤이세이 들어서유행하기 시작하는 밴드 음악을 그나마 따라가는 형식을 보였다. 이후 발매하는 싱글들은 거의 다 밴드음악이다.[9] 첫 싱글 작사는 1988년 3월에 코무로 테츠야와 작업한 "Good-Morning Call"이다. 이 노래 역시 본인이 모델로 있었던 아지노모토 스프 광고의 CM송으로 타이업되었다.[10] 이 중 최고로 히트한 곡이 91년에 발매한 당신을 만나서 다행이었어하고 93년에 발매한 "상냥한 비"(優しい雨)이다.[11] 모닝구 무스메가 54곡으로 1위, 하마사키 아유미가 2위(48곡), 아무로 나미에가 35곡으로 3위.[12] 커리어를 보면 데뷔 때부터 여기저기 나오면서 꾸준히 연기를 해왔다. 그러다가 아이돌로써 생명력이 다한 1990년대 초부터 배우 커리어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13] 사실, 근래 들어 음악방송에 나간다던가 하는 가수활동은 거의 없다. 앨범이나 베스트음반은 가끔씩 내고 있고, 공연도 이따금 열기는 열지만.[14] 실제로 도쿄 소나타로 성공한 뒤 속죄 같은 단독 주연작을 맡기도 했고, 2017년작인 산책하는 침략자에서도 카메오 출연을 하는 등 꾸준하게 출연하고 있다.[15] 호리코시 학원의 동창생이다.[16] 야쿠자를 등에 업고 세운 일본 초거대 연예 기획사이자 일본 연예계의 비리와 부정부패의 중심.[17] 바닝의 여왕님은 코이즈미, 바닝의 황태자고 히로미였다고 한다.[18] 2014년 「웃어도 좋아」나 2016년 「테츠코의 방」에 출연했을 때, 22시간 동안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현관이나 길거리에서 자는 일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했다.[19] 원문은 小泉をCMで起用した商品は売れる[20] 현재는 불륜으로 이미지가 실추되어 각종 광고 섭외가 끊긴 상태다.[21] JA8119로 기종은 B747-100SR이다.[22] 보아의 히트곡인 Valenti의 작사를 맡았다.[23] 본인이 관리하는 트위터 계정에서 아베 마스크는 부패의 상징이라면서 비판했다.[24] 그래서 넷우익들은 쿙쿙이 냈던 싱글인 真っ赤な女の子(빨간 여자애)를 빗대어 "쿙쿙은 정말 빨간 여자"라면서 비아냥댔다.[25] 고등학교는 중퇴.[26] 일본의 전통적 여성상을 일컫는 단어로, 이 곡에서는 겉보기에 참해보이는 여성의 칠색조 같은 변화무쌍한 매력을 표현했다.[27] 가네보 화장품의 87년도 이미지 송이다.[28] 첫 작사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