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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212년, 이탈리아 중남부 캄파니아의 베네벤툼(현재 베네벤토)에서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가 이끄는 로마군과 한노가 이끄는 카르타고군이 격돌한 전투.2. 배경
기원전 212년 한니발이 타렌툼을 공략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사이(1차 타렌툼 공방전),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가 이끄는 로마군이 카푸아를 포위하기 위해 삼니움으로 진군했다. 두 사람은 기병대를 파견하여 카푸아 인근의 농경지를 약탈해, 그들이 굶주리게 했다. 이에 카푸아인들이 한니발에게 사절단을 보내 로마군으로부터 농성하고자 하니 밀을 보내달라고 부탁하자, 한니발은 한노에게 군대를 이끌고 브루시움에서 캄파니아로 진군해, 그들에게 밀을 공급하라고 명령했다.한노는 베네벤툼에서 4.5km 떨어진 곳에 숙영지를 설치한 뒤, 여름 동안 카르타고를 지지하는 동맹시로부터 밀을 전달받았다. 또한 주변 일대에서 공출한 짐마차와 소떼를 모아서 카푸아에 전달하려 했다. 당시 로마를 확고하게 지지하고 있던 베네벤툼 시민들은 즉시 보비아눔 인근에 진을 치고 있던 플라쿠스에게 120명의 사절을 보내 적의 움직임을 알렸다. 이에 플라쿠스는 극비리에 베네벤툼으로 이동했다. 그는 첩자들을 통해 수송마차 2천 대가 전날 적 진영에 들어와서 상당히 어수선하며, 한노는 식량을 공출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장병들에게 다음날 밤 적진을 공격하겠다고 지시했다.
3. 전투 경과
다음날 새벽, 로마군은 모든 짐을 베네벤툼에 놔두고 출발하여 해가 뜨기 전에 한노의 숙영지 인근에 도착했다. 하지만 카르타고군 숙영지는 가파른 언덕 위에 있고 잘 요새화되어 있어서 공략이 쉽지 않았고, 카르타고군이 생각보다 빨리 전열을 가다듬어 거세게 반격하는 바람에 공세는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몰렸다. 플라쿠스는 병사들이 죽어나가는 광경을 보고 트리부누스 밀리툼과 부관들을 소집한 뒤, 일단 철수한 뒤 동료 집정관 풀케르의 군대와 합세하여 다시 공격하기로 했다.이리하여 철수 명령이 내려졌지만, 군단병들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적진으로 쳐들어갔다. 특히 군단기를 들고 있던 한 병사는 해자를 넘어 적의 진영으로 뛰어들기까지 했고, 군단병들은 그걸 보고 서둘러 적진으로 뒤따라 달려갔다. 이걸 알게 된 플라쿠스는 후퇴 명령을 취소하고 계속 공격을 퍼붓게 했고, 한노의 군대는 크게 패하여 6천 명이 죽고 7천 명이 포로 신세로 전락했으며, 기껏 준비했던 밀과 수송마차, 그리고 소떼도 모조리 빼앗겼다. 플라쿠스는 베네벤툼으로 돌아온 뒤 전리품을 병사들에게 나눠준 후, 풀케르와 연합하여 카푸아를 포위했다. 이에 카푸아 시민들이 한니발에 구원을 요청하면서, 카푸아 공방전의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