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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二式十糎加農砲 (きゅうにしきじゅうセンチかのんほう) |
1. 개요
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
일본군이 보유한 야전용 견인포 중에서 가장 긴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어서 테러용(?)으로 94식 산포와 함께 유용하게 사용한 견인포다. 그리고, 가농포의 어원인 캐논(Cannon) 은 이미 포라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어서 뜻을 풀이하면 92식 '포포'가 된다. 다만 컬버린이나 캐논같은 단어들은 대포라는 뜻 외에 대포의 급과 종류를 뜻하기도 하고, 그런 분류로 캐논은 직사포를 의미한다.
사실 굳이 가농포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직사용 평사포를 표현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1] 실제로 저 당시 평사포들은 저렇게 기다란 포신을 가지고 있었다. 곡사포는 포신이 상대적으로 짧았다.[2]
2.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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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발
원래 일본에는 일본군의 기준으로 사정거리가 긴 캐논포인 14년식 10cm 캐논포가 있었다. 해당 캐논포는 타국의 견인포처럼 기본적인 성능을 구비한 것과 함께, 군마에 의해 견인되도록 한 견인포였다. 하지만 중일전쟁 등을 거치면서 자꾸만 전장이 넓어지므로 차량견인식의 위력 증대 화포로 개발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92식 10cm 캐논포이다.1923년 14년식 캐논포의 가(假)제식 채용과 동시에 개발에 들어간 신형포는 1924년 6월 23일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1927년에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방열포차 중량은 요구사항인 275kg을 초과하는 거대한 물건이 되어버렸고, 사정거리도 처음 요구했던 17,500m 이상의 사정거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연구개발에 들어가서 새로운 포가 1932년에 완성되어 정식 채용되었다.
일단 다른 일본군의 화포가 노골적으로 타국의 화포를 베끼거나, 아니면 일본 특유의 요소를 강화한답시고 이상하게 만들어진 것에 비해서는 구경은 좀 작지만 일본군 기준에서 그럭저럭 쓸만한 캐논포로 만들어졌다.
4. 특징
나름대로 일본군의 전성기 때 만들어진 물건이라 아래와 같은 장점이 있다.- 일본군이 야전에서 운용하는 포병의 견인포중 가장 긴 사정거리를 가진다. 다른 화포들이 끽해야 11~12km 수준의 최대사정거리를 가지는 데 비해 혼자만 18km 이상의 최대사정거리를 가진다. 따라서 일본군 포병이 연합군 포병을 상대로 대포병사격을 하려고 하거나 원거리의 목표를 사격할 때는 이 포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 수량이 적고, 장사정을 자랑하기 때문에 일본군 기준에서도 상황이 허락하는 한 전용 견인차량을 제공하는 등 대접이 좋았다. 이는 다른 일본군 포병이 인력으로 무거운 대포를 끌고 다니는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천당과 지옥 정도의 차이라 이 포를 운영하는 포병의 평가는 좋았다. 단, 상황이 어려워서 견인수단이 없거나 파괴된 경우에는 짤없이 92식 10cm 캐논포도 인력으로 끌어야 한다!
- 상대적으로 경량화되었다. 전작인 14년식 10cm 캐논포에 비해서도 크기도 별로 커지지 않고, 몇백 kg 수준의 중량증가만 있는데, 더 사정거리가 길어지는 등 성능이 좋아진 것을 감안한다면 화포에서 그정도 중량증가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긴급방열이나 철수 시 인력을 위주로 운용해야 하는 일본군의 입장에서는 그나마 부담이 줄었다.
하지만, 역시 일본군인지라, 아래와 같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 소형화하고 경량화한 결과, 일본군의 열악한 기술상태에서는 당연하게도 각 부속의 강도부족이 뒤따랐다. 당장 노몬한에서만 보아도 최대사정거리로 연사한 결과 포각 부분의 파손이 속출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좀 많이 쏜다 싶으면 포다리가 부러지는 등 포 자체가 알아서 붕괴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나온 이유는 해당 캐논포가 좁은 연습장에서 훈련시 1호 장약으로 실탄사격 연습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즉 실전을 가정해서 최대성능으로 테스트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해당 캐논포는 폐쇄기는 단추에 연결된 줄을 당겨 점화하는 방식이었고 탄약은 분할탄약통 방식으로 3호 휴대장약을 사용해서 주, 부 2단으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장약은 부단을 벗기지 않고 장착하는 1호장약(중량 4kg), 부단을 벗기고 장착하는 2호장약(중량 2.5kg)이 있어 이에 의해 사거리의 강약을 조절했다. 그러나 1호장약은 포신보호를 위해 평상시엔 사용하지 않았기에 실전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 문제는 나중에 생산된 물건에서는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태평양 전쟁 말기의 열악한 상황에서는 자재 자체의 신뢰성이 매우 떨어지므로 개수형도 믿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이 캐논포를 가지고 장거리 사격을 지속하면 심할 경우 멀쩡한 포를 버려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5. 실전
92식 캐논포는 1939년 할힌골 전투시 첫 출진하여 야전중포병 제 7연대(16문 장비)에서 사용되었다. 그 후에도 야전중포병 가운데서 가장 긴 사거리로 인해 태평양 전쟁 시작때부터 과달카날 전투등 여러 방면에서 출현했고, 오키나와 전투때도 사용될 정도로 종전까지 180문이라는 적은 생산량에 비하면 중요한 전장에 자주 출현했다.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할힌골에서는 장거리 사격을 지속하면 포다리가 부러지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포 자체가 붕괴되는 문제점이 있는데다가, 탄착성능도 별로 좋지 않아서 적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근처의 일본군 진지를 맞추는 등의 사태가 나서 다른 일본군의 화포와 마찬가지로 차라리 사격을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그래서 적은 생산량에도 불구하고 개수형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일본군 입장에서는 어찌되었든 가장 긴 사정거리를 자랑하기 때문에 군단포병에 몇 문이 배치되는 등 약방의 감초처럼 주요 전장에서 사용될 수 밖에 없는 처지였고, 곧 일본군의 보급체계가 열악해지면서 포탄 수급도 힘들어지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러자 일본군 포병은 전투방식을 바꾸었는데, 긴 사정거리를 이용해서 활주로 등 맞추기 쉽고 어디에 맞아도 일단 피해를 보는 표적을 대상으로 최대한 먼 거리에서 몇 발 쏴서 적을 방해한 후 재빠르게 대포병사격을 회피하는 역할로 운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효과를 크게 거두었다.
당장 연합군 입장에서는 잘 해봐야 1-2문밖에 배치가 안된 해당 캐논포가 큰 골칫거리였다. 다른 일본군의 화포와는 달리 사정거리가 길고, 몇 발 안쏘는 상황에서는 정확하게 명중하며, 105mm란 화력을 무시할 수 없었던 데다가, 일본군의 전투기나 폭격기등이 등장해서 요격하려고 요격기가 발진하는 순간에 활주로를 사격하는 식으로 당해보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사격을 하니 위협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피스톨 피트[3]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였으며, 해당 캐논포의 사격을 막기 위해 교두보의 크기를 늘리고, 관측소를 때려부수는 등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일본군의 위장이 워낙 교묘해서 정확한 위치를 발견할 수가 없었고 마침내 구경과 사거리가 훨씬 더 우월했던 M59 155mm 평사포 포대를 지원받아 대포병사격으로 박멸시켰다. 그래서 연합군 측에서는 의외로 이 캐논포에 대한 평가가 좋았다.
6. 평가
종합적으로는 타국의 장사정용 캐논포에 비해 약간 모자란 성능과 낮은 신뢰성을 가졌지만 전장의 특수성과 운용방식으로 인해 실제 성능보다 상당한 대접을 받는 캐논포다. 그리고 일본군이 보유한 견인포중 가장 긴 사정거리를 가진 탓에 전쟁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적은 생산량에도 불구하고 각지의 격전지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모습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존재를 끝까지 알린 대포이기도 하다.그러나, 능력 부족은 어쩔 수 없어서 일본군이 앞서 설명한 것 처럼 쏘고 튀기를 하지 않고 정식으로 대포병사격을 한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돌릴 경우에는 상당히 실망스런 결과를 가져왔다. 당장 앞서 언급했듯이 장시간 최대사정거리로 쏘면 포다리가 부러지는 문제도 있었을 뿐더러, 일본군의 적은 탄약량 가지고는 이 캐논포가 충분한 화력을 발휘하도록 많은 포탄을 조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형경량화했다지만 캐논포는 캐논포라 상당히 크며, 앞서 언급한 것처럼 피스톨 피트에 시달린 연합군이 발견하기만 하면 전함의 주포사격까지 동원해서 없애버리므로 오히려 사망자만 느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1] Cannon이나 Gun은 평사포, Howitzer는 곡사포, Mortar는 박격포라는 의미다.[2] 같은 구경의 105mm M2 곡사포를 비교해보면 된다.[3] 유명 농구 선수 피트 마라바치의 별명...이긴 한데 마라비치는 1947년생이다. 이 별명의 원조는 카우보이 프랭크 이튼(Frank Eaton, 1860~1958)이고 그의 캐리커처에서 유래한 마스코트를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와 뉴멕시코 주립대학교가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