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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四式三十七粍速射砲 |
1. 개요
Forgotten Weapons의 과달카날에 전시된 94식 37mm 속사포 리뷰 영상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이 운용한 대전차포. 정식명칭은 94식 37mm 속사포(九四式三十七粍速射砲)다. 속사포란 명칭은 문자 그대로 빠른 연사가 가능한 포를 의미하는 것이며 일본 제국 육군이 대전차포란 이름을 방어적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싫어해서 대체용으로 붙인 이름이기도 했다.
2. 제원
3. 개발
원래 일본군에는 11년식 평사보병포라는 물건이 있었다. 이 무기는 르노 FT에 장비된 37mm 전차포와 비슷한 성능을 가진 프랑스의 퓌토 37mm 보병포(Canon d'Infanterie de 37 modèle 1916 TRP)의 영향을 받아 1922년에 채용된 구경 37mm의 보병포로 직사에 의한 기관총 진지섬멸을 목적으로 했다. 하지만 포탄 작약량이 적은 탓에 포탄의 폭발 반경이 잘 해봐야 5m 정도로 매우 부족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쓰레기 박격포인 VM-37 수준의 능력을 보였다는 것이다. 때문에 원래 주 목표인 적군 진지에 대해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게다가 대전차포로의 활용도 28구경이라는 짧은 포신과 낮은 포구초속 탓에 관통능력에 한계가 있었는데, 이는 이 무기가 애초에 대전차 능력이란 것을 생각하지 않고 만들어진 물건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따라서 좀 더 나은 화포의 필요성에 따라 1933년 9월 14일에 새로운 연구방침이 제시되었다. 요구하는 목표는 아래와 같다.
- 포구의 구경은 37mm 수준으로 결정.
- 포구를 좌우로 돌릴 수 있는 수준은 좌우합계로 50도 이상.
- 포구를 상하로 올리고 내리는 수준은 -10도 에서 +15도 정도.
- 연사속도는 분당 30발 이상.
- 철갑탄의 위력은 거리 1,000m에서 최소한 장갑판 20mm 를 관통해야 하며 관통 후에 차량 내부에 파편을 뿌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함.
- 이동능력은 군마로 견인이 가능하거나 분해해서 부품을 말에 적재하거나 인력으로 견인한다는 3가지 방법이 모두 가능해야 하며 방렬시 전체 중량은 300kg 이내여야 함[1]
요구 목표를 기반으로 해서 1933년부터 94식 37mm 속사포가 개발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설계는 1933년 7월에 시작되어 다음해 2월에 기술시험을 마쳤다. 이렇게 해서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진 후 테스트를 실시했는데, 최종적인 평가는 실용성은 충분하지만 중량의 경감과 사격자세의 저하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를 받아들여 9월에 제2호 시제포가 만들어졌으며 1935년에 약간의 개량을 거쳐 1936년에 제식화되었다.
4. 탄종
초기에는 94식 철갑탄, 94식 유탄(고폭탄), 연습탄으로 94식 철갑탄 대용탄, 94식 유탄 대용탄을 사용가능했으며 1943년 이후에는 신형 철갑탄으로 1식 철갑탄을 사용가능했다.94식 철갑탄은 철갑유탄으로 개발되었다. 해당 탄약은 1931년 8월에 제식체용중이던 기존의 평사보병포 및 개발 중인 시제 37mm 기관포용 탄약용으로 연구가 시작되었다. 1931년 12월에는 이라호 시험장에서 제1호탄의 시험이 실시되었으나 시험탄의 강도가 부족해 탄착시 관통을 못하고 탄두가 정심부(定心部) 부근에서 부러지는 일이 발생하였다. 탄두가 부러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심부 부분의 두께를 늘린 제2호탄의 시험이 1932년 5월에 이라호 시험장에서 실시되었지만, 탄체의 강도와 내구력은 여전히 부족했다.
그래서 1933년 6월에 94식 37mm 속사포의 연구가 개시되면서 해당 속사포용의 탄약으로서 설계를 다시 고치고 개발 계획을 합병하여 포탄의 신관도 종래의 평사보병포용으로 사용하던 12년식 신관을 신규 개발된 94식 소구경포탄용 탄저신관으로 변경했다. 1933년 10월에 이라코 시험장에서 실시된 제3호탄의 시험에서는 탄체의 강도와 내구력은 어느 정도는 충분하다고 인정되었지만, 탄두의 내부 작약량 부족에 의해 장갑판을 관통한 후 내부에서 폭발할 때의 파괴력이 불충분하다고 판단되었다. 1934년 2월에는 제4호탄의 시험을 실시한 결과 관통능력, 폭발위력, 작약의 안정선은 어느 정도 맞추었지만 관통능력을 높이기 위해서 탄두의 중량을 감소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탄미부분을 협착한 제5호탄의 시험이 1934년 5월에 실시되어 심사의 결과 사용에 적합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그래서 제5호탄을 기본으로 한 포탄이 94식 철갑탄으로 제식화된 것이다.
94식 철갑탄의 장갑판에 대한 관통능력은 350m 거리에서 30mm (착탄시 속도는 575m/s), 800m에서 25mm (착탄시 속도는 420m/s), 1,000m에서 20mm (착탄시 속도는 380m/s) 이며 철갑유탄이므로 장갑을 관통한 후 내부에서 작렬해서 승무원의 살상 및 내부 기기의 파괴가 가능했다.
하지만 당대 기준으로도 관통력이 부족한 편이었다. 미국의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이 .50 BMG 탄약 중에서 M2 철갑탄을 사용하면 500m 거리에서 19mm의 관통력을 보이며 소련의 PTRS-41이나 PTRD-41같은 대전차 소총에서 사용하는 14.5×114mm탄의 경우에는 500m 거리에서 32mm의 관통력을 보인다. 구경이 2배 이상이나 큰 대전차포 주제에 중기관총탄이나 대전차 소총탄에 비해서 그렇게 우위를 보이지 못하는 것이다.
동급 구경인 37mm 구경을 가진 대전차포와 비교하면 열세에 놓인다. 나치 독일의 PaK 36은 텅스텐을 사용하지 않는 기본 철갑탄으로도 수직장갑 명중시 200m에서 56mm를 관통하며 500m에서 48mm를 관통한다. 미국의 M3 37mm 대전차포는 성능이 더 강화된 편이라 수직장갑 명중시 500m에서 61mm를 관통한다. 소련은 처음에는 나치 독일의 PaK 36d을 라이선스 생산했고 1937년부터 양산된 53-K부터 구경이 더 커진 45mm를 사용하므로 고폭탄 화력은 더 높아졌고 관통력도 원본인 PaK 36보다 향상되었다. 결국 94식 철갑탄만으로는 답이 없어진 셈이다.
그래서 새롭게 1식 철갑탄을 개발하기로 한다. 일단 시제철갑탄인 탄환강 제1종 병제 단형(계란형) 철갑탄 (弾丸鋼第一種丙製蛋形徹甲弾)을 개발해서 1942년 5월에 실험한 자료가 남아있다. 해당 철갑탄은 개량을 거쳐서 1식 철갑탄으로 제식화되었으며 관통능력은 1식 철갑탄과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한다. 관통력 시험은 지면에서 수직으로 90도 각도로 세운 장갑판을 상대로 실시하였다.#1
94식 37mm 속사포로 1식 철갑탄을 수직각도 장갑판에 사격 | ||
거리 | 제1종 방탄강판 (균질압연장갑) | 제2종 방탄강판 (표면경화장갑) |
200m | 49mm | 28mm |
500m | 41mm | 24mm |
1000m | 31mm | 16mm |
1500m | 23mm | 15mm |
94식 철갑탄에 비해서는 성능향상이 있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성능향상폭이 너무 작은데다가 표면경화장갑만 만나면 성능이 크게 하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당대의 경전차나 경전차급 전차들이 대부분 표면경화장갑을 경사장갑 형태로 채용한다는 것을 감안해본다면 대전차포라는 물건이 경전차 상대하기에도 매우 부족한 성능을 보이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심지어 자국인 일본 제국의 치하도 25mm 표면경화장갑을 경사장갑으로 채용하고 있으므로 200m 거리까지 근접해도 94식 37mm 속사포로는 1식 철갑탄을 사용하더라도 관통불가이며 이미 치하의 채용과정에서 실험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이러니 할힌골 전투에서 소련군의 T-26과 BT 전차를 상대하기가 매우 어렵게 된 것이다.
실전에서도 1식 철갑탄은 영거리 사격을 해도 50mm의 괸통력을 보였으며 1000m의 거리에서는 25mm의 관통력을 보이는데 그쳤다. 일본이 패전 후에 미국에서 94식 37mm 속사포를 노획해서 시험한 후에 1945년 8월에 정보를 보고한 자료를 봐도 1식 철갑탄을 사용할 경우에도 수직장갑을 기준으로 0m 거리에서 53mm(2.1인치)의 관통력을 보이고 228.6m(250야드) 거리에서 48mm(1.9인치), 457.2m(500야드) 거리에서 43mm(1,7인치)의 관통력을 보인다고 한다.#2
일본 제국 육군도 해당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94식 37mm 속사포가 37mm급 대전차포치고는 상대적으로 빠른 시기에 개발된 편이고 일본 육군이 해당 대전차포를 운용하려고 한 환경이 거칠고 인력운용을 위주로 하므로 포 자체가 가벼운 경량구조가 될 것을 요구한데다가 아직 중일전쟁에서 국민혁명군같은 약체 군대만 상대하므로 관통력을 크게 높일 이유가 적어서 동급의 타국 대전차포에 비해 포탄 발사용 장약의 양이 적어서 포구초속이 낮아지므로 근본적인 운동에너지 부족 때문에 관통력이 좋지가 않은 것이다. 실제로 PaK 36의 37mm 45구경장의 포구초속은 760m/s 이며 M3 37mm 대전차포의 37mm 56.6구경장의 포구초속은 884m/s인데 반해 94식 37mm 속사포의 37mm 45구경장의 포구초속은 700m/s에 불과하여 매우 느림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철갑유탄의 구조상 내부 작약을 충분하게 넣기 위해서 탄두 내부구조 및 격벽이 전체적으로 얇아져서 포탄이 착탄시 관통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거나 깨지는 문제도 언급되었다. 이 문제는 1식 철갑탄에서 탄두의 구조 전체를 두껍게 하는 방식으로 상당부분 개선하였다.
여기에 더해서 당시의 일본 제국의 기술력 상황상 야금 기술도 부족해서 탄두의 강도도 낮아질 수 밖에 없으며 덕분에 장갑관통력이 추가적으로 떨어졌다. 심지어 텅스텐을 사용해서 탄두의 강도를 강화한 시험탄을 사용해도 거리 200m에서 제1종 방탄강판(균질압연장갑)을 수직으로 세워놓은 목표에 명중시켜도 고작 53mm 정도만 관통가능해서 관통력 향상이 매우 힘들었다.
일본 제국이 이런 상황일 때 나치 독일은 PaK 36의 기본 포탄인 Panzergranate 39만 사용해도 포구초속 760m/s 을 달성하고 수평각도 60도의 경사장갑을 200m 거리에서 42mm를 관통하고 500m 거리에서 36mm를 관통했으며 수직장갑의 경우에는 200m 거리에서 56mm를 관통하고 500m 거리에서 48mm를 관통하는 것을 이미 달성한 상황이었다. 이미 나치 독일은 37mm 일반탄만으로 일본 제국의 37mm 텅스텐 실험탄보다 높은 성능을 이미 거두고 있던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치 독일이 텅스텐을 사용한 3.7cm Panzergranate 40 포탄을 PaK 36에 도입하여 포구초속 1,030m/s 을 달성하고 수평각도 60도의 경사장갑을 200m 거리에서 61mm를 관통하고 500m 거리에서 49mm를 관통했으며 수직장갑의 경우에는 200m 거리에서 72mm를 관통하고 500m 거리에서 58mm를 관통한 것을 보면 기술력 수준의 차이가 큰 것을 알 수 있다.#3
미국의 M3 37mm 대전차포의 경우에는 저저항피모철갑탄인 APC M51 37mm 포탄이 포구초속 884m/s를 달성하고 수직장갑 착탄시 500m에서 61mm를 관통하는 파워를 보여주었으며 30도 각도의 균질압연장갑을 대상으로는 500m에서 53mm, 1000m에서 46mm, 1500m에서 40mm, 2000m에서 35mm의 관통력을 보여주면서 경사장갑을 상대하기도 수월하며 30도 각도의 표면경화장갑을 대상으로는 500m에서 46mm, 1000m에서 40mm, 1500m에서 38mm, 2000m에서 33mm의 관통력을 보여주면서 표면경화장갑과 경사장갑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상대로도 상당한 위력을 보여주었다. 이미 미국도 37mm 일반탄만으로 일본 제국의 37mm 텅스텐 실험탄보다 높은 성능을 이미 거두고 있던 상태였다는 것이다. 애초에 37mm용 고폭탄도 포구초속이 792m/s이고 산탄도 포구초속이 762m/s라서 일본 제국의 어지간한 37mm 철갑탄보다 높은 포구초속을 달성하는 상태였으니 당연한 일이다.#4
설상가상으로 94식 37mm 속사포가 워낙 경량구조라서 각 부위의 강도가 부족하므로 포탄 발사용 장약을 늘린 강장탄을 쓰려고 하면 유폭할 위험성이 매우 높아진다. 실제로 신형 포탄의 실험시에 포미가 포탄 발사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빠져버리는 탈미현상이 발생해서 시험연구원이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강화 및 개량을 거친 1식 37mm 속사포가 1941년에 개발된다.
그런데 1식 37mm 속사포를 써도 성능의 향상이 미약하였다. 앞서 94식 37mm 속사포를 실험한 것과 동일한 환경으로 1식 철갑탄과 거의 성능이 동일한 시제철갑탄인 탄환강 제1종 병제 단형(계란형) 철갑탄 (弾丸鋼第一種丙製蛋形徹甲弾)을 쓰고 지면에서 수직으로 90도 각도로 세운 장갑판을 목표로 1942년 5월에 실험한 자료를 보면 충분하게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5mm 정도의 관통력 향상만 있던 것이다.
1식 37mm 속사포로 1식 철갑탄을 수직각도 장갑판에 사격 | ||
거리 | 제1종 방탄강판 (균질압연장갑) | 제2종 방탄강판 (표면경화장갑) |
200m | 55mm | 32mm |
500m | 46mm | 27mm |
1000m | 34mm | 21mm |
1500m | 26mm | 16mm |
그리고 이 시점쯤 되면 이미 대전차포와 전차포의 구경이 계속 상승하고 위력이 강화되던 시기라 이미 37mm 정도의 소구경 대전차포는 퇴물이 된지 오래된 시점이었다. 포구초속이 더 높은 나치 독일의 PaK 36은 이미 독일 국방군의 상냥한 도어 노커(Heeresanklopfgerät) 소리를 이미 프랑스 침공시부터 듣기 시작해서 1941년에 벌어진 독소전쟁 초기부터는 한계점에 도달해서 텅스텐탄을 도입하고 50mm 구경의 PaK 38을 긴급하게 증산하는 것도 모자라서 75mm 구경의 PaK 40도 고속으로 개발해서 전장에 긴급투입할 준비를 하는 실정이었다. 포구초속과 관통력이 모두 좋은 M3 37mm 대전차포의 경우에도 북아프리카 전역과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했다가 말 그대로 문 두드리는 기계인 도어노커 소리를 듣고 수요가 바닥을 쳤고 1942년에 11,812문이나 생산된 수량중 상당수가 챠랑탑재용이나 태평양 전선으로 재배치되었으며 1943년에 4,298문이 생산된 것을 끝으로 생산이 종료되었으며 미군 대전차포의 주력은 영국제 6파운더 라이선스 생산형인 M1 57mm 대전차포와 76.2mm 구경인 3인치 M5 대전차포 계열로 넘어가게 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독일과의 군사교류로 1942년 5월에 도입된 기술을 이용해서 PaK 36처럼 포구에 장전하는 외장형 대전차고폭탄인 Stielgranate 41의 일본식 버전을 만들려고 했다. 외장타탄(外装タ弾)이라고 불린 해당 포탄은 직경이 80mm고 포탄에 날개가 달린 유익식 포탄으로 포탄 전장은 II형은 456mm, III형은 465mm 이며 관통력은 100mm 수준이었다.
하지만 독일의 Stielgranate 41은 180mm의 관통력을 가지는데도 불구하고 포구에 해당 탄을 장전하고 포미에 공포탄을 장전한 후 사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유효사정거리가 300m로 매우 짧아서 전차에 위험하게 근접해야 하는데다가 탄도가 불안정해서 실제로 명중을 하려면 150m 이내로 초근접을 해야 하는 위험성 때문에 실제 사용이 어려웠다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일본제 포탄이 100mm라는 것은 그나마 가진 화력도 매우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열화판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일본이 패전시까지 개발도 완료되지 않아서 실전에서 사용할 수 없었으므로 의미도 없었다.
철갑탄 외의 다른 탄종은 큰 문제는 없었다. 고폭탄인 94식 유탄은 1933년 12월에 이라호 시험장에서 제1호탄의 시험을 실시한 결과 탄두의 기능과 탄도의 성능은 대체로 양호했지만 탄두의 중량이 약간 가볍다고 지적되었다. 그래서 탄두의 중량을 650g으로 증가시킨 제2호탄의 시험이 이라호 시험장에서 1934년 4월에 실시되었으며 1934년 6월에는 소마하라 연습장에서도 시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실제 사용에 적합하다고 인정되었으며 94식 유탄으로 제식화되었다. 94식 유탄이 명중하면 폭발의 위력 반경은 약 7m이다. 유탄 발사용 장약과 탄피는 94식 철갑탄과 동일하다.
평시의 훈련 등에 사용하는 연습탄으로서는 94식 철갑탄 대용탄과 94식 유탄 대용탄이 제식화되었다. 여기서 대용탄은 실제 발사와 명중까지는 가능한 포탄을 말한다. 94식 철갑탄 대용탄은 철갑탄 개발 완료 후인 1934년 6월에 설계에 착수해 같은 해 8월 시험으로 실제 사용에 적합하다고 인정받았다. 해당 대용탄 탄두에는 내부 작약과 신관이 없기 때문에 목표의 명중은 가능하지만 폭발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원거리의 탄착 관측은 어려웠다. 94식 유탄 대용탄은 1933년 12월에 제1회 시험을 실시했으며 그 후에 94식 유탄의 설계 변경에 따라 수정을 가한 대용탄 포탄의 시험이 1934년 8월에 실시되어 실제 사용에 적합하다고 인정받았다. 94식 유탄 대용탄은 내부 작약으로서 흑색 소립약 25g을 내장하므로 포탄이 명중하면 폭발하면서 백색의 폭발 연기가 발생하므로 탄착 관측이 쉽게 된다.
94식의 이름이 붙은 4종의 포탄 및 공포탄은 1935년 7월 1일에 가제식으로 채용되었다.
1식 철갑탄의 경우에는 형식상으로는 개량형인 1식 37mm 속사포도 공용하는 탄환이지만 엄밀하게 말해서는 94식 37mm 속사포의 포탄을 1식 37mm 속사포는 공용이 가능하지만 94식 37mm 속사포가 1식 37mm 속사포의 포탄을 공용으로 쓰기에는 위험성이 높다. 실제로 고폭탄인 1식 유탄은 94식 37mm 속사포에서 사용하지 않았으며 1식 37mm 전차포 (一式三十七粍戦車砲)는 1식 37mm 속사포 포탄은 호환이 가능하지만 94식 37mm 속사포 포탄은 호환이 불가능했다.
이렇게 사실상 한쪽만 공용화가 가능한 이유는 1식 37mm 속사포에서 사용하는 포탄도 초기형은 포구초속이 800m/s에 도달하는 대신 포구수명이 400발에서 800발로 크게 줄어들어서 포구초속을 785m/s로 줄이고 장약도 1호대상약(一号帯状薬)으로 교체하는 등의 개량점이 들어갈 정도로 강력한 강장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1식 37mm 속사포에 맞게 약화해서 개량하더라도 94식 37mm 속사포에 사용하기에는 여전히 강장약탄이라서 포미 탈저 후 유폭의 위험성이 있어서 안전하게 사용하려면 장약을 추가로 약화해서 포구초속을 더 줄여야 하므로 실제로 전장에서 대량으로 사용되었는지는 의문이다. 포신길이도 1식 37mm 속사포는 50구경장이고 94식 37mm 속사포는 46구경장으로 더 짧아서 1식 37mm 속사포용 1식 철갑탄을 위험을 감수하고 사용하더라도 포신이 짧아서 785m/s의 포구초속을 발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포구초속도 불명확한 것이다.
94식 37mm 속사포의 탄약 종류 | |||||||
종류 | 명칭 | 신관 | 탄두중량 | 전체중량 | 내부작약 | 발사용장약 | 포구초속 |
고폭탄 | 94식 유탄 | 93식 소순발신관 | 645g | 1155g | 황색약 20g 차갈약 38.5g | 8번관상약 121g | 706m/s |
고폭탄 | 13식 유탄 | 압수13식 소순발신관(갑) | 664g | 불명 | 차갈약 38.5g | 불명 | 613m/s |
철갑탄 | 94식 철갑탄 | 94식 소연탄저신관 | 700g | 1210g | 황색약 10g | 8번관상약 121g | 700m/s |
철갑탄 | 1식 철갑탄 | 1식철갑 소1호탄저신관 | 불명 | 1236g | 불명 | 1호대상약 중량불명 | 불명 |
대전차고폭탄 | 외장타탄 | 불명 | 불명 | 불명 | 불명 | 불명 | 불명 |
연습탄 | 94식 유탄 대용탄 | 93식 소순발신관 | 645g | 1155g | 흑색소립약 20g | 8번관상약 121g | 706m/s |
연습탄 | 94식 철갑탄 대용탄 | 94식 소연탄저신관 | 700g | 1210g | 없음 | 8번관상약 121g | 700m/s |
공포탄 | 공포(空包) | 없음 | 없음 | 불명 | 없음 | 1호공포약 중량불명 | 없음 |
13식 유탄은 준제식으로 다른 화포에서 사용하던 포탄을 94식 37mm 속사포에서도 사용가능하게 한 종류이며 외장타탄(外装タ弾)은 포구에 끼워넣는 외장식 대전차고폭탄을 의미한다.
신관의 경우에는 소순발신관(小瞬発信管)은 소형 충격신관으로 착탄시 바로 발화하는 신관을 말한다. 소연탄저신관(小延弾底信管)과 소1호탄저신관(小一号弾底信管)은 철갑탄용 소형 지연신관중에서 포탄의 탄바닥에 설치하는 탄저신관을 의미한다.
화약의 경우에는 황색약(黄色薬)은 피크르산을 말하며 차갈약(茶褐薬)은 TNT을 말한다. 흑색소립약(黒色小粒薬)은 흑색화약을 현대적으로 소형 알갱이화해서 코닝(corning)한 형태를 말하며 8번관상약(八番管状薬)과 1호대상약(一号帯状薬)은 포탄 발사용 장약을 의미하고 1호공포약(一号空包薬)은 공포탄용 화약을 의미한다.
제원포에 불명 항목이 많은 이유는 패전 직전에 일본 제국의 무기 개발 부서들이 자료를 많이 소각했기 때문이다.
5. 특징
- 연사속도의 향상
반자동식의 개폐기와 자동배연장치를 갖추어서 숙련된 사수가 매분당 30발을 발사할 수 있었다. 이전의 일본군 대포들이 이런 장비가 없어서 발사속도가 시망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 운용요원의 보호
포수를 보호하기 위해 4mm 두께의 포방패와 개각식(開脚式)의 포가(砲架)를 가졌다. 이전의 일본군 대포가 운용요원의 보호 따위는 생각조차도 안 한 것을 감안하면 역시 진보라고 볼 수 있다.
- 내구성 및 안정성 향상
바퀴에는 피탄에 강한 철강재질을 썼으며, 발사시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좌우로 넓히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서 속사를 하더라도 안정된 사격이 가능하다.
- 이동성 향상
이동시엔 군마 한 마리로 견인하거나 중량 100kg 이하의 부품들을 분해해 4필의 말에 탑재해 수송했다. 따라서 험지에서의 운용능력이 증가했다.
이렇듯 적어도 전작인 11년식 평사보병포보다는 여러모로 나았기 때문에 일본군의 주력 대전차포로 사용되었다.
6. 문제점
- 과도한 경량화
지나친 경량화를 시행한 탓에 포미(砲尾)의 강도가 약했으므로 약실용량을 증가해 신형포탄을 시험하던 중 포미가 탈저현상(포미가 바깥으로 이탈하는 것)을 일으켜 시험하던 병사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는 해당 포가 강력한 신형포탄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타이트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더 이상의 능력향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결국 1식 37mm 속사포등 후속 개량형을 만드는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 관통력 약화
탄종 종류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기술력 부족등 여러가지 사유로 기본적으로 관통력이 부족한데다가 과도한 경량화로 인해 강장탄을 사용하기도 어렵고 37mm라는 소구경 덕분에 물리적으로도 관통력 향상이 어려웠다. 그래서 타국의 37mm급 대전차포에 비해서도 성능이 낮았다.
- 구식체계 유지
원본인 PaK 36도 94식 속사포가 배치될 쯤에는 견인할 때 편리하고 병사들이 끌고 가더라도 편하도록 고무 타이어를 바퀴에 도입해서 편리성을 증대시켰으며, 포방패도 개수하는 등의 개량을 진행했다. 하지만 94식 속사포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해당 포의 마차바퀴를 철제로 만드는 등의 뻘짓을 저질렀는데, 덕분에 피탄시 내구성은 좋았으나 해당 포를 질질 끌고 가야 할 보병의 입장에서는 중량 증가와 함께 엄청난 힘을 들여야 제대로 굴러가게 되는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
결국 이런 문제점은 해당 속사포의 명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데 일조하였다.
7. 운용
94식 속사포는 보병연대의 속사포 중대에 4문씩 배치되었다. 속사포 중대는 4개 분대(전포대라고 부름)로 구성되어 1문에 1개분대씩 편성되었다. 분대는 분대장, 포수, 포수예비, 장탄수, 전령, 탄약수(5명) 및 연기가 빠져 나오지 않았을 때 세곤(포 구멍을 닦을 때 쓰는 막대기) 담당으로 합계 11명으로 구성되었다.포를 방렬시엔 분대간 거리는 약 100m로 분대 후방 300m에 소대본부(2개 분대를 관리), 또 300m 후방에 중대본부가 설치되었다. 중대본부와 소대본부는 유선전화가 있었지만 소대본부와 각 분대사이엔 전령이 달려가서 연락을 취하였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포진으로 지형과 상황에 따라 각 지휘관이 판단하여 운용하였다.
포를 운반시에는 보통 군마 1필로 327kg 중량의 방렬 및 전투가능 상태로 견인하지만 전장에서는 포수 3명을 동원해서 인력으로 견인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서 중량 100kg 정도의 부품 덩어리 4개로 분해해서 군마 4필에 나누어서 적재하거나 인력으로 운반하기도 했다.
군마에 94식 37mm 속사포를 분해해서 적재할 경우에는 15년식 태마구(十五年式駄馬具)를 사용했다. 제1호마는 포신(砲身) 1개(76kg), 담곤(担棍) 1개(4kg), 원탁(轅棹) 4개(7.5kg)를 적재하고 이러한 부품을 적재하는 마구(馬具)를 모두 합쳐서 37.33kg, 가광탁가(架匡托架)라고 불리는 탑재품 지지대 3.17kg, 군마의 식량인 마량(馬糧) 2.6kg 이 포함되므로 제1호마는 모두 130.6kg을 운반한다. 제2호마는 포가(砲架) 1개(95.4kg)만 탑재하고 나머지는 제1호마와 같으므로 제2호마는 모두 136.5kg을 운반한다. 제3호마는 대포용 요가(揺架) 1기 (23.2kg), 대포용 바퀴인 차륜(車輪) 2기 (우측 31.6kg, 좌측 36.2kg)를 탑재하고 나머지는 제1호마와 같으므로 제3호마는 모두 138.0kg을 운반한다. 제4호마는 포다리인 포각(砲脚) 2개(우쪽 26.8kg, 좌측 21.4kg), 비품상자(属品箱) 2개(24kg), 포방패(防盾) 1개(16kg)를 탑재하고 나머지는 제1호마와 같으므로 제4호마는 모두 139.8kg을 운반한다. 이런 식으로 94식 37mm 속사포를 4필의 군마로 분해해서 적재후에 이송이 가능하다.
속사포와 함깨 탄약도 이송해야 하므로 탄약마는 탄약상자(弾薬箱) 4개(84kg), 양두퇴(両頭槌) 2개(7.6kg)를 적재하며 이러한 부품을 적재하는 마구(馬具)를 모두 합쳐서 31.775kg, 가광탁가(架匡托架)라고 불리는 탑재품 지지대 5.715kg, 군마의 식량인 마량(馬糧) 2.6kg 이 포함되므로 탄약마는 모두 131.7kg을 운반한다. 말에 적재가능한 탄약상자는 37mm 포탄 30발을 수납가능하며 목재로 만들어졌고 갈색으로 도색되었으며 탄약상자의 자체 중량은 13kg이며 탄약을 모두 채우면 49kg다. 여기까지가 표준적인 운송방식이다.
포탄과 일반 부품 및 공구를 운반하기 위한 94식 37mm 속사포용 탄약차 (九四式三十七粍砲弾薬車) 도 존재한다. 탄약상자 8개와 비품상자 2개를 적재가능하여 37mm 포탄 96발을 운반가능했다. 그리고 파생형으로 포신이나 주퇴복좌기같은 무거운 부품과 예비품을 운반하는 차량도 만들어졌는데 이를 94식 37mm 속사포용 예비품차 (九四式三十七粍砲予備品車)라고 불렀다.
그리고 기병이 간편하게 운용하기 위해서 94식 37mm 속사포와 포탄약차를 결합한 형태인 94식 37mm 속사포 운반차 (九四式三十七粍砲運搬車)도 개발되었다. 속사포와 탄약을 같이 운반하는 차량으로 전방 운반차에 37mm 포탄 96발을 적재가능하며 긴급시에는 속사포를 후방 운반차에 적재한 상태로 바로 사격이 가능했다. 운반차를 개발하는데 성공하자 운반차를 기반으로 해서 대량의 탄약을 운반하는 94식 37mm 속사포 기병용 탄약차 (九四式三十七粍砲騎兵用弾薬車)도 개발되었다. 전방 운반차에 37mm 포탄 108발을 적재하고 후방 운반차에 37mm 포탄 144발을 적재해서 합계 37mm 포탄 252발을 운반가능했다.
트럭이나 견인포 포차등의 내연기관 차량을 써서 포장도로 같은 곳에서 고속으로 운반하기 위해 94식 37mm 속사포 기동 운반차 (九四式三十七粍砲機動運搬車)도 개발했다. 개발사유는 고속으로 견인시에 기존의 포가와 운반차량이 파손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었으며 개발목표는 전투중량 1톤에 최대속도 45km/h를 목표로 했다. 형태는 운반차의 전반부를 제거하고 후반부의 94식 37mm 속사포만 견인하며 포탄등의 탄약, 부품등은 견인하는 차량에 적재하는 형태다. 긴급시에는 견인차에서 분리한 후 운반차에 완충용 못을 바닥에 박아서 긴급하게 방렬을 실시한 후 운반차에 적재한 상태로 94식 37mm 속사포를 사격가능했다.
나름대로 다양한 종류의 지원차량이 개발되었으나 본질적으로는 견인식이고 운반차라는 것도 철제 바퀴 2개를 사용하는 94식 37mm 속사포의 포가와 마차 형태의 견인식 수레를 결합한 것이라 자체적인 이동력이 전혀 없었고 험지돌파력도 바닥 수준이었다. 따라서 실제 전장에서는 군마를 사용하거나 그냥 인력으로 94식 37mm 속사포를 움직이고 포탄이나 예비품은 보병들이 나누어서 운반하는 편이 더 편리했다.
8. 실전
기존의 일본군이 보유한 대포들보다는 나은 성능을 가지고 있었기에 일본군은 일단 여기서 만족하고, 치하의 방어력도 중거리에서 94식 속사포의 포탄을 전면장갑으로 막을 수 있는 수준으로 지정하는 등 일본군 대전차포의 표준으로 한동안 군림했다. 당장 3,400여문이라는 많은 생산량이 이를 입증한다.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너무 타이트하게 만들어져서 신형포탄을 사용한 화력증대가 불가능하므로 1941년에 포미를 강화한 1식 37mm 속사포 개발의 계기를 제공했다. 이외에도 1식 기동 47mm 속사포가 개발되는 등 후속 대전차포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일본군의 고질적인 무기부족 문제는 94식 속사포가 퇴역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결국 94식 속사포는 일선에 남아 스튜어트 경전차, 마틸다 II 등 일본군 입장에서 강력한 경전차, 보병전차를 계속 상대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포탄은 튕기고 그 다음에는 속사포와 운용요원이 함께 죽는 일만 남았다. 게다가 이런 현상은 지속되어서 나중에는 75mm 전차포와 전면장갑 60mm를 자랑하는 M4 셔먼을 상대하다가 박살나거나, 만주 작전때는 T-34나 IS-2를 상대로 포격한 다음 개박살나는 것으로 태평양 전쟁이 종전될 때까지 1선에서 활약했다고 쓰고 학살당했다. 이후 소련군에 의해 노획된 포들은 50만명을 무장시키기 충분한 다른 노획 무기와 함께 만주에 침투한 팔로군에게 제공된다.
일부는 폭격기 요격을 위해 Ki-45 토류에 탑재되었다. 항공기를 상대로는 엄청난 위력을 보여주었지만, 수동 장전인 탓에 연사속도가 느렸기에 연사가 가능한 Ho-203 기관포로 교체되었다.
9. 파생형
- 1식 37mm 속사포
94식 37mm 속사포의 성능을 늘리기 위해 1940년 5월부터 포구초속을 800m/s로 올리려고 했으나 해당 포 자체를 완전히 개량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옴에 따라 1941년부터 개발이 진행되어 프로토타입 6문이 1941년 말까지 만들어진다.
개발 당시에 앞서 언급한 포미 탈저 발생으로 유폭사고가 터져서 시험연구원이 사망하기도 했고 1식 기동 47mm 속사포의 개발로 개발동력이 줄어들기도 했으며 프로토타입의 경우에는 포신수명이 고작 400발에서 800발 정도로 매우 짧다는 문제도 터졌다. 그래서 1943년 7월부터 강선 부위에 크로뮴 도금을 하고 포구 초속을 785m/s로 줄이며 장약도 1호대상약을 사용해서 포신수명을 3000발로 늘리게 된다. 그래서 실제적인 제식화는 1943년 말이며 소량만 생산되었고 생산수량을 알 수 없다.
해당 화포의 개발로 일본 내부에서도 드디어 PaK 36을 따라잡았다고 인정했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그 외에 라쿠(らく)호라는 낙하우공정(落下傘空挺)의 약자를 붙인 파생형이 존재하는데 이건 한마디로 말해서 공수부대용 낙하산 강하 수송가능 대전차포라는 이야기다. 일본 제국의 공수부대인 공중정진부대(空中挺進部隊)용으로 개발되었으나 대전차포로는 위력부족이기 때문에 1944년 8월에 개발이 중지되었다.
10. 유사품
94식 37mm 속사포와 비슷한 종류이지만 탄약이 호환되지 않거나 계통이 다른 종류들을 말한다.10.1. 94식/98식 전차포
九四式/九八式三十七粍戦車砲 |
94식 37mm 속사포의 전차포형. 94식 37mm 전차포는 원본 속사포의 설계를 유용하여 95식 중전차의 부포용으로 개발되어 하고, 97식 경장갑차 테케의 주포로 사용되었다. 탄두는 94식 37mm 속사포와 동일하지만 약협인 탄피는 더 짧은 종류를 사용해서 장약이 더 적게 들어가므로 37mm 포탄은 호환성이 없다. 포신 길이는 1358.5mm, 94식 철갑탄을 사용했을 경우의 포구초속은 574.5m/s로 94식 37mm 속사포 원본에 비해 장갑관통력이 더 낮아진다.
98식 37mm 전차포는 기존 94식의 개량형으로, 후기형 하고와 특 2식 내화정 카미의 주포로 사용되었다. 94식 전차포의 약실을 늘리고 각 부위를 강화 및 개량해서 94식 37mm 속사포의 37mm 포탄과 호환성이 있다. 포신 길이는 1358.5mm, 94식 철갑탄을 사용하면 포구초속이 685m/s 이며 1식 철갑탄을 쓰면 포구초속이 704m/s다. 아직 원본만큼의 포구초속을 달성하지 못해서 관통력이 94식 전차포보다는 향상되었지만 94식 37mm 속사포에는 아주 약간 못미치고 1식 37mm 속사포에는 많이 떨어지는 수준에 불과하였다.
10.2. 그 외
- 100식 37mm 전차포(一〇〇式三十七粍戦車砲)
98식 37mm 전차포의 포신 길이를 늘린 개량형. 98식 경전차 케니에 채용되었으며 97식 중기관총을 공축기관총으로 채용가능했다는 성과가 있었다. 94식 37mm 속사포의 포탄을 사용가능하며 포신 길이가 1699mm이고 1식 철갑탄을 사용하면 포구초속이 700m/s다. 포신 길이를 연장해서 94식 37mm 속사포의 성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지만 아직 1식 37mm 속사포의 수준에는 전혀 도달하지 못했다.
- 1식 37mm 전차포(一式三十七粍戦車砲)
100식 37mm 전차포의 개량형. 약실을 확대하고 각 부위를 강화 및 개량했다. 98식 37mm 전차포처럼 97식 중기관총을 공축기관총으로 채용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94식 37mm 속사포와는 탄종이 호환되지 않으나 1식 37mm 속사포와는 포탄호환이 가능하다. 2식 경전차인 케토의 주포로 채택되었으며 5식 중전차 치리의 프로토타입에 차체기관총 부착 위치에 차체기관총과 같이 설치되었다. 1식 철갑탄을 사용하면 포구초속이 800m/s 이므로 드디어 1식 37mm 속사포의 위력 수준을 넘어갔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 라식 37mm 전차포(ラ式三十七粍対戦車砲)
중일전쟁에서 노획한 국민혁명군 소유의 나치 독일제 PaK 36. 준제식으로 채용해서 사용하였다. 94식 37mm 속사포 포탄을 사용하는 시험에서 과조발(過早発)이 발생하였다. 이는 히가시이치조제 94식 소연탄저신관이 원인으로 판명되었으며 그래서 포탄호환이 불가능하다.
11. 미디어
11.1. 영화
11.1.1. 마이웨이
할힌골 전투 장면에서 이 속사포들이 등장한다. 대놓고 밝은 아침에 전장으로 이동하던 일본군이 본진에서 멀리 가기도 전에 이미 자신들이 건설한 부교를 타고 공격해오는 소련군의 대규모 BT 전차부대와 맞서게 되는데 포탄세례 속에서 급히 행렬 뒤에 있던 94식 6륜 트럭에 실린 포와 포탄을 내려 장전한 후에 발포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물론 전투 장면 자체가 일본군의 개막장 대전차 전술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라 별다른 활약은 못하며, 이내 빠르게 돌파해 들어온 BT 전차들의 공격에 얻어 터진다.[1] 과도한 경량화의 주요 원인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