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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0년 3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결재에 따라 보안사령부 언론반이 실행한 언론 회유 공작 계획. 신군부가 언론을 장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된 계획이었으며 이후 언론통폐합으로 이어졌다.2. 배경
12.12 군사반란을 통해 사실상 집권한 신군부는 1980년 초부터 언론을 장악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당시 국민여론을 조작하기 위해서는 언론장악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보안사는 이를 위해 언론관계 업무를 본격적으로 실행하였으며 전두환의 사인을 받고 이상재를 반장으로 하는 별도의 언론조종반을 조직하였다. 보안사 언론반의 주요 업무는 바로 언론을 상대로 한 검열와 공작이었는데 매일 언론, 출판, 보도를 검열하였으며 언론인들과 접촉하고 회유하기 위한 공작을 전개하였다.당시 언론반은 차장급 이상을 회유하기 위한 반장 1명, 중진기자 이상의 여론을 수집하는 분석관 2명, 여론 파악과 언론사의 일정을 파악하는 수집관 5명 등 모두 14명으로 구성되었다. 훗날 국방부 과거사위의 진상규명을 통해 당시 언론반장 이상재가 언론을 사실상 조종하먼서 언론인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이들을 회유한다는 이른바 'K공작계획'을 기획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3. 전개
전두환으로부터 결재를 받은 이상재는 K공작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는데, 그가 작성한 공작계획서에는 회유공작 분석표도 함께 달려 있었으며 해당 분석표에는 주요 언론사들의 간부와 중진 언론인들의 정치적 성향과 정책 주장들이 담겨 있었고 정권에 친화적인지에 대하여 평가를 하기 위해 '양호', '협조희망', '적극', '경계, '소극' 등으로 평가항목을 구체적으로 나누었다고 한다.당시 공작의 일환으로 신군부는 보안사령관이 주최하는 언론사주 및 편집국장 면담을 잇달아 개최하였는데 이를 통해 신군부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이 형성될 수 있도록 언론사주와 편집국장을 회유하였고 전두환은 자신에 대한 언론인들의 반응과 평가를 수집하고 분석하였다. 이러한 간담회와 면담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도 일어났으며 전두환은 언론에게 협조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신군부는 언론장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국가기관을 동원하여 언론사들에 강압을 넣을 준비도 하고 있었다. 진실화해위의 진상규명에 의하면 언론사가 보안사의 요구에 불응한다면 당시 신군부는 국세청과 감사원을 통해 해당 언론사에 세무조사와 경영감사를 실시하기로 계획하였으며 지방지 언론사주에 대한 뒷조사도 실시하여 이들의 개인 비리를 지방지 통폐합을 이룰 수단으로도 활용하였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신군부의 언론통제 사건 조사결과 보고서’에 의하면 K공작계획을 통해 수집되고 작성된 문서들은 신군부가 집권한 후 언론인들을 강제해직시키고 언론사들을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참고자료로 이용되었다. 신군부는 K공작계획에서 작성된 문서를 기반으로 1980년 8월 ‘국시부정’ ‘제작거부’ ‘부조리’ 등을 이유로 비협조적이거나 반정부적인 언론인을 상대로 대대적인 해직을 감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