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3 14:51:18

황상무 언론인 테러사건 언급 협박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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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오홍근 테러사건 언급3. "윤석열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 논란좌파가 놓은 덫"4. 5.18 북한개입설 언급5. 사과6. 사퇴7. 반응8. 관련 기사

1. 개요

황상무 前 시민사회수석이 2024년 3월 14일 여러 언론사 기자들이 같이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한 일련의 발언들을 두고 일어난 논란.

2. 오홍근 테러사건 언급

황상무 수석, 'MBC 잘 들어'라며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 언급 (2024.03.14/뉴스데스크/MBC)

황 수석은 MBC를 포함한 대통령실에 출입하는 여러 언론사 기자들이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1.21 사태,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등 과거 북한이 벌인 대남 공작들에 대한 의견을 말했다.

이 때 갑자기 본인이 정보사 출신이라고 말하면서 군대 생활 이야기를 하다가 "MBC는 잘 들어"라고 말하면서 "내가 정보사 나왔는데 1988년에 경제신문 기자가 압구정 현대 아파트에서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린 사건이 있었다(오홍근 테러사건)"[1] 면서 "당시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로 기사 쓰고 했던 게 문제가 됐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

이후 다른 기자들의 '왜 MBC에게 잘 들으라고 했냐'는 질문에 황 수석은 웃으면서 농담이라고 했고, '정보 보고하지 말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황 수석은 발언 경위에 대한 질문에 대해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한 차원이라며 농담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황상무 수석이 정보사에서 복무한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2] 기자들 앞에서 농담이랍시고 가볍게 내뱉은 것 자체가 문제다. 게다가 이 이야기를 하면서 1988년에 정보사가 언론인에게 저질렀던 테러 사건을 언급했으니 기자들 입장에서는 협박으로 느꼈을 수밖에 없었다.

발언의 부적절성을 제하고 보더라도 본인도 언론인 출신인 만큼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의 언행이 기사화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3] 실제로 그렇게 곤욕을 치른 케이스를 많이 알고 있었을 텐데도 굳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22대 총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일어난 사건이라 총선에 큰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국민의힘에서도 황상무 수석이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결국 사건 엿새 뒤 2024년 3월 20일 수석직을 사퇴하였다.#

3. "윤석열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 논란좌파가 놓은 덫"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 논란에 대해 "좌파가 놓은 덫에 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다른 발언들이 보도되기 전부터 '익명의 대통령실 고위 인사가 밝힌 입장'으로 여러 언론에서 보도되었다.

4. 5.18 북한개입설 언급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음모론을 언급하면서 '계속 해산시켜도 하룻밤 사이에 4~5번이나 다시 뭉쳤는데 훈련받은 누군가 있지 않고서야 일반 시민이 그렇게 조직될 수 없다', '일반인들은 총도 쏠 줄 몰랐을 텐데'[4]라면서 "배후가 있다고 의심이 생길 순 있지"라고 발언했다. 이어 "다만 증거가 없으면 주장하면 안 된다"고 마무리했다[5].

5. 사과

'회칼 테러' 언급 황상무 수석 "심려 끼쳐 사과" (2024.03.16/12MBC뉴스)
3월 16일, 대통령실 기자단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본인의 언행으로 인해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했다며 언론인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밝혔고 오홍근 기자의 유가족에게도 "떠올리고 싶지 않았을 사건의 피해자 유가족 여러분께도 심심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며 “앞으로는 공직자로서 언행을 각별히 조심하고, 더 책임있게 처신하겠다."고 밝히며 사실상 사퇴를 거부했다.#
"배후 의심‥헬기 사격 증거 없어" 5·18 사과 없는 황상무 (2024.03.17/뉴스데스크/MBC)
그러나 정작 5.18 민주화운동 왜곡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았다. MBC는 대통령실과 황상무 수석에게 입장을 물어봤지만 답장하지 않았다.

6. 사퇴

윤 대통령, '테러 발언' 황상무 수석 사의 수용…논란 엿새만 / JTBC 아침&
발언한 지 엿새 만에 2024년 3월 20일 황상무가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고 윤석열 대통령이 사의를 수용했다.#

황 수석은 수도권 민심 악화를 이유로 사의를 표했고 윤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20일 오전 6시49분쯤 언론 공지를 통해 “윤 대통령은 황 수석의 사의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3월 14일 황 수석이 MBC를 포함한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과 오찬 자리에서 1980년대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한 사실이 MBC 보도를 통해 알려진 지 6일 만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새벽에 황 수석이 건의를 드렸고, 대통령이 알았다고 수용했다”며 "황 수석이 수도권 민심이 심각하다고 간곡히 (사의) 요청을 드렸고,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황 수석은 윤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사의를 표명했으나 윤 대통령은 사퇴 직전인 19일까지도 황 수석의 사의를 수용할 뜻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대통령실 관계자는 "황 수석님은 대통령과 선거에 누가 된다고 생각해 계속 사의를 표했으나 대통령께서는 황 수석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걸로 안다"고 했다.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도 통화에서 "어제(19일)까지만 해도 황 수석(거취)에 대한 대통령님의 뜻은 변함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황 수석이 수도권 민심이 심각하다는 이유로 다시 사의를 표명했고 결국 윤 대통령이 이를 수용했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이 수도권 민심을 이기지 못하고 결단을 내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수도권 주요 격전지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우세하다는 결과가 발표되고 이에 마음이 다급해진 국민의힘 수도권 후보들이 대통령실을 향해 황 수석의 거취 표명을 압박하는 목소리를 이틀째 낸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7. 반응

7.1. 대통령실

대통령실 "언론사 관계자에 강압 행사한적 없어…언론자유 존중"
국무회의도 결석한 황상무‥'넉 줄 사과' 뒤 두문불출 버티기? (2024.03.19/뉴스데스크/MBC)
3월 18일, 오전 황상무 수석 문제와 관련한 입장문을 내고 "대통령실은 특정 현안과 관련해 언론사 관계자를 상대로 어떤 강압 내지 압력도 행사해 본 적이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윤 대통령은 황상무 수석에 대한 경질 등 인사 조치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실제 참모진들이 황 수석 경질 필요성 등에 대해 언급했지만 직접적인 인사 조치는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황 수석이 거취에 대한 결단을 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인재개발원장 "이종섭 공수처 수사, 정치공작 의심" (2024.03.20/뉴스투데이/MBC)
3월 19일, 김채환 인재개발원장의 개인 유튜브에 '용산에서 방금 큰 소리가 났는데, (긴급)내부소식'이라는 영상을 올렸는데 내용이 문제가 되었다. 이종섭 대사에 대한 공수처 수사는 정치공작이 의심되다는 음모론 그리고 황상무 수석의 '회칼 테러' 발언은 취지를 왜곡한 언론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7.2. 야권

KBS 아나운서 출신인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언론을 향한 무책임한 탄압의 행위들이 끊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입가경이다"라 표현하며 황 수석의 경질을 촉구했고 이세동 녹색정의당 부대변인 역시 '시민협박수석'이라고 표현하며 사퇴를 요구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정권 입맛에 안 맞으면 회칼로 찌르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실의 언론관인가”라고 질타했다. 더불어 “국민의힘이 도태우 후보를 끝끝내 공천한 지 하루 만에 이번에는 청와대 수석이 5.18 민주화운동을 모욕했다”며 “황상무 수석은 즉각 사표 쓰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대통령이 과도하게 오른쪽으로 치우쳐서 이념의 투사가 되려는 상황에서 참모라도 대통령을 균형점으로 오도록 끌어 당겨야 하는데, 대통령과 참모가 손에 손잡고 오른쪽 낭떠러지로 달려가는 것을 보니 한심하다”고 지적했다. #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권력의 정점에 선 자가 이런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을 수 있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라며 "한국이 독재화되고 있다는 국제연구보고서는 정확했다. 모질게 비판해도 황 수석은 아무런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할 것", "정권의 입맛에 맞추지 않으면 칼로 찌를 수 있다는 협박은 정권이 지켜주리라는 믿음과 무슨 말을 해도 괜찮다는 오만함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믿기지 않는 보도를 접하고 경악했다"라고 밝히면서 "정부에 비판적 기사를 쓴 언론인은 회칼 테러를 받아도 되는 거냐. 국민을 이기려는 오만한 권력은 대가를 치룬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라고 꼬집었다. #

이재명 대표는 입틀막 경호도 모자라 칼틀막이냐고 쏘아붙였다. 여권 최대 고민 ‘황상무 상무’…야권 최대 고민 ‘채상병 상병’

용혜인 더불어민주연합 의원도 이를 비판했다. #

7.3. 여당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발언의 맥락이나 경위는 전혀 알지 못하지만 내용으로 보면 부적절한 발언 같다고 반응했다. #
한동훈 "이종섭 대사 즉각 귀국해야‥황상무 수석도 거취 결정하길"
2024년 3월 17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여론이 악화되었다는 걸 느꼈는지 결국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발언이고, 본인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셔야 한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사퇴 요구를 하였다.#

안철수 공동선대위원장은 "시대착오적인 시민사회수석에 대한 조치는 불가피하다"라고 페이스북에 밝혔다. # 안철수 공동선대위원장은 2012년 18대 대선때부터 2018년까지 오홍근과 정치적인 인연을 맺었었다.

7.4. 유족

'기자 테러' 유족 분노‥ "군사정권으로 돌아가"
[인터뷰] "가소로운 사과문…정권 두렵지만 법적 대응 할 것" '회칼 테러' 기자 동생의 울분
오홍근 기자의 동생 오형근 한국인증농산물생산자협회 회장은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공분할 수밖에 없는 그 사건을 재발방지 차원에서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시민사회수석이라는 사람이 MBC 들으라며 공개 협박하는 데 활용했다는 건데 도저히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황상무님, 당신 말씀 본 뜻은 무엇입니까?
오홍근 기자의 아내 송명견 동덕여자대학교 명예교수는 MBC에 "보도를 접하고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고 가슴이 뛰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는 입장을 밝히며 "황상무 님, 당신 말씀의 본뜻은 무엇입니까?", "잘못하면 이 시대에도 칼 맞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아직도 이 나라는 힘 있는 자를 거스르면 테러를 당할 수 있는 국가라는 뜻입니까?"라고 비판했다. #
[단독] "직접 사과는 못 받아…고발은 하지 않지만 국민에게 평생 속죄하길"
(오홍근 기자 동생 인터뷰)
3월 19일, 오홍근 기자의 동생 오형근 회장은 황상무 사퇴 발표 후 인터뷰에서 "송명견 형수와 자신은 직접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 "고발은 하지 않지만 국민에게 평생 속죄하며 살아가길"이라며 입장을 밝혔다.

7.5. 언론

복수의 언론단체들이 용산 대통령실 앞을 찾아 "황 수석의 발언은 언론자유를 보장한 헌법 파괴는 물론이고 범죄로부터 국민을 지켜야 할 공직자의 기본을 저버린 것으로 헌법수호와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대통령의 책무와도 충돌한다."며 해임만이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길이라며 황 수석의 해임을 강하게 촉구했다.#

3월 17일 이기주 MBC 기자는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2022년 11월) 당시 일베 협박글에서도 '사시미 칼로 찔러 죽이겠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 황 수석 발언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실 고위관계자와의 통화 중에도 '해도 적당히 해야지, 그러다 MBC 너희들 다 죽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대통령실 사람들이 MBC에 대한 극단적 혐오를 공유하고 있다면 위험하고 참담한 일", "정부 비판 보도를 할 때마다 고소·고발이 들어오고 기자가 수사 대상이 된다. 보도국 내 거의 모든 팀에 수사 받고 있는 기자가 있다"며 "다들 공영방송 기자라는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지만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힘들어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입장을 밝혔다.#

7.5.1.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8. 관련 기사



[1] 팩트도 틀렸다.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아니라 청담동 삼익아파트였다. 경제신문기자도 아니고 중앙일보 기자였는데 경제신문 창간 준비로 파견 나가 있는 기자였다.[2] 공식적으로는 방위병으로 입대해 소총수로 복무한 것으로 되어 있다. 황상무의 복무한 시기는 1989년 7월 10일 ~ 1990년 12월 19일로 군사정권의 후신인 노태우 정부 시기이므로 방위병을 정보사에서 근무 시키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리라 볼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출퇴근하는 방위병을 정보사에서 복무시킨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정말 황당하게도 정보사에서 근무 했다면, 오홍근 테러사건(1988년 8월 6일)이 벌어진 지 약 1~2년 후로 오홍근 사건을 비롯한 노태우 정부 시기 군이 벌인 공작들에 대해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전말을 알고 있을 가능성도 있으나, 기자들에게 그런 내용을 떠들고 있는 것 자체가 정보를 다루는 국가공무원으로 자격이 없음을 입증하는 것이다.[3] 특히나 시민사회수석과 기자들의 식사는 표면적으로는 사석이지만 실제로는 공석과 다름없다. 기자와의 식사 자리를 공석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건 공직자들이 상식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며, 이를 '사석'이라고 착각하고 말을 함부로 했다가 징계를 받은 사례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인 나향욱 개돼지 망언 사건도 기자와의 식사자리에서 나온 말이다.[4] 자칭 정보사 출신이라도 공식 방위병이라 그런지, 일반인들은 총 쏠줄도 모른다라고 알고 있다.[5] 황상무는 방위병이면서 정보사 출신이라고 주장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1989년 자칭 정보사 출신 방위병이 북한개입 썰을 푸는 윤석열 정부 제2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의 위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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