ПТ-76 «Плавун» | ||||
파생형 | 실전 | 운용국 | 미디어 | 모형 |
1. 개요
소련에서 냉전기 개발한 수륙양용경전차 PT-76의 실전 동원 목록 일람 문서.해당 전차는 저렴한 가격에 세계 각지로 뿌려져 사용되었기에 냉전부터 현대전까지 끊임없이 각국에서 실전에 동원되었다.
2. 냉전기
2.1. 헝가리 혁명
헝가리 혁명 진압에 투입된 소련 해군 보병대 소속 PT-76 "458번차" |
2.2. 인도차이나 전쟁
2.2.1. 베트남 전쟁
베트남 전쟁 시기의 북베트남 육군 소속 PT-76 |
2.2.1.1. 케산 전투
랑 베이 전투 당시 북베트남 육군 소속 PT-76B 전차 소대와의 전투를 묘사한 일러스트 |
기지를 지키던 그린베레와 산악부족 몽타냐드들도 모든 게 열세였던 상황에서 전차 2대를 파괴하는 등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 케산으로 후퇴해야 했는데, 전투 내내 베트남군이 전차를 대동하고 기습했다면서 계속 지원 요청을 했으나 이 소식을 들은 미 장성들이 "우리가 보고받은 바로는 베트남 측에는 그러한 지형에서 운용할 수 있는 전차가 없는 것으로 보이며, 야간에 장병들이 잘못 본 것으로 추정된다."라는 말로 어영부영하다가 반격시기를 놓친 것도 패배에 한 몫 했다.
이 랑 베이 전투에서 미군과 몽타냐드군이 패주했던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사유가, M72 LAW로 PT-76을 격파하는 것에 실패했던 것이 꼽히는데, 이 M72는 원래 전투 시기 주력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아니며, 106mm M40 무반동포로 3~4대 정도를 격파했지만, 포탄이 떨어져 어쩔 수 없이 M72를 집어든 것이었다.
또한, M72의 관통력으로는 충분히 PT-76을 격파 가능했지만, 당시 야간이라 정확히 차체 하단을 노리는 것이 불가능해 대충 보이는 실루엣에 조준하여 미군은 전면 상부의 경사장갑을 가격했는데, 몇몇 탄은 전면 파도막이를 들이받고 튕겨나갔다고 한다.
이후 전훈을 얻은 미군 측에서도 상부 경사장갑 탓에 자꾸 도탄이 나는 것을 본 이후부터는 M72로 PT-76의 측면을 가격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2.2.1.2. 벤 헷 전투
벤 헷 전투 당시 미군의 M48 패튼에 의해 격파된 베트남 인민군 산하 제202기갑연대 소속 PT-76B[1] |
2.2.2. 라오스 내전
라오스 내전 당시 격파된 베트남 인민군 소속 PT-76B |
2.2.2.1. 9번 국도 전투
9번 도로 전투 당시의 베트남 인민군 산하 제9전차중대 소속 PT-76B "555번차" |
전투 시작 전, 555번차의 승무원은 제3공수여단사령부가 위치한 543고지와, 이 곳에 주둔 중인 1개 낙하산대대, 1개 포병대대, 1중대를 제압하는 임무를 하달 받았으며, 당시 555번차에 탑승하고 있던 승무원은 전차장 "응우옌반두옌", 탄약수 "당반도안", 조종수 "응우옌토앙" 총 3명이었다.
1971년 2월 25일 11시 30분, 제9전차중대는 출격 명령을 받고 555번차가 선두에서 중대를 이끌게 되었는데, 9중대가 진격하는 것을 본 라오스 왕국군 측에서는 포격 및 근접항공지원을 요청하였으나, 이 때 전차장인 응우옌반두옌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전차포와 기관총을 사용하여 포병들을 제압하고 통신소로 돌진하였다.
이후 555번차는 공성전 끝에 543고지를 장악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전차장인 응우옌반두옌은 1급해방승리훈장을 수여받고, 조종수 응우옌토앙과 탄약수 당반도안은 2급해방승리훈장을 수여받았으며, 해당 "555번차"는 일명 "9번 국도의 호랑이"라는 별명을 부여받았다.
2.3. 중동전쟁
2.3.1. 6일 전쟁
6일 전쟁 당시의 이스라엘 방위군 노획 이집트 육군 소속 PT-76B |
이후 손상을 덜 입은 단차나, 멀쩡하게 노획된 단차를 이스라엘군이 운용하게 되었다.
2.3.2. 욤 키푸르 전쟁
욤 키푸르 전쟁 당시 유기된 시리아 육군 소속 PT-76B |
깜짝 놀란 아랍연맹군은 다수의 PT-76을 버리고 도망쳐버렸으며,[2] 이 버려진 단차들은 이스라엘 방위군에게 노획당하여(...) 경전차 및 수륙양용전차 전력의 공백으로 골머리를 앓던 이스라엘군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2.3.2.1. 오르하 단지 전투
오르하 단지 전투 당시의 이스라엘 방위군 제14기갑여단 산하 제88대대 소속 PT-76B |
직전 제88대대에서는 이집트군으로부터 도합 6량의 PT-76B를 노획하여 사용했는데, 이 시기 상술한 대대 전용 PT-76으로 개수하여 사용했으며, 수에즈 운하에서 이집트군과 전투를 치렀다.
전투 끝에 이집트군은 오르하 단지로 진입을 포기하고 후퇴하였으나, 이 당시 제88대대의 PT-76 중 1량이 완전 격파당했으며, 나머지 5량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2.4. 프라하의 봄
프라하의 봄 진압에 투입된 소련 육군 소속 PT-76 |
2.5. 에티오피아 내전
에티오피아 내전 당시 투입된 소련 해군 보병대 소속 PT-76 "194번차" |
2.6. 인도-파키스탄 전쟁
2.6.1.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다카 방면으로 이동 중인 인도 육군 소속 PT-76B |
1971년 12월 9일 인도 제1기갑대대 D중대의 PT-76들과 파키스탄군의 건보트 3척이 다카 지역의 강에서 교전을 벌여 파키스탄군의 건보트 3척이 격침되었고 180여명을 포로로 잡았으며, 동월 11일에는 파키스탄의 건보트 1척이 PT-76에 기관총 사격을 가해 교전이 벌어져 건보트는 침몰, 파키스탄군 83명이 전사하고 33명이 포로로 잡혔다.
동월 13-14일에는 제45기병연대 소속의 PT-76과 인도 제9보병사단이 바이탑(Bhaitab) 강을 도하하여 샴간즈(Syamganj)에 있는 선착장을 공격하자 파키스탄군은 진지를 포기하고 인도군에 항복했으며 파키스탄 제107여단 병력 3,700명을 포로로 잡았다.
제45기병연대의 A 중대는 마드후마티 강에 진지를 구축하고 방어중인 파키스탄 9사단을 강북쪽에서부터 은밀히 도하하여 배후에서 기습하였고 50여명의 장교와 343명의 병사를 포로로 잡는 등의 대활약을 펼쳤다.
2.6.1.1. 가리푸르 전투
가리푸르 전투 당시의 인도 육군 소속 PT-76B "파키스탄 채피들을 위한 악마" |
전투 중, 인도군 측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는데, 소유하고 있던 PT-76B 중 6량이 격파되는 피해를 입는 와중에도 분전하여 파키스탄군의 채피를 상대로 화력으로 압도하는 활약을 하였다.
2.7. 동티모르 침공
동티모르 침공 당시의 인도네시아 해병여단 소속 PT-76B |
2.8. 앙골라 내전
프로티아 작전 당시 앙골라 인민해방군 소속 PT-76B를 구난 중인 남아프리카 공화국 방위군[3] |
2.9. 캄보디아-베트남 전쟁
캄보디아-베트남 전쟁 말기 캄보디아에서 철수하는 베트남 육군 소속 PT-76B |
2.10. 이란-이라크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의 이라크 육군 소속 PT-76B[4] |
이라크군 소속의 PT-76의 활약상으로는, 1983년 2월 남부 티그리스강 유역에서 벌어졌던 "발 피질 작전"이 유명한데, 당시 이라크의 파키리 소장과 6기갑사단의 PT-76 전차들은 전답, 진탕, 수로, 하천 등으로 구성된 이 지역을 따라 올라오는 이란군의 건보트와 조디악들을 공격해 진출을 좌절시켰으며, 이 공로로 파키리 소장은 중장으로 진급해 후세인의 오른팔이 된다.
4년후 1987년 이란은 포기하지 않고 작전명 칼바라로 명명된 2차 대규모 공세를 감행했고, 이라크군은 3/4/5/6/7 군단에서 차출된 합동 세력으로 이란군을 막아섰는데, 이 때 피해를 많이 본 이란군은 목표지점에 도달하자 작전목표를 달성했다고 발표한 뒤 퇴각한다. 이 합동 군단은 훗날 공화국 수비대가 되었다.
2.11. 걸프 전쟁
걸프 전쟁 당시의 이라크 육군 소속 PT-76B[5] |
3. 현대전
3.1. 유고슬라비아 전쟁
3.1.1. 크로아티아 독립전쟁
크로아티아 독립전쟁 당시의 크로아티아 제8경보병여단 소속 PT-76B |
3.1.2. 열흘전쟁
열흘전쟁 당시의 슬로베니아 국토방위군 소속 PT-76 |
해당 단차들은 전쟁 발발 10일 뒤,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이 휴전을 선언하며 물러난 뒤에도 운용되었다가 현재는 1량만이 남아 피브카 군사사 박물관에 소장되고 있다.
3.1.3. 보스니아 전쟁
보스니아 전쟁 당시 유기된 스릅스카 공화국 육군 소속 PT-76B |
3.2. 제1차 체첸 전쟁
그로즈니 전투 당시의 러시아 연방 육군 산하 제59 특수목적연대 소속 PT-76B |
그 1량은 세르게이 골루베프 중위가 지휘하는 차량이었고, 격파되기 전 RPG-7의 공격을 무려 두 번이나 견뎌냈고 적의 진지 3곳을 파괴했다.
러시아군의 조사에 의하면 철수하는 아군을 엄호하기 위해 골루베프 중위의 PT-76이 체첸 진지들을 향해 공격했다고 한다. 교전은 치열했고 두 번째 RPG-7에 의해 PT-76의 포신이 무력화되었는데, 그러자 골루베프 중위는 전차를 체첸 반군의 건물을 향해 돌진시켜 그 건물을 파괴했고 골루베프와 승무원 전원은 건물의 잔해에 깔려 사망했다고 한다.
러시아 정부는 골루베프 중위의 영웅적 행동을 치하하며 용기 훈장을 사후 수여했다.
3.3. 제2차 체첸 전쟁
제2차 체첸 전쟁 당시 투입된 러시아 연방 내무군 산하 제8독립여단 소속 PT-76B |
3.4. 이라크 전쟁
이라크 전쟁 당시 격파된 이라크 육군 산하 PT-76B |
3.5. 아체 분쟁
아체에서 경계 작전중인 인도네시아 해병대 소속 PT-76(M)[6] |
그러나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으로 인한 엄청난 피해 탓에 2005년 아체 분리주의자 측에서 결국 정부 측에 항복을 선언하였고, 이에 인도네시아 정부 또한 자치권을 보장하면서 큰 전투 없이 분쟁이 종결되었다고 한다.
3.6. 2012년 말리 쿠데타
2012년 말리 쿠데타 당시 바마코 거리의 말리 육군 소속 PT-76 |
[1] 1969년 3월 3일 촬영된 사진이다.[2] 무려 40량이나 멀쩡한 PT-76들을 유기했다고 한다. 아랍연맹군이 이런 추태를 부리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 이스라엘 독립전쟁 시기부터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매우 심각한 수준.[3] 1981년 촬영된 사진인데, 결국 이 단차는 구난하는데 실패하여 회수를 방지하기 위해 자폭처리하였다고 한다.[4] 1988년 8월 8일 촬영된 사진이다.[5] 1991년 1월 1일에 촬영된 사진이다.[6] 2003년 3월 21일 촬영된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