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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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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내전
Laotian Civil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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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일부
날짜 <colbgcolor=#fff,#191919>1959년 5월 23일 ~ 1975년 12월 2일
장소 라오스[1], 호찌민 루트
결과 파테트라오의 승리, 라오스의 공산화
영향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패배하게 되는 계기
라오인민민주공화국 수립
교전 국가 및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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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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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라오스 왕국 국기.svg 라오스 왕국군
전사 최대 15,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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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라오스 국기.svg 파테트라오군 불명
파일:베트남 국기.svg 파일: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기.svg 북베트남군 & 베트콩 전사 42,000명 이상[4]

1. 개요2. 배경3. 전개4. 라오스 왕국의 패전 이유5. 한국군 파병 시도6. 피해7. 출처8.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일부다. 라오스 왕국의 정부군과 파테트 라오의 공산군 간의 일어난 내전이다.

2. 배경

파테트 라오1950년 8월에 결성된 단체이며 "조국 라오스"라는 뜻을 가진 공산당이다. 이들은 항불전쟁 당시 베트민과 연합하여 프랑스에 맞서 싸웠고, 이후 베트남 전쟁에서는 미국에 맞서 싸웠다.

파테트 라오의 지도자 쑤파누웡은 라오스 공산 임시정부를 만들어 스스로 수상을 자임했다. 이후 라오스의 북부를 파테트 라오가 장악하면서 우파 민족주의자와 좌파 민족주의자 간의 내전이 일어났으며, 바로 옆나라 베트남에서도 북베트남남베트남 간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라오스 내전 또한 냉전으로 확대되었다. 1954년 4월 제1차 제네바 협정에 따라 라오스의 중립안이 보장되면서, 평화와 중립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중립군이 창설되었다. 이 중립군은 많은 인원과 무기를 지원받는 등 좋은 대우를 받았다. 이후에는 라오스 내전이 발발하면서 우파, 중립파, 좌파의 충돌이 벌어졌다.

3. 전개

1964년 미군의 통킹만 공습으로 베트남 전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북베트남군, 베트콩라오스캄보디아를 건너 남베트남을 공격하는 일명 호찌민 루트로 인해 라오스 왕국에서도 북베트남군베트콩이 들어왔다. 이때 같은 공산군인 파테트라오군이 베트콩과 협력하여 라오스 왕국 정부군과 싸웠다. 또한 당시 라오스에 있던 몽족(Hmong)들 또한 미국과 라오스 정부군에 협력했고, 파테트 라오와 베트콩에 맞서 싸웠다.

초기에 중립파는 중립을 지키는 듯 보였으나, 중립군의 지휘관인 콩 레(ກອງແລ / Kong Le) 대위가 소련과 북베트남, 파테트 라오에게 지원을 받는 등 친공 성향을 보이자 1962년까지 파테트 라오와 연합하여 라오스 왕국과 교전을 했다. 그러나 서로의 목적이 원래부터 달랐기에 결국 파테트 라오와 중립파가 계속 갈등을 빚게 된다. 콩 레는 자신을 따르는 중립군을 데리고 미국과 라오스 왕국에 합류했다. 나머지 친공 성향의 중립군이 파테트 라오에 합류한 채 애국 중립파를 창설하게 되면서 중립파는 우파와 좌파로 분열되었다. 또한 미국은 1960년대 초부터 라오스에서 공중 보급 및 비정규전 훈련 프로그램을 수행했으며, CIA는 적어도 3만 명의 몽족과 다른 라오스 소수민족들을 규합하여 준군사조직을 만들었다. CIA가 고용한 조종사들은 CIA 소유 비행기를 몰고 이 비밀군대를 지원하기 위한 물자 보급과 공습도 행했다. 이 군대를 지원하기 위해 미국이 사용한 비용은 최소 연간 300만 달러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40~50명의 CIA 요원들이 이 공작을 지휘했고, 17,000명의 태국인 용병의 지원을 받았다. 옆의 베트남 전쟁까지 묶어(북베트남군&베트콩이 호치민 루트로 우회했다) 사실상 인도차이나판 세계대전쟁이라 할 수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는 남베트남에 있던 주월 미국 대사관이 베트콩에게 점령당하면서 미국 내부에서는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가 일어나 미국이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결국 미국에서는 정권이 바뀌면서 베트남과 라오스에서 군대를 철수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이에 미국의 동맹국들도 단계적으로 철수를 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철수할 때 1973년 1월 미국과 베트남, 파테트 라오가 파리 협정을 통해 평화 협정을 체결했고 이에 미군과 태국군은 라오스에서 철수하였다.

그러나 북베트남과 파테트 라오가 이 평화 협정을 제대로 지킬 일은 만무했고, 동년도에 쑤파누웡은 민족정치자문위원회(NPCC)를 조직하여 형식상 군주제를 유지하며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는 듯했으나, 그의 속내는 베트남과 같은 적화통일을 완수하고자 하는 야욕이었다. 미군 철수 2년 후, 1975년 북베트남군이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을 점령해서 우파 정권을 무너뜨려 공산주의 국가로 적화통일되자, 사방 밧타나 국왕과 쑤완나 푸마 총리가 동반 사임했다. 12월 1일부로 쑤파누웡은 인민대표민족회의를 긴급 소집하여 왕정 폐지 후 현재의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했다.

여담으로 1975년 인도차이나 지역 3개국의 공산화 과정에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75년 가장 먼저 공산화가 된 나라는 캄보디아였고, 캄보디아 공산화 2주 후인 4월 30일 베트남이 공산국가로 통일되었다. 그런데 라오스는 가장 마지막까지 버티면서 8개월 후인 12월에 공산화가 되었다.

4. 라오스 왕국의 패전 이유

라오스 왕국은 명목상 중립국이지만 자유주의와 우파 성향의 친미 국가라는 점에서 내전 당시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남 공화국과 마찬가지로 쿠데타가 자주 일어나고 북베트남의 지속적인 침공으로 치안이 불안정했다. 심지어 군 경험이 없는 민간인들까지 징집되어 장교로 임명되는 등 군의 체계가 망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망가진 군대는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고위층 장교들은 정권을 잡기위해 쿠데타가 항상 일어났고 심지어 북베트남군과 파테트 라오군과 싸우기 위해 나갔던 병사들이 단체로 탈영을 하거나 반란군에 가담했다.

전반적으로 라오스 왕국이 멸망한 이유는 베트남 공화국과 비슷하다.

5. 한국군 파병 시도

대한민국 국군의 첫 해외파병 시도이다. 이는 베트남 전쟁보다 더 이른 1950년대로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라오스 왕국을 돕기위해 3개 사단 파병을 미국 측에 제의했으나[5], 미국은 한국이 라오스 내전에 개입할 경우 중국소련의 개입을 우려하여 고사했다.

6. 피해

재래식 무기의 배치 형태를 기준으로 볼 때도 베트남전은 역사상 어떤 전쟁보다도 규모가 컸었다. 한 지역 전쟁에서 미군이 폭격으로 사용한 전비가 제2차 세계대전에 연합군이 투입한 총 경비를 초과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공중 폭격으로 사용된 폭탄이 약 200만 톤에 육박했던 반면, 베트남전에서는 라오스 국경의 침투로에 1965년부터 1971년까지 쏟아부었던 폭탄만 총 200만 톤이었다. 이 폭탄량은 호치민루트에 대한 공습이 하루에 500회를 넘지 않았을 때까지의 집계였다
베트남 10000일의 전쟁 p.327~328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4~1973년 까지 미 공군은 호찌민 루트를 파괴한다면서 총 58만 번 출격하여 최소 200만 톤 이상의 폭탄(네이팜탄과 클러스터 폭탄 등)을 라오스에 퍼부었는데, 라오스에 퍼부은 면적당 폭탄 투하량을 계산할 경우 이는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규모로서, 캄보디아와 함께 가장 많은 양이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최소 50만 명 이상의 라오스 민간인이 영문도 모른 채 죽었으며, 현재까지도 들판과 밀림 곳곳에 묻혀있는 클러스터 폭탄과 지뢰 등(투하된 폭탄은 1/3이 불발탄임)으로 인해 그 동안 1만 2,000명 이상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는 통계도 있다.[6]

반면에 미라이 학살 50주년해서 만든 미국 웨스트링크 사의 시사프로 <Democracy Now!>에서 어떤 학자는 라오스에서 100만 명이 죽었다고 추산했다고 언급했다.#[7]

경제적 피해도 엄청나 UN 통계 기준으로 1970년부터 1979년까지는 항상 라오스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1위를 기록할 정도였는데, 라오스의 1인당 GDP는 1970년 기준 43달러, 1979년 기준 83달러로 두자릿수에 불과했다.

7.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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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오스, 중국, 미얀마 국경에서도 전투가 일어났다.[2] 중립파가 라오스 왕국에 합세하자 중립파에 남은 좌파들이 모여 만든 조직.[3] 라오스군이 미얀마, 중국 국경 근처에서 중국과 전투를 벌이다 미얀마 민병대가 전투에 합세했다[4]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이 미군의 공격을 피해 라오스로 잠시 피난 와있었거나 북베트남에서 남베트남으로 출정한 북베트남군들이 라오스에서 이동 중에 라오스 내전에 휘말려 전사한 모든 병사들의 수치다.[5]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프랑스의 식민지 전쟁이었지만, 당시 이승만 정부는 6.25 전쟁 때 유엔군의 일원으로 파병한 프랑스를 돕는다는 명분을 내세웠다.[6] 황성환,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 소나무, 2009, 395쪽.[7] 380만 명의 베트남인과 80만 명의 캄보디아인 그리고 100만 명의 라오스인이 전쟁으로 희생되었다고, 어떤 학자는 추산한다고 방송에서 언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