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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니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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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잠을 자고 있는 제우스와 가니메데.[1]

1. 개요2. 상세3. 신들의 대화
3.1. 제우스와 가뉘메데의 대화3.2. 제우스와 헤라의 대화

1. 개요

Γανυμήδης/Ganymedes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인물. 트로이소년 왕자. 트로스의 아들이자 일로스 2세,[2] 아사라코스[3]와는 형제지간이다.

고전 그리스어 발음으로는 가뉘메데스, 현대 그리스어로는 가니미디스(Γανυμήδης).

2세기 경 파우사니아스가 쓴 지리서에서는(1918년 하버드판 기준 2권 13장) 플리아시아인들이 섬기는 여신의 이름이 '가뉘메다'로, 나중에 헤베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2. 상세

호메로스는 가뉘메데를 모든 인간들 중 가장 아름다운 미인이라고 묘사했고 히기누스의 《이야기》에서도 최고의 미남 중 하나로 분류됐다.[4]

가뉘메데에게 반한 제우스독수리를 시켜, 혹은 본인이 독수리로 변신해서 납치한 뒤 올림포스에서 술을 따르게 했다고 전해진다. 이 술 따르는 모습을 본뜬 별자리가 물병자리. 여담이지만 제우스가 가뉘메데에게 반한 이유는 꿀벅지.[5] 사냥 후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연못의 물을 엎드려 마실 때 드러난 흰 허벅지에 반해버렸다고.

납치당한 것치고는 적응을 잘 했는지 제우스가 꽤 귀여워했다고 한다. 일단 제우스는 가뉘메데에게 신들의 젊음과 영생을 유지할 수 있는 음식을 관리하는 중요한 직업을 주고 가뉘메데 또한 불로불사의 몸으로 만들어 신의 반열에 올려줬다. 가뉘메데 또한 제우스와 자신이 맡은 임무에 충실했는데 신들의 여왕이자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가 이에 대해 불만을 표하자, 제우스는 헤라도 가뉘메데와 입을 맞춰보면 이해할 수 있을 거라면서 가뉘메데의 달콤함을 확인해 보라는 식으로 얘기한다(...).

또한 술을 따르는 일을 하다 보니 헤라를 제외한 다른 신들도 원래 전임자였던 청춘의 여신 헤베 못지않게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데다 그녀의 빈자리를 훌륭히 메꾸는 가뉘메데를 좋게 평가했다. 제우스의 불륜이라면 치를 떠는 헤라는 이젠 제우스가 남자에게까지 눈독을 들이자 당연히 이를 갈며 가뉘메데를 싫어했지만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가뉘메데에 대한 다른 신들의 평가가 너무 좋고 제우스도 이전의 다른 애인들과는 달리 너무 잘 보호해서 해치지 못했기 때문이다.[6] 그 대신 트로이를 저주했다고.

당장 제우스는 그 동안 바람핀 수많은 여신과 인간들이 자신의 아이를 낳으면 관심을 끊어버리고 술관원[7]같은 올림포스의 공식적인 직위도 부여해 주지도 않았으며 신으로 만들어 준 적도 별로 없다.[8] 그러나 가뉘메데만큼은 이 모든 기준에서 예외였고 한 술 더 떠 물병자리까지 되었다.

몇몇 학자는 제우스와 가뉘메데 간의 동성애 관계를 부정하며, 제우스가 가뉘메데를 정신적으로 사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9] 즉, 성적인 관계는 갖지 않았다는 것. 물론 이는 사학계 등에 오랜 전통처럼 존재해온 동성애 지우기의 관행인지라 현대에는 비판받는 포지션이다. 더군다나 제우스와 가뉘메데가 성관계를 맺는 모습을 묘사한 고대 그리스 시대 토기들이 존재해 당시 사람들도 신화 속 제우스와 가뉘메데 간의 관계를 성적 관계로 인지했음을 알 수 있다.

본래 올림포스에서 술을 따르는 것은 청춘의 여신이자 제우스와 헤라의 딸인 헤베의 임무였는데, 헤베가 헤라클레스에게 시집간 후[10] 가뉘메데가 납치되어 그 자리를 맡게 된 것이었다. 제우스는 아들을 데려간 값으로 가뉘메데의 아버지 트로스[11]에게 황금 포도나무와 불사의 신마를 주었다고 한다. 트로이의 왕 라오메돈이 이 말로 헤라클레스를 낚았다가 트로이는 개박살나고 프리아모스를 제외한 왕자 49명이 몰살당했다는 전승이 있다.[12]

동성애가 일반적이었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전통적으로 동성애의 신으로 여겨지기도 했는데 가뉘메데스의 라틴식 이름인 카타미투스(Catamitus)가 바텀 역할의 동성애 소년을 가리키는 캐터마이트(catamite)라는 단어의 어원이다.

다른 이들에게도 매력적이었던 것인지 종종 에로스의 연인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이 둘의 일화를 보면 에로스가 악의 없이 거짓말을 해서 가뉘메데를 울렸다는 둥, 또는 같은 비슷한 정신연령대라 그런지 베프에 가까운 관계로도 묘사된다. 로도스의 아폴로니오스의 《아르고나우티카》에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가뉘메데와 에로스가 황금 주사위 내기를 했는데, 에로스가 가뉘메데 몰래 사기를 쳐서 가뉘메데가 압도적으로 져 버리자 삐져서 남은 주사위 2개를 던졌지만 그것도 잃어버리고 풀이 죽어서 눈물을 흘리며 자리를 떠났다. 이를 처음부터 다 본 아프로디테는 에로스에게 "순진한 애를 속여서 울리고 주사위를 따먹으니 속이 편하니?"라며 혼내기도 했다고. 물론 태초부터 존재한 에로스의 짬밥이 가뉘메데와 비교할 수 없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아래 신들의 대화등을 보면 가뉘메데는 왕자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뭔가 순박하고 백치미 넘치는 이미지가 있었던 것 같다.

3. 신들의 대화

시모사타 출신의 아시리아인 작가이자 수사학자였던 루키아노스는 AD 175 ~ 165년에 왕성하게 활동한 인물이었다. 고대 아테네에서 10년 동안 체류하며 수많은 작품들을 써냈는데, 주로 미신을 조롱하기 위해 풍자적인 내용을 그득 담은 책들을 주로 집필했다. 당연히 그리스 로마 신화도 그의 조롱을 피해갈 수 없었다. 루키아노스는 호메로스와 그리스 신들을 조롱하기 위해 일부러 25개의 문단으로 이루어진 '신들의 대화(Θεῶν Διάλογοι)'을 출판했는데, 여기에 가뉘메데와 관련된 글이 있다. 첫 번째는 제우스가 가뉘메데를 납치, 올림포스 산에 도착한 직후 제우스와 가뉘메데 사이의 대화, 두 번째는 제우스가 가뉘메데만 싸고 돌자 이에 불만을 품은 헤라와 제우스 사이의 언쟁에 대한 내용이다.

아래 해석은 1961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MD MacLeod가 Loeb Classical Library volume CCCCXXXI 판에서 번역한 내용을 따른다.

3.1. 제우스와 가뉘메데의 대화

제우스 : 자 가뉘메데, 우리가 산에 도착했으니 나에게 입맞춤을 해다오. 그렇게 한다면 내가 새의 형상을 하고 있었을 때와는 달리 구부러진 부리나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날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가뉘메데 : 이름없는 분이여, 당신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독수리가 아니었나요? 당신이 내 양떼 사이에 있던 나를 들어올려 이 곳까지 데려오지 않으셨나요? 언제 그 많던 깃털들을 언제 다 없어지게 하셨나요? 지금 당신의 모습은 방금 직전과는 많이 변했군요.

제우스 : 네 앞에 있는 자는 한낱 이름없는 인간이 아니요 한낱 독수리도 아니다. 나는 신들의 왕이지만 잠깐 내 형상을 바꾸었을 뿐이다.

가뉘메데 : 그게 무엇인가요? 혹시 당신은 위대한 신 이신가요? 그렇다면, 하지만 당신은 뿔도 파이프도 성기고 비틀린 다리도 가지고 있지 않으시군요.

제우스 : 판이 너의 유일한 신인가?

가뉘메데 : 그렇답니다. 우리는 가장 좋은 양을 골라 그의 신상이 세워진 그의 동굴로 끌고가 제물로 바친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저 납치범일 뿐이군요,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에요.

제우스 : 말해보아라, 제우스의 이름을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단 말인가? 가르가론 산[13]에 세워진 그의 신전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단 말인가? 비와 천둥, 번개를 보내는 자를 정녕 모른단 말인가?

가뉘메데 : 세상에나, 당신이 전날 우리에게 그 많은 우박을 쏟아부은 사람이란 말인가요? 사람들이 그 위에서 온갖 소음을 만들어낸다고 찬양하는 분, 제 아버지가 숫양을 바치던 그 분이란 말인가요? 신들의 왕이시여, 제가 당신에게 무슨 잘못을 했나요? 제가 이 곳까지 납치되어 오는 바람에 제 양들을 보호할 사람이 없어졌어요. 늑대들이 제 양들을 덮칠지도 몰라요.

제우스 : 뭐라고? 설마 아직도 네 양을 걱정하느냐? 너는 이제 불멸의 몸으로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 것이란 말이다.

가뉘메데 : 그게 무슨 말인가요? 설마 오늘 안으로 저를 이다로 돌려보내지 않을 셈이신가요?

제우스 : 당연히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리한다면 내가 무엇하러 독수리로 모습까지 바꾸었겠느냐?

가뉘메데 : 제 아버지가 온 세상을 뒤져 저를 찾으려 드실 텐데요. 그리고 저를 찾으시면 양떼를 놔두고 도망간 죄로 저를 심하게 벌주실 거에요.

제우스 : 어떻게? 그가 어떻게 너를 찾는단 말이냐?

가뉘메데 : 제발 이리 하지 말아주세요. 벌써부터 제 아버지가 보고 싶어요. 저를 되돌려놓아주신다면 제 아버지께 말해 제 몸값으로 거대한 숫양을 바치게 할 거라고 약속할게요. 그 중에서도 특별히 목초지에서 양들을 이끄는, 거대한 3년짜리 숫양을 골라 바칠게요.

제우스 : 이 아이는 어찌나도 단순한지, 어찌나도 이렇게 순진하단 말인가? 아직도 그저 어린아이일 뿐이구나! 여길 보아라 가니메데. 너는 이제 그 모든 것들에 작별인사를 하고 네 양떼와 이다에 관한 모든 걸 잊어버려라. 너는 이제 천상계의 일원들 중 하나이며 여기서 네 아버지와 네 나라를 도우면 되는 것이다. 치즈와 우유 대신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먹고 마실 수 있을 것이다. 너의 아름다운 손으로 우리에게 넥타르를 따라다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너는 더이상 인간이 아닌 불사신이 될 것이고 내가 너만의 별, 즉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을 만들어 너가 완벽한 행복을 영원히 누릴 수 있게 해줄 것이라는 점이다.

가뉘메데 : 하지만 제가 놀고 싶다면 어떻게 하나요? 누가 저와 놀아준단 말인가요? 이다에는 제 또래 친구들이 많았는데요.

제우스 : 여기에도 너와 놀아줄 사람들이 많다. 저기에 에로스가 있고 아름다운 미소년들도 많다. 오직 너만이 기운을 차리고 지상세계의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멈추면 되는 일이다.

가뉘메데 : 하지만 제가 어떻게 당신에게 도움이 될까요? 여기서도 양떼들을 돌봐야 하나요?

제우스 : 아니다. 너는 우리의 술잔에 포도주를 따르고 과일을 건네주며 식탁에서 우리들을 돌보게 될 것이다.

가뉘메데 : 아주 간단한 일이네요. 저는 우유를 따르는 법을 알고 우유를 담은 잔을 사람들에게 돌리는 법을 알아요.

제우스 : 또 이러는구나. 언제까지 그 하찮은 우유 타령을 하고 있을 셈이냐? 아직도 네가 인간계에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똑똑히 말해주자면 이 곳은 천상계 곧 신성한 올림포스다. 그리고 이 곳에서 마시는 음료는 우유가 아니라 신들의 음식 넥타르다.

가뉘메데 : 그게 우유보다 맛있나요?

제우스 : 얼마 안 가서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넥타르를 한번 맛보고 나면, 더이상 네 우유 따위는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가뉘메데 : 밤에는 어디서 자야 하죠? 제 친구인 에로스와 함께 자면 되나요?

제우스 : 아니다. 그게 내가 너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이유지. 나는 네가 나와 함께 자기를 원한다.

가뉘메데 : 혼자 주무실 수는 없나요? 저와 함께 잠자리에 드는 걸 원하신다고요?

제우스 : 그렇다. 너같이 아름다운 소년일 경우에는 말이지.

가뉘메데 : 하지만 제가 아름답다고 해도 어떻게 당신이 더 잘 주무실 수 있다는 말인가요?

제우스 : 아름다운 소년은 달콤하고 부드럽지. 그리고 잠도 더 푹 잘 수 있게 해 주느니라.

가뉘메데 : 하지만 제 아버지는 저와 함께 잘 때마다 제가 이리저리 뒤척인다고 불평하셨는걸요. 저와 함께 자고 나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가 너무 뒤척여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짜증을 내셨어요. 그래서 보통 저를 어머니에게 보내 둘이서 함께 자게 했답니다. 만약 그 것이 당신이 저를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라면, 아마 저를 지상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더 나으실 거에요. 저는 밤 내내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당신이 잠 못들게 할지도 몰라요.

제우스 : 그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너는 계속 깨어있는 채로 나에게 입맞춤하고 포옹해주면 된다.

가뉘메데 : 당신이 스스로 알게 될 일이겠죠. 함께 자고 키스하는 일은 당신에게 맡기겠어요.

제우스 : 그 시간이 오면 알아서 다 잘 될 것이다. 헤르메스, 그를 데려가 불멸자로 만들라. 그가 잔을 제대로 따르는 법을 가르쳐주고 그가 능숙해졌을때 우리에게 포도주를 따라줄 수 있도록 다시 데려오너라.

3.2. 제우스와 헤라의 대화

헤라 : 당신이 그 이다에서 태어난 프리기아인 아이를 이 곳으로 데려온 이후부터, 당신은 나에게 지나치게 소홀하군요.

제우스 : 뭐라고 헤라? 벌써부터 그 소년을 질투한단 말인가? 그 소년이 그렇게도 단순하고 무해한데도 말이오? 나는 당신이 그 소년을 그저 내 수많은 여자친구들 중 하나 정도로 취급할 거라 생각했는데.

헤라 : 만유를 주재하는 당신이 당신의 정당한 아내인 나를 버리고 지상으로 내려가 사티로스나 황소로 변해 간음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에요. 그러나 당신은 보통 바람을 피워도 여자들은 땅에 남겨놓고 올라오더니, 이 소년은 아예 이다에서 붙잡아와 올림포스까지 데리고 올라왔군요. 나의 훌륭한 새들의 왕이시여, 그리고 당신은 그를 아예 불멸의 신으로 만들고 포도주 따르는 직책을 맡겨 우리의 식탁으로 데려왔네요? 우리에게 굳이 새 포도주 따르는 시종이 필요했나요? 기존에 포도주를 따라주던 헤파이스토스헤베가 자리를 비우거나 파업이라도 했나요?

그 소년이 당신에게 술을 따라줄 때마다 당신은 그에게 입을 맞추죠. 그 것도 우리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말이에요. 그리고 그 소년의 입맞춤이 얼마나 달콤하던지 굳이 목이 마르지 않아도 그와 입을 맞추기 위해 계속 술을 따르라고 요구하잖아요? 가끔은 그가 채운 술잔을 한 모금만 마신 채 다시 그에게 되돌려주죠. 그 소년이 그 술잔을 마시고 나면 그의 입술이 닿은 쪽으로 다시 술잔을 마시죠. 취한 소년을 옆에 끼고 만지작거리면서 동시에 키스와 술마시는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니 얼마나 좋으시겠어요? 게다가 다른 날에는 왕이자 만물의 아버지이신 당신이 만사를 제쳐둔 채로 그와 함께 고작 주사위 놀이를 하고 계시더군요? 나는 그 헛짓거리들을 다 보고있어요! 나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제우스 : 내 사랑, 내가 술을 마시면서 아름다운 소년에게 입맞춤하고 그와 맛있는 포도주를 동시에 즐기는 일이 뭐 그리 잘못됐다는 말인가요? 당신이 그 소년에게 단 한 번만이라도 입맞춤을 받아본다면, 당신은 내가 왜 꿀보다도 그와의 입맞춤을 더 좋아하는지 알게 될거라오.

헤라 : 소년을 좋아하는 이들은 그리 말할지도 모르지요. 내가 그 프리기아 소년에게 입을 내밀어서 확인하려 들 정도로 나를 화나게 만들려 하지 말아요. 오 이 여자보다도 못한 자여!

제우스 : 고귀한 헤라여, 내 작은 소년을 괴롭히지 말아주시오. 이 여자 같은 이방인, 이 소년의 부드러움은 끝도 없지만 이 부드러움을 말하다가 당신을 화나게 할까봐 차마 말하지 않겠소.

헤라 : 글쎄요, 그리도 그 소년이 좋으시다면 아예 결혼하지 그러세요? 하지만 최소한 그 술따르는 소년 하나 때문에 당신이 저를 방치한 채로 학대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은 알고 계셨으면 좋겠군요.

제우스 :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다면 그 헤파이스토스가 이전에 하던대로 술잔을 따라야 한다는 말인가? 그는 풀무질을 하고 망치질을 하느라 술잔을 따를 때에도 손가락이 그을음에 더러워져 있어. 내가 그의 더러운 손가락에서 내 술잔을 빼내고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실때마다 그에게 입맞춤을 해야한다는 말인가? 심지어 그의 어머니인 당신마저도 그을음으로 온통 새까매진 그의 얼굴에 입을 맞추고 싶어하지 않잖아? 그게 더 좋지, 안그런가? 이래도 헤파이스토스가 훨씬 더 적합한 술잔 시종이고 가뉘메데는 원래 고향인 이다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생각하시오? 그는 너무나도 깨끗할 뿐더러 장밋빛 손가락을 움직여 서투르지 않은 자세로 술을 따라주지. 무엇보다 당신을 짜증나게 하는 것은 그저 그의 입맞춤이 과실보다도 달콤하다는 것 뿐이야!

헤라 : 하, 그래서 이제는 헤파이스토스가 절름발이고 그의 손가락은 고귀하신 당신의 술잔을 따라주기에 걸맞지 않으며 그의 그을음을 보기만 해도 역겹다 이건가요? 당신은 이다에서 이 장발의 소년이 태어난 이후에서야 그걸 알아차리셨군요? 예전에는 불꽃과 대장장이의 신이 당신에게 술을 따라주어도 뭐라하지 않으셨잖아요!

제우스 : 내 사랑, 당신은 질투함으로써 당신 스스로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내가 오히려 그 소년을 더더욱 좋아하게 만들고 있어. 사랑스러운 소년이 당신의 술잔을 채우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가뉘메데 대신 잘난 당신 아들이 술잔을 채우도록 해! 그리고 나는 가뉘메데를 옆에 끼고 그가 술잔을 따라줄 때마다 그에게 두 번씩 입맞춤을 해주지. 그가 내 술잔을 가득 채워 나에게 넘겨줄 때 한번, 그리고 내가 술잔을 비우고 다시 돌려줄 때 한번 이렇게 말이야. 하, 설마 당신 울고 있는 건 아니겠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걱정하진 마시오. 당신을 상처입히는 자는 누구든 내가 혼내줄테니!

[1] 뒤에서 불을 훔치고 있는 인물은 그 유명한 프로메테우스다.[2] 라오메돈의 아버지. 프리아모스, 헤시오네, 티토노스의 할아버지.[3] 안키세스의 할아버지. 아이네이아스의 증조할아버지.[4] 가뉘메데와 함께 최고의 미남 & 미소년으로 분류된 신화의 인물들은 이아시온, 키뉘라스, 안키세스, 파리스, 니레우스, 케팔로스, 티토노스, 파르테노파이오스, 아킬레우스, 파트로클로스, 이도메네우스, 테세우스, 아도니스, 휘아킨토스, 나르키소스, 헤르마프로디토스, 힐라스, 그리고 크뤼십포스가 있다.[5]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허벅지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 시대에 미소년, 미청년을 찬미하는 글에서는 허벅지에 대한 언급이 많다.[6] 동성끼리는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룰 수 없어 가정의 신인 헤라가 간섭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우스가 큰소리 낼 수 있었다는 설도 존재한다.[7] 서양 궁정 문화에서 술관원 직위는 음료에 독을 넣을 수도 있기 때문에 가장 신뢰하는 자만 임명하는 자리다.[8] 그나마 디오뉘소스의 어머니 세멜레가 사후에나마 아들의 도움으로 저승 세계에서 빠져나와 취중광란의 여신 티오네로 격상된 사례가 있다.[9] 가뉘메데라는 이름이 "영혼을 기쁘게 하는 자"라는 뜻이라고 한다.[10] 혹은 헤베가 일하다가 발목을 삐었다거나, 헤베가 술을 따르다가 실수로 병을 엎었다든가, 아니면 제우스가 가뉘메데에게 술 따르는 일을 시키려고 일부러 헤베를 해고시켰다든가, 헤라클레스와의 결혼 뒤 헤라클레스가 너무 행복했던 나머지 술독에 빠져 사는 바람에 그걸 보다 못한 헤베가 은퇴했다는 설도 있다. 어느 쪽이든 헤베는 일을 못하게 된다.[11] 트로스의 맏아들 일로스가 트로이의 국조다. 아버지 트로스의 이름에서 따와 지은 국호. 일로스의 아들 라오메돈이 왕위를 이었고, 라오메돈의 막내아들이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리아모스다.[12] 이 전승들을 엮어보면 인생을 끝마치고 신이 된 헤라클레스와 결혼하여 헤베가 은퇴한 빈 자리에 가뉘메데를 데려온 보상으로 내려준 신마로 한창 12과업 진행 중이던 헤라클레스를 낚았으며, 신마를 대가로 라오메돈의 일을 해 준 헤라클레스가 사기를 당해 라오메돈과 그의 아들들을 다 죽이고 막내아들 프리아모스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로서 왕위를 잇는다는 괴상한 시간 배열이 일어난다. 다만 선술했듯이 헤베가 발목을 삐어서 혹은 실수로 병을 엎어서 일을 못하게 됐거나, 제우스가 일부러 해고시켰다는 전승을 따르면 설정오류는 아니다.[13] 가뉘메데가 태어난 이다에 있는 산의 정상 봉우리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