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3 14:44:51

게오르기 스타르크

<colbgcolor=#666633> 파일:러시아 국기.svg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러시아 제국군의 장성급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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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039A6> 게오르기 카를로비치 스타르크
Георгий Карлович Старк
Georgiy Karlovich Stark
파일:게오르기 스타르크.jpg
출생 1878년 10월 20일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現 러시아 북서 연방관구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망 1950년 3월 2일 (향년 71세)
프랑스 공화국 파리
복무 러시아 제국 해군
1898년 ~ 1922년
최종 계급 소장
주요 참전 러일전쟁
제1차 세계 대전
러시아 내전

1. 개요2. 생애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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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의 군인이다.

2. 생애

스타르크는 1878년 10월 20일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스타르크의 아버지는 군사학교 출신 공증인이었는데, 다른 러시아 장성들과는 달리 그리 확고한 군인 집안은 아니었다. 허나 아버지가 사망하자 증조부인 오스카르 스타르크(Оскар Старк)의 영향을 받고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고 1891년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갔다.

1898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스타르크는 당시 러시아 제국 최정예 함대였던 발트함대에 배치되었고,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순양함 기뢰장교로 진급되어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를 따라 쓰시마 해전에 참전했다. 해전에서 부상을 당했지만 공은 세웠는지 크론슈타트에 돌아와서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후 해군에 계속 복무하다가 러시아 혁명이 발생하고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자 스타르크는 백군에 합류, 알렉산드르 콜차크 제독 휘하에 들어갔다.

파일:stark_japon.jpg
1922년 10월, 일본 육군 장교들과 함께 있는 스타르크 제독(가운데)

이후 콜차크의 영향을 받으며 블라디보스토크에 배치되고 시베리아 소함대 제독으로 임명되었는데, 문제는 이때가 콜차크가 이르쿠츠크에서 처형당하고 볼셰비키 적군이 극동으로 진출하던 때여서 스타르크는 점차 위험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스타르크는 1922년 10월 23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만명 이상의 피난민과 백계 인사들을 데리고 극동에서 탈출했다.

극동에서 무사히 탈출하고 일본 제국의 도움으로 부산항에 잠시 입항했지만, 일본은 그가 불편했는지 망명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스타르크는 결국 중국 상하이를 거쳐 필리핀까지 갔고, 탈출할 때 챙겨온 금품을 장교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준 다음 함대를 해산시키고 파리로 떠났다.

스타르크는 해외로 망명한 다른 백군 장성들이나 인사들과는 달리 정치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았고 프랑스 파리에서 택시기사로 지냈는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도 많은 백군 출신들이 나치 독일과 협력한 것과는 달리 스타르크는 나치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다가 투옥당한 안톤 데니킨과 함께 나치 독일과의 협력을 거부한 소수의 백군 장성이었다.

이후 파리에서 계속 살다가 1950년 3월 2일에 자연사했다.

3. 기타

그의 아들인 보리스 스타르크(Борис Георгиевич Старк)는 군인 출신이었던 아버지와 달리 정교회 선교사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