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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및 미군정 경상북도지사 | }}}}}}}}} |
<colcolor=#fff> 경상북도지사 慶尙北道知事 Governor of Gyeongsangbuk Province | |
현직 | <colbgcolor=#fff,#191919>이철우 / 제32·33대 (민선 7·8기) |
취임일 | 2018년 7월 1일 |
정당 | |
관사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경상북도지사 관사 |
홈페이지 |
1. 개요2. 목록3. 역대 선거 결과
3.1. 1960년 지방선거3.2.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3.3.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3.4.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3.5.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3.6.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3.7.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3.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3.9.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3.10.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4. 역대 정당별 전적5. 역대 후보별 순위6. 생존 중인 전직 민선 경상북도지사7. 도정 구호8. 기타8.1. 경상북도지사 선거 100% 적중 지역
9. 관련 문서[clearfix]
1. 개요
경상북도지사는 경상북도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1910년까지는 관찰사(觀察使)라고 했다. 1910년 8월 1일에 부임한 대한제국의 마지막 경상북도 관찰사는 알려져있지 않으며, 기록상 확인되는 마지막 관찰사는 1908년 6월부터 1910년 7월까지 재임한 박중양(朴重陽)이다.
이른바 보수의 텃밭 중 상텃밭으로, 광역자치단체장 중 유이하게[1] 내리 3선이 2차례나 성공했다. 그래서인지 다른 지역들에서 전임 단체장을 비판하고 정책을 뒤엎는 것이 선거 마케팅의 일환인 반면 경상북도의 경우 서로 전임 경상북도지사와의 인연을 강조하며 도정을 이어가겠다는 것이 중점이다.
지역적 격차가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동부, 북부 출신 도지사는 없는 상황.[2][3] 다만 관선직으로 임명되었던 옛날에는 안동시, 예천군, 상주시 출신의 인물들이 도지사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역대 민선 경상북도지사 3명이 모두 중앙정계에서 약간 비껴난 직업공무원[4] 출신이다. 정확히는 대권이나 중앙정계에 도전하는 임팩트 있고 위상 높은 네임드 정치인이 없다고도 해석할 수 있는데, 경상북도지사보다 규모가 작은 강원특별자치도지사는 지상파 언론사 사장 최문순이나 중앙정계에서 네임드급 국회의원으로 활약한 이광재, 김진태가 거쳐갔고, 바로 아랫동네의 경상남도지사는 직업공무원 출신인 박완수 현임 지사 외에 역대 민선 지사들이 모두 대권 주자 하마평에 올랐으며, 전라남도지사, 충청남도지사, 심지어 제주특별자치도지사도 각각 이낙연, 안희정, 원희룡 등 수많은 대권주자들이 거쳐갔지만, 경상북도지사는 임기 이후 국무총리 등 내각의 주요 인사로 발탁되거나 대권을 노리는 네임드급 인물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5][6] 다만 3선 단체장이 많았고 대구광역시·경상북도의 선출직과 고위공무원들이 그들의 손을 거쳐가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TK 정치권에서는 그나마 대부와 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다.[7] 이후 김관용 전 지사가 윤석열 정부에서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에 임명되며 명예직이지만 경상북도지사 중 임기 이후 처음으로 부총리급 위상의 직위에 임명되었다.
유독 3선 연임 단체장이 많은 편인데, 민선 1-3기 경상북도지사를 지낸 이의근, 민선 4-6기 경상북도지사를 지낸 김관용이 3선 임기를 모두 채우며 각각 경상북도지사직을 최대한으로 역임 가능한 11년[8]과 12년 3선 임기를 모두 채웠으며, 민선 7·8기 경상북도지사를 역임 중인 이철우 지사도 만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당선된다면 전임자들처럼 12년 3선 임기를 모두 채우게 되며, 나아가 경상북도지사는 전국 광역자치단체장 중 모든 도지사가 3선에 성공하고 3명 연속 3선에 성공한 유일한 광역자치단체장이 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여담이지만, 자녀 관계를 보면 역대 민선 도지사들 전원이 딸이 없고 아들만 있다.[9]
2. 목록
2.1. 일제강점기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비고 | ||
<rowcolor=white> 관선 (임명직) | |||||
장관 | 이진호 (李軫鎬) | 1910년 10월 1일 ~ 1916년 3월 28일 | [10] | ||
초대 | 스즈키 다카시 (鈴木隆) | 1916년 3월 28일 ~ 1919년 9월 26일 | [11] | ||
2대 | 후지카와 도시사부로 (藤川利三郎) | 1919년 9월 26일 ~ 1923년 2월 24일 | |||
3대 | 사와다 호조 (沢田豊丈) | 1923년 2월 24일 ~ 1926년 5월 12일 | |||
4대 | 스토 모토이 (須藤基)[12] | 1926년 5월 12일 ~ 1929년 1월 21일 | |||
5대 | 이마무라 마사미 (今村正美) | 1929년 1월 21일 ~ 1929년 12월 11일 | |||
6대 | 하야시 시게키 (林茂樹) | 1929년 12월 11일 ~ 1931년 9월 23일 | |||
7대 | 김서규 (金瑞圭) | 1931년 9월 23일 ~ 1935년 4월 1일 | |||
8대 | 오카자키 데쓰로 (岡崎哲郎) | 1935년 4월 1일 ~ 1936년 5월 21일 | |||
9대 | 다테 시오 (伊達四雄) | 1936년 5월 21일 ~ 1936년 9월 5일 | |||
10대 | 가미타키 모토이 (上滝基)[13] | 1936년 9월 5일 ~ 1941년 1월 24일 | |||
11대 | 다카하시 사토시 (高橋敏) | 1941년 1월 24일 ~ 1941년 11월 19일 | |||
12대 | 다카오 진조 (高尾甚造) | 1941년 11월 19일 ~ 1943년 9월 30일 | |||
13대 | 엄창섭 (嚴昌燮)[14] | 1943년 9월 30일 ~ 1944년 8월 17일 | |||
14대 | 이창근 (李昌根) | 1944년 8월 17일 ~ 1945년 6월 16일 | |||
15대 | 김대우 (金大羽) | 1945년 6월 16일 ~ 1945년 8월 15일 |
2.2. 미군정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비고 | ||
서리 | 김대우 (金大羽) | 1945년 8월 15일 ~ 1945년 10월 19일 | [15] | ||
<rowcolor=white> 군정지사 (~ 47. 3.) | |||||
초대 | 크로낼 E. A. 헨 | 1945년 10월 19일 ~ 1945년 12월 1일 | [16] | ||
2대 | 레이몬드 자노우스키 | 1945년 12월 1일 ~ 1946년 2월 20일 | [17] | ||
대리 | 로버트 J. 존스 | 1946년 2월 20일 ~ 1946년 3월 5일 | [18] | ||
3대 | 조지 J. 헐카 | 1946년 3월 5일 ~ 1946년 3월 12일 | [19] | ||
4대 | 새뮤얼 S. 닐 | 1946년 3월 12일 ~1946년 5월 28일 | [20] | ||
5대 | 해리 P. 비숍 | 1946년 5월 28일 ~ 1946년 7월 17일 | [21] | ||
6대 | J. F. 헤른 | 1946년 7월 17일 ~ 1946년 10월 9일 | [22] | ||
7대 | 아데어 | 1946년 10월 9일 ~ 1947년 3월 17일[민정이양] | [24] | ||
<rowcolor=white> 민정지사 (~ 47. 3.) | |||||
초대 | 김의균 (金宜均) | 1945년 12월 21일 ~ 1946년 12월 3일[25] | [26] | ||
2대 | 최희송 (崔熙松) | 1946년 12월 7일 ~ 1947년 3월 17일[민정이양] | [28] | ||
<rowcolor=white> 미군정 조선 경상북도지사 (47. 3. ~ 48. 8.) | |||||
2대 | 최희송 (崔熙松) | 1947년 3월 17일 ~ 1948년 5월 25일[29] | |||
3대 | 장인환 (張仁煥) | 1948년 5월 26일 ~ 1948년 8월 14일 | [30] |
2.3. 대한민국
2.3.1. 관선 1기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당적[31] | 비고 |
<rowcolor=white> 관선 (임명직) | ||||
서리 | 장인환 (張仁煥) | 1948년 8월 15일 ~ 1948년 10월 17일[32] | 군정 하 도지사 | |
초대 | 정현모 (鄭顯模) | 1948년 10월 18일 ~ 1950년 1월 23일 | 이승만 정부 | |
2대 | 조재천 (曺在千) | 1950년 1월 24일 ~ 1951년 6월 28일 | ||
3대 | 신현돈 (申鉉惇) | 1951년 6월 29일 ~ 1955년 2월 24일 | ||
4대 | 이근직 (李根直) | 1955년 2월 25일 ~ 1957년 9월 26일 | ||
5대 | 송관수 (宋寬洙) | 1957년 9월 27일 ~ 1959년 5월 12일 | ||
6대 | 오림근 (吳琳根) | 1959년 5월 13일 ~ 1960년 4월 30일 | ||
7대 | 조준영 (趙俊泳) | 1960년 5월 2일 ~ 1960년 10월 6일 | 허정 내각 |
2.3.2. 민선 1기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당적[33] | 비고 |
<rowcolor=white> 민선 (선출직) | ||||
8대 | 이호근 (李浩根) | 1960년 10월 7일 ~ 1961년 5월 23일 | |
2.3.3. 관선 2기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당적[34] | 비고 |
<rowcolor=white> 관선 (임명직) | ||||
9대 | 박경원 (朴敬遠) | 1961년 5월 24일 ~ 1963년 12월 18일 | 국가재건최고회의 | |
10대 | 김인 (金仁) | 1963년 12월 19일 ~ 1967년 10월 9일 | 박정희 정부 | |
11대 | 양택식 (梁鐸植) | 1967년 10월 10일 ~ 1970년 4월 15일 | ||
12대 | 김덕엽 (金德燁) | 1970년 4월 16일 ~ 1971년 6월 11일 | ||
13대 | 구자춘 (具滋春) | 1971년 6월 12일 ~ 1974년 9월 1일 | ||
14대 | 김수학 (金壽鶴) | 1974년 9월 2일 ~ 1978년 12월 25일 | ||
15대 | 김무연 (金武然) | 1978년 12월 26일 ~ 1981년 4월 7일 | ||
16대 | 김성배 (金聖培) | 1981년 4월 8일 ~ 1982년 4월 28일 | 전두환 정부 | |
17대 | 정채진 (鄭埰鎭) | 1982년 4월 29일 ~ 1985년 2월 20일 | ||
18대 | 이상희 (李相熙) | 1985년 2월 21일 ~ 1986년 1월 8일 | ||
19대 | 이상배 (李相培) | 1986년 1월 9일 ~ 1988년 5월 19일 | ||
20대 | 김상조 (金相祚) | 1988년 5월 20일 ~ 1990년 2월 20일 | 노태우 정부 | |
21대 | 김우현 (金又鉉) | 1990년 2월 21일 ~ 1992년 1월 8일 | ||
22대 | 이판석 (李判石) | 1992년 1월 9일 ~ 1993년 3월 3일 | ||
23대 | 이의근 (李義根) | 1993년 3월 4일 ~ 1993년 12월 22일 | 김영삼 정부 | |
24대 | 우명규 (禹命奎) | 1993년 12월 28일 ~ 1994년 10월 21일 | ||
25대 | 심우영 (沈宇永) | 1994년 10월 22일 ~ 1995년 6월 30일 |
2.3.4. 민선 2기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당적[35] | 출신지 | 비고 |
<rowcolor=white> 민선 (선출직) | |||||
26대 | 이의근 (李義根) | 1995년 7월 1일 ~ 1998년 6월 30일 | [[민주자유당|]] | 경북 청도 | [36] |
27대 | 1998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 | |||
28대 | 2002년 7월 1일 ~ 2006년 6월 30일 | ||||
29대 | 김관용 (金寬容) | 2006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 | 경북 구미 | |
30대 | 2010년 7월 1일 ~ 2014년 6월 30일 | [37] | |||
31대 | 2014년 7월 1일 ~ 2018년 6월 30일 | [[새누리당|]] | [38] | ||
32대 | 이철우 (李喆雨) | 2018년 7월 1일 ~ 2022년 6월 30일 | [[자유한국당|]] | 경북 김천 | [39] |
33대 | 2022년 7월 1일 ~ 현재 | |
3. 역대 선거 결과
역대 민선 경상북도지사 | ||||||
1960 | 1995 | 1998 | 2002 | 2006 | ||
민주당 | 민주자유당 | 한나라당 | 한나라당 | |||
이호근 | 이의근 | 김관용 | ||||
2010 | 2014 | 2018 | 2022 | |||
한나라당 |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 국민의힘 | |||
김관용 | 이철우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주요 후보 득표율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구분 | 주요 후보 득표율 | ||||
1960년 | 1위: 이호근 32.70% 2위: [[신민당(1960년)|]] 엄보익 19.40% 3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김동진 14.60% | |||||
1995년 | 1위: [[민주자유당|]] 이의근 37.94% 2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이판석 34.33%3위: [[자유민주연합|]] 박준홍 27.71% | |||||
1998년 | 1위: 이의근 71.96% 2위: [[자유민주연합|]] 이판석 28.03% | |||||
2002년 | 1위: 이의근 85.49% 2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조영건 14.50% | |||||
2006년 | 1위: 김관용 76.80% 2위: [[열린우리당|]] 박명재 23.19% | |||||
2010년 | 1위: 김관용 75.36% 2위: [[민주당(2008년)|]] 홍의락 11.82% | |||||
2014년 | 1위: [[새누리당|]] 김관용 77.73% 2위: [[새정치민주연합|]] 오중기 14.93% | |||||
2018년 | 1위: [[자유한국당|]] 이철우 52.11% 2위: 오중기 34.32% 3위: [[바른미래당|]] 권오을 10.19% | |||||
2022년 | 1위: 이철우 77.95% 2위: 임미애 22.04% | }}}}}}}}} |
3.1. 1960년 지방선거
경상북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정식(金正植) | 25,003 | 7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00% | 낙선 | |
2 | 백남식(安鶴淳) | 27,622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50% | 낙선 | |
3 | 김동진(金東鎭) | 90,419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4.60% | 낙선 | |
4 | 남병상(南炳祥) | 25,357 | 6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10% | 낙선 | |
5 | 김태주(金兌柱) | 15,103 | 9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40% | 낙선 | |
6 | 임근호(任謹鎬) | 13,167 | 10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10% | 낙선 | |
7 | 박황(朴黃) | 11,265 | 11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80% | 낙선 | |
8 | 안태석(安泰錫) | 39,390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6.30% | 낙선 | |
9 | 유시영(柳時泳) | 21,412 | 8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50% | 낙선 | |
10 | 이호근(李浩根) | 202,336 | 1위 |
| 32.70% | 당선 | |
11 | 박해준(朴海俊) | 10,741 | 12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70% | 낙선 | |
12 | 김봉만(金鳳萬) | 7,368 | 1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10% | 낙선 | |
13 | 이규행(李圭行) | 9,727 | 13위 |
| 1.60% | 낙선 | |
14 | 엄보익(嚴輔翼) | 120,235 | 2위 |
[[신민당(1960년)|]] | 19.4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789,178 | 투표율 34.99% |
투표 수 | 626,212 | ||
무효표 수 | - |
3.2.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북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의근(李義根) | 541,535 | 1위 |
[[민주자유당|]] | 37.94% | 당선 | |
2 | 박준홍(朴俊弘) | 395,496 | 3위 |
[[자유민주연합|]] | 27.71% | 낙선 | |
3 | 이판석(李判石) | 489,999 | 2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4.33%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926,274 | 투표율 76.75% |
투표 수 | 1,478,373 | ||
무효표 수 | 51,343 |
||<-6><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003990><bgcolor=#003990>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북도지사 시군구별 개표 결과 ||
처음으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처음부터 접전이 나왔고, 이 선거가 현재까지 치러진 경상북도지사 선거 중 유일한 접전이다. 이유는 그 당시 TK 지역에서는 민주자유당에 대한 반감이 있었기 때문이다.<colbgcolor=#eee,#353535> 정당 | 민주자유당 | 자유민주연합 | 무소속 | 격차 (1위/2위) | 투표율 (선거인/표수) |
후보 | 이의근 | 박준홍 | 이판석 | ||
득표수 (득표율) | 541,535 (37.94%) | 395,496 (27.71%) | 489,999 (34.33%) | +51,536 (△3.61) | 76.75% |
포항시 북구 | 39.80% | 25.66% | 34.53% | △5.27 | 73.57% |
포항시 남구 | 37.09% | 27.57% | 35.32% | △1.77 | 72.76% |
경주시 | 38.41% | 28.06% | 33.51% | △4.90 | 74.59% |
김천시 | 35.31% | 37.11% | 27.56% | ▼1.80 | 77.75% |
안동시 | 37.84% | 15.77% | 46.38% | ▼8.54 | 78.06% |
구미시 | 26.50% | 45.13% | 28.37% | △16.76 | 71.25% |
영주시 | 33.55% | 14.41% | 52.02% | ▼18.47 | 79.36% |
영천시 | 39.41% | 22.65% | 37.92% | △1.49 | 77.16% |
상주시 | 38.72% | 31.75% | 29.51% | △6.97 | 80.72% |
문경시 | 35.77% | 33.98% | 30.24% | △1.79 | 79.55% |
고령군 | 30.59% | 39.91% | 29.49% | ▼9.32 | 80.00% |
군위군 | 40.61% | 26.17% | 33.21% | △7.40 | 83.66% |
의성군 | 41.18% | 25.15% | 33.66% | △7.52 | 81.40% |
영덕군 | 46.85% | 25.15% | 27.99% | △18.86 | 81.30% |
청송군 | 41.41% | 21.75% | 36.83% | △4.58 | 85.81% |
봉화군 | 40.86% | 18.46% | 40.66% | △0.20 | 79.56% |
영양군 | 35.83% | 24.11% | 40.04% | ▼4.21 | 82.66% |
울릉군 | 53.96% | 13.38% | 32.64% | △21.32 | 87.79% |
경산시 | 36.06% | 28.42% | 35.50% | △0.56 | 72.21% |
청도군 | 71.10% | 15.19% | 13.69% | △55.91 | 81.25% |
칠곡군 | 30.97% | 36.32% | 32.69% | ▼3.63 | 76.00% |
성주군 | 38.82% | 32.73% | 28.44% | △6.09 | 82.72% |
예천군 | 41.11% | 21.18% | 37.69% | △3.42 | 80.31% |
울진군 | 49.20% | 19.23% | 31.56% | △17.64 | 79.02% |
3.3.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북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의근(李義根) | 911,728 | 1위 |
| 71.96% | 당선 | |
3 | 이판석(李判石) | 355,149 | 2위 |
[[자유민주연합|]] | 28.03%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999,195 | 투표율 64.88% |
투표 수 | 1,297,091 | ||
무효표 수 | 30,214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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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북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의근(李義根) | 1,028,080 | 1위 |
| 85.49% | 당선 | |
3 | 조영건(曺泳健) | 174,472 | 2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4.5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044,215 | 투표율 60.37% |
투표 수 | 1,234,095 | ||
무효표 수 | 31,543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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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북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명재(朴明在) | 290,358 | 2위 |
[[열린우리당|]] | 23.20% | 낙선 | |
2 | 김관용(金寬容) | 961,363 | 1위 |
| 76.80%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2,087,709 | 투표율 61.51% |
투표 수 | 1,284,342 | ||
무효표 수 | 32,621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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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북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관용(金寬容) | 913,812 | 1위 |
| 75.36% | 당선 | |
2 | 홍의락(洪宜洛) | 143,347 | 2위 |
[[민주당(2008년)|]] | 11.82% | 낙선 | |
5 | 윤병태(尹炳兌) | 68,015 | 4위 |
[[민주노동당|]] | 5.60% | 낙선 | |
7 | 유성찬(劉聖贊) | 87,346 | 3위 |
[[국민참여당|]] | 7.2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122,905 | 투표율 59.38% |
투표 수 | 1,260,591 | ||
무효표 수 | 48,071 |
경상북도지사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김관용 | 홍의락 | 격차 |
전체 | 78.0% | 13.0% | 65.0%p |
3.7.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북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관용(金寬容) | 986,989 | 1위 |
[[새누리당|]] | 77.73% | 당선 | |
2 | 오중기(吳仲基) | 189,603 | 2위 |
[[새정치민주연합|]] | 14.93% | 낙선 | |
3 | 윤병태(尹炳兌) | 33,458 | 4위 |
[[통합진보당|]] | 2.63% | 낙선 | |
4 | 박창호(朴唱鎬) | 59,609 | 3위 |
[[정의당|]] | 4.69%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211,734 | 투표율 59.45% |
투표 수 | 1,314,925 | ||
무효표 수 | 45,266 |
경상북도지사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김관용 | 오중기 | 격차 |
전체 | 77.1% | 17.0% | 60.1%p |
3.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북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오중기(吳仲基) | 482,564 | 2위 |
| 34.32% | 낙선 | |
2 | 이철우(李喆雨) | 732,785 | 1위 |
[[자유한국당|]] | 52.11% | 당선 | |
3 | 권오을(權五乙) | 143,409 | 3위 |
[[바른미래당|]] | 10.19% | 낙선 | |
5 | 박창호(朴唱鎬) | 47,250 | 4위 |
[[정의당|]] | 3.3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251,538 | 투표율 64.73% |
투표 수 | 1,457,539 | ||
무효표 수 | 51,531 |
경상북도지사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오중기 | 이철우 | 격차 |
전체 | 34.8% | 54.9% | 20.1%p |
반대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경상북도당 위원장인 오중기 후보가 무려 34.32%를 얻으며 예상 밖으로 선전했다. 특히 사상 첫 민주당계 정당 소속 기초자치단체장이 선출되기도 한 구미시에서는 불과 2.03%차로 석패했고 자신의 지역 기반인 포항시에서도 42.22%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크게 선전했다. 그 밖에도 0.39%라는 차이로 40% 달성에 실패한 칠곡군과 35.91%의 득표율을 올린 경산시에서의 선전도 주목 받았다. 이로 인하여 보수의 마지막 근거지인 경상북도에도 변화가 생긴 게 아니냐는 언론의 추측이 있었다.
3.9.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북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임미애(林美愛) | 255,775 | 2위 |
| 22.04% | 낙선 | |
2 | 이철우(李喆雨) | 904,675 | 1위 |
| 77.95%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2,268,707 | 투표율 52.66% |
투표 수 | 1,194,595 | ||
무효표 수 | 34,145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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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지사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임미애 | 이철우 | 격차 |
전체 | 21.0% | 79.0% | 58.0%p |
3.10.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북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0 | ||
| 00.00% | ||
2 | 0 | ||
| 00.00% | ||
계 | 선거인 수 | 투표율 00.00% | |
투표 수 | |||
무효표 수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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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지사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eee,#353535> 후보 | ○○○ | ○○○ | 격차 |
전체 | 00.00% | 00.00% | 00.00%p |
4. 역대 정당별 전적
민주당계 정당 | 보수 정당 | 제3후보[42] | |
1회 | - | 이의근 | 이판석[43] |
[[민주자유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당선 37.94% | 낙선 34.33% | ||
2회 | 이판석[44] | 이의근 | - |
[[자유민주연합|]] | | ||
낙선 28.03% | 당선 71.96% | ||
3회 | - | 이의근 | 조영건[45] |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당선 85.49% | 낙선 14.50% | ||
4회 | 박명재 | 김관용 | - |
[[열린우리당|]] | | ||
낙선 23.20% | 당선 76.80% | ||
5회 | 홍의락 | 김관용 | 유성찬[46] |
[[민주당(2008년)|]] | | [[국민참여당|]] | |
낙선 11.82% | 당선 75.36% | 낙선 7.20% | |
6회 | 오중기 | 김관용 | 박창호[47] |
[[새정치민주연합|]] | [[새누리당|]] | [[정의당|]] | |
낙선 14.93% | 당선 77.73% | 낙선 4.69% | |
7회 | 오중기 | 이철우 | 권오을[48] |
| [[자유한국당|]] | [[바른미래당|]] | |
낙선 34.32% | 당선 52.11% | 낙선 10.19% | |
8회 | 임미애 | 이철우 | - |
| | ||
낙선 22.04% | 당선 77.95% | ||
9회 | ○○○ | ○○○ | - |
| | ||
- | - |
5. 역대 후보별 순위
- 사퇴, 사망, 등록 무효 후보 제외.
<rowcolor=#000,#fff> | 1위 | 2위 | 3위 | 4위 |
1회 | 이의근 | 이판석 | 박준홍 | |
2회 | 이의근 | 이판석 | ||
3회 | 이의근 | 조영건 | ||
4회 | 김관용 | 박명재 | ||
5회 | 김관용 | 홍의락 | 유성찬 | 윤병태 |
6회 | 김관용 | 오중기 | 박창호 | 윤병태 |
7회 | 이철우 | 오중기 | 권오을 | 박창호 |
8회 | 이철우 | 임미애 |
6. 생존 중인 전직 민선 경상북도지사
- 2024년 기준 생존 중인 전직 민선 경상북도지사는 김관용 전 지사 1명이다.(2006년 7월 1일 ~ 2018년 6월 30일 재임, 민선 4-6기, 1942년 11월 29일 출생, [age(1942-11-29)]세)
7. 도정 구호
도지사 | 도정 구호 |
이근직 | <colcolor=#000,#fff> 민주도정의 정착 |
김인 | 약진 경북 |
양택식 | 도와주자, 앞서가자, 책임지자-부강경북 |
김덕엽 | 번영하는 푸른 경북 |
구자춘 | 힘찬 전진 알찬 경북 |
김수학 | 유신으로 총화전진! 새마을로 소득증대! |
500만도민의 총화 새마을로 증산! | |
김무연 | 총화전진 영광 경북 |
김성배 | 새경북 영광의 전진 |
이상배 | 선진조국 앞장 서자 |
김상조 | 자랑스러운 경북을 만들자 |
김우현 | 새 경북 힘찬 전진 |
이판석 | 빛내자 우리 경북 |
이의근 | 위대한 경북 함께 뛰는 300만 |
김관용 | 세계를 여는 경북, 일자리가 있는 경북 |
민생속으로! 세계속으로! | |
사람중심! 경북세상 | |
이철우 | 새바람 행복경북 |
경북의 힘으로! 새로운 대한민국 |
8. 기타
8.1. 경상북도지사 선거 100% 적중 지역
경상북도지사의 경우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지금까지 총 8번의 선거가 있었는데, 이 중 경상북도지사 선거 적중 지역은 다음과 같다.- 포항시
- 경주시
- 영천시
- 상주시
- 문경시
- 의성군
- 영덕군
- 청송군
- 봉화군
- 울릉군
- 경산시
- 청도군
- 성주군
- 예천군
- 울진군
9. 관련 문서
[1] 다른 한 곳은 경북 위에 위치한 강원특별자치도.[2] 이의근 - 청도군, 김관용 - 구미시, 이철우 - 김천시. 세 곳 모두 경부선 철도로 연결되어 있다.[3] 다만 동부 지역의 인구 비중이 가장 크다. 보통 동부권으로 분류되는 포항시 50만명, 경주시 25만명, 영천시 10만명, 영덕군 3만명, 울릉군 9천명으로 경상북도 전체 인구 260만 중 90만명 정도를 차지한다.[4] 그나마 이철우 지사가 3선 의원을 지내고 당 내 요직인 자유한국당 사무총장과 수석최고위원을 역임하였으나 7회 지선 경상북도지사 출마로 직을 길게 역임하지는 못했다.[5] 그도 그럴 것이 도지사 당선 이전 이미 여러 공직들을 거치다 보니 어느덧 환갑에 들어선 데다가 초재선 단계에서 자주 갈리는 다른 광역단체들과 달리 모두 3선까지 하다 보니 도지사 임기 이후에는 칠순이 넘는 고령으로써 정계에서 은퇴할 나이가 되기에 그대로 정계를 떠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니 도지사 임기 이후 명예직 외에 실권을 가진 다른 직위로 발탁된 경우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6]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자유한국당 경선에 당시 현직 경상북도지사였던 김관용이 참여(4회 지선을 시발점으로 해서 내리 3선을 했기에 7회 지선은 자동으로 불출마가 확정된 상태였다.)하긴 했지만 당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으로 상당히 시끄럽던 때라 더불어민주당 경선에만 관심이 쏠리던 시기였고, 김관용 본인도 그저 문재인을 막기 위해서라는 대답을 하며 딱히 큰 의욕을 내비치지 않았다. 대신 홍준표와 김진태의 날선 언쟁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아 경선이 과열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7] 대구광역시장은 지금까지 3선 연임이 단 한 번도 안 나왔기 때문이다. 권영진 전 시장이 민선 6·7기 재선을 하고 이철우 지사가 7기 초선이라 권영진 전 시장의 선수가 더 높았던 민선 7기 시절에도 권영진 전 시장은 기껏해봐야 초선 의원 출신에 그조차도 서울특별시 노원구에서 지내다가 뜬금없이 대구광역시에 내려온 케이스라 TK 내 입지가 좁았지만, 이철우는 어엿한 당 중역에 김천시 3선 국회의원을 지냈어서 이철우 지사의 입지가 더 높았다. 그러나 민선 8기에서는 이게 역전되어 TK의 대부 역할을 이철우 지사가 아니라 홍준표가 새로히 대구광역시장이 되어서 맡고 있다. 알다시피 홍준표 시장의 정치적 위상이 주요 대권주자급으로 높기 때문.[8] 민선 1기 단체장직은 임기가 3년이라 민선 1-3기에 단체장을 지냈다면 11년이 직을 역임할 수 있는 임기의 한계이다.[9] 이의근과 김관용은 아들만 둘이고, 이철우는 아들만 하나다.[10] 경상북도장관.[11] 2대 장관. 1919년 8월부터 도지사.[12] 모토이 또는 하지메.[13] 上滝은 가미타키, 가미다키 또는 죠타키. 基는 모토이 또는 하지메. 독음 불확실.[14] 창씨명 다케나가 가즈키(武永憲樹)로 활동. 1890년 평안남도 대동군 출신. 공교롭게도 같은 이름의 1891년생 충청남도 부여군 출신 독립운동가 엄창섭이 있다. 둘 다 한국전쟁의 혼란기 탓에 언제 세상을 떴는지 알 수 없다.[15] 미 군정에 의해 해임.[16] 慶北知事헨大佐就任[17] 「래-몬드쩌나쓰키」氏, 慶北軍政知事로 就任, 「핸」前知事는 某要職에[18] 道知事更迭後任로 中佐[19] 慶北道知事에 헐카中佐正式就任[20] 美人知事更迭, 後任에 닐中佐[21] 닐知事歸國, 後任, 베中佐[22] 비솦慶北知事轉任, 後任에 「헤른」騎兵大佐[민정이양] 美人知事는 民政官으로, 道行政權移讓式, 昨日道廳서 嚴肅히 擧行[24] 軍政知事更迭, 아·태어大佐新任[25] 金宜均知事辭表提出[26] 在朝鮮美國陸軍司令部 軍政廳任命辭令 第七十一號, 知事代理에 金宜均氏, 知事副代理에는 李慶熙氏[민정이양] [28] 慶北道知事에 崔熙松氏就任, 六日美人知事가 聲明發表[29] 夏穀 수집 철회를 주장, 경북 崔熙松 지사 사임[30] 夏穀 수집 철회를 주장, 경북 崔熙松 지사 사임[31] 선거 당시 당적.[32] 四道知事更迭, 慶北에는 鄭顯模氏[33] 선거 당시 당적.[34] 선거 당시 당적.[35] 선거 당시 당적.[36] 1995.12.6. 으로 당명 변경.
1997.11.21.
으로 신설 합당.[37] 2012.2.13.
[[새누리당|]]으로 당명 변경.[38] 2017.2.13.
[[자유한국당|]]으로 당명 변경.[39] 2020.2.17. 으로 신설 합당.
2020.9.2.
으로 당명 변경.[40] 이건 서재헌 후보가 못해서 진 게 아니라 상대인 대권 유력 주자 중 한 명인 홍준표라는 사람의 이름값이 17개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들 중 독보적으로 높다는 특수성 때문에 생긴 일이긴 하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34명의 후보들 중 최다선(5선 의원 + 재선 경상남도지사)에 김영록과 유이하게 무소속 당선 이력이 있을 정도의 이름값이라 서재헌 후보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41] 오히려 그래서 송영길이 제일 굴욕적인 결과를 만든거나 마찬가지인데, 아무리 송영길이 인천광역시를 근거지로 삼은 사람이라지만, 5선 의원에다 인천광역시장까지 지낸 엄연히 준 대권 주자인 후보인데 오세훈 후보에게 19.82% 격차, 그것도 전 자치구에서 패배를 했기 때문이다.[42] 3% 이상 득표자만 기재.[43] 보수 성향 후보.[44] 보수 정당 후보, 새정치국민회의와 단일화.[45] 중도 성향 후보.[46] 민주당계 정당·진보 정당 후보.[47] 진보 정당 후보.[48] 제3지대 정당 후보.
1997.11.21.
으로 신설 합당.[37] 2012.2.13.
[[새누리당|]]으로 당명 변경.[38] 2017.2.13.
[[자유한국당|]]으로 당명 변경.[39] 2020.2.17. 으로 신설 합당.
2020.9.2.
으로 당명 변경.[40] 이건 서재헌 후보가 못해서 진 게 아니라 상대인 대권 유력 주자 중 한 명인 홍준표라는 사람의 이름값이 17개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들 중 독보적으로 높다는 특수성 때문에 생긴 일이긴 하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34명의 후보들 중 최다선(5선 의원 + 재선 경상남도지사)에 김영록과 유이하게 무소속 당선 이력이 있을 정도의 이름값이라 서재헌 후보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41] 오히려 그래서 송영길이 제일 굴욕적인 결과를 만든거나 마찬가지인데, 아무리 송영길이 인천광역시를 근거지로 삼은 사람이라지만, 5선 의원에다 인천광역시장까지 지낸 엄연히 준 대권 주자인 후보인데 오세훈 후보에게 19.82% 격차, 그것도 전 자치구에서 패배를 했기 때문이다.[42] 3% 이상 득표자만 기재.[43] 보수 성향 후보.[44] 보수 정당 후보, 새정치국민회의와 단일화.[45] 중도 성향 후보.[46] 민주당계 정당·진보 정당 후보.[47] 진보 정당 후보.[48] 제3지대 정당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