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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광진교(廣津橋 / Gwangjin-gyo(Bridge))는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과 강동구 천호동을 잇는 길이 1,056m, 너비 20m의 왕복 4차로 교량이다. 서울특별시 관내의 한강 수역을 횡단하는 교량 중 최동단에 있다. 이보다 동쪽(한강 상류 방향)에 있는 구리암사대교는 교량의 북단이 경기도 구리시이다. 1976년 천호대교의 개통 이전에는 3번 국도의 일부였다. 하지만 자동차 통행은 왕복 2차로만 사용하며, 나머지 공간에는 양쪽에 2m의 보행자 도로와 2m의 자전거 도로, 3개씩의 발코니형 돌출 전망대인 '리버뷰 8번가'가 있다. 이 전망대는 아이리스 촬영 장소로 활용되었던 곳이다. 1973년에는 이곳을 거쳐 천호동으로 가던 동남교통[1]소속 시내버스가 추락하여 17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2] 사고 원인은 헤드라이트가 고장난 상태에서 운행을 감행한 것이었다.
2. 역사
구 교량(앞쪽. 뒤에 보이는 교량은 천호대교)
원래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 8월 착공해 1936년 10월에 준공하였으나 1997년 3월 18일 같은 자리에 새로운 교량 공사를 착공해 2003년 11월 4일 개통하였다.
광진교가 위치하고 있는 광나루는 옛부터 요충지에 있는 유명한 도선장이었고 1920년대에는 증기선으로 화물차나 버스같은 것도 도강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한번 홍수가 나면 수일간에 걸쳐 교통이 두절되어 그 불편함은 이루 헤아릴수 없었고 1930년대를 전후해서 교통량이 격증하여 하루에 도강하는 자동차, 우차, 손수레 등이 수백대에 달하게 되었으므로 도로교통의 원활한 수송을 기하고자 일제강점기인 1934년 8월 착공해 1936년 10월에 준공하였다. 이때 준공된 다리는 길이 1.037.6m, 너비 9.4m의 2차로 도로였다.
1936년 10월에 준공된 트러스교 형식의 교량은 착공과 준공시기가 한강대교 개축시기와 동일한데 개축 전의 구 한강대교의 재료가 태반이 다른 곳으로 이실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구 한강대교의 철거된 재료가 광진교의 재료로서 일부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광진교는 개축되기 전의 한강대교와 함께 한강에서 가장 오래된 교량이며 그만큼 수난도 많이 겪었다. 길이 429.5m, 너비 9.4m의 2차선 교량이었던 광진교는 6.25 전쟁 당시인 1950년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자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한강대교, 한강철교와 함께 폭파되었다가 이후 복구되었다.
그 뒤 1952년 미8군에 의해 스틸 거더 구조로 복원되면서 길이도 608m로 늘어났으나, 1960년 교각침하가 발생하여 임시 복구하였고 1972년에는 철근 콘크리트 게르버교 부위의 힌지부분을 I-Beam으로 보강하였다. 1984년 9월 대홍수로 인하여 교각의 위치가 이동하는 문제가 생겼고 이를 해결하고자 1985년 변위가 있는 교각을 강제교각으로 보강하고 1.5톤 이하의 소형차량만 통행 시켰다. 1994년에 성수대교 붕괴 사고의 여파로 실시된 한강교량의 정밀진단에서 교량구조 안전상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진단되어 당산철교와 같이 보강 및 확장을 위해 철거하였다. 이어 1997년 3월 18일 같은 자리에 새로운 교량 공사를 착공해 2003년 11월 4일 개통하였다. 새로 개통된 광진교는 길이 1,056m, 너비 20m의 4차로 규모로서 한강의 교량으로는 처음으로 양쪽에 각각 2m의 자전거 전용도로와 3개씩의 발코니형 돌출 전망대를 설치하여 보행자 및 자전거 친화 교량으로 재출발하였다.
노량진에 놓인 한강대교와 함께 일제강점기부터 내려오는 역사가 길지만, 광진교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광진교가 이렇게 외면당한 것은 서울의 확장 과정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는데, 서울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강을 넘어서는 노량진-영등포를 잇는 경인선 축으로 시가지가 발전하였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도 이러한 경향은 이어졌으며 현재의 강남3구 지역은 그저 논밭에 불과하여 굳이 더 많은 교량을 지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그나마 광진교로 연결된 현재 천호동과 암사동 쪽만이 주거지였었다. 강동구에서 둔촌동이나 명일동, 상일동, 고덕동은 계획도시로 만들어져서 도로가 반듯하지만 천호동이나 암사동은 도로구획이 제멋대로 꼬불꼬불하다. 그 이유는 위에서 설명했듯이 오래전부터 형성된 주거지이기 때문이다.그러다 광주대단지 사건으로 분노에 찬 현 성남시 주민들에게 정부와 서울시가 뜨거운 맛을 본 이후에서야 서울 동부에 교량의 신규 건설을 계획했고, 잠실대교와 천호대교가 연달아 개통되었다. 새로운 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광주대단지에서 도심을 연결하는 시내버스가 천호동을 거쳐 광진교를 통해 넘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교통이 불편했을지 알 수 있는 단면이다. 여기에 더해 강남과 잠실 지역의 개발이 이뤄지면서 본격적으로 이 지역의 통행량이 늘기 시작했다. 이미 다른 다리가 훌륭하게 이 역할을 수행했기에 낡고 좁은 광진교는 설 자리가 없었다. 1960년대 이전에는 서울의 소외된 지역의 상징이었고 1970년대 이후의 주변 개발 이후에는 아예 묻혀버린 셈이다.
3. 역할 및 진출입
현재의 광진교는 남쪽으로는 천호/명일/상일동을 도는 구천면로, 북쪽으로는 아차산로와 합류하여 사실상 천호대교의 통행량을 부분적으로 분산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어 서울 남북간 차량 통행을 원활히 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현재로서는 잠실철교와 마찬가지로 '차량 통행도 할 수 있는 다른 목적의 다리'에 가깝다. 그래서 4차로 규모로 재건축을 했음에도 절반을 인도와 자전거 도로로 내주며 원활한 자동차 통행용 교량으로서의 역할을 사실상 포기했다. 차량 통행 속도가 40km/h로 제한되어 있고 북쪽에서의 합류/분기가 복잡할 뿐더러 과속 감시 카메라도 많아 천호동에서 강변북로 구리 방향으로 진출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빠르게 한강을 건너고자 하는 사람은 차라리 천호대교를 이용하는 편이 더 편하다. 천호대교 북단에서는 강변북로 구리 방향으로 가는 경로가 굉장히 복잡하다.광진구에서는 나름대로 관광 명소로 홍보하고 있다. 광진교 위에서 바라본 롯데타워 방향 모습
아차산로에서 광진교로 진입하는 것은 구리 방면으로만 가능하며, 천호대교 북단 방향으로 이동하는 차량은 광장사거리(광나루역)에서 유턴으로 진입해야 한다. 강변북로의 경우 일산방면에서의 진출입이 모두 가능하며 구리방향은 진출만 가능하다. 반면, 인근 천호대교에는 구리방향 진출이 불가능해 사실상 상호보완 관계이다. 올림픽대로로 진출은 불가능하며 김포공항 방향에서의 진입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천호대교 램프와 맞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제한 사항 때문에 이용 차량이 더욱 적다.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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