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2 23:50:36

금남면(세종특별자치시)

{{{#!wiki style="margin:-12px -0px"<tablebordercolor=#00a0c6>
파일:세종특별자치시 휘장_White.svg
}}}
{{{#!wiki style="color: #FFF; 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37px; color: #555"
조치원읍 금남면 부강면 소정면 연기면
연동면 연서면 장군면 전동면 전의면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6eb7c8> 고운동 고운동
나성동 나성동 세종동
다정동 다정동
대평동 대평동
도담동 도담동
반곡동 다솜동 반곡동 용호동 집현동
합강동
보람동 보람동
새롬동 새롬동
소담동 소담동
아름동 아름동
어진동 어진동
종촌동 종촌동
한솔동 가람동 한솔동
해밀동 누리동 산울동 한별동 해밀동
시청소재지 : 보람동}}}}}}}}}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錦南面 | Geumnam-myeon
<colbgcolor=#00a0c6><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세종특별자치시
행정표준코드 5690070
관할 법정리 26리
하위 행정구역 41행정리 160반
면적 72.55㎢
인구 8,567명[1]
인구밀도 118.08명/㎢
정치 {{{#!wiki style="margin:-0px -11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top:-5px;margin-bottom:-11px"
국회의원 | 세종특별자치시 갑

홍성국 (초선)
세종특별자치시의원 | 제3선거구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김동빈 (초선) }}}}}}}}}
행정복지센터 용포로 57 (용포리 122-1)
금남면 행정복지센터
1. 개요2. 관할 리 (26리)
2.1. 서부 11리
2.1.1. 서남부 공주시 반포면(~2012) 5리
2.1.1.1. 성강리2.1.1.2. 국곡리2.1.1.3. 원봉리2.1.1.4. 도남리2.1.1.5. 봉암리
2.1.2. 남부 3리
2.1.2.1. 두만리2.1.2.2. 용담리2.1.2.3. 감성리
2.1.3. 서북부 공주군 반포면(~1973) 3리
2.1.3.1. 도암리2.1.3.2. 성덕리2.1.3.3. 영곡리
2.2. 중부 9리
2.2.1. 중북부 행복도시 변 4리
2.2.1.1. 용포리 ★2.2.1.2. 장재리2.2.1.3. 호탄리2.2.1.4. 신촌리
2.2.2. 중앙부 3리
2.2.2.1. 발산리2.2.2.2. 영치리2.2.2.3. 남곡리
2.2.3. 중남부 2리
2.2.3.1. 축산리2.2.3.2. 금천리
2.3. 동부 7리
2.3.1. 동남부 5리
2.3.1.1. 황용리2.3.1.2. 영대리2.3.1.3. 달전리2.3.1.4. 대박리2.3.1.5. 박산리
2.3.2. 동북부
2.3.2.1. 부용리
3. 역사4. 공동주택5. 교통
5.1. 도로5.2. 철도5.3. 버스
6. 교육7. 대전광역시와의 관계8. 출신 인물9.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세종특별자치시에 남부에 위치한 .

본래 공주군 명탄면, 양아리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연기군에 속하게 되면서 금강 이남에 있다 하여 금남(錦南)면이라고 명명되었다. 이름에 걸맞게 세종시에서 금강 이남의 면은 금남면뿐이다.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공주로부터 편입되어오는 역사를 거쳤다.

경상남도 하동군에는 한자가 다른 동명의 금남면(金南面)이 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충청남도 공주시와 접하는 지역이다.

잠재성이 꽤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대전과의 관계가 가깝고 인근에 남세종IC가 있어 대전에 왕래가 편하다는 장점이 있고, 대전광역시는 산으로 둘러싸인지라 확장이 곤란하다. 그러므로 대전 시내가 포화 상태에 이르거나 세종역이 생기고 대전 1호선이 연장된다면 역세권 위성도시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현재 진행 상황으로 미루어 봐서는 발전이 이루어지더라도 통째로 읍으로 승격시키기보다누 면을 해체하고 분동을 시킬 가능성이 높다..

2. 관할 리 (26리)

관할 리가 26개로 압도적으로 많다. 전의면이 15개, 장군면이 14개인데 금남면은 거의 2배 가까이 되는 리를 포함하고 있어 지나치게 넓은 지역을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둔 감도 있기는 하다. 면적도 세종시에서 제일 넓다(78.7km2).

금강변 지역이 동으로 분리되어 나가면서 약간 피자 손잡이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2.1. 서부 11리

대개 용수천 서쪽으로 원래 공주시 소속이었다. 성강리를 제외하고는 공주시와 산으로 막혀있다.

2.1.1. 서남부 공주시 반포면(~2012) 5리

2.1.1.1. 성강리
원래 공주시 반포면 지역이었으며, 세종 관내만 지나 이동하려면 원봉리로 이어진 왕복 1차로 산길을 타고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골짜기는 반포면소재지 방향으로 이어져있으며, 골짜기를 따라 난 주 도로를 타고 나가면 공주 반포면을 거치게 된다. 세종시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리다.
2.1.1.2. 국곡리
시외버스가 정차하는 곳이다. 제32보병사단 지휘부가 있다.
2.1.1.3. 원봉리
극히 일부지만(금남면 원봉리 595번지 극일부), 행정중심복합도시가 걸쳐있다.[2]
2.1.1.4. 도남리
이곳에 금강수목원과 충청남도산림박물관, 금강자연휴양림이 있다.
2.1.1.5. 봉암리
연서면의 봉암리와는 다른 리이다.

2.1.2. 남부 3리

유성구 반석역 일대로 이어지는 동네. 세종로를 통해 이어지며 대전 유성구세종시 사이의 교류는 대체로 이 일대를 경유하면서 이루어지게 된다.
2.1.2.1. 두만리
남쪽으로 용담리를 끼고 있지만 언덕이 자리하고 있어 통하는 길은 서쪽의 용수천을 낀 안금로뿐이다. 용수천 서쪽 너머의 국곡리와도 채나무길(백룡교), 국곡길(국곡교)로만 통한다.
2.1.2.2. 용담리
대전 유성구 안산동과의 경계에 있다.
2.1.2.3. 감성리
1번 국도 세종로가 지나가며 감성초등학교가 있다.

2.1.3. 서북부 공주군 반포면(~1973) 3리

원래 위의 반포면 출신 5개 리와 마찬가지로 공주군 반포면에 속해 있었는데, 1973년에 연기군 금남면으로 편입되었다.
2.1.3.1. 도암리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도암리는 화순최씨 사평공파 집성촌으로, 11세손 최은(崔垠)이 회덕에서 도암리로 입향한 이래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어 왔다.
도암리 전체 150가구 중 100가구가 화순최씨이다.
<입향경위>
금남면 도암리 화순최씨 사평공파(司評公派)의 입향조는 최은으로, 도승지를 지낸 최중온(崔重溫)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최은은 상서원 직장을 지냈는데 연산군 때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벼슬을 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벼슬을 버리고 회덕현 목현(木峴)으로 낙향한 것으로 전하여진다.
최은은 말년에 도암리로 와 모인당(慕忍堂)을 세우고 수도와 강학을 하면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현황>
현재 도암리에 세거하는 화순최씨는 입향조 최은의 4세손 사평공(司評公) 최기수(崔杞秀)를 파조로 한다. 도암리 화순최씨는 사평공 최기수의 둘째 아들 최필민(崔必敏)[1624~1670]의 자손들이다.
마을 이름 도암은 최기수가 도암리에 와서 수도하며 강학에 힘써 예의 도덕이 잘 행해져 도동 또는 도곡(道谷)으로 칭하여 오다가 도곡과 이웃한 명암리(嗚岩里)의 글자를 합하여 칭하게 되었다.
<인물>
최기수는 인조의 공주 파천(播遷)[임금이 도성을 떠나 다른 곳으로 피란하던 일] 때 인조를 도와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된 인물로, 용모와 체격이 크고 성품이 온화하였다고 한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으로 인조가 공주 쌍수산성으로 파천하자 의병을 모집하여 나아가 국란을 구하겠다고 맹세하였다. 공주목사 송흥주(宋興周)가 천거(薦據)[어떤 일을 맡아 할 수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쓰도록 소개하거나 추천함]하여 행재소에 나아가니 인조가 칭찬하며 통훈대부장례원사평에 임명하였다.
난이 진압되고 인조가 환궁한 뒤 여러 차례 불렀으나 최기수는 국란이 이미 평정되었으니 벼슬길보다 초야에 묻혀 시문을 즐김이 낫다 하며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원종공신에 들었으며, 최기수의 행적이 쌍수정사적비(雙樹亭史蹟碑)와 『공산지(公山誌)』에 실려 있다.
<관련유적>
금남면 도암리 화순최씨 참판공 재실(齋室)인 모인당은 최은이 말년에 수도와 강학을 하면서 여생을 보낸 곳으로, 1669년(현종 10)에 건립하였다. 현재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도암리 중근봉 아래에 위치한다.
본래 모인당은 중국 순임금의 업적을 사모한 데서 나온 모(慕) 자와 당나라 때 서로 참아 가며 9대가 화목하게 한집에서 살았다는 장공예(張公藝)의 참을 인(忍) 자를 취해 지은 이름이라고 전하여진다. 몇 번의 개축과 중수를 거쳐 잘 보존되고 있다.
현재의 모인당은 1928년에 1669년(현종 10) 원래의 모습대로 중건하여 최한정·최중온·최은 3대의 향사(享祀)[제사를 지냄]를 봉행(奉行)하는 재실(齋室)로 사용하고 있다.
재실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내부에는 1856년(철종 7) 이원건이 기록한 『모인당중건기』 외에 중수기와 이건기들이 걸려 있다.
효자 최덕렬(崔德烈)[1763~1835]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 최덕렬 정려도 있다. 최덕렬은 사평공의 7세손으로, 자는 윤백(潤伯)이다. 효성과 우애가 남달라 어려서부터 모친이 병이 나자 정성껏 간호하였으며, 돌아가시려 하자 손을 베어 피를 드려 3일간 목숨을 연장시켰다고 한다. 사림에서 효자 표창을 하려 하였는데 최덕렬의 아버지가 이를 고사하여 표창하지 못하였다고 전한다. 1996년 후손들이 도암리 마을회관 뒤쪽에 효행 실적비와 정문(旌門)[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하여 집 앞에 세우던 붉은 문]을 세워 놓았다.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이며, 맞배지붕이다.

금남면 도암리는 현재 화순최씨 집성촌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인근 금남면 성덕리·신촌리·금천리·봉암리 등에도 화순최씨가 많이 살고 있다.

두루타버스만 들어올수 있다.
2.1.3.2. 성덕리
바로 강건너는 첫마을이 있는 세종특별자치시 한솔동이다.
2.1.3.3. 영곡리
서산영덕고속도로, 호남고속선이 지나간다.

2.2. 중부 9리

2.2.1. 중북부 행복도시 변 4리

행복도시와 바로 붙어있지만 진입로는 일부 지점에만 있으며, 마을들을 잇는 금남구즉로 옆으로 행복대로가 평행하게 달리고 있어 장벽 역할을 한다. 마을버스 노선들도 마치 결계가 쳐진 것마냥 용포리에서부터 금남구즉로를 따라서 쭉 간다. 덕분에 호탄리, 장재리 일대에서 바로 맞닿아있는 보람동, 소담동으로는 시내버스로 바로 이동할 수 없다.
2.2.1.1. 용포리 ★
금남면사무소와 5일장인 대평시장이 있는 지역인 용포리 일원이 금남면의 중심지다.

이곳이 관용적으로 대평리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진짜 대평리라는 이름을 가진 리는 따로 있었기 때문에 외지인들에게는 다소 헷갈리기 쉽다. 현재 세종고속시외터미널이 있는 대평동이 원래 금남면 대평리로 아직까지 구글지도에 남아있는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 대평리를 치면 2012년 7월 이전 당시 관할 경계가 나오듯이 현 대평동 대부분과 보람동 일부를 차지했던 리였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연기군 시절에도 용포리 면소재지 일대를 보고 대평리라고 불렀으며, 그 북쪽에 접한 진짜 대평리는 딱히 존재하지 않는 논밭이었으며 '구대평'이라고 불렀는데, 옛날에 진짜 대평리에 있던 마을을 1946년 대규모 수해 이후 용포리로 옮겼다고 한다. 행복도시 건설 이후로도 대평동이 아닌 용포리 면소재지가 대평리로 불리기에, 택시를 타고 대평동에 갈 생각인데 대평리에 가자고 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용포리로 데려다줄 것이다. 애초에 충청남도 연기군 시절부터 금남면 용포리 일대를 대평리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세종시 9개 읍면사무소 소재지 중 가장 번잡한 곳이다. 특히 옛 대평리 터미널(동부프로미 건물 자리)에서 대평시장까지는 오만 차량들이 뒤엉켜서 앞으로 전진하기도 힘들 정도. 행복도시 확장 전 세종시 금강 이남지역에 변변한 인프라가 존재하지 않다보니 당시 금강 이남 한정 각종 음식점, 정비소 등이 이곳에 몰려버린 탓이다. 2016년 11월 소담동에 족발집과 치킨집이 신규 오픈하기 전까지는 금강 이남에서 배달음식 시키려면 여기 외에는 답이 없었다. 게다가 연기면, 장군면 등과 함께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가까운 면소재지이다보니 건설노동자들도 이곳에 몰린다.

아파트는 2000년에 지어진 두진 리버빌과 2007년에 지어진 신성 미소지움이 있다. 만약 KTX 세종역이 생긴다면 이 아파트들의 가격은 많이 뛰어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2.2.1.2. 장재리
북쪽으로 한국개발연구원이 있는 세종특별자치시 반곡동이다.
2.2.1.3. 호탄리
이곳에 세종장영실고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원래는 금남면 유일의 중학교인 금호중학교가 있었으며, 금호중학교를 대평동으로 이전한 후 이 자리에 특성화고등학교를 신설하였다. 바로 위쪽은 세종시청, 교육청이 조치원에서 이곳으로 이전한 지역인 세종특별자치시 보람동이다. 보람동의 마을 명칭인 호려울마을은 행정구역 개편 이전 당시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 호탄리 소재로서 당연히 호탄리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2.2.1.4. 신촌리
이곳에 금남초등학교가 있다.

2.2.2. 중앙부 3리

2.2.2.1. 발산리
호남고속선1번 국도가 지나가는 교통의 요지인데다 세종과 대전 유성간의 중간 지점이라 추후 호남고속선 상에 세종역이 생긴다면 가장 유력한 후보지 중 하나이다.
2.2.2.2. 영치리
시내버스도 두루타버스도 운행하지 않는다.
2.2.2.3. 남곡리

2.2.3. 중남부 2리

남쪽 금병산(372m)을 낀 마을. 산골 마을이라서 리의 크기가 상당히 넓다. 금병산 너머는 자운대가 있지만 산으로 막혀있어 자운대까지 직접 통하는 길은 없다.
2.2.3.1. 축산리
2.2.3.2. 금천리
대한민국 민족종교인 금강대도의 개도백년탑이 있다.

2.3. 동부 7리

2.3.1. 동남부 5리

대전광역시 유성구 구즉동 일대와 맞닿아있는 곳이다. 구즉동의 도시화 지역인 송강동/봉산동과는 오봉산 및 불무산으로 막혀있어서 구룡달전로금남구즉로와 같이 좁은 2차선 고갯길을 통해서만 왕래할 수 있었다.[4] 2016년에는 구즉세종로가 개통되어 유성구 구즉동 및 관평동(대덕테크노밸리), 대덕구와의 교통이 편리해졌으며 이후 유성구에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의 일환으로 둔곡/신동지구를 포함 세종 금남면 동남부 일대에서 아예 가까운 곳에 설정하여 장기적 발전이 예상된다.
2.3.1.1. 황용리
남쪽으로는 서대산, 비학산 자락이 있어 산지를 이루고 있고 삼성천이 흘러 그 주변으로 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영대저수지가 리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다. 호남고속선이 지나가는 지역다.
2.3.1.2. 영대리
2.3.1.3. 달전리
리 동쪽이 대전광역시 유성구 둔곡동이고 신탄진, 대청댐대전 버스 72가 운행중이다.
2.3.1.4. 대박리
2.3.1.5. 박산리

2.3.2. 동북부

금강을 끼고 있는 면의 동북부. 동쪽이 다소 북쪽인 금남면의 형세로 인해 금남면 최북단이기도 하다. 동쪽 금강 너머 부강면과 경부선 부강역이 있지만 금강을 사이에 두고 교통은 그다지 좋지 않은 실정이다. 행복도시-부강역 도로가 건설되어 집현동-부강면(구 부용면)과 부강역을 연결하게 될 예정이다.

집현동도 이 일대이나 2020년 동으로 승격되었다.
2.3.2.1. 부용리
북쪽으로는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부강리, 금강 동쪽에는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금호리가 있다. 부강면은 과거 부용면으로, 당시 충청북도 청원군에 속했다. 한때 금남면에서 충북과 접했던 유일한 리였다. 물론 지금은 외천리를 제외한 부용면 전체가 청원군에서 세종시로 넘어와서 깨졌다.

금강 너머 부강면의 옛 이름인 '부용면'과 이름이 같았다. 한자도 '芙蓉'으로 같으며, 유래도 부용산으로 같은 것으로 보인다. 외려 '이곳이 원래 부강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피력한 책이 세종시청 1층 도서관에 있을 정도.[5]

이곳 벚꽃길이 지역에서 알려져있다. 벚꽃길의 끝에는 부용가교가 부강면 부강리로 이어진다. 부용가교는 2021년 5월 재개통됐고 부강면 금호리와 이어지는 부용교가 새로 개통됐다.

3. 역사

삼국시대 마한의 54개국 중 하나, 백제의 웅진성
통일신라시대 웅천주에 속하였음
고려~조선시대 공주현, 공주군에 속하였음
1914년 연기군 금남면으로 개편
1946년 금강변 대홍수로 대평리 유실
1973년 공주군 반포면의 도암, 성덕, 영곡리를 편입
2006년 금남면을 세종특별자치시 예정지역으로 수용
2012년 공주시 반포면의 5개리를 편입,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으로 개편
2020년 집현리를 행정동 소담동 관할의 집현동으로 분동[6]
금남면 행정복지센터로 명칭 변경

대부분 금남면행정복지센터 출처이다.

4. 공동주택

공동주택/목록/세종특별자치시 참조바람

5. 교통

5.1. 도로

서산영덕고속도로 남세종IC가 대전광역시 접경지역에 있고, 왕복 4차로에서 8차로로 확장된 세종로를 통해 고속도로 진출입이 가능하다. 1번 국도가 면을 남북으로 통과하며 두만교차로를 기준으로 북쪽은 세종로, 남쪽은 반포세종로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는 1번 국도로 금강을 횡단하는 교량은 금남교였으나 노선 이설로 현재는 1번 국도의 금강 횡단 교량은 학나래교로 대체되었다. 대전 방면으로는 2가지 이상의 루트가 있다. 노은동 방면으로는 세종로나 안금로를 통해 갈 수 있고, 구즉동 일대로는 금남구즉로, 구룡달전로, 구즉세종로를 통해 갈 수 있다.

5.2. 철도

호남고속선이 지나가지만 근처에 역이 없어 해당 일대에서 KTX를 타려면 오송역, 대전역에 가야 한다. 때문에 세종역 설치 논의가 있으며 설치가 된다면 유력한 후보지이다. 한편 대전 1호선 세종 연장시 지나야만 하는 지역이고, 결국 금남역(가칭)이 계획에 들어갔다. 둘다 성사시 관습상 역명 통합 가능성이 높다.

5.3. 버스

조치원읍 방면: 601,991, 1000
오송역,반석역 방면: B2, 1000

1Km정도 떨어진 대평동세종고속시외버스터미널이 있다. 세종고속시외버스터미널이 들어서기 전에는 용포리에 시외버스(일명 대평리 정류장)가 정차했다.

6. 교육

  • 초등학교
    • 금남초등학교
    • 감성초등학교
  • 중학교[7]
  • 고등학교[8]

7. 대전광역시와의 관계

과거 충청남도 연기군 시절 대전광역시 편입 떡밥이 있던 곳이다. 군의 중심지인 조치원읍보다는 대전의 부도심인 유성구대덕구 신탄진동 일대가 거리상으로나 접근성으로나 휠씬 가깝고 좋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관내 읍면 중 유일하게 금강 이남 지역이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금남교가 강북으로의 유일한 교통로였다.

역사적으로도 금남면 일대는 공주였다가 일제시대부터 연기로 편입된 지역이고, 금강 이남의 특성상 기존의 연기군 지역과는 지역색이 다른 측면도 약간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만 해도 금남면 전체가 대전 생활권이었고 때문에 금남 주민들도 그렇고 대전시민들도 그렇고 연기군보단 대전의 일부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은 계룡시로 독립한 논산군 두마면과 비슷한 사례.[10]

세종시 출범 이후로는 금강을 건너기 전에도 세종특별자치시청[11]이 위치해있고 금강 바로 너머에 행정중심복합도시 사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대전광역시에 편입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게 되었다.

8. 출신 인물

9. 관련 문서


[1] 2023년 6월 주민등록인구[2] 다만 해당 구역은 금강이라서(...) 무의미하다.[3] 조치원-종촌-동학사-계룡대간 1번 국도의 일부로, 2004년 12월에 개통했다.[4] 본래 세종시와 대전 유성구 간의 대부분의 교류는 서쪽의 노은동 일대에서 1번 국도 세종로를 통해서 주로 이루어졌었는데 당시 금남구즉로 및 구룡달전로의 경우 왕복 2차로로, 좁은 고개를 넘어야 했기 때문에 당시 구즉동 일대에서 왕래가 많지 않았다.[5] 부용면은 훗날 세종시 설치와 함께 중심지인 부강의 이름을 따 부강면으로 개칭됐지만, 청원군 부용면 외천리가 인접한 남이면에 편입되면서 이미 남이면에 있는 외천리(게다가 이웃해 있다)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부용외천리'로 이름을 바꾸면서 리 단위에서 '부용'이란 이름이 남아있게 되었다.[6]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잔여 리들은 2022년 전부 동으로 전환[7] 여기 거주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인근에 있는 금호중학교로 간다.[8] 여기 거주하는 학생들 중에서 일반고로 진학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보람고등학교, 소담고등학교로 많이 진학한다.[9] 구 금호중 위치.[10] 두마면은 대전과 가까웠고 논산과는 거리상으로도 약간 먼데다가 산으로 막혀 있어 생활권이 대전 진잠 일대와 같았으며, 일부는 대전직할시 승격과 동시에 대덕군에서 편입된 곳도 있다. 당시 3군 본부가 입지했던 논산 두마면 자체가 논산군의 시 승격 이전인 1990년부터 충청남도 직할 계룡출장소로 지정, 운영되었다. (1996년 논산시 승격) 그러나 당시 충청남도 논산시 두마면에 속했던 계룡출장소의 경우 계룡대가 있어 특례에 해당되었기 때문에 2003년 계룡시로 독립하는 것이 가능하였다.[11] 2012년 출범 당시에는 연기군청을 재활용했으나, 2015년 조치원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이전하였다.